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평론  /  평론의 본질을 말한다 4   국악

숲을 보고 달을 보는 원경적 조망  - 고금의 음악개념 -

한명희 (음악평론가, 서울시립대 교수)

 

곤륜산 북쪽 계곡에서 자란 대나무 한 마디를 잘라다가 황종율관(黃鍾律管)을 만든다. 이것을 기준으로 해서 음(陰)에 해당하는 육려(六呂)와 양(陽)에 해당하는 육율(六律)을 만든다. 12간지나 열두달에 해당하는 소위 옥타브 내의 12음이 완성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12율려로 음악을 연주하니 온갖 동물들이 동화 되어 우줄우줄 춤을 추었다(百獸率舞). 중국 고전에 나오는 음악의 시원 얘기다.  

그리스 북쪽 지방의 올림푸스산은 음악 music의 어원이 되기도한 아홉 뮤즈신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이 올림푸스산 부근의 피에리아 지방에서는 전설적인 오르페우스가 나타난다. 그는 노래와 리라연주에 뛰어나서, 그가 음악을 할 때면 산천초목도 감동한다고 했다. 훗날까지 숱한 작곡가들의 작품속에 영생하고 있는 오르페우스의 전설적 음악 얘기로서 서양음악의 한 사상적 단면을 엿보게 하는 예이다.  
고구려의 왕산악은 진(晉)나라에서 들어온 칠현금을 여섯줄의 거문고로 개작하고 아울러 일백여곡의 신곡까지 작곡한다. 그리고 자작의 악곡을 거문고로 탄주하니 홀연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을 추었다. 그래서 악기 이름도 검은 학을 뜻 하는 현학금(玄鶴琴)이라고 했다가 다시 줄여서 현금 즉 거문고라고 했다. 거문고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어제와 오늘의 음악개념이 한참 다름을 착안할 수 있는 사료의 편리들이다. 음악 자체만을 따지려는 현재적 시각에서 보면 황당한 허구처럼 느낄 만큼 음악에 대한 감각이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과거의 음악관은 음악 외적인 대상과의 연계선상에서 존재했다면 현재의 음악관은 ‘소리’ 자체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음악 내적인 문제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의 음악관이 총체적이요 종합적이라면 현재의 음악관은 지엽적이요 분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삼위일체 사상이건 하늘과 땅과 인간의 삼재사상(三才思想)이건 어제의 동서양의 문화는 통합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후대로 오면서 다변화 다원화 전문화의 길을 걸으며 분화되기 시작했다. 인류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이 다기화 됨에 따른 필연적 문화현상이 아닐 수 없다. 예술도 음악도 예외일리 만무했다. 우선 종합예술적인 구조를 지니던 예술도 세분되기 시작했다. 소위 악·가·무(樂·歌·舞)의 종합적 유기체로 연행되던 공연이 음악과 무용이 갈라지고 다시 성악과 기악이 갈라지는 분화의 과정을 밟아 왔다.

예술현상의 변천상을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 소위 마당놀이로 통칭되기도 하는 우리네 전래의 민속놀이가 그것이다. 그나마 종합예술적인 성격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 농악이나 탈춤의 공연들을 회상해보자. 지난날 같으면 소위 악가무적인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얽히며 상호 상승작용을 하고 있겠지만 오늘의 공연현장은 우선 생기가 빠져있다. 대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분해해서 이해하려는 풍조 때문이다. 소리와 몸짓과 언어와 형체들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통합되어 무한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내던 예술형태를 음악, 무용, 연극, 문학 등의 장르개념으로 분해하고 나니 본래의 싱그러운 생명력이 담겨질리 만무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인간이라는 융통자재한 가능성의 생명체를 사지나 골격조직으로 분해하여 이해하려는 경우와 흡사한 문화현상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라고 하겠다. 인간이 결코 육체적 부분의 총화가 아니듯이 전래의 민속놀이 역시 여러 전문적 장르의 총화만이 아니다. 상고때 동맹(東盟)이나 무천(舞天)같은 제천의식에는 소위 악가무가 주축을 이뤘으나 그 궁극의 지향점은 악가무적 초월(超越)을 통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우주적 조화를 꾀하는데 있었다. 마찬가지로 악가무적 종합적인 성격을 지닌 마당놀이 본연의 공연형태에서라야 우리는 비로소 장르적 부분개념을 뛰어넘는 무한한 민중적 에너지와 예술적 생명력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분석과 합리를 앞세운 현대문명의 메스가 산산히 쪼개놓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일단 현재적 음악평론의 딜레마를 만나게 된다. 개체적 연주행위의 시시비비에 얽매어 있는 작금의 평론관행이 통시적인 안목에서 볼 때 과연 어느 정도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회의가 곧 그것이다. 개체적 부분은 청색이지만, 그것의 총화는 적색일 수도 있듯이, 미시적 분석적 시각의 평론이 그 자체로서는 옳더라도 그것이 통시적 역사성에 조람(照覽)해 볼 때 어느 정도 그 정당성과 당위성이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답이 궁색하다는 점에 바로 우리들의 담론의 난점이 있는 것이다.  
 


