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문화의 새로운 물결과 그 이념적 향방
-82년도의 상황적 변모를 중심으로
김복영 / 강원대 교수·미술평론가
1. 새로운 상황
1982년의 한해에 걸친 우리화단의 상황과 그 가운데에 잠재된 내용을 검토하였을 때 느껴지는 후감은 이 시기가 또 한번의 전환을 향해 치달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제5공화국이라는 정치적 전환에 못지 않게 우리의 미의식도 또한 마땅히 새술을 새부대에 담을 방도를 찾기 위해 일찍이 암중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것만은 마땅한 것이리라.
전환의 징후는 질량의 팽창으로부터 시작해서 양식과 이념의 갈등에 이르는 정신적인 정착에의 요구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질량에 있어서는 해외전과 국제교류전이 빈번하여졌음을 예로 들 수 있고 양식의 변화에 있어서는 드로잉과 판화에의 관심, 그리고 이념의 변화에 있어서는 현실이념이나 그 대상에의 밀착적인 관심이 높아졌음을 예거할 수 있다.
지방화단의 현저한 팽창과 열성적인 발표가 크게 증가하였다는 사실을 통해 미술문화의 지방확산은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확신을 가능케 한다.
현대미술관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미술관과 화랑들이 불황의 여건을 딛고 과거의 어떤 해에도 못지 않게 활동한 것은 그들이 미술문화의 발전을 위해서 활성적인 모색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해외교류를 위해 수차례에 걸친 중요 작가와 작품을 국내로 유치해서 일반에 공개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과거 어느 때 보다도 커다란 규모를 보였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하는 징후이기도 하다.
이하에서 보다 상세한 상황의 검토와 응시를 통해서 생각되는 '82년은 우리의 80년대 미술사의 형성을 위한 아주 분명한 첫발을 내딛고 있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결론은 무엇보다 82년도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미의식의 다양성 내지는 다원성의 특징으로 한다는 관점에서 주장될 수 있다. 과거의 경직일로를 팽팽히 달려오던 국전과 재야라는 평행선은 이미 확실히 사라졌으며 그간의 다소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구시대와 구제도의 사슬에 매어있던 의식들은 점차 풀려지고 작가들은 어느덧 현실의 자유로운 의식과 새로운 진로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 느낌이다. 게다가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는 청년세대들의 활기찬 도전은 새로운 인식의 대두를 촉진할 기세를 가일층 고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 변화의 의미
여기서 일단 82년도의 상황을 편의상 국내와 해외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1) 국내
개인전
언제부터인가 우리 화단은 개인전 보다 그룹전으로 관심을 쏟는 일이 현저해졌다고들 말한다. 개인전에 설령 관심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룹전이나 단체전에 대한 관심과 관련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설사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개인전」의 의의를 강조해야 할 것이고 개인전 본래의 의미―개인의 전모를 보이려고 하는 자아실험의 한 방법으로서―를 드높이는 전시회가 사실상 적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이상 82년도 경향각지를 두루 살펴본 하나의 통계표를 작성한다면 아주 정확한 상황을 진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진흥원이 입수한 자료에 의한 것만 하더라도, 가령 서양화의 경우 무려 70여회에 이르고 있으니 한해의 풍요로움은 해수를 더할수록 짙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능한 한, 이들 개인전들에 대해서 어떠한 논평을 가해 둘 수 있을까?
