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기대를 배려하는 이미지 전략 세워야
양현미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책임연구원)
우리 사회가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을 언제부터 인식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이 이러한 인식을 제고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는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지적해 왔는데, 특히 IMF라는 절망적 시대상황
속에서 그의 견해는 우리 경제의 막힌 혈맥을 뚫어줄 명처방으로 대서특필되었었다.
지난 7월 7일 재차 한국을 방문한 기 소르망은 「문화의 경제적 가치」1)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가 수출증대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번 역설할 기회를 가졌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하다.
경제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는 나라들은 모두 강력한 문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문화적 이미지는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단순한 용어로 쉽게 묘사할 수는 있다. 즉, 독일은 고품질과 기술, 프랑스는
패션과 삶의 질, 일본은 정밀과 섬세한 아름다움, 미국은 탁월한 품질과
서비스, 이태리는 우아한 세련미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형화된 이미지가 반드시 실제와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 그러나
그들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고 경제의 순환과정과 소비자의 여망에서,
또 재화와 용역의 가격결정에서 강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그러면 한국은 견고한 문화적 이미지와 이 문화적 시각에서 본 부가가치를
갖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 본인의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이다.
… 일본의 문화는 일본의 예술을 통해 60년대 서구에 소개되었는데,
이것이 일본의 평판을 높이고 서구 소비자에게 일본 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 그러나 한국문화를 해외에 선양하기 위한 노력은
… 이러한 정책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득과 비교할 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2)
다소 길게 인용해본 이
문구는 사실 여러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익히 알고 있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반복이 주는 식상함을 논하기에 앞서 더 식상한 것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아니 과연 한국의 이미지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솔직히 말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
왜 중요한가
사실 기 소르망의 견해는
간단해 보이면서도 간단치 않은 핵심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사회를 추동해온 근대화 패러다임, 즉 민주주의와 문화의 발전을
희생양으로 삼아온 경제발전 중심의 근대화 패러다임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기 소르망이 비판하는 관점이 이른바 문화계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문화가 갖는 인본주의적 가치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문화애호가일수는 있지만 그것이 그의 주장의 본질적인
부분은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전 보다
더 지독한 경제주의적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 할 수 있는데, 그가 문화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이유는 문화가 더이상 경제활동의 외적 영역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가 된, 질적으로 새로운 경제단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에서 문화적 요소를 등한시했다고
하지만,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인정받았던 문화의 영역이 있었다. 그것은
상품 디자인이며 이러한 인정의 제도적 증거가 오늘날에도 산업자원부
산하로 되어있는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이다. 그러나 기 소르망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즉 개개 상품의 디자인이 우수한 것만
가지고는 더이상 국제경쟁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가 경제활동에서 그토록 중요해졌는가?
소비사회에서 이미지와
욕망의 변증법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소비사회’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1970년에 발표한 『소비의 사회:그 신화와
구조』에 기원을 두고 있는 소비사회라는 개념은 1960년대부터 나타난
서구사회의 변화를 특징짓는 개념으로서, 경제활동의 결정요인이 더이상
생산이 아니라 소비로 전이된 사회단계를 말한다. 그 이전까지
서구사회는 생산과 수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늘 공급이 부족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초기에는 공급의 절대량이 부족한 데 원인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부의 재분배 과정에서의 불평등이 더 큰 문제가 되었다. 서구사회는
생산력을 높이는 경제혁신과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이를 보완해 나갔는데,
문제는 바야흐로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먹고사는데 필요한 재화를 얻는데
있어서 더이상 어려움을 겪지 않게 된 ‘풍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작된다. 문제는 쏟아져 나오는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서구사회의 서민층에게 오랜기간 동안 생활의 지혜로 체득되어온
근검절약은 더이상 미덕이 아니라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질곡이 된다.