번차음(繁且淫)과 버튜오서티virtuosity의 음악세계  
 
가야의 우륵은 가야고를 가지고 신라로 넘어온후에 후학을 열심히 가르쳤다. 그의 수제자는 셋이 있는데 각기 다른 분야를 가르쳤다. 계고(階古)에게는 가야고를, 법지(法知)에게는 노래를, 만덕(萬德)에게는 춤을 가르쳤다. 말하자면 당시의 전형적인 음악형태였던 악·가·무를 모두 가르친 셈이다. 한편 우륵은 가야고의 신곡 열두곡을 지어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제자들이 스승의 음악을 들어 보니 좋은 음악이 못되었다. 번차음(繁且淫)하니 나쁜 음악이라고 했다. 빠르고 음탕하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결국 제자들은 선생의 음악을 축약해서 다섯 곡으로 뜯어 고쳤다. 이를 두고 우륵은 대노했다. 그러나 재삼 들을수록 제자들의 개작곡이 더 좋음을 알았다. 마침내 우륵은 낙이불류 애이불비(樂而不流 哀而不悲)하니 가히 아정한 음악이라고 감탄하며 승복했다.  

당시의 음악관을 감지할 수 있는 단서가 여기에 있다. 낙이불류 애이불비라는 말은 기뻐도 방종에 흐르지 않고 슬퍼도 비탄에 빠지지 않는다는 뜻으로서 논어의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에서 연유한 말이다. 과(過)하지도 불급(不及)하지도 않는 중용(中庸)의 경지를 지키고 있음을 뜻한다. 사정이 이러하고 보니 감정의 중용을 뛰어넘어 한쪽으로 치우친 ‘번차음’의 분위기를 좋게 볼리 만무하다. 자연히 제자들의 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번차음의 세계를 배격하는 풍조는 집요하게 이어졌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빠른 템포의 산조음악이 보편화될 수가 없었다. 한배가 너무 빨라서 경망하고 품위 없는 음악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군자의 품도를 닮은 백악지장 (百樂之丈)이라는 거문고로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는 산조같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극도로 금기시되었다. 음악과 인품을 고루 갖춘 거문고의 대가 임석윤은 70년대까지 정악거문고 음악만 타다가 타계했다. 군자는 대로행(大路行)이라는 말처럼, 음악에서도 샛길을 상찬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잔가락을 섞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천박한 번문욕례(繁文縟禮)일뿐 음악의 정도가 아니다. 진정한 예절이란 간단명료하듯이 참다운 음악이란 싱거우리만큼 단순명료한 것이다. 대례필간(大禮必簡)이요 대악필이(大樂必易)라는 명구가 곧 그 경지이다.  

지금도 정악 음악속에는 번차음하지 않은 대악필이의 음악적 관념이 그대로 온축되어 있음을 우리는 쉽게 간취할 수 있다. 특히 느린 한배로 간음(幹音)만 뚜벅뚜벅 연주해 가는 거문고 음악 속에서 우리는 수수백년을 내려오는 고래의 음악적 분위기를 여실하게 실감한다. 감칠맛 나는 잔가락도 배제하고 감정을 고양시킬 가속(加速)도 억제한 채 덤덤하게 흘러가는 거문고 음악은 영락없이 노자가 경계한 ‘오색찬란한 색깔은 눈을 멀게하고 오색영롱한 소리는 귀를 멀게 한다(五色令人盲 五音令人聾)’ 는 경구적 경지에 다름 아니라고 하겠다.  

한편 우리와는 달리 서양의 경우는 후대로 오면서 음악이 눈에 띄게 빨라지고 기교화 되어감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도 음악을 형이상학의 차원으로 치부한 흐름이 있었다. 피타고라스가 음악을 우주의 조화 universal harmony로 파악하려한 예가 그렇고, 6세기의 베티우스가 음악을 우주음악과 인체음악과 실제음악의 세 단계로 체계화한 예가 그러하며, 중세 대학의 네 개의 기본 커리큘럼인 소위 자유사과 quadrivium에 천문학과 산술과 기하학과 음악을 설정하고 그 모체를 수학으로 간파했던 사례들은 모두가 형이상학적 개념의 음악을 상정하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예들이다.  

