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예술의 흐름과 평가·문학리뷰

한국 장편소설 창작의 파행성




정현기 / 문학평론가

1)

우리 소설사는 처음엔 신소설이나 '춘원(春園)'의 문학에서 장편 소설적인 것으로 시작되어 20년대에서 단편 소설적으로 전환한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이때로부터 우리 소설사는 주로 단편소설들에 의하여 그 정통의 선이 그어졌고, 장편소설은 영성(零星)과 같이 보기 힘들다.

「1919년 2월 일구체적(一構體的)(sic)신소설 운동이 비롯된 지 만 십 년 수개월, 많은 변천과 이동 뒤에 많은 무시와 모멸 아래서 그대로 끊임없는 운동을 계속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조선소설이 형성되었다. 기초공사도 끝났다. 그러나 아직 건설이라 하는 대공이 남아 있다.」

첫 인용문은 白鐵의 「소설 50년의 점경(點景)」의 일부이고, 다음 글은 김동인이 쓴 「한국근대소설고」의 일부분이다.

이인직을 한국 소설사에서 앞으로는 어떻게 취급하게 될지 아직은 뚜렷하게 결정된 것은 없지만, 그가 친일문사였을 뿐 아니라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 점점 뚜렷해져감에 따라 그의 문학적 공적이란 실은 매국행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는 판정은 불가피해 질 것으로 보인다. 그가 1906년에 일간지 <만세보>에 「혈(血)의 누(淚)」를 발표했고 이어서, 1907년, 1908년 같은 신문에 「귀(鬼)의 성(聲)」,「치악산」을 연재했으며, 그의 「혈의 누」발표 이후 만 10년이 지난 1917년부터 이광수가 <매일신보>에 한국 근대소설의 효시라고, 백철 문학사에서 이야기되는 「무정」을 연재하였다는 사실은 맨 첫머리에 인용한 바 백철이 진단하는 한국 소설사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이인직 다음으로 신문 연재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광수는 1930년대 후반까지 「재생」,「마의태자(麻衣太子)」,「혁명가의 아내」,「흙」등등의 이른바 대중 계몽성을 띤 통속 대중소설을 연재하였는데 그의 그런 눈부신 활동은 한국소설 창작계의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수립하게 된다. 일간 신문사들이 어떤 의도로 이런 대중소설을 연재하게 되었으며, 자각들은 또 어째서 이런 신문사 요구에 응하게 되었는지 그 세세한 내력을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쌍방 모두가 현실적인 자기이익, 말하자면 신문판매 부수의 신장이라든지 솔찮은 원고료 수입이라는 상호관계가 의견합치를 전재로 했으리라는 점은 틀림없는 진실일 것이다. 물론 그 작품들을 통해서 대중들을 계몽한다는 뜻의 긍정적인 부분이 아주 없지 않으리라는 점도 수긍할 필요는 있겠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 소설사가 이렇게 일간지의 한 칸을 빌어, 그것도 그 일을 시작하던 때가 일제통치의 괴롭고 수모에 찬 시절이었다는 점과 그처럼 매일매일 끊어서 읽게 할 수밖에 없는 신문소설로 시작됨으로써, 통속적인 흥미위주의 소설적 재미를 한국 독서계에 맛들게 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중대한 논의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이 문제에 관한 학문적인 탐구로는 1850년대 대중 취향에 맞는 소설로서 일약 영어 문화권에 문명을 떨친 영국의 찰스 디킨스 연구와 충분히 비교될 소지가 있어 보인다.)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이 불가피하게 지닐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통속적 요소가 한국의 경우 일제 총독부 검열이라는 혹독한 참견과 합성하여 만든 기형적 버릇들(bias)은 가능한 한 충분한 검토를 거칠 필요가 있다. 당대 삶이 총체적으로 지니고 있는 한 덩이의 진실을(예컨대, 속박으로부터 자유라든지, 자주성 보장이라든지, 평등이라는 등식의) 지극히 통속화함으로써 대중들로 하여금 눈앞에 닥친 자기문제들을 정확하게 못 보게 하거나 눈감고 안 보게 하여 이른바 만성적인 체념증세에 빠진 진실직시 기피증으로 통속적인 이 신문 연재소설들이 독서대중을 길들여 왔음은 예나 이제나 맥을 같이 하고 있어 보인다. 이런 현상이 일본 제국주의 통치기술자들의 간계(奸計)와 양적으로 혹은 질적으로 얼마만큼이나 이어지고 있었는지를 이 자리에서 간단히 논급될 성질은 아닐지 모른다. 언제나 현상에는 그 의미의 앞쪽과 뒤쪽이 공존하게 마련이고 그런 현상파악을 위해서라면 상당한 양의 논거분석이 실증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 이미 김동인이 이광수 문학에 반기를 들면서 신문 연재소설의 부당한 돌출을 비판한 사실이 있음을 되돌아 볼 때 이 논거가 그리 허황한 가설만은 아님을 확인할 수가 있다.

