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민속예술




현춘식 / 제주도 공보담당관

1. 제주도 전통문화 예술의 특성

한 나라의 전통문화를 특성짓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지리·풍토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 그 민족의 가치관이 날과 올이 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 틀은 지역문화에 그대로 적용시켜도 큰 무리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의 지리적 여건은 바다가 숙명처럼 에워싸인 절해의 孤島이다. 거기에다 척박한 땅과 모진 바람, 비 많은 기후와 바다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었던 풍토를 지녔다. 더구나 신라·백제에의 조공과 섬김, 왜구들의 침탈, 1세기에 걸친 몽고의 지배, 정객들의 유형지로 이용되는 등 끊임없는 수난을 당했던 굴곡 심한 역사가 흘러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 온 제주도인들의 삶의 시련도 참으로 모진 것이었다. 때문에 제주인들은 강인 불굴의 의지로 악조건을 이겨내어 스스로 일어서려는 현실긍정주의와 현실을 뛰어넘어 이상을 추구하려는 외부지향주의의 가치관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요인들이 작용하여 이루어진 제주의 전통문화의 특성은 도서문화성, 서민문화성, 고유문화성으로 집약된다.

도서문화성은, 섬이라는 지리·풍토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그 조건에 적응토록 발달해 온 문화의 특성을 의미한다. 섬은 대륙과의 문화 교류가 적어 특수성을 지니게 마련이며, 그 문화는 다양하면서도 왜소한 경향을 띤다. 제주의 농경, 어로, 의식주, 신앙의례, 예능 등 여러면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짙게 나타난다. 서민 문화성은, 제주도민의 생활문화가 그 역사적 조건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특성이라 하겠다. 항상 버려진 벽지의 취급을 받아 왔기에 귀족 문화의 유물, 유적은 보잘 것 없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바람 부는 땅을 갈고, 거친 바다를 다스리며 영위해온 서민적 생활문화가 온 섬을 뒤덮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고유문화성은 역대 왕조문화의 중심지인 수로에서 멀리 뒤떨어져 문화개신파의 영향을 제일 늦게 받기 마련인 입지적 조건에서 비롯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중앙문화가 늦게 들어왔고, 그래서 고유의 옛 문화를 변색됨이 없이 고스란히 이어오게 된 것이다. 제주도의 방언·민속 등의 여러 문화 현상이 특이성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다른 어느 도 보다도 한국의 고대 문화성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해서 학계의 주목을 끄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토양 속에서 민속놀이, 민요 등의 전통 민속예술은 싹터 자랐으며 제주인들은 이들을 가꾸고 빛내기 위한 예능을 갈고 닦아 왔다.

