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상 읽기 / 문학

인터넷. 황순원. 장정일

하응백 (문학평론가)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문학 매체의 등장

2000년 한국문학은 외관상으로 보면 특이한 흐름이나 뚜렷한 논쟁없이 조용한 한 해를 보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는 소리없이 이루어지고, 변화의 과정에서 그 변화를 감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긴 시각에서 본다면 2000년 한국문학은 큰 변화의 소용돌이의 원년으로 기록 될 만한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각 분야의 변화와도 맞물리는 것으로,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문학 매체의 등장이다. 그 매체는 시인,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문학 웹진, 출판사나 문학관련 단체의 홈페이지, e-book 등이다.
김원일, 박범신, 이문열, 이인성, 마광수, 이인화, 김탁환, 장태일, 주인석, 김영하, 이외수, 성석제, 신경숙, 김별아, 이순원, 양귀자, 한 강, 고은주, 김소연 등등의 시인 작가 홈페이지가 웹 상에 선보이고 있고, 그 수는 날로 늘어가고 있다. 이런 개인의 홈페이지는 시인이나 작가 스스로 만드는 경우도 있고, 그 시인이나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가 자청해서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고, 또 독자 스스로가 관리까지 해주는 홈페이지도 있다. 이런 홈페이지의 장점은 시인이나 작가를 독자들과 바로 연결해 준다는 것이다. 시인이나 작가는 이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이 홈페이지는 잘 활용만 한다면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웹과 매거진의 합성어인 웹진도 현재 상당수 선보이고 있고 준비 중인 것도 다수 있다. 주)
처음에 아마추어들이 자신들의 발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인 홈페이지 형식으로 웹진을 만들었으나, 점차 전문 문인과 자본력이 결합해 종이잡지 못지 않은 기획력을 갖추고 전문 필자들의 신작 원고를 수록하는 잡지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종이잡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 사용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인터넷과 문학을 접속하려는 작업을 일부 문인들이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웹진을 살펴보면 문학 애호가가 아마추어 수준에서 만드는 것과 기존의 종이잡지를 웹상에서 서비스하는 형태와 완전히 새롭게 전문인들이 참여하여 온라인에서만 소통되는 본격적 의미의 웹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 하나만 소개한다면 전문 소설가 사이트인 좥노블21좦의 경우, 80여명의 국내 작가들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이들의 작품은 e-book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창작교실, 연재 소설, 연재 에세이, 문학이론과 정보, 독자들의 창작 마당, 독자 게시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 웹진은 기존의 종이잡지가 가지지 못한 몇 가지 장점이 있다. 그것은 첫째 시인의 육성 낭송이나 각종 문학 행사의 동영상 화면 등을 활용하여 활자나 사진 외에 다른 비쥬얼한 아이템으로 잡지를 꾸밀 수 있다는 점, 둘째 웹의 쌍방향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독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수용하고, 독자들의 참여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고, 문인이나 편집자와 독자가 실시간으로 의사 소통을 전개할 수 있다는 점, 셋째 지면의 제약이 사라짐으로 신인이나 독자들의 글을 최대한 수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문학 웹진의 부정적 측면도 있다. 그 부정적 측면은 웹의 장점을 뒤집어 보면 쉽게 추론이 가능하다. 그것은 수많은 아마추어적 글쓰기가 웹상에서 전개됨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글의 수준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점, 익명성을 무기로 참여한 일부 몰지각한 독자가 언어의 폭력을 쉽게 행사할 수 있다는 점, 고급한 웹진의 경우 구축 비용과 유지비에 상당한 자본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료로 독자들에게 제공됨으로 인해, 확고한 경제적 기반을 가질 수 없어 지속성이 의심스럽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문학 웹진은 점점 그 세력을 확대해 한국문학의 한 축을 이루어나갈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앞으로 문학 웹진은 기존의 종이잡지가 그러하듯이 웹진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서열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기존의 문인들이 지금까지의 보수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웹진은 아니지만 문화부의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 문학분과위원회에서 주관한 하이퍼텍스트 좥언어의 새벽좦(eos. mct. go. kr) 같은 시도도 눈에 띤다. 이 하이퍼텍스트는 실험적으로 김수영의 유명한 시 좥풀좦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 이 씨글을 중심으로 수많은 다른 텍스트를 생산하여 종횡으로 얽히게 하는 것이 기본 개념인데, 많은 시인, 작가와 일반 독자들이 참여해 방대한 하이퍼 텍스트를 형성하고 있다. 일종의 현장의 글쓰기이며, 퍼포먼스적 글쓰기이되 또한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 텍스트가 되는 셈이다. 물론 이런 실험은 그 참여도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이퍼텍스트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긍정적인 면도 많다고 할 것이다.
