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한국문화·(3)

집의 대문




하기와라 이쯔에

<세쯔붕>날(입춘전날. 일본엔 이날 저녁에 집 대문 밖으로 볶은 콩을 내 뿌리며 액신을 쫓고 복신을 맞아들이고, 그런 연후에 나이 수만큼 콩을 먹으면 무병하다는 민속놀이가 있음). 콩을 뿌렸습니다. 친구가 와 있어서, '복신은 들어오고 액신은 물러가라'하며 떠들썩하니 재미있게 콩을 뿌렸습니다. 그 후에 나이 수만큼 볶은 콩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제시대엔 주로 살벌한 풍습만이 강제적으로 도입되어 콩뿌리기 따위는 한 적이 없으므로 생전 처음 이런 행사를 겪은 귀신들은 꽤나 아파하며 쫓겨갔을 것이라고 얘기하며 한바탕들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물캐기나, 계집애들을 대상으로 한 봄행사로 이야기가 옮아갔습니다.

어린 시절 일본사람 집에 초대받아 가서 <히나 닝교>(3월 3일의 계집아이들의 축제에서 장식하는 인형. 註)를 보았다는 기억을 더듬는 등, 이야기의 꽃을 피웠습니다. 거기에 다소 용기를 얻어, 오늘은 집 대문에 관해서 두세 가지 생각난 것을 이야기해볼까 하고 생각합니다.

집 대문에 관해서 얘기한다는 것만으로도 실은 당치도 않은 일입니다. 집은 우리들이 그 안에 사는 내부공간으로서, 한 발짝 밖으로 내디딘 곳에 있는 길이나 동네나 도시는 집에 대해서 바깥쪽에 있으며, 그다지 집과는 상관이 없는 것인 듯 여겨지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집이 집합되어 도시화되고 있고 도시자체를 커다란 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집에 관해서 얘기할 때는 집의 구조나 기능이나 자재문제도 있고, 거주지역이나 살고 있는 사람이 자아내는 분위기(심층의식)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영향이 사는 집으로 나타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안이고 어디부터가 밖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란 어려워서 입구의 대문을 매개로 해볼까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선 밖에서 바라다봅니다.

한옥만의 거리모양은 고루 가지런하며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가까이 가보면 장식을 베푼 대문이 있고 사이사이의 양옥엔 한껏 멋부린 대문이 달려 있습니다.

서울이나 이곳 저곳의 도시엔 국보급의 문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문이 있습니다. 엄중한 도시의 문이나 성문, 옷깃을 바로 여미게하는 사원의 산문, 귀인 고관들의 옛살림터의 문 또는 돌을 쌓아 둘레를 만들고 통나무 막대를 걸쳤을 뿐인 입구, 관광지의 요금징수소의 문.

일본의 도시에도 문이 있었던 것은 역사서나 문학작품에는 남아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건조물로서는 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이 고장엔 당당하게 현존하고 문이란 이처럼 단단히 내부를 방위하는 기능을 가진 것인가고 실감시키기나 하듯이 건재하고 있습니다.

문의 장식따위에도 방어상의 여러 가지 呪文비슷한 부적에서부터 전화하여 예술적인 풍미에까지 승화한 것이 눈에 띄이고, 그 문양의 원고향은 이 풍토와는 상관없었던 아득히 먼 고장과 연관지워질듯한 것도 있습니다.

로마나 파리의 개선문처럼, 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성벽으로 둘러싸인 유럽도시의, 견고한 게다가 미술적인 문과 한국의 그것과는 좋은 對象을 이루고 있습니다. 목조이든 석조이든, 문을 세워서 방위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정도의 외적도, 부의 축적도 갖지 않았던 일본서민 생활과는 현저한 대극에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듯 생각됩니다.

그러나 문에는, 다만 방위기능만 있는 것은 아닌 듯 싶습니다.

옛부터 건물의 기준치수는 신체치수(human scale)에서 산출해 내고 있습니다. 일본의 어느 가정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다따미>의 본래의 싸이즈는-라고 하는 것은 전후에 대도시에로의 인구집중에 따르는 주택난 때문에, 차츰 <다따미>의 치수가 줄어들고, 그 결과 인간의 생활필요공간이 좁혀지고 압박되고 있습니다만-옛날의 矯小時의 평균치, 다섯자 될까 말까하는 일본사람들의 키를 기준으로, 충분한 여유를 두어 다따미 1죠오(疊)의 크기가 결정되었었습니다.

그와 같은 신체치수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출입구로서의 문이란, 사람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으면 족할 터입니다. 아무리 옛날에, 한국에 위대하고 거대한 분들이 많이 계셨었다 하더라도, 너무나도 문은 크고 지나치게 넓습니다. 게다가 門이란 글자는 戶가 좌우에 있어 두 문짝을 앞으로 당겨 활짝 여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두 사람 이상되는 커다란 물건이 드나들 것을 고려했던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염집에도 훌륭한 대문의 한 귀퉁이에, 또는 별도로 출입문이 있어서 사람들은 보통 그곳으로 드나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슨 큰 모임이 있던지 할 때엔 대문짝이 당당하게 활짝 열리고 번쩍번쩍 윤나게 닦은 차들이 출입하고 있는 광경을 자주 봅니다. 우선 오늘날의 자동차는 옛날의 마차, 우차 또는 가마이며, 그런 것을 탈 수 있는 사람이란 일정한 신분의 지체높은 계급에 한정돼 있었으므로 대문의 크기나 넓이에는 신분이나 격식을 나타내는 성격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동차가 출입함에 따라서 많은 하인이나 관계자들의 출입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대문이 있다는 것은 그 건물이 어떠한 의미로든지 집단적, 조직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이점을 좀 더 좁혀보면, 단지 신분이나 격식이 높다거나 또는 권세가 있다거나 하는 것뿐만 아니고, 대문의 내부에는 풍부한 정보나 탁월한 기술을 가진 有識者가 거처하여, 사람들은 허리 굽혀 대문을 들어가서 門弟로서 입문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禪宗이나 꽃꽂이나 茶道, 書道, 武道, 劒道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적 중심을 통솔해 나아가는 스승들이 추상적인 문을 세우고 있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극히 평범한 여염집에도 훌륭한 대문이 있습니다. 아직 개인전용의 대문을 갖지않은 사람의 목표는 대문이 떡 버틴 내집마련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엔, 신분이나 격식을 높이고 싶은 강한 희망이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곳에서는 점차로 분산되고 핵화해가는 도시생활이 대문을 세우는 것으로써, 가문에 이어지는 사람들의 연대감을 심리적으로도 확인하는 실마리로 삼고 싶은 원망의 나타남이라고도 여겨집니다.

