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제7회 대한민국 무용제

무용

-질적 향상과 양적 확대를 이룩




이병옥 / 무용평론가

대한민국무용제가 7회 째 거듭됨에 따라 그 동안 많은 무용단들이 참가하면서 자신들의 기량과 무용세계를 야심껏 펴 보일 수 있는 발판을 삼아 왔으며 참신하고 볼만한 작품이 많아짐에 따라 애호가들의 관심도 높아져 관객수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특히 금년부터는 예년에 없이 후한 지원금으로 대본 구성료와 음악비 등에서 영세성을 면하게 해 줌으로써 안무자의 작품의도가 잘 나타나고 개성도 확연해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우리 무용계의 취약점의 하나인 남성 무용수 부족현상이 일시에 해소된 느낌이 들 정도로 남성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아졌으며 아울러 역할면에서도 그 비중이 높아져 절름발이 무용수 구조라는 딱지를 떼게 되었다.

또한 우리 무용계도 이제 유아기를 벗어나 질적 향상과 양적 확대 등으로 폭넓은 무용인층을 형성한 성년기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경연형식의 무용제를 통하여 미숙한 기량을 향상시키면서 한국무용발전의 기폭제 역할을 담당해 왔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제는 경연방식만으로는 무용제 다운 무용제로 발돋움할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

그러므로 경연형식과 초청형식이 복합된 이원적 방안을 검토해 볼만하다고 본다.

즉 경연형식은 신인무용가들에게 문호를 넓혀 등용문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중견 및 원로 무용가나 수상 무용단들에게 초청형식을 취함으로써 등락에 따른 눈치나 후유증에 얽매이지 않고서 마음껏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펼치고 개성을 피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바탕을 마련해줌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해마다 거듭되는 판에 박힌 전야제무용에서도 진일보할 수 있을 것이며 대한민국무용제 다운 축제로 발전하리라 본다.

'어져 내 일이여'와 '수로여 백학이여'

이제는 '한국적'이니 '전통적'이니 하는 말보다 '현대적', '세계적' 2000년대를 향한 '지향적'이라는 말이 어울릴 때가 온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두 작품은 과거적 사념에 사로잡혀 진부한 소재와 주제에 머물렀다.

이길주의 '어져 내 일이여'는 1장에서 황진이(이길주)와 이사종(민준기)의 만남과 사랑이 듀엣으로, 2장에서는 다시 같은 주제를 군무형식으로 표출하고, 3장에서 이별과 고뇌와 회상으로 매듭지었는데 한정된 시간에 같은 주제를 반복함으로써 장별 연계성이 부족하고 좀더 진하게 표현해야 할 대목에서도 토막이 나는 등으로 끈끈한 사랑과 애틋한 별리를 관객에 심어주지 못했으며 춤사위도 신무용적 기법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의상도 단순한 한복의 차원에 머물렀다. 다만 프롤로그에서 둥근 장지문에 비쳐진 화려하고 환상적인 반투명 그림자 춤만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에 비해 김말애의 '수로여 백학이여'는 수로부인(김말애)과 남편(지희영)의 화끈하고 애절한 표현이 관객의 심금을 울려 주었고 현대적인 전자음악과 은은한 합창이 춤 반주와 분위기 묘사에 적절히 구사되었으며 배역에 맞는 적절한 의상과 색채가 돋보였으며, 안정된 작품의 짜임새로 대본작과 비대본작의 대조를 한눈에 느끼게 하였다.

'네모난 네 칸의 그림'과 '인다리'

'네모난 네 칸의 그림'은 '만화'를 형상적으로 표현한 이청자의 아이디얼리티가 창출한 제목이다. 이러한 양상은 작품 내용에서도 역력하였고 사소한 것 같지만 이번 무용제의 카달로그에서도 현대무용의 남정호와 더불어 번득이는 기지가 발휘된 구성을 보였다.

꽃과 평화 속에 살던 이천 년 전의 아이가 시간의 여행을 떠나 현대 속에 흘러들어 옴으로써 네모 칸과 같은 규격과 속박에 질식할 것 같은 현실을 폭로하고 인간적 자아를 깨닫게 하는 작품의도는 높이 살만 하나 작품 전개에서 주인공과 군무가 주제에 부합되지 못해 단순한 춤의 나열과 피상적인 메시지 전달에 그친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구성지고 흥겨운 가락과 다이나믹한 남성 트리오 춤과 처용무같은 5박자 춤이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하는 등의 전통 무용적 기법이 두드러졌다.

