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연극론
이태주
아우그스트 보아르는 1931년 브라질에서 태어나 상파울로의 아리나 극장에서 연출가로 활동하다가 1971년 아르헨티나에 망명했으며, 1978년 이후에는 파리에서 <표현기술 연구보급센터>를 주재하고 있다. 파우로 후레일의 식자교육(識者敎育)과 보아르의 민중연극의 실천은 똑같이 브라질의 민중문화운동이 거둔 성과로서 제3세계권에 널리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후레일의 경우 식자교육은 단순히 문자를 읽는 문제에 국한되고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문자를 통해 세계의 실상을 읽는 일이었으며, 세계라는 백지의 무대 속에 자신의 행위를 써넣는 일이었다. 읽고 쓰는 식자교육은 이 일을 하기 위한 한가지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보아르는 이 일을 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의 한 가지로 연극을 택한 것이다.
연극을 보고, 연극을 만듦으로써 자기 자신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제문제를 토의하는 <연극에 의한 회의>는 그 형식이 다양하고 활용되는 범위가 넓어 제3세계의 민중문화운동 속에서 핵심적인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의 실상을 인식하고, 그가 인식한 세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의식화> 행위는 연극의 고유 기능의 한 가지인 대화공간의 형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보아르의 저서 <피억자(被抑者)의 연극>(1975)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연극의 기술>(1975)은 그의 민중연극론인데 여기서 제기되고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정치적이다. 그리하여 그 중의 한가지 활동이 연극인 것이다. 연극은 한 가지 무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효과적인 무기인 것이다. 민중은 연극적 스펙터클의 창조자이며, 또한 그 향수자인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 축제인 것이다. 귀족정치가 시작되면서 연극의 분업이 시작되었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그들만이 연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들, 즉 관객석의 인간들은 받아들이는 존재가 되었으며 수동적 입장의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관객이 되고, 대중이 되었으며, 군중이 되었다. 귀족사회는 스펙터클에 의한 효과적인 지배이데올로기를 반영하기 위해 또 하나의 분업을 확립하였다. 어떤 배우는 주인공이 되고, 또 다른 배우들의 집단은 코러스가 된 것이다. 코러스는 대중을 상징한다. 그 다음에 브르주아의 시대가 왔다. 예외적인 개인으로서의 주인공은 민중으로부터 분리된 새로운 귀족인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헤겔에 의해 이론화된 절대적 주체로서의 등장인물을 다시 한번 객체로 전환시켰다. 이 때문에 등장인물은 사회적 힘의 객체가 되었다. 그는 결코 상부구조적 제가치의 객체가 아닌 것이다. 사회적 존재가 사유를 규정하는 것이지, 사유가 사회적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와 관객의 장벽을 파괴해야 한다. 누구나 연기할 수 있으며, 누구나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이들이 주역이면서 동시에 코러스인 것이다."
민중연극의 특징의 한가지는 보아르가 지적한대로 관객과 무대의 접근, 주역과 코러스의 합일 속에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접근과 합일의 문제는 연극 기술의 측면에서나 그 기술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연극 내용의 측면에서 고찰해 볼 때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관객과 무대 사이에 발생하는 분리는 곧 연극 위기의 주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접근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무대와 객석이 접근된 상황이 이룩되었다 할 때 그 연극 속의 주역과 코러스로서의 민중을 어떻게 합일시키느냐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 문제는 다시 관객의 민주적 기반 확대와도 연관된다. 한상철 교수는 <연극의 대중화와 상업극>에서 "민주화된 문화의 차원에서 말할 때 민중은 시민 모두요, 국민전체가 된다. 이들은 직업, 취미, 교육, 환경, 욕구 등이 판이하게 다르고 현격한 격차를 갖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한 극장에 모였을 때 과연 어떤 연극이 그들 모두를 골고루 만족시키고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라고 말하고 있다. 연극과 인연이 없고, 연극을 보는 습관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대다수 민중을 극장에 끌어 모았다고 해서 민중연극을 창조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민중적인 내용을 살리기 위해 예술적으로 질이 저하된 공연을 했다고 해서 민중연극을 했다고 자랑할 수는 없다. 