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40년 오늘의 문화예술 문학·兒童文學

혼란 속에서 자리잡힌 환상과 현실 속의 동심




김요섭(金耀燮) / 아동문학가·목원대 교수

혼미의 해방 후

1945년 8월 15일의 민족해방은 우리 모국어의 소생의 날이며, 이 나라 아동문학이 불멸의 어린이들과 함께 영광을 차지한 날이다. 이 영광된 해방 40년의 아동문학을 이야기하고자 하면 해방 그 전야·그 깊은 밤 속에 파묻힌 채 영영 우리 역사의 표면에서 부서져버린 아름다운 별들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야말로 우리 아동문학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죄다 가지고 간 비밀의 광맥이기도 하다.

1938년 조선어 폐지가 국민학교 수업에서 강요되고, 1940년 8월 조선일보·동아일보가 강제 폐간 당하고, 1941년 4월에는 한국문학의 표현지인 《문장》과 《인문평론》역시 강제 폐간되었다. 이와 같은 암흑기에 젊은 아동문학가들에 의하여 지하잡지 《童園》이 1944년에 간행되어 비밀리에 배포된 사실이다. 이 동인의 이름을 적어보면 우효종, 임인수, 이세보, 윤동행, 이인수 등이다. 이 밖에도 많은 20대의 동요시인들이 작품활동을 했으나 그 작품들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 무엇보다 애석한 일이다. 해방과 함께 아동문학의 무대인 아동잡지들이 이후죽순처럼 태어났다. 이 때 창간된 중요한 잡지는 다음과 같다.

《어린이 신문》(타블로이드판의 주간잡지식 신문)·《새동무》(국판 40페이지, 정가6원)·《별나라》(국판 40페이지)·《소학생》(주간으로 나오다가 월간으로 됨. 4·6배판 32페이지)·《별나라》·《어린이》·《어린이 나라》(국판)·《아동구락부》(국판, <진달래>개제)·《소년》(국판)·《아동문학》(국판 62페이지, 문학가동맹 아동문학위원회의 기관지) 등이다.

이들 잡지를 통하여 나타난 작품 경향을 세 종류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는 어린이를 천진무구하게 보는 아동관에서 작품활동을 한 시인·작가들이다. 이들 작가는 주로 《소학생》《어린이 나라》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둘째는 어린이의 계급성을 인정하고 해방 직후의 감격과 불투명한 정치상황의 영향인지 모르겠으나 45년 말까지 작품을 보면 정치적 색채 없이 무궁화를 노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46년부터는 정치적 선전과 공격성을 띤 작품을 발표했다. 이들의 표현지는 《새동무》·《별나라》·《아동문학》등이었다.

셋째는 해방과 함께 어린이들이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게 되어 문학시장이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흥미 본위의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소년》지에서 많이 활동했다. 해방 후 6·25동란까지의 사이에 간행된 중요 작품집은 다음과 같다. 동요·동시집으로는 윤석중 《초생달》·《굴렁쇠》·《아침까치》, 박영종 《초록별》·《박영종 동요집》, 이원수《종달새》, 윤복진《꽃초롱 별초롱》, 한인현《민들레》, 김원용《내고향》, 권태응《감자꽃》, 김영일 《다람쥐》, 동화·소년소설집으로는 마해송 《토끼와 원숭이》, 이주홍《못난 돼지》, 현덕《포도와 구슬》·《토끼 삼형제》·《집을 나간 소년》, 이원수 《봄잔치》·《숲속나라》, 노양근《열세 동무》, 임인수 《봄이 오는 날》, 주요섭 《웅철이의 모험》, 박태원《이순신 장군》, 방기환 《누나를 찾아서》·《꽃필 때까지》, 김송《방랑하는 소년》, 최병화《희망의 꽃다발》·《십자성의 비밀》·《꽃피는 고향》, 정인택 《하얀 쪽배》·《봄의 노래》, 정비석 《마음의 꽃다발》, 양미림《운동화》, 김내성《쌍무지개 뜨는 언덕》, 염상섭 《채석장의 소년》, 이성표《신라의 별》, 동극집으로는 방기환 《손목 잡고》 등을 들 수 있다.