2. 제주도 전통문화 예술의 모습과 실태

신풀이가 빚어 낸 민속놀이들

민속놀이는 민간에서 전해지는 놀이를 뜻한다. 그러니까 제주도의 민속놀이란 제주라는 사회 속에서 전승되는 놀이를 가리키는 것이 된다. 제주도의 민속놀이는 우선 그 소재면에서 종교의식이 곁들은 집단적이요, 고대적인 특징을 이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가면극과 인형극 등의 놀음이 중심을 이루는 육지부의 민속놀이와는 판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이런 점에서 가면극과 인형극 등의 놀음이 중심을 이루는 육지부의 민속놀이와는 판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또한 내면적으로는 신앙성의 바탕 위에 연극적인 면과 오락적인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어 전통 문화적인 예술성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다. 이 계통의 놀이는 거의가 무속의례에서 태어난 무당굿 놀이들로서 심방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예능에 의해 전승되어 왔다. 무당굿놀이는 굿의 진행과정에 등장하며 신을 즐겁게 하며,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 들고, 흥겹게 즐긴다. 「입춘굿 놀이」「세경놀이」「산신놀이」「영등굿 놀이」「영감놀이」등의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입춘굿 놀이」는 입춘날 관과 민이 합동으로 치르던 굿으로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흉내내어 실연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신년풍농제인데, 지금은 그 모습조차 희미한 형편이다. 「세경놀이」는 제주도 무속에서 받드는 농사의 신인 세경을 위해 거행하며, 여자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낳은 아이가 잘 자라나 농사를 지어 많은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과정을 묘사해서 농사가 잘 되게 하자는 굿놀이다. 「산신놀이」는 가정에서 행해지는 큰굿에 등장하는 사냥놀이이다. 여기에는 심방들이 포수로 분장하여 산과 들을 돌아다니면서 꿩, 노루, 멧돼지 등의 산짐승을 잡아 산신을 접대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것인데, 제주의 수렵문화의 요소가 강하게 표출되는 특징이 스며들어 있다. 「영등굿」은 중요무형문화재71호로 지정되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도 놀이적 주제가 강하게 스며들었기 때문에 「영등굿 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다를 다스리는 신인 영등신, 즉 영등할망을 위해 베푸는 굿인데 예전에는 제주도 일원의 바닷가 마을에서 행해지던 것으로 「잠수 굿」「해신제」「해녀굿」등의 명칭으로 불리워 왔다. 이 굿은 해녀들이 거둬 드릴 해산물의 풍성과 해상의 안전을 비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제주 특유의 해녀신앙과 생활민속이 담겨 있고 예능면에서도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매년 음력 2월 15일, 인간문화재인 안사인에 의해 제주시 칠머리 당에서 공개되고 있다. 또한 제주도 지방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된 「영감놀이」는 「도채비」(도깨비)신에 대한 굿이면서 놀이이다. 도깨비 신이란, 도깨비 불을 인격화한 신이다. 이 「영감놀이」는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미분화적 종합예술체라는 점에서 민중의식이 깃들어 있는가 하면, 연극의 본래적인 뿌리를 찾아 볼 수 있고 가면이 유달리 등장한다는 점에서 주목될 만하다. 이 놀이는 가정에서 치병을 위해 굿을 치를 때 또는 새로 지은 어선에 서낭(선왕)을 모시려는 경우 마을 당굿을 할 때에 실연된다. 성극적 성격을 띤 이 놀이는 연극의 기능과 굿의 기능을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예로서 민간전승면에서 주목된다. 그 예술성이 뛰어난 점은 제8회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입증된 바 있다.

노동의 고달픔 이기며 부른 민요들

전통적인 민속음악이 없는 제주도에서 민요는 놀이 못지 않게 전통예술로서의 큰 몫을 차지한다. 1천 5백여수가 넘는 제주 민요의 한편 한편에는 민간생활의 일체가 반영되어 있을 뿐 아니라 빼어난 가락에다 이를 실연할 때 놀이적인 동작이 흥겹게 곁들여져서 예술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제주도 민요의 종류상의 특이성은 노동요가 많고, 여자들의 노래가 대부분인가 하면, 본토 민요에 비해 비슷한 것이 드물다는 점이다. 이들 중 놀이적인 성격과 음악적 특성이 강하게 깃들어 전통적 예술성이 짙은 것은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 출연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과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꼽을 수 있다.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는 「멸치 후리는 노래」「풀무노래」「방앗독 굴리는 노래」「집줄 놓는 노래」가 출연해서 수상했고, 이외에도 「밭밟는 노래」「김매는 노래」「톱질노래」「달구소리」등이 선을 보였다. 「멸치후리는 노래」는, 백사장이 질펀한 바닷가에서 멸치를 후릴 때 그물을 잡아 당기면서 부르는 민요로서 그 가사 내용은 작업 실태에 연관된 게 위주이며, 제주도의 여러 노동요 가운데 퍽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데다 가창자가 거의 여성들이라는 점이 특색이다. 북제주군 구좌읍 동김녕리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1977년에 열린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풀무노래」「방앗돌 굴리는 노래」「집줄 놓는 노래」는 남제주군 안덕면 덕수리에서 전승되는 집단 노동요들이다. 「풀무노래」는 농경기구인 「보습」과 생활필수품인 「솥」을 만들 때 풀무질을 하면서 부르는데 그 내용은 「솥」과 「보습」을 잘 만들어 내자는 권면성이 주를 이루고 일군들의 몸짓이 퍽 흥겹다. 전승자가 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1979년 대구에서 열린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방앗돌 굴리는 노래」는 제주도의 농경 기구인 연자매를 산이나 들에서 만든 다음, 이를 마을 사람들이 굴려 오면서 부르는 노래다. 이 노래는 한 분의 앞소리에 따라 일군들 모두가 일제히 후렴을 받는 선·후창 형식이며, 그 사설내용은 작업실태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 노래 역시 1980년 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집줄 놓는 노래」는 초가지붕을 띠로 덮어 묶어 둘 집줄을 한 갈래씩 꼴 때 부르기 시작하여 두 갈래를 하나로 어울려 만드는 일을 되풀이 하면서 구성지게 이어지는 노래다. 이 노래도 선·후창 형식이고 내용도 작업실태를 담고 있는데, 1981년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 때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았다.

