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농악과 백남윤의 농악기록보
정병호 / 중앙대학 교수
김제농악은 인근 군인 정읍, 부안, 이리, 옥구, 부산 등과 같은 형태를 가진 호남우도농악이다.
김제는 우리나라 수전농업의 기원을 이루고 농경문화의 꽃을 피웠던 동양최고 최대를 자랑하는 碧骨堤가 있었던 곳이다.
천혜의 지리적 여건과 토질 그리고 알맞는 기후로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하여 온 것이다. 그 중에서도 호남평야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김제의 금만평야는 국내 어느곳보다도 水田의 기원을 이루어 토착문화(도작문화)의 요람지이며 米糧의 본고장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곳 김제에는 농경문화에서 창출된 여러 민속놀이가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立石줄다리기와 쌍룡놀이 그리고 농악 등이다.
김제농악은 지금으로부터 50년전에 작고한 천재적 상쇠 김도삼과 나도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호남뿐만 아니라 당대에 우리나라 농악의 최고 예능인이였으며 농악에 있어서 軍陣法을 중심으로 한 판굿을 발달시켰으며 이들에 의해 현판세, 이막동, 백남윤과 같은 훌륭한 농악인이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은 김제읍 모새몰(신풍리)과 백구면에서 주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김제농악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침체해 있었으나 금년에 들어와서 이 고장 지성 한선경, 김창신, 정진형씨 등에 의해 재건운동이 일어나 백남윤씨가 지도하는 김제 신풍리농악대가 이장 채봉성씨를 단장으로 재편성되었다.
한마디로 백남윤씨는 현존하는 채상모 법고잽이 중에서 한국에서 제일가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비록 배우지도 못한 사람이지만 정신이 바르고 강직하며 엄하고 법도를 아는 그러면서도 예능 방면에는 박식한 사람이다.
그는 50년 전부터 김도삼씨가 해 나온 우도농악의 전모를 기록해서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그 記錄譜를 보면 놀랍게도 하나의 해설에 제법 섬세하게 그림까지 그려 그것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그는 농악을 사랑했고 그러면서도 바르게 정신이 박힌 사람이였으므로 이러한 일들을 해 놓은 것이다. 아마 내가 알기로 농악에 대한 기록보는 진도와 해남에서 발견된 것과 백남윤씨가 간직한 것밖에 없는 것으로 안다. 따라서 백씨가 가진 이 기록보는 농악의 원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백남윤씨는 김제에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다. 그리하여 소학교(국민학교) 4학년 때 중퇴를 하였고 마을에 있는 한문서당을 다녔다. 아버지 농사를 돕고 소나 보면서 생활하는 가운데 어느날인가 김도삼씨가 이끄는 농악단의 <판굿>을 구경하게 되었다. 어린 가슴에 흥분과 감동이 감돌았다. 그 후부터 농악구경을 자주 하게 되었으며 채상모를 구입하여 몰래 뒷동산에 올라가 돌리곤 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그는 김도삼씨의 걸립패에 들어가게 되었다. 집에서는 야단이 났다. 매도 많이 맞았다.
왜정시대 군산에서 이른바 사구라대회(벚꽃구경)가 있었는데 이 때 세계대전이 막바지가 되자 병기를 만들기 위하여 놋그릇을 모두 거두어가는 바람에 농악소리만 들리면 쇠나 징을 빼앗아갔다. 그러나 경찰서나 소방서와 같은 곳에서는 모금운동을 하기 위하여 농악대를 불러주었으므로 어렵게나마 농악을 이어갈 수가 있었다.
