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새 문화의 장·국전 개선과 공연법 개정

미술 정책의 대담한 방향 전환




오광수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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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6일자 각 일간 지상엔 문공부 장관의 국전 개혁이 일제 보도되었다. 개혁의 주요 내용은 1. 신인 공모전과 기성 작가 초대전의 분리 개최, 2. 건축과 사진 부문의 제외, 3. 동·서양화·조각에서의 구상, 추상 계열 분리의 통합, 4. 심사 방법의 합리적인 개선, 5. 시상제의 매입상으로서의 일원화 등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용되어왔던 「대한민국 미술전람회」를 버리고, 신인 공모전은 「대한민국 미술대전」으로, 기성 초대전은 「현대미술초대전」으로 개칭한다는 것이었다. 이 개혁안은 지금까지 수 차례에 걸쳐 단행해 왔던 국전의 제도와 운영의 부분적인 개혁에 비한다면 보다 근원적인 수술이라는 점에 우선 주목하게 된다. 체제의 변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체제로서의 국전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체제의 전시가 출범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명칭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신인 공모와 기성 작가의 전시를 분리했다는데서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모든 제도적 기득권을 인정치 않음에서 새롭게 출범하는 미술대전은 국전과는 하등의 인습적 관계도 가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드디어 국전의 시대는 그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1949년 그 1회를 연 이후, 6·25 동란으로 3년간의 공백을 빼고는 해마다 열려온 국전, 81년에 30회를 맞은 국전은 비교적 장수를 누려온 셈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국전 30년을 되돌아보고 그 공과를 논한 바 있어, 여기서는 그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기로 한다. 단지 국전이 30년 동안 우리 미술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잠깐 언급하고 넘어갈까 한다.

국전이 창설된 49년은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모든 부문에서의 질서와 정비가 요구되었던 시기로, 국전도 크게는 미술계의 질서 회복과 정비란 사회적 명분과 시대적 배경에서 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좌우대립을 통한 미술계의 분열과 대립적 양상을 타개하고 창작 본연의 분위기 조성이 절실했던 시기로, 국전의 출범은 적어도 이 같은 시대적 사명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50년대에서도 국전은 미술계 분열의 또 하나 발판이 되기 했지만, 미술의 사회적 인식이 낮았을 뿐 아니라 미술계의 구조가 단순했기 때문에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과소 평가될 수 없었다. 그러나 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른바 현대미술 운동이 활발히 전개될 무렵부터 국전은 점차 그 방향을 잃어가기 시작했으며, 그것의 존재 가치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국전이 담당했던 초기적인 역할이 끝났을 뿐 아니라, 미술계의 구조가 훨씬 다층화 되었음을 반영한 것이다.

60년대 이후 국전은 하나의 연례 행사에 불과했으며, 적어도 한국 미술의 방향엔 어떤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구차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관의 미술 정책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미술 정책은 1년에 한 번 국전을 치름으로써 끝나는 것처럼 인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계의 구조는 엄청나게 복잡한 구성 요인과 색채로 짜여졌으며, 그것은 국전이란 체제 속에 포괄하기에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지 오래였다. 그 동안 국전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한 주장은 물론 단편적으로 국전을 통한 온갖 비리와 모순이 한국 미술의 발전에 우려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론 한국 미술을 국전이란 좁은 영역 속에 가두어둠으로써 일어나는 체제의 포화 상태가 주는 미술의 구조적 파괴가 심각한 현상으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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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공모전과 기성 작가 초대의 이원적 방식을 벗어나 신인 공모전이란 단일 기능만을 살렸다는 것은 이상의 사실을 감안한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기성 작가 초대로 따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차원 높은 초대 형식으로 수용한다고 한 것도, 지금까지의 체제 속에서 저질러졌던 기성 권위의 행동을 불식하자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개혁 가운데 가장 환영할 만한 부분이 바로 추천, 초대 작가의 폐지였다는 점은, 그러한 제도가 준 불구적 양상이 얼마나 우리 미술계, 나아가 사회의 암적 요인이었던가를 체험해 왔기 때문에서이다.

어떤 근거에서인지는 모르나 듣건대 추천은 석사 과정을, 초대는 박사 과정을 거친 것으로 통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그것이 어떻게 비교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추천이나 초대를 바로 그러한 학위처럼 생각하였으며 그것으로서 작가의 계층을 구분하려고 하였다.

