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중기획

예술행정과 문화촉매운동

문화예술의 촉매활동 - 서유럽 사례를 중심으로-




김준길 / 문화공보부 홍보담당관

나라마다 문화와 예술을 관리하는 방식이 다른 것은 그 나라의 서로 다른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정치 경제 문화 생활을 국가가 총관리하는 공산권은 말할 필요도 없겠고, 서구의 자본주의 선진국들도 문화와 예술의 국가관리, 곧 문화예술 행정의 범위와 내용은 다양하다. 어떤 유형을 말하라면, 대체로 근대이후 크고 작은 독립국으로 공존하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의 경우와 영국을 모델로 한 영연방권의 경우, 그리고 자치주를 가지면서 초대형국가를 이룬 북미합중국, 곧 미국의 경우를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다. 국가의 직접관리라는 측면에서 서유럽형이 가장 적극적이고 그 다음이 영연방형이며, 지방자치단체 또는 민간단체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쪽이 미국형임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서유럽형 문화예술 행정은, 그 중에서도, 국가규모나 정부의 형태 및 역사적 전통의 계승 발전 등 여러 가지 조건을 감안할 때 하나의 모델로서 우리의 참고가 될 만하다. 특히 문화예술 행정의 가장 핵심적인 목표, 곧 문화예술 진흥과 이를 위한 문화예술 촉매자(불어 : animateur)의 조직적 국가관리라는 점에서 서유럽형 문화예술 행정은 대부분 중앙정부에 비중 있는 독립 "部"(문화省)를 가질 만큼 적극적이다. 여기서는 주로 필자가 상당기간 머물면서 관찰할 수 있었던 프랑스와 스웨덴의 사례를 중심으로 문화예술 촉매자 문제를 접근하기로 한다.

서구에서 문화예술 촉매자 문제는 먼저 문화예술 행정보다도 그 촉매활동의 아이디어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문화예술은 그 창조자와 그것을 받아들이며 누리는 수용자와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하나의 매체라고 할 때, 문화예술 활동을 보다 풍부하게, 보다 세련되게 발전시키는 노력이 바로 촉매활동인 것이다. 따라서 촉매자는 창조자와 수용자 사이에 있게 된다. 대체로 서유럽국가들의 문화정책이 촉매자들을 지원하고 촉매활동을 조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사례 1)

1982년 여름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은 본격적인 마르크 샤갈 전을 열어 대단한 관람객을 모았다. 3개월 정도 기간동안 연일 초만원을 이루었고 인구 1백만의 스톡홀름 시민뿐 아니라 전국의 국민들과 인근 국가 사람들까지도 일부러 이 전시회를 보려고 몰려들었기 때문에 휴일에는 미술관이 있는 조용한 작은 섬 스켑스 홀멘과 시내와 연결된 다리 입구까지 입장객들의 장사진이 생기곤 했다.

피카소 이후 超현대 미술품을 세계에서는 처음으로 돈을 주고 수집하여 전시하기 시작한 일로 유명한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의 샤갈 전은 전세계 유명 미술관과 소장가들로부터 중요한 작품들을 많이 모을 수 있었다. 특히 샤갈이 태어나서 젊은 화가로 일했던 레닌그라드 미술관과의 제휴로 자유세계 관람객들이 직접 보기 어려웠던 작가의 초기작품들에서부터 샤갈이 이름을 날리고 초현실주의미술을 완성한 파리 생활 때의 작품들과 유명해진 뒤 미국이 수집해간 값비싼 작품들, 그리고 만년의 작품들까지 과연 한 대가의 일생을 한군데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샤갈 전이 열리던 82년 당시 샤갈은 아직 살아 있었다.

이만한 기획전이면 사실 선전이나 사업조직이 얼마나 더 잘 되고 못 되고 관계없이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 식으로 잘 될게 뻔하다. 또 스웨덴이라는 외교적 위치에서라면 레닌그라드와 파리와 뉴욕을 한꺼번에 끌어들일 수 있다는 기획 아이디어도 그렇게 기발한 것은 아니다. 당시 필자가 이 공전의 전람회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전세계 성공한 유태인들이 비싼 값으로 작품을 사주면서 후원한 금세기 최대의 유태인 화가의 작품세계도 아니요, 동서세계의 문화교류를 누리는 정치적인 중립국의 문화행정 여건에 대한 부러움도 아니었다. 필자는 미술관 당국이 마련한 한 프로그램에 감동했다.