해방 후 미군이 이리에 진주하게 되었고 거기서 농악인을 불러주므로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가 있었고, 그 후 김제의 유지들이 후원하여 큰 단체를 만들어 고창, 부안, 이리, 광주 등지로 순회하여 걸립도 하고 공연도 하였다. 그 후 백남윤씨는 임방울씨 단체에 들어가 박초월, 김소희, 줄타기 하는 김영철, 그리고 농악꾼으로 신두희, 김재육, 전사섭, 김상국 등과 같이 전국순회를 하기도 하였으며 부산, 대구 등지에서 한 농악 경연대회에서 다섯 번이나 개인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가난하게 살기 때문에 친구의 도움으로 신장수도 했고 솥장수도 해보았으나 그 흥겹고 신명난 농악을 버릴 수가 없어서 집을 뛰쳐나오곤 하는 가운데 이제는 69세가 되고 보니 농악을 할 수가 없고 또 하는 사람도 없어서 지금은 별 수 없이 농사일이나 보며 외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지난 6월 16일 백씨 댁에 들렀을 때 부인 허순녜씨(63세) 말이 "내가 시집온게로 당골인지 알았어요. 무엇인가 울긋불긋한 것이 있고 그래서 당골인지 알았지요. 지금도 이것을 껄적직하게 생각해요"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아 백씨가 농악하는 것에 대하여 아직도 이해가 없음을 말해준다.
백남윤씨 왈, "어느땐가 부안 곰수 난장판에서 상모를 돌렸더니 지나가는 사람이 말하기를 '앗다 지다란 것 내들은 놈, 잘 내들으돼 당골네 동생이로구만' 이렇게 말하드란 말이죠. 시앙때 가면 조카되는 사람이 '아저씨 지금도 거기 다니시요' 또 형님되는 사람이 술한잔 하면 '동생 지금도 걸궁판에 다니는가' 아 이렇게 말한다 말이요. 그게 부끄럽기도 하고 참 마땅치 않아요" 이렇게 옛날 일들을 회상하면서 50년간 간직한 농악원본을 보여주면서 기가 죽지 않은 말투로 세밀하게 湖南右道農樂의 특징을 설명해 주면서도 감정이 복받쳐 잠시 눈물을 흘리곤 했다.
백남순씨가 말한 옛날의 김제지방 농악은 다음과 같다.
김제농악의 편성은 龍唐旗(큰旗) 농기, 令旗, 나팔, 座上, 中座上, 총각좌상, 상쇠, 부쇠, 삼쇠, 징 설장구, 부장구, 삼장구, 수법구, 부법구, 3법구, 8법구, 대포수, 창부, 九代進士, 양반광대, 각시광대, 조리중, 舞童한쌍, 중광대 증이다.
기본적인 가락은 내드림을 비롯하여 인사굿 가락, 느진오채, 풍년굿, 양산도, 느진삼채, 된삼채, 자진삼채, 자진몰이, 굿거리 등이다.
김제농악의 내용과 형태를 보면
1. 堂山祭
정월 보름날 새벽에 祭床을 마련하고 동리 座上이 농악대를 대동하여 祝文을 읽고 고사를 지낸 다음 좌상, 상쇠, 설장구, 수법구 순으로 술잔을 올린다. 그리고 나서 神을 즐겁게 하는 농악을 한다.
2. 걸궁굿(걸립)
<들당산굿>
농악대가 마을에 들어오면 令旗 두 사람이 문을 잡고 못 들어오게 막는다. 그러면 대포수와 동리 좌상들이 서로 농악하는 조건을 협의한다. 그리하여 좌상은 마을어른(도청)에 그 뜻을 전한다. 그러나 조건이 안 맞으면 농악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의 전달로 좌상이 걸립패의 대포수에게 빗자루를 준다. 그러면 상쇠는 다시 글을 써서 보낸다. 그러면 갈귀를 보낸다. 이것은 들어오라는 이야기가 되겠다. 이렇게 하여 농악대는 마을로 들어간다.
<샘굿>
농악대들은 마을 공동우물에 들러 <삼채>를 치면서 절하고 간단한 축문을 읽고 당산에 들른다.
<당산굿>
찬물을 떠놓고 상쇠는 <삼채>를 치고 절을 하며 오늘부터 농악한다는 것을 告한다.
<마당밟기>
농악대가 마당에 들어가면 한바퀴 돌며 풍물을 치며 술을 들은 다음 마당굿을 시작한다. 마당굿은 먼저 <五方陣>을 하고 <미지기굿> 등 토막판굿을 잠시 한다. 그리고 개인놀이를 하고 이어서 고사굿, 조왕굿, 장독굿 등을 진행하고 다음 집으로 굿판을 옮긴다.
<날당산굿>
마당밟기를 다하고 걸립패들이 마을을 빠져나올 때 하는 농악이다.