이같은 사례에도 불구하고 서양에서는 음악을 소리자체의 예술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특히 인본주의 사상이 풍미하던 16세기부터 음악의 최고가치는 인간의 감정을 절절히 ‘표현’해내는데 맞춰졌고, 따라서 다양한 기법의 표현양식, 다시 말해서 현란한 기교주의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가사에 담긴 정서를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던 마드리갈리즘 madrigalism이나 음악에서의 표현성을 중시했던 무지카 레세르바타 musica reservata는 그 초기적인 현상이었으며, 후대로 오면서 기교주의적 비중은 점차 증대되어 갔다. 바로크시대 때 나폴리악파 오페라의 카스트라토들의 현란한 창법이나, 낭만주의 시대의 협주곡 속의 카덴짜들은 그 단적인 예들이라고 하겠다. 여하간 서양음악에서 탁월한 기교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버튜오소들은 만인의 스타이며 시대의 추앙의 대상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다시 말해서 한국 음악에서는 ‘버튜오식’한 음악을 ‘번차음’하다고 해서 폄하된 반면, 서양에서는 대조적으로 대중의 우상이며 지향해야할 가치로 존중돼 왔다. 바로 이 점 또한 음악을 소재로 하는 담론에서 선뜻 단정적인 입장정리를 망설이게 하는 복병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환언하면 음악행위에서 기교의 문제가 어느 만큼의 비중으로 작용해야 하느냐의 문제와, 과연 기교문제가 음악행위의 질적 내용을 재단하는 가장 소중한 기준으로 기능해야 하느냐의 문제 등은 명쾌한 답을 유보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음악과 음악문화  
 
주지하다시피 20세기의 한국문화 예술계는 외래문화의 수입기였다. 전통은 낡고 후진 것이고 서구문명은 참신하고 이상적이라는 등식하에 모든 분야가 서양을 모방하는데 급급했다. 음악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주관도 체통도 없이 외래음악에 매몰되다보니 아예 음악계의 체질이 주객전도적으로 뒤바껴 버렸다. 일상생활 음악은 물론 학교교육에서도 음악이라면 곧 서양음악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음악제’하면 그것은 곧 서구음악이지 국악의 축제가 아닌 사실이 저간의 형세를 극명하게 대변한다. 여하간 서양음악의 밀물은 양적인 비중에서만 주인자리를 차지한 게 아니다. 필연적 귀결이지만 음악에 대한 개념이며 가치관까지도 뒤바꿔 놓았다. 음악이라는 대상을 실증적으로, 즉물적으로, 분석적으로 보는 관행도 바로 그 중의 하나이다. 한마디로 이 땅에 서구음악이 유입되면서 음악을 음악 그 자체로 보려는 즉물적 음악관이 고착된 사실은 여러 가지 음악적 변화 중에서도 가장 근간이 되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음악 하면 으레 소리자체만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관행이자 사회적 통념이 돼버렸다. 그래서 교육현장에서도 음악공부는 당연히 소리(sound) 문제로 시작해서 소리문제로 끝난다. 음악에 대한 원천적인 물음은 물론, 음악과 인간, 음악과 사회, 음악과 우주같은 문제는 아예 거두절미된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만 보고 달은 보지 않는 판세다. 그것이 곧 능률이요 요령이요 선각으로 상찬되는 현실이다.  
이같은 음악적 풍조를 부당하다고 배격할 근거는 아무에게도 없다. 다만 현재의 한국적 음악현실을 객관의 거울에 비춰볼 때 음악은 음악자체(music itself)로서 다뤄질 뿐 음악외적인 문화현상과의 관계성이 느슨해졌음을 지적하고자 할 뿐이다. 물론 이같은 음악적 풍향은 전문성과 구체성과 특수성이 부각되는 현대적 조류에 한발 가까운 필연적인 시대현상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개인화, 물신화, 미세화, 순간화, 특수화, 실증화의 사회구조가 잉태시킨 당연한 예술적 흐름의 시대상이라고도 하겠다.

하지만 눈을 조금만 통시적인 안목으로 돌려보면 우리의 상황은 사뭇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음악을 음악자체만으로 이해하고 평가했다기보다는 음악 외적인 현상들과 상호관계 속에서 바라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소리 자체가 아닌 소리 플러스 알파의 문화현상으로 음악을 이해하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것을 ‘음악’과 ‘음악문화’라는 어휘로 표현한다면, 서양음악은 다분히 소리자체만을 연연하는 ‘음악’의 범주임에 틀림없겠고 한국의 전통음악은 음악외적 문화개념에 많은 비중을 두던 ‘음악문화’의 영역에 가까움이 사실이다.  