관람객들은 일단 입장하면 작품들이 전시된 장소로 가기 전에 미술관에 붙은 영화관으로 안내된다. 필자를 감동시킨 프로그램이란 바로 거기서 본 약 15분 짜리 다큐멘터리 필름이었다. 샤갈의 일생과 작품을 그때그때 작품의 배경과 함께 설명한 안내용 필름인데, 당시 스웨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움직이는 영상을 쓰지 않고 슬라이드로만 편집된 슬라이드 영화였다. 물론 음악과 해설자의 설명이 있어서 영화나 다름없는, 아니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느낌을 주는 시청각 자료다. 이 안내용 필름이야말로 기막힌 촉매수단이어서 아무리 샤갈의 초현실주의 작품에 낯선 관람객들에게라도 그 오묘한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훌륭한 교사 -바로 촉매자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스웨덴의 다른 박물관에서도 반드시 간단한 안내용 필름이 준비된 사실을 눈여겨볼 수 있었다. 황태자시절 1926년에 우리 나라 경주에 와서 지금 서봉총 발굴에 참가했던 고고학자 구스타프 5세 前 스웨덴 국왕의 후원으로 건져낸 17세기 바사왕의 목조군함을 전시한 바사박물관의 10분 짜리 안내용 다큐멘터리 영화는 인상적인 것 중 하나다. 1956년 배를 건져내는 장면을 기록한 부분도 중요하지만 1623년 당시 북구를 지배하던 스웨덴 왕국이 국력을 기울여 만든 거대한 목조재잠(木造哉鑑) 바사筃가 진수식을 마치자마자 스톡홀름 앞 바다에 침몰하게 된 역사적 사건의 전후사정을 영화로 만들어 설명하고 있는 만큼, 관객들이 3백년 동안 바다 속에 숨어있던 배를 직접 구경하는데 흥미와 이해를 더해준다. 물론 이런 안내용 슬라이드, 필름, 비디오의 준비는 스웨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유럽 곳곳의 중요한 박물관에는 대부분 관람을 위한 여러 가지 안내용 시청각 자료가 준비돼 있으나 스요청 번호 6, 32쪽

웨덴의 현대미술관 샤갈 전과 바사박물관의 경우 특히 잘 만들어진 사례로 손꼽힐 수 있다는 얘기다.

(사례 2)

우리 나라에도 수입되고 있는 프랑스의 미셸랑 타이어 회사는 관광 안내책자 발간으로 유명하다. 1900년이 회사 창업자 앙드레 미셸량씨가 타이어 소비를 촉진시키는 아이디어로 고객들의 자동차 여행을 권하는 판매촉진사업으로 프랑스와 유럽 일대의 자동차 여행용 지도 시리즈를 출판했는데 그후 초록색 표지의 관광안내용 책자 시리즈와 빨간색 표지의 호텔과 식당안내 책자 시리즈로 구별하여 3가지 출판물로 발전했다. 필자가 지금 문화예술의 촉매활동의 한 사례로서 소개하려고 하는 것은 관광안내책자 미셸랑 베르(Michelin Vert)초록색 책자이다.

유럽의 유명한 박물관에 가면 세로 26센티 가로 12센티의 길쭉한 초록색 미셸랑 책자를 들고 있는 관람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미셸랑 베르》는 프랑스의 경우 각 지방별로 19권, 그리고 이태리, 로마, 스페인, 서독, 런던, 스위스, 베네룩스, 포르투갈, 그리스, 모로코, 뉴욕까지 나와 있고, 파리, 이태리, 로마 등 중요한 관광지 편은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태리 어 등 외국판도 있다. 프랑스에서 이제 미셸랑 안내책자는 독보적인 베스트셀러일 뿐만 아니라 시리즈 중 어떤 것들은 판을 거듭하며 권위 있는 내용을 자랑하고 있다.

