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현상 읽기 / 연극

한국연극 2000년의 대차대조

김윤철 (연극평론가)

 

2000년 한국연극을 찬찬히 돌이켜보면 공연의 내용과 형식 못지 않게 제작의 형태가 매우 다양했던 것이 다른 어느 해보다도 두드러진다. 늘 하던 대로 창작극과 번역극, 창작 뮤지컬과 복사뮤지컬 등이 주류를 형성했고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우리 연극인들이 즐겨 태클하는 텍스트였지만 원전대로 공연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언제나 왜곡, 해체, 재구성, 번안을 거쳐서 다른 모습으로 무대화되었다. 올해의 연극제작형식을 다양하게 한 요인으로는 역삼동에 LG아트센터가 개관된 것과 서울연극제의 새로운 시도 때문이었다. LG아트센터는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RSC같은 세계적인 극단과 피나 바우시의 부퍼탈 무용단, 그리고 러시아와 호주 등지로부터 화제가 되었던 공연의 제작전체를 직수입해 공연했고, 서울연극제에서는 리투아니아, 프랑스, 미국 등지로부터 역시 제작전체를 직수입하여 공연했다.
외국극단의 내한 공연은 늘 있었지만 올해는 특히 이 두행사 때문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상향됐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올해의 연극제작형식을 가장 차별화했던 것은 외국의 연출가를 초청하여 한국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했던 문화상호주의적 연극 만들기였다. 국립극단은 프랑스의 연출가 다니엘 메스기시를, 서울연극제의 손진책 예술감독은 미국의 로버트 윌슨과 리 부루어, 그리고 일본의 오타 쇼고를 불러 자국 또는 자국문화권의 작품을 한국의 배우들을 사용하여 연출하게 했다. 이 문화상호주의적 연극 만들기가 올 한 해 연극의 가장 큰, 그리고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공연을 중심으로 2000년 한국연극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본다.
 
2000년의 작가와 그들의 공연
- 중견작가들
 
새 천년 첫 해에 중견작가로서는 이근삼, 오태석, 이강백, 김광림, 김정숙, 이현화, 오태영 등이 작품을 발표했다. 이근삼은 좥엄마 집에 도둑 들었네좦에서 극단 신화의 김영수가 꾸준히 시도하고 있는 도시서민극의 패턴을 따라 도시개발을 둘러싼 서민들의 욕망과 욕심, 가진 자들의 음모 등을 희화했지만 내러티브의 전개와 인물의 성격창조에서 정당화가 부족해 희극적 효과를 살리지 못했고, 오태석과 김정숙은 좥잃어버린 강좦(오태석 연출)과 좥메이드 인 자팬좦(심재찬 연출)에서 일제치하를 배경으로 한일간의 역사를 재조명해 봤지만 오태석은 유희성의 지나침으로, 김정숙은 연극성의 부족으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깨우쳐주지 못했다. 원래 과작인 이현화가 오랜만에 좥협종망치좦라는 작품을 강유정 연출로 내놓았지만 좥죽음과 소녀좦를 연상시키는 내러티브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정치적 관계에 긴장미가 생산되지 않아 내용과 구성이 부조화했다. 존재론적, 또는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김광림은 반생을 정리하려는 듯 좥나는 고백한다좦를 스스로 연출하면서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남녀의 여정을 틀 삼아 인생이 보편적으로 저지르는 죄를 고백하고 있지만 연극의 개념이 무대적으로 번역되지 않은 채 생경하게 난무해서 이 보편적 고백이 객석으로까지 확산되지 못했다. 김광림은 좥나비의 꿈좦을 11월에 발표하지만 이 글이 쓰여질 때까지 미발표되어 여기서 공연의 성과를 논할 수는 없지만 문예진흥원의 창작공연활성화지원사업 우수희곡으로 선정된 것으로 미루어 기대를 일으킨다.
필자는 중견작가들 가운데 이강백과 오랜만에 연극계에 복귀한 오태영의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
사회성이 강한 희극 쓰기에 능했던 오태영은 좥돼지비계좦(박근형 연출)를 통해서 깡패정치와 남북분단의 상황을 절묘하게 연계시키며 한 순박하고 우직한 인간의 파멸을 통해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일갈했다. 방치형 연출가 박근형도 뜻밖에 이 구조가 탄탄한 희곡의 연극성을 치밀하게 구성해냈고 최정우, 이영숙, 남우성 등의 중견배우들이 탄탄한 앙상블을 구축했다.
관념적 글쓰기를 고집해온 이강백은 이상우가 연출한 좥마르고 닳도록좦에서 해맑은 희극정신과 기발한 착상으로 우리의 사회를 통쾌하게 풍자했다.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의 저작권료를 챙기려는 스패니시 마피아의 엉뚱한 집념과 최근 40여년 동안의 한국의 정치사회적 변화와 사건을 얽어서 엮은 내러티브의 구성도 종결부의 다소 동어반복적인 처리만 제외한다면 아주 깔끔했다. 극은 한국의 최근 정치사나 사회사에서 군부독재라든지 성수대교붕괴사건 같은 국민적 트로마를 아프지 않게, 소극적으로 처리하면서 우리가 쓸어 내야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쓰레기들을 시원하게 청소한다. 극의 전개가 무대감독을 대신한 청소부의 해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희극적 감각이 뛰어난 연출자 이상우의 기여가 작용했겠지만 예를 들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의 전직 대통령들이 체구에 비해 엄청나게 큰 집무용 의자(권좌)에 깡총 뛰어 올라 앉는다든지, 저작권료를 받으러 가는 길에 씩씩하게 성수대교 위를 달리던 스패니시 마피아들이 다리가 무너지면서 횡사하는 장면은 희극적 상상력의 위대한 성취였다. 필자는 이 작품을 2000년 한국창작극의 최우수작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 신진, 젊은 작가들

