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 총체화경향을 보이고 있는 海外思潮
유덕형 / 동랑레퍼토리극단 대표
금년으로 세 번째가 되는 제3세계연극제 국제회의가 지난 4월20일부터 5월 2일까지 베네주엘라의 카라카스에서 개최되었으며 하비타국제회의는 5월 27일부터 6월11일까지 카나다의 벵쿠버에서 열렸었다. 다음의 글은 이 회의에 참석했던 유덕형씨의 참가기인 바 본원은 유씨에게 회의 참석여비 97만9천원을 지원한바 있다.
■ 카라카스 제3세계연극제
1971년 마닐라에서 그 첫번회의를 가졌던 이 모임은 아시아의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이른바 개발도상국의 연극인들이 격년으로 한자리에 모여서 회의와 연극제를 통하여 공동의 관심사와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상호 필요한 정보교환과 긴밀한 협조를 다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ITI(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는 제1회 마닐라 대회를 비롯하여 제2회 봄베이 대회에 수명의 우리 대표단을 파견한 바 있으며, 금년에도 같은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우리에게는 초청장을 보내주지 않았으며 거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 우리의 항의 편지에 대한 회신으로 사과의 말과 함께 정식 초청장을 보내오게 되어 부득이 필자 혼자서 부랴부랴 서둘러 회의 제2일에 겨우 현지에 닿을 수 있었으니 불행중 다행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혼자 참석해야했던 것이 유감스럽기만 했다. 이는 회의에 참석한 이후 전체적 분위기로 보아 확인된 것이긴 하지만 원래 제3세계의 구성이 소위 비동맹국가들이어서 마닐라대회 이후 이들의 정치성향화는 마침내 회의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어떤 편견이나 저의를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성향은 現議長國이 레바논이며 상임위원국이 이란이라는 점과 또 제3세계위원회의 자문국 역시 미국, 불란서, 동독, 소련 등이라는 점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전세계 45개국에서 200여 연극인이 참석하여 5일간 계속된 이 회의에서의 주요의제로 활발한 토론을 가졌던 것은 「공연예술의 정치참여」와 「전통예술의 보존의의와 방법」이라는 두 가지 문제였다.
연극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는 제2회 대회 때는 참석치 않았던 남미제국의 토론이 아주 적극적이어서 예술표현의 자유를 부르짖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검열문제의 당위성에 대한 비판적인 성토에 이르기도 했다.
「이데올로기」형성과 사회·국가발전에 예술의 능동적 기여도에 대한 토론은 회의를 가히 열풍으로 몰아넣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회의분위기나 대화의 과정에서 일국의 대표로 참석한 필자가 어떠한 확고한 주장이나 책임있는 발언을 위해 사전에 아무런 준비를 할 수 없었던 우리의 여러 여건이 무척 아쉬웠다.
이런 반면 아시아의 제국가들이 관심을 갖고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이 회의의 또 다른 주제인 「전통예술의 보존의의와 방법」에 대한 문제였다. 이 의제는 제1회 대회이후 중요한 논점으로 토의되어 왔던 것으로 자기 나라의 문화예술의 독자성은 자국의 특이한 사회문화적 배경과 입장에 따라 서구연극과 대립시켜 보존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편 7일간 계속된 연극제전에서는 각처에서 온 40여개의 공연물이 시연되어 그야말로 제3세기간의 상호문화교류의 제전 목적을 십분 충족시킨 것은 물론 연극의 세계적 조류를 한눈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전반적으로 「총체연극」개념의 범주에 속하는 연극들이 많았으며 이는 이미 실험의 단계가 아니라 하나의 정착된 세계연극의 새로운 사조로서 파악할 수 있었다.
전 공연작품중 가장 주목을 모았고 또한 크게 평가받은 것은 아이슬란드 국립극단의 「이누크」(인간)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에스키모인들이 추위와 싸우며 물개를 사냥하는 일련의 이야기를 비화술적 공간언어를 구사하여 표현한 것으로 문화적 이질감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호소하는 박동력에서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표현양식으로서의 우수성으로 해서 새로운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이 12일간의 회의와 연극제전을 통하여 얻은 결론을 두어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회의는 이미 단순한 예술가들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유엔」이라는 확신이다.
그러나 ITI총회가 전통적으로 서구의 자유진영을 주축으로 한 비교적 준수한 회의임에 비추어 이 제3 세계연극제는 날로 비동맹국가들을 중심세력으로 하여 우리에게는 어딘가 불편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1978년에 열리는 우간다회의에는 되도록 많은 대표가 참여할 것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단체가 작품을 갖고 참가를 해야 되겠다는 절박한 생각이다. 그리고 민간외교사절로서의 충분한 준비와 토의방안이나 방향을 마련해야겠다는 느낌이다.
만일 대회를 우리가 유치할 수 있는 여건이나 능력이 있다면 이에서 더 바랄 것이 없겠으나 적어도 한국이 임원국으로 선출되게 한다거나 우리와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협조할 수 있는, 예를 들면 서독이나 영국 등을 자문국으로 선임한다든가 하는 일들이다.
한편으로 연극제전의 공연물을 보는 동안 얻은 결론은 폐쇄된 우리 연극인의 고정관념에 대한 불식이 시급하다는 느낌이 있다. 보다 자유로운 창의력의 계발과 개성의 발굴을 위한 근저적 토양형성을 위해 자신을 돌이켜 볼 시점으로 느껴졌다.
