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번한 海外 작품 「名作展」
이일 / 미술평론가·홍익대 교수
만일 우리 나라가 외국의 이름 있는 예술가의 작품에 대해 그 동안 인색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패가 있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해외 미술을 받아들이는 데 있는 폐쇄이었던 것이 사실이며, 그것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데 어딘지 모르게 소극적이요 인색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우리의 미술풍토는 과거의 것이거나 현재의 것이거나 해외 미술의 적극적인 수용의 자세를 오랫동안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기는 그것이 반드시 의도적인 것으로만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외국의 이름 있는 작품 하나만을 들여오는 데에도 이에 따르는 유상무상의 갖가지 어려움을 감안한다면 그 폐쇄증을 나무랄 수만도 없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근자에 와서 갑작스럽게 해외 미술품의 일종의 전시 러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이른바 「海外名作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내가 알기만 해도 인상파 피카소, 샤갈 등의 원화를 우리 관객에게 그 동안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아쉬움이 있었다면 이러저러한 전시회의 기획에 있어 작가의 선정이나 어떤 유파의 선정에 있어 주최측의 예술적 차원에 있어서의 성실성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올해 봄 시즌에 들어서면서 그 첫 테이프를 동시에 끊은 것은 「라울 뒤피 명작전」(조선일보 주최 3. 1∼31, 국립현대미술관)과 「베르나르 뷔페 걸작전」(문화방송 주최, 3. 1∼31, 동방미술관)이다. 이 밖에도 「印象派와 現代美術 傑作展」(3. 5∼20)이 한 개인 화랑(가나 화랑)에서 기획 개최되고 있고 역시 로이드 신화랑에서 「호안 미로 판화전」이 열리고 있다(2. 22∼3.9) 또 이에 그치지 않고 현재 추진 중으로 알려진 외국 저명 예술가들의 국내전으로 베르나르 뷔페의 판화전(珍화랑)을 비롯, 아르망전(워커힐 미술관), 알친스키전(가나화랑), 로댕전(조선일보 주최)등이 줄을 잇고 있다. 문자 그대로 러시아다.
이처럼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전시회 사태는 두말 할 나위없이 환영해 마지않을 일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을 두고 우리 나라의 문화수준도 「국제적」으로 그만큼 높아졌다고 자부할 만도 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낙관만 할 일이 못되는 것이다. 그것은 전시회를 기획하는 주최측이나, 전시회를 받아들이는 관객측이나가 다같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최측의 경우를 볼 때, 그들이 모처럼의 전시회를 꾸미는 데 있어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다. 털어놓고 「돈벌이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만일 수도 있다. (신문사나 방송국이 주최일 경우, 그 소관 부서는 「사업부」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반대중, 일반 미술애호가와 직접 관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외미술을 들여와 그것을 일반에게 소개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당사자들의 良識이다.
주먹구구식의 타산이라든가 안이한 발상이 아닌 문화적 양식이 필요한 것이다. 문화적 사명감이라든가 따위의 거창한 구호를 내세우지 않더라고 이것은 최저한의 조건인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저러한 외국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할 때 주최측은 너무 지나치게 관객을 의식하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관객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말이다. 물론 관객의 호응도 구체적으로는 관객의 동원 수가 크게 문제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대중의 취향이나 그 수준에 영합하는 지극히 얄팍한 선전문구를 앞세우거나 잘못된 표제를 붙인다거나 하는 일은 자칫 일반 대중을 오도하는 역효과마저 가져다주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2월에 있었던 「루오판화전」의 경우, 루오를 두고 「야수파의 거장」 따위의 구절이 큼직하게 신문지상에 실리는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무책임하다는 단계를 넘어서 일반 대중을 우롱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처사이다.
