집중기획  /  한국의 이미지

한국적 이미지의 창출을 위하여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

 

일전에 한국에 보다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목적 아래 만든 공익광고를 TV로 본 적이 있었다. 앞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청사초롱을 들고 웃고 있었고 뒤에는 황영조나 최불암, 안성기와 같은 각 분야에서 내노라 하는 스타들이 한데 모여서 웃고 있는 그런 광고였다. 그 광고에 대해 정부 안에서는 평가가 꽤나 좋았던 모양이다. 그 광고가 해외에서 방영되자 관광객의 숫자가 늘었다고 하면서 관리들이 무척이나 흐뭇해 했다는 후문이 들렸기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광고를 보는 순간, “아니 어떻게 저런 광고를 해외에다가 방영할 생각을 했을까” 하는 실망스러운 생각뿐이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김대통령은  해외에도 약간은 지명도가 있을지 몰라도 그 뒤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에게나 스타이지 외국인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보통의 한국 사람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광고를 보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광을 오겠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한 마디로 그 광고에는 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이라는 특정한 나라에 호기심이나 호감을 느끼게 할 만한  한국적 이미지가 전무했던 것이다.
이런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정부는 한국적 이미지의 개발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번은 우리나라에서 기업 이미지 광고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광고 회사의 사장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그때 문화부에서 한국적 이미지가 담긴 엠블럼을 공모한다고 해서 그것을 신청하려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나와 한국문화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던 것인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국가 엠블럼이라면 어디서든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국가의 엠블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들으라면 아무래도 국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이고 국기를 만들 때는 총력을 기울여 만든다. 그런데 국기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국가의 엠블럼을 만드는데 그것을 광고회사들의 응모를 받아 그중에서 당선된 일개 광고회사가 그것을 맡는다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광고 회사의 디자이너라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이들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도 일종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어떤 대기업의 디자이너를 교육시키고 있던 미국 디자이너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디자이너가 처음에 했던 이야기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결코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가 했던 첫마디를 그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옮기면, “they(한국 디자이너들) try to be either Americans or Europians”라는 문구였다. 다시 말해 우리 나라의 디자이너들은 한국적인 디자이너가 될 생각은 안 하고 미국식으로 혹은 유럽식으로만 생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만한 디자이너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배운 교육은 대개 서양 예술과 서양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서양 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디자인 회사에서 어떻게 한국적인 엠블럼이 나올 수 있을까? 아니 학계에서조차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제대로 정리된 게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응용하는 분야에서 그런 정신을 가진 표현체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국가의 이미지를 만들고 그 상징을 표현하는 것은 절대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통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한국적 이미지 혹은 상징 만드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런 문화적인 것은 조금은 사치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지금 먹고 사는 게 바쁜데 무슨 상징이고 이미지 타령이냐 하는 식인 것만 같다. 그러나 사람은 행동하기 전에 항상 이미지화 할 생각을 한다. 따라서 어떤 생각을 먼저 불러 일으키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한국적 이미지를 만들고 그 상징을 표현하는 것은 절대 배부른 다음에 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처럼 물품을 외국에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에게는 오히려 더 필요한 일이다. 물건 파는 것과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TV든 냉장고든 물건을 좋게 만들어 수출하기만 하면 자연히 외국인들이 사서 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통하지 않았다. 외국 구매자들이 우리나라의 삼성이나 대우의 제품들을 보면 그들은 원산지인 한국을 생각할 게다. 그런데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형성된 게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있더라도 전쟁이나 데모의 나라라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것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없고 있더라도 부정적인 것밖에는 없으니 그들의 생각은 한국 제품을 사는 구매 행위로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공연예술로 이미지살린 후 판매전략에 성공한 일본

