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상 읽기 / 무용 |
댄스 마켓이 열렸다 문애령 (무용평론가)
수년 전 파리 오페라발레단이 「지젤」로 내한했을 때 텔레비전 방송국의 촬영을 거절했었다. 미리 약속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방송국과 무용관계자들은 모두 당황했는데 당시 우리의 관례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카메라가 언제 들어와도 그저 황송해 하고 공연 전체를 촬영해서 방송해 주도록 요청하는 실정이었다. 지금도 뮤지컬이나 발레나 마당극을 안방에서 볼때면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촬영을 허락할 때 중요한 변수는 바로 돈이다. 그 작품을 방영함으로 해서 생기는 손익을 따져서 계약을 체결하는 예술가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예술가가 돈을 따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일까, 그렇다면 그는 취미나 자선사업으로 여기며 작품을 만드는가. 예술활동 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예술가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런데 작품을 무료로 준다면 그 작품에 대해 작가 자신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작품을 팔수 있다는 생각 구체화 시킨 기회 7월말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에서 주최한 ‘월드 댄스 2000’ 행사에서 우리 무용사상 처음으로 댄스 마켓이 열렸다. 외국의 극장장이나 무용관계자들이 살만한 작품이 있는지 보러 왔고 일본과 한국의 무용단을 중심으로 작품을 팔기위한 공연이 있었다. 처음 열린 시장답게 진행이 매끄럽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얼마간의 비용을 들여 참가한 무용가들은 안내서에 있는 구매자들이 과연 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며 얼굴 정도는 알게 서로 소개할 기회가 필요했다는 의견을 말했다. 물론 결과도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팔린 작품이 없는 모양이라는 정도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있다. 한 무용가는 “하여간 내 작품이 팔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구체화시킨 기회로 신기한 경험” 이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는 이미 세계적인 무용단들의 작품을 연달아 구매해왔다. 볼쇼이나 아메리칸 발레씨어터 같은 발레단들, 피나 바우쉬 무용단, 네덜란드 댄스 씨어터 등등 그들을 초청하는 경비로 수십억을 들였다. 그러면서도 우리 작품을 팔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히려 무용가들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자비를 들였다. 초청한다는 편지 한 장만 받으면 출연료는 고사하고 모든 여행경비를 들여 달려가곤 했다. 그것은 전문가들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물론 구조적인 문제였으니 누구 하나만의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관행에서 아직은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철지난 여성지를 보니 어느 무용가가 미국 카네기 홀에서 공연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했다. 그런데 자비공연의 경우 그 대관료가 5억이라서 망설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의 사실 유무를 떠나 우리 무용가들에게 잠재된 직업관을 보는 듯 했다. 지금이라도 댄스 마켓이 열려 무용작품으로 돈을 번다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내 두개 단체 프랑스 리용 비엔날레 초청 받아 올 봄에는 프랑스 리용 비엔날레에 초청받은 두 무용단체가 유명했다. 창무회와 댄스씨어터 온이 각기 9월 초와 말에 리용에서 공연을 갖는데 창작적인 면에서 평가받은 단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전통무용의 외국공연은 이미 수십 년의 역사를 지녔고 단체의 레퍼토리도 비슷비슷해서 이제 누구를 내놓아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창작은 다르다. 프랑스인들이 돈을 들여 초청하고 감상하고 싶어하는 현대무용단들이 한국에서 발견된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행사 관계자들이 내한해 직접 수 십개의 공연을 본 이후에 뽑아낸 작품들이라 제2, 제3의 나라나 도시로 진출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그렇다고 선택받지 못한 단체들이 상대적으로 실력이 모자란다고 볼 수는 없다. 이번 결과로 리용 측의 취향과 유럽의 관점을 추측할 수는 있지만 다른 기획자에게는 또다른 작품이 선택될 수도 있는 일이다. 두 단체는 어떻게 선정되었으며 어떤 조건으로 리용에서 공연할까, 그 궁금증을 풀어 보려고 김매자 이사장과 홍승엽 단장에게 몇가지 질문을 했다. 프랑스 관계자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출연료는 얼마나 받는가 등등 다른 무용가들에게도 해외공연의 기준이 될 것 같아서 였다. 두 단체 모두 같은 사람의 추천을 받아 리용 비엔날레와 연결되었다. 리용 고등음악학교의 무용과장 필립 코헨씨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과 교류를 위해 내한했는데 비엔날레 책임자인 기 다르메씨로부터 무용단을 추천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었다고 한다. 이후 기 다르메씨가 다시 방한했고 40개 이상의 단체를 방문했다. 두 팀은 모두 추운 겨울의 연습실에서 춤을 보였고 다르메씨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창무회는 “이런 단체가 어떻게 아비뇽의 눈에 띄지 않았는가” 라는 평을 들었다. 홍승엽은 “눈과 마음이 정화된 것 같다”는 평과 함께 다른 단체들은 철학을 내세우며 그것을 몸으로 풀지 못해 답답했는데 댄스 씨어터 온은 몸 자체로 작품을 끌어나간 점이 애착이 간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해서 두팀은 초청받게 되었다.