이와는 약간 그 성격이 다르기는 하나 대중을 얕잡아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려는 의도가 뻔한 표제들이 흔히 눈에 띤다. 「××名作展」「××傑作展」 따위가 그것들이다. 이 말들이 가리키는 실질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그럴싸한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라울 뒤피명작전」의 경우 그것은 「라울 뒤피전」으로 족한 것이며 거기에 「××미술관 소장품」이라고 밝히는 것이 상식이다. 「명작전」하면 그것은 곧 「대표작」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으며 결과적으로 라울 뒤피의 이번 전시회는 그의 대표작품전이 되고 만 셈이다. 이는 이미 고인이 된 뒤피에게는 물론 작품을 빌어준 니스미술관 측에 대해서도 커다란 결례가 아닐 수 없다. (단, 그렇다고 이번의 뒤피전이 중요한 전시회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동안의 같은 유의 전시회에 비해 월등 알찬 전시회라 여겨진다.)
이 「라울 뒤피명작전」을 그렇다 치더라도 그보다 훨씬 더 무책임한 전시회 기획이 바로 「베르나르 뷔페걸작전」의 경우이다. 이 뷔페전은 일본 실업인 오노(小野光太郞)씨의 개인 수장작품을 그대로 서울에 옮겨 전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컬렉션의 내역을 보면 50여 점 모두가 뷔페의 초기 작품, 즉 1945∼55년에 걸쳐 10년 사이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灰色시대」라고 불리어지는 이
시기의 작품이 실제로는 뷔페 회화의 정수라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매우 성격이 분명하고 또 그만큼 특징적인 전시회를 꾸미면서 왜 하필이면 「걸작전」 따위의 표제를 내걸었는지… 주최측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발상이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표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이 「걸작전」은 뷔페의 화력을 통털어 그 중에서 추려낸 걸작들의 전시회라는 것이 된다. 뿐만 아니라 지금 겨우 55세의 이 「천재 화가」(이것도 뷔페를 두고 한 우리 나라 어느 저명인사의 표현이다.)의 작품도 사실은 고루지 못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는 하나, 나의 파리 체류시(1956∼65), 나는 줄곧 뷔페의 작품을 보아 왔다. 그리고 그 당시까지만 해도 줏가가 오르고 있던 뷔페가 B.B(브리지드 바르도)와 어깨를 겨루는 「인기 스타」가 되고 사교계의 「총아」가 되면서 그의 작품이 차츰 「俗物化」되어 가는 것도 지켜보았다. 왕년의 혜성같은 출현이 후년에 갈수록 타락해 간 것이다.
한 마디로 뷔페의 진가는 앞서 이야기한 「회색시대」로 집약이 된다. 뷔페의 이미지는 바로 이 시대의 이미지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회는 그와 같은 이미지, 그것도 매우 강렬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는커녕, 반대로 그것을 걸작전이라는 이름 아래 중화시켜 버리고 만 셈이다. 그리하여 어떤 매우 교양이 있는 어느 인사는 그 전시회를 보고 난 후 나더러 이렇게 어줍잖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림이 아주 무미건조하고 단조롭구먼….」
그러한 인상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왜 그러한 그림이 그려졌고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나아가서는 그러한 그림이 낳게 된 시대적 또는 정신적 배경이 어떠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데 이 전시회는 보다 밀도있게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는 데 있는 것이다. 요컨대 전시회 기획의 의도를 분명히 해야 했다는 이야기이며 결국은 핀트가 맞지 않는 전시회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수장가인 오노씨는 자신의 소중한 수장작품의 서울전시에 즈음하여 한국의 미술애호가들에게 보내는 인사말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여러분들이 1950년부터 다시금 커다란 戰火를 몸소 체험했다는 사실로 해서 이 초기의 뷔페의 작품들에 대해 여타의 국민보다 몇 갑절 더한 공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기대하는 오노씨. 그는 더도 말고 오로지 이 시기의 뷔페의 작품을 수집하기 위해 세계 도처를 뒤지며 다닌 집념의 수장가이다. 그러한 그가 서울展에 걸었던 기대가 오히려 그에게 그 어떤 아쉬움만을 남게 한 것은 아닌지…. 이와 아울러 차제에 오노씨와 같은 수장가가 우리 나라 실업인 중에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내 나름대로 아쉬움이 또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