한편 2000년 한국 문학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 탄생했다. 위에서 말한 인터넷과의 연관 속에서 유명 작가의 신작 소설이 e-book형태로 선보인 것이다. 물론 종이책이 아닌 통신 공간 속에서 발표된 소설은 몇 년 전부터 하이텔 문학관에서 선을 보였지만, 전작 형태로 새 소설을 e-book 형태로 발간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금까지 발간된 소설은 이문열의 좥하늘길좦(www. everbook. com), 이순원의 좥모델좦, 구효서의 좥정별좦, 백민석의 좥러셔좦(이상 www. yes24. com), 이인화의 좥려인좦(www. goldbook. co. kr) 등이 지금까지 선보인 e-book이고, 앞으로 윤대녕, 성석제, 전경린, 김인숙, 고원정, 이승우 등의 소설이 e-book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2000년 e-book은 하나의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지만, 이 시대 최고의 인기 작가인 이문열의 좥하늘길좦은 11월 중순 현재 고작 900명 정도만이 구매했을 정도로 아직은 인기가 없다. e-book이 본격적으로 문학 독서 시장으로 파고드느냐 하는 문제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점차 e-book에 대한 시도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술 혁신에 의한 문학의 매체 변화는 반대로 신문 연재소설의 소멸과도 관련을 갖는다. 알게 모르게 슬그머니 신문 연재소설이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사실 한국문학은 신문 연재를 기반으로 하여 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켜 왔다. 한국 근대 장편소설의 효시라 일컬어지는 이광수의 좥무정좦(1917)도 당시 총독부 기관지인 좥매일신보좦에 연재되었던 작품이고, 염상섭의 좥삼대좦, 채만식의 좥탁류좦 등 식민지 시대 장편소설의 걸작의 대부분이 신문 연재 소설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황석영의 좥장길산좦을 비롯 많은 소설들이 신문 연재를 기반으로 탄생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메이저 신문에서 작년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신문 독자들이 신문에서 소설을 보지 않는다는 것의 반영이며, 또한 다른 매체에서 얼마든지 충분히 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굳이 신문에서까지 소설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신문 연재소설의 공백을 인터넷 상의 여러 문학 잡지나 e-book이 대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양 소설사에서 일반적으로 근대 소설의 완성자로 발자크(1799-1850)를 꼽는다. 그의 좥인간 희극좦은 소설의 고전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발자크의 이러한 성공에는 발자크 개인의 천재성과 함께 몇가지 하부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그것은 첫째 시민 사회의 형성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는 부르주아 계급이 주역이 되는 시민 사회를 이루었다. 이때 패트런을 상실한 작가는 자기 계급의 시각으로 소설을 창작했다.
이것이 발자크 소설의 계급적 기반이다. 둘째는 구텐베르그의 금속 활자 발명에 이은 계속적인 인쇄 기술의 발전으로 신문이나 책과 같은 매체가 현대적인 차원으로 공급되었다. 또 하나는 이러한 매체의 공급을 원할하게 뒷받침하는 제지 공업이 발전했다. 프랑스에서 현대적 의미의 제지 ‘공장'이 세워진 해는 1799년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맞물려 발작크의 소설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인터넷의 보급은 새로운 모습의 문학이 태동할 하나의 조건을 마련한 셈이다. 종이가 필요없는, 가상 공간에서의 글쓰기는 그 내용과 형식 모두 다른 차원의 문학으로 한국문학을 서서히 변화시켜 나갈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2000년은 인터넷 문학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그 변화는 점진적인 것이며, 시인 작가의 홈페이지나 웹진, e-book 모두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이다.

