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있는
작가발굴과 미술인들이 안심하고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오세권
(미술평론가)
새해 초에는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는 의미가 커다란 이슈로 형성되었다. 21세기 새천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2001년이 얼마 남지않은 지금에
있어서는 그러한 흥분과 기대감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시대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큰 듯 하다. 이는 국내 정치의 불안과 경제의 어려운 여파가 미술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특히 근래들어 나타나는 미술시장의
불황은 미술문화의 앞길에 짙은 안개가 되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빈익빈 부익부라고 했던가. 최근의 미술시장은
원로의 작품 가운데 고액가 작품은 약간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반면에
중견, 신진작가들의 작품매매는 이미 오래 전부터 끊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극소수의 작가 외에는 이 어려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가 하는 의아스러움이 생겨난다.
그래도 주요 미술문화 거리에는 개인전이나 단체전이 줄을 이어 열린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그래도 작품의 거래가 있으니 저렇게 작품전을
하는 것이 아니냐 한다. 그러나 올해의 전시는 이미 1년전에 예약된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전시를 열어야 하는 것일 뿐이고, 올해의 어려움이
내년 전시에 영향을 미쳐 내년에는 올해와 같이 활발하게 전시문화가
형성될지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올해의 특징적인 변화를 몇 가지 살펴보면, 미술문화에 있어서의 사이버
시대에 대한 논의와 작품들이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다른 해에
비하여 수십억이 소요되는 대형전시가 나타나고 있고, 미술품 양도소득세가
또 다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대학들이 미술문화의
경영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사이버 시대 미술문화의
논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생활 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했다. 많은 분야가 기계화되어 갔으며, 치솟아
올라가는 건물들과 미로와 같은 도로, 도시 거리의 간판, 쇼윈도우,
교통표지들은 자연이라는 개념을 산과 호수, 들판에서 도시풍경들로
바뀌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TV, 영상 그리고 신문과 기타 미디어들은
엄청난 시각적 이미지의 정보를 제공하였으며, 그러한 각종 시각 이미지들은
이미 우리 생활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대량생산과 전달의 매스미디어는
우리들에게 시각적으로 사회적 사건에 접촉하게 만들고, 이것들은 모두
생활과 사회에서 혼돈을 이루게 하였다. 이와 같이 인공화, 공업화,
과학화되고 복잡화 된 20세기 사회는 미술문화에도 반영되어 복잡한
미술문화 양상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2000년에 들어서는 새해 벽두부터 사이버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는 각종
논의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전부터 사이버 시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것을 확연하게 정의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20세기의
산업화 시대를 넘어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의 정립을 ‘사이버
시대'로 확정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사이버 시대에서는 인간 서로 간의 소통이 대부분 컴퓨터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곧 컴퓨터가 제공하는 사이버 공간 속에서 타자와 대화를
하여야 하며, 사이버 공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에
인간의 역사에 있어 새로운 혁명이라고 하는 사이버 시대에 있어서는
컴퓨터가 만들어 놓은 사이버 공간 속에서 사회와 역사 그리고 볼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이버 시대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가상 공간 속에서 가상 이미지들을
구성하는 세계이다. 가상 이미지의 범람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자체를
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하여 실제와 가상의 혼동 속에서 모두가
컴퓨터에 의해 프로그램화되어 가는 양상으로 바뀔 수 있다. 또한 우리
자신도 프로그램화된 세상에서 살아갈지 모르며, 그 동안 믿어왔던 진리의
개념도 바뀌어 갈지 모른다. 가령 태양이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에서
이제 태양을 만들 수 있다는 개념으로 바뀌면서 우리가 그 동안 믿어왔던
가치관들이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삶의 양상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것이며, 인간 유전인자의 연구도 발전되어 어느 순간
자신과 똑같이 복제된 또 다른 나를 만날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사이버 시대에 있어서 미술문화에 대한 논의는 확연하지
않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작품이나 디지털
시대에 대한 가상 이미지들이 난립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이버 시대에서
미술문화는 표현면에서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간다.