첫째로 「양식」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기존 취미의 작품으로서 성격이 두드러지는 아주 윗세대와 구상과 비구상이라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관점의 틀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수렴코자 하는 중간세대와 이러한 일체의 기존관념을 떠나서 새로운 시대와 세대의 의식을 찾아나서는 젊은 세대들(연령적으로는 가장 아래 세대들)의 도전이 눈에 크게 띄고 있다. 우선 원로세대의 「기존취미」란 언제나 그러하듯이 우리의 산하에서 느껴지는 자연애에 깊이 물들어져 있으며 이로부터 기존양식인 자연주의의 모습을 계속 추구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구상과 비구상을 의식하면서 「양식」을 추구하는 중견세대들은 일견 안일한 유형을 답습하는 인상을 풍긴다. 이제는 이러한 양식구분이라는 것이 평의에 의한 것일 뿐 무용한 것임에도 이미 60∼70년대를 자기의 「미술철학」으로 삼아 온 애착에 깊이 얽매여 있다는 인상이다. 이에 반해 소위「오늘」의 「의식」을 첨예하게 가꾸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미술을 의식하는 상당수의 중견과 아랫세대들은 그 어느 세대들 보다 「변화」를 근간으로 해서 기동성 있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과거 70년대의 「재야」라는 위축된 이름을 이제는 벗어 던지고 더욱 활발하게 그들 본래의 영역을 신장시키고 있는 바, 이미 그들의 영역 안에서도 다양한 양식의 유형들이 나타나고 있고 이 분야의 진로에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둘째로 이들 개인전의 양상은 크게 의미를 달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양식상 자연애를 고집하는 원로세대들은 미술행위라는 것을 영원한 작가 개인의 취미의 영역에 속하는 특권적인 활동이라는 생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자연에 다가가서 그 자연을 자기의 개성의 전부와 교감시키고 이 교감에서 일어난 감흥을 자연의 사물들의 외관에 결합시켜, 혹은 보다 객관적으로, 아니면 혹은 보다는 주관적으로 묘사하거나 표출해내고자 한다. 그러나 구상과 비구상의 개념을 고수하는 쪽은 미술행위란 것이 다소간 「양식」의 틀을 변형시킬 수도 있고 엄격하게 규정해 볼 수도 있음을 주장해 보인다. 이에 반해 오늘의 의식을 찾아나서는 신세대와 이들을 이끌어 가는 방면의 중견들은 미술행위란 것이 「인간」그 자체의 존재방식을 한치라도 떠나서 존립할 수 없다는 의식의 치열성을 강조한다. 그들은 미술이란 것이 취미나 양식의 부산물일 수가 없고 오히려 인간 본연의 총체적 생산물임을 넌즈시 강조한다. 그래서 때로는 그림이 일상의 사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언어의 집합과 같은 기호물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개념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다 작가의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를 총괄적으로 투사해 넣는 이들의 새로운 이념이 해외의 관례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비난되기도 하고 오늘의 의식을 일단 그러한 방식을 빌려서 충실히 반영하기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요컨대 오늘의 개인전은 일종의 군상과 같은 여러 가지 얼굴을 엿보게 한다. 모두가 미술이라는 얼굴을 내보이고는 있으되 잘 들여다보면 그것은 틀림없는 만물상이다. 이렇게 생긴 얼굴 저렇게 드러내는 인상… 이러한 느낌은 비단 82년도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닐터이나 그러한 인상이 가일층 짙어진 해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러한 다원성의 특징적인 면모가 개인전 뿐만 아니라 그룹전의 여러 표정에서도 여실히 입증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룹전 및 특별기획전
개인전을 떠나서 일단 두 사람 이상이 모여서 갖는 형태의 전시회로 아주 다양해진 면모를 보이고 있다. 종래의 방식대로 작가들이 마음에 맞는대로 몇 사람이 일시 모여 합동전을 여는 경우는 여전하고 여러 미술그룹들이 개최하는 왕성한 연례전시로 풍요의 극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이 중심이 되어 개최한 특별기획전, 아니면 특정 사설미술관의 기획전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룹전 또는 단체전은 가령, 서양화의 경우 줄잡아도 50여회에 이른다. 이른바 이 경우 그룹전 또한 대체로 세 가지 분류가 가능하다. 첫째는 통상 「회원전」으로 불리워진 경우이다. 