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상 읽기 / 음악 |
작곡계는 변하고 있는가?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우리 나라의 작곡계는 변하고 있는가? 대답은 이렇다. “변화의 여건은 성숙하였고 실제로 변화하는 조짐도 보인다. 그러나 아직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변화의 여건은 우리 나라 바깥에서 오는 것과 안에서 오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외부에서 오는 변화의 여건은 무조성적 현대음악기법이라는 20세기를 주도해 온 흐름의 퇴조이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무조성적 현대음악기법은 2차 대전 이후 전세계의 작곡계를 지배해 왔다. 조성의 몰락이라는 음악어법상의 변천은 19세기 유럽음악 특히 독일음악의 주된 변화과정이었다. 고전 낭만음악의 중심지였던 독일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20세기까지 이어졌고 쉔베르크에 와서 조성의 몰락은 창작의 결과로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작곡가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추구되는 무엇이 되었다. 19세기에서의 조성의 몰락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고유한 어법을 개척했던 결과였지만 쉔베르크 이후 조성의 배제는 작곡가들이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한 룰이었다. 쉔베르크 ‘주류를 모방하는 아류의 음악’ 쉔베르크의 체계적인 무조성 기법 근저에 흐르고 있는 정신은 반성이었다. 음악에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작곡가 스스로가 자신의 임의로 음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임의는 틀림없이 어떤 음악(그것도 다분히 조성음악)에 의하여 훈련된 음악감수성에 의한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수성에게 임의를 허락하면 기존의 음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음악 밖에 나오지 못한다. 18세기에 싹튼 예술음악, 즉 인간의 자유와 의지가 투영되는 음악과 그 음악의 진보를 믿었던 쉔베르크에게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나타났던 춤음악과 오페레타 같은 퇴영적 조성음악은 예술음악과 작가 정신의 타락이라고 여겨졌고 그런 의미에서 그의 반성은 실천적 의미를 충분히 가진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쉔베르크의 무조성적 음악어법의 추종은 하나의 대세를 이루면서 주류 언어가 되었고 차츰 그 반성적 성격을 잃어갔다. 오히려 주류에 편입되고자 하는 많은 아류음악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0세기 후반의 음악사는 ‘작곡가 자신이 스스로의 음악감수성을 부정한다'는 매우 반성적인 성격의 음악이 ‘주류를 모방하는 아류의 음악'이라는 매우 비반성적인 방식으로 양산되는 역설적인 역사를 보여준다. 한국의 무조성적 음악언어 이와 같은 흐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1980년대의 여러 가지 다른 흐름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근대성을 탈피한 혹은 넘어선 다양한 정신적 산물이 만들어지면서부터이다. 음악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렇게 요란스럽지는 않았지만 무조성적 주류음악언어가 약화되고 다양한 음악언어의 모색이 나타나는 시기가 그와 일치한다. 아직도 유럽과 독일이 현대음악의 중심권을 이루고는 있으나 이제 그 구심력은 현저히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무조성적 음악언어를 따르는 아류음악들이 현저히 적어졌다.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본격적으로 현대의 무조성음악 어법을 사용한 것은 해방 이후 작곡가들이 직접 서구에 가서 현대음악 어법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그들의 작곡활동을 펼치면서부터이다. 서양음악의 제2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음악대학 등에서 무조성음악을 가르치며 서양의 주류음악 언어를 우리나라에 수입하려고 노력하였다. 창악회, 미래악회, 아시아작곡가연맹 한국지부의 창작음악발표회 등은 그 주된 무대였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의 무조성적 음악언어는 강석희, 백병동, 김정길 등의 활동으로 하나의 정점을 맞는다. 그들은 서로 약간씩 성격을 달리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조성의 음악언어를 그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들은 왕성한 창작의욕으로 스스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또 적지 않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들은 서울대학교라는 명문학교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곡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대체로 195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의 무조성음악은 그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1970~1980년대에 가장 왕성한 시기를 맞았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에 그들 세 작곡가는 정년을 맞아 대학 강단을 떠났고 또 떠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얼마 전부터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세대에 의하여 주도되어 오던 작곡계는 차츰 그보다 젊은 세대들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의 