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무용계의 전망
최청자 / 무용가·세종대 교수
무용이라는 예술행위는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삶을 이룬다. 삶은 어느 형태보다도 예술이란 양식 속에서 더욱 깊은 미적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지닌 독창적인 미적 가치판단의 기준여하에 의해 인생에 대한 해석을 다양하게 나타낼 것이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무용 계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공연이 있어 왔다. 이는 무용세계에 애정을 갖고 그 길을 걸어가는 무용가들의 노력에 힘입은 것이다. 그리고 공연의 활발함과 함께 무용인구의 저변확대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외면적 확장의 배후에는 무용가들 스스로가 지녀야할 반성의 문제도 없지는 않다. 그것은 양적인 확대에 수반하는 내면적이며 질적인 향상의 문제가 그것이다.
예술의 행위로서의 무용이 지닌 이 근본적인 문제는 개개인의 무용가들이 각고의 노력과 깊은 예술적 성찰을 통해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 라 할 것이다. 그러면 작년 한해 동안의 무용 계를 찬찬히 되돌아보며 올해의 풍성한 수확을 위한 전망을 한번 타진해보도록 하자.
우선적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무용의 공연이 서울의 중앙무대에만 집중적으로 공연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방의 공연장의 시설 불충분 등 여건도 없지는 않겠으나, 이러한 것을 극복하고 특색 있는 지방문화의 모습을 형성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올해에는 활발한 지방 무용공연이 있기를 기대한다. 이것은 곧 지방문화의 발달이 국가 전체의 문화발전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문교부에서 학생들의 무용공연 출연을 중지시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무용공연이 대학중심인 실정에서 보아 이러한 조치는 무용이 대학중심을 떠나 전문무용단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주었다. 즉 전문무용가 중심의 무용단이 대거 탄생하여 보다 심도 있는 예술세계를 펼쳐나감으로서 무용예술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발레와 한국무용과 같은 국가자원의 국립발레단과 시립무용단이 있어 인재를 양성 하고 있듯 현대무용에도 이러한 기구의 구성이 조속히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러한 몇 가지의 문제점들을 안고서 새롭게 열린 올해는 가장 큰 국가적 차원의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88 올림픽과 86 아시안게임의 문화행사 준비가 그것이다.
지난 12월, 문화공보부와 문예진흥원의 주최로 열린 문화 올림픽 심포지엄에서도 이와 같은 당면의 문제가 토의되어 예술계 각 분야의 새로운 창안과 플랜이 많이 제시되었었다. 이와 같은 큰 행사를 통해 우리 무용계도 역시 이 계기를 활용, 구태의연한 행사성을 탈피한 새롭고 독창적인 창작활동의 촉진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무용은 다른 예술과는 달리 언어의 장애를 넘어 세계인들이 동질의 정서를 교류할 수 있는 예술장르이다. 이는 곧 우리예술의 세계성을 무용이 지니고 있으므로, 이 점이 우리 무용인들이 깊이 인식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만인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정서와 예술성을 찾기 위해서는 무용 각계의 의견을 모아 전통 한국적인 소재의 개발을 통한 작품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가장 독자적인 민족의식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사명감을 느껴야 되리라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기 욕심을 제어하고 스스로의 아집에서 벗어나 공동체적인 의식을 지녀야 할 것이다.
작품의 예술성이란 제작하는 예술가의 정신적 소산임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훌륭한 예술적 작품의 창조란 항상 입문하는 자세와 꾸준한 노력으로만 탄생시킬 수 있다고 본다. 바람직한 예술이란 수차의 고배로 기초수련을 다진 토대 위에서 꽃피고 대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에서 예술작품이란 창작되는 것이며. 또한 예술가의 작업이란 창작하는 일이기에 외국 것의 모방이나 옛것의 재현은 새로운 공간개념의 발전을 가져올 수 없으므로 중점은 창작성에 있어야 할 것이다. 역사적 흐름에 따라 창조되는 새로운 세계의 혁신과 그 호흡을 같이 하는 창조적 자세가 없으면 오늘날 다른 이들에게 공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것은 옛것에서 생겨나는 것이기에 고전작품의 꾸준한 재현과 아울러 재해석하고 재종합, 재창조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창작무용문화의 창조가 우리가 바라는 미래문화의 중요한 흐름이 되도록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창조란 주체적 미 체험에 의한 영감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표현형식임을 부인할 수 없다. 자기 체험을 통한 창조가 없으면 무가치한 일이라고 본다. 예술인가 아닌가는 작품제작에 있어서 제작자가 어떤 하나의 감정이나 연쇄적인 감정 전체에 대해서 품는 관념을 표현하는 형식, 즉 생생한 감정이 담겨 있는 살아있는 형식으로 만들어내려는 의욕여하에 달려있는 것이다.
또한 훌륭한 예술적 작품의 탄생을 위해서는 실제와 이론의 균형 있는 뒷받침과 아울러 창작을 위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리라 본다. 이는 무용가의 탐구과정에서 꼭 모색되어야 할 과제로서 질적 향상에 필수요건이라 생각된다. 자라나는 무용학도들에게도 이러한 측면으로 교육이 이루어져 나가야함이 시급한 과제로써 수정이 가해져야 하리라고 본다.
타 예술과의 횡적인 교류와 공동의 이념적 모색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겠다. 타 예술에 비해 학문적 연구에 대한 치중도가 낮은데, 학문적인 뒷받침이 필수 불가결한 요건이므로 이에 따른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
한 시기의 예술적 개화는 하나의 문화적 진보를 나타나게 되는데, 예술은 감정에 대한 새로운 방법을 형성하며 한 문화적 시대의 시작인 것이다. 어떠한 시대에도 그 시대 고유의 예술작품이 독창적이고 당대에 맞는 특징을 이루고 있듯이 예술은 그 표현 수단이나 영향 면에서뿐만 아니라 표현의 토대, 자료대상 및 모티브에서도 역사적 성격을 지녀야 하며, 이것은 곧 역사발전의 소산이어야 한다. 어떤 예술가든지 간에 개인적 감수성에만 의지해서 창작하는 것이 아니고, 이어받은 전통양식과 시대적 문제의식에 의해서 창작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난날의 복귀로서의 정통이 아닌 정통양식의 제시로서 우리의 전통미를 살린 우리의 현실을 주체적으로 체험한 무용예술작품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기술문명이 가져다 준 비인간화의 위기를 앞에 두고 모든 예술의 과제가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중점을 두어 기계적인 고안품이 아닌 창작된 산형식이 이루어져야겠다.
예술을 통하여 삶을 이해하고 삶의 폭을 넓히는 일에 공동작업을 한다는 자세를 취해야 할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