전국에 산재해 있으면서 연혁이 10년을 넘는 「會」가 상당수에 이르고 이들의 정기 회원전에 수만해도 전체의 그룹·단체전이 3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둘째는 젊은 세대들이 꾸미는 군소 그룹들인 바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전람회의 50%이상을 차지하여 중요한 이슈로서 등장하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매년 증가일로에 있다. 미술인구의 탄생을 줄기차게 시도하는 의욕은 대부분 이들 청년세대들의 활동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2∼3인전을 개최하든가 5인이 넘을 때는 으레히 그룹명칭을 붙여서 의욕을 보이기 위한 많은 노력을 경주하곤 한다. 비교적 활기찬 현대미술운동들 중에서 연혁을 5년∼10년이상이나 갖고 있는 성숙한 그룹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어 현대미술의 벽은 상당히 두터운 편으로 나타난다. 셋째로 최근 미술관의 두드러진 의욕의 일환으로 엮어진 특별기획전은 어느때보다도 돋보이고 있어 개최된 기획전만 해도 전체의 약 10%이상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중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미술관의 눈부신 역할과 전례없는 업적을 이룩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82년도에 기획한 가장 커다란 기획전으로는 무엇보다 「재외작가초대전」(4. 9∼ 27)「한일종이·조형전」(12. 13∼ 27)을 들 수 있을 것이고 서울 미술관의 특별기획으로는 「오늘의 유럽미술전」(4. 24∼ 6. 13)과 「프랑스新具象展」(7. 10∼8. 15)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재외작가초대전」의 경우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황을 파악하되 해외교류하는 높은 차원에서 기획된 중요한 전시회였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참가한 작가들은 모두가 그 지역에 정착하였거나 장단기간 현지유학을 간 사람들로서 다소간 그곳의 문화적 영향이나 충격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고유의식과의 융합을 통해서 조화를 모색하려는 강렬한 흔적을 보여주었다. 한편 「한인·종이조형전」은 약 60명이 한일작가들이 펼치는 종이매체에 의한 대규모 탐색전으로서 한일간의 미술행위의 비교를 시도하고 동시에 국제미술교류를 시도한 큰 규모의 행사였다. 왜 하필「종이」냐 하는 의아심을 갖게도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점증해온 「드로잉」에 대한 관심과 이에서 「종이」의 가능성이 재인식됨에 따른 한일간의 공동기획전으로 시도될 수가 있었다고 믿어진다. 한국고유의 한지와 일본종이의 재질상의 차이로 물론, 종이를 수용하고 거기에다 의식을 투사하는 양국간의 질적 차이를 알아보는 일에 특히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된다.
현대미술관 외에 서울미술관의 눈부신 노력으로 프랑스와 기타 유럽지역의 현대작가들을 국내에 초치할 수 있었던 업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은 후에 「국제교류」에서 재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간략히 약하기로 한다. 서울미술관 이외에도 동산방화랑의 「LA작가전」(9. 17∼3), 신세계미술관의 「근대프랑스명화전」개최는 우리의 미술관 활동이 해외로 시야를 돌린 적극적 의욕의 표현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2) 해외
'82년은 국내전시활동의 적극성에 못지 않게 작가들의 해외활동이 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들의 해외전시와 현지의 초대전 그리고 그룹이나 단체들의 해외 전시회가 크게 늘어났다. 거기에다 해외 국제전의 콘테스트나 공모전에 입상한 몇 건이 있어 풍요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개인전
82년 한해동안 해외 전시에 나선 작가들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이종무초대개인전(삼일당화랑, 로스앤젤레스, 미국)
신지식판화전(무라마쓰화랑, 일본)
박봉수초재전(내랑상공회의소, 일본)
李반작품전(바로셀로나, 스페인)
이향성개인전(로마미화랑, 파리)
오세영판화전(촌송화랑, 동경)
김창희파리전(카티아그라노트화랑, 파리)
이병삼일본초대전(상본정화랑, 대판시)
구자현석판화전(대판 부이화랑)
김홍석전(로툰다화랑, 워싱턴)
신지식·정은기2인전(패티오화랑, 콜로라도大, 미국)
구조그룹동경전(구정화랑, 동경)
유관호판화전(한국화랑, 뉴욕)
김비함일본전(복강시립미술관)
유휴열프랑스전(그랑빌레화랑)
한홍택토대전(삼일당화랑, 로스앤젤레스)
정영열종이작업전(양화랑, 경도시)
해외수상 및 초대
차대덕 : 휴스턴 아크웨이화랑선정11작가전에 초대.
이강하·강명구 : 佛르살롱전에서 동상.
한봉호 : 일본동경도미술관 제16회 현미전에서 대상
김수익 : 방글라데시 대카에서 열린 아세아미전에서 명예상.
윤익영 : 호앙미로국제드로잉전에서 최고상.
국제교류
82년은 특히 외국과의 국제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교류전시회가 빈번하였다.
