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동하는 무화예술인 1 /  해외무대를 빛내는 한국 무용가들

그들에 대한 지원은 국내 무용계를 향한 투자다   - 해외 무대를 빛내는 우리 무용가들 -

장광열 (무용평론가)

 

해마다 이맘때면 지구촌 곳곳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인 무용수들이 고국을 찾아온다. 대부분 여름 휴가를 이용해 일시 귀국하는 이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직업 무용단에서 활약하는 프로 무용수들이 대부분이다. 유명 무용학교와 국립 연구소 등에서 활약하는 주인공들도 더러 있다. 이 들은 한결 같이 한국 출신 무용수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세계 곳곳에 한국의  춤을 알리는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다

8월 2일 타워호텔 실버 룸에서는 이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무용수들이 처음으로 함께 자리해 자신들의 춤 배경에서부터 몸담고 있는 직업 무용단의 면모, 그리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문화예술 정책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이미지 만들기에도 큰 영향을 끼치며, 그들을 지원하는 정책은 역으로 국내 예술계의 활성화로도 연결되는 장기적인 투자가 된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재외 무용가들의 생생한 증언을 곁들여 최근 세계 무용계의 동향과 해외에서 활약하는 우리 나라 예술가들의 지원 방안 등에 관해 살펴본다.

 

20명이 넘는 전문 무용수들이 세계 곳곳의 직업 무용단에서 활동

1990년대 이후 국제 무대로 진출하는 우리 나라 무용수들의 숫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외국의 직업무용단에서 활약하는 무용수들도 많아졌고,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하는 무용가들의 수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여기에 외국의 무용학교에서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까지 합치면 외국에서 무용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무용가들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현재 외국에 체류하며 직업 무용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나라 무용수들의 수는 20명이 넘는다. 이 숫자는 국내에서 학교를 다녔거나 활동을 하다 외국으로 진출한 경우만 꼽은 숫자다. 대부분 미국과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오디션을 통과해 직업무용단으로 진출한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강수진, 허용순, 유영하 등 프로 무용수들은 극히 소수였으나 1990년대로 넘어서면서 발레 뿐 아니라 현대무용 분야에서도 많은 무용수들이 국제무대로 진출하고 있다. 또 1980년대의 경우 대부분 군무진에서 뛰었으나 지금은 주역을 맡고 있는 무용수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으며 독특한 캐릭터로 자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무용수들도 여럿 있다.

지난 7월 26-27일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에서 주최한 세계 발레 스타 초청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워싱톤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 조주현의 경우도 국내 데뷔 무대에서 자신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 보였다. 핀란드 안무가 체크와나의 `사바나’ 파드되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 조주현은 힘과 유연성이 만들어 내는 카리스마가 단연 빛났다.
올 1월 견습 단원 오디션을 통과, 6개월 동안 활동하다 50대 1의 경쟁을 뚫고 정식 단원 오디션에 합격, 파리 오페라 발레단과 인연을 맺은 김용걸 역시 국내 발레 무용수들과 그곳 무용수들과의 가장 큰 차이로 개성적인 캐릭터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꼽았다.
“전막으로 `신데렐라’ 공연을 할 때 3쌍의 남녀 주역 무용수가 캐스팅되었는데, 놀랍게도 그들 모두가 각기 다른 스타일로 작품을 끌고 나갔습니다

. 어떤 커플은 아주 기교적인 춤으로, 어떤 커플은 아주 섬세한 표현력으로 작품을 리드해 나가더군요. 주역 무용수들은 어떤 형태로든 관객들을 열광시킬 만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습니다.”
클래식 발레를 평할 때 특히 드라마틱한 구조를 갖고 있는 그랜드 발레의 경우 예전에는 주역 무용수들의 기교적인 면이 중요한 평가의 대상이었으나 20세기 후반 들어서는 주역 무용수의 연기력과 감정의 변화에 다른 독특한 캐릭터 창조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사실 메이저 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들의 기량은 어떻게 보면 종이 한 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무용수들은 한결같이 모던 발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클래식 발레 외에 모던 발레를 선호하는 경향은 세계적인 추세임에 틀림없다.

