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박수길(朴秀吉) / 성심여대 교수
해마다 한 해가 저무는 막바지가 되면 우리는 지난해를 돌이켜 보면서 또 새롭게 맞을 해를 위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곤 한다. 항상 지나간 해는 다사다난했고 또 많은 사건들이 있었음을 느끼게 된다.
금년 한 해 우리 연주계의 가장 큰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일은 국립극장 산하의 국립교향악단이 한국방송공사(KBS)의 산하로 옮기면서 이름도 KBS 교향악단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오랫동안 상임지휘자 자리를 맡아 왔던 홍연택씨가 그 자리를 물러난 사건이다.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교향악단을 키운다는 계획아래 진행된 교향악단 이관 작업은 많은 이야기를 남기면서 착실히 진행되었고 음악감독을 두는 운영 체제를 도입하여 서울 음대 교수며 평론가인 이강숙씨가 교향악단의 감독을 맞게 되었고 독일에서 새로운 지휘자를 초청하고 또한 전 단원의 오디션이라는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으면서 한 해를 넘기고 있다. 여기서 생각되어지는 것은 서울의 양대 교향악단인 KBS 교향악단과 시립교향악단의 관계이다. KBS 교향악단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보다 나은 대우에 기대를 걸고 체제가 바뀌고 있지만 같은 위치에서 발전해온 서울 시립교향악단의 대우문제는 어떻게 해결될까 하는 문제가 남겨 있다. 이상하리 만치 요지부동한 자세로 연주에 전념하고 있는 서울시향의 자세에 호감을 가지면서도 만일 KBS 교향악단과 비교해서 많은 차이의 대우가 실시된다면 서울시향 단원들 사이에서 어떤 불만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오페라계는 별로 괄목한 만한 활동이 없이 봄 시즌에 세 편, 가을 시즌에는 단 한편이 무대에 올려짐으로서 작년의 수준에 머물었지만 오페라 연주와는 직접 관계는 없지만 조금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월초에 막을 올렸던 서울 오페라단의 「라보엠」 공연 바로 전에 단장인 김봉임씨가 신문지상에 입시생에게 과외지도를 비밀리에 행한 교수로 보도되는 불상사가 있었다. 1980년에 실시된 과외공부 즉 개인지도의 금지에 따라 대학을 눈앞에 둔 입시생 뿐만 아니라 현재 재학하고 있는 학생들도 학교에서 지정된 레슨 이외에는 과외도 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전임강사 이상)도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학생 이외의 학생을 가르쳐서는 안되게 되었다. 이러한 문교부의 제도는 모든 다른 분야(일반과목, 영어, 수학 등)에서 대단히 환영을 받고 또 성공적인 제도로 받아들여지고 과외로 인한 부조리를 없애는 제1보가 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예술 분야, 특히 예술적인 기능을 전수해야 되는 분야에서는 약간의 문제가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예술 분야의 입시생은 둘째로 치더라도 첫째로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 교수와 좀 더 많은 공부를 하려고 할 때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심지어는 자신이 가야 할 예술의 길까지 포기하게 되는 사례를 종종 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영구적인 제도는 아니겠지만 하루 빨리 제도적인 모순이 시정되기를 모든 예술인들은 고대하고 있는 줄 안다. 어쨌든 서울오페라단 단장 김봉임씨가 이러한 제도를 어겼다는 것으로 신문지상에 보도되자 많은 음악인들은 그가 오페라계에 바친 그간의 공적을 참작하여 그의 구제를 탄원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한 번 크게 기사화 한 사건이라서 본인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로 인해서 서울 오페라단의 가을공연도 계획되지 못함으로서 오페라인들에게는 하나의 무대를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70년대 초, 그러니까 약 10여년 전부터 붐을 이뤄온 「가곡의 밤」이라는 연주회는 우리 가곡을 일반 대중에게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으며 또한 가곡팬이라는 음악팬들이 생기게까지 되었다.