창무회의 '인다리'는 신들린 자가 신내림을 거부할 때 신령이 다른 생명을 희생시켜서라도 무당을 점거하는 다리를 놓는다는 무속의 소재이다.

이것은 안무자 임학선이 그 동안 무속을 바탕으로 한 한국인의 삶을 표현하면서 무속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남다른 노력의 소산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깔끔한 표현력과 매끈한 구성 그리고 무용수들의 뛰어난 기량을 바탕으로 클라이맥스까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의 혼을 빨아들였으나 마지막 종결처리에서 차단된 것이 흠이었다.

'도시이야기'와 '비나리'

남정호의 춤 세계는 다분히 유희적이며 코믹댄스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준다.

설령 지금과 같은 경연형식의 무용제전에서 상을 받고 안 받고는 염두에 두지 않는 듯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거리낌없이 표출하는 마음가짐이 호감을 산다.

그래서 보는 이도 부담 없고 후련하다.

천태만상의 세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본 '도시이야기'는 사실적인 표현과 무용적인 표현을 계속 교차시켜 나가는 기법으로 구성하여 거기다 풍자와 해학을 깔아 놓음으로써 이색적인 감흥을 던져 주었다.

다만 지나치게 연극적·사실적 요소가 강하게 노출됨으로 해서 무용의 의무라 할 수 있는 춤의 형상화를 잃을까 염려된다.

김복희·김화숙의 '비나리'는 '비나이다'의 뜻으로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을 함축시켜 기원·축원·염원을 표현했으나 이렇다 할 메시지가 없으며 구성상에서 서스펜스도 없다.

느슨한 음악에 축 처진 동작으로 움직일 뿐이며 많은 무용수와 남성 무용수들의 스케일만이 무대를 누볐다.

'살풀이 여섯'과 '처용'

이정희의 살풀이 시리즈 여섯 번째는 분단국가의 비극을 묘사하면서 조국통일의 염원을 기리는 마음으로 살풀이한 것인데, 겨울 내복 같은 칙칙한 의상에 올백머리와 진한 인상을 풍기는 화장과 사뭇 공포심마저 들게 하는 굳은 표정에서 뼈저린 우리 민족의 아픔을 느끼게 하였고 어두운 조명, 베이스톤이 높은 음악, 광란적이고 무거운 춤사위에서 민족의 비애를 극복해 가는 강한 의지력을 엿볼 수 있었으나 암울한 분위기에 싸여 살을 풀지 못한 듯한 감흥이 들어 개운치 못했다.

처용설화가 무용화된 것은 몇 번 있었지만 최청자는 단순한 시간적인 유원성이나 토속성에 얽매지 않고 보다 세계성과 현대성에 부조시켜 보고자 포커스를 맞춘 점이 특색이었으나 실제로는 스토리 전개에 치우쳐 작품의도가 살아나지 못했다.

그러나 역신과 처용과의 갈등과정을 화면에서의 영상장면과 무대에서의 무용장면을 동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꿈과 현실을 이원적으로 표현하는데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경쾌한 음악과 남녀무용수들의 유연한 몸짓과 열연이 돋보였다.

'세 걸음'과 '译네'

한국무용과 현대무용 작품이 각 네 편인데 반해 발레는 두 작품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발레는 어려움이 많아 부추김이 필요한 판에 무용제에서도 소외된 감이 있다.

그래도 이번 두 작품은 아주 대조를 이루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물이랑 발레단의 '세 걸음'은 이끌림, 만남, 어울림의 추상적인 주제에 형이상학적인 소재인데다, 내용면에서도 감각적이기 보다 의미적이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랐고 구성도 딱딱하고 무거우며 침울했으며 춤도 전통적인 발레에 치우쳐 표현적이라기 보다 기법적이었다.

그러나 서양발레와 한국적인 춤가락을 조화시키려는 안무자 서정자의 애쓴 흔적이 역력하고 성과도 보였으나 동작이 굳어 무용수들의 원숙한 기량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

이에 반해 애지회의 '译네'는 원시 주민의 딸 译네가 문화적으로 앞선 신웅과 만나 사랑의 감화로 여권의 지배자가 되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엮은 작품인데 뛰어난 기량은 아니었지만 김복선의 참신한 안무에 힘입어 발랄하고 경쾌한 표현무용적 기법으로 호감을 샀으며 서양발레 형식에 한국적 소재를 대입시키는데 성공한 케이스로 보아 앞으로 한국적인 창작발레의 가능성과 자신감을 일깨워 준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