이와 관련해서 일본 기업의 수출전략을 들어 보니 역시 선진국이 다르긴 달랐다. 나는 워크맨으로 이름 높은 소니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들이 미국에 물건을 처음 수출할 때 실제로 가장 먼저 보낸 것은 소니 TV가 아니라 가부키와 같은 일본의 전통예술을 공연하는 단체였다고 한다. 이것은 제품을 판매하기에 앞서 일본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문화나 일본적인 이미지에 대해 무관심했던 미국인들이 이 생경한 가부키 공연을 보러올 리가 없다. 이럴 때 기업의 자금력이 필요해진다. 소니사에서는 그 공연의 표를 대량 구매했다. 표가 매진되는 일이 벌어지니까 지역 신문들이 이 가부키 공연에 대해서 다루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니까 미국인이 이 공연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일본 문화는 서서히 미국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미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미국인들이 일본 제품을 살 때 일본 제품의 우수성도 생각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그들에게 먼저 각인된 일본 문화의 이미지도 동시에 생각했을 것이다.
일본 상품의 이미지에 대해 프랑스의 문화비평가인 기소르망은 우리나라의 제품 문화와 비교해서 아주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는 일본 상품은 물론 선진국의 잘 팔리는 상품들은 그 나라 문화의 이미지를 잘 살린 것들이라며 일본의 경우 그 제품들에서는 일본적인 탐미정신이 느껴진다고 주장했다. 그 반면 한국의 제품 속에서는 아무런 이미지나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한국적인 이미지 개발에 박차를 가해달라는 주문을 했다. 그러니까 외국인들이 한국의 상품들을 백화점 등지에서 만나면 그저 ‘대우’라는 그저 그런 회사의 TV, 혹은 그와 비슷한 ‘삼성’이라는 일개 회사의 냉장고라는 생각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그 냉장고나 TV에서 어떤 형태로든 끌리는 한국적인 이미지를 발견하는 것은 날샌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닌 게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제품들에서 갖는 이미지는 ‘일본 것보다는 조금 싸지만 애프터 서비스나 다른 면에서는 일본 것을 전혀 못 따라가는 그저 그런 상품’이라는 것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 상품의 이미지가 나와서 말인데 일본 상품에는 기소르망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일본적 탐미정신과 그 일본적 아름다움을 작은 것에서 실현시키는 “축소지향적 정신”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전세계를 석권했던 소니사의 워크맨은 그 아이디어가 전적으로 일본적인 데에서 나온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한다. 이 워크맨을 처음 생각했던 사람은 얼마전에 타계한 소니사의 사장이었는데 그는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어떻게 하면 공중석 상에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쳤단다. 같은 상황에서 서양인들은 어떻게 하면 나 혼자만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하고 궁리를 했을 텐데 일본인들의 발상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녹음기의 크기를 축소해버린 워크맨인 것이다.
녹음기를 작게만 만들었다고 문제가 다 풀린 것은 아니다. 디자인적으로 어떻게 꾸미는가가 관건으로 남았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작은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에는 이력이 난 사람들이다. 이것은 그들이 견지해 온 전통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발견된다. 가령 그들의 미학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분재(盆栽)는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분재는 송나라 때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것이라 한다. 그런데 지금 동북아 삼국 가운데 이 분재가 아직도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제일 발달한 나라는 바로 일본이다. 그만큼 작은 것을 다루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에 익숙했던 때문이리라.
그들의 정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정원과 비교해 보면 일본 정원의 미학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의 정원은 자연의 축소판이다. 자신들의 좁은 뜰에 자연의 모든 것을 축소시켜 들여다 놓는다. 그리고 각각의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그들의 정원은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나 마음 놓고 쉴만한 데가 없다. 모든 것이 빈틈없이 짜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원은 사뭇 다르다. 앞마당은 일의 공간이라 아예 아무것도 심지를 않는다. 담도 낮게 친다. 그 담 앞에는 나무를 심지 않는다.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일본식 정원은 자연을 집안으로  가져오지만 한국식 정원은 자연속으로 들어 간다. 그리고 집안만이 정원이 아니다. 앞의 평원과 뒷산이 모두 조경의 범위에 들어가는 게 한국의 정원이다. 그러니 오밀조밀하게 하지를 못한다. 온 자연을 모두 차경(借景)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인들의 이러한 미의식은 아직도 살아 있는 반면 우리의 그것은 전부 죽었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전통의 미의식을 지금 만드는 제품에 적용시켜 전세계를 주름잡는 상품을 만들고 우리들은 전통과 단절된 채 아무 생각없이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아도 별달리 뾰족한 이미지가 안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아직 어떤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인지 잘 떠오르지를 않는다. 한 번 ‘한국’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무엇이 우리의 뇌리에 떠오를까? 아마 대체로 이런 것들 아닐까? ‘태극기’, ‘단군’, ‘김치’, ‘한글’, ‘세종대왕’, ‘신사임당’, ‘석굴암’, ‘고려 청자’, ‘탈춤’, ‘올림픽’ 등등이 아닐까? 그런데 뭔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없다. 이것은 외국인들에게로 가면 상황이 훨씬 더 악화된다. 외국인들은, 특히 선진국민들은 ‘한국’이라는 이미지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부정적인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전쟁의 나라’ 아니면 항상 데모가 많고 사고만 터지는 나라, 아니면 경제 개발에 어느 정도 성공을 해서 돈이 약간은 있는 것 같지만 별로 내세울 만한 제품을 만들고 있지는 못하는 나라 정도이다. 조금 긍정적인 게 있다면 올림픽을 개최했던 기억이 있는 나라 정도라고나 할까? 심지어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있는지도 모르던지, 아니면 한 아프리카 어디쯤 있던지 하는 매우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우리나라를 해외에 너무 알리지 않은 탓이다. 우리나라 해외 공관에는 아직도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그리고 영어로 설명이 되어 있는 필름이나 책이 거의 비치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면 이런 열악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옳을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우리나라를 선명한 이미지로 묶어 외국인들에게 심어 줄 수 있을까? 이 일은 매우 중차대(重且大)한 일이라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라에서 뛰어들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 현재 정치권이나 관리들의 문화의식 수준으로는 이 일의 성공이 단 시일내로는 어림없을 것만 같다. 정치인들이나 관리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나빠할 테지만 이는 우리 국민들의 문화의식 수준이 아직 낮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 그들만 탓할 문제도 아니다. 이제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큰 방향만 잡아보자.

