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상 읽기  /  미술

정창모전 취소 해프닝을 통해서 나타난 교훈

이재언 (미술평론가)

 

북한의 인민예술가 정창모전 취소

지금 우리의 모든 이목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에 집중되어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회한과 새로운 희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새로운 통일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 때이다. 수많은 미담과 애절한 사연들이 시시각각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통일이 의외로 빨리 올지도 모른다고 많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기쁘기가 그지없는 때에 북측 미술계의 비중있는 손님이 왔다. 언론 보도를 통해 북한미술인 중 가장 유명인이된 정창모씨가 남한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북한의 만수대창작사 소속으로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고 있는 조선화가 정창모 씨의 서울방문 소식은 여름잠에 빠져있는 미술계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호재가 분명했다. 때에 맞추어 그의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인사동의 모처에서 전람회가 열린다고 하여 각 일간지 문화면에 대서특필되기도 하였다. 그 전시 소식을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전시기획자들의 순발력과 정보력에 감탄하면서 어렴풋이 알고 있는 정창모 씨의 걸출한 회화세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이산가족 상봉 소식과 함께 들뜬 마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런데 정작 개막 당일 오후에 전시가 취소되었다는 괴담같은 이야기가 보도를 통해 나왔다. 정창모씨 작품전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시장을 찾은 많은 시민들과 익히 지상보도를 통해 기대를 품고 있었던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들이 역력하였다. 취소의 이유는 다름 아닌 당사자인 정창모 씨가 그 전시에 대해 동의한 적도 없거니와, 본인의 작품으로 확인된 것이 전체 작품들 가운데 몇 점에 불과하다는 지적에 주최측은 황급히 취소결정을 내리고 만 것이다. 이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너무나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다.
남북한 미술교류 이렇게…

첫째, 북한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혹은 남북의 문화예술이 교류하는 행사들 전체가 자칫 졸속의 기획과 천박한 상업성에 의해 오염될 가능성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중국을 통해서나 해외교포들의 손을 통해 상당량의 작품들이 반입되어 엄청난 시세차익을 노리면서 대기해 있는 북한 관련 전시가 무수히 많다. 앞으로도 벌어질 무수히 많은 남북간의 정치적 이벤트를 기다리며 대기해 있는 전시들이 모처럼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 화해 무드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따라서 우리의 국공립 미술관들이 전향적으로 그리고 시급하게 북한의 미술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교류전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근대미술사에 비중 있는 납북 혹은 월북작가들에 대한 연구와 조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러 산발적으로 몇몇 연구가들과 잡지들이 납북, 월북, 혹은 북에 우호적이었던 해외교포 작가들의 기초자료를 확보하여 발표한 적은 있지만 만족스런 수준은 결코 아니다. 연구라는 것도 개인이 어렵게 구한 도록 몇 권에 의존하여 하다보니 어떤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페인팅이라 소개되었던 것이 몇 년 뒤에야 데생으로 밝혀져 번복을 해야 하는 해프닝들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또한 작품들도 비밀리 혹은 암암리 북으로부터 반출하다보니 표구나 액자 상태 및 보존 상태도 엉망인 채 굴러 다니는 작품들이 적지 않은 현실도 지적해야 한다. 보다 공개적으로 양쪽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 조명하고 전시로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앞으로 전시의 질이 낮아질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작품의 유통조차도 혼탁해질 것이 뻔하다. 만약 이런 식으로 간다면 남과 북의 모든 문화질서가 흐트러짐은 물론이며 자칫 또 다른 불신의 풍조가 나타나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것이다.

둘째, 현재 남한 내에서 소장되고 유통되는 작품들의 진위문제도 적지 않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정창모 씨의 경우처럼 대다수의 작품들이 가짜라고 하는 주장도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만의 하나라도 그게 사실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만약 가짜가 있다면 그것들은 과연 어디에서 그려지고 어떤 경로로 유통이 되고 있는 지도 사법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아야 할 일이다. 현재 활약하고 있는 현역작가의 것이 위작으로서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북한 출처의 근대화가 작품들이나 공동품들은 더욱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 평양을 방문하고 서울에 잠시 체류하던 어느 재미교포가 남한의 원로작가 작품이라면서 가지고 온 작품이 위작으로 판명된 경우가 있었다. 그 경우야 공교롭게도 그 작품의 원본이 북한의 화보잡지에 게재가 되는 바람에 대조가 가능하여 결국 위작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되었지만 정확하게 어디서 위작이 제조되며 어떻게 유통이 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만약 북한에서 제작되는 것이라면 앞으로 원활한 교류를 위해서도 공식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어떤 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남한에서 그 모든 유통 경로까지 조작한 채 위작들이 양산되고 있다면 이는 더욱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 남북간에 이질화되어 있는 점을 극복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사실 현재 남한 내에서도 다양한 미의식과 감수력의 차이 때문에 여러 부류의 양식들이 혼재되어 있는 실정인데 북한과의 이질성을 극복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과제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아직 엄연히 존재하는 이념과 체제의 차이를 극복한다는 것이 어쩌면 금세기 중에는 불가능하다는 비관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적인 이질감을 극복하지 않으면 진정한 통일이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비록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점진적이고 다각적인 교류 프로그램에 의해 서로의 문화와 예술을 애호하는 수준에까지 미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해하고 양해하는 수준에는 도달하여야 한다. 바로 이런 과제들은 보다 큰 차원과 틀에서 설정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개개인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프로그램에는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주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남북교류 좀 더 품격있게, 세련되게…

지금 모든 잣대가 경제력에 근거하다 보니 우리보다 경제력이 뒤떨어지는 나라에 대해서는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편견을 많이 가지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러한 편견은 문화 예술만이 아니라 인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의 경제적 구매력으로 북한의 미술품을 쉽게 살 수 있다는 것 또한 바로 이러한 편견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특히 상당한 화폐가치의 격차 때문에 북한의 미술품을 거저 주우려는 듯이 대하는 비문화적 태도가 이미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들이 장차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불신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 너무나 뻔하다. 이질감의 극복이 바로 이런 점에서 절실한 것이다. 우리의 문화를 중시하는 것 못지 않게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해야 진정한 이질감 극복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동족의 문화를 여러 가지 이유로 폄하하고 가볍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문화가 더 앞서 있다고 평가되고 있지만 민족적인 주체성이나 자긍심 면에서는 우리가 빚을 지고 있음을 자각케 하는 것이 문화적 이질성 극복의 요체가 될 것이다.

아무리 돈으로 작품을 샀다 하더라도 작가가 버젓이 살아 있는 데 작가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전시를 강행하는 것은 결코 세련된 매너도 아니며, 또한 신사적이지도 않다. 설사 우리의 관행으로는 대충 그렇게 해왔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상대방이니만큼 더욱 치밀하고 세련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생각지도 않게 제동을 거는 정씨의 모습은 이제 우리의 남북 문화교류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업적인 행위 자체를 나무랄 수 없다. 하지만 보다 품격 있게, 그리고 세련되게, 정당하게 일하는 자세가 아쉬운 것이다. 자칫 더 문제가 확대될 뻔했던 일인데 여러 비난을 무릅쓰고 취소를 결정한 내린 주최측의 대응이 그나마 지혜로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