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이해와 보급
이상보 / 국민대 교수
1. 고전의 개념 확립
고전은 단순히 옛날에 쓰여진 글이 아니다. 옛글중에서 오랜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생명력을 지니고 현재까지 내려온 글이 바로 고전이다. 그러므로 낡은 문서를 덮어놓고 고전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옛날 사람이 써 놓은 글이 전부 고전이 될 수는 없다. 특히 고전이 하나의 문예작품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려면 예술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고 문학적 가치를 스스로 입증할 만한 작품만을 우리는 고전작품이라고 규정할 수가 있다. 따라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모든 문헌들을 취사선택의 기준도 없이 막연히 고정이라고 해서 동률로 다루어 왔던 폐습은 벗어나야 한다.
일찍이 한국고전문학사를 서술할 때에 그 대상작품의 선별에 있어 일률적으로 동일한 작품들에 한정하여 언급해 온 사실은 반성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진다. 광복 후 38년이란 시간이 경과하면서도 엄격한 의미에서 고전의 재평가를 시도한 사실이 없었다고 할 만큼 문학사에 반영된 고전작품의 목록은 천편일률적이었다. 광복 후의 국문학 연구는 활발히 전개되어 수많은 고전이 발굴되고 연구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도 쉬임없이 진행되고 있거니와 일단 재발견된 고전작품을 현대에 활용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새로운 자료를 발굴하여 소개하고 고전의 문학성을 규명하고 이것을 다시금 고전문학사에 편입시켜 그 가치를 확인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할 때에 고전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부해지고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한글고전과 한문고전
우리의 고전은 그 표기성에 있어서 이중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서 생활해 온 우리민족의 숙명적인 문학생활에 연유한다. 조선왕조 세종 때에 이르러 비로소 훈민정음 곧 한글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중국의 한자를 빌어서 쓸 수밖에 없었던 문화현상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특히 고전작품을 말할 때에 한자로 표기된 수많은 전적들을 등한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국문학을 규정함에 있어 광의의 국문학과 협의의 국문학으로 이원론을 말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의 국문학에 한문학의 유산을 포함시키고, 좁은 뜻의 국문학으로는 한글작품을 위주로 하되 향찰이나 이두로 적힌 신라의 향가들까지 포함시키는 견해가 일반적인 것이다.
그러나 한글이 있기 이전에 우리 조상들이 영위했던 문학적 의식의 표현인 한문학은 역시 한국문학의 영역에서 자라온 것이지 결코 중국문학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토양에서 한국인의 눈과 입으로 자연을 노래하고 제 생각을 적어 놓았던 것이다. 다만 그것이 오늘날 이른바 한글세대에게는 생소한 것이어서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한문학 작품의 번역이 요청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역사서에서도 그 번역본을 통해 우리는 그것에 담긴 고전적 가치를 이해하게 되며, 선인들의 문집을 번역해 냄으로써 그들의 문학정신에 접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 중에서도 한문학의 지식을 익힘으로써 직접 원전을 독파하고 이해하는 실력을 기른다면 그것은 또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문고전을 그 본래의 모습대로 이해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것은 한글고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15세기의 고전을 쉬운 현대문으로 옮겨놓기 전에는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다. 난삽하고 생소한 점에서는 한문을 대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한글고전이나 한문고전이 똑같이 교육을 통해서 비로소 이해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고전교육의 중요성이야말로 거듭 강조되어 마땅할 일이다.
3. 고전교육의 실제
고전교육은 우선 고전읽기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비단 학교에서 고전을 다룰 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에서 고전을 생활화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고전이 단순히 옛글이 아님을 이미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고전은 바로 현재 살아있는 훌륭한 글임을 깨닫는다면 고전의 재활용이야말로 우리네 생활을 뿌리깊게 살찌우는 일이 될 것이다.
적어도 국민교육을 받은 이면 누구나 민족시라고 할 수 있는 옛시조 백 수 쯤은 외우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일본인들이 와까(和歌)와 하이꾸(排句)를 백 수 쯤 술술 외고 있는 것을 본받자는 것이 아니다. 중국인들이 절구나 율시를 애송하고, 영미나 유럽사람들이 소넷과 담시를 암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의 시를 생활화하자는 것이다. 좀더 고등교육을 받으면 향가 25수와 고려속요 20편 정도에 불과한 그 적은 분량의 고전은 내리 외울 수 있어야 교양인으로 자처할 수 있게끔 고전교육이 되어져야 한다.