이상 단행본으로 출간된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해방 전에 쓰여진 것이 많다. 해방 후부터 6·25사이에 등단한 신인들은 이재철 교수의 「한국현대아동문학사」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방기환, 이종항, 이주훈, 김진태, 이종성, 양미린(이상 동화·소년소설 부분), 임인수, 박은종, 권태응, 한인현, 어효선, 최계락(이상 동요·동시 부분)

이 당시 순수하게 동심세계를 그린 작품들은 몇몇 사람을 제하고는 무미·무내용하고 교훈이 생경하게 튀어나온 습작 정도의 작품이다. 대개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취재하여 작품을 쓸 때 마해송의 《토끼와 원숭이》, 이원수의 《숲속 나라》는 공상적인 작품이었다. 마해송은 초기의 탐미적 경향에서 점차 세태 인정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마해송씨는 《토끼와 원숭이》에서 약소민족과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사대사상을 비유 풍자했고 이원수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공상세계로 그려보려고 했다. 이 두 작품은 도식적이었으며 문학적 형상성이 미흡했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내세운 문맹계열의 작품은 30년대 카프문학의 재현이었다. 직선적인 표현으로 사회비판을 하며 어린이를 정치의식화하여 혁명세력으로 구축하려고 했다. 이의 반증으로 《새동무》1946년 4월호에 시린 작가 윤세중(尹世重)의 《정당(政黨)이야기》일부를 소개해 보면,

여러분들의 아버지 형님 오빠 아저씨 또 집에 놀러 오시는 손님들이 모두, 두세 분만 모여 앉으시면 으레 하시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십쇼.

무슨 당(黨)이니 어떤 당은 어떠니 어느 당이 제일 좋으니 어느 편 당이 그 중 옳으니 이런 말씀이 꼭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분은 당장이래도 좋으니 오빠나 형님이나 아버지가 어른들끼리만 앉아서 이야기하는 방에 들어가십쇼. 그래 한쪽 구석에 얌전히 앉아서 그 어른들의 하시는 말씀을 귀 익혀 들어보십쇼. 영낙없이 그 말이 나옵니다. 무슨 당(黨) 이야기가요. 만일 어른들 말씀하는데 애들이 들어오면 못 쓴다고 하시면 선뜻 나와서 빈지나 문밖에 서서 귀를 방에 대고 가만히 들으십쇼.

위의 글에 나타난 대로 그들은 어린이 문학 역시 정시선전 도구화하려고 했다. 한편 이들은 《아동문학》지를 중심으로 이론적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모든 어린이들을 에덴동산에서나 볼 수 있는 행복스러운 어린이들로만 취급한다고 순수 동심주의 작가들을 '천사주의 문학'이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한편 동심주의 작가들의 문학이론은 별로 대할 수 없었다. 있다고 하면 《시문학》(박목월주간) 제2집에 실린 윤복진의 <윤석중론>정도이다. 동심주의 작가들의 문학의식은 너무 순박했거나 아니면 유치하거나 안이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어린이들의 가장 애독한 작품은 김내성(쌍무지개 뜨는 언덕)이었으며, <소학생> 48년 8월호 소년소설 특집에 실린 김영수 <달님도 울었읍니다>도 감동을 주는 가작이었다.

1948년 단선 단정 반대 속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필자는 이상한 예감이 감돌았다. <등불없는 집>이란 동화를 발표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농민이 겪는 고통을 제재로 쓴 작품이었다. 얼마 뒤 동족상잔의 6·25가 터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상은 민족 비극 속에 빠져 들어가는데 그것을 예감하거나 막아보려는 작품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 후손에 대한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전란과 50년대

1950년 6·25동란이 터졌다. 이로 말미암아 문단형성에도 변화가 있었다. 우선 북한에서 1·4후퇴 때 여러 작가들이 월남했다. 동화작가로 강소천, 동요시인으로 한종동, 박경종, 박홍근, 장수철 등이다. 한편 남쪽에서도 북으로 간 아동문학가들이 많다.