참고로 국내에서 주최한 이들 교류전은 다음과 같다.
82국제현대작가판화전(진화랑 : 달리, 미로, 뷔페 등 외국21명 한묵, 김봉태 등 재외작가)
라틴아메리카예술전시회(명동유네스코전시장 : 유네스코주최, 남미의 조각회화)
유럽성화전(현대미술관, 동아일보와 한독미술가협회공동주최. 대전시민회관 : 14C∼19C의 성화113점 전시)
「추상―창조」그룹판화전(서울미술관, 부산카톨릭센터:프랑스폴네모르사 작품발표)
장 미셀 폴롱작품전(부산알리앙스 프랑세즈 : 수채화, 포스터 전시)
피타소동판화전(진화랑:66 ∼ 71년작)
프랑스판화전(부산맥화랑)
랜드폴 프레스 판화전(미공보원전시실)
오늘의 유럽미술전(서울미술관기획:에이요, 알베르, 도이 등 11명)
피카소걸작전(현대미술관:마리테레즈, 마야를 주제로 한 86점, 사랑의 엽서 20여점, MBC주최)
서울국제Mail-Art전(관훈미술관)
프랑스신구상전(서울미술관)
메레오펜하임전(서울미술관)
한일현대미술전(후꾸오까시미술관:한국현대조각회·오리진협회+복강현대조각회·일본환현해회)
공문국제판화전(공간미술관, 「공간」주최)
한일종이조형전(국립현대미술관)
이 가운데에서 특기해둘만한 것은 「유럽성화전」, 「오늘의 유럽미술전」, 「프랑스新具象展」, 「공간국제판화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성화전은 우리에게 생소한 유럽 종교화를 처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특히 유럽미술의 원류를 깊숙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었다. 한독미술가협회와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했고, 14∼16세기에 걸친 전시작품들은 독일의 Reckling Hausen성화박물관과 acchen성화연구소가 선정한 것이다.
한편 오늘의 미술전(4. 24∼ 5. 30)과 프랑스신구상군(7. 10∼8. 15)은 최근 유럽과 특히 프랑스의 현대미술의 상황의 일단을 알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이 두 전시회는 프랑스 측의 알랭 쥬프로아 등 비평가들과 우리나라서울미술관의 공동 참여에 의해 기획되었다는 데에 더욱 의의가 있었다. 그들의 현실이념과 특히 「새로운 역사화nouvelle peinture d'histoire」로서의 방향설정이 크게 일반에게 공개된바 되었다. 그리고 공간국제판화전은 공간사가 주최하는 국제판화비엔날로서 금년이 2회째였다. 이 판화전 역시 우리의 손으로 개최된 국제전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3. 양식과 이념적 향방
이상에서 우리는 비교적 상세한 명세서를 통하여 우리의 82년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정보의 부족으로 아마도 많은 전시나 특기사항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82년도의 화단은 추측컨대 과거 어느때 보다도 혁혁한 한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제 이러한 자료들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의 미술상황 속에 숨겨진 82년도의 「의미」란 무엇일까를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일단「양식과 이념적 갈등」이라고 전제해 두고자 한다.
먼저 「양식」의 갈등문제부터 다루어 보자. 우리에겐 언제부터인가 서양화, 동양화라고 부르는 엄격한 회화상의 구분이 점차로 느슨해지기 시작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커다란 이슈로 등장한 것이 판화와 드로잉의 대두인 것이다. 몇 년전만 하더라도 판화는 커다란 문제가 되지 못하였고 드로잉 또한 관심 밖의 것이었다. 그러나 82년도를 되돌아보면 이러한 고정관념은 이제사 타파되고 있고 그러한 조짐의 확고한 시작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된다. 바로 이러한 작품양식상의 변화는 결국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 다음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현실이념」의 탄생이란 점이다. 미술은 소위 순수한 인간의 감성의 표현이거나 사상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순수주의가 이제는 커다란 곤경에 처할 즈음에 이르고 있다. 젊은 세대의 도전은 맹렬하여서 미술행위란 것이 크든 작든 인간이 현실에 대한 「일들」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리고 파고 들어갈 수 있다는, 그래서 예술도 역사나, 사회나, 종교와 같은 하나의 「기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판화와 드로잉에 대한 관심
지난 한 해에 개최된 전시들 중에서 판화전과 드로잉전을 따로 골라낸다면 아마도 상당수에 이를 것이 분명하다. 이하에서 일단 의의있는 판화행사를 골라내어 보자.
