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의 본질과 연구 목적
김명자(金明子)(민속학·안동대 교수)
민족문화로서의 민요
문화를 어떤 인간집단이 살아가는 양식의 총체라고 한다면 민족문화는 어떤 민족이 살아가는 양식의 총체를 자칭하게 된다. 그럴 경우 민족은 고유한 문화의 전승단위이며 문화적 전통을 이루는 밑거름이 된다. 한 민족의 문화적 전통을 이어받은 민족문화는 민족의 고유한 개성이면서 유일한 가치체계를 이룬다. 특히 오천년의 찬란한 전통문화를 연구해서 민족문화를 이해하려는 입장은 시대적 요구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전통문화는 문화적 전통의 모체가 되며 미래의 문화계승의 주동이 되어 새로운 전통의 창조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문화의 계승과 창조는 그 민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민족문화의 전승주체인 민간인은 그 문화의 가장 보편적인 향유 계층을 이루고 민간의 생활양식인 민속은 민족문화의 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한때, 유·무형의 인간문화재를 통칭하는 「민속」은 단순히 「옛것」으로만 인식되어 외면 당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오늘날에는 「옛것」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지각이 일어서 민속이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져 빛을 발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기운에 우려되는 현상은 하나의 민속재(여기 민속재는 유·무형을 통칭)에 대한 전반적이고 깊은 통찰이 가해지기 이전에 그것의 부분적인 성격을 확대해서 이해하는데 있다. 지엽적인 성격을 통해서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전체의 외면에 버금갈 정도의 착각을 범하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은 민속의 근원적인 고려를 하지 않은 탓으로 보여진다. 물론 사적(史的)인 흔적도 없이 전승되는 민속문화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어리석은 탁상공론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근원이 없는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전통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선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근원의 흔적이 희미할 때는 깊은 통찰력으로 그 근원에 대한 충분한 가설을 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통문화의 근원적인 성격이야말로 본질을 이루는 핵이 되며 근원에 대한 고찰은 민속의 본질을 밝히고자 하는 작업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민속음악(folk music)은 민속예술의 한 장르로, 민요(folk song)가 그 중심을 이룬다. 민간에서 이뤄지는 민요의 창작과 전승행위는 일종의 민간예술활동이다. 예술활동을 미적 감동을 표출시켜서 구체화하는 활동이라고 한다면, 민간예술은 「민간에서 미적 감동을 표출시켜서 구체화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 때 주목할 점은 양자가 개인의 미적 감정과 집단의 미적 감정에서 각각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前者에서의 미적 감정은 개별성을 지닌 반면에 후자는 보편성을 지니는데 이는 민간예술이 민족예술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준다. 즉 민간예술은 집단의 보편적인 미적 감정을 토대로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보편적인 미적 감정을 수용한 민간예술은 고도로 전문화된 예술인의 작품보다 민족의 이해에 한층 근접한다.
예술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현실에서의 소망이나 결핍을 상상에서 획득함으로써 삶을 정화하고 생존에 필요한 온갖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런데 보편적인 미적 감정에서 출발하는 민간예술은 그 어떤 예술보다 삶(生存)의 문제와 밀착되어 있다. 즉 미를 위한 미의 창조보다는 원초적인 생존의 욕구, 곧 자아존재의 지속을 바라는 미의 창조이다. 그래서 민간예술을 생활예술이라고도 일컫는다.
이와 같이 삶의 원점에서부터 솔직하게 표출되고 구체화되어 온 민간예술은 항상 원초적인 삶의 욕구를 저변에 깔게 된다.