“제가 몸담고 있는 애틀랜타 발레단의 경우도 모던 발레에 대한 비중이 높습니다. 한 달에 2주일 정도는 공연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레퍼토리들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활동하다 1994년에 애틀랜타 발레단에 입단한 김혜영의 말이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미국 순회 공연 중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클래스에 참가한 것이 인연이 되어 2년 전 뉴욕 시티 발레와 함께 미국 발레의 양대 산맥인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 입단한 강예나 역시 “관객확보와 레퍼토리의 다양화를 위해 클래식 발레만을 공연하던 전통을 깨고 몇 년 전부터 현대무용 안무가들을 초청해 레퍼토리를 늘려가고 있다”며 달라진 발레단의 운영 면모를 전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우리 나라 무용수들은 종종 동양인이란 것 때문에, 한국 국적을 가진 것 때문에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1996년 볼쇼이 발레단에 입단한 배주윤은 “볼쇼이 발레단에서 외국 국적을 가진 무용수는 저밖에 없습니다. 외국인 단원이란 것 때문에 또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없지는 않습니다. 볼쇼이 발레단이 해외 공연을 갈 때 한국 국적으로 인해 비자를 받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그런 이유로 공연에 합류하지 못할 때는 무척 속상해요. 모스크바 국제 발레 콩쿠르 특별상 및 인기상을 수상한데 이어 2년 전 페름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1위 입상을 하고  난 후에는 단원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볼쇼이 발레단과 같이 200 명이 넘는 단원들을 보유하고 있는 메이저 발레단일수록 텃세는 더 심하다. 세계의 어떤 직업 발레단에도 입단하기가 무척 힘든 만큼 컴퍼니 소속의 발레학교 출신이나 자국의 무용수가 아닌 사람의 발레단 입단은 경계의 대상이 되고 질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배역을 둘러싼 경쟁, 군무에서 솔리스트, 주역 무용수로 올라가는 단계에서의 경쟁 역시 치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프로 무용단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해외 무대에 진출해서 오랜 동안 직업 무용단 경력을 쌓은 무용가들의 경우는 춤추는 것보다 안무나 가르치는 데 대한 비중이 점차 높아지기도 한다. 선화예고 재학 중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 1980년대 초반 이미 유럽 무대로 진출한 허용순은 “안무가 유리 바모스와는 스위스 바젤 발레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9년째 함께 작업하고 있습니다. 한 예술감독과 오랫 동안 작업하다 보니 춤추는 것 외에도 안무나 가르치는 쪽에 비중이 더 많아지기 시작하더군요. 몸담고 있는 뒤셀도르프 발레단 말고도 안무가 마츠 에크 등과도 연계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뒤셀도르프에 있는 유럽무용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윤정 역시 안무와 교육 쪽의 활동 비중이 높다. 새로운 예술의 해 프로젝트로 선정된 `MAISON- BAROQUE’ 공연을 위해 내한한 그녀는 피나 바우시와 탄츠 테아터에 관한 논문을 쓴 것이 계기가 되어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유럽무용센터를 졸업 후 그곳 교수들과 함께 작업한 것이 인연이 되어 강의도 하고 안무 작업도 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날 참석자 중에는 프랑스 국립 과학원의 상임 연구원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인 장인주는 이화여대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무용이론을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파리 국립 과학원의 연구원으로 들어간 케이스. 바로크 시대의 무용을 정리하고 포스트 모더니즘과 20세기 모더니즘을 무용예술과 연계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수원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 작업을 함께 병행하고 있다.
  

문예진흥원 지원으로 해외 연수 도중 직업무용단으로 진출

이날 모임에 참석한 재외 무용가 중에는 문예진흥원의 지원이 계기가 되어 전격적으로 직업무용단에 진출한 경우도 있었다. 국가대표 리듬 체조 선수를 지낸 현대무용 전공의 이용인과 김용걸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문예진흥원의 젊은 무용가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댄스 아카데미에서 연수를 하던 중 린츠 발레단의 오디션에 응시하게 됐으니 제가 오스트리아의 직업 무용단에서 활동하게된 것은 순전히 문예진흥원의 지원 프로그램 덕분입니다.”
“이용인 씨와 같은 해에 지원을 받아 외국의 유명한 발레단에서 연수를 받던 중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객원 단원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오디션을 보게된 것이니 저 역시 문예진흥원지원정책 덕택에 외국의 메이저 발레단에 입단하게 된 것이지요.”
이 대목에서 참석자들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에 대한 지원과 함께 우리나라 무용가들의 국제 무대 진출과 관련,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오래 전부터 인터뷰 할 때마다 저는 우리 나라에는 무용수들의 수도 많고 또 기량도 뛰어난 만큼 국내에 정착하기보다는 해외로 적극 진출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내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 나라 무용수들을 해외로 적극 수출하는 정책을 세우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활동 경험이 가장 많은 허용순의 말이다.
김용걸 역시 “저 같은 경우도 허용순 선배와 강수진 선배 등 선배 무용수들이 일찍부터 해외에 진출해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시도한 것입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무용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리고 그들의 활약상이 많이 소개되면 소개될수록 후배들의 국제 무대 진출도 더욱 활성화될 것입니다”라며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무용가를 수출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화를 벌어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는 것이다. 이들의 의견은 세계 무대로 우리 나라 무용가들을 진출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나라의 무용 발전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라는 데 까지 이어졌다.
유니버설발레단과 서울발레시어터에서 활동하다 2년 전 미국 네바다 발레단으로 진출한 곽규동은 “이번에 서울발레시어터에서 허용순 선배의 클래스에 참가했는데 클래스의 내용이 아주 좋았습니다. 오랫 동안 직업무용단 생활을 하면서 여러 명의 안무가들과 작업하고 여러 명의 교사들의 클래스에 참가하다 보니 노하우가 쌓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 실력과 경험들이 결국 고국에서 후진들을 위해 귀중하게 사용될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 모두도 훗날 무대에서 은퇴하면 훌륭한 안무가와 훌륭한 교사로 변신해 대한민국의 무용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할 주인공들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해외에 진출하는 무용수를 지원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무용수 개인에 대한 후원이기보다는 뒤집어 보면 국내 무용계 발전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가 된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일의 여러 직업 무용단에는 일본인 무용수들이 적지 않다. 그들 중에는 물론 기량이 뛰어난 무용수도 있지만 더러는 무용단 측에서 의도적으로 뽑은 사람도 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무용단일수록 이 같은 사례가 많은데 이는 일본 기업들의 스폰서를 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일본인 무용수를 단원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일본 기업으로부터 스폰서를 받기가 유리하고 또 무용단의 일본 공연 성사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일본에서 한달 여 동안 공연이 가능한 것은 벤츠의 본사가 슈투트가르트에 있어 공식 스폰서가 되어준 것이 계기가 됐고, 그 배경에는 일본의 자동차 시장이 워낙 크다는 벤츠사의 계산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경제력의 차이가 메이저 발레단의 장기 공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는 많을 때는 3명의 일본인 무용수가 있었다. 프리마 발레리나가 한국인 무용수인 메이저 발레단인 데도 스폰서를 하겠다는 국내 기업이 없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내한공연이 7년 동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우리 현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해외활동 무용수 활용하는 다양한 정책 마련되어야

