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존의 전문화를 위한 소감
이보형 / 문화재 전문위원
무형문화재는 보유자의 기예라고 하는 무형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오직 보유자의 연행을 통하여서만이 그 특징을 감지할 수 있다. 어느 보유자가 사망 또는 정신적, 신체적 장애로 그 기예를 연행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그가 보유한 무형문화재는 소멸되고 만다. 그러므로 그 보유자의 기예를 어느 방법으로든지 기록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그동안 문화재관리국 문화재과, 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 문화예술진흥원 진흥부 및 자료관, 국립영화제작소 무형문화재기록반, 정신문화연구원 예술민속연구실 등 여러 기관에서 시행하는 무형문화재기록화작업에 참가한 바 있어 작업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에 대한 의견을 간단히 적고자 한다.
무형문화재 기록작업은 보유자의 연행장면을 간단히 스냅하는 것이 아니니 무형문화재 내용을 바르게 알고 빠짐없이 정확히 잡아야 한다. 기록하는 이들이 그 내용을 어떻게 파악하고 이를 어떤 방법으로 연행시키느냐 하는 것과 또 연행되고 있는 기예를 어떤 기구를 통하여 작동하여 어떤 방법으로 기록하느냐 하는 것과 기록된 자료를 어떻게 보존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 바르게 이루어지지 않으며 안 된다.
무형문화재는 오랜 역사를 통하여 우리 문화가 만들어 낸 전통성을 가지고 있고 또 오랫동안 전수된 거장들의 기예를 보유자들이 일생을 통하여 뼈를 깎는 고된 학습과 수련을 통하여 터득한 전문성을 갖기 때문에 이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한 전문가가 아니면 그 내용을 바르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무형문화재 기록보존작업에는 이에 정통한 전문가를 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무형문화재에는 대금정악·판소리·산조와 같은 음악분야, 승무·검무와 같은 무용분야, 봉산탈춤·꼭두각시놀음과 같은 연극분야, 광산고싸움놀이·안동차전놀이와 같은 민속놀이분야, 진도시낌굿·강릉단오제와 같은 의식분야, 갓만들기·매듭만들기와 같은 공예기술분야, 택견·줄타기와 같은 무술이나 곡예기술분야 등 많은 분야가 있어서 이에 대한 마땅한 전문가를 동원하는 일이 어렵다. 또 무형문화재의 많은 종목에서 음악, 무용, 연극, 놀이, 민속 등 많은 분야의 요소가 종합 연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분야별로 전문적으로 파악하고 기록하는 일이 어려운 과제로 남는다. 강릉단오제를 예로 든다면, 서낭받기, 산신제, 문굿, 세존굿 등 모든 의식에 딸린 민속적인 것, 무가의 선률 및 무가와 무무의 반주음악에 나타난 음악적인 것, 굿에서 연행되는 무도의 무용적인 것, 세존굿·성주굿에 보이는 연극적인 요소, 제상의 음식·복색·무구·지화 등에 나타난 제작기술에 관한 것 등 여러 분야의 전문적인 파악이 있어야 하고 이를 바르게 연행되도록 해야 한다. 의식절차는 바르게 연행시켰으나 무가의 장단이나 무무의 춤사위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든가, 복색이 원형과 달리 개조된 것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잡지 못한 상태로 기록하게 되면 이것을 바른 기록이라 할 수 없다. 이런 과오를 막기 위하여 전문가를 여럿 동원하든가 아니면 이를 종합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전문가를 동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형문화재를 깊이 연구한 전문가가 현장에서 기록지도를 할지라도 그 전문가가 기록작업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경험이 없어도 일이 어려워진다. 전문가는 연행장소가 전통적인 연행장소인가 하는 것과 아울러 많은 기재가 작동하는 기록작업이 가능한 것인지를 가리는 일, 연행에 쓰는 소도구 복색 따위를 사전에 준비하도록 하고 현장에서 미리 점검하여 대비시키는 일, 공예기술의 경우 전통적인 제작도구·전통적인 자료·작업복색·작업장 같은 것을 파악하고 주선하는 일, 년중 제작시기를 맞추는 일과 제작시간이 매우 길 경우 어느 제작절차를 기록하고 생략하는가를 지적해 주는 일 따위는 현장 경험이 있는 전문가라야 능률적으로 해낼 수 있다. 굿판에서 무당의 기원소리와 잽이의 배경음악과 화랑이의 덕담이 동시에 연행될 경우 어느 음향을 주로 하여 잡을 것인가, 또 어느 장면을 정면으로 하여 카메라를 댈 것인가 하는 것을 미리 기록기구를 작동하는 기사나 기술감독에게 미리 제시하는 것 등 전문가의 현장경험이 필요하다.
무형문화재 기록화 작업은 오디오 레코드를 통하여 자기테이프에 녹음하는 일, 비디오 레코드를 통하여 자기테이프에 녹화하는 일, 촬영기를 통하여 영화필름에 녹화하는 일, 녹화된 자료로 디스크를 제작하는 일, 기록된 자료를 가능한 한 소멸되지 않게 영구보존 처리하는 일 등에 여러 가지 많은 기술이 동원된다. 이는 각기 기구를 작동하는 전문적인 기사가 딸리기 마련이나 여러 기사의 종합지도하는 기술감독이 필요하다. 이 기술감독은 기술적인 감동은 물론이고 무형문화재 연행의 내용과 이것을 완전하게 기록하는 방법론에 정통하여야 한다. 무용이나 연극이 연행될 경우 촬영기사가 보유자의 신체 일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잡아서 다른 부분의 춤사위나 연기공간과 진행방향을 모르고 있다가 중요장면에서 보유자의 신체의 일부분이나 전부가 화면 밖으로 빠져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 다수의 보유자가 출연하는 경우 촬영기가 주연보유자에 밀착하여 조연의 연기를 놓쳐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 마이크를 주연보유자는 물론 조연보유자와 반주악사에게 배치하는 일 따위 등 무형문화재 기록방법에 따른 방법론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무형문화재 기록현장에서 무형문화재 전문가와 기술지도 감독과의 사이에 의견이 맞지 않거나 손발이 맞지 않으면 그 기록화작업은 빠르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런 폐단을 극복하기 위하여서는 음향민속이나 촬영민속 전문가와 같이 무형문화재의 연행감독과 기술감독을 겸하는 정통한 전문가를 동원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