농악을 치는 가운데 상쇠와 雜色만 마을 밖으로 춤추며 나간다. 그리고 상쇠는 왼손으로 화복자락 들고 오른손은 쇠채를 들고 앉아서 춤추다가 일어서서 쇠채를 공중에다 던지고 뒤에 있는 잽이들은 농악소리를 그치고 상쇠를 따라 마을을 떠난다.
3. 旗맞이굿
기맞이굿은 여러 부락의 농악대들이 모여서 7월 논매기를 하고 나서 한곳으로 모여 <合굿>을 치고 노는데 이를 <만두레>라 하기도 한다.
4. 망월굿
생솔가지를 챙겨놓고 밤에 모여 불을 피우며 '망월이야' 하며 소리지르고 농악을 치면서 콩을 대두미로 볶아서 정월 厄막이로 그 콩을 사방으로 뿌리고 콩을 나누어 먹으면서 논다. 그런데 이 때 상쇠의 사설은 다음과 같이 부른다.
콩꺾자 콩꺾자
두렁넘에 콩꺾자
별따자 별따자
하늘잡고 별따자
달따자 달따자
구름잡고 달따자
마당구석도 네구석
방구석도 네구석
5. 줄굿
줄에 농악대원들이 타고 그 줄(젓줄이 있는 줄)을 마을사람들이 어깨에 메 농악을 치면서 동네를 돌고 보리밭(보리밭 주인이 술을 대접한다)에 가서 농악을 치고 줄다리기를 한다.
6. 7月 7夕굿
씨름판대(상복과 패랭이를 걸친 대나무)를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씨름하는 것을 알리고 씨름판을 벌린 곳에 씨름판대를 꽂고 농악을 쳐서 마을 사람들이 모이게 하고 씨름할 때도 농악을 한다. 그런데 일설에는 앞서 말한 씨름판대를 가지고 다닌 이유는 씨름할 때 불상사가 있어서 죽게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주의하라고 경고하는 것이며 만일 죽었을 때는 이것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7. 지심매기굿
지심매기굿은 김매기를 할 때 하는 농악으로서 농부들은 龍旗와 令旗를 마을 입구에다 세워놓고 (옛날은 원님도 이곳을 지나갈 때는 下馬하고 지나갔다고 하는데 이는 일종의 神旗이거나 軍旗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四物을 치면서 일터로 나간다. 논 속에는 패랭이에 개화꽃을 단 모자를 쓴 한 쌍과 총각 좌상이 권장을 메고 서있고 농부의 한 사람은 못방고를 쳐서 흥을 일으키고 나머지 농부들은 못방고소리에 "아-해-히-야 우-허-허-이-아-허-이 우-" 하고 소리를 지르며 일을 한다.
8. 令풀베기
풀베기는 마을좌상이 관에 가서 풀베기 하고자 하는 것을 신고하게 된다. 관에서 허가가 나오면 풀베는 전날에 농악을 치면서 풀베는 산어귀에 가서 산제를 지내고 농악을 하며 논다.
9. 주당매기
변소에서 기절한 사람을 마당에 데리고 와서 거적 위에 눕히고 쇠시랑과 절구대를 가지고 와 농악을 치면서 그 사람 주변을 돌아 잡귀를 몰아내고 그 사람을 깨어나도록 한다.
10. 무제굿
비가 안 오면 가가호호에서 보릿대를 한짐씩 거두어서 뒷동산에 올라가 그 보릿대를 태우면서 무제(기우제)를 지내는데 이 때 각 마을마다 농악대가 동원이 되어 合굿으로 천지가 진동하게 쇠를 치면서 하늘을 향해 天祭를 지낸다.
11. 노적굿
찬물 떠놓고 농악대들은 한 줄로 서서 풍류가락이나 삼채를 치면서 상쇠는 <노적이야 노적이야 끄러들이자 노적이야 부엉덕새 새기쳐 한 날개를 툭닥치면 수수만석 두날개를 툭탁치면 억수만석이 생기네> 하고 노적주변을 돌면서 춤을 춘다.
