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청소년 문학의 평가
이건청(李健淸) / 시인·한양대교수
1)
문학은 인간 정신의 가장 높은 경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의 하나이다. 문학이 승화된 정신과 정서를 표현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깨우침을 주면서 창작되어 왔고 읽혀져 온 것이라 할 것이다. 문학이 정신과 정서의 승화형식이라는 말은 문학이 지니는 중요한 특질이 무엇인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적 삶은 동시적인 질서 속에 무수하게 잡다한 사건 현실을 함께 담고 있다. 하나의 명제는 다른 명제와 상반되기도 하고, A의 당위와 B의 당위가 엇물려 돌아가기도 한다. 숱한 모순과 갈등, 그리고 조화로움까지가 한데 어울려져 있는 카오스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문학은 이 카오스의 현실 속에 코스모스를 지향하는 것이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찬 현실 속에서 선별된 현실을 질서화하고 그 현실에 뜻매김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춘향전의 작가는 마지막 어사출두 대목을 통해 선명히 들어나는 작가의 창작 의도를 구체화하기 위해 화창한 봄날의 광한루 장면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작품의 주제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창한 봄날 광한루에서의 아름다운 만남이 있기 때문에 성춘향과 이몽룡의 이별이 애틋한 것이 될 것이고, 성춘향의 수절까지가 타당성을 얻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이 소설의 주제와 걸맞는 현실을 선별하게 되고 그것을 질서화 함으로써 마지막 어사출두 장면의 극적 전환을 뒷받침하게 된다. 따라서 소설 '춘향전'은 최상의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질서를 획득하고 있고 그 독자에게 감명과 환희를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춘향전'은 카오스의 현실이 아니라 승화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갈등과 모순의 현실 속에서 승화된 현실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경제적 부담을 감내하면서까지 작품집을 구입하고 시간적 손실을 감내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현실 속에서는 찾을 수 없는 뜻깊은 의미와, 체계화된 현실의 일목요연한 질서를 통해 선명한 완결의 환희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 소설의 작자는 궁핍함 속에서도 단순한 궁핍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들이 당면한 좌절 속에서도 좌절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나 소설의 작자는 가장 원초적인 순수의 세계를 지향하고 풍요로움의 세계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점은 필자가 최근에 접할 수 있었던 근로자들의 작품집들을 읽으면서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접할 수 있었던 작품집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①근로문학(안양 일원의 근로자들의 모임인 '안양근로자문학회’ 발행) ②'갯벌' (마산 자유지역 공단 근로자들의 모임인 '자유지역 문학동인회' 발행) ③'글밭'(동양나이론(주) 동양폴리에스터(주) 울산공장 근로자들의 모임인 '글밭회' 발행) ④'耕心'(동양나이론(주) 동양폴리에스터(주) 새마을독서대학발행) ⑤ '옹달샘'(창원시 창원공단 근로자들의모임인 '문일회'발행) ⑥'쑥밭'(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의 모임인 '現友會' 발행) ⑦'사임당'(부평지역 공단 근로자들의 모임인 '사임당문학회' 발행)
2)
70년대로부터 비롯된 산업화의 바람은 '공업입국'의 기치아래 도처에 많은 산업생산시설이 설립되는 눈부신 성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청소년 및 젊은 계층의 근로자를 필요로 하게 되기도 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급속한 공업화는 그에 따르는 반작용이 수반되기 마련이었다. 크게는 기계화의 과정이 극대화되어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는 인간성의 문제로부터 소득의 축적과 배분을 둘러싼 소유주와 근로자 사이의 부단한 대립과 갈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앞에서도 열거한 바 있는 근로자들의 문학작품집 '근로문학' '갯벌' '글밭' '경심' '옹달샘' '쑥밭' '사임당' 등은 획일적 공업화의 현장 속에서 나름대로의 순수성을 지켜가려는 동인들의 열의의 결집으로 소중한 시사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이들 동인지들의 창간의 변을 통해 그들이 생각하고 지향하는 문학이 무엇인가를 알아본다.
(1) 근로문학인은 문학적 깊이와 넓이에만 바탕을 두지 않는다. 문학인으로서의 문학 이전에, 문학을 통한 정서순화로 인간성을 함양하고 자기계발을 통한 가치 있는 삶의 창조, 화합을 통한 선진조국으로 도약하는 우리 경제의 발전의 초석이 되고자 하고 문학으로서의 순수가 아닌 순수함으로서의 순수문학을 진실성의 바탕 위에 펼친다. 우리 근로문학인은 순수의 참여니 하는 쟁점을 갖지 않는다.