전형적인 미셸랑 책자로 프랑스의 중세 고성들이 밀집한 루아르 지방 편(châteaux de la Loire)을 보면, 주요 관광명소들을 표시한 관광지도,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전문서적 소개, 이 지역의 지형, 역사, 풍물, 예술과 문화, 지방 축제 등을 약술한 서론 부분이 있고 각 시·군별로 자세한 소개가 알파벳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필자가 이 책자의 안내로 처음 루아르 강 유역을 여행하면서 이 지역의 수많은 중세 고성들의 사연을 이해하는데,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 지역에서 프랑스를 지배했던 발루아 왕조의 왕계 도표와 함께 그후 부르봉 왕조와의 관계 등을 알기 쉽게 정리해 준 이 책자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중세 고성의 문화와 예술사를 정리한 이 책자의 소개 글은 우리처럼 외국인의 눈에 그저 다 그게 그것처럼만 보이는 프랑스 고성의 유별난 의미를 훌륭하게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미셸랑 안내책자는 관광명소의 중요도를 나름대로 평점을 매겨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있다. 평점은 별의 숫자로 나타난다. 미셸랑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관광명소는 별 셋이 매겨지고 그 다음이 별 둘, 그 다음이 별 하나이다. 대체로 미셸랑 평점은 세계적인 유명도와 일치하지만 편집자의 문화선전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특히 이태리나 스페인 등 프랑스 이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의 평가기준에서 너무나도 불란서적 가치기준에 의존하고 있는 인상이 짙다. 이를테면 이태리와 스페인에서 카톨릭 문화유산을 좀 과대 평가하는 인상인데 스페인 오지의 승원(포블레 수도원 등)이나 이태리의 승원(파비아 수도원 등)들을 별 셋을 준 것 등이 그런 예라고 하겠다. 또 이태리나 스페인의 경우 고대 로마 이후 중세기에서 현대에 이르는 그 나라들의 미술사를 각각 기막힌 솜씨로 정리하고 있는데 한결같이 그 귀결은 19세기말 파리에서 일어난 불란서 인상파로 이어진다는 식으로, 다시 말하면 고대와 중세 스페인 이태리 미술이 결국은 프랑스 인상파의 전주곡이었다는 프랑스 기준 미술사의 전파였다.

미셸랑 안내 책자의 문화예술 정책적 의미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오늘의 프랑스 문화예술의 起源을 더듬고 서양세계의 모든 전통을 현대적으로 잘 계승한 프랑스 문화의 성공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갖게 하려는데 있다. 실제로 필자는 1980년 여름 16세기의 베르사유라고 일컬어지는 루아르 강변 옛 발루아 왕조 시절 프랑수아 1세가 정청(政廳)을 설치했던 고성을 찾아갔었는데 관광안내를 해준 한 아르바이트 미술학도를 잊을 수가 없다. 여름철 관광지마다 가끔 아르바이트 삼아 관광안내를 하는 젊은 대학생들을 만나는데, 그때 그 학생은 이 고성건물 정면에 튀어나온 이른 바<프랑수아 1세 계단>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면서 이태리 르네상스의 온갖 건축미의 형태를 들먹거렸는데, 지금 필자의 기억으로는 그 후 피렌체, 베니스, 밀라노 등 북부 이태리 반도에서 본 장려한 르네상스 건축물의 아름다움의 한 부분이 될까말까한 비교적 초라했던 모습만 남아 있다.

(사례 3)

박물관이나 오랜 문화유적의 관광안내원들은 매우 중요한 문화예술의 촉매자들이다. 이태리처럼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박물관 나라에서 관광안내원들의 자질은 정부의 중요한 정책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

필자가 로마에서 만난 관광안내원들은 대부분 나이 많은 노인들이었는데 이태리어, 불어,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에 능통했고 설명에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인식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유럽에서 외국어라야 같은 뿌리의 언어들인 만큼 3, 4개 국어를 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문화예술품을 설명한다는 것은 상당한 문화사적 이론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대체로 전직 교사들이 은퇴 후 심심풀이로 관광안내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아무리 수준 있는 전직이었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필자는 생각했다. 그것은 유럽의 문화사학, 미술사학의 오랜 전통덕분이다. 이태리의 숱한 문화재, 미술품들은 대부분 교회에 있다. 웅장한 성당, 장려한 수도원들은 아시아에서 온 관광객들의 눈에는 우리 나라의 경우 흔히 깊은 산 속에 남아있는 사찰을 연상하게 한다. 과연 우리의 문화사학이나 미술사학은 얼마나 보편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는가, 문화사적 이론과는 거리가 먼 우리들의 관광안내원들의 수준을 나무랄 수만 있을 것인가.