피난지 대구와 부산에서 잔란중 《소년세계》《새벗》《학원》《어린이 다이제스트》 등의 월간지가 발행되었다. 이 잡지를 중심하여 피난시대의 어린이 생활이 그려진 아동문학 작품들이 활발하게 발표되었다. 이 때의 작품 내용들은 전란 중인만큼 피난생활에서 겪게 되는 여러 생활상을 주로 소재로 했다. 한편 반공적인 작품들도 많이 창작되기도 했다. 가장 두드러졌던 소재는 전쟁고아들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소재는 같았으나 작자에 따라 그 시각은 달랐다. 고생스러운 피난살이 속에서도 밝게 낙천적으로 노래한 윤석중 같은 시인이 있는가 하면 이산의 슬픔을 애상조로 그린 작자도 있었다. 한편 정쟁을 비판하는 작품도 있었고, 남북 통일의 꿈을 그린 작품도 많이 있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되자, 피난문단은 다시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한다. 50년대의 문학활동을 문학사가들은 통속아동문학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시기로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순수아동문학가들의 이 때의 활동은 두 갈래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강소천의 동화 또는 윤석중의 동요에서 볼 수 있는, 착한 어린이상을 추구하는 창작태도이다.

둘째로는 마해송, 이원수, 필자 등이 전개한 사회성이 강렬한 창작 태도를 들 수 있다.

50년대의 주요 작품집으로는 다음 것을 들 수 있다.

강소천 《꿈을 찍는 사진관》(1954), 박화목 《부엉이와 할아버지》(1955), 이주홍《아름다운 고향》(1954), 최태호《리터엉 할아버지》(1955), 김요섭《깊은밤 별들이 울리는 종》(1957). 《따뜻한 밤》(1957)《오 멀고먼 나라여》(1959), 마해송《앙그리께》(1955)《모래알 고금》(1958), 이원수《오월의 노래》(1953), 이영희《책이 산으로 된 이야기》(1958), 동요집으로는 윤석중의 《노래동산》(1956), 《노래선물》(1957), 이종택《사라와 어머니》(1952), 그리고 50년대에는 유능한 신인들이 등단한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해방 전부터 전통적인 신인들의 등용문인 신춘문예가 다시 소생되었다. 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이영희가 서구적 감각의 신선한 문장으로 된 <조각배의 꿈>으로 해방 후 신춘문예 출신의 첫 신인이 되었다. 이 때에 등장하여 줄곧 지금까지 아동문학계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능 있는 신인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송명호, 이영희, 신지식, 유경환, 박경용, 신현득, 조유로, 이종기, 이종택, 박용렬, 오영민, 한낙원, 윤사섭 등이다. 신인은 아니지만 김성도씨도 이 때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서정적 소녀소설인 신지식 <하얀길>(1956)은 많은 애독을 받은 작품이다.

50년대 작가 활동을 필자 자신을 두고 반성해 보기로 한다. 필자는 이 당시 어린이 사회의 명암을 부각시키는데 애썼다.

<뻐꾸기 우는 마을> 주인공이 피난지에서 방랑하다가 고향에 돌아왔다. 고향은 낯선 사람들로 가득찼으며 학교는 미군 兵舍가 되어 있었다. 옛 교문 앞에 선 버드나무를 중심하여 상이군인이 된 옛 선생님을 맞이하여 버드나무 학교가 열린다. 이 착한 사람들로 인하여 미군은 자기네 兵舍를 학교로 내놓는다. 미군한테서 교사를 선물로 받는 것으로 이 소설은 마무리지어졌다. 우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데 그 해결을 남의 선물에 의지한다는 것은 참된 진실일 수 있을까.

이 때의 작품 <뻐꾸기 우는 마을>을 검토해 보면 해방 후 미국의 구호물자와 잉여농작물에 의지한 한국인의 비속한 의식세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을 보고 작자 자신의 경악과 좌절감에 휩싸였다.

신인들의 대량 배출

새 세대들이 정식 관문을 통하여 등단한 신인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는 후조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 사람들이 많다. 줄곧 자기 영향을 현재까지 발휘해 온 신인들은 다음과 같다.

동화소년소설에 이준연, 조장희, 최효섭, 유여천(작고), 이현주, 김종한, 권용철, 손춘익, 조대현, 이영호, 김영자, 오세발, 임신행, 정진채, 이효성, 한상수, 황영애, 구진서, 김구연, 임교순, 손수복, 동시동요부분에는 강청삼, 이상현, 문삼석, 엄기원, 엄한정, 김녹촌, 김완기, 정원석, 이석현, 하청호, 박종현, 김종산.

