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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보리야트족의 샤머니즘과 가면문화  -몽골 보리야트족의 진기한 놋쇠가면 아우갈다이를 찾아서 -

전경욱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얼마전 몽골 학자 프렙 교수로부터 몽골의 보리야트족 사이에는 샤머니즘이 성하고, 무당이 굿에서 쇠로 만든 가면을 착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띄었다. 최근 세계의 가면과 가면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 이야기를 듣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보리야트족의 가면문화를 조사하기 위해 수소문한 결과, 몽골에는 동몽골의 도르노트아이막에 보리야트족이 있고, 또 지금은 소련 연방에 속해 있는 보리야트공화국에 역시 보리야트족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방학과 함께 몽골로 향했다. 목적지는 동몽골의 도르노트아이막(아이막은 道) 바잉오더솜(솜은 郡) 제4박(박은 面)에 있는 ‘할히라’였다. 우선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동쪽으로 2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가서 초이발산이라는 도시에 내렸다. 그리고 소련제 지프형 12인승 승합차로 서북쪽을 향해 5시간을 달리니 할히라에 도착했다. 주위는 온통 암흑천지인데, 무당의 신당만은 전기불로 환했다. 마침 어떤 늙은 부부의 의뢰에 의해 소규모의 굿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은 굿을 구경할 수는 있으나 의뢰의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4일간 ‘차나르’라는 큰 굿이 있다고 했다.
 


몽골의 황(黃)무당과 흑(黑)무당

무속신당은 나무로 지은 게르였다. 무속신당 바로 옆에는 작은 라마교 사원이 있었다. 그것은 이곳의 무당인 체릉(74세)이 황(黃)무당이라, 라마교 승려 노릇과 무당 노릇을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에는 황무당과 흑무당이 있다. 라마교의 세계관을 인정하고 라마승들의 지배를 받게 된 무당들을 황무당(黃巫堂)이라 부른다. 불교의 세계관을 인정하지 않고 몽골 샤머니즘의 고유사상을 그대로 지켜온 무당들을 흑무당(黑巫堂)이라 부른다. 또한 몽골에서는 남자무당을 ‘자이릉’이라 부르고, 여자 무당을 ‘오트강’이라 부른다.

보리야트족의 대표적 황무당 체릉과 그의 엉거트 갈조드 체릉은 현재 74세인데, 13세 때 신이 내려서 기절했기 때문에 무당이 되었다. 즉 강신무이다. 그는 33종류의 엉거트를 갖고 있는데, 200여 종류의 엉거트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몽골의 샤머니즘에서는 굿을 할 때 무당이 교류하는 중요한 신령을 엉거트라고 하는데, 흔히 무당이 죽어서 되는 신령을 가리킨다. 그러나 죽은 무당의 신령 이외에 징기스칸처럼 죽은 장군이나 왕이 엉거트가 되는 경우도 있다. 몽골 무당들은 엉거트의 중개자이자 인도자이다. 이들은 엉거트에서 인간, 인간에게서 엉거트로 말을 전하는 통역이자 영매와 같은 존재이다. 엉거트는 무당의 초대와 부름에 급히 달려온다. 체릉 무당의 엉거트들은 모두 체릉 집안의 조상신, 즉 과거 자기 집안의 33대 동안 무당 노릇을 했던 사람들이 죽어서 된 신령이다.
옛날에 보리야트족의 강신무들은 배를 칼로 가른 다음 내장을 내놓기, 우리의 작두타기와 유사한 긴 칼 타기, 칼 삼키기, 불 토해내기, 숯불이나 불에 달군 돌 위를 걷기, 혀로 불에 달군 쇠꼬챙이나 돌을 핥기 등을 함으로써 자신의 영험함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기에 신통력 있는 영험한 무당들을 모두 잡아 불태웠기 때문에 그 전승이 끊어졌다고 한다.
모든 무당이 동경과 은경을 목에 거는데, 동경은 태양을 은경은 달을 상징한다. 동경은 무당의 몸을 지켜주며, 신인 엉거트가 거기에 깃들어 있다고 한다.