한국연극의 글쓰기는 이미 신진, 또는 젊은 작가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상당한 입지를 확보한 박근형이 좥이자의 세월좦을 산울림 소극장의 초청을 받아 자작연출로 발표했고 박근형과 함께 포스트모던한 글쓰기에 재능을 보이는 김낙형도 제목이 내용을 거의 말해주는 좥그 여인 숙좦을 직접 연출해서 발표했다. 좥이자의 세월좦에서 박근형은 체홉적으로 일상을 스케치하던 종전의 산만해 보이는 글쓰기에서 벗어나 한 여인이 자기를 임신시켜 놓고 도망간 남자들을 찾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고통스럽게 순례하는 과정을 매우 연극적인 구성과 시적인 대사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남자인물들의 성격창조가 피상에 머물고 여자가 남자를 찾아다니는 동기가 부각되지 않아 타이트한 글쓰기에도 불구하고 극적 효과는 종전의 산만한 글쓰기에 비해 미흡했다.

- 서울예대가 배출한 작가들

서울예대가 배출한 젊은 작가들의 활발한 창작 또한 하나의 현상이 될 만큼 활발했다. 좥박수칠 때 떠나라좦를 쓰고 연출한 장진, 좥사랑의 기원좦을 손정우 연출로 발표한 차근호, 좥아비좦를 정일성 연출로 발표한 김동기, 좥용병좦을 강대홍 연출로 발표한 박수진 등이 하나의 사단을 이룰 만큼 왕성한 창작욕을 보였다. 그러나 대체로 이들에게는 삶에 대한 관찰이나 통찰이 아직은 성숙하지 못하여 극의 내용과 형식이 화합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차근호의 좥사랑의 기원좦은 사랑의 대표적인 이정표들, 그러니까 소유, 독립, 자유, 배반 등을 전반부는 추상적으로 처리했는데 후반부에 이르면 갑자기 사실적 차원으로 담론의 차원이 이동한다.
장진의 경우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테리 수사극을 모형으로 삼고 있지만 각각의 살인혐의자들의 혐의가 충분치 못해 극적 흥미나 긴장을 촉발하지 못하거니와 살인수사극에 꿈과 굿의 표현주의적 장면들이 정당성 없이 등장하여 내러티브와 충돌한다. 박수진은 스승인 오태석의 영향 때문인지 역사를 즐겨 다루는데 좥용병좦도 예외는 아니어서 임시정부-월남전참전-중동취업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용병개념으로 들여다보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황소개구리를 잡는 실직자들에 의해 추적되면서 겉 극과 속 극의 연계가 대단히 어색했다. 김동기의 좥아비좦는 유산을 사회공익적 사업에 남긴 아버지와 그것을 되찾기 위해 안달하는 유족들의 관계를 그리고 있지만 주제와 소재가 너무 진부했다. 이 젊고 의욕이 넘치는 작가들이 인생에 대한 경험을 축적할 때까지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들 외에 필자가 관심을 가졌던 젊은 작가로는 서울연극제의 공식참가작이었던 좥악몽좦을 쓰고 연출한 선욱현이 있다. 악몽 같은 삶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현대인의 순환적 딜레마를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 솜씨도 만만치 않았고 그것을 시각화하는 상상력도 풍부해 보였다.