그들은 근로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생산자일뿐만 아니라 집에 돌아가면
열심히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여기에 이른바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들의 감성을 조작하는 다양한 전략들이 개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의 핵심은 가능한 이상으로 많이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필요하지 않아도 사게 만들고, 가능한 한 비싼 물건을 사게 만들며,
더 중요한 것은 물건이 망가져서가 아니라 싫증나서 혹은 구닥다리여서
버리게 만들어야 한다. 매 시즌마다 신상품 모델과 새로운 유행이 선보이는
것은 마지막 사안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쉽게 쓰겠는가.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돈을 쓰는 만큼 그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는 일이다. 독일의 상품미학자 W.F.하우크는
이것을 ‘사용가치의 미적 약속’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무엇을
약속하는 것인가. ‘당신은 이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저 수많은 군중들과
구별되는 선택받은 집단에 속하게 된다’는 것이다.3) 서구인이 일식집에서
스시를 먹는 것은 대부분 맛을 즐겨서라기 보다는 그 행위가 자신을
다른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구분해주는 사회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장 보드리야르4)는 이를 ‘차별화(differenti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비자가 어떤 차별화를 원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욕망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욕망은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전자가 리서치
기관이나 심리분석가의 몫이라면, 후자는 바로 대중문화와 광고의 몫이다.
문제는 이러한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신뢰’를 어떻게 줄 것인가이다.
처음에는 상품의 디자인에서 시작되어 상표로 그리고 광고로 발전되어
갔는데, 이 과정은 상품의 표피로부터 상품과 전혀 관계없는 이미지
자체, 욕망 자체로 추상화되어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상품의
디자인은 매장의 실내장식과 상품진열 방식, 상품을 설명해주는 직원의
친절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디자인으로 변했으며, 상표도 상품 종류에
따라 붙여지던 것이 기업명과 그룹명 자체가 상표가 되었고, 광고도
상품의 구체적인 기능을 설명하는 데에서 상품과 전혀 상관없는 이미지
광고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추상화는 어떤 국가에서 생산된 상품 전체로까지
나아가게 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기 소르망이 말하고자 했던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추상화로 인해 이미지는 점점
그것이 재현하고 있는 대상과는 관계가 모호해지게 된다. 보드리야르는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4단계를 거쳐 변화해왔다고 보는데5), 이것은 상품
이미지에서 기업이미지로 다시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로 추상화되어 가는
단계와 조응하고 있다. 즉 이미지가 상품을 반영하는 단계에서 이미지는
상품과 무관한 단계, 이미지가 욕망을 반영하고 욕망을 지배하게 되는
단계가 된 것이다. 하우크는 미적 가상이 인간의 감성을 매혹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확보하게 되는 메카니즘을 감성의 기술지배라는
용어로 포괄하면서6) 이를 다분히 비판적인 의미에서 상품미학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상품미학이 피할 수 없는 기제로 자리잡은 소비사회에서
이미지 관리는 결국 신뢰를 줄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 그것은 비단 상품세계의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닌데,
연예인이나 정치가에게 있어서 이미지 관리가 갖는 중요성만 생각해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 ‘이미지 관리’는
수익성 높은 사업이 되었으며 동시에 상업, 산업, 정치 및 인간 상호관계
영역에서 사실상의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또한 스타일은 정보에
내재하며 영향을 미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삶의 여러 측면에서
외관의 힘은 우리가 본질의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에 간섭하거나 그것을
만들어낸다.7) 그들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가이미지
컨설턴트는 이러한 이미지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신종 직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문화부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모든 상품, 서비스, 기업을 포괄하는
한국의 이미지 컨설턴트인 셈이다. 컨설턴트의 임무는 무엇인가.
소비자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나라만이 줄 수 있는 것이라는 차별화가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소비자는 전세계이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욕망은 현실에 없는 것,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는 결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틈새시장이라는 것이 다 있을 것 같은데 부족한 바로
그 지점에서 형성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이미지
컨설턴트의 문제는 우리만이 줄 수 있는 것에는 많은 신경을 쓰고,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 문화가 갖고
있는 어떤 결핍 부분을 파고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전략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외교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에
호소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데, 이것은 이미 중국, 일본, 인도 같은
국가들이 물량 면에서 훨씬 앞서 있다. 기업이 지역사회에서 문화적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대기업은 이미지 광고와
함께 한번 문화행사를 해도 세계적인 수준과 규모로 해서 이미지를 심는다.