로마 구시가지를 빠져 카타콤베로 가는 옛 로마의 길 비아 아피아 안티카(Via appia antica)를 지나면서 늙은 이태리 관광안내원은 聖베드로의 유명한 도미네 쿠오바디스 전설과 함께 시대에 따라 변화한 이 길의 내력을 4개 국어로 읊어댄다. 기독교 문명을 정리하고 그 문명의 오늘의 의미를 서로 이해하는 관광객들은 자동차가 겨우 교차하는 비좁고 더러운 아스팔트길을 매우 신성한 땅으로 기억하려고 드는 것이다. 문화촉매활동이란 결국 꿈보다 해몽이며 우리의 경우 특히 꿈을 꾼 사람보다는 해몽가가 아쉽게 느껴진다.

(사례 4)

프랑스 국영 텔레비전 제2채널 <안텐느 2>은 84년 매주 금요일 밤<아포스트로프>란 주간 토론 프로가 대히트를 하여 아마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들었다. 이 프로는 주로 신간서적을 놓고 저자와 함께 초청된 4∼5명의 다른 작가와 비평가들이 그 책에 관해 토론을 벌이는 내용인데, 보통 1시간, 어떤 때는 2시간까지도 열띤 논쟁이 계속 되기도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아무리 토론을 좋아하는 국민이라 해도 이와 같은 와이드 TV토론 프로가 이렇게 성공한 예는 그리 흔치 않다.

매주 선정되는 신간 서적은 대부분 프랑스 책들이지만 외국어로 쓰여진 외국 책들도 자주 등장한다. 이 경우 화면에 나오는 외국 작가나 평론가들은 자기가 편리한 모국어로 말하고 TV에서는 동시통역이 불어로 바꿔준다. 한 책을 놓고, 그것도 날카로운 작가와 비평가들이 장시간 토론을 벌이다 보면 그 책과 저자의 바닥은 다 드러나게 마련이다. 시청자들은 TV토론을 통하여 난해한 현대문학이나 철학의 이론서를 수준 높은 이해와 관심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직무를 추진하는 입장에서 한국의 현대문학 작품을 이 프로에 등장시키는 문제를 놓고 동 TV 담당 PD를 접촉해 본 일이 있다. 우리 국내 문단에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한 작가의 작품을 들고 얘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솔직히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 작품을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당시 필자는 수중에 국내 문학평론가들의 그 작품에 관한 평론을 거의 입수하지 못하고 있었고 필자의 상식적인 내용설명만으로는 우선 당장 그 담당 PD를 감동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그 작품에 대한 평론을 하나 얻어 보았으나, 한국의 현대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는 프랑스의 문학 촉매자를 이론적으로 감동시킬 만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문학의 효과적인 촉매활동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보편적인 문학평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사례 5)

어느 나라에서나 어린이를 위한 국어교육에서 동요의 역할이 크다. 프랑스의 유치원에서도 동요를 많이 가르치는데, 이를테면 "뛰어라, 뛰어라, 메뚜기야…"하는 동요에서 "뛴다"는 말에서 "메뚜기"가 나왔다는 식의 교육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말로 뛰어오른다(Sauter)는 말에서 메뚜기(Sauterelle)란 말이 나왔다. 유치원선생님들은 이런 동요를 책에서 골라 그때그때 등사한 종이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데, 필자는 "뛰어라, 뛰어라, 메뚜기야" (Saute, saute, Sauterelle)로 시작하는 동요를 등사한 쪽지에서 이 유치한 동요의 작가이름(지금 기억할 수 없어서 유감이지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화예술창조자를 존중한다는 정신은 문화예술을 진흥한다는 뜻에서 가장 중요한 촉매활동으로 볼 수 있다. 동요를 가르치면서 그 동요를 지은이가 누구인가를 함께 가르친다는 정신은 중요한 것이다. 프랑스의 중학교 1학년 어느 국어교과서(프랑스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아님) 제1과에는 시인 아폴리네르의 에펠탑을 노래한 시가 실렸다. 파리에 사는 중학생들 중에는 관광객들만 올라가 보는 에펠탑에 실제로 올라가 본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파리의 중학생들은 에펠탑을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파리라는 도시의 상징물로 자리를 굳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폴리네르의 시를 먼저 외우면서 배우게 된다. 교과서 편집자들은 이 시를 공부하는 지침에서 에펠탑의 건축가와 그의 건축과정을 소개하고, 특히 시인 아폴리네르에 관하여 상당히 자세한 내력을 연구하라는 주문이 있다. 이것은 모두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와 예술을 창조한 작가와 예술가를 존중하는 정신을 말해주는 예라고 하겠다.

