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의 전망과 흐름 . 전통

현장을 통해 본 농악의 특징과 전승문제




정병호 / 중앙대 교수

1.

우리가 흔히 축제니 마당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예외가 없이 거론 되어온 것이 탈춤(가면극)이었다. 따라서 탈춤은 12지역의 놀이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이후부터는 마당놀이의 대표적인 연희가 되었으며 대학생들의 축제에도 으레히 탈놀이가 연기되곤 하였다.

그러나 농악에 대하여는 그리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탈춤에 비하면 훨씬 민중적인 놀이이기에 옛날의 농악은 한국 전지역에 걸쳐서 마을의 민속놀이로서 신앙과 결부되어 축제의 마당놀이로 존립을 해온 것이다.

이렇게 농악이 온 마을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그것이 정신적 협화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인 마을풍속과 결부되어 있고 형식적인 면에서는 그 놀이적 구조가 흥겨운 가락을 연주하면서 직접 춤을 추고 놀 수 있기 때문이다(약 4만종으로 추산된 세계 여러나라 민속춤 가운데서 농악처럼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면서 춤추는 것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점 농악은 우리민족의 자랑이 아닐 수가 없다).

따라서 농악은 우리 민족의 인생관과 미의식에서 원시예능의 특징은 타악기 연주가 리드미컬하고 그 리듬은 춤을 추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할 때 농악은 그 역사가 원시예능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이러한 타음무, 즉 농악은 인간의 생명력을 약동시키는 역할과 그것이 더욱 풍요한 생산을 기리는 의식의 자리로까지 확대되면서 토착신앙과 두레제도에 영향받아 한층 발전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농악은 한편으로는 농군과 의병에 이르기까지 민중의식에 바탕한 행진무용(진풀이)이었을 뿐만 아니라 마을사람들의 단합생활과도 필요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농악을 오늘의 사회에 정착시켜서 전승해야 한다는 것은 민족정신(다수인의 최고이상)의 정립과 그 정기를 찾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며 또한 농악은 이어받아야 할 민족성 가운데 밝고 값진 협화의식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농악은 애석하게도 도시나 농촌의 현장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므로 여기에 대한 보존과 활성화문제는 적어도 민족문화의 계승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시급한 당면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2.

다행히도 문화재관리국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하여 2년전부터 전국적으로 농악전승의 실태조사를 하게 되었고, 그 덕택으로 본인은 마을농악의 현장, 14개 지역을 돌아다닐 수가 있었다.

따라서 본인은 이러한 지역의 농악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농악의 특징과 전승문제를 언급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농악은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정원보름달은 「당굿」과 「샘굿」, 그리고 「지신밟기(마당밟기)」등의 토착신앙적 내용의 굿이 있다. 말하자면 「당굿」은 신을 맞이하여 마을의 무사와 번영을 위하여 기원드리게 되는데 이때 당에 내린 신은 신대 (성황기, 농기, 영기 등은 신대의 역할을 한다)로 받아 길놀이를 하면서 마을로 돌아와 공동우물에 가서 「샘굿」을 하여 축원하고 이어서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면서 이른바 「지신밟기(마당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먼저 「문굿」을 한 다음 「성주풀이」「마루고사」「조왕굿」「장동굿」「용왕굿」「두지굿」「마구간굿」「변소굿」「방아간굿」등 그 집안의 무사를 위하여 가신께 인사드리고 잡귀는 대접하여 물러가도록 하는 굿을 하게 되는데 이 때 농기나 영기는 신이 점지하고 있기 때문에 마당에 꽂고 술을 바치게 되는데 만일 기를 땅에 떨어뜨리게 되는 경우 다시 당에 가서 신을 받아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농악은 지방에 따라 명절날인 정월달의 「줄굿」「5월단오굿」「칠월백중굿」「추석굿」등도 마을의 친목을 위하여 행하고 있으며 또한 마을에 따라 부락과 부락의 농악대가 서로 합하여 치는 「합굿」「기세배굿」이 있고 논매기를 할 때 행하는 「두레농악」이 있으며 비를 내리게 하는 「기우제굿」과 10월에는 마을의 무사를 비는 「당산굿」을 하는 것도 있고 또한 전라도지방에서는 섣달그믐날 잡귀를 몰아내는 「매굿」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판굿」이라 하는 것은 이러한 행사 때 수시로 하는 것으로 농악을 잘하는 사람들이 단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우수한 기량을 보이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농악의 유형을 보면 크게 나누어 「경기음악」과 태백산맥 동쪽 「영동농악」 (강원) 「영남농악」호남의 「우도농악」과 「충북농악」은 「경기농악」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충남농악」과 경상도 서남지방의 농악은 「호남농악」과 교류가 있는 듯하다.