12. 旗싸움
여러 마을의 농악대가 한자리에 모여 합굿을 하고 기싸움을 벌린다. 기싸움은 사나이들이 기에 올라가 기를 떨어뜨리고 기장목(꿩장목)을 뽑으면 이기게 된다. 그런데 이때 기장목은 여자치마 속으로 감추어 둔다. 왜냐하면 진편이 다시 기장목을 빼앗아 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싸움에서 이긴편이 형님이 되고 진편은 동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긴편은 기장목을 1년간 보관했다가 다음해 기에다 꽂고 와서 동생기로부터 절을 받고 놀게 된다.
13. 술매기기굿
7월 7석날 장원머슴을 뽑고 장원머슴 머리에 삿갓을 뒤집어 씌우고 살보(땅을 파는 적은 삽)와 나락(벼) 한폭을 손에 들려 그 팔을 새끼로 묶고 사다리에 태워 "허-히 아허-어히 우-" 이렇게 노래하면서 장원머슴 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주인은 닭을 잡아 술을 대접한다. 이렇게 하여 하루를 농악을 치고 즐긴다.
14. 배굿
어촌에서 하는 농악으로 농악대들이 선창가에 들르면 그 배에 재수가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배 위로 올라가 농악을 한다.
15. 보매기굿
보매기굿(물고낸다)이란 수통(通水管)에 영기를 꽂고 논에 물을 넣으면서 하는 농악을 말한다. 보매기란 논물이 빠지지 않도록 논두렁을 수리하고 논에 물을 대게 되는데 이러한 작업을 할 때 왕왕 자기논에 먼저 물을 대기 위하여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물싸움이 무섭다) 마을 좌상이 감독하여 순서대로 영기(法旗)를 수통에 세워 순서대로 물을 대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농사일에도 농악을 하게 된다.
16. 其他 굿
농악대가 다리를 건너갈 때 안전을 비는 뜻으로 삼채를 치고 절하며 건너간다. 또한 향교나 사당과 같은 聖域을 지날 때도 농악치고 절한 다음 지나가게 된다.
17. 판굿
판굿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진 농악을 하고 나서 농악대가 개인적 기량을 자랑하기 위해 하는 예술적 형식을 말한다. 이른바 판을 짜서(演出) 연기한다는 것인데 김제지방의 판굿은 백남윤씨로 이어진 김도삼류의 굿이다.
<내드림>
농악의 시작을 알리는 삼채가락을 3번 치고 느리게 끊고 빠른 가락으로 몰고 가다 끊는다.(발포의 뜻)
<느린오채질굿>
시계침 돌아가는 반대방향으로 圓進하면서 느린 오채질가락을 치고 점차 가락을 몰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은 戰地로 가는 軍樂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진오채질굿>
제자리에서 각자 오른쪽으로 돌고 이번에는 시계침 돌아가는 방향으로 빠른 걸음으로 뛰어간다.
<풍년굿>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고 어깨춤을 추면서 士氣를 올리기 위하여 시계침 돌아가는 반대방향으로 한 장단에 한바퀴 돌면서 圓進한다.
<양산도>
어깨춤을 추면서 한발 들은 걸음으로 한바퀴 돌고 시계침 돌아가는 반대방향을 보며 한발을 앞뒤로 번갈아 딛는 이른바 발림을 하면서 춤을 계속한다. 이러한 동작을 12박에 반복하면서 돌진한다.
<느진삼채>
대포수와 상쇠가 원심으로 들어가 설장구에 가락을 주고 밖으로 나오며 전원 제자리에서 멋있게 춤춘다.
<자진삼채>
각자가 개성있는 동작을 하면서 빠른 가락으로 춤추면서 시계침 돌아가는 반대방향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것을 作戰樂이라 말하기도 한다.
계속 같은 방향으로 거친 동작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이 굿은 大作戰鼓라 말하기도 한다.
<벙어리 삼채>
처음에 쇠가 圓心으로 들어가 陣쌓기를 한다. 다음 장구가 옆걸음으로 들어가 쇠들을 포위한다. 이어서 소고들이 시계침 돌아가는 방향으로 연풍대롤 돌아간다. 따라서 전원 3중원이 되는 것이다.
<五方陣>
상쇠는 영기를 대동하여 東 西 南 北으로 방어진을 쌓고 이어서 중앙으로 돌아 자리를 잡는다. 이 때의 방어진쌓기는 나선형으로 돌아간다.