음악은 청각에 의지하여, 시간적 감각에 의해 창조되고 감상되는 예술의 한 장르다. 즉 산만한 음에 일정한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미적 가치를 창출한다. 노래는 언어적 표현을 이러한 음의 미적 구체화로 형상화한다. 따라서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자기 표현이고 음은 미적 표현의 한 수단이라면 노래는 자기 표현을 음과 결합시켜 이를 형상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표현의 방법인 언어와 음에 대한 취향은 민족이 처한 풍토와 환경에 따라 다르다. 특히 민요는 민족음악의 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함으로써 민속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시의 모태로서 민요의 가사는 민간의 구비문학(口碑文學)이다. 음악과 문학은 부분적으로 상이하면서, 삶을 상상의 세계에서 구축하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이러한 음악과 문학의 미분성(未分性)이 민요를 존속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민족의 시초부터, 언어의 발생과 함께 있어 온 민요는 청각에 의지하는 모든 예술의 가장 극대화된 표현의지와 취향이 담겨 있다. 그래서 개개의 각 편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원시적인 삶의 지속을 희구하는 욕구를 그 바닥에 깔고 삶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서 그 「민족의 표현」을 미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와 같이 민요는 보편적인 민족적 삶의 의지와 감성의 복합체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민요의 연원과 발생
문자로 기록되지 않고 전해오는 민속문화의 연원을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구전되는 문화현상의 근원을 밝히는 것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앞에서 밝혔듯이 근원이 없는 민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가지의 민속현상을 해석하기 위해서 근원적인 측면의 고려는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해석을 위한 근원적인 가설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변화되어 전승되는 문화현상을 연구하는데 최초의 대답이 되면서 전체적인 이해의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민요는 음악과 문학의 복합적인 성격을 띤 문화현상이다. 오늘날의 분화된 사회에서는 음악과 문학은 상이하게 갈라지지만 넓게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합치된다. 그러므로 민요의 발생에 대한 이해도 예술의 발생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흔히 예술활동을 「미를 창조하고 표현하려고 하는 인간활동」이라고 하는데 원초적인 예술활동은 이와는 차이가 있다. 그 예로서 구석기시대의 그림은 대상의 재현이자 대상 그 자체이며, 소망의 표현임과 동시에 소망의 달성이었다. 이를 통해서 추정해 보면, 예술은 인간존재의 지속을 갈망하는 인간 특유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예술활동의 대상으로 자연의 상태를 그대로 표현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인위적 활동을 낳게 한 심성(心性)이 곧 예술을 탄생시킨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최초의 인간이 누구였는지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다. 다만 동물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조상이 지구상에 있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할 따름이다. 인간은 동물과 다름없는 상태에서, 인지(認知)를 유일하게 발달시켜 왔다. 그야말로 동물의 상태에서 처음으로 겪는 인지발달의 단계는 자아인식이며, 자연의 일보에서 분리된 자신을 느낀 인간에게는 최초의 두려움이 생겼다고 보여진다. 이런 자연에 대한 외경은 예술·종교·과학의 연원을 이루는 인간행위로 나타났다. 그래서 최초의 예술·종교·과학의 형태는 미분화되어, 자연에 대하여 강한 두려움(외경)을 가진 인간이 그들의 생존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단으로 대두되었다. 이 가운데 하나의 유기체로서,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오늘날과 유사한)에게 두뇌 진화의 최후 단계로 입을 통한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㬒㬉 입을 통한 의사소통은 노래의 형성에 최초의 암시를 던져 주었다. 이런 초기에,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로서 뿐 아니라 비록 그 흔적이 모호하기는 하나 종교적이고 예술적인 목적에서 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노래도 정신세계의 산물이며 언어의 사용은 집단생활 이후로 추정되어 집단정신의 산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A. 하우저」는 한 집단의 공통된 정신적 소유물은 정신적 노력의 산물로 규정하면서 노동이나 집단적인 즉흥작업의 결과로 보는 견해는 낭만주의적 망상㬓㬉으로까지 보고 있다. 이 같은 가정을 염두에 두고 우리 민족의 예술행위를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 사회에 있어 종합예술의 형태는 「위지(魏志)」동이 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여는 은나라 이후 정월이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국중대회를 치렀는데 연일 음식을 즐기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 이를 영고라고 했다. 길거리는 밤낮으로 노유를 가리지 않고 다 노래하니 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夫餘 以殷正月 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日迎鼓 行道晝夜 無老幼皆歌 連日聲不絶)