민중이 숨쉬는 사회나 국가, 그리고 문화적 전통이 바닥에 깔려있고, 그것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 연극이 아니면 민중적 연극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연극과 그 연극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회와 표면적으로나 심층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면 역사적인 액츄얼리티가 생길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민중연극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민중연극은 민중 자신의 자기 표현이 <극적>으로 성취된 경우가 된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관객이 필요하다.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제반문제에 대해서 역사적 의식을 지니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깨여있는 관객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근년에 이르러 우리 연극의 흐름 속에는 연극을 참여의 무기로 삼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채희완 교수는 <한국의 민중극>(1985) 속에 민족문제, 농촌문제, 근로자 및 도시빈민의 문제, 사회일반 및 시사문제,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 문제 등을 다루고 있는 마당굿 14편을 수록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마당굿 운동은 새로운 연극운동이기 이전에 생존을 위한 싸움을 삶 속에 모아 다시 나누어 갖는 문화운동이며, 은폐된 현실을 드러내 공동 해결하는 사회운동이고, 민족적 신명으로 제3세계의 생명을 예축하는 생명공동체운동 이다. 마당굿의 개념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늘날 이 땅에서 성취되어야 할 민중적 삶의 승리를 위해 끝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며 굴러가는 생명분화의 실마리, 열린 개념이다.(중략) 그것은 오늘 이 땅 사회구성원의 공동적인 염원인 민주·평등사회의 건설, 민족통일국가의 수립을 위한 민족적 비나리의 단초"인 것이다. 이 같은 언급이 민중연극의 일단을 제시하는 것이라 한다면 민중연극은 우리들의 현실적 삶을 자극하고, 실재적인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입장을 밝히는 도전과 반항과 대결의 연극이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 참여하는 연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참여의 방법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예술적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보아르로 돌아가자. 그는 연극이 효과적인 참여의 무기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관객이 행위자로 변용 되는 4단계의 연극적 과정을 안출해 내었다. 제1단계는 자신의 신체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일련의 연습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이해하며, 자신의 신체의 한계와 그 가능성, 그리고 사회적 왜곡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공부한다. 제2단계는 신체의 표현력을 심화시키는 일이다. 상투화되고 일상화 된 표현형태에 의존하지 않고 신체를 사용해서 새로운 이미지의 표현이 가능토록 하는 신체훈련을 이 과정을 통해서 실시한다. 제3단계는 연극을 언어로서 사용하는 언어로서의 연극이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드라마를 쓰고 배우는 그것을 연기하는 동시적 진행의 드라마뜨루기가 실시된다. 관객은 연극에 직접적으로 참가하는데 그 방법은 조상연극(彫像演劇)의 방법이다. 관객들은 배우의 몸으로 여러 가지 입상(立像)을 구상한 후,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밝힌다. 뿐만 아니라 관객은 극중의 행위에 직접 개입하여 토론극을 연기한다. 제4단계는 관객 자신의 생각을 연극으로 표현한다. 관객은 논의하고 싶은 문제 또는 행위하고 싶은 액션을 스스로 연기해 보이는 이 때 채택되는 방법은 신문극(新聞劇), 사진소설연극(寫眞小說演劇), 신화극(神話劇), 분해연극(分解演劇), 의식(儀式)과 가면(假面)에 의한 촌극(寸劇), 그리고 생활현장-식당, 시장, 열차속, 공중전화박스 등 -에서의 <보이지 않는 연극> 등이 된다.
보아르의 민중연극의 이념과 방법은 지극히 논리적이요, 과학적이다. 그의 연극이 논리적인 타당성과 과학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이유는 "연극은 전문가만의 것이 아니다"하는 그의 입장과 방법이 그가 펼치는 민중연극운동에서 철저하게 명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장 한복판 야채가게 앞에서 두 여인을 내세워 연극을 실천한다. 그는 파업중인 공장 속에서 노동자들이 연극을 통해서 현안의 문제를 토론하도록 유도한다. 농촌에서, 빈민촌에서, 거리에서 그가 시도한 연극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의 얘기를 구체적으로 들어보자.