<호호굿>
내드림하고 圓心을 보며 옆걸음치면서 <호호이>하며 외친다. 이러한 것을 3번 또는 5번 계속한다. 이어서 자진 호호굿으로 넘어간다. 자진 호호굿에서는 <허이>하고 외친다. 이러한 것을 3번 또는 5번 반복한다. 이 굿은 일종의 點呼굿이라 할 수 있다.
<거듬살이>
전원 圓心을 보고 앉으며 상쇠는 앉아있는 쇠꾼들을 돌아가면 쇠꾼들은 일어서서 상쇠를 따라간다. 다음은 징, 장구, 소고, 잡색 등 상쇠는 그 사이를 S자로 돌며 시계침 돌아가는 방향으로 이들을 이끌고 전진하며 마지막에는 방향을 다시 시계침 돌아가는 반대방향으로 바꾸어 圓進한다.
<미지기>
삼채가락을 치면서 원이 두 줄 縱隊가 된다. 그리고 다시 선두가 안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종대행진을 계속한다. 다음은 前進後退 2회 반복한다. 이어서 상쇠가 지휘하여 당초의 圓을 만든다. (훈련굿)
<두마치굿>
圓으로 돌아가다가 제자리에서 오른발 무릎을 굽혀 펴는 동작을 하면서 춤추고 좌우로 몸을 틀면서 앞으로 나가는 <까치걸음>을 한다. 이어서 삼채가락을 치면서 쇠, 장구, 소고들이 圓을 만들어 결국 3중원을 형성한다.
<일광놀이>
한 줄 圓을 만들면서 징수가 징을 어깨에 메고 쇠들은 어산지기, 엇붙임가락을 치며 모든 잽이들이 흥을 돋구는 등 내드림을 한다.
다음은 징을 치면서 흥이 더해간다. 쇠가 圓心으로 들어가 짝다드래기가락을 치고 앉아서 쇠를 엎어놓는다. 쇠채를 거꾸로 들고 왼손으로 화복자락을 쥐고 부포놀음을 하며 일어선다. 이어서 쇠 주변을 반 바퀴 돈다. 가락을 몰고 쇠사이를 뛰어다닌다. 이때 대포수가 뛰어들다가 '야 이놈들아 시끄럽다 시끄러워 훌미할 놈들아' 대포수는 쇠를 감추고 춤을 추며 뒤로 물러선다. 장구가 쇠처럼 쇠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쇠가 들어와 춤추며 앉고 쇠를 가지고 제자리로 돌아오면 전원 시계침 도는 반대방향으로 돌아간다.
상쇠가 나와서 '수상한 놈이 다니더니 쇠 한 짝이 없다' 대포수는 '야 이놈들아 내가 많으냐' 하고 대꾸한다. 상쇠가 나와서 대포수의 멱살을 잡고 '이놈이 수상한 놈이다' 그러면 대포수는 '야 이놈아 내가 이렇게 생겼어도 우리집안 내력이 있다. 우리 조부께서 통영통재사, 우리 아버지께서 전라감사, 내가 이놈아 어사까지 했다 이놈아' 옆에 창부를 가리키면서 '우리 작은놈 주사까지 시켰다' 상쇠가 쇠채로 대포수 가슴에 감춘 쇠를 빵빵 치면서 '야 이놈아 이것 무엇이냐' 대포수는 '오- 이것 말이냐 내가 돌아다니다가 발에 되기 때문에 자래인줄 알고 주워놓았다'
상쇠가 땅땅 치면서 '이것이 이놈아 자래냐'. 그러면 대포수가 쇠를 머리에 쓰면서 '야 이놈아 내가 아맹어사 할 때 모자로 사용했다 이놈아' 이어서 '이놈아 내가 상쇠까지 쳤다 이놈아' 그리고 설장구를 보면서 '그러고 저러고간에 묵다름 한번 해보자' 설장구는 돌아서 버린다.
상쇠는 '야 이놈아 설장구 쳐가지고 볏섬이 모여있단다. 설장구를 찾아 뵈여야 한다' 대포수는 '아이 설장구 이놈 집이 있냐' 상쇠는 '야 이놈아 그렇게 불러서 나오겠느냐 이놈아 설장구 양반 집에 계시요 해야 나오제'
대포수는 '설장구 계시요' 하고 엉덩이를 내놓는다.
