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미술오천년전

「한국미술오천년전」이 열리기 까지

-전시협약으로부터 개막까지-




◆ 전시협약체결

한·일 국교정상화 10년만에 이루어진 획기적인 이번 전시는 일본측의 희망으로 3년여의 검토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주최측인 朝日신문사에서는 1년전부터 10여명의 인원을 상주시켜가며 면밀한 계획 하에 추진해 왔고, 한국측에서는 시대별로 흐름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작품과 일본문화에 끼친 영향이 잘 나타나는 작품들을 선정하는데 중점을 두고 검토해 왔던 것이다.

치밀하고 엄선된 계획·검토 끝에 75년 10월 국무회의상정가결과 대통령 재가를 받아 10월 15일 오후 3시 국립중앙박물관 회의실에서 양국대표가 협약서에 서명함으로써 전시협약이 체결되었던 것이다.

이 협약에는 한국측에서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 일본측에서는 松下隆章 京都국립박물관장, 須田八郞 東京국립박물관차장·神山太道 福岡시립문화회관장·수풍 朝日신문사 기획 담당역원 등 5명이 서명했던 것이다.

◆ 전시일정

京都전시를 위시하여 3개 도시에서 5개월간의 전시회를 갖게될 이번 전시회의 장소와 일정은 다음과 같다.

▲ 京都전시=京都국립박물관에서 76년 2월 24일∼4월 18일까지 (54일간)

▲ 福岡전시=福岡시립문화회관에서 76년 4월 27일∼5월 30일까지(34일간)

▲ 東京전시=동경국립박물관에서, 76년 6월 8일∼7월 25일까지(48일간)

◆ 출품문화재

우리 나라 오천년 역사를 망라하여 선사시대유물로부터 최신자료까지 한국미술의 전모를 나타내는 전시품은 국립박물관소장품 135종, 서울대 등 6개대학 박물관소장품 11종, 호암미술관·간송미술관·윤장섭씨 등 개인소장품 62종 등 총208종 348점인데 이 중에는 국보 47점과 보물 19점이 포함되어 있다.

출품유물을 분야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① 선사시대유물 19종 81점=대전 괴정동 출토 黑陶·靑銅製儀器·김해 무계리·부여 송국리·대구 비산동·영암·용인출토의 유물 등.

② 고분출토품 32종 96점=금령총·천마총 경주 계림로·미추왕릉지구·공주 무령왕릉 등에서 출토된 금속공예품·옥석공예품·유리공예품 등.

③ 토기류 17종 22점= 금령총 출토의 마인물도상, 계림로지구·미추왕릉지구·부산 복천동 고적출토 유물 등.

④ 와전류 6종 6점=부여 규암출토 산경문전, 경주 보문동 임해전지·안압지등에서 출토된 옛기와들.

⑤ 불교금속공예품 9종 14점= 감은사서탑내발견 사리장치, 부산 왕궁리 오층석탑내발견 사리용기 및 정병·향로·범종 등.

⑥ 불상조각 21종 21점=금동보살반가사유상·불보살·금강역사두상 등.

⑦ 회화 34종 36점=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⑧ 고려자기 39종 41점=순청자·상감진사·회청자·철채·백자상감·연이문 등.

⑨ 이조자기 30종 30점=백자·청화백자·鐵砂·진사·분청사기 등.

⑩ 기타 1종 1점=반귀대암각도척본.

◆ 전시품운반

▲ 1월 31일=극비리에 일본국철의 대형콘테이너 7개에 실려 서울을 떠난 문화재가 오후 3시 부산에 도착 1박.

▲ 2월 1일=전세 「페리」발편으로 부산을 출항, 하오 4시 20분 하관에 도착.

한국영해를 항해하는 동안은 한국경비정들이 호위했고, 公海 중간쯤부터는 일본경비정과 일본해상보안청 항공기 4대가 호위했으며, 하관항에서는 일본측 잠수부가 동원되어 해저의 위험물을 탐색.

▲ 2월 2일=2월 1일 저녁 7시 트럭에 실린 문화재가 하관을 출발 육로로 철야 수송 끝에 2일 상오 11시 50분 목적지 京都에 도착, 문화재는 완전히 수송되었다.