- 여성작가들

이밖에 엄인희와 김윤미 등 두 여성작가의 여성주의적 작품이 발표됐는데 엄인희는 좥비밀을 말해줄까?좦에서 생리가 끝난 여인의 특수한 심리적 증후군PMS을 소재로 삼아서, 그리고 김윤미는 좥배꼽좦에서 여성의 자아발견과정을 통해서 여성에 대한 이해를 촉구했지만 두 작품 다 이론을 연극적 행동으로 번역해내는 작업이 미흡했다.

- 번역극들

셰익스피어는 이제 세계의 연극인들이 그 안에서 놀고 싸우는 놀이터이자 전쟁터가 되었다. 우리의 경우도 좥멕베스좦, 좥리어좦, 좥햄릿좦 등 비극을 중심으로 그러한 실험들이 수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태숙이 재창작하고 연출한 좥레이디 맥베스좦는 올해의 가장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다시 한번 공연을 글로 재연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싶다.
극이 시작하면 레이디 맥베스(서주희)는 이미 몽유병을 중하게 앓고 있다. 남편 맥베스로 하여금 선한 선왕을 시해케 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이다. 재창작자 한태숙은 전의(정동환)가 레이디 맥베스의 병인을 천착해내는 최면극, 또는 심리치료극의 형식을 극의 틀로 삼는다. 놀랍게도 그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줄거리와 사건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공연시간이 두 시간 반에 가까운 완전한 길이의 연극을 레이디 맥베스 중심으로 엮는다. 미학적 여성주의의 완벽한 실현이다.
연출자 한태숙은 레이디 맥베스의 무의식을 이영란으로 하여금 물체극이라는 행위미술로 보강함으로써 극의 정서를 한껏 고양시킨다. 예를 들어 그녀는 레이디 맥베스가 권력을 부당하게 찬탈하고 그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는 과정과 이영란이 커다란 얼음 덩어리에 처음에는 무언가를 조형하려다가 나중에는 무참히 도끼로 찍어 내리는 행위미술을 병치하면서 레이디 맥베스의 의식과 무의식을 함께 전경화한다. 박살난 얼음 덩어리는 경사진 무대바닥을 타고 내려와 물웅덩이를 만들고 죄를 다 고백한 레이디 맥베스는 물 속에 코를 들이박고 드디어 평화롭게 영원한 잠에 빠진다.
전의와 극중극의 맥베스를 맡은 정동환이 두 인물의 성격을 차별화하면서도 서로를 반영하는 어려운 연기를 무리 없이 해냈고, 악사들이 매우 연극적인 연주와 연기를 제공함으로써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정서적 연결을 효과적으로 이룩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레이디 맥베스 역의 서주희는 혼신의 동물적 집중력을 투입하며 죄의식으로 분열된 자아를 장엄하게 창조함으로써 여자 역의 크기를 비극적으로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서양고전을 재창작하는 작업을 또 하나의 여류작가인 김명화도 시도했다. 김명화는 소포클레스 원작의 좥오이디푸스왕좦에서 신화적 내러티브를 축소하고 인간의 정치드라마로 현실적 층위의 담론을 한층 강화하면서 사건의 구성도 범인을 찾아 과거로 역행하는 원작을 뒤집어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향적 정치음모극으로 바꾸었는데 신화적 요소의 잔재와 현실적 이야기 전개 사이의 불화가 심하게 두드러져 실험의 효과는 반감되었다.
번역극 공연 가운데 흥미를 끌었던 작품으로는 브라이언 프리엘이 쓰고 전준택이 연출한 좥몰리 스위니좦, 임영웅이 연출한 체홉의 좥세 자매좦, 하이너 뮬러 작 채승훈 연출의 좥햄릿 머신좦, 김도훈 연출의 아서 밀러 작 좥세일즈맨의 죽음좦, 바츨라프 하벨 작 임형수 연출의 좥아싸나체좦, 브레히트 작 김아라 연출의 좥사천의 착한 여자좦 등이 있었으나 대체로 원작에 충실하려는 접근에도 불구하고 원작과는 문화적으로 상당히 먼 공연이 결과하여서 번역극 공연은 올해가 결실이 가장 적었던 해였다.
뮤지컬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연극형식이었다. 좥페임좦(윤호진 연출), 좥포기와 베스좦(이종훈 연출) 등의 리바이벌 공연과 좥도솔가좦, 좥대박좦, 좥러시좦 같은 창작 뮤지컬, 그리고 현재 브로드웨이의 최대흥행작 좥렌트좦가 예술의 전당 제작으로 공연되기도 했지만, 올 한 해 동안 뚜렷하게 그 업적을 기억할 만한 새 뮤지컬은 없었다. 뮤지컬이 연극의 항구적 불황을 타개할 효과적 대안인 것은 오래 전에 이미 입증되었지만, 이제는 뮤지컬 연극을 전문으로 훈련하는 교육과정이 대학에 도입되지 않고서는 관객들의 상향된 수준을 만족시킬 길이 없을 만큼 뮤지컬 연극 만들기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문화상호주의적 연극의 의미
 