설장구는 대포수의 엉덩이를 발로 찬다. 그리고 '아이 잣것 모가지가 없다'
대포수는 '인사하고 문열고 밖으로 나갔는데 있을 것이냐 이놈아'
설장구가 돌아서면 대포수는 '설장구 양반 뵙시다'
설장구 '오냐 잘 있었느냐' 대포수가 잠깐 쇠를 치고 상쇠에 넘겨주고 재담(벼타령과 나물타령)을 읊는다. 이어서 전원 방울陣으로 圓을 좁히고 농악을 그친다.
<짝다드래기>
제자리에서 번갈아 치는 짝드름을 하고 이어서 합쳐서 덩덕궁을 친다. 가락을 빨리 치고 뛰어 圓進한다.
<노래굿>
'아-어-이-이-' 하고 내드림을 한다. 춤을 추며 圓進하고 <월성가>를 부른다.
앞소리
오늘 저녁에는 여기서 놀고
내일 저녁에 어디가 놀고
놀로나 가자 놀다가세 - 해
놀다나 가소 놀다나 가소
저달이 떳다 지도록 놀다나 가소
후렴
얼싸 하-하-하-하-절사
이렇게 노래하고 자진몰이로 들어가 끝난다.
<구정놀이>
잡색들은 圓心으로 들어와 춤을 추고 이어서 끝소고부터 수법구까지 한 사람씩 나와서 춤춘다. 다음은 쇠꾼들이 나와 발림춤을 추고 부포놀이를 한다. 그러면 끝장구부터 설장구까지 나와서 개인놀이를 하고 令旗가 들어와 발림춤을 춘다.
<문굿>
전원 令旗를 세우고 뛰어서 一字進(1列)으로 나가 덕석말이陣을 한다. 그리고 제자리에 앉는다. 긴 나팔을 부르고 삼채가락을 친다. 다시 온길을 가서 덕석말이진을 쌓는다. 영기 하나를 그 자리에 두고 다시 덕석말이진을 쌓은 장소로 와서 덕석말이진을 치고 영기를 놔둔다. 이렇게 덕석말이진과 영기자리를 왕래하면서 두 갈래로 나누어 사람들을 배치한다.
상쇠는 중간에 나와서 온갖 재주를 부린다. 상쇠는 영기에 절한다. 영기는 令門을 만든다. 느린삼채를 치고 대포수와 창부가 달려들어서 춤춘다. 대포수와 창부는 달아나고 상쇠는 쫓아간다. 대포수와 창부는 빠져나간다. 상쇠는 앉아 부포놀이를 하고 가락을 넘기면서 일어선다. 그리고 상쇠는 2列 끝으로 나가서 부포놀이를 하면서 영기 있는 곳으로 간다. 그리하여 배열된 잽이들을 데리고 일자진을 한다. 이어서 三進三退로 縱隊가 움직인다. 그리고 잽이들을 원진시킨다.
<도둑잽이>
잽이들은 我軍이고 잡색들은 敵軍으로 가상하여 노는 일종의 군사놀이다.
상쇠 앞에 나팔을 세우고 대포수와 창부가 상쇠陣中 앞에 가서 탐색한다.
대포수와 창부는 그 진중을 보고 몸 전체를 흔들며 돌아다니면서 논다.
상쇠진중에서 나팔을 1초 2초 3초 분다. 대포수와 창부는 나팔소리를 듣고 잡색진중으로 도망간다.
잡색을 모아놓고 수궁거리며 모의한다. 그러면 상쇠는 '성안 성내 도둑이 들었으니 장군명령으로 생금하라' 이렇게 軍令을 내리면 전원이 '애이-' 하고 답한다.
상쇠는 나팔을 불고 대포수와 창부는 벌벌 떨면서 자기 진중을 돈다.
상쇠는 2, 3m앞으로 나팔을 옮겨논다. 대포수와 창부는 그 나팔을 보고 다가와 그것에 몇 번이고 절한다. 그리고 어루만지면서 훔쳐 자기 진중으로 와서 서로 잘난체 하면서 위세를 보인다.
