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도자기의 미와 멋의 생활화
장상섭 / 한성대 교수
해방과 더불어 굳게 닫혔던 울타리는 헐리고 세계의 바람이 휘몰아쳐 왔으며, 거기에다 이 나라를 잿더미로 만든, 동란은 더욱 서구문명의 바람을 몰로 왔다. 그때부터 우리 나라에는 외국제 물품들이 흔해지기 시작했으며, 점차 외제 물건을 좋아하는 버릇들이 퍼져 나가게 되었다. 우리의 공업수준도 낮은 편이어서 외국의 것에 맞설 만한 것이 만들어지지 못한 것에도 그 원인은 있었던 것이다.
외국의 것을 좋아하는 풍조는 외국제품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화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라디오를 들어도 외국음악이 주가 되고, 많이 방송되지는 않지만, 국악이나 판소리 같은 것이 나와도 듣는이 보다는 꺼버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리고 거리에 붙은 간판만 보아도, 고운 우리말 보다는 무슨 말인지도 모를 외국어로 지은 이름이 더 많았다.
이런 풍조는 외국의 것을 좋아하는데만 그치지 않고, 우리의 전통과 전래되어 오던 풍습에 대한 거부반응으로까지 발전 되었다. 캐캐 묵은 것이라던가, 고리타분하다고 해서, 우리들의 것에서 고개를 돌리려 들었던 것이다. 이런 여파는 일상용어나 신문지상에 외래어가 아무데나 마구 튀어 나오는데까지 이르게 했다.
60년대부터는 우리의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경제상태가 차츰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공업이 발달 돼 가면서 좋은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상황이 우리 것에 눈을 돌리게 되는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 보다는 신문이나 방송이 우리의 것을 찾는 관심을 갖게 하고, 눈을 뜨게 하는데 힘을 기울인 것이 더 큰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우리 역사, 전통, 전래 예술 등이 깊이 연구하고 개발해 오는 데 힘을 기울인 학자나 예술인들의 공로가 깔려있다.
우리의 것을 찾아내고, 계승하고, 그것을 우리 생활 속에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은 미흡한 점도 많지만, 외래문물에만 쏠리던 때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다. 아직도 일본에서 돌아 올 때면, 으레 일본제 밥통을 들고 와야 한다는 밥통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외래문물 숭배자자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일부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다고 하나, 그래도 우리 것을 찾고, 좋아하는 풍조는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60∼70년대의 대학생들 서클 활동에 민속놀이와 같은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해서 이젠 그것이 토대를 잡았다. 그 때의 대학생들이 지금은 사회의 중견층이 되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민속 자료의 발굴을 통해 무형문화재를 지정하고, 민속경연대회를 해마다 열며, 그 발표회가 잦아졌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도, 그것과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런 것을 자주 보고, 들으면서 우리들은 점차 우리 본디 것을 거부하지 않으려 하게 됐고 찾게 됐다. 그리고 그것은 생활에까지 퍼져들었다.
나전칠기의 수요도 늘었다. 그리고 생옻칠을 한 행자목 가구를 찾는 사람들도 차츰 늘어가고 있다. 시골집에 있던 함지박이나 목기, 그리고 길쌈할 때 쓰이던 가구들, 외양간에서 쓰던 것들이 지금은 응접실의 요긴한 장식물로 등장했다. 얼마 전 같으면 귀신 나오겠다고 모두들 외면하던 것들이다.
청자, 분청사기, 백기들이 어느 거리의 상점에서나 흔히 눈에 띄게 됐다. 현재 이것을 만드는 사람과 굽는 가마도 무척 늘어났다. 그 아름다움과 멋을 알게된 사람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그동안 어느집 벽장 속에 둘둘 말려서 쳐박혀 있었거나 다락방 장지문에 발라져서 새카맣게 그을려 있던 그림, 곧 민화가 그 값을 인정받은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지금은 이것이 세계 여러 나라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소장되게 됐다. 그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생기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 집에는 그것이 몇 점씩 걸리기도 한다.