 

한 나라의 상징이나 이미지는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해…

나는 오래 전부터 우리는 하루 빨리 한국적 이미지를 창출해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주위에서는 아무 반향도 없었다. 내가 한국적 이미지의 창출을 주장한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러한 작업이 경제발달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근인(近因)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문화적 통합감 때문이었다. 한 나라의 국민들이 갖고 있는 문화의식 수준을 높이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국민들이 문화적 통합감을 느껴야 한다. 문화적 통합감을 느낄 수 있을 때만이 스스로의 문화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고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알려고 하고 더 깊게 연구해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외국에도 소개하려고 하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 대개는 우리의 과거 역사에 자랑할 만한 게 무엇이 있느냐고 하면서 문화적 열등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지난 몇십 년 동안 우리의 과거를 제대로 연구해 보지도 않고 그저 부정만 일삼고  있었다. 그러니 한국 사회는 문화부재의 천민사회가 되어갔고 현재도 상황은 그렇게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문화적인 데에만 국한시켜 말한다면 지금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문화적 열등감에서 탈피해서 자국 문화에 대해 건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문화적 통합감을 갖는 것이다. 그래야 문화의식 수준이 올라가고 사회에도 규범이 잡힐 것이다. 사회에 문화가 없으니 밤낮 하는 일은 먹고 마시고 놀고 여관 가는 일뿐이다. 모두가 다 말초적인 데에만 취해서 좀더 쾌락적인 것만 찾아 다니느라 광분하면서 살고 있다. 이런 천박한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문화의식을 높이는 것밖에는 없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의 문화의식을 높이는 데에는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문화적인 상징 혹은 이미지 혹은 영웅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어떤 사회든지 잘 돌아가는 사회에는 이러한 문화적 상징이나 이미지가 잘 정립되어 있다. 이런 상징이나 이미지는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한다.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터이니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는 항상 상징이나 이미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지금까지 인류가 가졌던 가장 강력한 상징 중에 하나는 십자가라고 말한다. 십자가는 디자인적으로 볼 때 더 이상 단순할 수 없는 극도로 간단한 문양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상징이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 미치는 힘은 언설로 표현할 수가 없다.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은 바로 이 십자가를 통해 하나됨을 느끼고 자신들을 위해 죽은 그들의 구세주에 대한 사랑과 한없는 공경감을 느낀다. 이른바 종교적 통합감과 기독교인으로서의 연대감을 절실하게 체험하는 것이다. 상징이나 이미지는 바로 이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런 강력한 힘을 가진 상징이나 이미지가 없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어디서고 문화적으로 한국인임을 느낄 만한 기회가 없는 것이다. 굳이 한국인임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우리 축구대표팀이 잠실벌에서 다른 나라 팀들과 축구경기를 할 때나 될까?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나 국민들은 이러한 상징이나 이미지의 제작에 대해 지나치게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앞에서도 본 것처럼 별 생각없이 이미지 제작을 일개 디자인 회사에 맡기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재벌 회사들의 엠블럼 제작에 대해 언급을 한다. 실제의 이름을 들어서 안됐지만 삼성의 엠블럼에 대해 말을 해보자. 삼성의 엠블럼, 이른바 ‘로고’도 단순하기 짝이 없다. 삼성이라고 영어로 쓴 다음 타원으로 비스듬하게 그 글자들을 휘감았다. 이게 전부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디자인을 하나 만들어내는 데에 삼성측이 들인 돈은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수백만 불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수십억의 돈을 들인 것이다. 영리를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회사에서 이렇게 수만금을 들여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헛것’ 같은 것에 돈을 쓰는 이유는 그만큼 엠블럼의 중요성에 대해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손해날 짓을 하겠는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일개 회사에서도 저렇게  많은 돈과 가없는 정성을 들여 만드는 이미지를 이 거대한 국가에서는 명망도 없는 또 한국문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없는 작은 디자인 회사에 단돈 몇천만 원 주고 부탁을 했다니 참 그 후안무치한 태도는 필설로 다할 수가 없다.