70년대 들어서서 현재까지 나온 신인 중 그 영향이 주목되고 있는 아동문학가들은 다음과 같다.

동화소년소설부분에 정채봉, 김은숙, 김오개, 장문석, 김목, 김문홍, 송재찬, 강정훈, 배익천, 정목일, 김병규, 박진용, 이상배, 김정빈.

동시동요부분에는 오순택, 손동연, 이준관, 이창건, 노원호, 권영세, 권영상, 전원범.

많은 신인들의 출현과 더불어 동화 또는 소년소설의 소재가 다양해졌다. 멀리 천체를 소재로 한 동화에서 시작하여 도시공해, 자연에 대한 사랑, 그리고 반공정신 주입을 목적으로 한 동화, 국군 파월과 더불어 전쟁물이 다시 부흥하고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자 이 운동을 소재로 한 동화 등에 이르기까지 소재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다른 분야에서 우리 것을 찾는 운동은 아동문학에도 영향을 주어 전래되어 온 민족동화를 현대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특히 눈에 띄도록 많은 동화작가들이 <도깨비>를 소재로 한 도깨비 동화가 창작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서민성 문제가 문단에 두드러지게 제기되면서 가난하고 불쌍한 어린이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그 어두움을 부각하는 서민문학이 활발했다.

중견 및 대가급의 작가와 시인들의 활동이 여전히 계속되었다.

일부 작가들이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품을 쓸 때 김영일의 <미워 미워>는 이채로웠다. 이 작품은 사소설(私小說)적인 형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작중인물들의 생활은 가난하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동심을 그림으로써, 가난이란 외부적인 현실일 뿐 작중의 내면에는 침투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읽고 나면 가난한 어린이들의 생활이지만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송명호의 <전쟁과 소년>도 작중 속에 색다른 소재를 삽입했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대체적으로 異民族의 어린이들을 작품 속에 다루는 일이 별로 없다. 해방 전 프로작가들이 일본인을 침략자로서 다루어 온 정도이다.

<전쟁과 소년> 속에는 북에 진주해 온 소련군 장교들의 어린이와 한국의 어린이들이 눈싸움을 하는 에피소드를 그려 놓고 있다.

동시 ·동요 부흥의 문제점

해방 후 40년의 동시가 걸어온 발자취를 살펴보면 안이성 때문에 정체에 빠져 있다고 하겠다.

동시를 쓴다고 하면 누구든지 어린이를 위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실제로는 어린이들이 꿈꾸고 있는 세계하고는 거리가 먼 동시들이 많다.

먼저 기성시인들이 동시를 통하여 천편일률적으로 한 일은 교훈적인 것을 주입하려고만 했다. 자기 속의 옛 어린이와 오늘 속의 어린이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같이 공감하고 같이 속삭여 보고자 하지 않았다.

자기 속의 옛 어린이, 다시 말하여 자기 안의 동심이 회상이란 필름에 담겨져 있는 하나의 정물화인 경우가 많다.

그런가하면 오늘 속의 어린이, 현실 속의 어린이를 접근하는 데도 두 가지 오류를 범했다. 그 한가지는 현실 속의 움직이는 어린이를 정지된 상태에서 접근하려는 태도이다. 또 한가지는 지금 동시를 쓰고 있는 시인들의 어린 날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문화적 매듭 속에서 오늘의 어린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점이다.

또 한국의 동시가 겪고 있는 형상은 동요적인 차원에서 시적인 차원, 음악보다 이미지의 시로 옮겨가는 동안에 일어난 반작용으로 시정신이 오염된 점이다.

현대시의 난해성 같은 것이 찌꺼기처럼 동시에도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아류자들은 애매모호한 시들을 제작하였다. 신선한 실험이 없이 동시를 혼미 속에 빠지게 하거나 잡념의 덩어리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이제 피곤하여 때묻은 동시에 대해서 희망하는 것은 실험보다는 우선 청결한 시작 태도다.