『고구려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즐겼는데 온 나라가 도시 촌락 할 것 없이 저녁이면 남녀가 모여 서로 노래하고 놀았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국중대회를 열었는데 이를 동맹이라 했다』(其民喜歌舞 國中邑落 暮夜 女聚 相就歌戱 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마한에서는 해마다 5월이면 파종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때 여러 사람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음식을 즐겼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춤을 출 때는 수십 명이 함께 일어나 뒤를 따르며 땅을 구르고 허리를 굽혀 수족이 상응했는데 마치 중국의 탁무(鐸舞)와 흡사했다. 수확을 거둔 10월에도 이와 같이 했다』(馬韓 常以五月 下種訖 祭魂神 群聚歌舞飮酒 晝夜無休 其舞數十人 俱起相隨 踏地低曷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上)
이밖에도 세조(歲條)에는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지내고 밤낮으로 술 마시고 춤추며 노래했는데 이를 무천이라 했다』(常田十月 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
는 기록이 있고 변한조(弁韓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민속으로는 노래하고 춤추며 음식을 즐겼다. 瑟이라는 악기가 있었는데 생김새는 중국의 筑이라는 악기와 같았다. 이를 타는 데는 곡도 있었다』(俗喜歌舞飮酒 有瑟 其狀似筑 彈之亦有音曲)
이상은 미분화 종합예술의 흔적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를 통해서 그 이전과 그 이후를 연결 지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기록은 원초적인 상태에서 문화적으로 상당히 진보된 고대사회의 기록이지만 여기에서 종교와 예술행위의 미분성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원초적인 상태에서 종교는 신성(神聖)에 의지하여 인간 존재의 지속을 원하고 예술 역시 인간 존재의 지속, 즉 삶을 위한 바램이 상상의 세계를 통하여 그대로 표출된 인간정신의 산물이다. 이와 같이 인간정신의 산물인 예술과 종교는 늘 인간의 삶(생존)과 직결되어 존재의 지속을 위해 신성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원초적인 예술은 그 무엇보다도 자연에 대한 외경으로 가득 찬 인간이 생존(존재의 지속)을 위한 방편으로 신성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 흔적은 삼국시대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나 신라인들은 가요를 초자연적이고 주술적인 힘이 있는 것으로 관념화했다.
이런 이해가 가능하다면,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춤과 노래는(춤은 인간의 동작과 함께, 노래는 인간이 소리를 낼 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원초적인 예술화를 거쳐 신을 즐겁게 함으로써 인간존재의 지속을 보장받는 신성의 제단에 쓰여진 듯하다. 따라서 이렇게 종교적인 의식을 위해 즐겨지던 미분화종합예술의 단계에서 노래와 춤은 다시 예술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분화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상과 같은 전제로 민요의 연원을 살펴볼 때, 민요는 역시 사회계층의 분리를 암시하는 상황에서, 현존하는 역사적인 자료로서 민요의 발생을 찾기는 힘들다. 일단은 정착생활과 함께 계층의 분화가 이뤄지고 집단의 계층이 분리되는 상황은 계급예술로서 민요를 출현시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후대에 민간에서 성립된 민요일지라도, 그 원초적인 삶의 지속요구를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민요의 본질
민요의 본질 파악은 그 각 편 하나 하나가 「민간」에서 생성되고 수용되는 예술작품이라는 점에서부터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작품을 이루는 예술의 본질을 미와 기술로 본다면, 민요의 본질은 민간이라는 한정된 계층에서의 음악적·문학적인 미와 기술의 복합체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요는 민간의 미의식이 음악적·문학적으로 표출되고, 민간인의 기술에 의해 다듬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그 창조 및 수용계층을 이루는 「민간」의 성격은 「비교적」이라는 척도에 의해 드러난다. 즉 사회전체에서 비교적 보편적이고, 다수의 기층 적인 성격을 때는 민간은 특수한 소수의 계층에 비하여 단순한 계급의 하위만을 의미하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바탕이 되는 계층을 말한다. 또한 민간은 사회전체의 재화생산을 실제로 담당하는 생산계층이기도 한다. 이때 민간에서 민요가 생성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즉 특별한 음악적인 지식 없이 민간인이 그야말로 순수한 미의식과 생활의 현장에서 체득한 음의 배합기술로 만들 수 있는 곡이어야 한다. 또한 민요의 수용과정에서 특별한 음악적인 지식 없이도 민요를 감상하고 배울 수 있는 곡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민요는 다른 어떤 곡 보다 폭 넓은 공감대 안에서 형성된다.