또 일상생활 속에서 글을 쓰거나 말할 때에 향가의 한 구절, 고전소설의 한 대목 쯤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고전수필과 평론의 한 두어줄 정도는 현대문에 그대로 인용되는 그러한 문학적 행위가 현대생활에서 자연스레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고전교육의 생활화를 통해서 비로소 한국적 사고방식은 살찌워지고, 한국인의 생활감정이 윤택해 질 수 있다. 자칫 현대인들이 서구문명에 휘말리어 걸핏하면 소크라테스를 인용하고 하이네를 외우며 세익스피어를 흉내내는 버릇이 있거니와 한국의 고전을 현대에 되살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줄리엣의 사랑과 춘향이의 사랑에서 그 구현된 양상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저쪽은 영국이란 토양에서 로미오와 더불어 공연하는 사랑이라면, 이쪽은 한국의 여건 속에서 이몽룡과 더불어 연출되는 사랑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세계의 고전으로 그 값어치가 있다면 춘향전도 가장 한국적인 동시에 세계적인 고전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춘향에게서 발현된 여성의 매운 貞烈을 한국적 특성이라고만 편협하게 말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세계 여성의 구원한 이상형으로 군림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 심청전의 주제인 효성을 보자.
시력상실의 부친을 흑암에서 광명으로 삶의 방향전환을 성취하게 하고자 자신은 광명을 버리고 인당수의 명부로 몸을 던진 것이다. 이른바 살신성인의 윤리로써 효도의 본보기를 보인 것은 만고에 불변하는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할 생활윤리를 고전작품은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4. 고전보급의 과제
고전작품을 널리 보급시키는 데는 대중 매체를 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선 훌륭한 고전을 선정하여 출판하되 값싸고 많은 분량을 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고본에 담아 넓은 독자층에게 제공해 주어야 전통문화의 계승이 바르게 이루어 진다.
또 고전작품의 번역은 정확성을 기해야 한다. 그 원작이 지니고 있는 문학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충실한 번역에 힘써야 한다. 흔히 항간에 범람하는 고전의 현대문 번역본을 보면 지나친 문장의 첨삭이나 오역으로 말미암아 원작의 기본적 가치를 추락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리 현대문으로 고쳐놓았다 할지라도 고전이 원래 가지고 있는 형식의 아름다움이나 내용의 줄거리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가령 옛시조나 가사의 운율을 무시하고 뜻만 통하도록 번역한다면 그것은 고전의 올바른 해석이 될 수 없다. 그러한 율문들은 그대로 어휘와 자수율을 따르되 맞춤법만 고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어려운 단어는 따로 작품해석을 통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고전소설이나 판소리 소설에서도 적용된다. 율문으로 쓰여진 작품은 그 운율을 따르고, 산문으로 쓰여진 것은 그대로 산문체로 옮겨놓아야 원작의 맛이 살 것이다. 그만큼 고전작품이 지니고 있는 형식미는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고전작품의 감상을 통한 민족정기의 진작을 꾀해야 한다. 올바른 감상으로 전통예술을 파악하고, 선인들의 의식세계를 이해함으로써 민족의 시대에 살고 있었던 선인들의 정신적 생활자세를 찾아내고, 그 시대정신을 인식함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예지를 그 속에서 계승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출판 못지 않게 언론의 역할도 큰 것이다. 언론의 광역성을 감안할 때 고전의 일상생활화에 박차를 가하는 기능을 언론이 담당해야 한다. 아직도 전국의 방방곡곡에는 전대부터 물려받은 문화재들이 깊은 광 속에 사장되어 있는 것과 함께 희귀한 고전들이 인멸 직전에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비장된 고전을 발굴하고 널리 소개하는 일은 언론의 힘을 빌지 않을 수 없다. 가끔 신문의 문화면에 미발표자료로서 고전작품이 소개되기는 하지만 보다 더 적극적인 발굴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발굴된 고전은 우선 그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 특히 오래된 목판본이나 필사본은 경인함으로써 직접 그 자료를 연구가들이 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고전의 영인본을 출판하는 데는 한정된 부수에 막대한 경비가 드는 것이므로 대개의 출판사에서는 이를 꺼려한다. 희귀한 고전의 보존과 훌륭한 고전의 보급을 위해서 정부에서 영인본 출판비의 보조를 적극적으로 해줄 필요가 있다. 현대문학의 창작을 지원하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겠으나 그 보다 더 근본적으로 고전을 현대문학에 접맥시켜 주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고전의 올바른 이해와 보급은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에 있어서 그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