위에 인용해 보인 바 「아직 건설이라는 대공(大工)이 남아 있다」고 한 김동인의 언표 속에는 소설을 풍속개량이나 사회계몽의 수단으로 파악한 이광수 문학의 설익은 도덕성에 대항하려는 뜻 못지 않게 삶의 진실을 통속화하는 상업적인 신문 연재 소설의 우려할 만한 한 풍조에 대항했다는 점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김동인 자신도 후기에는 어쩔 수 없이(?) 신문 연재소설로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작가적 수치를 감수해야 했지만 그가 한국소설의 대공을 건설하겠다던 포부와 그 자부심이란 바로 이광수의 문학적 발판이었던 신문이라는 일간지에 예속되는 것으로부터의 독자성 획득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91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축하를 핑계 삼아 모였던 한국인 일본 유학생들 사이에 틔웠던 3·1운동의 싹이 있던 날 밤 주요한과 김동인은 다방 파우리스타에 들러 진한 커피시럽을 마시고 곧장 동인의 하숙집에 와서는 「정치 운동은 그 방면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문학으로―」하는 문학 담으로 흘러 종당에는 그를 독자적인 힘으로 발표매체를 만들자는 그래서 마땅히 떠오른 동인지 《창조》가 나오게 되는데, 당시의 거금에 속하는 200원을 집으로부터 가져다가 남의 신세질 것 없이 직접 문예지를 만들었다는 것은 김동인 그 스스로가 자부하듯이 상당히 순수하고 또 독창적인 바 없지 않다. 동인지를 만들던 그들의 눈에 이광수의 소설세계란 진지한 문예물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고 그러므로 진정한 한국의 신문학을 보려면 자기들의 <창조>에 발표된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4천년, 이 민족에게는 <신문학>이라는 꽃이 그 봉오리를 벌리기 시작하였다.」,「문단 삼십 년의 발자취」라는 글에서 동인지 《창조》를 발간하면서 회고한 김동인의 말이다. 그의 나이 20세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일본 유학생 기관지 《학지광》이 있었고, YMCA의 《현대》가 있었음에도 김동인이 유독 이광수 문학에 도전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할 산맥으로 생각했던 점은 보다 깊은 검토를 요하는 점이긴 하다. 그러나 어떻든 일간지에 발표하면서 끼친 이광수 문학의 영향을 우려할 만한 것으로 그가 파악하고 있었음은 틀림이 없다.

「셋째로는 문학청년 및 사회소설에 대한 오해를 일으키게 한 것이니, 도덕적 표준이 엄한 노인들은 소설을 가리켜 청소년을 타락케 하는 연애희문(戀愛戱文)이라 하였고 문학청년들은 소설이란 사회개조, 특이 연애 해방을 표준삼은 연애물어(戀愛物語)라는 개념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도 또한 춘원의 기초의 모든 작품의 영향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국근대소설고(韓國近代小說考)」(서울 : 홍자(弘字)출판사, 1969)에서 이광수 소설의 악영향을 김동인이 지적한 말이다.

