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상 읽기  /  영화

한국의 분단극복문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이며, 한국영화가 풀어야 할 화두

김경욱 (영화평론가)

 

북한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 유현목 감독의 1961년 영화 좥오발탄좦은 개봉과 더불어 수난을 맞아야  했다. 좥오발탄좦은 당시의 사회적 현실을 어둡고 비관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실향민인 주인공의 실성한  어머니가 끊임없이 내지르는 ‘가자’라는 외침이 ‘북으로 가자’라는 말일 수 있다고 용공혐의가 제기되면서 5.16 쿠데타 이후 상영금지 처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 후 1965년에는 좥7인의 여포로좦를 연출한 이만희 감독이 용공 혐의로 반공법에 걸려 영화의 상영 금지와 함께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 그들의 잇따른 수난은  북한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를 일종의 금기가 되도록 했고 따라서 북한과 관련된 영화의 제작 자체도 매우 어려워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30여 년 후인 1999년, 한국영화사에는 기록적인 사건이 생겼다. 강제규 감독의 좥쉬리좦가 개봉되어‘단군이래 최대의 흥행작’이라고 불릴만한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성공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좥쉬리좦가 그토록 오랜 동안 다루기 어려웠던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

그러나 좥쉬리좦에서의 북한은 ‘서울 한복판에서 테러가 벌어진다’는 스펙터클 액션영화의 기본설정을 위해 남북의 대치상황에서의‘적’으로 끌려온 소재였을 뿐이다. 그래서 영화는 살아있는 인간을 재물로 삼아 혹독한 지옥훈련을 하는 북한 8군단의 특수훈련장에서 시작된다. 그 살육의 훈련과정을 견뎌 낸 이방희는 남한에  파견되어 정부요인을 암살하는 임무를 정확하게 수행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저격수 이방희가, 동시에 수족관을 경영하는 세련된 여성이자 유중원의 아름다운 약혼녀 이명희라는 설정은 양의 탈을 쓴 이리로 묘사되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북한 사람은 8군단 단장 박무영이다. 그는 남북한의 고위층이 참석한 남북 친선축구대회장에 CTX라는 액체폭탄을 설치해놓고 폭파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는 남한의 비밀정보기관 OP의 특수요원 유중원에게 “여기서 일단계 작전이 끝나면 곧바로 우리 인민 해방군의 통일전쟁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는 “전쟁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분단이 안겨준 고통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면서 “순진하게 고매한 정치인들을 믿으며 50년을 기다려왔지만 이제는 스스로 그 고통을 끝낼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무조건 전쟁을 외치는 박무영 또한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노리는’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의 반복이다.
박무영의 억지스러운 전쟁 논리에 대해 유중원은 다만 “통일을 원하는 건 너희들만이 아니며, 아직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할 때”라고 대꾸할 뿐이다. 이상하게도 그는 한반도의 자멸을 가져올 것이 분명한 전쟁 논리를 제압하고 남북한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어떤 방향도 제시하지 못한다. 바로 이 대목이 좥쉬리좦가 한반도의 분단에 대해서 어떤 진지한 관심도 갖고있지 않으며 단지 그것을 소재로만 활용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분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다. 그러므로 유중원과 이명현이 사랑의 감정을 먼지처럼 날려버리고 적으로서 상대방을 향해 총을 겨누는 그 순간에도 동족상잔의 비극 대신 액션영화의 긴박한 클라이맥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명현을 저격한 유중원은 자신의 약혼녀였던 여자에게 눈길조차 주지않고 돌아서 버린다.   

북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들

햇볕정책이 시행되고 금강산 유람선이 오가고 서울에 평양 옥류관이 생겨나는  분위기 속에서, 좥쉬리좦에 뒤이어 북한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영화 좥간첩 리철진좦이 개봉되었다. 남파되자마자 강도들에게 침투장비 일체와 공작금을 빼앗기는 어리숙한 간첩 리철진을 통해서 장진 감독은 간첩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파격적인 설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할 사명을 띠고 남파된 리철진이 굶주린 인민들을 걱정하는 모습은 은연중에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리철진은 인간의 얼굴을 한 ‘간첩’이기 보다는 오히려 서울에 처음 올라온 순박한 시골 청년으로 보이며, 남한 사회의 이모저모를 타자의 눈으로 조명해 보기 위해 이방인 중의 이방인으로서 설정된 인물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좥쉬리좦와 좥간첩 리철진좦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 어려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명현이 유중원에게 마지막으로 남긴‘인간적인 고백’이나 간첩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설정한 시도마저 완전히 무시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일말의 긍정적인 접근을 보여주는 한국영화가 아무런 무리없이 통용될 수 있는 현실은 곧 북한에 대한 남한 사회의  성숙한 의식을 반영한 결과이므로 긍정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좥공동경비구역 JSA좦의 성공은 특히 불과 일년 전에 이루어진 좥쉬리좦의 성공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1954년 11월 8일 판문점 회담장을 중심으로 세워진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약칭 JSA)을  배경으로 연출된 박찬욱 감독의 좥공동경비구역 JSA좦는 매우 파격적으로 남한 병사와 북한 병사의 형제애에 가까운 우정을 그리고 있다. 미스터리 구조로 전개되어 나가는 영화는 감추어진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북한에 대해 구축되어 있는 남한 사회의 고정관념이 차례로 깨지고 전복되어 나간다.