3.

농악의 양식은 음악적형식과 무용적형식, 그리고 연극적형식도 포함된다.

음악적형식에 있어서 기본악기는 사물(꽹가리, 징, 장고, 북)이라 하는데 농악은 이러한 4가지의 악기합주를 통하여 소리는 가중케 하는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음이 하나로 이어질 때 더욱 흥겨운 음악이 꾸며지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그 형식이 「다양에서 통일로 결함」이라 할 수 있다.

농악의 기본박자는 3분박의 4분자라 하며 장단(채나 마치)의 기본은 「굿거리」와 「덩덕궁」(자진모리) 그리고 「다드래기」(휘모리)라 한다.

그러나 농악은 지방에 따라 특수박이 있는 것이다. 예로서 「외가락」(한 가락만을 반복하는 것)과 「암채 숫채가락」(2박의 반복) 그리고 「느린가락에서 점차 빨라지는 가락」과 「내드림과 맺고 푸는 가락」(단순한 가락을 냈다가 달고 가서 조이고 가락을 뒤집었다가 맺고 푸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박에서 「외가락」과 「암채 숫채가락」「느린가락에서 점차 빨라지는 가락」등은 한국전지역에서 치는 가락이라 할 수 있으나 「내드림과 맺고 푸는 가락」은 대체적으로 호남지방에서 쓰이고 있기 때문에 가락이 다양하다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전라도농악은 꽹과리와 장고(잔가락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주축으로 하여 잔가락을 만들어 줌으로써 음악적으로 다양하며 따라서 춤사위도 즉흥적인 다양성을 지닌다. 그러나 타지방의 농악, 특히 「영남농악」과 같은 것은 징과 북이 가락의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 음악적 특징이라 하겠다.

농악연주에 있어서 상쇠의 역할은 ①가락을 짜는 일 ②다음가락으로 넘어가는 것을 안배하는 일 ③가락을 맺고 푸는 일 ④농악진행을 지휘하는 일 등인데 유능한 상쇠는 자작가락도 만드는 데 반하여 「두레농악」에서는 기본가락만을 연주하는 것이 특색이라 하겠다.

부쇠와 종쇠의 역할은 ①상쇠와 품앗이하는 일 ②상쇠의 가락을 받아 연주하는 일 ③상쇠가 부포놀이나 진행을 지휘하는 경우 쇠가락을 대행해서 잡가락을 쳐준다.

징의 역할은 ①주박을 치는 일 ②장단을 맺어준 역할 ③흥을 돋우는 일 등이며, 장고의 역할은 ①꽹가리처럼 작은 가락을 만들어주는 일 ②꽹가리와 품앗이 하는 일 등을 하며 또한 북의 역할은 ①주박을 쳐주며 ②흥을 돋우는 일 등을 하고, 소고의 역할은 음악적 기능과 춤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또한 농악에는 노래굿이 있는데 이러한 놀이는 지신밟기(마당밟기)와 경상도 서남지방의 농악, 그리고 전라도농악의 판굿에 「노래굿」이 있는 것이다.

무용적 형식으로는 악기를 갖지 않고 연희한 무동들의 사위춤이 있는데 경기도 「평택농악」의 무동춤은 이른바 「쩍쩍이춤」(깨끼춤)과 「강릉농악」의 무동춤, 부제농악의 꽃나비(무동)들이 하는 「나비춤」그리고 전라도「진도농악」의 농기(무동)들이 행하는 「상모놀이춤」이 있는데 공통적인 것은 쾌자자락을 쥐고 춤추는 것과 「강릉농악」에서 말한 「단동고리」「상동고리」「평택농악」에서 말한 「외동타기」「곡마당」「맛동리」「동고리」등과 같은 무등타기 춤이 있는 것이다.

상쇠의 춤 부포놀음에 있어서 경기농악은 「외사」「양사」「찍임상」(앞뒤로 꺾으는 동작)이 있으며 강원도 농악에는 「외사」「양사」「꼭두상모」(앞뒤로 꺾으는 동작)가 있는 충청농악에는 「외사」「양사」「세마치」(앞뒤로 꺾어내리는 동작) 영남농악에는 「외사」「양사」「우물놀이」(앞뒤로 꺾으는 동작) 등 대체적으로 3가지의 종류가 있으나 호남농악에는 「외사」「양사」「사사」등 기본적인 것 이외에도 응용동작인 「전조시」「배미르기」「돗대치기」「좌우치기」「이슬털이」「퍼넘기기」「연봉놀이」「복판치기」「용개상모」「산치기」등 다양한 움직임을 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말한 가락이 맺고 푸는 잔가락이 많기 때문이다.