김병림판화세미나(맥향화랑, 대구)
오세영목판화전(뉴코아미술관)
판화작품 및 도구전(프랑스문화원)
한운성판화전(가람화랑)
황규백동판화전(선화랑, 부산공간화랑)
석난희판화·판목전(맥향화랑, 대구)
중진작가 11인판화전(한솔화랑, 제주)
이인화동판화전(동광화랑, 부산)
김수석판화전(공간사랑, 부산)
구자현석판화전(대판불이화랑, 일본)
송번수판화전(관훈미술관)
유관호판화전(뉴욕한국화랑)
제17회 한국현대판화가협회전 및 공모전(미술회관)
창작판화가회창립전(그로리치화랑)
서울프린트클럽전(공간미술관)
김상구판화전(가람화랑)
문영태종이판화전(그로리치화랑)
공간국제판화전(공간미술관)
김태호판화전(그로리치화랑)
장영숙판화전(공간미술관)
이 외에도 피카소동판화전(진화랑), 프랑스판화전(부산맥화랑), 세레의젊은판화가전(국립현대미술관), 렌드폴프레스판화작품전(미 공보원전시실), 추상-창조그룹판화전(부산카톨릭센터)을 합친다면 82년도의 판화붐 조성은 가히 획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드로잉은 큰 전시회로 개최된 회수에 있어서는 많지 않으나 그대신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하는 수많은 작품들의 기법이나 방법들 속에 널리 팽만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 전시회는 독립된 전시회로서 기록될 만할 것이다.
종이36인전(미술회관)
드로잉14인전(전라 미술관, 전북)
'82 종이작업전(관훈미술관)
한일종이조형전(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앞서 윤익영이 호앙미로국제드로잉전에서 최고상을 획득한 사실은 우리의 드로잉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지대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판화, 드로잉에 대한 이러한 집요한 관심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의 경우 이 분야가 일단은 회화의 장르로서 보다는 「방법론」으로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은 회화의 「양식상」의 의미에 관련된다고 일단 결론할 수 있다. 말하자면 판화나 드로잉이라는 독립된 장르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회화의 영역 안에서 새로운 양식의 창조를 기도한다든지 아니면 회화의 특정한 「이념」의 추구를 위해 수단으로서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실에 있어서 많은 부류의 작가들이 직업적인 판화가가 되거나 전문적인 드로잉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회화작업의 양식 내지는 이념상의 확장을 위해서 판화를 하거나 드로잉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직업판화가들의 관례에서 볼 때 기법상 완성된 점이 많지않다 손치더라도 오히려 이 점 때문에 그들의 판화나 드로잉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러하다면 어떠한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작가들이 변화를 기도하는 것은 대체로 두 개의 영역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 하나는 「매체」에 관련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디어」에 관련해서라고 하는 점이다. 최근의 새로운 매체로서 등장한 「종이」의 문제만 하더라도 그저 캔버스의 대용품 밖에 되지 않으리라던 통념이 사라지고 종이 자체에 대한 가능성을 집중탐색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종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지대하게 두었다는 일 자체가 드로잉 아니면 판화에로의 길을 모색케 하였으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종이를, 그것도 피지와 같은 한지 고유의 재질을 앞에 하였을 때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역시 드로잉일 것이며 기타의 종이에 관해서는 판화가 가장 적합할 것이다. 매체라는 변수에 못지 않게 드로잉과 판화에의 관심을 이끄는 요인으로서 우리는 70년대 이후 일기 시작한 「현실대상」에의 관심이라는 아이디어에 이어서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작품의 본질이 단순한 표상적물의 전부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구조」라는 사실에 근거를 둔 것이다. 표상이 아니라 구조라는 이념은 고상한 캔버스보다는 손쉬운 종이를 통해서 드로잉이나 판화의 방법에 의존하는 일이 첩경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발전해 갔다.
우리는 대체로 이러한 변화의 의식을 통해서 80년대의 초반에 서있는 82년도의 위치가 상당히 중요한 시기임을 실감 할 수 있다.