선인들이 남긴 고악보의 행간에는 그들 특유의 음악관이 간간이 배어나고 있다. 악기를 연주할 때도 제멋대로 소리만 잘 내는데 치중하지 않는다. 연주자로서의 지켜야할 법도가 중시된다. 속인을 상대로 연주하지 않고, 의관을 바로 하지 않고는 연주하지 않으며, 정좌하지 않고는 탄주하지 않는 등의 소위 오불탄 (五不彈)을 비롯해서, 금유칠요(琴有七要)의 내용들도 모두 그러하다.  
이같은 음악외적인 대상을 추구했던 단적인 예는 금(琴)은 곧 금(禁)이라는 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악기(琴)를 연주하는 궁극의 목표는 완벽한 음향세계를 직조해내는데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기(邪氣)를 금기하고 씻어내는데 있다. 바꿔 말하면 인성의 함양이나 인격완성에 있는 것이지 아름다운 음향세계 자체에 있는 게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 음향적인 ‘음악’ 자체에 궁극의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음악외적인 대상, 다시 말해서 ‘음악문화’적인 맥락에서 음악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음악을 인격완성의 최고방편으로 간주함은 물론 이상사회의 건설이나 우주적 공존공영의 수단이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논어에 등장하는 흥어시 입어예 성어악(興於詩 立於禮 成於樂)의 간결한 언설은 인격완성의 최후단계는 결국 음악을 통해서 가능함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예이며,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예는 해서 무엇하며 악은 해서 무엇 하느냐(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는 언질 또한 음악과 인간완성간의 깊은 상관관계를 제시하는 내용이다.

유교에서 인간완성의 과정을 압축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원심 확산적 구도는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유교문화권의 음악 또한 이같은 구도에 상응해서 그 개념과 기능을 확대해가고 있음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유가의 음악관을 살펴보면, 성(聲)의 단계인 개개의 음들에서 출발하여 음(音)의 단계와 악(樂)의 단계로 점차 확대되는 발상을 가지고 있다. 한편 악(樂)으로 통칭되는 보편적인 음악 역시 작게는 개인의 심성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인 확충을 거쳐서 사회와 국가와 우주로까지 연결돼 간다. 사회의 풍속과 직결되는 음악의 기능을 일러 이풍역속(移風易俗)이라고 한다던가 나라의 존망에 관계되는 음악의 효능을 두고 쓰이는 치세지음(治世之音)이니 망국지음(亡國之音)이니 하는 낱말들이 그러하며, 궁극적으로 음악은 천지와도 밀접한 관계임을 언급한 대악여천지동화(大樂與天地同和)라는 의식구조 등은 모두가 원심 확산적으로 확대되는 음악관을 표현하는 단적인 예들이다.  
 

자생적 가치 척도를 모색해야 …
 
20세기 후반 한국의 음악평은 우선 양적인 면에서 엽서 크기의 촌평을 넘어서지 못했다. 신문 문화면에 마련되는 천자내외의 짧은 단평위주로 반세기 이상을 지탱해온 셈이다. 음악 전문잡지에는 간혹 길죽한 비평문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야말로 가물에 콩나듯 영성(零星)하기 짝이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고 보면 한국의 음악비평은 구조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겠다. 손바닥 분량의 글로 평론다운 평론을 기대하기란 어불성설이었기 때문이다.  
기실 한국음악계, 특히 전통음악계의 비평의 실상은 이같은 촌평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미시적이고 지엽적이고 단선적인 시각에 매몰되고 순치된 나머지, 대상을 원시적이고 포괄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는데 익숙치 못한 경향이 있다. 개체만 보고 전체를 못 보며,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보는 격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난마처럼 얽혀있는 음악현상의 맥을 가늠하기 쉽지 않고 긴 호흡의 문화읽기로 지향해야할 향방을 설정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앞서 동서와 고금의 다양한 음악관의 일단을 장황하게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엽서크기의 비평 관행이 고착화시킨 음악평론의 한계와 벽을 함께 실감해 보기 위해서다. 앞서의 음악에 대한 예화를 통해서 우리는 음악의 지평이 얼마나 광활하고 음악의 깊이가 얼마나 눈금이 넓은가도 확인하게 되었다. 음악이란 ‘울리면서 움직여가는 하나의 형식’이라고 정의한 한스릭의 경우처럼 음악을 물리적 음향의 객체로만 인식하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장자의 천뢰(天)니 천악(天樂)이니 하는 경우처럼 음악을 우주적 조화로까지 확대해석하는 지론도 있다.  