이런 과정에서 본다면 민요는 가장 쉽게 생성, 수용되어야 하는 조건을 지니며, 보편성 있는 공감대 안에서 형성되기 때문에 단순한 음률을 가진다. 즉 음의 형식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반복된다는 속성은 민요가 민간에 수용되는데 있어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민요의 각 편을 창조하고 수용하는 데에는 본능적인 미적 감각과 메떨어진 창조기술로도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민요는 상황과도 밀접하다. 이것은 시대적인 상황에서부터 구현상황까지 모두를 일컫는다. 이를테면 민요를 둘러싼 외적요인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외적 요인인 민요를 부를만한 시대적·사회적인 분위기 안에서도 민요는 생활자체와 밀접한 관련을 지녀야만 한다. 즉 민요가사가 시대적·사회적 관련을 가질 때 더욱 공감을 가지게 되고, 연행(演行)에 흥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민요에서 그 가사는 삶의 지속을 강하게 열망하여, 그것을 이루는 조건들이 다양하게 표현된다. 이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욕구가 직접·간접적인 표현으로 구체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공통적인 바램을 노래하기에 흥미를 가지고 모두가 동참할 수 있으며 이 흥미는 민요의 기능과도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민요는 쓰임새에 따라 일정한 기능을 갖는다. 민요를 기능에 따라 노동요·의례요·유희요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노동요는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로서 「모심기노래」,「논매기 노래」,「꼴 베기 노래」등을 그 실례로 들 수 있다. 노래의 박자와 리듬은 소리 패의 작업과 밀접하며 그 가사는 모두의 공감을 요구한다.
한 예로 집단노동요의 경우 대부분이 「매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기는 소리」는 창자(唱者)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부른다. 따라서 「매기는 소리」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사를 만들어야 하며 선소리꾼의 이 능력은 노동(작업)분위기의 조성에 절대적인 힘을 지니게 된다. 그래서 집단노동요의 가사는 집단 공동의 바램이 「자기 표현의 도구」인 언어를 사용하여 선소리꾼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유희요에는 「윷노래」,「강강술래」,「줄다리기노래」등이 있다. 그런데 유희요의 경우, 단순히 가사를 통해서만 이야기될 수 없다. 「놀이」라는 문화현상의 맥락 안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놀이」에서는 재미라는 본질적인 요소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유희요는 놀이의 일부로서, 「재미」를 돋우는 요소가 된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놀이는 단순한 에너지의 방출이 아닌 근원적인 삶의 범주로서 제2의 가공세계㬗㬉를 창조한다. 이 같은 가공세계의 창조는 삶의 지속을 바라는 욕구가 놀이로 나타난 것이며, 유희요는 그 도구로서 나름의 기능을 수행한다. 그래서 유희요에는 삶의 욕구가 반영되면서, 재미를 느끼는 놀이의 본질에 걸맞게 가락의 흥취와 가사의 내용은 순전히 즐거움을 줄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의의의의례요는 儀禮(儀式)와 함께 불려지는 노래로서 「지신밟기 노래」,「상여소리」,「덜구소리」등을 실례로 들 수 있다. 특히 의례요는 未分的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 노동요의 성격을 띤 노래와 유희요의 성격을 띤 노래가 있다.
