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동하는 무화예술인 1 / 해외무대를 빛내는 한국 무용가들 |
그들에 대한 지원은 국내 무용계를 향한 투자다 - 해외 무대를 빛내는 우리 무용가들 - 장광열 (무용평론가)
해마다 이맘때면 지구촌 곳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인 무용수들이 고국을 찾아온다. 대부분 여름 휴가를 이용해 일시 귀국하는 이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직업 무용단에서 활약하는 프로 무용수들이 대부분이다. 유명 무용학교와 국립 연구소 등에서 활약하는 주인공들도 더러 있다. 이 들은 한결 같이 한국 출신 무용수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세계 곳곳에 한국의 춤을 알리는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다 8월 2일 타워호텔 실버
룸에서는 이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무용수들이 처음으로 함께
자리해 자신들의 춤 배경에서부터 몸담고 있는 직업 무용단의 면모,
그리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예술 정책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20명이 넘는 전문 무용수들이 세계 곳곳의 직업 무용단에서 활동 1990년대 이후 국제 무대로
진출하는 우리 나라 무용수들의 숫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외국의
직업무용단에서 활약하는 무용수들도 많아졌고,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하는
무용가들의 수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여기에 외국의 무용학교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까지 합치면 외국에서 무용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무용가들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지난 7월 26-27일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에서 주최한 세계 발레 스타 초청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워싱톤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조주현의 경우도 국내 데뷔 무대에서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 보였다. 핀란드 안무가 체크와나의 `사바나’
파드되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 조주현은 힘과 유연성이 만들어 내는 카리스마가
단연 빛났다. . 어떤 커플은 아주 기교적인 춤으로, 어떤 커플은
아주 섬세한 표현력으로 작품을 리드해 나가더군요. 주역 무용수들은
어떤 형태로든 관객들을 열광시킬 만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애틀랜타
발레단의 경우도 모던 발레에 대한 비중이 높습니다. 한 달에 2주일
정도는 공연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레퍼토리들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활동하다
1994년에 애틀랜타 발레단에 입단한 김혜영의 말이다. 1996년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한 배주윤은 “볼쇼이 발레단에서 외국 국적을 가진 무용수는 저밖에
없습니다. 외국인 단원이란 것 때문에 또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없지는 않습니다. 볼쇼이 발레단이 해외 공연을 갈 때 한국
국적으로 인해 비자를 받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그런 이유로 공연에
합류하지 못할 때는 무척 속상해요. 모스크바 국제 발레 콩쿠르 특별상
및 인기상을 수상한데 이어 2년 전 페름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1위 입상을
하고 난 후에는 단원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뒤셀도르프에 있는 유럽무용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윤정 역시 안무와 교육 쪽의 활동 비중이
높다. 새로운 예술의 해 프로젝트로 선정된 `MAISON- BAROQUE’ 공연을
위해 내한한 그녀는 피나 바우시와 탄츠 테아터에 관한 논문을 쓴 것이
계기가 되어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유럽무용센터를 졸업 후 그곳 교수들과
함께 작업한 것이 인연이 되어 강의도 하고 안무 작업도 하고 있는 경우이다. 문예진흥원 지원으로 해외 연수 도중 직업무용단으로 진출 이날 모임에 참석한 재외
무용가 중에는 문예진흥원의 지원이 계기가 되어 전격적으로 직업무용단에
진출한 경우도 있었다. 국가대표 리듬 체조 선수를 지낸 현대무용 전공의
이용인과 김용걸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오래 전부터 인터뷰
할 때마다 저는 우리 나라에는 무용수들의 수도 많고 또 기량도 뛰어난
만큼 국내에 정착하기보다는 해외로 적극 진출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내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 나라 무용수들을 해외로 적극 수출하는 정책을 세우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활동 경험이 가장 많은 허용순의
말이다. 무용가를 수출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화를 벌어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는
것이다. 이들의 의견은 세계 무대로 우리 나라 무용가들을 진출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나라의 무용 발전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는
데 까지 이어졌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일본에서 한달 여 동안 공연이 가능한 것은 벤츠의 본사가
슈투트가르트에 있어 공식 스폰서가 되어준 것이 계기가 됐고, 그 배경에는
일본의 자동차 시장이 워낙 크다는 벤츠사의 계산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경제력의 차이가 메이저 발레단의 장기 공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는 많을 때는 3명의 일본인
무용수가 있었다. 프리마 발레리나가 한국인 무용수인 메이저 발레단인
데도 스폰서를 하겠다는 국내 기업이 없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내한공연이
7년 동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해외활동 무용수 활용하는 다양한 정책 마련되어야 기업이나 정부 차원에서
해외에 진출해 있는 자국의 무용수를 지원하는 것은 해외 무용수들이
지적한 대로 양쪽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우리 무용수를 외국에
진출시키는 것 뿐 아니라 외국의 무용단을 국내로 불러들일 때도 해외에서
활약하는 무용수들은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강수진 씨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시가 강수진 씨의 이름을 딴 새 품종의 난을 개발했는데 날개 돋친 듯이 팔려 신청 후 6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강수진 씨의 얼굴이 담긴 공익 광고판을 단 시내 버스가 슈투트가르트 시내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슈투트가르트 시가 강수진 씨의 이름을 딴 거리를 지정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발레단을 빛내고 있는 스타에 대한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의 예우에 정말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강수진 씨가 한국인임을 아는 독일인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한국의 정부나 문화예술 단체 어디에서든 강수진 씨를 위해서 슈투트가르트 시에서나 독일 내에서 그를 위해 작은 행사라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용인의 지적이다. 장인주는 “프랑스에서
발레를 하는 댄서들에게 파리 오페라 발레는 최고선망의 대상입니다.
이 발레단에 한국인 단원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파리에 살고 있는
우리 나라 국민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요”라며 해외에서
활약하는 예술가들을 통한 국가 홍보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일본 발레를
대중화시키는 데 있어 해외 유학파 스타 발레리나의 힘이 컸다. 뉴욕
시티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일본 공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문화예술계는 계약상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주역인 오데트 공주 역에
모리시다 요코의 캐스팅을 성사시켰다. 언론에서는 일본인 무용수가
메이저 발레단의 공연에서 주역인 오데트 공주 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했고, 발레에 별반 관심이 없던 관객들은 이런 보도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세계적인 발레단의 초청공연에서 주역 무용수로 춤추는 일본인
무용수를 보기 위해 연일 공연장으로 몰려들었다. 이 같은 일본의 월드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는 곧 바로 발레 대중화의 기폭제가 됐고, 지금은
발레에 관한 한 엄청난 관객 층이 형성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작업을 존중하고 그들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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