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상 읽기 / 미술 |
정창모전 취소 해프닝을 통해서 나타난 교훈 이재언 (미술평론가)
북한의 인민예술가 정창모전 취소 지금 우리의 모든 이목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면에 집중되어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회한과 새로운
희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새로운 통일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 때이다.
수많은 미담과 애절한 사연들이 시시각각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통일이 의외로 빨리 올지도 모른다고 많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기쁘기가 그지없는 때에 북측 미술계의 비중있는
손님이 왔다. 언론 보도를 통해 북한미술인 중 가장 유명인이된 정창모씨가
남한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다. 첫째, 북한의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혹은 남북의 문화예술이 교류하는 행사들 전체가 자칫 졸속의
기획과 천박한 상업성에 의해 오염될 가능성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중국을 통해서나 해외교포들의 손을 통해 상당량의 작품들이
반입되어 엄청난 시세차익을 노리면서 대기해 있는 북한 관련 전시가
무수히 많다. 앞으로도 벌어질 무수히 많은 남북간의 정치적 이벤트를
기다리며 대기해 있는 전시들이 모처럼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는 화해
무드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따라서 우리의 국공립
미술관들이 전향적으로 그리고 시급하게 북한의 미술을 제대로 소개할
수 있는 교류전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현재 남한 내에서
소장되고 유통되는 작품들의 진위문제도 적지 않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 정창모 씨의 경우처럼 대다수의 작품들이 가짜라고 하는
주장도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만의 하나라도 그게 사실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문제이다. 만약 가짜가 있다면 그것들은 과연 어디에서 그려지고
어떤 경로로 유통이 되고 있는 지도 사법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보아야 할 일이다. 현재 활약하고 있는 현역작가의 것이 위작으로서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북한 출처의 근대화가 작품들이나 공동품들은
더욱 조심스럽게 다룰 필요가 것이다. 셋째, 남북간에 이질화되어 있는 점을 극복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사실 현재 남한 내에서도 다양한 미의식과 감수력의 차이 때문에 여러 부류의 양식들이 혼재되어 있는 실정인데 북한과의 이질성을 극복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과제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아직 엄연히 존재하는 이념과 체제의 차이를 극복한다는 것이 어쩌면 금세기 중에는 불가능하다는 비관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적인 이질감을 극복하지 않으면 진정한 통일이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비록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하더라도 점진적이고 다각적인 교류 프로그램에 의해 서로의 문화와 예술을 애호하는 수준에까지 미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해하고 양해하는 수준에는 도달하여야 한다. 바로 이런 과제들은 보다 큰 차원과 틀에서 설정되고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개개인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프로그램에는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주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남북교류 좀 더 품격있게, 세련되게… 지금 모든 잣대가 경제력에 근거하다 보니 우리보다 경제력이 뒤떨어지는 나라에 대해서는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편견을 많이 가지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러한 편견은 문화 예술만이 아니라 인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우리의 경제적 구매력으로 북한의 미술품을 쉽게 살 수 있다는 것 또한 바로 이러한 편견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특히 상당한 화폐가치의 격차 때문에 북한의 미술품을 거저 주우려는 듯이 대하는 비문화적 태도가 이미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들이 장차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불신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 너무나 뻔하다. 이질감의 극복이 바로 이런 점에서 절실한 것이다. 우리의 문화를 중시하는 것 못지 않게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해야 진정한 이질감 극복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동족의 문화를 여러 가지 이유로 폄하하고 가볍게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문화가 더 앞서 있다고 평가되고 있지만 민족적인 주체성이나 자긍심 면에서는 우리가 빚을 지고 있음을 자각케 하는 것이 문화적 이질성 극복의 요체가 될 것이다. 아무리 돈으로 작품을 샀다 하더라도 작가가 버젓이 살아 있는 데 작가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전시를 강행하는 것은 결코 세련된 매너도 아니며, 또한 신사적이지도 않다. 설사 우리의 관행으로는 대충 그렇게 해왔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상대방이니만큼 더욱 치밀하고 세련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생각지도 않게 제동을 거는 정씨의 모습은 이제 우리의 남북 문화교류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업적인 행위 자체를 나무랄 수 없다. 하지만 보다 품격 있게, 그리고 세련되게, 정당하게 일하는 자세가 아쉬운 것이다. 자칫 더 문제가 확대될 뻔했던 일인데 여러 비난을 무릅쓰고 취소를 결정한 내린 주최측의 대응이 그나마 지혜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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