그러나 이는 외형적으로 드러난 현상이고 실제 의례요는 연원은 그 어떤 노래보다 깊을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상 祭歌(여기 제가는 민요의 儀禮謠는 물론 무가(巫歌) 등 祭儀 때 불려지는 모든 노래를 말한다)가 노동요로 발전한 예는 허다하지만 노동요가 제가로 쓰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㬘㬉
고대사회에서 祭天儀式은 물론 여타 원시종합예술, 나아가서는 인간 행위 모두를 하나의 의례로 본 것과는 달리 오늘날은 대체로 「종교의 실천적 표상」을 의례(제의)로 본다. 이처럼 오늘날 의례의 범위가 축소됨으로써 의례요의 폭도 줄어든 셈이다.
儀禮謠에서는 언어의 주술적(呪術的)인 힘을 믿고, 神聖의 세계에 의지하여 노래를 함으로써 생존에 필요한 요건인 「福」을 기원하는 형태를 지닌다.
이와 같이 민요는 기능에 따라 노동요·유희요·의례요로 일단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각편 전체는 그 궁극적인 목적에 있어서는 공통되는 핵이 있는데 바로 삶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노동요는 힘겨운 작업에 리듬을 주고 그 리듬에 따른 에너지를 분출시켜 힘든 일을 조금이라도 즐겁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준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즐겁고 효율적」이라 하는 것은 작업(노동)에 있어 필수조건으로 받아드려지고 있다. 지겹고 힘들기만 한 작업은 확실히 인간의 생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이 위협을 주는 요소를 해소시켜야 만이 인간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생존의 문제, 곧 존재지속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유희요는 놀이라는 즐거움과 흥을 삶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즐거움에 대립되는 괴로움이나 고통·역경은 존재의 지속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반면 즐거움이나 흥은 삶의 활력소·향기로서 삶을 풍요롭게 하여 생활(존재)을 연장시킬 수 있는 기능을 충분히 한다.
의례요는 글자 그대로 신이나 신성을 향해 생존의 문제와 관련된 소망을 기원하는 노래이다. 가난한 사람은 부(富)를, 불행한 사람은 행복을, 병이 있는 사람은 건강을, 의례를 통해 기원함으로서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 이 욕구가 곧 생존을 위한 필수요건이며 이것이 충족되면 인간의 궁극적인 소망인 存在가 지속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노동요·유희요·의례요는 그 외적으로 드러난 양상이나 성격은 다르겠으나 노래가 불려지는 그 근원적인 요인은 동일하다.
의례요이기에 노동요나 유희요보다 神聖의 意味를 강하게 지니고 있지만, 노동요에서의 노동(작업)의 능률화, 유희요에서의 놀이의 즐거움은 궁극적으로는 삶의 문제와 만나는 生存方式으로서 존재한다. 다만 삶의 문제와 어떻게 만나는가, 차이가 있겠는데 이러한 차이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양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기에 민요는 民間의 생활예술이면서 미를 창조하는 집단의 의지뿐 아니라, 自我 存在의 持續을 원하는 心性에서 출발하여 그 심성을 예술적으로 노래를 통해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민요연구의 목적
민요는 民間藝術로서 민족문화의 바탕이 되는 민요의 일부이다. 민속은 민족문화의 보편적인 문화현상이면서 동시에 모태가 된다. 이 중에 민속음악은 대부분이 민요로 이뤄졌으며㬙㬉 이런 비중은 민요가 민족음악의 모태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민요는 民間에서 자연스럽게 生成되어 불려진 노래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민요는 삶의 지속욕구가 은유적인 표현과 비록 메떨어졌으나 소박한 표현기술에 의해 불려져왔다.