사이버 공간 속에 자신의 작품을 방출하기도 하고,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작품세계를 보기도 하는 것이다. 곧 사이버 공간 속에서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고, 공간이동도 자유롭게 행해진다는
것이다. 작가의 개념도 수공적인 손의 힘을 빌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에 의한 사이버 공간 속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든지 사이버 공간을
통하여 작품의 이미지를 방출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이버 시대는 정보매체가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에서 자동으로 바뀐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사이버 공간의 가짜 이미지를 통한 익명성의 세계에서
미술문화는 어떻게 인류에게 미의식을 불러일으키며, 사이버 공간의
정보매체를 이용한 미술의 표현 방법에는 어떠한 것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사이버 시대에 있어 미술문화는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가? 그 전망과 방법론들을 나름의 논의를 통하여 작가들의 표현방법으로부터
대중들과의 융화, 시장개척, 생활과의 접근을 연구하여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대형 미술제 시대의 개막
올해는 대형 미술제가
세 곳이나 열렸다. 서울의 ‘미디어시티 서울2000' 부산의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
광주의 ‘광주비엔날레' 등이 그것이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열렸기에
나름의 특성을 살리면서 무난하게 치룰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하여 ‘광주비엔날레'는 평년작으로 평가되었으나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과
‘미디어시티 서울2000'은 의욕만 앞섰지 기획과 홍보의 부진으로 관람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여 실패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미술제들은
이제까지 소규모의 전시들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전시문화를 이루어내고자
발돋움하고 있는 우리 미술문화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실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논자들 사이에는 “나름의 전시 특성이 나타났다"는
의견과“외국인들을 불러놓고 몇 몇 사람들끼리 잔치하였다"는
비난이 있어 양론적인 결과를 낳았다.
사실 한 해에 대형미술제가 동시에 열려 서로 비교되기 때문에 각 전시마다
전시감독이나 큐레이터 등이 갖는 책임이 무거웠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세 전시의 문제점을 살펴보면서 올해의 대형미술제가 갖는 의의를 생각해
보자.
먼저 ‘광주비엔날레' 는 세 번째를 맞이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큰 미술전시로 자리잡았다. 이제 국내뿐 아니라 세계 유수 미술전으로
자리 잡아 가는 것 같은 진행 속도를 체감으로 느낄 수 있다. 사실상
아시아 내에서는 가장 큰 미술제 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로 3번째
맞이하는 광주비엔날레는 내부 사정으로 인하여 2년만에 하는 비엔날레가
아니라, 3년만에 하는 트리엔날레 전시가 되고 말았다. 이는 비엔날레의
전체 진행에 있어 서울 중심인가 아니면 광주 중심인가? 모더니즘 중심인가
리얼리즘 중심인가? 관 중심인가 민간 중심인가? 에 대한 논박과 헤게모니에
대한 미술계 뿐 아니라 광주비엔날레를 둘러싸고 있는 복합적인 양상들
때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정이야 어떻든 내부적으로 세계적인
미술제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당초의 목적이 무색하게 국내 미술계 내의
헤게모니 쟁탈에 의해 파행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서
집행부인 재단 측의 안일한 대처를 볼 수 있다. 결국 많은 논란 끝에
전시 총감독이 선임되고 서둘러 전시체제를 갖추었으며, 전시 총감독
등 전시기획팀들의 노력에 의하여 아시아 지역의 정체성을 나름대로
회복하면서 그나마 전시를 큰 탈없이 마쳤던 것이다. 진행과정 가운데
‘한국작가 불참가 사건'은 옥의 티라 할 수 있다.
‘부산국제아트페스티발'은 98년에 창립하여 두 번째 행사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올해 사단법인체로 발족하여 조직을 정비하고 국제아트페스티발에
상응하는 기획전을 펼쳐낼 것이라고 대내·외적으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전시기획자들을 초청하여 세계적인 아트페스티발로
나아간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부산국제아트페스티발'은 당초의 목표와는 달리 전시 내용의
평가는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전시 자체가 국내에서조차 부산 외의 서울
등지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아 지방 축제로 끝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조직 자체 내의 홍보 부족에서 일어난 일이겠지만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들에게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제라면 그들만의
축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알려지지 않는 전시란 먼저 관람객을 끌어
모으는데 있어서 실패를 의미한다. 아무리 자신들의 작품이 좋다고 외쳐
보지만 홍보부족으로 관람객들의 무관심이나 미술인들의 방치로 이루어진
전시는 국제적인 전시가 아니라 조촐한 지역전시에 불과한 것이다. 기획에
있어서 전시의 내용도 중요하겠지만 홍보는 매우 중요하다. 잔칫상을
차려놓고 손님들은 오지 않고 자신들끼리만 만족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행사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다음은 서울에서 열린 ‘미디어시티 서울2000'을 보자. 서울에서 열린
전시이기에 관람객의 숫자가 가장 많으리라는 기대를 가졌던 전시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관객동원에서 실패한 전시라는 오명을 안고 막을
내려야 하였으며, 특히 이번 전시를 진행한 서울시는 부담금의 제정
손실에 대하여 많은 비난이 받고 있다. 2000년 11월 2일자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가운데 하나는 지방축제 ‘흥청망청 쇼'를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 미술행사의 흥청망청 분야를 서울시가 주최한 ‘미디어시티
서울2000'을 그 예로써 다루고 있다.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서울시는
90억원(기업체 협찬금과 입장권 수입 각 20억원 예상 포함)의 예산을
들여 지난 9월 2일부터 두달간의 일정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시립박물관,
서울 6백년 기념관 등에서 ‘미디어시티 서울2000'행사를 열었다. 멀티미디어와
예술을 접목 생활 속으로 파고든 디지털 문화의 중요성을 시민에게 알려
‘넷 시티net city'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결과는 당초 기대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10월 말 현재 관람객 수는