"나는 사이코 드라마에 관해서는 별로 경험이 없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사이코 드라마는 과거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나의 토론극은 닥쳐 올 미래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사이코 드라마는 환자를 치료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토론극의 목적은 사회를 개선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 차이는 중요합니다. 토론극의 과정 속에는 <억압받는 자의 반격>이라 불리는 레퍼토리가 있는데, 이것은 과거에 억압을 받은 인물을 선택해서 그 장면을 처음 경험한 것처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는 억압받은 장면을 감수하며 보여줍니다. 다음에 두 번째로 이 장면을 다시 한 번 연기합니다만 이번에는 배우에게 미리 주문을 해둡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억압을 제거해달라>는 것이죠. 세 번째는 역할을 바꾸어 봅니다. 두 번째의 경우, 억압을 제거하는 역할을 연기한 배우는 세 번째에는 억압을 부과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경우 확실히 이 같은 연기에는 사이코 드라마와 유사한 일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억압을 제거하는> 단계에서는 목표가 미래의 놓여집니다. 그래서 최종적인 목적은 사회의 개선에 있는 것이지 개인의 <치유>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은 연극>이 기차 속이나, 버스 속이나, 레스토랑 등의 장소에서 두 세 사람의 배우에 의해서 시도되고 있을 뿐이어서 연극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달라서 이것은 순수한 전통연극과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배우들이 모여서, 한 가지 테마에 관해 토의를 하고, 채택합니다. 다음에는 등장인물의 성격창조에 관한 논의를 합니다. 그런 다음 연습에 들어갑니다. 준비가 완료되면 동료들에게 관객이 되어줄 것을 부탁합니다. 이들 관객들은 제2의 배우가 되는 셈이죠. 이 일이 완료되면 기차, 버스, 부두 등의 장소로 진출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극이 시작됩니다. 어째서 이것은 연극이 될 수 없습니까. 우리가 하는 것과는 다른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연극은 현실을 개시하며, 현실을 해석하고, 관객의 의식을 바꾸려고 합니다. 또는 관객들에게 어떤 의식을 지니도록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폐쇄적인 현실의 비전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들이 하는 <보이지 않은 연극>이나 <토론극>의 방향은 이와는 다릅니다. 관객을 연극의 주역으로 바꾸어 가는 방향인 것입니다. 이 길을 가다보면 그 이후에 오는 것은 행동입니다. 미래에 관해서 논의하게 되면, 그후에 오는 것은 미래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술가는 예술의 방법을 가르치는 인간입니다. 단순히 희곡을 쓴다던가, 연기를 한다던가, 연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르치는 것입니다. 가르치면, 그들이 스스로 연극을 만듭니다. 이렇게 해서 공동제작의 집단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아르의 증언을 통해서 그의 민중예술론이 뚜렷한 어떤 방법의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방법은 예술적인 범주 안에 있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억압받는 인간의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이 일을 개선해야 되겠다고 하는 그의 현실참여는 결코 생경한 정치적 구호의 제창이나, 도식화된 이념의 구현에 머무르지 않는다. 다양하고도 심화된 예술표현의 자유를 결코 흑백논리의 독선적인 횡포와 맞바꾸지 않는다. 좋은 예술, 좋은 문화, 좋은 연극은 무턱대고 통합하는 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분산하는 어떤 현상 속에 찾을 수 있다는 브레히트적인 사고와 같은 것이다.
