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상 읽기  /  연극

세계적 연극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하여   - 제12회 거창국제연극제에 즈음하여 -

김승옥 (연극평론가)

 

한여름 휴가철을 맞아 유난히 연극축제가 눈에 많이 뜨인다. 문화관광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 현재 국내에서 개최되는 예술축제 100여건 중 공연예술축제는 40개 정도이다. 이 가운데 연극제는 14건으로 수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이지만 국제적 인지도를 가진 연극제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국제연극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운영조직과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공연예술축제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그 중 하나는 유구한 역사성이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와 영향력을 갖춘 것이다. 프랑스의 아비뇽페스티벌, 영국의 에딘버러페스티벌 등이 50년 이상 축적된 역사 속에서 그 명성을 쌓아 온 사례들이다. 둘째로는 축제 취지의 명확성이다. 뚜렷한 취지를 정해 놓고 그에 따라 행사 프로그램의 방향을 명시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때문에 운영의 주체가 바뀌어도 축제의 조직과 행사는 흔들림 없이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셋째로는 조직의 체계성이다. 이는 축제경영의 전문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운영의 방법을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그 조직 속에서 전문가들을 교육하고 배출해 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대체로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적 기획력으로 운영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거창연극제는 1989년 경남지역 연극단체들의 화합과 연극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올해 12회 째로 비교적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국제적인 연극제로서 운영된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90년대 중반부터 해외극단들의 공연을 참가시키면서 현재와 같이 ‘거창국제연극제KIFT’라는 명칭으로 개최하고 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10년 이상 된 국제연극제로서의 운영의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거창국제연극제가 명실상부한 국제연극축제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요건들은 무엇일까.

 

진정한 국제연극축제로 발전시키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들

우선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표방하고 있지만 연극제의 취지가 너무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 최근에는 각종 축제마다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는 것이 유행처럼 보인다. 때문에 구체적인 지향점이 드러나지 않으면 차별화된 연극제로 기억되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다른 연극제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가지고는 고유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올해 거창 국제연극제는 국외초청작 5개 팀, 국내초청작 20개 팀의 공연과 부대행사를 마련했다. 프랑스 오딧세이 극단의 「서곡」, 나이지리아 토고 극단의 「진실의 저편에」, 일본 쿠나우카 극단의 「오이디푸스왕」, 이태리 유니티 극단의 「탠스 이어」, 일본 무용문화연구소의 「등나무아가씨」 등의 해외초청공연과 서울 동숭무대의 「청춘예찬」 등이 포함된 국내초청작이 그것이다. 본 행사 이외에 창, 탈춤, 마임, 무용, 연극아카데미, 학술세미나, 무대설치미술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런데 실질적 측면에 있어서는 여타의 지역에서 개최되는 프로그램과 대동소이하다.

초청작 선별에서는 전문적 식견이 필요하다. 해외 초청작의 경우 완성도 높은 공연을 유치해 국내연극인들은 물론 관객들에게 국제적 연극  교류와 향수의 장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국내 초청작의 경우 아직은 서울소재 극단들이 압도적이다. 초청작의 범위를 서울지역에 집중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지역의 개성있는 연극을 초청해 정보를 교환하고 실력을 키워 갈 수 있도록 연극제의 폭과 깊이를 넓힐 필요가 있다. 아비뇽연극제가 실험적인 공연예술의 개발과 보급이라는 취지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더욱 확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거창연극제가 유수한 축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독창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문화의식을 창출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이미지 창출과 아울러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문제이다. 경상남도 덕유산 국립공원 권내에 자리한 거창의 가장 큰 덕목은 수려한 자연경관이다. 관광 명소 수승대를 비롯해 근방의 금원산 자연휴양림, 해인사 등 명승 고적이 고르게 갖추어져 있다. 거창국제연극제가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표방하게 된 것도 주변에 천혜의 자연경관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승대 야외극장, 구연극장, 은행나무 야외극장, 위천극장, 선박극장, 다리극장, 입체예술극장, 금원산 야외극장, 해인사 야외극장 등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무대공간에서 벌어지는 연극제는 거창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문화체험을 줄 수 있다. 메커니즘의 폭주 속에서 자연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쉴 공간을 제공하고 인간과 삶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자연 속의 연극축제로서 이미지를 살려 나아갈 때 프랑스의 아비뇽연극제나 일본의 토가연극제를 능가하는 연극제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널리 알릴 수 있는 홍보력이 따라 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8월에 열린 거창국제연극제