우리는 이하에서 이점에 관련해서 「현실이념」의 문제에 집중적으로 접근해 본다.
현실이념과 순수주의의 위기
앞에서 이러한 변화의 징후가 이념적으로는 다분히「현실」의 문제는 이제사 우리화단에 관한한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거리로 등장할 징후다.
우리 작가들이 6·25사변을 거치면서 예술과 현실을 거론한 전례는 특히 문학논쟁을 통해서 경험한 이외에는 사실상 이렇다할 것이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의 미술행위의 경험과 역사에 비추어「현실」의 문제에 관한 우리는 아주 순박한 상태에 있는 셈이다. 겨우 우리가 미술에 관해서 아는 것은 미술이 현실을 좀더 밝고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견해로는, 그 이상을 주장하고자 미술이 현실에 관한 사회적인 문제를 묘사해서 적극적으로 거론한다든지 현대의 인간과 그 문명을 비판적으로 언명하려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미술행위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단언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한, 우리는 미술에 있어서「현실」이라는 말의 의미는 작품의 주제나 테마, 다시 말해 문학적인 것, 따라서 미술외적인 영역으로 간주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현실이라는 것이 작품의 테마로서가 아니라 아예 작품이 현실을 이야기하거나 비판하는 「기능」으로서 군림하는 방식으로 현실의 의미가 강조된다면 이러한 현실은 우리의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하나의 괴이한 일임에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집에도 불구하고 잠정적으로는 아주 건강하고 건전하다는 의미에서 볼 때, 우리의 젊은 작가세대들의 활동 속에는 최근 현저하게 미?? 현실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려는 의욕을 앞세운 전시회가 부쩍 늘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세대들은 다소간 현실에 관심이 많고 또한 개방시대를 살면서 그러한 관심의 표명은 응당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커다란 의아심의 대상으로 주목할 필요는 일단 없으리라. 그리고 미술이란 활동이 음악과는 틀려서 그래도 「무엇」즉 현실의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또는 저렇게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숙명은 일단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문제는 어떠한 의미의 「현실」이냐가 중요할 뿐이다. 최근 우리의 작가들의 현실관심은 두 개의 커다란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첫째로 「이념적」 현실이 그 하나이고 둘째는 「사회적」현실이 그 또하나의 것이다. 현실을 이념적으로 추구하는 쪽은 사실상 70년대를 계속 살아오면서 우리의 체질과 개성, 말하자면 감수성의 총체와 미술의 만남 속에서 적절히 진로를 개척하여 왔다. 행위와 지각, 신체와 정신, 구조와 현상…등의 대립을 통하여 미술의 현대적 변용과 그 이상적 존재의 방식을 무수히 탐색해 보았다. 그리하여 「평면과 입체」라는 커다란 양식개념 속에서 정감이나 인식을 하나의 작품이라는 구획 안에다 포용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80년대에 진입하면서 이러한 작업이 무기력하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젊은 세대의 일부를 통해서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선을 추구하는 인맥은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82년에 이르러 많은 젊은 의식은 가히 현실, 그것도 「사회적」현실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개중에는 단순히 자연주의적인 현실인 자연사물로 돌아가 자연과의 교감과 인식을 획득하려는 분류가 있으나 다른 일부의 시각은 다분히 사회를 향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딛고 사는 사회의 주변에서 희노애락의 소재를 찾아 거기에 동정과 사랑을, 때로는 혐오와 질책을 보내기도 하며 거기서 미술의 언어를 발굴하고자 한다. 그들의 그림은 대단히 거칠고 미완성적이며 때로는 아예 만화나, 포스터, 아니면 풍자화 같아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조짐에 대해서 아직은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현상만을 막연히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직은 시기상조이지만 이러한 경향에는 온건한다든가 강렬하다든가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어 더욱 분간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하여간 궁극적으로 말해 우리는 이 80년대의 문턱에서 하나의 커다란 변수를 맞이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할 즈음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사실을 용인한다면 이제 이상적인 현실을 추구하는 순수주의는 앞으로 많은 도전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 새로 움트는 미의식의 출로를 위해서 겸허한 속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미래지향적인 변화를 합리적으로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