해방 후 40년, 우리 연극을 반성해 볼 때 우리는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 인식에 토대를 두어 연극을 구성해나가는 연극적 상상력이 부족했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현실적 혼란을 문화적으로 극복하는 힘이 허약했던 것이다. 연극의 본질인 다이알로그의 세계를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술적으로 성취되는 질서가 생의 암흑이 야기시키는 혼란과 치열한 대결을 할 수 없었다. 현실을 보는 획일화된 눈은 언제나 허망한 환상만을 뒤쫓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 연극은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깊이 작용해왔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현실은 우리가 상정했던 현실과는 언제나 동떨어져 있었다. 민중 한 가운데서 우리들이 춤추고, 아우성치고, 박수갈채를 보내며 축제의 막이 내릴 때 우리들은 언제나 현실의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불안감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또 다른 공포의 심연이 있었고, 또 다른 현실이 있었던 탓이다. 현실은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이었다. 사회는 우리들이 인정한 것 보다 훨씬 더 모순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인생은 우리들이 믿었던 것처럼 도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사회적인 현상을 두 개의 계층이 갈등하는 힘의 작용으로만 해석하는 상투적인 견해에 대해서 우리 연극은 뚜렷한 반발을 시도하고 있지 않았다. 사회적 현실 속에는 사실상 숱하게 많은 계층들이 혼재해 있고, 그들이 펼쳐 보이는 존재방식은 다양하기만 한데 우리 연극은 그토록 많은 체험세계의 분열과 단편의 진실을 외면한 채 민중집합체의 이념적 단면에만 연극의 거울을 비추어 보고 있었다. 40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들이 눈을 뜨고 우리 연극을 보았을 때 그 속에는 <우리 자신들>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 연극이 현실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당연한 결과였다. 따라서 우리 연극은 현실을 발견하고, 그 현실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는 일에 크게 기여하는 문화형성력이 되지 못했다. 숨김없는 현실과의 접촉이 불가능해지고, 현실과의 확고한 관계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무대와 관객의 상호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현실을 비관하는 연극이 없기 때문에 현실을 비관하는 관객도 없는 것이다. 현실을 토의하는 연극이 없기 때문에 현실을 토의하는 관객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무대와 관객은 서로 겉돌며 유리된다.
대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의 상태일 수도 있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특수한 하나의 입장일 수도 있다. 살아나가는 한 가지 방법의 의미 일 수도 있다. 연극이 생을 비추는 거울이라 할 때, 그 거울은 대중의 마음의 상태와 입장과 그리고 생의 방법을 어김없이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의 상태, 입장, 그리고 방법은 현실의 변화와 더불어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하나로 규격화되거나 고정된 기성적 이념의 슬로건이 아니다. 끊임없는 갈등과 변용을 통해 생성되어 가는 생명의 실체인 것이다. 따라서 대중을 표현하는 연극은 이 같은 실체가 내세우는 가치의 예시가 되어야지, 특정한 이념적 슬로건만을 선전하는 희생물이 되어서도 안 되고, 현실적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극화가 되어야지, 일부 계층의 문제 해결이나 행위의 패턴만을 일방적으로 선전해서도 안 된다. 민중연극이라고 해서 민중적 삶의 현실이 한 토막 살점처럼 생경하게 연극 속에 투입된다면 그것은 예술이전의 상태요, 연극의 본질과도 어긋나는 일이 될 것이다. 연극은 현실 속의 액션의 재현이 아니라 무대 속에서 재구성된 액션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현실 속의 이야기의 사실적 나열이 아니고 그 이야기를 소재로 한 계획된 플롯의 극적 전개가 되기 때문이다. 연극이 현실을 얘기하되 그것이 현실의 목소리 이상으로 진폭 되고 심화된 의미의 소리가 되는 까닭도 연극이 예술이 되게끔 하는 미적 규준과 방법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아르의 민중연극론을 거론하게된 나의 동기는 그의 연극적 실천이 내포하고 있는 특수한 사정을 뒷전에 미루어 둔다하더라도 일단 그의 민중문화운동으로서의 연극행위는 연극을 연극예술이 되게끔 만드는 기본적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으며, 우리 연극계에서 주장되고 있는 민중연극은 그 실천에 알맞은 형식과 방법이 아직도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연극과 사회의 상관관계와 그 접근방식에 대한 고찰, 그리고 우리나라 민중극의 현실인식에 대한 성찰은 이미 필자가 예술원 논집에서 밝힌 적이 있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리스토파네스가 그의 희극작품을 왕성하게 발표하던 시기는 아테네가 스파르타와 27년 동안이나 기나 긴 전쟁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아테네가 그 당시 국가이념으로 내세우고 있었던 모든 가치를 비판하며 공박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 속에서 그는 전쟁의 부조리성을 표현하면서 전쟁을 공격했다. 