특별히 이러한 가곡의 붐으로 인해서 테너 엄정행은 대중가수에 못지 않는 굉장한 인기를 누리는 성악가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가곡의 붐은 많은 단체의 연례 행사로서 가곡의 밤이라는 연주회가 실시되었는데 특히 한국방송공사(KBS)와 문화방송(MBC), 두 방송국이 주최하는 가곡의 밤 연주회가 가장 피크를 이루는 음악회가 되었고 매년 입장권이 매진되는 현상을 보였다. 봄 시즌에는 KBS에서 가곡의 밤을 개최하고 이어서 지방의 대도시를 순회하는 전국적인 행사로 실시되었고, 가을 시즌에는 가장 인기 있는 음악회로서 MBC의 가곡의 밤이 꼽히곤 했다. 따라서 두 방송국의 가곡의 밤 출연자들은 대체적으로 현재 국내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성악가들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금년에 불행하게도 두 방송국의 「가곡의 밤」 행사가 모두 가을 시즌에, 그것도 5일 간격을 두고 실시하게 됨으로 해서 신문지상을 통해 화제가 된 한 가지 사건을 낳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동시에 같은 성질의 음악회를 개최하려고 보니 각 방송국의 실무 담당자들은 서로 출연자 확보에 안간힘을 쓰게 되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불미스런 이야기가 오고 가고 심지어는 음악가를 크게 모독하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자 양쪽 방송국으로부터 교섭을 받았던 몇 성악가들이 출연을 보이코트하는 사태까지 발전했고 이것이 신문지상에 발표되고 또 화제가 되었다.
좋은 행사를 치르려는 각 방송국 사업부의 과열된 의욕으로 인해서 벌어졌던 이 사건은 가곡의 밤이라는 연주회의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했으며 흥미위주, 행사위주 음악회를 지양하고 진정 한국가곡의 예술성을 찾고 알리는 음악회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여론을 남기기도 했다.
이 해를 넘기는 막바지에 또 하나의 큰 사건이 신문지상을 통해 벌어졌는데 국립합창단의 단원과 지휘자 사이의 대화 단절로 인한 심각한 대립이었다. 국립합창단은 지휘자 나영수씨를 맞아 창단 이후 한국 합창 음악의 최고봉으로 자처하면서 또한 많은 음악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해 왔다. 외국에서 내한하여 국립합창단과 같이 음악 작업을 했던 많은 외국의 음악 관련자들도 국립합창단이 세계적 수준의 합창단이라는 격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음악인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은 지휘자 나영수씨의 공로가 컸음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국립합창단이 분열되는 사건 또한 국립합창단을 아끼는 많은 음악가 및 음악 애호가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문제의 발단은 단원의 오디션에 관한 문제가 잘못 전달된 데에서 있었다고 알려졌으며 오디션 실시로 많은 기성 단원을 제명한다는 소문이 단원들의 신경을 자극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지휘자 사퇴까지 요구하는 사태까지 발전해 왔다.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에 어떠한 깊은 감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러한 사건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모든 문제는 대화를 통해 내부에서 해결했어야 할 문제였다고 많은 음악가들, 그리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지휘자의 부당한 독주는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단원들과 음악적인 문제까지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더 생각해야 될 일은 단원 하나 하나의 개체도 이미 작업 음악인이며 그들도 당연히 자신의 음악 활동에 대한 책임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휘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음악적 작업은 감정적인 것을 떠나서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음악인 및 음악 애호가들의 기대가 무너지지 않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것을 바라면서 해를 넘기고 있다.