∼'근로문학' 제 4 집 p.2∼
(2) 본 '갯벌' 문학동인회는 수출자유지역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자질향상과 정서함양을 위해 순수문학을 매개체로 하고 거기에 따르는 자기 발전과 상호간의 친목을 위해 노력한다.
∼'갯벌' 제6집, p.105∼
(3) 하루하루의 삶을 값지게 하고, 우리네 젊은 시절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정서적인 생활 속에서 창작의욕의 고취와 예의와 재치를 터득하여 내적, 외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광장에 끝까지 함께 동참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아울러 이 회지를 통하여 회원 상호간의 유대관계가 이루어져 상호신뢰와 믿음이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빕니다.
∼'옹달샘' 창간호 P2.
(4) 성실한 사원들의 모임으로서 문학에 뜻 있는 사우들의 문학활동을 통하여 회원 서로간에 깊은 우정을 가꾸고 자기 소질을 개발하여 교양과 지식을 쌓아 정서적 안정을 다하여 생산성을 향상하고 사내 모든 활동을 자신의 인생의 수련장으로 삼아 매사에 적극적 사고로써 더욱더 분발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한다.
∼'글밭' 창립선언문 중에서.
이상의 글들은 하나같이 '정서순화'를 통한 '자기발전' '친목도모'를 말하고 있다. 또한, 이들이 전문적 문필인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로서의 책무와의 연계위에서 문학을 말하고 있다. '화합을 통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우리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고자'하고 (①), '수출 자유지역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자질향상'을 기하며(②), '하루하루의 삶을 값지게'하려 한다. (③). 또한, '생산성을 향상하고' 사내 모든 활동을 자신의 인생의 수련장으로 삼아, 매사에 적극적 사고로써 더욱 더 분발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려 한다(④). 즉, 이들은 본격적인 문학작품의 창작보다는 개인의 정서함양 및 계발, 자신이 속한 회사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함께 모여 문학을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와 같은 취지를 구현하기 위하여 독서토론회나, 시 낭독회, 시화전, 백일장, 연사 초청을 통한 문학강연회 등의 행사를 벌이면서 문학적 교양을 성숙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문학작품 창작 및 행사들이 더욱 소중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들이 바쁜 시간, 고달픈 틈을 내어, 문학에의 열의를 보여주는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품들이 밝고 긍정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음은 퍽 다행스런 점이 아닐 수 없다.
3)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소위 '민중문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리고, 그 논의의 대부분이 '민중문학'이란 용어를 기치로 그들 나름의 정치적 이념을 구체화하려 하고 있는 듯 하다.
최근에 한 월간문예지에서 벌인 좌담회(「현대문학」1985. 2월호,「민중문학의 이해와 반성」)에서의 참석자 이재현의 발언 중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모순에 의해 어떤 형태로든 집중적으로 당하고 피지배 있는 계층이 바로 민중입니다. 원초적으로는 노동자·농민·도시빈민이 민중의 구성원이 되고 있습니다만, 여기에 소상공업자와 청년·학생을 포함한 진보적 인텔리도 민중에 추가됩니다. 실천적으로는 민중운동의 타격대상인 반민중적인 집단 또는 계층과 독점재벌, 이를 위해 봉사하는 신중간 계급의 상층부를 제외한 사회구성원 전부가 민중입니다.
(2) 이제는 구체적으로 문학운동의 노선을 명백히 설정하는 일·전략·전술의 문제, 조직·충원·동원에 있어서 대중적 기반의 확보문제, 문화운동이나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 및 합작문제, 리더십의 문제, 조직형태의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단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의 사고에 대해 신경질적이고 반동적인 반응을 보이는 유신체제하에서 이루어진 문학인의 피해의식과 피해망상도 교정되어야 합니다.
이 발언자의 ①의 발언은 '민중'의 범위를 말한 것이고 ②는 민중문학의 실천방안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한 사회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간의 갈등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단정도 그렇거니와 문학이 피지배계층에 의해 씌어져야 하고, 피지배계층만을 위해 씌어져야 한다는 것도 대단한 도그마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②에서 언급되고 있는 민중문학의 실천방안이라는 것은 문학을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달성을 위한 도구로 격하시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발언자의 의견대로라면 릴케나 발레리 만해나 소월, 영랑의 시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망한 것들의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싯귀는 오래오래 살아남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점은 이들이 말하는 '민중문학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반증해 보여주는 좋은 예라 생각한다.
오늘 검토해보려는 근로자들의 작품들은 특히 대단한 편견에 사로잡힌 일부 '민중문학론자'들의 견해의 잘못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검토될 작품들은 실제 생산 현장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작품들이다.