그의 작품 ≪리시스트라타≫는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여성들이 섹스 스트라이크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 ≪평화≫는 전쟁을 유도하는 아테네의 영도자들을 자기중심적인 무식한 인간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비판대상은 전쟁만이 아니었다. 아테네 사법제도의 부조리와 무책임한 교육과 연극의 타락도 그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 같은 그의 사회적 반항행위는 엄격한 연극적 방법을 통한 교류의 개념이지 극한적인 대립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노래와 춤과 음악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스토리 속에서 인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도입해서 그 인물을 캐리커쳐화(희화화)한 것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연극을 통해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올바른 행동을 가르치는 일이 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연극의 목적은 행동윤리의 제시였지만, 그리스 연극에 있어서 우리가 주목해야되는 일은 연극 속에서 그 시대의 철학적이며, 도덕적이며, 사회적인 문제를 솔직하게 다루어나가야 한다는 진지한 주장이다. 그런데 그리스 연극의 위대성은 그 시대의 토픽을 다룬 연극내용의 개별성이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속에 입증된다. 그리스 연극은 그 시대의 다급한 현실문제를 올바른 예술적 형식 속에 담아서 표현하는 예술적 창조력이 탁월했다. 오늘의 민중연극의 문제점은 바로 이 문제와 심각하게 관련되고 있다. 오늘의 현실적 체험, 오늘의 현실적 효과를 내세우는 일에 너무나 조급한 나머지 그것을 전달하는 기술과 방법이 지나치게 비예술적이요, 조잡하다는 점이다. 자연주의 연극의 주창자였던 에밀 졸라는 말했다. <예술이라는 어휘는 나를 불쾌하게 만든다.> 사회악을 생동감 있게 표현해서 고발함으로써 사회개혁에 공헌해야한다는 졸라의 주장은 당시의 사회상황으로 보아서 옳았다고 보는데 사회개혁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동을 해야되는가에 대해서는 그도 아무런 암시를 던질 수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사회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가능한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사실만을 거듭 거듭 확인했을 뿐이다. 그는 사회악을 자연주의 연극의 방법으로 냉혹하게 진단하는 일에 사명감을 느꼈을 뿐이지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의 치료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없었다.
사실주의 연극이나 자연주의 연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연극을 통한 사회개혁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는 사실주의나 자연주의의 연극이 내세운 방법을 채택하지는 않았다. 그는 현대사회를 충실하게 기록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서 그는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에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드라마틱 패라블(Dramatic Parables)을 구성하는 연극을 창출해내었다. 그는 관객들이 이 같은 패라블을 비판적으로 관찰해서 판단한 다음 극장 바깥으로 나가 그가 사는 사회를 관찰하고 개선하는 일에 적용하도록 유도하는 일에 헌신했다. 브레히트 자신도 사회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의 처방을 연극 속에서 제시하지 않았다. 그 일은 관객 스스로가 마음속에서 결심해서 하는 일이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현대연극의 다양한 활동 속에는 졸라나 브레히트처럼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참여연극에 동조하는 많은 연극인들이 있고, 그 가운데는 졸라나 브레히트가 택한 객관적인 방법을 배척하는 집단도 있다. 그들 가운데는 1970년 6월 뉴욕에서 공연활동을 한 토론토 워크숍 컴패니나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 델라노시에서 창단된 엘 데아트로 캄페시노 등이 있다. 전자가 공연한 ≪시카코 70≫은 미국 권력구조의 문제점을 폭로한 아리스토파네스류의 사회비판극이다. 후자는 멕시코계 미국인 농부들이 직면한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내용의 선전극을 주로 공연하고 있다. 이 극단의 연출가 루이스 발데르는 자신의 연극적 입장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최고의 프로파간다는 최고의 예술에서 탄생되거나 최고의 예술과 융합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연극예술에 있어서 예술은 커뮤니케이션이요, 동시에 프로파간다이다." ≪시카고70≫의 연출가 죠지 루스콤도 그의 참여연극을 위해 의지한 형식과 방법은 아리스토파네스의 예술이었다. 루이스 발데스의 농촌극도 그 바탕에는 준엄한 예술적 방법에 대한 탐색이 깔려있는 것이다.
민중연극이 연극이 되려면 연극의 예술적 방법을 뚜렷하게 확립해야 한다. 민중연극이 연극이 되려면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는 예술적 내용을 확실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