2)

진실의 통속화라는 문학의 사회적 예속화라는 우려를 함께 실은 신문연재대중소설의 부정적인 영향력이 이렇게 시작되었다면, 이미 위에서 암시된 바, 「1919년에 필자와 늘봄(田榮澤)과 요한의 몇 사람으로 시작된 《창조》의 문예운동이 일어났으니, 신흥소년들의 실력은 부족하나마 열(熱)로 충만 된 운동이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보여주려 한 것은 결코 신·구 도덕이나 연애자유를 주장하는 이러한 소국부(小局部)의 것이 아니고 인생의 문제와 번민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발간을 시작한 동인지 형식의 문예지 발행은 앞에 지적한 신문연재 대중소설창작의 파행성 못지 않게 또 하나의 한국소설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뿌리내려 오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문예지를 통해서 근 60여 년 간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을 배출해 내었고 그 매체가 다듬은 소설적 성과와 한국소설의 예술적 경지를 개척하면서 문예물 독자층의 두께를 더해 왔다는 긍정적인 관념은 이미 여러 학자들의 문학사가 정리하고 있으므로 논외로 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문예지 발행의 전통적인 관념이 알게 모르게 한국문화계에 끼친 부정적인 요소가 있음은 지적되어야 할 필연적인 사항으로서 논급될 필요가 있다. 문예지를 발판으로 할 때 생기는 소설의 발전적 저해요소는 요약하면 사물을 보는 시야 폭의 왜소화라는 점이다. 이제까지 한국문단이 문예지를 주관·장악한 사람들의 특권에 의해 어떻게 지배되어 왔는가는 논외로 본다 하더라도 작자들로 하여금 자기 삶이나 사회적인 현상들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밀도 있게 장편화하는 수렴을 은연중에 막아 온 것은 일간지를 발표매체로 삼은 버릇들임 못지 않게 이 문예지라는 월간, 단편적인 수록원칙도 그 책임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문예지란 알다시피 월간, 격월간, 계간, 반년간 (아직, 순간(旬刊) 문예지는 없다.) 등인데, 원칙적으로 소설의 경우 한 호에서 끝을 내는 단편소설을 수록하는 편집을 해왔다. 월간 문예지(기타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에 단편을 여러 편 수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가 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 필연성 가운데는 이미 60여 년 문학사 속에 탄생한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균등하게 발표토록 함으로써 민주사회의 균배 원칙을 지킨다는 마땅하고도 명분이 사는 공통압력이 작용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장편을 연재로 한다든지 분재할 경우 과연 매달 몇 편씩이나 소화할 수 있겠는가 ? 이런 염려가 끼리끼리 문예지를 독점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스러우려는 편집 책임자 의도와 결합될 때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단편소설 양산이라는 현상이었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진실의 통속화와 왜소화, 이 두개의 함정이 작가들로 하여금 작품활동을 직업으로 삼는데도 크게 방해한 요소였다는 점을 나는 믿는다.

신문연재 대중소설로 생계수단을 삼는 작가들은 우리가 마땅히 통속적인 대중작가로써 그 인기나 대중취향에 영합한 만큼의 호응 도에 따라 인정하고 있고 그들 역시 떳떳하게 처신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이 문단(?) 등단 시에 문예물(?)이라는 보증 꼬리표가 붙어있는 단편소설을 썼고 틈틈이 단편이나 중편을 문예지에 발표함으로써 스스로가 결코 대중작가가 아닌 진지한 작가임을 자처하려는 묘한 정신적 허기증을 보여왔다. 그것은 바로 이광수와 김동인 대표적으로 보여준 기이한 파행성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독서층 역시 이런 기묘한 현상 한복판에 서서 문예지에 실렸던 단편 모음집은 읽기 힘든 순수문예물이라는 인식과 함께 그런 작품들은 중·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교과서에서나 취급할 어떤 근엄한 물건인 것처럼 취급하는 버릇에 길들여 왔다. 그러므로 먹고사는 수단은 일간지 연재로 하고 문학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는 가끔씩 진지한 단편들을 발표한다는 식으로 작가 스스로가 최면을 걺으로써 소설창작의 절름발이 발자취를 남겨 놓았다.