기업이나 정부 차원에서 해외에 진출해 있는 자국의 무용수를 지원하는 것은 해외 무용수들이 지적한 대로 양쪽 모두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우리 무용수를 외국에 진출시키는 것 뿐 아니라 외국의 무용단을 국내로 불러들일 때도 해외에서 활약하는 무용수들은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 내한공연을 가졌던 피나 바우시 무용단의 경우가 좋은 예이다.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공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피나 바우시 무용단이 아시아 투어 일정이 없었음에도 단독으로 한국 공연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발레단에 한국 출신 무용수인 김나영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 선생은 부인이 일본인이란 것 때문에 그 역시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자국의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것은 그 예술가가 한국인임을 알리는 바로 이 같은 작은 노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윤정의 지적이다.

언젠가 강수진 씨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시가 강수진 씨의 이름을 딴 새 품종의 난을 개발했는데 날개 돋친 듯이 팔려 신청 후 6개월을 기다려야 하고, 강수진 씨의 얼굴이 담긴 공익 광고판을 단 시내 버스가 슈투트가르트 시내를 달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슈투트가르트 시가 강수진 씨의 이름을 딴 거리를 지정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발레단을 빛내고 있는 스타에 대한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의 예우에 정말 고개가 절로 숙여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강수진 씨가 한국인임을 아는 독일인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한국의 정부나 문화예술 단체 어디에서든 강수진 씨를 위해서 슈투트가르트 시에서나 독일 내에서 그를 위해 작은 행사라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용인의 지적이다.

장인주는 “프랑스에서 발레를 하는 댄서들에게 파리 오페라 발레는 최고선망의 대상입니다. 이 발레단에 한국인 단원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파리에 살고 있는 우리 나라 국민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요”라며 해외에서 활약하는 예술가들을 통한 국가 홍보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국제 매니지먼트사들이 한국과 일본의 비슷한 규모의 예술단체를 초청할 경우 한국의 예술단체에게는 30%의 추가 비용을 요청한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국제무대에서 일본 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공연내용과는 별도로 `한국’을 알리는 데 별도의 경비가 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30%의 추가 경비를 한국이 어디에 위치해 있고, 문화적인 배경은 어떠하며,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를 알리는 데 사용한다. 국력의 차이, 세계 무대에서 국가 이미지를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본의 경우 일본 발레를 대중화시키는 데 있어 해외 유학파 스타 발레리나의 힘이 컸다. 뉴욕 시티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일본 공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문화예술계는 계약상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주역인 오데트 공주 역에 모리시다 요코의 캐스팅을 성사시켰다. 언론에서는 일본인 무용수가 메이저 발레단의 공연에서 주역인 오데트 공주 역을 맡았다는 사실을 대서특필했고, 발레에 별반 관심이 없던 관객들은 이런 보도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세계적인 발레단의 초청공연에서 주역 무용수로 춤추는 일본인 무용수를 보기 위해 연일 공연장으로 몰려들었다. 이 같은 일본의 월드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는 곧 바로 발레 대중화의 기폭제가 됐고, 지금은 발레에 관한 한 엄청난 관객 층이 형성된 나라가 되었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 정책은 이렇게 중요하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우리나라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방안은 그들에게 예술 장려금을 지원해주는 것에서부터 그들의 활동을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알리는 작업, 그리고 그들이 소속된 예술단체를 초청해 국내에 소개하는 것도 해당될 수 있다. 공동 제작 추진 등 보다 전략적인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작업을 존중하고 그들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