우리 아동문학계에는 단순한 착상을 음수율의 틀에 알맞게 맞추는 것으로 동요를 짓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면 멜로디를 위한 가사정도로 동요의 소임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새 동요는 어린이의 생활 그리고 문학 속에서 멀어져 버리고 말았다.

오늘날 동요라고 하면 숫제 작곡을 위한 가사로밖에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80년대에 들어서 동요문학동인회가 동요의 부흥을 위하여 외치고 나선 것은 우리 아동문학계의 좋은 각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작품을 먼저 소재면에서 살펴보면, 우리보다 앞 세대의 동요하고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동요 제목만 들어보면 <산길> <새싹> <봄동산> 이런 유형으로 되어 있다. 농경문화 속에서 익숙된 생활 감각들이다. 산업사회 속에서 사는 오늘의 어린이들을 공감시킬 수 있는 동요를 쓰려고 하면 우선 소재면에서 대담한 확대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리듬 면에서도 새로운 감각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평론활동의 전개

50년대부터 시평수준이긴 하나 평론활동이 시작되었다. 기억할 만한 것은 강소천의 <동심의 세계>(동아일보, 1954. 12. 16), 이원수의 <동화와 아동문학과 성인>(동아일보, 1955. 8. 25), <신인과 폐기>(동아일보, 1956. 3. 7) 등 수편, 김요섭의 <위기에 놓인 아동 문학계>(신문예, 1959. 10)

이밖에 최요안, 김상옥, 마해송, 한정동, 임인수 등이 평필을 들었다. 특히 문단에 파문을 일으킨 것은 59년 서울신문에 제기된 雜草論(잡초론)이다. 윤석중, 이원수, 최요안, 김상옥 등에 의하여 논의된 문단시평이라고 볼 수 있다. 전후의 혼란 속에서 문학 수련도 없이 습작정도의 아동문학 작품이 발호하는 것을 보고 지적한 논의다. 잡초론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만큼 50년대 또는 6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니 현재까지 아동문학계의 수준은 이삼십명을 제외하고는 습작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62년에 강소천, 김동리, 박목월, 조지훈, 최태호가 공동 편집한 순수아동문학 이론지 《아동문학》지의 발간으로 문단 시평적인 평론에서 연구활동적인 평론으로 일보 전진을 본다.

단행본으로는 66년에 필자가 옮긴 L·H 스미스의 《아동문학론》이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문학이론서로 나오게 된다.

67년에는 이재철의 《아동문학개론》이 간행되었다. 씨가 78년에 낸 《한국현대아동문학사》는 아동문학 연구에 있어서 획기적인 작업으로 평가된다.

83년도에는 《한국아동문학작가론》《한국아동문학연구》《아동문학의 이론》등 많은 저작을 내었다.

이밖에 그동안에 나온 아동문학이론서는 다음과 같다.

이상현의 《한국아동 문학론》, 이오덕의 《시 정신과 유희정신》, 박화목의 《신아동문학론》, 유경환의 《한국동시론》등이 있다.

아동문학 연구지로서는 다음 것을 들 수 있다. 배영사에서 62년에 창간한 아동문학지가 다룬 주요한 테마는 다음과 같다. <아동문학이란 무엇인가> <동화와 소설> <동요와 동시의 구분> <아동문학의 나아갈 길> <아동문학의 문제점> <아동문학의 방향>.

70년에는 김요섭 책임편집으로 《아동문학사상》이 간행되었다. 여기서 다루어진 주요 특집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환상과 현실> <창작기술론> <안델센 연구> <어머니의 사랑> <문학교육의 건설> <쌩떽쥐베리 연구> <동요와 시의 전망> <전래동화의 세계> <그림 없는 그림책 연구> <현대일본아동문락론>.

주로 아동문학사상지의 집필자는 대학의 국문학 및 외국문학 교수들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76년에는 이재철 발행 및 편집으로 계간 《아동문학 평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34호를 발행했다.

이 잡지의 집필자는 대개가 아동 문학가들이 기고하고 있으며, 작가 정리, 작품평 등이 활발하다. 또 추천제도로 신인 평론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아동문학에 대한 공동연구를 위한 집회도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65년에 이민수, 이석형, 필자 등에 의하여 兒童文學圓卓討議가 열렸다.