한 때, 현재도 그렇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늘 날 우리 식생활에 육류의 수요가 조금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양사람들 식탁에 비하면, 아주 빈약한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되지 않을 만큼 기름진 음식에 질리는 것도 아니다. 역시 이 버릇도 말하자면 겉멋 때문에 붙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근래에 와서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차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중국에서 들여온 차가 다시 일본으로 전해진 것은 쌀이 흘러 간 길이나, 모든 문화가 들어 간 길과 같다. 조선조 때에는 차를 마시는 풍습이 많이 쇠퇴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 나라의 한 부류의 사람들은 여전히 차를 마셔 왔다. 그러니 차를 찾는 사람은 우리 옛 것의 좋은 점과 풍류의 멋을 되살린 셈이다.
한가지 이해하지 못할 것들은 일본인들의 이른바 다도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스스로 다인 연하는 사람의 태도라 하겠다. 아직도 우리 역사나 기록속에서 옛 사람들이 차를 기르고, 만들고, 달이고, 마시는 법도를 찾아 낼 기회는 많이 있다. 이런 연구가 어느 정도 열매 맺을 때를 기다려서 논해도 될 것을 너무나 성급하게 아는 체를 하는 것이나 아닌가 걱정이다.
우리 차문화를 생활화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너무 서둘다가 본디 것을 망가지게 하는 것은 하지 않음만 같지 않다.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아직도 그 흐름을 학구적으로 더듬어서 제대로 정립하지 않는데 있다. 국적 불명의 차도를 다도를 우리 것인 양 굳히려 하는 경거망동의 여지가 있다. 둘째로는 다기를 만드는데, 그것이 제 모습과 이름과 용도가 바로 되지 않는데 있다.
셋째에 차의 생산에 있어서 그 제조법과 공급에 적지 않는 것들이 있다. 전전에 더러 다원들이 있었으나, 그 생산량은 현재 늘어난 수요를 따르지 못할 정도의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남해안 주변을 중심으로 많은 다원들이 생겨났고, 근래에는 제주도에까지 다원이 생겼으니, 어느 정도 수요량을 공급하게는 됐다고 보여진다.
요즘 정부에서 일반 다방에서도 우리나라 차를 팔도록 했고, 정부 기관에서도 접대용으로 우리 차를 쓰도록 했다. 이것은 차의 생활화를 가속화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차가 일반화 되려면 아직 시간은 요원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차의 참 맛을 아는 것도 그 만큼 늦어질 것이다.
차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 맛을 알고 좋아하게 되었을 때부터라 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차를 제조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차 향기와 맛을 제대로 내게 하려는 정성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수요자가 모른다고 아무렇게나 만들어내면 일반 사람들은 차를 외면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차 값이 너무 비싸다. 어떤 경우에는 차1백그램의 값이 쌀 반 가마니 값을 웃돌기도 한다. 명인이 가진 공을 다 들여서 만든 명차라면, 집한채의 값을 받는다고 한들 비싸다 할 것인가. 그렇지 않는 것을 너무 비싸게 해 놓으면,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불어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차를 생산하는 생산자도 성장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망하기도 할 것이다.
이 경우는 차의 생산과 공급뿐만 아니라 다기에 있어서도 같다. 차를 마시는 것은 우리 옛 도자기로 만든 다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이유가 없다. 다만, 그 멋을 살리는데 더 의의가 있으므로 우리 전래 도자기를 찾는 것이다. 그런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나 아닌가하는 마음이 다기를 사러 갈 때마다 든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목가구나, 옛도자기, 민화 등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 아름다움을 진실로 알게 되도록 사람들의 눈이 떳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금을 던져 그것을 손에 넣으려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생산되지 않는 문화재요, 골동품이기 때문이다. 그 희소가치가 값을 그렇게 올려놓은 것이다. 그것을 비슷하게 모조 했다고 해서 문화재가 되는 것이 아니고, 골동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기를 비롯해서 우리 생활 속에서 쓰여지는 도자기들을, 옛날 전래해 오던 모양과 문양, 그리고 빛깔의 것으로 재현해서, 그 아름다움과 멋을 생활화하려는 사람들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바람직스러운 형상이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가마가 박혀지고, 물래질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일반가정에 깊이 파고 들려면, 우선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만큼의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겠다. 지름에라도 상점에 나와 있는 현대 도자기와 전래 도자기를 재현한 것과의 가격을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것은 도자기를 만들고 굽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우리 전래의 도자기 아름다움과 멋을 모든 사람들 가정 깊숙이 끌어 들이는 것은 그들이 해야 할 일이며 책임이다. 그러한 노력이 모든 가마에서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근거는, 현재 전래 도자기를 재현하고 있는 가마를 두루 다녀 보면 누구나 그렇겠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있다.