대포수는 '야이 자근놈아'
창부 '애-아구지' (아버지)
대포수 '야 이놈아 이것 좀 잘 살펴봐라'
창부는 나발 들고 입으로 분다. 스스로 놀라고 도망친다.
대포수는 '야- 이놈아 그게 무엇인데 그렇게 놀래냐 이리 가져와'
창부는 나팔을 대포수에게 갖다 준다. 대포수는 손에 든 총을 땅에 놓고 나팔을 받는다. 자기 볼기를 두탁치면서 '올타 이놈아 인제 알았다 이게 이놈아 아맹어사가 쓰든 통청관이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쓴 상모를 벗어서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나팔을 머리 위에 댄다.
창부는 대포수에게 쫓아 들어가서 '아구지- 나도 인제 알았쏘 나좀 주시오' 그 나팔을 받아들고 '아구지 통태 동궁태입니다' 부는 쪽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나팔 중간을 잡는다. 그리고 나팔 끝을 땅에 대고 주변을 한바퀴 돈다. 그러는 순간 상쇠진중이 농악을 울리고 잡색진중을 쫓아 들어간다.
대포수와 창부는 나팔을 그 자리에 놓고 자기진중으로 들어가 은신한다.
상쇠진중은 다시 제자리로 물러난다. 상쇠는 나팔을 가지고 와서 나팔 3초 분다.
창부는 종이쪽지 한 장 가지고 가서 대포수 앞에 가서 '아구지 편지왔습니다'하고 대포수에 준다. 대포수 받아들고 '오냐 이놈아 어디서 편지왔느냐'
창부-아구지 집이 손님왔어요
대포수-응 그레 죽 끓여 줬느냐 밥 끓여 줬느냐
창부-죽 끓여 줬어요
대포수-야- 그일 시키지 않애도 잘했다. 가만이 있거라. 편지부터 읽어보자.
합천 해인사라 고창 선운사라
장성 백양사라 금수 금산사라
강원 금강산아 팔만이천봉
팔만 구암자라
이렇게 큰 목소리로 읽어내린다.
대포수-야 이놈들아 평양감사가 점심을 먹자고 했다. 이놈아 나 바빠서 못 가겠다고 해라.
전원이 농악소리 내면서 잡색진중을 향해 와- 하고 함성하며 자기 진중으로 돌아온다.
상쇠- '수수적자' 이렇게 홀기청령을 외친다. 전원이 '애-이' 한다.
대포수- '수수적자 수수적자 아 이놈들아 삼모곡대가 좋겠다' 하고 자기 상모를 휘돌린다.
상쇠- '관기정착' 하면 전원 '애-이' 한다.
대포수-관기정착 관기정착 아 이놈들아 부안원님이 진지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놈들아
상쇠가 '군법유수' 하면 전원 '애-이' 한다.
대포수-군법유수 군법유수 야 이놈들아 군중이 좋겠다.
상쇠가 '만인일신' 하면 전원이 '애-이' 한다.
대포수- 만인일신 만인일신 야 이놈들아 사람목슴이 좋겠다 이놈들아
상쇠가 '고두수명' 하면 전원 '애-이' 한다.
대포수-고두수명 고두수명 야 이놈들아 만백성이 좋겠다 이놈들아
이어서 상쇠진중에서 요란하게 농악을 치면서 잡색진중을 포위한다. 그리하여 대포수의 상모(모자)를 令旗 三頭槍에다 걸고 舞童이 든다.
<탈머리굿>
영기를 앞세우고 상쇠의 지휘에 따라 원진하여 이른바 城쌓기를 한다. 말하자면 전원이 고개숙이고 허리를 굽혀 앞사람의 허리를 양손으로 감아잡고 성을 쌓는다. 그러면 대포수 목(대포수 상모)을 걸친 영기를 무동이 들고 그 위를 올라가 양쪽에서 손을 잡아주는 가운데 앞으로 나간다. 그리하여 무동이 지나가면 잽이들은 다시 앞으로 나가서 등을 대는 가운데 한바퀴 돈다.
<탈복>
전원이 一字로 서며 영기 상쇠, 징, 장구, 법구, 잡색 순으로 옷을 벗어 그것을 불에 째이면서 厄막이를 하고 판굿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