원로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별세

2000년 한국 문학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시대 원로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별세다. 황순원 선생은 1915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출생,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1939년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경희대 문리대 교수와 예술원 회원 등을 역임했고, 1931년 잡지 좥동광좦에 시 좥나의 꿈좦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선생은 시집 좥방가좦와 좥골동품좦을 낸 뒤 소설창작에 몰두, 1937년 단편 좥거리의 부사좦를 발표한 후 좥목넘이 마을의 개좦 좥독짓는 늙은이좦 좥학좦 좥소나기좦 등의 100여편의 단편과 좥카인의 후예좦 좥별과 같이 살다좦 좥나무들 비탈에 서다좦 좥일월좦 좥신들의 주사위좦 등 7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평생 일관된 모습으로 장인적 글쓰기에 몰두했고, 많은 제자들을 길러 냈던 선생의 타계 소식에 전 문단은 애도했고, 정부에서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선생은 충남 천안시 병천면 풍산공원묘원 무궁화묘역에 묻혔다.

장정일 소설 좥내게 거짓말을 해봐좦 대법원에서 음란물 판결 받아 이와는 다른 것이지만 한국문학에서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사건은 작가 장정일의 소설 좥내게 거짓말을 해봐좦가 대법원에서 음란물로 최종 확정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보도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대법원 제2부(주심 이용우·李勇雨 대법관)는 27일 음란문서제조 등 혐의로 기소된 소설 좥내게 거짓말을 해봐좦의 작가 장정일씨(38)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며 “이 소설은 성행위의 묘사방법이 노골적이고 아주 구체적인 점, 묘사부분이 양적 질적으로 소설의 중추를 차지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보다 개방된 성관념에 비춰보더라도 음란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예술작품이라도 성적표현이 사회적 통념의 허용 범위를 넘어설 경우 형사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예술 및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문화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장씨는 96년 10월 중년의 한 전직 조각가가 고교 3학년 여학생을 만나 정사를 벌이는 내용의 이 소설을 출간, 이듬해 1월 음란문서제조 등 혐의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10월, 2심에서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검찰은 이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좥거짓말좦에 대해 원작보다 표현과 내용이 완화되어 처벌할 정도의 음란성을 인정할 수 없고, 사회분위기상 형사제재보다는 국민 판단에 맡기겠다며 지난 6월 영화제작자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 (동아일보, 10월 28일)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은 시대에 뒤처진, 또한 문학의 내적 흐름을 무시한, 지나친 법률적 판단으로 보인다. 장정일의 좥내게 거짓말을 해봐좦는 30대 후반의 조각가가 폰팅으로 만난 여고생과 여러가지 형태의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주된 줄거리이긴 하다. 이 소설이 아마도 중년의 남자와 미성년자와의 성관계가 주류를 이루며, 그 성관계도 일반적으로는 변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새도-매저키즘이 과도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이 작품은 성공과 실패 여부를 떠나서 의미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은 노동과 생식의 거부이며, 자기가 생산한 작품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이다.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는 조각가는 과거 자신의 창작품에 대한 극단적인 회의에 빠진다. 이것은 장정일의 예술가적 반성이다. 이 반성에 뒤따르는 것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지 않겠다는 것, 예술가의 창작은 곧 노동의 소산이니 노동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며, 나아가 자신과 같은 인간을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생식의 거부에까지 이어진다. 기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노동과 자식의 생산은 인류의 문명 혹은 인류사를 이끌어 온 도도한 두 기둥이다. 이 두 기둥을 거부한다는 것은 인류사에 대한 도전이며, 인간에 대한 자기 부정이다. 그러나 문학은 근본적으로 보편적인 생각을 부정하면서, 역설적인 방법으로 저항하면서 바람직한 인간 사회의 형성에 기여한다. 장정일이 노동과 생식을 거부하는 주인공을 소설에 썼다고 해서, 그 소설을 읽고 노동과 생식을 거부할 사람은 없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는 왜 주인공이 그렇게 극단으로 사회에 저항하는지, 혹은 이 사회는 저항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름답고 행복한 것인지를 반성해야 한다.