추천 작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작가가 일단 그 관문을 통과하면 갑자기 창작열이 식어지거나, 초대 작가, 심사위원이 되면 터무니없이 작품 값을 올리는 따위의 행위는 바로 이 계층적 구조가 우리 사회에 그대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학에서 교수를 초빙할 때 국전 추천 작가냐 초대 작가냐를 따지고, 그림을 사러오는 고객들이 그림의 내용을 떠나 우선 추천, 초대냐를 따지는 사회적 영향의 심각함을 말해주는 부분들이다. 그만큼 국전이 우리나라 미술 속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의 전시 기구가 아니라 국전 속에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이 생각해온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그만큼 국전이 비대해졌으며 그러한 비대한 점을 일부 작가들이 역으로 이용해 온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기성 작가 초대전이 신인 공모전에서 분리됨으로써, 그리고 종전의 추천, 초대의 제도를 폐지함은 물론, 그것이 결코 어떤 기득권으로서도 작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창작 풍토의 신선한 국면을 열어 보이고 있다. 미술에서의 일종의 계급을 타파했을 뿐 아니라 예술은 적어도 그러한 계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유로운 정신의 산물이란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좋은 작가와 나쁜 작가, 수준의 작가와 미달의 작가를 구분하는 양식만이 남아 있다. 좋은 작가는 얼마든지 인정받을 수 있으며, 과거에 아무리 많은 활동을 하였어도 현재 작품이 나쁘면 도태되기 마련인, 어떻게 보면 냉혹한 예술 사회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이른바 과거의 영광으로 오늘을 살아가려는 유한 예술가들의 존재는 이제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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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사진의 제외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논의되어온 부분이다. 국전은 순수미술(회화조각)만으로 하자는 논의가 있어왔다. 그리고 다른 분야는 그 분야대로 독자적인 전시 체제를 만들자는 제안들이 있어 왔다. 우리나라처럼 모든 부문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전시는 어디서고 찾을 수 없다. 과거 선전(鮮展)의 유습일 뿐이다. 순수미술과 다른 분야를 분리했을 때 그만큼 다른 분야는 인기가 없다는 것이, 분리를 반대해 온 주요 요인이었다. 이는 국전이 국가가 주관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율 능력이 없는 상당수 작가들의 안이한 의식과 마찬가지로 남에게 기대어서야만 그 존재가 지탱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심한 태도이다.

건축과 사진의 분리는 우선 무엇보다 이 분야의 자율적인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로 받아들여진다. 회화나 조작과 같이 건축이, 또는 사진이 있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오히려 회화나 조각과 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고유한 장르 의식을 한껏 펴보지 못한 일면도 있다.

이 기회에 서예나 공예를 따로 분리하지 않은 건 이상하다. 회화나 조각 속에 곁들여 있을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적어도 한 전시 체제 속에 전 미술 분야를 포괄한다는 종합적인 성격은 이젠 전시대적 유물이다. 장르별의 발전양상이 눈부신 오늘날, 종합적인 체제 속에 갇히기를 원하는 생각은 지나치게 안일한, 어떤 면에선 비굴한 공존의식에 다름 아니다.

회화와 조각에서의 구상과 추상의 통합은 현실성을 감안한 극히 일시적 분리 실시였다는 점에서, 그 통합은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즉 구상에 비해 추상이 지나친 열세에 놓여 있었을 때는 자기보호를 위해 그러한 방법을 강구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구상과 추상으로 편리하게 이분되던 시대에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분류자체가 얼마만한 자기 모순을 초래했는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분류 당시에도 구상도 추상도 아닌 작품, 이른바 중간 계열은 어디에 속하는가에 대해 논의가 없지 않았다. 물론 당시는 그것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넘어갈 수 있었으나 점차 다양한 경향과 양식의 분파 작용 내지는 조형의식의 확산으로 인해 오는 풍부한 구조의 형성은 도저히 구상 추상 이분법으로는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출품자 가운데는 상당수가 자신의 경향을 어느 쪽에 출품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심사과정에서도 이것은 구상으로 보내야 한다 추상으로 보내야 한다는 식으로 시비를 벌였던 웃지 못할 사태가 빚어진 적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이분법은 단순히 국전 제도의 모순으로만 그치지는 않았다. 국전이 시행하고 있으니까 그것을 정당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이 가장 올바른 분류 방법인 양 생각한, 바로 그러한 영향이 한국미술의 불구적 양상을 더욱 부채질한 결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공연히 구상 작가다 추상 작가다라고 말해지고 있는 이 단순 논리가 얼마나 우리들의 풍부한 의식의 전개를 방해해 왔는가.

심사 방법의 합리적인 개선의 골자는 심사과정 일체를 공개하여 시행한다는 것으로, 종전의 공개 심사 방법을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상제도에서의 매입상은 이미 국제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제도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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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 개혁안이 발표되자 대체로 미술계의 반응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시의(時宜)에 적합한 단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의 대전이나 초대전 행방에 대해 자못 궁금증을 드러내놓았다. 특히 초대전의 경우, 과거의 추천, 초대 작가에 대한 대우 문제, 그리고 재야 작가의 영입 문제 등에 대해 촉수를 세웠다.

원칙적으로 기존 추천, 초대의 기득권을 인정치 않는다는 점에서 과거의 국전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새로운 전시 체제임을 얼마나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없지 않다. 오랫동안 젖어온 이른바 국전의 권의 의식이 하루아침에 없어질리 없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새로운 초대전이 가장 권위 있는 전시로서 체제를 갖추자면 그만큼 작가 선정의 엄격성이 따라야함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국전이란 보호막 속에서 성장해온 많은 작가들이 얼마만큼 비평 의식을 받아들 일 수 있을까 생각한다면, 적지 않은 진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신인 공모전의 경우, 가장 말썽이 되어온 것은 심사 부분이었다. 특히 최근의 수상에 대해선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심사위원의 양식의 문제가 항시 거론되어 왔지만, 양식에 앞서 눈이 문제가 된다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제대로 작품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작품을 선별한다는 것은 이만저만 위험한 일이 아니다. 신인 발굴의 전시목록 자체를 뒤흔들어 놓는 일이다.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그 내용이 갑자기 달라지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아무래도 점진적인 내용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과거의 의식을 벗어나느냐에 관건이 달려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새 푸대에는 새 술을 넣을 줄 아는 상식이 갖추어져야 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