 

미래지향적인 이미지 만들어 져야…

그럼 국가 이미지 제작을 위해서 과연 어떤 작업부터 시작해야할까? 우선 가장 시급한 일은 한국문화에 정통한 학자들이 모여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오랜 기간을 두고 충분히 연구를 해야 한다. 이런 일은 조급하게 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급조해서 하느니 안 하는 게 났다. 그리고 이들은 젊은 학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래야 참신한 생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새천년 행사 등 현금까지 있어 왔던 정부 주도의 문화행사를 관망하면서 그 구태의연한 모습에 실망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가령 상암동 경기장에 백여년에 걸쳐서 문을 열두 개나 만든다는 것은 도대체 돈이 많아서 쓸 데가 없는 사람들이 행하는 일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일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연로한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했다면 아마 이런 일은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떻든 이들의 연구가 충분히 되었다면 그 다음에는 그 결과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디자인 전문가들과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사회의 각계 계층 인사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과정이 이렇게 복잡다단하게 되어야 하니 엄청난 예산이 확보되어야 한다. 제대로된 예산이 없다면 아예 시작을 안 하는 게 좋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정신을 번쩍들 게 하는 예화를 들어보자. 어떤 디자인 전문가에 들은 이야기인데 영국의 젊은 수상 블레어가 영국 최고의 디자이너 수십명을 모아놓고 직접 했단다. 그 목적은 영국의 공항이나 역, 항구 등 외국인들들이 가장 먼저 영국을 접하는 곳을 어떻게 하면 가장 영국적으로 재(再)디자인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앞으로 개보수를 할 때는 항상 디자인 위원회 같은 데에서 허락을 받고  시행해야 된다는 법령도 만들었다는 후문이 들려온다. 이게 바로 선진국에서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이런 높은 문화의식을 바란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이제 앞으로 창출해야 할 이미지 혹은 상징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모두 담아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갇혀서도 안된다. 앞으로 갈 길이 창창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나라는 어떻든 몇십년 내로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통일이 된 후에 남북한 국민들은 과연 무엇을 통해 한 민족임을 느낄 수 있을까? 그 일은 남북한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국가 이미지를 통해서만이 가능할 것 같다. 여기에 국가 이미지 창출의 또 다른 중요성이 있다. 남북한  국민들이 그 이미지만 보면 한 나라의 국민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미래지향적인 이미지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지 제작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도 하겠다. 그렇게 어렵게 창출된 이미지를 보면 청와대의 대통령부터 제주도의 해녀까지 한 나라의 국민임을 절감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통일이 되었을 때 평양의 인민이나 함경북도 회령의 인민들도 그 이미지를 보면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통일 한국의 전(全)한국인들이 이 이미지를 보면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한없는 감사의 마음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의식의 수준은 바로 급상승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우리나라도 세계에서 매우 살기 좋은 나라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