목표의 절반인 14만 4천여명에 그쳤다. 이에 따라 수입금도 19억원(협찬금
포함)밖에 안돼 시부담액을 71억원으로 늘려야 할 실정이다. 급박해진
서울시는 행사를 이달 15일까지 연장했다. 이유는 행사 기획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전시물이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 흥미를 끌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미디어시티 서울2000'에서 보여지는 작품들이 질적인 면에서는
세계 어느 전시에 비하여 뒤지지 않았지만 전체 전시는 방만하여 명확한
의의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곧 기획력에서 조직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90억원이나 사용된 실패된 미술행사의 엄청난 진행 경비를 시민들은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며 우려를 나타내었다. 결국 이번 ‘미디어시티
서울2000'은 좋은 작가와 작품은 많았지만 기획과 운영미숙으로 인하여
기획팀 만의 잔치에 불과했으며 그들의 높은(?) 기획력을 시민들은 수준이
낮아 눈 높이를 맞추지 못한 전시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올해에 진행된 세 개의 대형 미술축제를 언급하여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큰 미술제
행사들이 우리 미술문화 발전에 얼마나 많은 영향들을 주고 있는가?
이러한 행사를 계기로 하여 미술문화가 우리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얼마나
접근하고 있는가? 미술제를 위하여 투자한 금액에 대한 효과는 얼마나
있었는가? 등등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한편 1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인사동 전역에서 펼쳐진 ‘서울국제행위예술제'는
총운영비 3000만원(협찬금 포함)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서는 기획자들과
참여작가 모두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시민들과 함께 하는
예술의 가치를 보여주겠다는 일념과 함께 스스로 자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진행되어 작은 경비로서 알뜰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러한 행사라면 행사진행비가 몇 억원이라는 계산법이 나왔을 법 한데
운영위원회의 재치 있고 알뜰한 기획력으로 잘 마무리된 행사로 평가된다.
미술문화 경영에 대한
대학들의 지나친 관심
국내에서도 각 대학의
특수대학원에서 미술분야의 큐레이터 과정이나 기획 그리고 미술행정을
전문으로 하는 과목이 개설되고 있다. 그 교과 내용이나 강의의 수준은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미술문화 전체에 대한 운영이나 기획
그리고 행정의 운영마인드를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이 새로운 추세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21세기를 문화대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선진 국가들의 추세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모 대학에서 학생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만든 포스터에는 “00대학교
대학원에서는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아트페스티발과 관련된 문화예술기관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예술 창작과 생산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문화예술 경영학 석사과정(박물관 경영 및 현대미술경영전공, 공연예술전공,
문화예술전공) 전문가 과정(박물관 경영 및 현대미술경영전공, 공연예술전공)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문화를 선도해 갈 미래의 ‘예술경영전문가'와
의욕에 찬 많은 인재들의 지원을 기대합니다." 라고 되어 있는데
모집인원은 각 전공을 합쳐 수십 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문화 민주주의의를 추진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국가의 대계를 위하여 정책적이고 특성화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들 졸업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 기반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제대로 검증도 안된 전공을 많은 대학에서 경쟁적으로 개설하고
있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실 국내에서 미술행정이나 큐레이터, 미술관
경영, 현대미술경영, 등을 포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미술관들도 더 이상
없을뿐더러 이미 기존의 인력조차도 적절하게 배치되지 못하고 있는
포화상태이다. 가뜩이나 대학에서 많은 미술인구들을 배출해 내는 덕택으로
미술관계 고등실업자들이 엄청난 숫자에 달하는데, 대학원까지 많은
인원들을 끌어들이고 있어 얼마 후에는 많은 고급 실업자들이 득실거릴
것이다. 그런데도 미술계와 대학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체 남의
일 인양 방치상태로 보고 있어 결국 이러한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학과를 무조건 설치만 해놓으면 학생들이 모인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적어도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수요를 생각해 가면서 학과를
개설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무시한 학교의 정책에
앞장서는 사람들은 다름아닌 미술관련인들이다. 대학 내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현실은 도외시하고 자신의 입지만 높이겠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학교 영리목적과 합치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후죽순처럼 개설되는 미술관련 특수대학원
학과들이 문화 마인드를 만들자는 기본 취지와는 달리 학교의 장사 속이나
몇 몇 미술인들의 세력 확장을 위한 방편에 의한 개설이라면 앞으로
부작용도 많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대학에서는 이러한 양상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로지 대학은 재정 수입만을 생각할 뿐 졸업 후의 학생들에
대한 진로 방향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양상에 대한
모든 책임은 학생들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인력 생산에만 만족하지 말고 수요도 생각해 가면서 학교를 운영하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미술시장의 불황과 양도소득세에 대한 논쟁
문화의 경쟁시대라고
하며, 문화의 국제경쟁력 제고가 강조되고 있는 지금 미술인들이 내년
초부터 미술품 양도 차익에 대한 종합소득세 부과에 따른 저지에 나서고
있다. 내년부터는 개인이 미술품이나 골동품을 소장하고 있다가 2천만원
이상의 가격에 팔 경우 구입가를 넘는 양도이익금을 종합 소득에 포함시켜
세금을 내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합 소득세율은 10~40%나 되는
누진율이 적용되고 있다.