한국 작가들이 이처럼 진실의 통속화 곧 장편, 사물의 틀을 왜소화 함, 곧 단편이라는 두 함정 속에서 자기를 정립하기 위해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미묘한 갈등을 견뎌내야 했던 또 한편 독자들도 작가 못지 않게 문학작품의 통속적인 취향에 길들거나 아니면 단편소설에 맛을 들여 사물을 보되 짧게 요약하고 함축하는 이른바 눈 넓이의 좀팽이 됨을 불러 왔음은 별도의 고증자료를 동원한 논증을 필요로 한다. 이 눈 넓이의 좀팽이 됨이란 사람을 성급하게 하고 참을성 없게 하며 형편없이 마음을 바쁘게 만드는 생활의 근대도시화와 함께 합성하여, 아마도 현대적인 우리 삶의 철학적인 해명을 돕는, 자료로도 이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작가들이 4·5년 혹은 6년 걸려서 장편소설 한 작품을 완성했다는 예를 우리는 아직 보기 힘든 형편이다. 이런 문학현상의 파행성은 작가 생계라는 무거운 짐과 크게 관련되고 있다는 점이 그 커다란 하나의 외적 요인이라면 그런 요인을 꿰뚫는 작가개인의 천재적 욕망의 미흡은 그 내적 요인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지적한 한국문학현실의 인과관계가 아무런 저항이나 그 시정노릇도 없이 진행되어 왔다고 단언해도 괜찮을까 ? 이제까지 설명한 두 개의 함정은 지금까지도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단정해도 될까 ?

3)