 

보리야트족의 무속신당과 늑대 토템

체릉 무당의 무속신당 안에는 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맞은편에 10개의 무신도(巫神圖)가 벽에 붙어 있다. 무신도는 사방의 산신(산신을 ‘사브타크’라 부름), 산신의 왕과 귀족들 및 왕비들, 큰 수신(水神을 ‘로스’라 부름), 방향을 맡은 산신들, 아홉 종류의 산신들 등을 그린 것이다. 벽의 무신도 아래 제단에는 촛불이 두 개 켜져 있고, 여러 종류의 과자 등 제물이 놓여 있으며, 왼쪽에는 조각한 말이 하나 있다. 말 조각상은 소·양·말·염소·낙타 등 다섯 가축의 대표를 헌물로 바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신도의 양쪽으로는 줄을 매고 무복과 무구들을 걸어놓았다. 이중 특히 늑대 머리와 가죽이 통째로 걸려 있는 것과 늑대를 그려 놓은 북이 눈에 띄었다. 이는 보리야트족이 늑대를 숭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당의 성무(成巫)의식인 차나르와 오보
  
보리야트족은 매년 6월 22일부터 9월 14일 사이에 굿을 한다. 6월 22일은 하늘문이 열리고, 뻐꾸기가 울며, 천둥이 친다고 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굿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보리야트족의 무당들은 신이 내린 후에 스승무당에게 굿을 배우면서 13단계의 ‘차나르’ 의식을 치룬다. 차나르는 그동안 자기가 배운 모든 굿을 스승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시연하는 것인데, 보통 4∼5일이 걸린다. 13번의 차나르를 하면 비로소 정식으로 큰 무당인 자이릉이 된다.
그러므로 차나르는 일종의 성무(成巫)의식이면서, 무당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자격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차나르 의식을 위해서는 초원과 산위에 여러 개의 오보를 설치한다. 현재 몽골에서는 오보를 ‘오워’라고 발음하는데, 우리의 서낭당에 있는 돌무더기와 같은 형태이다. 일부 민속학자들은 우리 서낭당의 돌무더기가 바로 몽골의 오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체릉 무당의 신당 근처에 있는 언덕 중턱에도 오보가 하나 있는데, 이는 체릉 무당이 64세인 1990년에 13번째 차나르 의식을 거행할 때 세운 오보이다. 그래서 이 오보를 자이릉오보라고 부른다.

우리 일행이 도착한 다음날부터 바로 이 차나르가 거행되었으니 대단한 행운이었다. 이번에 차나르를 치루는 학습무당은 이흐초느 잡흘랑과 사라이드 엥흐 오동 두 명이었다. 사라이드 엥흐 오동은 현재 23세인데, 5년 전에 신이 내려 이유없이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자신은 신이 내린지 몰랐으나, 부모가 신이 내린 것을 알고 체릉 무당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 후로 무당이 되는 길에 들어섰다. 자기는 원래 샤머니즘을 믿지 않았으나, 조상 중에 무당이 있었다고 한다. 이번이 다섯 번째 차나르이다.
 결국 체릉이나 엥흐오동 등의 예로 볼 때, 보리야트족의 무당은 신이 내려서 입무(入巫)하게 되는 강신무이지만, 강신이 주로 무당 집안의 사람에게 일어남으로써 세습적인 성격도 띠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그러나 한국의 강신무는 그 사람이 무당집안인가 아닌가와는 상관없이, 신이 내리면 무당이 된다.
차나르는 제장(祭場)설치 → 부정(不淨)굿 → 청신(請神) → 오신(娛神) 및 공수 → 송신(送神) → 뒷전풀이의 순서로 진행되어 한국의 굿과 매우 유사하다. 차나르를 제대로 거행하기 위해서는 3∼4일간이 소용된다.

차나르 의식은 제장을 설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무속신당 밖의 마당에 제장을 설치하고 차나르를 거행하는데, 그곳에 많은 나무를 새로 심는다. 우선 수십 개의 나무를 산에서 잘라 왔는데, 특히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큰 백양나무 암수 한 쌍을 뿌리가 상하지 않게 통째로 뽑아왔다. 이 암수 백양나무를 부친목(父親木)과 모친목(母親木)이라 부른다. 부친목의 꼭대기에는 푸른 천(이를 하닥이라 부름)이 걸려 있는데, 이는 하늘을 상징한다. 또 부친목 근처에 우르모트(새집나무)라 불리는 나무를 두 개 세운다. 이 나무들은 엉거트가 지시하는 것을 잘라오는 데, 무당의 조상신인 엉거트들이 이 나무에 내려와서 앉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르모트는 일종의 강신목이라 할 수 있다. 부친목, 모친목, 새집나무의 뒤쪽으로는 81개의 나무를 가지고 가로로 9개씩 세로로 9개씩 사각형 모양으로 심는다. 몽골인들은 9를 하늘의 수, 가장 큰 수로 생각하기 때문에 81개는 가장 큰 수를 뜻한다. 이 나무들을 차나르의 나무라고 부른다.