문화상호주의는 세계화시대에 거역할 수 없는 추세이다. 삶의 모든 층위에서 이종교배에 의한 잡종이 양산되고 있음이 특히 경계 허물기를 특징으로 하는 이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성격을 요약한다고 할 때 가장 사회적인 공연예술인 연극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도 문화상호주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순수창작극이라 해도 타문화의 영향이 전혀 없지 않은 것이다. 문화상호주의를 한편에서는 기피하여 문화민족주의를 부르짖기도 하지만 또 다른 편에서는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실천에 옮겨 새로운 연극적 기호들을 생산한다. 올해 한국연극은 유난히 외국의 연출가들과 한국의 배우들이 함께 공연을 제작한 사례가 많았다. 국립극단이 프랑스의 다니엘 메스기시를 초청하여 라시느 작 좥브리타니쿠스좦를 연출하게 했고 서울연극제에서는 미국의 로버트 윌슨을 불러 헨릭 입센 원작 수잔 손타그 각색의 좥바다의 여인좦을, 역시 미국의 리 부루어에게 성노 작 좥이상, 열셋까지 세다좦를, 그리고 일본의 오타 쇼고로 하여금 자작인 좥사라치좦를 연출하게 했다.
외국의 연출가가 자국의, 또는 자국문화권의 텍스트를 한국배우들과 작업한다는 것은 배우들의 한국적 신체구조와 정서구조, 의식구조를 수용해서 제3의 잡종을 만들어냄을 의미한다면 위의 네 편 가운데 로버트 윌슨이 연출한 좥바다의 여인좦은 가장 비문화상호주의적인 연극 만들기였다. 비록 이 공연이 연극의 모든 요소들을 비연극화하여 개념이 전혀 다른 시적 회화적 연극을 만들어냈고, 포스트 하나를 무대의 시각적 중심에 놓고 필요에 따라 대소도구들을 사용한 최소주의적인 장치 디자인과 현란하리만큼 화려하고 세밀한 조명과 음향, 배우가 자신의 연기를 패러디하는 메타적 연기와 시화된 몸짓 언어로 인간의 존재를 사유케 하는 연극을 우리에게 새롭게 체험시켜주었지만, 내가 문제 삼는 것은 로버트 윌슨이 공연의 모든 준비를 자기의 스태프진에게 맡기고 정작 그는 한국에 3일간만 머물면서 다듬는 작업만 했다 하니, 한국배우들과의 문화상호주의는 형식에 그치고 말았다. 과연 그는 예술지상주의자인가, 아니면 똑같은 상품을 찍어내는 공장을 감독하는 공장장인가, 라는 의문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리 부루어의 좥이상좦은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와 2부는 이상의 자서전과 전혀 무관한 이미지로서 이상의 시세계를 접근했다면 3부는 자서전적 요소를 많이 삽입하여 우리의 이해를 도왔다. 마지막 공연이 끝날 때까지 객석을 지키며 무대를 지휘했던 리 부루어의 작업태도는 로버트 윌슨과 너무 대조적이었는데 불행히도 주연 배우의 와병으로 인해 공연이 일부 취소되는 등 아쉬움을 많이 남겼다.
국립극단이 초청한 다니엘 메스기시의 좥브리타니쿠스좦는 라시느 언어의 시성을 번역으로 살릴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노출시켰고, 복잡한 서술구조 역시 한국관객을 위해서 효과적으로 정리되지 않았지만, 장면의 정서와 의미에 따라 자유롭게 이미지를 구사하는 시각적 처리는 차라리 논리적으로까지 보였다.
외국연출가가 가장 효과적으로 한국배우들을 연출한 공연은 오타 쇼고의 좥사라치좦였다.
이제는 폐허가 된 옛 집을 찾은 노부부가 추억을 반추하고 재연하면서 과거에는 깨닫지 못했던 일상적 삶의 가치와 소중함, 의미를 깨우치는 내러티브 구조는 손튼 와일더의 좥우리 읍내좦를 연상시켰다. 물론 미국작품의 서술구조는 일상행위 중심이었고 좥사라치좦는 정적이고 사유적인 일본적 서술구조였다는 차이점은 있다. 남명렬과 김수기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남명렬은 전에 같은 작가-연출가의 좥물의 정거장 2좦에서 아시아의 다국적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오타 쇼고의 세계를 익숙하게 표현했고 김수기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집중력과 역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보이며 추상적 텍스트를 구체화하는 데 성공했다.
 