따라서 민요를 연구함으로써 얻은 첫 번째 수확은 민족의 원초적이며 보편적인 삶을 새롭게 파악하는 것이다. 삶의 욕구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상상의 세계에서 의지실현을 노래하는 것은 현실을 이끌어 가는 고삐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민족의 근원을 찾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민요는 문학이며 음악, 그래서 예술의 범주에 해당된다. 크게는 민족문화·전통문화의 한 부분이다.
전통의 고수만을 부르짖으면 문화는 침체되고 전통이 무너지면 근원을 상실한다. 우리가 전통을 필요로 하는 것은 스스로의 근원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民俗은 곧 자기의 根源이다. 자기의 근원을 잃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슬기와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민속이다.㬑㬐㬉
민속을 찾는 것은 民族의 근원을 파악하여 현재의 삶은 물론 미래 삶의 지표를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말하자면 민족의 근원을 민요라는 民俗財를 통해 조명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민요 속에 그 민족의 정신이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요를 연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수확은 민족의 예술적인 창조력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民間에서 이루어져 불린 민요는 민족의 예술적 공감이 빚은 산물이다. 이는 민족의 삶과 함께 胎動해서 민족예술의 일맥을 잇는다. 그래서 민요는 민족의 원초적인 예술적 창조력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이런 예술적 창조력은 마땅히 민족의 숨결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보다 나은 미래의 예술을 지향하는 뿌리로 삼아, 근원에서 일맥상통하는 주체성 있는 문화창조와 계승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얻을 수 있는 수확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요연구는 시대적인 요청이다. 甲午更張 이후로 급격한 외래문화의 수용은 민족문화를 미로의 미아로까지 몰고 갔다. 오늘날 문명의 발달로 인한 잦은 국가간의 접촉은 이런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한 예로 음악은 양악을 중심으로 해서 교육되고 있으며, 현대의 젊은이는 팝 가락은 읊조릴 수 있어도 자연적인 풍토에 적응되어 불려진 전통적인 우리 가락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사람마저 드문 형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것에 대한 자각과 애정이 부족했던 탓도 있지만, 민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체계적인 理論化 작업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민요의 연구는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음악의 이론화를 통해서 창조적인 전통음악의 확립과 계승을 전제로 연구되어야 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음악이론을 정립하여 미래의 음악교육에 적용시켜야 한다.
이와 같은 작업을 위해서는 민요연구를 통한 민족 고유의 음에 대한 傳統的인 美感의 도출이 필연적이다.
민요는 단순히 음으로 전달될 뿐 아니라, 언어를 축약하고 함축한 초보적인 詩的 表現도 지녔다. 본래 우리의 詩歌는 노래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詩는 詩語를 통한 표현에 치중되면서 전통적인 음률의 가락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 결과 표현양식이 제약을 받아 생동감 넘치는 언어적 표현의 詩가 아닌 문자만의 나열로 전락된 감마저 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詩歌의 접맥을 통한 창조적인 現代詩의 전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민요연구는 필연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註】
1) A·하우저著 白樂晴역, 文學과 藝術의 社會史 古代·中世편, 創作과 批評社, 1983. pp.13
2) 리처드·리키, 로저·레윈 共著 金光億역, 오리진, 主友新書, 1983. pp.220∼253.
3) A·하우저著 崔成萬·李丙珍역, 藝術의 社會學, 한길사, 1983. pp.213∼214.
4) 梁注東, 增訂 古歌硏究, 一潮閣, 1965. pp.54
5) 李鍾厚·權熹耕공저, 美學入門, 松園文化史, 1979. pp. 117
6) 權五聖, 定規的 形式感에 깃든 개성과 흥취, 民俗과 한국인의 意識 2 민요, 漢大新聞,
한양대학교, 1983년 3월 23일자
7) J·호이징하著 權寧彬역, 호모루덴스, 홍성사, 1981. pp.9∼41.
8) 金宅圭, 韓國民俗文藝論, 一潮閣, 1980. pp.17.
;) 李秉元, 韓國音樂의 民族音樂的 硏究의 問題點에 관한 考察 民族文化硏究의 方向,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 p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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