남북한 군인들의 만남은 지뢰를 밟은 남한군 병장 이수혁(이병헌)을  북한군 중사 오경필(송강호)과 초소병 정우진(신하균)이 구해주면서 시작된다. 북한군이 위험을 무릅쓰고 인도적으로 남한군의 목숨을 살려내는 것이다. 이수혁은 외로움을 잘 견디지 못하는 나약하고  감성적인 인물이며 그의 부하인 남성식 일병(김태우) 또한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이다. 반면에 오경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강인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정우진은 순진하고 쾌활한 성격이다. 이수혁은 오경필에게 친근감을 느끼며 형처럼 따르게 된다. 이수혁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넘어 북한군 초소로 건너가 그들과 마음껏 어울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던 그 순간, 형제처럼 지내던 정우진을 향해 무려 여덟 발의 총을 쏘는 장본인은 다름 아닌 이수혁이다. 그  장면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죽어도 그냥 죽는 게 아니라, 여덟 발씩이나 맞고 두개골이 터지고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하는 식으로 처참하게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한, 내면화된 빨갱이 포비아가 일시에 폭발하는 순간이니까요. 역설적이게도 폭력은 언제나 상대에  대한 공포에서 나오는 거니까요”라고 설명한다(「키노」2000년 9월호 185쪽). 한국군 장군이 북한군 장교보다 더 폭력적이고 위압적으로 묘사되는 대목과 더불어 영화에는 이와 같이 다분히  친북적인(?) 요소가 도처에 깔려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과도하게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표현이  없음에도 심의에서 처음에는 18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고, 재심에 의해서 15세 등급으로 조정되었다.
현실과 유토피아의 경계 사이에 서있는 박찬욱 감독은 한편으로는 미스터리와 추리, 반전과 반전에 의해 긴장감을 불어넣고 다른  한편으로는 코믹하고 우화적인 연출로서 마음을 이완시킨다. 지뢰를 밟은 이수혁이 벌벌 떨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장면이나 분단의 장벽을 넘은 남북한 군인들이 어린아이들처럼 어울려 노는 모습 등등, 관객을 여러 번 웃게 만드는 이러한 장치들은 영화의 무거움을 덜어내고 가볍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영화는 남성식을 혼수상태로 만들고 이수혁을 죽음으로 몰고 나서 한 장의 스틸 사진으로 막을 내린다. 그것은 네 사람의 남북한 병사가 서로 모르던 시절, 판문점에 관광 온 어느 외국인의 카메라에 찍힌 사진이다. 박찬욱 감독의 원래 생각대로 이수혁이 죽지 않고 사건이 일어난 후 5년 뒤에 제3국인 나이로비에서 오경필을 만나는 해피엔딩 대신에 선택된 비극적인 결말,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그러니까 좥공동경비구역 JSA좦는 18세 등급에서  15세 등급으로 왔다갔다하는, 그 변화 또는 혼란의 시점에 서 있는 한국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남북한의 정상이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발전적으로 통일을 논의하고 이산가족이 서울과 평양을 오고가고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에 입장하는, 불과 일년 전까지도 상상할 수 없었던 남북한  관계의 급속한 진전 속에서, 이 영화는 희망과 우려,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고 있는 남한 사회의 수준을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좀더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좥공동경비구역 JSA좦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의 망설임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불균질적인 텍스트이다. 그것은 특히 남북한 군인들의 총격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중립국 감독위원회에서 파견한 스위스 여군 소피(이영애)의 역할에서 두드러진다. 아버지가 한국인인 소피는 철저한 이방인으로서 냉철하게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나가지만, 분단에 대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역시 영화에서 끝까지 겉돌기만 할 뿐이다. 소피를 매개로 하여 언급되는 거제도 포로수용소 이야기 따위는 타자의 기억처럼 무심히 흘러가 버린다. 그 불균질성으로 인해 좥쉬리좦를 소비한 관객이 별다른 갈등 없이 또 다시 좥공동경비구역 JSA좦를 소비하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적화통일을 꿈꾸는 북한군에서 형처럼 다가오는 북한군으로의 전환처럼, 동일한 소재를 상반된 시각으로 조명한 두 편의 영화가 일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똑 같이 엄청나게 소비되는 현실은 얼마나 아이러니 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