첫 주제로는 <동화시는 가능한가>였다. 계속되는 이 토의에 주요 참가자는 다음과 같다. 이종기, 유경환, 박경용, 최인학, 송명호, 이재철, 석용원 등이었다.

71년 남북한 대화가 이루어지자 아동문학계에서도 통일을 전제로 한 아동문학의 반성과 방향을 모색하는 세미나가 8월 21일 40여명의 아동문학가가 합숙을 하면서 <문학교육의 당면과제>라는 주제 밑에 열렸다. 이 뒤 해마다 아동문학 세미나가 연 3회씩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문단에 관심을 끈 문학논의도 여러 번 있었다. 그것은 문학논쟁의 수준까지는 가지 못하고 다소 감정에 뒤섞인 반발의 문학시비 정도의 것도 있었다.

58년에 마해송작 <모래알 고금>을 둘러싸고 논의가 있었다. 필자가 <모래알 고금>에 대한 신간 평을 동아일보 지상에 발표했는데, 이원수가 어른들의 연애사건을 다룬 동화에 대하여 필자의 견해가 너무 의미를 주었다는 뜻에서 반박을 한 일이 있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문화시보에서는 <동화에는 연애를 다룰 수 없는가> <사회비평의식이 담겨서는 안되는가>라는 설문을 내었고, 한편 필자는 동지에 <동화의 소재>라는 제목으로 <모래알 고금>을 음담패설이라고까지 극언한 아동문학가들에 대해서 동화에도 사랑의 문제나 감정을 다룰 수 있다고 했다.

66년에는 신아일보에 발표한 필자의 <현대 동화의 탐험>이라는 글 속에서 꽃이름에 나타난 한국인의 美意識에 대하여 비판한 대목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이종기가 동지에 <민족의 미의식과 동화>라는 제목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69년에는 박경용과 권용철이 문장문제를 놓고 논쟁을 했다.

70년에 들어서 서민문학론이 활발하지 이오덕과 이상영 사이에 논쟁이 있었고 중앙일보를 통하여 권용철과 이영호는 동화의 국적문제에 대해서 논의했다.

문학논쟁이 순수한 문학적 탐구에서 벗어나 소위 문학 단체적 도당의식이 작용하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75년 모 문학단체에서 발간한 기간지에 실린 <동시 그 시론과 문제성>에서 몇몇 작품을 표절작품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하여 송명호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일부 문단인들의 몰지각한 행위를 서울지검에 고발하여 이에 가담했던 몇몇 아동문학가들의 자기 과오를 인정한 사과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평필을 들었다. 박경용, 유경환, 정원석, 정진채 등의 활동이 컸다. 그 중에서도 이재철, 이오덕의 활동이 정력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종족보존의 원색적인 본능이 평론활동에 작용하여 편견이 심할 때도 있었다.

자유·도시악·환타지

70년대 후반부터 동화나 소년 소설에 자주 나타나는 주제 및 제재가 두 가지 있다. 그 한가지는 자유의 문제를 다룬 것이며 또 한가지는 도시악에 대한 문제다.

자유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대다수의 작가가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제재를 쓰고 있다.

어느 중류층의 집 새조롱 속에 있는 십자매 같은 애완조를 작중 속 주인공이 새조롱을 열어 그 새를 날려보낸다. 자유를 주는 이름 밑에서.

또 학교에서 과학공부를 위하여 마련한 유리상자 속 나비떼를 주인공이 그 나비에게 자유를 준다는 의도에서 과학실 유리상자를 깨뜨려 나비를 날려보낸다.

어떤 작품은 주인공이 동물원에 갇혀 있는 짐승들을 보면서 얼마나 자유가 저들은 그리울까 하는 생각을 하는 작품 등등이다.

자유의 문제, 이것은 모든 문학에 있어서 영원한 문제이다. 그만큼 자유라는 문제는 크고 끝없이 깊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할 것이다.

이 문제의 특색은 사람마다 다른 속삭임을 가진 메세지이다. 십자매의 자유와 나비의 자유는 서로 다를 것이다. 나비의 자유와 또 다른 짐승들과의 자유도 다를 것이다. 자유란 문학작품에 있어서 꿈이란 말이다. 모든 인간의 꿈은 자기 나름대로의 다른 꿈을 가지고 있다.