1996년 좥내게 거짓말을 해봐좦가 처음 검찰에 기소될 때부터, 많은 문인들은 그 작품에 대한 판단은 문학적으로 혹은 독자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법적 잣대를 들이대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그러한 법의 집행은 예술가의 창작 활동에 많은 장애가 될 것이다 라는 요지의 말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결국 대법원은 장정일의 유죄를 확정했고 이로인해, 한국문학은 또 하나의 큰 손실을 입은 셈이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문인들은 이 판결이 영원한, 영구불변의 판결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D.H 로렌스의 좥채털리부인의 사랑좦이 그랬듯이, 시대가 흐르면 과거의 판결 자체가 해프닝이거나 웃기는 것으로 판정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장정일의 이 작품이 고전적인 작품으로 살아 남을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여하튼 이 작품은 좥너에게 나를 보낸다좦 이후 일관된 장정일의 예술세계의 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의 문학에서는 중요한 작품임에는 틀림없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이 작품은 당연히 최소한도 문학적으로는 면죄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관록의 작가들 활약 두드러져

2000년 한국 문학 전개에서 최대의 논란거리는 이른바 문학 권력 논쟁이었다. 그 논쟁은 지난 4월 원주 토지 박물관에서 이루어진 좥김현 10주기 문학 세미나좦에서 발제를 한 평론가 권성우의 글에서 시작되었다. 또 하나의 가지는 조선일보사에서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심사 방법에 대한 작가 황석영의 문제 제기에서 발단이 되었다. 이 두 논쟁 모두 결국은 문학 권력 논쟁으로 논의가 비약하다가 이런 저런 사람들이 참여하고, 이런 저런 문학 사이트에서 확산이 되더니, 용두사미처럼 흐지부지되거나 비생산적인 설전으로 종결을 고하고 말았다(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호 글에서 자세히 밝혔으므로 생략한다).
문학 작품으로 살펴보면, 신인이나 중진보다는 오히려 관록의 작가의 활약들이 두드러진 것이 2000년 한국 소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외도와 감옥 생활을 마감하고 발표한 황석영의 좥오래된 정원좦은 여전히 황석영이라는 작가가 건재함을 보여준 역작이었고, 말썽 많았던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문구의 좥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좦도 보리누름의 빛깔로, 이문구 특유의 어눌한 충청도 사투리로 다가온 좋은 작품집이었다.
박완서의 좥아주 오래된 농담좦, 이문열의 좥아가좦, 신경숙의 좥딸기밭좦, 이승우의 좥식물들의 사생활좦, 하성란의 좥삿뽀로 여인숙좦, 조경란의 좥나의 자줏빛 소파좦, 차현숙의 좥오후 3시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좦, 서영은의 좥그녀의 여자좦, 이윤기의 좥두물머리좦, 김정환의 좥파경과 광경좦, 한승원의 좥사랑좦, 마르시아스 심의 좥떨림좦, 김주영의 좥아라리 난장좦, 이순원의 좥순수좦, 김원일의 좥가족좦과 같은 작품들이 기억할만 하다. 이 중 김원일의 좥가족좦은 실향민 4세대의 이야기를 리얼리즘으로 포착한 의미있는 작품이다. 월남해서 냉면집을 경영하여 안정을 이룬 일세대가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지고, 그것을 물려받은 2세대가 안정을 이루며 평생을 살았다면, 3세대는 여러가지 삶의 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알콜 중독에다 마약까지 손에 대어 객사하는 자식, 미국으로 이민 가 철저한 개인주의자로 변신한 자식, 허무주의적 예술가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자식, 운동권이었다가 사회 봉사활동에 종사하는 자식 등등이 3세대의 모습들이다. 1999년 12월 31일로 끝나는 이 소설을 통해 김원일은 20세기 후반기 한국 사회의 여러 모습들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신인급으로는 김현영의 좥냉장고좦와 김종광의 좥경찰서여, 안녕좦 등의 소설이 기억해 둘 만한 작품집이었다. 김종광의 작품은 이문구풍의 익살과 사투리를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주인공 없는 소설 형식이라는 독특한 방법을 개발하여 소설적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
시에서는 황동규가 좥버클리 풍의 사랑 노래좦를 통해 여전히 좥풍장좦 이후 자신의 세계를 심화 확대하고 있으며, 좥무인도를 위하여좦의 시인 신대철이 23년만에 두번째 시집 좥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좦를 상재하기도 했다. 김혜순의 좥달력공장 공장장님 보세요좦, 고두현의 좥늦게 온 소포좦, 남진우의 좥타오르는 책좦, 송찬호의 좥붉은 눈, 동백좦, 유하의 좥천일馬화좦, 조용미의 좥일만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좦 등이 기억할 만한 시집이다. 중요 문학출판사에서 시집 발간이 적었던 것은 문학 출판의 불황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2000년의 문학적 경향은 뚜렷하게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2000년은 90년대 말의 여성작가 중심의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신인과 중진 원로의 작품이 골고루 나타나고, 전체적으로 복고적인 혹은 고전적인 작품이 많았다는 것으로 진단된다. 한국문학이라는 배는 복원력이 있어 항해할 때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기울면서도 기착 항구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것이다.