본격적인 차나르의 첫행사는 학습무당들과 그들을 도와 차나르를 행하는 9명의 아이들의 영혼이 하나가 되게 하는 의식이다. 이 9명의 아이들을 ‘예순친’이라 부르는데, 이 아이들은 차나르의 처음부터 끝까지 의식에 참여하면서, 무당의 성무과정을 도와준다. 학습무당인 엥흐오동이 우르모트나무 앞에 서 있고, 9명의 어린이들이 일렬로 서서 “아하 요허 민네호이”(만세 만세 만만세)라는 구호를 외친다. 그러면 학습무당이 자기 북을 수평으로 놓고, 그 위에 술을 담은 술대접을 올려놓은 다음 크게 원을 그리며 두 바퀴 돌려서 술대접을 던진다. 술대접이 똑바로 서면 아이들의 영혼이 있는 것이고, 뒤집어지면 아이들의 영혼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술대접이 뒤집어진 아이는 술대접이 똑바로 설 때까지 이것을 계속한다. 그러면 굿을 하는 동안 아이들의 영혼이 계속 무당의 영혼을 따라다닌다고 한다. 흉노나 돌궐에서는 왕의 즉위식  때 나무 주위를 도는 요선의식을 행했는데, 이 술대접 던지기 후에 9명의 아이들이 새로 심어 놓은 81개 차나르나무들의 주위를 돌며 “아허 요허 민네호이”라는 구호를 계속 외쳤다. 이 행사가 일종의 무당의 즉위의식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매우 흥미있는 현상이다. 9명의 아이들이 차나르나무들의 주위를 도는 이유는 아이들의 영혼을 무당의 영혼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차나르를 위한 부정굿은 학습무당들이 ‘강가’라는 향초를 삶은 물에 세수를 하고, 동경과 은경을 씻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스승무당인 체릉은 백양나무가지들을 묶은 것을 향초물에 적신 다음 학습무당들에게 뿌린다. 이어 9명의 어린이와 굿을 준비한 사람들, 그리고 일반 참가자들까지 모두 백양나무가지에 향초물을 적셔 뿌린다. 이렇게 하면 몸에 있는 나쁜 기운과 모든 부정한 것을 몰아낸다고 한다. 누구든지 이 의식을 통해 몸이 정결해져야만 차나르 의식에 참가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일행도 모두 이 의식을 치뤘다.  
보리야트족에서 나무타기를 못하면 무당이 아니다.

낮에 부정굿을 행한 학습무당 엥흐오동과 잡흘랑이 밤에 무속신당 안에서 신들에게 자기들을 소개하는 무가를 낭송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엥흐오동에게 신이 내렸다. 신, 즉 엉거트가 내린 장면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사진을 못찍게 한다. 사진을 찍으면 엉거트가 가버린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신이 내릴 때 무당마다 외치는 소리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엥흐오동은 순록소리를 낸다. 엥흐오동이 위로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신당 밖으로 나가, 차나르나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엥흐오동은 부친목을 타고 올라갔는데, 위로 높이 올라갔다가 나뭇가지들에 걸리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아래에서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잡았지만, 엥흐오동은 기절했다. 엉거트가 들어 왔다가 나갈 때는 기절한다는 것이다. 9명의 아이들이 기절한 엥흐오동을 들고 차나르나무 주위를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돈다. 세 번은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한다. 이렇게 돌아야만 기절 했던 무당이 다시 깨어난다고 한다. 우리가 나중에 엥흐오동에게 물어보니, 신이 들어왔을 때 아무 감정도 없었다고 한다. 보리야트족은 나무를 타지 않는 무당은 무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자무당은 부친목을 타고, 여자무당은 모친목을 탄다. 나무를 타는 이유는 신이 내려 몸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엉거트에게 말과 양을 바치는 의식

차나르의 일정 가운데는 엉거트에게 말과 양을 바치는 의식이 있다. 이는 신을 기쁘게 하는 오신(娛神) 행위에 해당한다. 엉거트에게 말을 바치는 의식은 무속신당 앞에서 진행된다. 다음에는 우르모트 나무 앞에서 엉거트에게 양을 바치는 의식이 진행된다.