십자매에게도 꿈이 있다고 하면 그 꿈은 인간의 꿈과는 다르다. 역시 나비의 꿈, 짐승들의 꿈과 인간의 꿈은 전혀 다르다. 십자매, 나비, 짐승들의 꿈과 인간의 꿈 또는 자유와 똑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고 동물에 속해야 될 것이다.

은밀히 말하여 십자매에게, 나비에게, 짐승들에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자유라든가 꿈이 있을까, 여하튼 고귀한 인간의 자유를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곤충에게 침투시키려면 작중에 다른 생물들을 의인화하는 창조의 눈부신 힘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도시악을 아동문학 작품 속에서 제기하는 것을 보면 대체적으로 시골의 어린이가 서울의 냉혹한 비정 속에서 환멸을 느끼고 시골의 전원적 생활을 그리워하거나 되돌아가는 경우다. 이러한 작품은 무턱대고 어린이의 생명력을 유린하고 드는 작품이다. 어린이란 언제나 외계에 대해서 무한한 호기심과 동경을 가지고 있다.

시골의 어린이의 경우, 달리는 버스롤 보거나 산모롱이를 도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아니면 도회지로 가고 싶어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어린이의 생명의 약동이다. 이와 같은 어린이의 생명력은 먼 바다, 먼 나라 그리고 별까지 가고 싶어하는 꿈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동문학 작품에서는 어린이들에게 도시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주입하기가 일쑤다. 한 어린이가 도시 속에서 만난 부정적인 인물은 산업사회 속에서의 산물들이다. 우리는 이미 농경문화 속에서 벗어나 산업시대 속에서 사는데 어린이들을 농경문화 속으로 다시 돌려보내려고 하는 것은 재검토해 볼 문제이다.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로 어린이들이 도시의 새 주인공이 되고 꿈 있는 새 도시를 만들어 가는 힘을 인도할 수 있다면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산업시대 속에서 도시악을 단순히 폭로하는 것보다 꿈 있는 새 도시를 만들어 가는데 어린이들로 하여금 개척케 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어린이들이 도시를 혐오하고 시골로 지향케 하는 것은 회상주의나 감상적인 인간상, 더 나아가서는 패배주의를 미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동심의 위대성을 그려 어린이로 하여금 새로 태어나는 도시의 예언자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해방 후의 아동문학이 새로 개척한 분야는 환타지 문학이다. 그러나 아직 문제점은 많다. 환타지란 자연스러운 힘의 질서가 구축한 의식의 발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현실과 꿈으로 겹싸인 이중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동화를 읽으면 백일몽을 환타지로 생각하고 있다.

진정한 환타지는 현실에서 유리된 것이 아니다. 모든 현실에 충격을 주고 작용을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린이야말로 현실과 꿈의 양쪽 세계를 자유스레 드나드는 인종이다. 환타지는 아리송할 수 없다. 불꽃을 튀기는 정신적 활동이다.

환타지란 상상력의 소산이다. 상상력이 고갈하여 버리면 작가로서의 수명은 다한 것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 反동화란 말을 필자는 기회 있을 때마다 써왔다. 이런 말을 쓴 데는 구태의연하고 문학성이 결핍된 동화의 홍수 속에서 보다 참신한 동화를 희구한 의도도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이와 같은 유의 작품을 신춘문예 모집 같은 데서 만나게 된다.

대개 이런 작품들이 빠지기 쉬운 국면은 수필형식의 평면성이다. 관념만이 돌출되고 작품이 한 세계로써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내적 갈등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색력의 미숙을 말하고 있다.

관념이 작중인물 속에 침투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독자로 하여금 작품과의 동화력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 관점이 작중인물을 자유자재로 조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애매몽롱감만을 주는 이유의 또 한 가지는 선명한 心象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점을 들 수 있다.

탐미나 감상성을 가지고는 일급의 문학정신이라고는 할 수 없다. 바위를 뚫어 샘물을 받아 내고자 하는 정신의 치열성이 없이는 영혼의 울림을 주는 동화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