활동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들의 창작욕구는 그들의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발휘될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의 계를 언급하는 입장에서 보건대 그들이 일선에서 한발짝 물러서는 것은 한국의 작곡계의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제2세대를 대표하는 세 작곡가 이후의 한국 작곡계는 어떤 흐름을 보일 것인가 하는 물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계 작곡계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하는 것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앞에서 필자는 그러한 변화의 요인은 지적하지 않고 다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동시대의 정신적 조류만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서양의 무조성적 현대음악언어을 뚫고 나온 다른 음악들이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냥 나온 것이 결코 아니다. 이미 무조성음악이 강했던 시절에도 이에 도전하는 흐름들이 서구 내에서도 있었거니와 독일의 경향과는 다른 호흡을 가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미국 영국 등의 나라들이 있고 더욱이 러시아 헝가리 같은 애초에 현대음악의 역사가 다른 나라들도 있다. 말하자면 이미 준비된 많은 다른 대안들이 있는 가운데 주류가 바뀌고 새로운 흐름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질문은 ‘한국에도 무조성음악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새로운 음악의 흐름이 있는가'이다. 새로운 세대는 스스로의 음악문화를 스스로 이루어 가야한다. 필자는 제2세대 작곡가들의 활동을 평가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젊은 작곡가들이 그 위 세대들이 이루어 놓은 음악판에 안주하는 것에는 비판적이다. 새로운 세대는 스스로의 음악문화를 스스로 이루어 가야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의 창작음악사라는 흐름도 생길 것이요 또 한국의 창작음악문화가 다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작곡가가 거의 제도권에 편입되어 있어서 자신의 고유한 세계와 방식을 가지고 창작활동을 벌여나가는 사람이 적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물론 제3세대가 있다. 제3세대는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제2세대의 무조성적 현대음악언어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리고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쉬운 음악언어와 전통적 음악언어를 사용하였다. 그 점 제3세대가 작곡계에 파문을 던진 것도 사실이고 그 스스로 새로운 흐름이 되어 다른 새로운 흐름을 자극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제3세대의 충격은 이미 가신지 오래고 이미 그들의 활동조차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어 버렸다. 그들의 활동은 지금도 제2세대의 활동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지만 작곡계의‘오늘의 흐름'을 변화시킬 새로운 변수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많은 작품들이 새로운 흐름을 보여 줘야 그런 의미에서 이강율의 최근 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무조성음악기법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는 12음 음열음악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작곡가 스스로가 자신의 감수성으로 판단하고 고른 음향을 들려준다. 그는 음열을 방식을 사용하되 오히려 가능한 한 무조성적 색채를 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진부한 조성음악의 인력에 끌려 들어가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 무조성적 음악의 패션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볼 때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다만 무조성을 탈피하려고 하는 그의 노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한 어법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음악이 보여주는 진지함과 내공이 있는 음악이 주는 힘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는 최근 그의 최근작 중 <하루>를 자세히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곡에서는 자신을 돌아보는, 자연을 바라보는,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말하자면 하나의 작가가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곡은 다만 한 작곡가의 기법적 시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는 한 작가의 작업을 보여준다. 사실 그 동안 지나치게 오래 기법적인 문제에 관심을 쏟은 나머지 예술의 의미와 작가가 가지는 사상과 삶에 관하여 우리는 지나치게 등한하였었다. 이강율 외에도 조인선, 진규영 등의 작품을 주목하게 되는데 새로운 흐름들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많은 작가들의 좀더 많은 작품들이 새로운 흐름을 보여 주어야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머지 않아 이에 대하여 쓸 수 있게 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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