한국 음악계에는 2개의 음악 전문잡지가 있는데 한 잡지의 12월호에 송년 대기획으로 독자가 본 81년 연주자 평점이란 기사를 대대적으로 취급하였다. 기사 내용은 대체적으로 독창회나 독주회를 가졌던 연주가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연주를 간단히 평을 하고 「수, 우, 미, 양, 가」로 등급을 매겨서 채점을 하고 덧붙여서 상승세(▲), 하락세(▼), 평년수준(■)으로 평가하는 평론 기사를 실었다. 이러한 평론의 대상이 된 연주가 및 이 기사를 읽는 음악가들의 맘은 한 마디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심정이었을 줄 안다. 음악계를 대변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 대중에게 클래식 음악의 정류(正流)를 인식시키며 올바른 음악관을 심어주어야 할 음악잡지가 도리어 일반 독자들에게 큰 오류를 전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한심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예술은 전투시합 같은 운동경기가 아니며 세계 챔피언, 세계 1위 등의 등급으로 구분 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님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한 사람의 연주가가 일정한 교육을 거쳐서 음악적인 기량과 예술성을 습득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한 연주가의 모습으로 청중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전문 연주가로서의 자신의 예술을 표현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될 것이다. 연주가 좋았다, 나빴다. 또는 어떤 곡, 어떤 면에서 좋았지만 어느 부분은 기량이 부족했다던가 하는 것은 그 연주를 듣는 청중들도 나름대로 평을 할 수 있는 문제이고 더구나 평론가들이 지면을 통해서 평을 하는 것은 당연한 문제이다. 그러나 그 연주가 수, 우, 미, 양, 가의 점수 또한 오름세, 하락세 등으로 어디에 속한다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은 예술 세계에 입문하는 초보자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연주가는 자기 나름대로의 긍지를 갖고 자신의 예술 활동을 무대 위에서 표현한다. 기량이 뛰어난 연주가, 조금 부족한 연주가, 모두가 자신의 예술에 대한 긍지가 있기 때문에 그들은 쉬지 않고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긍지가 무너질 때에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고 심지어는 생을 포기하는 문제까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긍지를 수우미양가라는 점수로 등급을 매겨서 기사화 했다는 일을 어떻게 받아 들여서 어떻게 해결을 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항상 초연한 자세로 자신의 일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을 외면하여 왔던 우리 음악가들도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선 새로 맞이하는 1982년에는 서로 힘을 합치고 음악인 서로의 대화를 통해서 화합을 이루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위에서 몇 가지 아름답지 못한 사건들을 꼽아 보았지만 이러한 가운데서도 의욕적이고 희망적인 연주가들의 활동이 있었다. 현재 미국의 크리브랜드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곽승씨가 대한민국 음악제의 개막 연주를 위해 내한하여 베토벤 제9번 교향곡을 지휘하여 세계적인 악단에서 활동하는 그의 면모를 과시했으며 성악가로서 소프라노 몇 명이 귀국하여 오페라 무대에 선을 보였는데 특히 이정애, 송광선, 김영미는 뛰어난 소리와 기량을 보임으로써 젊은 성악가가 많지 않은 오페라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또한 김영미, 송관선은 현재 세계적인 테너로서 활동하고 있는 루치아노 파바롤티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큰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외에도 외국에서 연구를 마치고 돌아온 몇 연구가들이 있는데 지휘자 박은성, 조서연, 배정삼씨 등이 있으며 성악가로서 소프라노 곽신형, 메조 소프라노 강화자, 테너 정광씨 등이 있는데 앞으로 국내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기대해 본다. 또한 이미 연주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연주가들의 활동도 활발했는데 성악 분야에서는 안형일, 이규도, 박성원, 김성길 등이 오페라 무대에서, 신영조, 엄정행, 박순복 등이 일반 연주회의 무대에서 많은 활동을 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첼리스트 나덕성, 피아니스트 이경숙, 박정윤씨 등이 좋은 연주를 들려줌으로서 중견 연주가로서의 발전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외에도 많은 젊은 연주가들의 의욕에 찬 연주가 있었음은 우리 연주계의 장래가 밝음을 말해 주고 있다고 보겠다. 연주가들의 피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정부 차원에서 결정되는 적극적인 문화정책을 배경으로 활발하게 연구하고 연주하는 가운데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