거창국제연극제는 한 여름인 8월에 보름동안 개최되어 시기적으로도 여름 휴가철을 겨냥하고 있다. 인근지역은 물론 원근 각처에서 몰려 온 사람들에게 관광 휴양과 문화를 향수하게 할 일석이조의 기회를 줄 수 있다. 이것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작년만 해도 관람객이 3만 명을 웃돌았다고 하니 대단한 위세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관람객을 지속적으로 늘려 나아가기 위해서는 홍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연극인들만의 축제에 머무르지 않고 폭넓은 관객층을 확보해 연극과 삶이 어우러지는 진정한 축제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축제는 이를 주최하는 국가나 도시의 특징적 이미지를 전 세계에 홍보하는 계기가 되며, 관광수익 등 이에 따르는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축제를 개최하고 있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거창국제연극제는 연극을 통하여 문화의 관광자원화를 도모하고 지역문화 세계화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거창군은 인구 7만2천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인구 중 절반 이상인 4만명이 거창읍에 거주한다. 연극제 집행부는 지역정부와 협력해 지역내 주민의 참여방안을 개발하고 훈련된 인력 양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군민 모두가 적극적인 관심과 이해를 바탕으로 축제에 참가할 때 지역민의 삶의 질도 향상될 수 있다. 많은 축제에서 지역민들은 축제의 주체가 아니라 타자로 전락해 축제의 연행들을 또 다른 볼거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축제의 활력은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축소되고 만다. 이처럼 활력을 잃은 축제, 지역주민들에게 외면 당하는 축제가 국내외의 관람객을 끌어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거창은 전국 232개 기초자치단체 중 드물게  예총 군지부가 설립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준높은 연극공연 및 부대행사를 통해 문화적 소외감에 빠질 수 있는 지역주민들에게 능동적 참여의 기회를 주고 경제·사회·존재론적 욕구를 충족시킬 때 지역 문화를 선도해가는 바람직한 모범이 될 수 있다. 바이로이트 바그너 축제를 비롯한 국제적 축제가 인구 8만명 내외의 조그마한 소도시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봄직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산확보와 운영의 문제이다. 대체로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축제운영 조직을 관할하게 될 경우 예산확보 및 운용의 실질적인 부분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축제실행단계에서 연속성을 보장하기가 어렵다. 즉 실무인력의 잦은 교체로 인해 축제운영의 성과물이나 노하우가 축적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편 연극 내부의 조직을 중심으로 축제가 개최되는 경우는 연극인들의 협의체로서 전문 기획인력이 부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다 전문적인 축제 경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문기획인력으로 구성된 안정적 축제사무국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수장은 예술감독이다. 즉 예술축제로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끌어가야 하는 예술감독제의 도입이다. 요컨대 지방정부가 예산과 행정에 관한 강력한 지원체계를 구축하되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축제경영조직이 축제를 운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까지 거창국제연극제를 이끌어 온 것은 집행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해 온 극단 입체의 대표 이종일의 힘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어느 특정인이나 단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도 절실한 것은 조직운영의 체계화와 전문성이다. 성공적 국제연극제는 강력한 예술감독제가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국내의 춘천인형극제, 춘천마임축제 등을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먼 여정을 향해 첫 발을 내딛은 연극제

중앙정부가 세계화가 가능한 축제를 지원 육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실 지역축제의 확대를 위한 관광적 차원의 홍보와 마케팅, 교통편, 숙박시설 등은 지역자치단체가 추진키 어려운 부분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추진키 어려운 여건을 정부 산하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연극축제는 작게는 그 지역, 크게는 그 나라의 문화적 위상, 경제적 부가가치, 관광상품적 가치를 높여 준다는 사실을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좋을 일이다.
연극축제는 다양한 부문의 전문가와 복합적 프로그램이 모여 하나의 축제로 완성된다. 예술가, 기획가, 축제경영인, 행정지원단 등 각기 다른 부문의 전문가가 만나서 또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해 나가야 하는  종합적이고 역동적인 프로젝트이다. 축제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그 성공 여부를 짧은 기간에 판단하기는 어렵다. 일정한 기간을 통해 축제의 성과와 노하우가 축적될 때 비로소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거창국제연극제는 아직 명확한 축제 취지의 실현, 축제 운영의 성과 및 전문성과 노하우를 축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축제에 대한 성급한 기대는 국제적 축제로 성장하지 못하는 요인일 수 있다. 문화의 중앙집중화 현상이 빚어낸 지방의 상대적인 빈곤감을 해소하고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하겠다는 초창기의 바램은 이제 국제적 연극제를 꿈꿀 만큼 성장 변화했다. 하지만 거창 국제연극제는 현재 먼 여정을 향해 첫발을 내딛은 정도이다. 국제연극제로서 본격적으로 운영된 역사도 짧고 축제의 규모와 성격을 실현할 수 있는 운영조직 및 전문적 경영의 구축과 실현의 과제가 가로놓여 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해결해 갈 때 거창국제연극제는 지역 연극의 발전은 물론 동서양의 연극교류, 연극문화의 관광자원화, 지역문화의 세계화에 성공적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