소고춤은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것은 소고의 앞 뒷면을 번갈아가며 치는 것과 소고를 밑에서 위로 올려 소고를 꼬아서 가슴앞에 가져오는 동작이 있으며 원무하는 「명풍대」와 「자반뒤집기」등이 있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독특한 사위춤이 있다. 즉 평택농악은 「말법고」「엎어백이」「삼채법고」「칠채법고」「마당일채자락」등이 있고 전라도농악에는 「물푸기」「사채와 사사」「나비상」「두루지리」「맺는 상」「지게 북」「앉는상(안질상)」「가래들고 앉은상」「나비상」등이 그것이다.

설장고춤은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판굿」의 개인놀이(구정놀이)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중에서 호남농악 특히 전북농악의 설장고는 그 춤이 한결 돋보인다. 예로서 「숙바더듬」「고갈더듬」「통돌림」「채밖음치기」「사채」「궁굴채 던지기」「접시돌리기」「태돌림」「발림」「학걸음」등이 그것이다.

북춤은 두레농악에서는 「모방고」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모내기를 할 때와 「판굿」에서 연희하고 있다. 그러나 북춤은 대체적으로 경상도형과 전라도형 등 2가지 유형이 있는 것이다.葡 경상도 북춤은 덧배기가락에 철저하게 원박에 맞추어 북판과 북통을 번갈아 치면서 남성적인 배김새춤을 추는 것이며 전라도 북춤은 북판과 북통을 번갈아 치면서 유연스럽게 잔가락을 만들어 춤추는 것이다.

이밖에도 춤은 잡색들의 허튼춤이 있으며 「진풀이춤」(행진무용)은 어느 지방을 막론하고 멍석말이(나선무용)와 원무, 그리고 태극무늬형과 3,4,5 방연과 같은 나선행진무용이 있는 것이다.

연극적 형식으로는 강릉농악을 비롯하여 영남의 청도, 고산, 무안, 부산아미농악 등에서 나오는 「농사굿」을 들 수가 있다. 즉 가락에 맞추어 「씨뿌리기」「모찌기」「모내기」「김매기」「벼베기」「타작」「벼끌어 모으기」「풍로부치기」등의 농경적 모의 동작을 위주로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농악대를 따라다니면서 노는 이른바 「대포수」「각시」「조리중」「신랑」「양반」과 같은 잡색들의 연희가 있다.

그러나 호남지망의 잡색들이 노는 형식이 한층 구체적이고 배역도 다양하며 또한 지방에 따라서 가면도 착용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경남 서남지방도 있는 경우가 있다). 예로서 경광농악에서는 「포수」(중계역)「양반」「찬봉」(공술을 좋아한다) 「창부」(중계하는 종)「조리중」(각시를 희롱하는 중) 「비리」(말뚝이 역) 「홍잡삼」(술꾼) 「할미」 「각시」등 모두가 목가면을 쓰고 있으며 진도농악은 「조리중」「포수」「창부」는 가면을 쓰고 무동과 집사는 가면을 쓰지 않으며 화순 한 원천농악은 「각시」만 가면을 쓰고 나머지 「포수」와 「조리중」등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임실 필봉농악은 「창부」만 가면을 쓰고 「대포수」와 「조리중」「양반」「농구」「각시」「화동」들은 가면을 쓰지않고 노는데 이러한 잡색의 놀음은 주로 재담과 무언극적 몸짓으로 표현한다. 한 예로서 「판굿」에 있는 「도둑잽이굿」에서는 상쇠와 「대포수」「창부」등이 영기를 훔친 이야기를 엮어서 연출하는가 하면 「들당산굿」과 「날당산굿」에서는 신을 맞이한 것과 잡귀를 몰아내는 행위를 하고 또한 상쇠가 「창부」의 모자를 영기에 매달고 반역자를 잡은 대목을 연출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잡색은 당초에는 종교적 신체였으리라 추측이 가나, 지금의 잡색은 가면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의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라도지방에는 독자적 가면극이 없고 농악편성의 일부로서 가면놀이가 있는 것은 웬 까닭일까? 아마 전라도는 판소리나 시나위, 들노래, 육자백이 그리고 꽹과리와 장고가락 등 음악이 발달함으로 연극쪽 보다는 음악과 춤에 흥미를 가짐으로써 탈놀이가 퇴화되어 지금은 농악 후미에 따라 다니는 정도로 잔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이와같이 농악의 내용과 양식을 분석하여 본 결과 농악의 원초적인 것은 당에 가서 신대(지금의 농기나 영기)에다 신을 받아 그 신대를 앞세우고 약기를 연주하면서 종교도식으로 보인 나선형(3,4,5방진)의 행진을 하고, 가가호호를 다니면서 축원하는 「지신밟기」를 한 것이라 보아지는데 지금이 농악이 종교적인 것보다는 가무극적 종합예능의 형태가 된 것은 그간 농악이 세시풍속과 밀착되어 마을축제로서도 대성황을 이루었으므로 연주하면서 춤을 추는 형식(악기가 소형임으로)이 발달하게 되어 이른바「판굿」이 성립된 것이며 나아가서는 오락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농악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가 창조되고 민속놀이로서 토착화된 배경에는 종교와 단합과 낙천적인 건강한 생활 등 마을 단위의 공동체적 협화의 정신이 깊게 뿌리 박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4.