문화재를 실은 트럭마다 일본경관이 동승했고 진열 전·후에 패트롤·카가 호위했다.

▲ 2월 3일∼6일(4일간)=解包작업, 서울에서부터 동행한 한병삼·경주박물관장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4일만에 解包작업완료(서울에서의 포장에는 15일 소요).

▲ 2월 7일부터 전시작업 시작.

◆ 진열·경비·전시장구조

진열방식=일본 제1인자인 國友俊太郞씨에게 위촉. 125cm∼130cm의 높이로 진열하였는데 이것은 일본인들의 평균 눈 높이를 감안한 것.

전시장=전시장인 京都국립박물관 구관(1890년에 건립된 일본의 중요문화재의 하나)은 1,500㎡의 넓이로 11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공기·습도조절·조명시설이 보완되었다.

준비 및 안전대책=극비에 부쳐지고 있는데 겉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진열창은 두께 12㎜의 특수 유리로서 망치로 때려도 깨어지지 않을 정도.

② 불침번 8명에 패트롤 TV에 의한 감시 장치 대폭 강화

③ 화재대책으로 전시장에 들어가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담배를 입구의 경비소에 보관시킬 정도.

④ 진열작업을 하는 인부들도 신원이 확실한 사람들로서 완장과 명찰이 없이는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음.

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보험료도 막대하나 그 내용은 비밀.

◆ 전시실 상황

▲ 京都박물관 구관의 본관 현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울주의 「반귀대암각도」척본이 펼쳐져 있음.

▲ 제1실=「선사시대의 미술」 (한·일양국의 문화사년표 첨가)

▲ 제2실=「삼국시대의 미술」

제3실=「통일신라시대의 미술품」30여점

▲ 제4실=「불상」전시장,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불교미술. 최고 걸작의 하나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복판에 정좌.

▲ 제5실=불상, 불교미술품 전시장.

▲ 제6실(중앙홀)=전시의 중심. 신라의 천마총·백제의 무령왕릉출토품을 중심으로 금관, 관모·관식·귀걸이·혁대 등 순금속공예품 80여점.

▲ 제7∼9실=고려와 이조자기의 명품 70여점.

▲ 제10실=이조의 회화. 안견의 적벽도, 정선의 인왕제색도, 윤두서의 자도상,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등.

◆ 개막식

▲ 일시=1976년 2월 23일 (오후 3시 40분)

▲ 장소=京都시 동산구 茶屋町 京都국립박물관 구진열관

▲ 테이프·컷팅=일본천황의 실제 三笠宮崇仁(미까사노미야 마끼히도)씨의 비와 주일한국대사 김영선씨의 부인 김원희여사.

▲ 참석자=일본측, 三笠宮崇仁 부처, 安嶋彌 문화청장관, 松下隆章 京都국립박물관장, 廣岡知男 조일신문사장 등 1천5백여명의 초청인사와 한국측에서는 김영선 주일대사 부처를 비롯 이용희 대통령특별보좌관, 육인수 국회문공위원장(당시), 채문식 의원,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등이 참석하였다.

이날 개막식에서는 김영선대사가 축사를 통해『한·일국교정상화가 두 나라 관계에 첫 번째 해빙을 가져왔다면 이번 「5천년전」은 두 번째의 해빙을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으며, 三木首相은 축사를 통해 『한국은 고대로부터 일본과 가장 깊은 관계를 맺어온 나라로서 지리적 역사적인 관련으로 예로부터 일본은 문화면에 있어서 많은 것을 배워 왔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한국의 문화재전시를 통해 한일양국의 역사적 문화적으로 깊은 관계가 재인식되어 양국민의 민족적 전통문화에 대한 일본인의 이해가 현저하게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으며 개막식에 이은 축하리셉션에서는 일본측을 대표하여 축사를 한 三笠宮崇仁씨는 『오천년전은 일본에서의 한국미술사를 다시 쓰게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말했고 한국측에서는 이용희 보좌관이 축사를 통해 『오천년전은 「아름다움」으로 한·일 두 나라의 우호를 증진시키는 큰 잔치』라고 말했다.

초청인사 1천명 이외에 5백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한 이 날의 개막식은 일본의 전시사상 처음있는 일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