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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영화계에 남아있는 숙제 - 스크린쿼터. 디지털 영화 - 김경욱 (영화평론가)
새 천년의 시작이라고 너나 없이 들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결산할 때가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또 다시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2000년 영화계를 되돌아보기로 하자. 국제영화제에서의 한국영화 붐 먼저 임권택 감독의 좥춘향뎐좦이
한국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제53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대됨으로써,
마침내 한국영화계의 오랜 숙원을 풀어냈다. 칸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손꼽히는 베니스와 베를린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한국영화가
초대된 적은 여러 번 있었으나 유독 칸영화제의 경쟁부문과는 인연이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칸영화제의 감독주간이나 주목할만한 시선
또는 단편영화 부문에 참가하는 영화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쟁부문으로의
진출만큼은 기대만 무성한 가운데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그래서 칸영화제의
경쟁부문 진입은 감독들이 풀어야 할 어려운 과제처럼 지워졌고, 한국영화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처럼 여겨졌다. 아쉽게도 좥춘향뎐좦이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칸영화제의 두터운 장벽을 한꺼풀 벗겨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한국영화의 잇따른 흥행 돌풍 2000년은 한국영화의
수출 또한 활발한 한 해였다. 좥인정사정 볼 것 없다좦와 좥춘향뎐좦이
미국에서 개봉되었고, 지난 10월에 열린 밀라노 필름 마켓에서는 좥해피
엔드좦 좥섬좦 좥미인좦 좥청춘좦 등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개봉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좥쉬리좦는
앞으로 러시아를 비롯해서 독일, 프랑스, 스페인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한국영화는 2000년 세계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로 떠올랐고, 그러한 뜨거운 관심은 2001년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블록버스터 영화 신드롬 좥쉬리좦와 좥공동경비구역
JSA좦가 잇따라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한국영화계에는
‘블록버스터 영화' 신드롬이 열풍처럼 번져가는 현상이 생겨났다.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어 대규모의 관객을 동원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유행에
따라 제작비에만 몇 십억 이상 투입되는 한국영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보도를 통해 알려진 제작비를
살펴보면, 좥비천무좦 40억, 좥공동경비구역 JSA좦 30억, 좥싸이렌좦
40억, 좥단적비연수좦 40억, 좥리베라 메좦 45억에 이른다. 박찬욱 감독이
인터뷰에서 “제작자로부터 좥공동경비구역 JSA좦의 손익분기점이 서울
관객 51만명이라는 얘기를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좥키노좦
2000년 9월호 p.184)는 말에 미루어보면, 그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자한
영화사들이 손해를 보지 않는 관객 수가 서울에서만 적어도 50만 명
선을 훨씬 넘어야 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영화들의
흥행 결과가 아직 완료되지는 않은 시점이지만, 흥행이 부진하다는 기사(좥동아닷컴좦
2000년 10월 30일)가 났던 좥싸이렌좦의 경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만한
관객을 동원했을지 의문이 든다. 여기서 문제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태생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도박성이다. 흥행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에 힘입어 극장을 대량으로 선점하고 그에 상응하는 관객을 동원하는데
성공하면 엄청난 이익을 거둘 수 있으나, 실패할 경우에는 그만큼 제작자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스크린 쿼터를 둘러싼 논란 전반적으로 기쁨과 희망의
햇살이 비친 2000년 한국영화계가 그럼에도 여전히 걷어내지 못한 그늘은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즉, 스크린 쿼터를 둘러싼 논란이다. 한미투자협정체결을
앞두고 한국정부와 미국이 스크린 쿼터 일수(현 영화진흥법 제 28조에
따르면 극장은 연간 상영일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146일 동안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한다)를 비밀리에 축소하기로 합의했다는 주장이 영화계에서
제기되면서 수면에 잠복하고 있던 스크린쿼터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게
된 것이다.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측의 자료에 따르면,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7월초에 미국과 스크린쿼터 축소에 합의했다'고 했다가 다음
날 번복했고, 7월말에는 영화인들에게 직접 ‘스크린쿼터 축소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고 한다. 스크린 쿼터 지키기 운동이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상황 속에서 지난 11월 17일 문화관광부는 장관이 20일
범위에서 감경해줄 수 있는 의무상영일수를 2000년에는 10일만 감경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함으로써, 우려하는 분위기를 다소 가라앉혔다. 그러나 서울시극장협회를
비롯한 극장측에서 즉각 반발을 표명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의지'대로
밀고 나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예년에도 정부가 10일을 감경한다고
발표했다가 극장 쪽의 민원이 쏟아지자 20일로 후퇴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정부가 이리저리 말을 바꾸지 말고 한국영화를
위한 정책을 소신 있게 밀고 나감으로써 신뢰를 회복하기를 바라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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