거의 모든 가마에서는 가스가마를 쓰고 있다. 이것은 조금이라도 가마에서 구울 때 변색이 되거나 잘못 되는 것을 줄여 보자는 노력일 것이다. 그리고 소나무 장작을 사용할 때의 인건비나 연료비를 줄여 보자는 데 뜻이 있다. 최소한의 돈과 인력을 들여서 이득을 높이자는 경제적인 원리가 동원된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가마에서 나오는 다기로 찻잔 다섯 개와 다주 하나가 담긴 세트가 4∼5만원의 가격을 매겨서 팔리고 있다. 이 가격 때문에 그 도자기의 생활화는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생활화를 늦추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가마를 가진 사람의 이득을 늘이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이 도자기들의 값이 비싸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제작 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수긍이 될 것이다. 전기 물레를 쓰는 곳이 많고, 더러는 현대 도자기 공장에서 쓰는 성형기를 쓰는 곳도 있다. 그리고 가마도 가스 가마여서, 결국은 거기에서 제작되는 것은 바로 현대 도기라 할 수 있고, 제작비도 그것과 같거나, 오히려 더 적게 들기도 한다.
그런데 왜, 그 제품의 값은 그렇게 비싸야 하는가를 일반 수요자들은 묻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아닌 내가 대변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정하지도 않은 인간문화재를 사칭하고 나선 사람들을, 아는 사람 이외에는 모두 그것을 사실로 믿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인간문화재(?)가 만든 작품이 싸서야 되겠느냐는 것이, 터무니없이 값을 비싸게 매긴 이유인 것이다.
현재 다기를 주로 사 가는 외국인은 주로 일본사람들이다. 그것을 판매하고 있는 호텔 매점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가는 일본 사람들도 그들이 인간문화재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문화재라면 그렇게 다작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어디에 가나 지천으로 쌓여 있는 작품을 어떻게 인간문화재라는 이가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데 왜 가격은 그렇게도 비싸냐하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라고 한다.
이렇게 본 사람은 도예가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나라에서 지정한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들은 대개 생활이 어렵다. 그래서 문화재 당국에서 생활 보조를 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작품을 기계화 된 제작 과정으로 대량생산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한 해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의 수는 적을 수밖에 없고, 그러니 작품의 가격은 자연 비싸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자기가 손수 흙을 수비하고, 물레질하며, 거기에 상감을 하거나 조각을 하고, 자기가 박은 가마에서 옛날 방식대로 구워내는 작품이라면, 그것은 기천만원이던, 기백만원이던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작품은 1년에 몇 개밖에 나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인간문화재를 사칭하는 사람들의 가마에서 나오는 도자기들은 현대적 시설을 갖춘 도자기 공장에서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현대 도자기 만드는 제작비로도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올 수가 있다. 비록 상감문이나 박지문 같은 것에도 일일이 사람 손이 가서, 인건비도 더 들 것이지만, 제토 과정은 그 거대한 시설이 필요 없으니, 오히려 싸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전래 도자기를 모든 가정에서 골고루 갖게 해서 그 아름다움과 멋을 즐기게 하는 것은, 그것을 구워 내는 사람들이 애써서 해야 될 일이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도자기들이 필요해질 것이고, 따라서 가마를 가진 사람들도 수입이 늘어 갈 것이다. 그들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거대한 시설을 가진 현대 도자기 회사에서 이 새로운 시장에 눈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