■ 하비타 국제회의
이 회의의 공식명칭은 「인간거주지에 관한 유엔회의 및 그 진로를 위한 국제학술 및 공연」이라는 긴 이름이다. 이것은 유엔 인구문제 연구홍보센타와 국제 극예술협회 제3세계분과위원회가 주최하고 유네스코와 국제극예술연구회가 후원을 한 것이다.
이 회의의 주제인 「인구조절과 인간의 거주지의 문제」는 현대국가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해결해야할 중요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실상 인구문제의 전문가 뿐 아니라 예술가·민속학자·교육자·언론계의 권위자 또는 각국의 공연예술단체들을 초빙하여 학술 토론회를 갖는 반면 각종연극, 민속예술, 영화, 전람회 등을 가짐으로써 이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각종 예술형태를 이용한 공동 관심사의 해결방안을 모색해 본다는 기회를 삼았던 것은 이에 참가했던 한 연극인으로서 큰 경험을 얻은 셈이다.
사실 회의에 참가하기 전 만해도 하비타의 규모가 어떤 것인지 거의 짐작할 수가 없었는데 현지에 도착하여보니 도시가 온통 하비타축제분위기 일색이어서 일단 경악했거니와 실제로 각국의 수상 및 각료급 정치인을 비롯하여 세계적 예술인, 학자, 언론인들의 대거 참석은 물론 회의의 분위기도 각국의 취재기자만 3, 4백명이나 분주하게 활동하는 등 대규모 국제회의라는데 깜짝 놀랐다.
정부급 대표자 회의에서는 인류복지를 위한 인구문제와 거주지의 문제 등의 토론 및 학술회의가 열렸고, 일반예술인을 중심으로 해서는 각종의 질서 공연 등이 12일간에 걸쳐 열려서 각국에서는 자기 고유의 공연 예술물을 보여주는 등 무척 다채로웠다. 필자는 다행히 뉴욕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무용가 이선옥씨를 만나 동행하기를 권유했던 바 쾌히 응하여 이 제전에 한국고유의 승무를 보여줄 수 있었으며 더욱 이것이 참가한 각국 대표들에게 상당한 인기가 있었기에 무척 다행으로 생각하며 위로를 얻었다.
실상은 이 회의 축제에 우리 동랑레퍼토리극단이 현지 체제비를 보조로 하여 정식 초청을 받았었다. 세계를 통해 능력있는 단체가 많기도 한데 특히 우리 단체를 정하여 초청해준 것에 자신을 갖고 마침 국내외를 통해 평가받았던 『초분』이 인간거주 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내용이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이 기회에 미주순회공연의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각계의 이해 부족과 따라서 국내의 재정적 보조가 여의치 않아 최종순간에 포기하고 혼자서 떠나야 했던 만큼 이선옥씨의 인기는 필자로서는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더 기쁜 일은 국제극예술협회 미국본부 주관으로 명년 3월 뉴욕에서 3주간 열리게 되는 「연극의 달」기념행사에 우리 단체를 초청하여 주었고 그곳의 라마마극장과 또 관계되는 재단이 호의를 보였기에 국내여건이 허락되어 실현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것은 한 단체의 영광이라기 보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쾌사이며 해외에 우리의 연극예술을 소개함으로써 문화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국위선양의 한 방편이며 민간외교의 실현임을 믿기 때문이다.
필자가 인구문제를 떠나서 한 연극인으로서 화의를 통해 느꼈던 점은 예술의 총체화 경향이라는 강한 인상이었다. 이 회의에서 한 주제를 향해 동원된 매체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합적인 것이었다. 국적을 달리하는 각종 연극, 민속극, 무용, 음악, 필름, 사진, 전시회, 토의는 마치 예술의 박람회장 같으면서도 그것 자체가 하나의 호소력있는 예술형태로서의 인상을 낳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회의가 끝난후 미국 여러 교육기관을 돌아보며 한편으로 각종 공연 등을 보는 동안 더욱더 뚜렷해졌다.
교육으로 예를 들자면 세계적 디자인학교인「프랫」에서는 이미 연극과, 무용과 같은 것을 두어 계열변화하였으며 각과는 필요한 과목들을 제공하고 학생은 자유로이 필요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는 식이다. 각 분야에 경계를 두고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개성과 창의력과 상상력을 계발하는데 주안하고 있다. 현대의 모든 예술형식도 역시 전통적 개념의 테두리를 고집하지 않고 총체화되어 영역의 구분이 없어져가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일시 바람만 일다가 조만간 사멸하게 될 유행이 아니라 퍽 꾸준하고 무게있는 思潮라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체험은 당연히 처해있는 우리의 여건을 둘러보게 되었고 당면한 우리 연극인의 무거운 과제해결과 편협한 의식세계에서의 탈출을 위한 숨구멍으로서 같이 나누어 보고 싶었던 체험으로 아쉬워한다.
■ 이선옥씨 미국서 한국무용지도
하비타 국제회의에서 한국무용을 보여 주어 절찬을 받은 이선옥씨는 재미무용가로서 작년 8월(1일∼2일)에는 본원지원으로 국립극장에서「이선옥귀국 신작무용연구발표회」를 가진바 있다. 얼마전 본원에 알려온 서신에 의하면 6월7일의 하비타 공연장면이 CBS카나다 T. V에 의해 녹화촬영 되어 이것이 세계각국으로 보내질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씨는 그가 가르치고 있는 뉴욕의 School of Performing Arts 졸업반 무용발표회 (6월3일∼5일)에서 우리나라의 「궁중무」를 지도 발표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