무당의 두 번째 나무타기와 맹세의식

밤에 무속신당에서 무가를 부르던 학습무당 엥흐오동에게 다시 신이 내렸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부친목으로 가서 올라갔는데, 어제보다 높이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스승인 체릉은 신이 내려 이렇게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텡게리 버어’(하늘무당이라는 뜻) 즉 좋은 무당이 된다며 기분이 좋아했다. 이어 엥흐오동은 무당의 맹세가 적힌 판을 펴놓고 읽었다. 엥흐오동이 무당의 맹세의식을 행한 것은 학습무당으로서 차나르 의식을 잘 치루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를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엉거트에게 바쳤던 양고기를 참석자 모두가 나눠 먹었다. 그러면 복이 들어온다 고 한다. 우리의 음복(飮福)과 같다. 밤이 늦도록 잔치는 계속되었다.

몽고술 만들기, 우리와 똑같은 모양의 소주고리

차나르에서는 화덕 위에 소주고리를 설치하고 ‘참드로네르히’의식도 행한다. 이것은 술을 만드는 의식인데, 영험한 무당이나 한의사가 되려고 할 때 이 의식을 거행한다. 큰 솥에 우유 발효시킨 것을 담아 화덕에 올려놓은 다음, 그 위에 나무 서너 개를 걸치고 거기에 양고기를 올려 놓는다. 그 위에 드럼통처럼 생긴 양철통을 올려놓고, 양쪽으로 소주고리 2개를 설치한다.
이는 우리의 전통소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소주고리와 동일한 것이다. 화덕에 불을 때면 소주고리로 술이 나오는데, 이를 몽고술이라 부른다. 술이 다 된 후에 참석자들에게 따라주었는데, 보기에는 우리 소주처럼 맑았으나 마신 다음 구토가 날 정도로 역겨운 냄새가 입에 퍼졌다.  
 
신을 보내는 송신 의식

차나르의 마지막 의식은 송신(送神)이다. 이제 지난 4일 동안의 차나르 의식을 모두 끝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날려보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차나르를 위해 심었던 부친목·모친목·우르모트·차나르나무 등 나무들도 모두 뽑는다.
놋쇠가면을 쓰고 하는 아우갈다이, 아우갈다이의 부인은 고려의 공주 송신의식을 통해 비로소 차나르가 끝났지만, 아직 뒷전풀이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무속신당 안에서 ‘아우갈다이’를 해야 하는 것이다. 아우갈다이는 스승무당인 체릉이 주도하면서 그동안 차나르가 잘 거행되었는지를 평가하는 의식이다. 또한 아우갈다이는 의식의 명칭이면서, 동시에 무속신인 엉거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1994년에 작고한 여자무당 다리임도 놋쇠가면으로 아우갈다이 가면을 갖고 있었다. 또한 나다 흐아이막에 사는 브리야트족 남자무당도 놋쇠로 된 아우갈다이 가면을 갖고 있다. 강톡터흐 교수의 제보에 의하면, 옛날에는 소련 내 바이칼 호수에 있는 보리야트공화국의 무당들도 아우갈다이 가면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놋쇠가면이 아니고 나무가면이며 얼굴 모습도 네모난 형태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보리야트족의 샤머니즘에서는 아우갈다이 가면을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무당이 이 가면을 착용하는 경우는 병들린 사람을 위한 치병굿을 할 때와 차나르를 행할 때이다.
보리야트족 사이에서 아우갈다이는 수염 있는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아우갈다이는 한 뼘의 긴 수염을 갖고 있으며, 둥글고 노란 얼굴을 가졌는데, 놋쇠나 나무로 만든 탈로 표현된다. 그는 무당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매우 까다로운 신령으로 간주되는데, 푸른 수신(水神)의 정기를 타고난 엉거트라고 한다.
아우갈다이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아우갈다이는 원래 만주 퉁구스족 사람이었다. 수신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서 무당이 되었다. 그 부인은 고올링왕의 딸이었다. 고올링은 고려를 가리킨다고 한다. 즉 아우갈다이의 부인은 고려의 공주로 이름은 헤테르헤엥인데 역시 무당이었다. 젊은 아우갈다이 부부는 바흥이라는 아들과 한자흥이라는 딸을 두고 있었다. 어느날 부인이 다른 집에 초대를 받아 굿을 하러 갔다. 그녀는 굿을 하러 가면서 남편에게 어린 아들을 잘 돌보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담배를 아주 많이 피우는 아우갈다이는 담배가 떨어지자 잠자고 있는 아들을 집에 두고 옆집으로 담배를 구하러 갔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에 잠을 자던 아들이 깨어나 갑자기 집을 나가버렸다. 아우갈다이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따라갔으나,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아들을 휩쓸어 물에 던져버렸다. 아들이 죽은 것이다. 집에 돌아온 부인이 그 사실을 알고 가죽을 다루는 칼을 들고 남편을 좇아가 하이다스나무 아래에서 아우갈다이의 목을 잘라 죽였다. 그리고 머리를 나무에 걸어두고 “모든 사람들의 일을 맡아라.” 하고 덕담을 했다. 아우갈다이의 영혼은 엉거트가 되었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몽골의 샤머니즘에서는 무당이 죽으면 그 영혼이 엉거트라는 신령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우갈다이는 무당이 부를 때마다 항상 하이다스나무에 왕래한다는 전설이 생겼다.