① 떠오르는 태양을 보라
어둠은
타오르는
밝은 빛에 사라지고
아침에 신선한 빛과 공기가
가슴속에 깊이 스며드니
입을 벌리고 심호흡 해보라
그리고 그 둘레를 돌아보라.
―정혜숙(영창악기)작 '햇살'에서
② 먼 하늘에서
종달새의 찬양이 울려오면
들녁은
무지개빛 꿈으로 익어갑니다.
당신의 햇살이
내 손끝에 머무는 날
나는
베토벤의 송가를 목청껏 부르렵니다.
―차옥연(대우전자)작 '봄이 오면'에서
③ 한 여름을 풍미하던
부귀와 영화 속의
나무잎 들도
이제는 떨어져
진리가 되고 있는데
허구 많던 지난 시절
이제는 잊어버리고
이루지 못한 평범한 꿈을
한껏 피워보고 싶다.
―정창희(현대자동차)작 '밤'에서
이들의 시는 하나같이 밝고 건강하며 긍정적인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매우 서정적이다. ①의 시는 작자의 자아 인식이 매우 밝고 건강하다. 그는 '아침의 신선한 빛과 공기가 /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신선한 아침을 맞으며 '입을 벌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둘레를 돌아보'는 것이다. 긍정적 자기인식과 함께 모든 것을 밝고 건강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②의 시도 매우 건강하고 섬세한 정서를 표현해 보여준다. 이 시의 첫 부분은 '당신의 숨소리가 / 귓가에 들려오면 / 가슴은 / 방망이질합니다'로 되어 있다. '봄'을 통해 그리움의 대상인 이성을 구체화하고 있다. 즉, '당신의 숨소리'는 봄의 숨결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리움의 대상인 한 남성이나 여성의 숨결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의 작자는 먼 하늘에서 울려오는 '종달새의 찬양'과 '무지개빛 꿈'으로 익어가는 들판을 기다린다. '당신의 햇살이 / 내 손끝에 머무는 날'을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한 여인의 심회가 아름답게 나타나 있는 것이다.
③의 시에서 자신의 삶을 조용히 명상하는 자의 긍정적 비젼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시절'을 잊고자 하는 것은 이제까지의 삶이 모든 면에서 궁핍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궁핍했던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평범한 꿈'을 '한껏 피워보고 싶'어 한다.
①의 시에서의 긍정적 자기인식 ②에서의 건강하고 섬세한 정서표출 ③의 시에 나타나는 명상적 자아성찰을 통한 염원의 표출 등은 이들의 관점이 건강하고 온당한 세계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근로자들의 대부분은 낮은 임금을 감내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시간에 쪼들리고 정신적 육체적 피로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들은 지배와 피지배의 긴장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파악하지 않는다. 오히려 궁핍함 속에서 상상적 이데아를 노래하려 한다. 이들은 '아침의 신선한 빛과 공기를 심호흡하면서 태양을 바라보며' (①의 시) '당신의 숨소리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종달새의 찬양을 듣고자 하며 무지개빛 꿈'을 익혀간다(②의 시)
물론 이들의 삶은 시에서처럼 밝고 긍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궁핍함 속에서 밝고 건강한 긍정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근로 현장에서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은 또한 매우 근면한 자세를 보여준다.
① 백만번 걸으면
형처럼 중학생이 되고
백만번을 세 번 걸으면
아빠처럼 까아만 구두 신는 어른이 된다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퇴색된 석양 노을이 빌딩가를 춤 출 飁
종일 목구멍이 새카맣도록
숫자를 세면서 걸은 아이는
피곤도 잊고 하얀 이를 내놓고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오늘은 백번을 칠십번이나 걸었다고 자랑한다.
―박재성(대우중공업) '아이의 꿈'에서
② 비오는 날은
노오란 웃음 한조각 닮은
우산이 되고 싶었고
한낮의 뜨거움에는
희고 고른 지열같은
소나기가 되고 싶었고
어둡고 어두운 밤에는
향기좋은 한잔의 차가 되고 싶었다.
―장옥순(현대자동차) '종착의 한점'에서
③ 내 결코
터무니 없는 과욕으로
너와의 화려한 만남을 기대않을거니
내 바램이
너의 풍만한 육체가 고작이라면
애당초 너를 만나지도 않았으리
다만
넌 다만
푸른 용기와 힘을 가졌어라
추수를 앞둔 농부의 마음처럼이나…
―안양숙(동양나이론) '월급봉투'에서
④ 나 혼자만의 힘으로 개척해 가렵니다.