한편 대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좥2000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좦도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소잉카, 이스마엘 카다레, 게리 스나이더, 피에르 부르디외, 가라타니 고진, 자크 루보, 마거릿 드래블, 일레인 킴 등 외국 문인 19명이 참석하고, 한국측에서 박완서 고은 황동규 김지하 도정일 황석영 이문열 신경숙씨 등 한국 문인 55명이 대거 동원된 이 국제 문학포럼에는 많은 돈을 들였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의미 있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휴머니즘이라는 문학의 고유한 속성

포럼의 전체 주제는 `경계를 넘어 글쓰기(다문화세계 속에서의 문학)'였고, `세계시장경제 체제에서의 글쓰기' `작가와 글쓰기' `포스트식민지적 상황에서의 글쓰기' `서구세계와 비서구세계에서의 글쓰기' 등의 소주제가 마련되어 열띤 토론이 있었다. 이들 토론 중에는 현재의 한국문학과 관련하여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과거 문학과 예술의 장은 금권과 이윤의 법칙에서 자유로웠고, 스스로 가치의 자율성을 가졌다. 그러나 현대는 상업논리가 예술의 생산과 유통의 전과정에 관여함으로 인해 예술마저 단기적인 이윤추구만이 중시되고 거기에 부합되는 미학적 선택만이 인정받는다는 요지의 발표를 했다.
부르디외의 분석은 한국의 현재 문학상황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생산(저자와 출판사), 유통(서점과 서적 도매상), 홍보(언론 매체 등), 소비(독자)가 서로 짜고 판을 벌이듯이 단기적인 이윤추구를 위해 달려간다. 예를 들어 좥가시고기좦와 같은 문학적으로 형편없는 최루성 소설이 수개월째 베스트셀러 1, 2위로 집계되어 유력 신문에 발표되고, 또 다른 유력 신문에는 여름철에 읽을만한 소설로 버젓이 소개되기도 한다. 소비자는 유령에 홀린 듯이 그것들을 따라가 최종적으로 그 판을 완성시킨다. 이런 판이 계속된다면 미학적 자율성을 가진 가치 있는 문학은 점점 설 땅을 잃고 획일적이고 유사한 문학 ‘상품'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쌀을 전부 수입해서 먹는 것이 단기적으로 경제적이지만 그럴 수 없듯이, 문학도 경제논리나 이윤추구로만 이해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모름지기 문화란 투자한 것에 대한 회수의 가능성을 예견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며, 때로 그 열매는 사후에나 돌아오는 법인 것이다"라고 포럼에서 부르디외는 말했다. 이 말은 특히 문인들뿐 아니라 문화 정책자가 귀기울여야 할 옥언(玉言)처럼 들린다.
큰 변화의 예감에 들 떠 2000년을 맞이했다. 문학적 변화란 과정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나고 나면 그것이 변화의 조짐이었다라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2000년의 한국 문학도 바로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종이잡지의 포화 속에서 한국문학은 인터넷이란 신천지 앞에 놓여 있다. 휴머니즘이라는 문학의 고유한 속성은 인터넷이란 매체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