보리야트족은 모두 11개의 성(姓)을 갖고 있는데, 아우갈다이는 11성의 사람들이 모두 모시는 엉거트가 되었다. 보리야트족의 무당들은 굿에서 이 아우갈다이의 형상을 가면으로 만들어 착용한다. 그리고 아우갈다이 엉거트에게 사람들의 소원을 부탁한다. 굿에서 무당이 아우갈다이를 부르는 이유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다. 즉 아픈 사람이 있으면 푸른색 염소 한 마리를 데려와 네 다리에 우유기름을 바르고, 우유를 먹인 다음 머리에 우유를 붓고 염소를 죽인다. 그리고 아우갈다이에게 염소의 영혼을 날려서 지옥의 왕이 거하는 문 앞에 배달하는 역할을 맡긴다. 그러면 아픈 사람이 낫는다는 것이다.

무당이 아우갈다이 가면을 쓰고 아우갈다이 엉거트를 청배한다. 그러면 아우갈다이 엉거트가 “후손들아 잘 있느냐?” 하고 인사를 하면서 들어온다. 이때 조무(助巫)가 “네 잘 있습니다. 지상에서 우리는 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여러분은 잘 계십니까?” 하고 인사를 한다. 인사를 나눈 후에 아우갈다이 엉거트가 “누구의 일 때문에 왜 나를 불렀느냐?” 하고 물으면, 옆에 있던 조무가 “아무개가 푸른 염소를 지옥의 왕 문 앞에 놓고 싶어합니다. 염소와 아픈 사람의 생명을 바꿔서 살려 주십시요. 염소를 배달해 주십시요.” 하고 부탁한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대수대명(代數代命)이다. 그러면 아우갈다이가 허락을 하고 담배를 달라고 말한다. 이때 담배를 주고 술도 따라 준다. 아우갈다이는 담배를 피울 때 북으로 얼굴을 가리고 흘깃흘깃 옆을 보면서 “헤트레헤엥(자기 아내)이 보이느냐?” 하고 묻는다. 조무가 “아니요 안보입니다.” 하고 대답하면, 안심하는 빛을 보이면서 담배를 피운다. 그러다가 또 “헤트레헤엥이 오고 있느냐?” 하고 묻는다. 조무가 “오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아우갈다이는 벌떡 일어나서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운 척한다. 두려워하며 기운이 없어 보이는 행동도 취한다. 그리고 “지옥의 왕 문 앞에 염소를 배달해 주겠다. 죽음의 주인 손에서 네 생명을 빼주겠다. 소만큼 큰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죽음이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픔은 사라질 것이다. 이제 나는 집에 가겠다. 하늘로 올라가겠다.” 하고 말하면서 무당에게서 빠져나간다.

아우갈다이는 빛을 아주 싫어한다고 한다. 성냥불만 켜도 도망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에게 사진기의 후레쉬를 터트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자동카메라이기 때문에 저절로 후레쉬가 터졌다. 그러니까 아우갈다이가 담배를 피다가 담뱃대를 던지며 화를 냈다.
체릉 무당이 소유하고 있는 아우갈다이 가면은 놋쇠가면인데, 언제 만들었는지 모른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온 것인데, 다만 수염은 오래 되면 변하므로 수염만 검은 염소털로 보완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