생의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눈물을 머금고 맨발로 뛰어갑니다.
슬픔이 고독이 외로움이 가로수 되어
내 곁을 스쳐갑니다.
내게는 너무나 벅찬 삶이었지만
그래도 지지않으렵니다.
언젠가
내가 지나는 넓다란 길엔
즐거움과 행복의 가로수가 웃음지으리라고 믿으면서
오늘도
나 혼자만의 길을
개척해 갑니다
―신금용(동양나이론) '나 혼자만의 길'에서
①의 시에서 근면하게 하루하루를 일하면서 미래에의 꿈을 키워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종일 목구멍이 새카맣도록' 일을 하면서도 '피곤도 잊고 하얀 이를 내놓고 웃'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하루하루가 보람된 미래를 향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②의 시에서 부단히 자신의 의미를 찾아가는 자의 성실한 삶의 자세를 볼 수 있다. 비오는 날엔 '우산이 되고 싶'고 따가운 더위 속에선 '소나기가 되고 싶'으며 어두운 밤엔 '향기좋은 한 잔의 차가 되고 싶'은 마음은 소중하기 이를데 없다. 어떤 국면에서도 성실하게 자신을 찾아가며 뜻깊은 무엇으로 있고자하는 마음은 더 없이 소중한 것이다.
③의 시에서 풍족하지 않은 월급이나마 소중하게 의미를 되새기는 마음이 노래되어 있다. '내 바램이 / 너의 풍만한 육체가 고작이라면 / 애당초 너를 만나지도 않았으리'에서 이 시의 작자가 지니고 있는 소박하면서도 성실한 마음씨를 읽을 수 있다. 많은 월급만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월급봉투에서 '푸른 용기와 힘'을 볼 수 있는 것은 이분이 지니는 성품이 성실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④의 시에서 고난을 이겨나가는 자의 강인한 집념과 의욕을 볼 수 있다. 슬픔과 외로움에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언젠가 / 내가 지나는 넓다란 길엔 / 즐거움과 행복의 가로수가 웃음지으리라고 믿으면서' 굳건히 삶을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①②③④의 시편들은 어떠한 시련도 이겨나가는 굳고 성실한 삶의 자세들이 차분히 노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삶이 궁핍하고 여유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런 삶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은 매우 예리하다. 삶의 궁핍한 국면 속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발견해 보여준다.
① 비 내리고 번개
천둥치면
가게엔 손님도 없어라
문짝에 붙인
월간지 포스터가
비에 젖는 날이면
가게엔 손님이 없어라
꼬마 손님들은
비에 갇혀 자유를 잃고
어른들은 비가 귀찮아
자유를 외면한 날
백원짜리 기발한
장난감도
새주인을 만나
밖으로 나가 놀지 못하고
궁색하게 자유만 바라보고 있어라
―박영환(삼호문구사) '비오는 날의 경제' 전문
② 경기도 시흥군 의왕읍 삼리 이백팔번지
내가 잠만자는 자취집을 갈려면
조그만 벌판을 지나야 한다.
그 벌판 중앙에서 동쪽―내가 사는 집쪽―으로
서른보쯤―취중에는 오십보다―가다보면
나처럼 생긴 돌이 하나 있다.
―박재성(대우중공업) '소품'에서
①의 시는 손님 없는 문구점에서 비 내리고 천둥치는 밖을 내다보며 '자유'의 문제를 생각한다. '꼬마손님'들과 '어른들'은 비에 갇혀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 등장하는 '비' '번개' '천둥'들이 원래의 의미가 아니라 '손님'들을 묶어두는 구속물들로서의 의미로 변이 되어 쓰이고 있다. 평범한 일상사를 형이상적 의미로 승화시키고 있다.
②의 시에서도 '잠만자는 자취집'을 가는 한 근로자가 깨닫는 자신의 의미가 잘 노래되어 있다. 그의 '나처럼 생긴 돌이 하나 있다'는 진술 속엔 숱한 인고를 겪어 가는 자의 강인한 함묵(含默)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함묵은 찬란한 미래를 향해 가는 자의 다부진 결의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
이상의 검토를 통하여 산업일선에서 업무에 종사하는 젊은이들의 작품세계를 검토해 보았다. 이들의 작품세계는 매우 밝고 건강하며 긍정적이다. 그리고 서정적인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삶이 곤궁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들은 미래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성실하고 근면하게 자신을 성숙시켜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문학을 통하여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해가면서 풍요로운 감성의 토양을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작품경향은 문학을 도구화하려는 일부의 논리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도 아울러 반증해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