이에 미술관련 단체인 미술협회, 전업미술가협회, 화랑협회, 미술평론가협회
등 4개 단체가 중심이 되어 양도소득세 입안을 저지하기 위하여 관련법
철폐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재정경제부에서는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과세를 하여야 한다고 하며 고가의 미술품들을 소장한 사람들이 매매차익이
있었으면 당연히 세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10년간이나
시행을 연기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정경제부의 입장에 반해 미술계측의 입장은 ‘성명서'에서
미술품에 대한 재산 소득 과세는 미술문화 발전을 저해하는 중대한 악법임을
규정하고 수요자들의 매매행위가 크게 위축되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유치하여야 할 작품들이 은폐됨으로써 미술 발전을 크게 저해하는 결과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간에 행하여지는 미술품의 거래는
사실 자체를 확인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신고를 하지 않거나 탈세로 흐르기
마련인데 신고를 하면 자금추적을 할 것이고, 신고를 하지 않으면 탈세가
되어 범법자가 되는 상황에서 누가 미술품을 사겠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미술품의 양도차익에 대한 문제는 이미 1990년부터 정부에서
이를 법제화시키려 하였다. 그리고 93, 96, 98년에도 법제화시키려고
하였으나 그 때마다 주변 상황으로 인하여 계속 유보한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법제화를 시도한지 10년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미술문화의 근본적인 바탕 형성인 수요자에 대한 세금 압박으로
수요자 없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며, 여기에 관련된 상인과 생산자를
죽이겠다는 것이고, 미술문화쪽에서는 그러한 정부의 강제적 집행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미술인들은 왜 양도소득세를 반대하는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양도세를
물면 미술품 거래 시장이 위축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술시장이 어려운 이때에 누가 양도소득세까지 물면서 작품을 사고
팔겠느냐하는 것이다. 곧 미술품을 사고 파는 시장이 악화되어 작품의
생산자인 작가들이 더 이상 작품을 팔기 힘들다는 것이다. 작품이 팔리지
않으면 작가들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할 것이고 결국 미술문화를 형성하는
가장 큰 주축인 작가집단의 해체를 불러오는 것이다.
다른 상품과 같이 미술품을 팔았으면 그 이익금에 대한 세금을 부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미술품에는 고정적인 적정평가가 힘들다. 그러기에
은행 등에서도 미술품을 담보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동산처럼
등기부화 되어 등록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태에서 개인간의 미술품
거래도 일일이 신고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결국 미술인 뿐 아니라
미술품을 사고 판 사람들도 범법자가 된다.
미술행위 자체를 근절시켜 가는 정부의 정책을 보면서 그렇지 않아도
미술인으로서 살아가기가 힘든 판에 앞으로는 더욱 힘든 생활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 우리 정부는 예술가에 대한 지원 정책은
펼치지 못할 망정 오히려 예술가들의 예술행위를 통제하는 방법만 생각해
내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상과 같이 올 한해 동안의 미술문화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몇 가지
논의해 보았다. 이러한 논의들 가운데 지금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내년부터
실시할 것이라는 미술품 양도세 문제인 것 같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미술시장은 붕괴직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전업 작가들이 이미
부업으로 다른 직업을 찾거나 작가 생활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아우성이며,
화랑가에서도 작품을 팔아본지 오래고 화랑을 운영할 운영비조차도
마련할 길이 없어 포기의 심정을 지니고 있는 상태이다.
사실 벌써부터 전업 작가들 가운데에는 작품생활 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새로운 생활방편을 찾고 있으며, 작품생활과 부업을 겸하고 있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생각해 보자. 작품생활에 몰두해야 할 작가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하여 작품은 제쳐두고 부업에 열중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의 정책은 작가들을 배려할
수 있는 정책으로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계속적으로 앞길에는 짙은 안개가 자욱하다. 정말 국내에서 미술문화가
대중화될 정도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정부는 미술문화 진흥책을 말로만 앞세우지 말고,
능력 있는 작가 발굴과 미술인들이 안심하고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이 더욱 필요한 때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