제주도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민요는 민요5수, 즉「오돌또기」「산천초목」도 역시 제주도의 값진 창민요이다. 옛날에 육지부에서 불리던 「산타령」의 가락과 비슷한 데가 많으므로 그 비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봉지가」도 값진 민요의 한편으로서 그 선율적 특성은「산천초목」과 비슷한 점이 있어 산타령계인 듯 짐작되고 있다. 내용도 남녀간의 애정표현을 대담하게 담고 있는 특색을 지녔다. 「해녀노래」는 제주해녀들이 본토로 출가하거나 노를 젓고 헤엄쳐 작업하러 나갈 때 부른다. 내용은 해녀생활의 전반을 엮고 있지만, 때로는 해녀작업과는 무관한 생활의 정의를 담은 경우도 있으며 그 가락은 매우 유장한 편이다. 「맷돌노래」는 질과 양으로서도 대단히 빼어난 민요여서, 제주도 민요의 왕좌를 차지한다. 맷돌을 돌리면서 부르는 이 노래는 내용도 다양할뿐더러, 가락도 유장하여 고달픈 삶의 실타래가 풀리는 듯 하다. 문명의 이기에 맷돌작업이 밀려남으로써 부를 기회가 적어지고, 그 원색도 점차 퇴색해 가고 있다. 한편 앞서 살펴 본 「방앗돌 굴리는 노래」「멸치 후리는 노래」「풀무노래」등이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방침을 제주도 문화재 당국에서 세우고 있다.

3. 제주도 전통문화 예술의 확산 보급

제주도의 전통문화 예술은 그 동안 세갈래의 작업을 통해 캐어 지고 빛내며 이어져 왔다.

첫째는, 전문가들에 의한 발굴·연구를 들 수 있다. 민속놀이 부문에서는, 진성기에 의한 「남국의 민속놀이」(1975년), 「제주도 입춘굿 놀이」(1972년)가 있고, 「제주도 문화재 및 유적 종합조사 보고서」(1973년)에서는 현용준, 진성기가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제주도편」에서는 이보형이 이 분야에 대해 정리한 바 있다.

둘째는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를 통한 발표를 들 수 있다. 이 대회에는 5회때부터 1982년까지 열 여덟차례나 출연해서 민속놀이 10편, 민요8편, 민속무용6편이 발표되어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널리 알렸다.

셋째는 제주도의 향토축제인 한라문화제를 통해 많은 민속놀이와 민요들이 캐어 지고 알려졌다. 1962년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는 이 축제는 전통문화예술 행사가 주축으로 베풀어 지는데 여기에서 찾아낸 놀이와 민요중 우수한 것은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 때 출연하고 있으며, 무형문화재도 이때 시범 공연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만족할 만한 길잡이가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제주도의 전통문화 예술을 확산, 보급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찾기면에서는 앞의 세갈래 작업들이 꾸준히 이루어지도록 지원체계를 세움과 아울러 본격적인 종목 발굴작업과 녹화, 채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둘째는 예능면에서 기·예능 보유자를 찾고, 이들이 마음놓고 공연할 수 있는 재정지원 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셋째는 시책면에서 상설공연장을 마련하고 이를 지원하여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넷째는, 이들이 실현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즉 문화재단의 참여, 매스컴의 홍보, 학교 및 사회교육이 서로 체계있게 연관되고 일관성있게 추진된다면 가능한 일이다. 제주도 당국은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지방문화육성계획」을 수립하고, 그 일환으로 「전설지」와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를 펴낼 계획이다. 또한 이런 과제들은 관광제주의 세계화를 위한 계획과 연결, 추진해도 그 보람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