이때 이미지의 영향력은 전국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이지만 실패할 경우
리스크도 크다. 이렇게 문화적 이미지를 심으려면 막대한 자금력과 매스미디어
동원력을 필요로 한다. 중소기업은 이런 식으로 할 수도 없고 이렇게
했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 지역사회의 보다
구체적인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킴으로써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있는데,
오히려 이러한 방식이 실패확률도 적고 효과도 지속적임이 입증되어
왔다. 일본은 여기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대기업식 이미지 제고전략을
채택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나라에 일본기업이 어느 정도 진출했다
싶으면, 기업들이 콘소시엄을 구성하여 특정 지역에 일본주간을 설정하고
전국적인 규모의 문화축제를 기획하였으며 일본국제교류재단에서는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은 매스미디어의 집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지 형성에 확실히 효과적이다. 보면 믿게 되고, 믿게
되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가의 문화적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투자한 것은 싼값에 디자인이 조금 좋은 상품을 팔기 위함이 아니라
비싼 돈을 주면서라도 일본 것을 사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일본은 ‘일본 것이면 모두 믿을만하다’는 ‘사용가치의 미적 약속’에
신뢰를 부여하기 위하여 사무라이의 충성심과 일본공예의 정교함과 대를
잇는 장인정신을 미적 가상의 자원으로 사용하였다. 충성심과 장인정신은
이미 계약제 사회와 대량생산 체제 내에서 사라져 버린, 그러나 서구인들이 그러한
사라짐을 아쉬워한 가치였던 것이다.
문화상징물이 문화적
이미지의 자원이 될 수 있는가
우리나라의 문화적 이미지를
‘제고’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문화적 이미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부가 외교통상부의 문화외교국과는 다르게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중요한 정책사업으로 <문화상징 베스트
10>이 있다.(문화부의 한국의 문화이미지 제고를 위한 정책목표와
사업은 표로 정리하였다.) 여기에 선정된 것을 살펴보면, 한복, 한글,
김치, 불고기, 불국사, 석굴암, 태권도, 고려인삼, 탈춤, 종묘제례약,
설악산, 세계적인 예술인이다. 이러한 상징들은 개별적으로는 모두 우리
문화를 잘 드러내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서구인의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치유하는 문화적 이미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매개가 명료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우리나라 최초의 미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우현 고유섭
선생이 우리나라 전통미술의 고유한 미적 특질로 규명했던 ‘무기교의
기교’야말로 우리나라의 문화적 이미지를 세계화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자원이 아닌가 싶다. ‘무기교의 기교’란 인공적인 기술을 자연에
가하였으나 일본 것처럼 인위적이지 않고 중국 것처럼 과장됨이 없이
자연스러운 특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문명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이룩한 근대화 과정을 반성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고 있는
정신적 태도와 일맥상통한다. 일본인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우리
민예품에서 이러한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난다고 보았는데, 이는 문화상징물로
선정되어 있는 한복, 불국사, 석굴암, 탈춤, 종묘제례악 등 뿐만 아니라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질이다. 인공적 이미지들로
가득찬 현대 도시문명의 현란한 스펙타클 속에서 우리 문화의 이미지는
오히려 정반대의 방향에서 서구인의 감수성에 호소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방식도 일본처럼 물량위주로 나아가기보다는
지역사회에 스며들 수 있는 방식이 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교포가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를 예로 들어보자. 세계적인 미술가 백남준의
전시를 캘리포니아현대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개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 도시에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흑인과 히스패닉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는데 적절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문화센터를
만드는데 지역주민, 한국기업, 예술가들의 중지를 모으고 이를 재정적으로
지원한다면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가 보다 효과적으로 제고될 수 있다.
문화적이라는 수식어는 예술장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도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광고가 감각과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이미지와 음향의 강도를 높일 때 오히려 바람소리와 풍경
소리만 들리는 빈 화면이 더 인상 깊듯이, 우리나라의 이미지도 이런
방식으로 서구사회에 스며들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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