표면적으로 보아 이 함정은 더욱 뿌리를 깊게 내렸고 넘어서기 어려운 어떤 모습으로 굳어버린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두 함정이 함정으로 인식된 것은 오래 전부터였음에 틀림없다. 각 일간지가 중편소설 싣기를 시도한다든지 단편소설들을 실음으로써 문예지가 독점하다시피 해 온 문예물을 신문이라는 발표매체에서도 발표하도록 지면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내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더더구나 매해 정초가 되면 습관적(?)으로 실시해 온 신춘문예라는 작가 등용 제를 일간지들이 갖고 있어서 그것을 통해 나온 작가들을 고립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도덕적인 책임감이 아주 없지도 않아서 일간지가 문예물을 다룬다는 몸짓은 이제 와서는 불가피한 어떤 관성(慣性)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일간지가 가끔씩 상당한 상금을 내걸고 장편소설을 모집해서 얼핏 보아 문학진흥을 위해 크게 선심 쓰는 듯한 인상을 주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몸짓들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작가수련이나 독서 폭의 깊이를 확충해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신문사 문화부를 기웃거리는 작가는 적당히 문예적이기를 힘쓰면서 철저하게 통속화해 온 것이 신문연재 대중소설을 써서 인기를 얻은 이들의 숨길 수 없는 모습이었다. 신문사란 어차피 돈벌이가 목적인 기업체라는 점에서 진정한 자유, 진정한 진리를 추구하려 한다는 의미로 몸을 세운 작가들에겐 깃들이기 곤란한 매체라는 것이 예나 이제나 숨기지 못할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일간신문사 주인들의 뜻에 얽매여 작가가 자기 마음대로 쓰고 싶은 말을 쓸 수 없는 게 일간지 연재물이라고 통박하면서 자유스럽게 써서 완결된 예술품으로 발표할 수 있다고 믿는 문예지 《창조》를 만들어 그 유행을 불러일으킨 김동인 자신은 무책임하게도 자기가 기성작가로 자리를 굳히자 그 문예지 경영을 팽개쳐 버렸고, 자신이 그처럼 못마땅해 한 일간신문에 대중물 역사소설을 쓰는 기이한 자기 변모를 보여준다. 이 때부터 이미 문예지의 숙명은 결정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창조(創造)》, 《폐허(廢墟)》, 《백조(白潮)》, 《조선문단(朝鮮文壇)》, 《인문평론(人文評論)》, 《문예(文藝)》 등, 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문예지는 상당히 많은 수가된다. 그만큼 문예지를 통해 자기예술을 나타내려고 꿈꾸는 문학인들의 바람은 컸던 것이고 그 유혹하는 바가 강렬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밝혔듯이 문예지에 문예물을 싣는다는 매력이 작가들의 진정한 창작의욕을 충족시켜 준다는 커다란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예지 또한 지면의 한계 때문에, 그리고 매달 혹은 정기적으로 내놓아야 한다는 제한 때문에 상당히 무시 못할 부정적 요소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단편소설만이 문예물이라는 은연중에 생긴 장편 불신풍조 때문(?)에 한국 작가들은 장편소설 쓰는 훈련이 거의 하나도 안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전작 장편소설을 진득이 앉아서 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내겐 보인다. 물론 이런 작가들 시야의 왜소화 현상을 그 관련자 모두 이미 우려하지 않았던 바는 아니다. 최근에 문예지 기획으로 나오는 중편소설 전제나 연작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을 싣는 것은 이 현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기획이 완전하게 작가들을 문예지라는 틀로부터 해방시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어차피 문예지도 정기적으로 발간되기 위해서 그 비용은 충당되어야 함으로 문예지의 운명이 그렇게 순탄한 것으로만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소설의 어제까지의 순환과정을 통해서 훈련된 독자들의 독자층이 작가들의 수련 미숙과 마찬가지로 엷은 데다가 한국 소설의 초창기로부터 이제까지 거세게 밀려들어 온 온갖 외국 작품들이 무자비하게 우리의 독서 층을 어지럽혀온 여러 계통의 현상들을 감안할 때, 한국의 소설적 문학행위는 이중 삼중으로 어려운 상태 위에서 그 맥을 풀어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시급하고도 심각한 문학현상 가운데 하나는 독자대중들이 소설이란 부도덕한 연애 얘기라는 이광수가 수립해 놓은 통속적인 작품 관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가 하는데 있다. 이 과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은 지금도 일간지에 실린 통속 대중소설들이 작품집으로 나와 일반 독자대중들 속에 파고들어 감각적인 인기에 영합하고 있는데 그 열기가 어느 정도 거센가 하는 것을 보면 알만 한 일이다. 책꽂이에 꽂아 놓기를 부끄러워하는 책들만을 사서 읽는 독자층들을 무슨 힘으로 제어할 수 있을까 ? 졸속하게 번역해 내놓는 외국의 통속물들과 경쟁적으로 치닫는 이 통속화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 한국 소설 계가 정리해야 할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는 중·고등학교 과정 동안 억지로 작가와 작품 이름만을 외게하여 한두 편 단편 작품들을 읽게 하는 국어교육과정의 시험위주 교과목 편성이라는 문제점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그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일단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읽는 책이란 이른바 인기 물이라는 통속적 대중소설만을 접하는 독자층이 많은 퍼센테이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국 독서풍토의 현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옳을까 ? 독서 층의 두께가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작가들의 진실에 접근해 가는 작가 정신도 두려워질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런 문화전반에 걸친 관찰의 결과를 놓고, 그러면 그런 문제점들 위에 놓여 있으면서도 한국소설이 이제까지 쌓아온 업적인 어떤 것들인가 ? 그리고 그것들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을까 ? 이 논의는 일단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