중요한 변화들
- 국립중앙극장, 책임을 운영기관으로 지정
 
2000년 한국연극에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국립중앙극장이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또는 대표해야 할, 국립극단이 자립을 위한 경영 마인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사실이다. 물론 연극배우 김명곤이 극장장으로 선임됐기 때문에 극단의 운영과 예술적 기획에 많은 배려가 있으리라고 기대는 하지만 한 가지 불가피한 것은, 관객반응을 염두에 두지 않는 순수한 기획은 이제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국립극단이기 때문에 일반 상업극단이 할 수 없는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에 오히려 매진할 수 있어야 할텐데, 극장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그러나 진정 위대하고 실험적인 연극은 대중과의 소통도 잘 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가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작가인 것이 그 점을 웅변해준다. 국립극단은 자립을 위해서 얄팍한 상업주의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예술적 수준을 높이는 데 매진함으로써 진정한 ‘국립성'을 확립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자립의 토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 LG아트센터의 개관

또 하나 중요한 변화가 있다면 역삼동에 LG 아트센터가 개관한 것을 들 수 있다. 대기업의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세계적인 공연단체들을 초청하여 개관기념공연을 가짐으로써 시민의 고급문화에 대한 향수욕구를 해갈시켜주기도 했던 이 센터가 향후의 기획을 어떤 방향으로 취할지 무척 궁금하다. 만일 대기업이 이익의 사회환원차원에서 아트센터를 만든 것이라면 흥행수입을 고려하지 않는 과감한 문화예술투자를 감행하겠지만 우리 나라 기업문화의 생리상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기업이란 어차피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존재하니까 한 기업이 공연예술도 고부가가치의 수익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그것도 연극중흥을 위해서 무척 중요한 일이다. 국립극단과는 분명히 다른 기획을 기대하고 예상해야 하는 것이다.
초대권을 없애는 시도 또한 잘 한 일이다. 다만 프레스를 위한 프리뷰제도를 정착화하면 좋겠지만. 이밖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동숭홀을 임대하고, 한국연극협회가 바탕골 소극장을 임대하여 비교적 싼 값에 극장을 연극인에 대관함으로써 가난한 연극인들에게 발표의 장을 확대해준 것도 또한 기록할 만한 변화로 꼽을 수 있겠다.

- [공연과 리뷰] 창간, [연극평론] 복간

마지막 주요변화로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이 [공연과 리뷰]라는 연극잡지를 창간하고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20호를 끝으로 정간됐던 [연극평론]을 복간함으로써 한국연극과 세계연극에 대한 지적인 담론의 장을 확보한 것을 주목한다. 연극의 펀더멘탈을 강화하려면 연극예술가들과 평론가들 사이에 지적인 담론, 즉 공정한 토론의 문화가 발달해야 한다. 특히 좥연극평론좦은 우리 연극을 세계연극의 흐름 안에서 이해, 진단, 평가 및 처방함으로써 오늘날 한국의 주요언론매체에서 전문가의 비평이 실종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양했던 2000년 한국연극
 
2000년 한국연극은 또 다시 다양했다. 연극의 내용과 형식뿐만 아니라 제작의 형태도 다양했다. 그러나 화려한 다양성의 내면은 여전히 빈곤했다. 올 해 특히 자주 시도된 문화상호주의적 연극 만들기에서 세계적인 연출가들은 연극의 개념작업과 그 개념의 실현과정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가 하는 점을 우리에게 몸으로 증명해주었다.
이제는 한국연극이 다양함만을 자랑해선 안 된다. 전통을 수용하는 방법도 획일적인 굿놀이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육적인 에너지에만 몰두하는 쉬운 연극보다 세밀하고 정교함subtlety을 실천하는 어려운 연극에 가치가 이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비록 이 시대가 이종교배에 의한 잡종의 시대라 하지만, 내용보다 그 내용을 포장하는 양식이 우선하는 이미지의 시대라 하지만, 연극은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good story-telling가 있어야 감동이 따르기 때문에 나는 무엇보다 극작가들의 분발을 촉구하면서 이 글을 맺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