대문 앞에 서있으면 그 대문에 저마다의 面相이 있어서, 반갑게 사람을 맞이하고저, 하기보다는 딱딱하게 격식차리거나, 완고하게 외부사람을 거절하는 듯한, 가까히 가기 거북스런 표정이나 독선적인 생김새 따위가 보입니다. 그 표정은 집주인의 생각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집 내부를 단단히 지키는 것에 전념하고 있고 주변의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보입니다. 돌이나 부록크로 담을 두르고 그 위에 철책을 뻗친 사나운 표정에는 정말로 당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의 생울타리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물론 사람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습니다. 현관은 격자무늬 문살을 낀 유리문이 보통입니다. 이처럼 간단한 장치입니다만, 거기서부터 저쪽은 일단 타인의 경계로서 인정하는 심리적 계기를 극히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제가 살았던 古都 교오또는 다른 역사적 지방도시 못지않게 거리의 경관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집집마다의 앞뜰에는 반드시 나무를 빽빽이 심은 구석이 있고 생울타리로 경계가 지어져 있습니다만 그런 것들을 다 포함한 집의 외관의, 또한 거리 전체의 조화가 소중히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게되면 담이라든가 벽이라든가 하는 것들도 고려의 대상이 됩니다. 담이라는 것은 원래는 눈가림으로써 각 가정의 프라버씨를 감싸고 가려주는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옛날보람들은 담으로써 자기와 남의 집을 판연히, 더구나 아무런 주저없이 태연하게 구별해버리는 감각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높은 벽과 엄중한 대문으로 경호받는 양반집들조차 대문안에 들어가 버리면 해방적이고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고, 또 서로 엿보면서 조절하고 지내던 부분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대도시에선 그렇게는 안됩니다.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하느냐, 도둑은 어떻게 막느냐 등등 물으시는 것입니까?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인간의 본성은 그리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도둑도 있었고 살인도 있었습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저마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도둑이 크게 현재화하여 흡사 나에게만 피해를 주고 있는 듯이 클로즈엎 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요? 언제나 나, 나만… 이군요.

이렇게 대문 앞에 서 있노라면 환상인지요…항상 지나다니던 길이나 거리나 가로가 마치 한 감옥으로부터 또 다른 감옥으로 연결되어 있는 복도 같이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제부터 들어가려는 집의 내부가 설령 내가 익히 아는, 반가운 단란의 장소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혈연, 지연 또는 지적인 이기주의나 물욕이나 자기애 따위에 얽매어진 감옥인 듯이 여겨지는 것입니다. 다만 보통 평범한 생활을 하고있는 우리들에겐 옥사의 내부에 관해서는 아무런 인식도 없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까이 가서는 안되고, 들어가서도 안 된다는 막연한 禁忌라든가, 실감없는 공허한 공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곳에선, 안에 대해서는 그 나름대로 개방적이고 보호적이어서 어떠한 초라한 집이라도 내부에서 보면 즐거운 우리집인 것이므로, 들어가 버리면 視点이 달라진다는 것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의도적으로 대문으로 출입합니다. 그때 문이라는 경계를 통과합니다만, 무엇인가 心的인 轉換을 되풀이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문안에선 혈족적 연대감, 바꿔말하면 같은 가문에 속하지 않는 存在 일체에의 배척적 의도라고 하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판단기준이 되고, 습관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心的 轉換장치가 제대로 잘 작동하고 있는 동안은 아무런 문제는 없습니다만, 한번 그것이 고장이 나면 심적 부담이 생기고 노이로제나 폭력,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거부반응이 노출해 나옵니다. 대문이 대변하고 있는 人性原理, 합리성이나 질서 잡힌 것에 대하여, 그러한 틀짜임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비합리적인 것이, 집안의 불필요하게조차 보이는 어둠의 공간에 混在해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을 몰아내고 조명만 비치면 말끔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집이나 그 안에 들어가면 훌륭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마다 리듬이나 변화가 풍부하고, 밝음도 어둠도 서로 포용하여 융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인공적으로 굳혀진 대도시의 집이 자연 속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의 주거다움을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예를 들면 지금은 이미 다 없어진 초가지붕의 둥글고 부드러운 무방비상태의 모습이라든가, 바람막이로 둘레를 돌로 둘러쌓은 속에서 붙임성있게 사람을 반기는 작은 집이 빙긋 내다보고 있듯이, 환경에 순응하고 자연을 믿고 사람을 믿고, 그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집. 그런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도 무언가 정신적인 선물을 주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라고 믿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