농악이 잘 전승되고 있는 마을의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지신밟기」를 하는 마을은 농악이 있다.

정월달에 「당굿」과 「샘굿」을 한 다음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하며 친목을 하고 있다.

② 부락제가 있는 것은 농악이 있다.

당제나 장주제 별신제 탑신제 등 부락(동제) 때 농악을 주축으로 하여 시제함으로 농악이 계승되고 있다.

③ 유지와 청년들의 자각이 있는 마을은 농악이 있다.

농악을 하고 있는 부락을 보면 대체적으로 「농사가 잘 되려면 농악을 열심히 하라」는 선인들의 말을 받들고 있으며 또한 유지들의 이해와 경제적 후원이 있는 곳, 그리고 동장과 새마을 지도자가 농악을 이해하는 곳은 농악이 살고 있다.

④공동단체의 협조가 잘 된 마을은 농악이 성한다.

시, 군, 면과 문화원, 그리고 공공직장에서 협조하여 세시풍속과 결부시켜 육성하고 군이나 면단위의 문화행사에 참여시키거나 농악경연대회를 열어 준 곳은 농악이 토착화되고 있다.

⑤ 농악계가 조직된 마을은 농악이 이어지고 있다. 농악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친목단체를 만들고 때로 연희함으로써 농악이 전승되고 있다.

⑥ 훌륭한 상쇠꾼이 살고 있는 마을은 농악대가 있다.

징, 장고, 북, 소고, 쇠꾼들이 있으면 농악을 할 수 있으나 특히 유능한 상쇠가 있는 마을은 농악편성이 용이함으로 농악대가 있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여건을 갖춘 곳은 농악이 살고 이러한 여건이 조성되지 못한 곳은 농악이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5.

이상 현장을 통해 농악의 내용과 특징, 그리고 전승현황을 알아보았으나 여기서 농악의 전승 문제를 이야기 한다면 본인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하고 싶은 것이다.

①전승방향

농악은 기능상 향토농악(도시농악을 포함)과 예술적 농악 등 두 방향의 모색이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향토농악인 경우 소멸된 지역은 농악의 기본가락과 기본양식을 과학적으로 엮어가면서 복원하면 되고 예술적 농악은 농악의 전통양식이 손상되지 않게 하여 그것을 더욱 미적으로 기능화하면 되리라 본다.

②농악의 생활화

첫째 협동관계가 공공단체와 마을지도자(동장, 반장, 유지, 새마을 지도자)와 농악인(특히 상쇠)의 협조에서 이루어지게 한다.

둘째 마을의 전통적 풍속을 살린다.

셋째 명절날(정월과 추석)에는 농악을 중심으로 축제를 열도록 지도한다.

넷째 마을마다 어떠한 공동체적 집회를 새마을운동화 한다.

다섯째 방송이나 신문 등 매스콤에서 새마을사업처럼 향토 농악을 살리고 있는 성공사례와 실패의 요인 등을 알려준다.

이와 같은 문화운동을 국가적으로 편친다 하면 없어진 부락은 농악이 복원될 수 있고, 힘없이 잔존한 마을농악은 활력을 찾아서 한층 풍요한 마을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들이 오랫동안 이야기 해온 「마을 춤」 즉 마당놀이를 통한 축제의 전승과 전통화도 이룩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