우리 무용계도 ‘스타’를 만들어야…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해서 이번 9월에 결실을 보게될 리용 공연을 준비하면서 두 팀은 담당기관에 대해 상당히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코헨씨에게 소개한 무용단의 명단에 빠져있었던 점과 국제관례로 되어있는 항공료를 해결해주지 못한 사실 때문이었다. 두 단체 모두 프랑스 문화원에서 주최한 저녁 모임에서 코헨씨를 만난 것이 인연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무용단 선정에서 잘못된 자문을 얻은 것은 확실했다. 항공권 문제는 점점 많아질 비슷한 국제행사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행정의 기준이 달라져야 함을 시사하는 부분이었다. 아울러 김매자 이사장은 우리 무용계는 스타를 키우지 않아서 큰일이라며 출연료를 더 요구하고 싶었지만 제나라에서 항공료도 주지않을 만큼 푸대접을 받는 예술가에게 누가 더 많은 출연료를 주겠냐 싶어 그만 두었다고 했다. 사실 우리는 정말 스타가 없다. 한국무용 명인들 제외하고 젊은 발레댄서 몇 명 빼면 자타가 공인하며 기분좋게 내세울 사람이 없다. 동시에 외국 손님에게 보여줄 40개의 단체가 있으니 모두가 비슷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대무용에서의 스타는 바로 안무자다. 안무자는 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 존재가 더욱 귀중하다. 우리가 골라내지는 못하더라도 리용에 의해 이렇게 뽑혔으니 지금부터라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좋은 안무가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월드 댄스 2000’ 행사에서 댄스 마켓에 참가한 일본의 하세가와 로쿠씨를 만났다. 평론가. 무용가. 잡지편집장. 기획자로 직함이 다양한 여인이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부토에 대해 이야기하며 즉흥부토를 악평하던 중에 이번 댄스 마켓에서 본 한국무용이 어떤지를 물어봤다. 악평에 대한 반격인가 싶게 악평이 술술 쏟아졌다.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팀과 저팀의 차이점이 보이지 않아 모두가 하나의 팀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악평이었지만 정답이었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안무가들은 개성이 없다는 말을 가장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저 듣기 좋게 수식어로 달아주는 기교가 좋다, 체격이 좋다는 말은 크게 듣고 개성이 없다는 말은 웃어넘긴다. 서양무용단에 우리만한 기교가 없는 무용가들이 있었는지 따져보자. 체격 좋기로 따지자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도 무용하려면 체격이 좋아야 된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체격과 무관하게 개성을 중요시하는 무용미학을 아예 무시하는 것 같다. 변화를 싫어하는 예술집단에서 개성이 생겨날 리가 없다. 공연기획자들은 개성있는 작품을 찾아다닌다. 예술가의 개성이 팔리는 세상이면 그 개성을 재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우선은 외국의 무용구매자가 방문하면 매 번 상품을 교체해 보여야 한다. 잘 팔릴 만한 상품을 구별해서 소개하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신제품을 개발하고 성공 유무를 점치는 의욕도 필요하다. 무용지원정책에서도 작품을 보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질 필요가 있다. 외국에 한 번 팔렸던 작품은 다시 팔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절품시켜서는 안된다. 지속적으로 지원하며 기회를 기다려 주어야 한다. 대신 제외시킬 단체는 철저히 잘라내야 한다. 그 잘라낸 돈을 키울 단체에게 주어서 무용단 운영을 도와야 한다. 점차 많은 단체들이 뽑혀나가면서 편이 갈라질 것이다.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구분이 무엇인가, 결국 인정을 받는가 아닌가의 차이다. 능력도 없이 의욕만 있는 단체에게 아무리 투자해도 아마추어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질적인 향상은 없는데 지원단체 수만 많은 것도 기형적인 일이다. 개성있는 예술은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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