이처럼 천태만상의 음악관과 천차만별의 음악의 정체를 한 변으로 삼고, 그간 우리가 걸어온 촌평의 실상을 다른 한 변으로 삼아서 양자의 허실을 저울질해 본다면, 아마도 우리는 여러 면에서 관행의 파괴와 궤도수정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대가 급변하듯이 음악의 양상도 급변하고 음악의 조류도 급류를 타고 있다. 복잡한 음악문화의 제반현상을 올바르게 읽어가는 예지와 혜안이 어느때 보다도 긴요한 시점이다. 음악평론의 기능과 비중이 한층 무게있게 인식되는 계제가 아닐 수 없다.  
20세기 한국음악계의 족적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누구나가 공감할 시대적 당위를 만나게 된다. 외래음악의 주체적 수용으로 새로운 음악의 조류를 창출해내는 일이 곧 그것이다. 사실 이같은 명제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20세기 후반 내내 음악계에 풍미하던 화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화두가 여실히 갈구되는 것은, 이제 어제와는 달리 여러 가지 여건상 한국의 음악상황은 이같은 음악계의 당면적 과제를 실현할 가능성에 한발 다가섰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사실 외래음악의 주체적 수용이란 하나의 허구였다. 특히 이같은 외침이 난무했던 6·70년대는 더욱 그러했다. 대저 주체적 수용이란 무엇인가. 자기를 바탕으로 자기 밖의 새로운 요소를 자양분으로 섭취하는 일이 아니던가, 하지만 만인이 공감하듯이 저만큼 어제까지 우리 음악계의 실상은 그렇치가 않았다. 자신을 터전으로 외래를 소화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외래에 대입시키는 본말전도의 문화기류속에서 긴 세월을 안주해 왔다. 자신을 부정하고 박래문화만을 존승하는 풍토에서 참다운 문화수용이 있을리 없다. 나의 눈이 아닌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체질로는 참다운 자아의 실현이 가능할리 없다. 자생적 가치관이 아닌 수입된 가치관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묘포속에서 주체적 문화의 싹이 자라날리 만무하다. 그러고 보면 지난 날의 주체적 문화수용이란 한낱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전환기적 상황들이 회자되던 세기말에 가까워지면서 문화예술계의 기류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전통문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점증되고, 국제화의 풍향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이 서서히 싹터갔다. 한 마디로 수십년간 주창해온 주체적 문화수용의 여건이 성숙되고 새로운 민족예술의 창출을 위한 합당한 텃밭이 마련된 셈이었다. 따라서 시대상을 읽어가는 비평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고 절실하다. 과거의 타성에 젖어 기회의 도래를 터득하지 못하는 음악계의 아둔함이 한국음악의 답보와 정체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도 평론의 참다운 기능은 더욱 긴요하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음악계에도 유효하다. 6·70년대를 강타하던 서구음악의 밀물은 분명 위기였음에 틀림없다. 누구나가 전통음악의 고사를 우려했고 맥의 단절을 걱정했다. 어찌보면 미시적인 세계관이 초래한 기우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통시적인 역사 안목으로 볼 때 한국음악사에서 20세기와 유사한 위기 상황은 처음이 아니다. 멀리 삼국시대 때 중앙아시아의 음악이 밀려들 때도 비슷했고, 고려시대부터 중국음악이 쇄도할 때도 유사한 정황이었다. 그러나 수 천 년을 이어 내린 한국음악의 무형석 관성은 이들을 모두 주체적으로 수렴하여 한  국음악사의 강물속으로 융합해 내고 있다. 서양음악이 풍미하는 20세기의 음악적 혼돈을 풀어갈 암시와 확신도 바로 이 속에 있다고 하겠다. 언필칭 새로운 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통칭된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문화예술의 창달에 전력투구하는 모습들이다. 20세기를 지배해오던 서구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탈출로 새로운 지평을 치열하게 모색해가고 있다. 어쩌면 21세기적 이같은 문화적 갈구의 대안은 우리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 음악계의 토양은 서양적인 성분과 동양적인 성분이 공존해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우수성을 위해 동종교배를 피하듯, 이질적인 문화성분을 구유하고 있는 한국음악계야 말로 새로운 예술사조를 창출해낼 가능이 가장 농후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음과 양이라는 상반된 기운이 상합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이치와도 같다. 전통음악 평론계가 숲을 보는 원대한 시각으로 시대적 조류를 조망하며, 참신한 발상의 전환을 꾀해야 할 이유와 당위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