서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작가 또는 예술가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한 비상한 노력을 여러모로 기울이고 있다. 거리 이름들은 작가와 예술가들의 이름이 대부분인 사실도 그 한 예이다. 어느 작가나 예술가가 태어났다든지 한동안 살았다든지, 아무튼 조그만 인연을 가진 장소마다 그 작가나 예술가의 이름을 붙인다. 특히 작가나 예술가가 태어나서 살던 집은 그 작가나 예술가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보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가 된다. 그래서 유럽의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그 마을과 인연 있는 작가나 예술가를 기념하는 작은 박물관을 보존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그것도 부족하여 약간의 광장이나 공원 같은데 서 있는 무수한 석상이나 동상의 주인공들도 예술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심지어 이들의 주검까지도 기리려는 노력을 빠뜨릴 수 없다. 교회당 안과 바깥마당의 묘지에서도 문화예술인들의 그것은 특징 있는 묘비명으로 하여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다. 서유럽의 문화예술인들은 이렇게 태어나서 살다가 죽을 때까지의 족적(足跡)이 가능한대로 보존됨으로써 그들이 창조한 작품들과 함께 길이 사람들 사이에 살아 숨쉬는 것이다.

필자의 기억에 가장 감명 깊었던 한 작가의 집은 19세기 핀란드의 국민작가 알렉시스 끼비가 38세에 미친 상태에서 살다가 죽은 두 칸 짜리 통나무집이다. 헬싱키 중심가 광장에 그의 동상이 모셔진 알렉시스 끼비는 핀란드어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국민들의 숭앙을 받는데 젊은 나이에 도시를 떠나 혼자 미쳐서 살다가 요절했다고 한다. 82년 봄 어느 주말, 필자는 헬싱키에서 약 40km 떨어진 시골 바닷가 마을로 알렉시스 끼비가 마지막 살다가 죽은 집을 찾아갔었다. 바닷가 숲 속에 숨은 두 칸 짜리 작은 통나무집은 통나무로 된 지붕과 벽만 남았을 뿐 마루바닥은 없어지고 땅이 드러나 있었다. 마침 그 집을 위대한 작가의 기념관으로 보존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그 지방 문화행정요원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친구 말이 될 수 있는 대로 요절한 국민작가의 비참한 말년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초라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상 서유럽에의 몇 가지 사례를 보더라도 문화예술 촉매활동은 박물관, 출판, 관광, 언론, 교육 등 광범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문화예술 행정은 위의 여러 분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흔히 말하는 행정의 기구나 조직체계 보다도 정책의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문제임을 볼 수 있었다. 촉매활동의 정책 아이디어란 활동의 주체인 촉매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서유럽의 몇 가지 사례에서 보았듯이 촉매자의 범위는 박물관 관리자, 출판 편집자, 관광 프로모터, 신문방송 제작자, 그리고 문화예술 평론가와 교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에겐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꿈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다시 말하면 세련되고 풍부하게 풀어주고 새겨 주어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가 하는 해몽술이 문제된다. 감동의 문제는 이론적으로 예술행위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떤 이들은 이들 문화예술 촉매자들을 넓은 의미의 문화예술인 범주에 넣기도 하고 또는 문화예술의 창조자와 구별하여 재현자로 부르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풍요로운 문화생활이란 문화예술 촉매자들의 재현활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이 재현활동이 보다 전문화되고 여기 종사하는 고용인구도 많은 게 특징이다.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고용구조에서 직접 생산에 종사하는 인구보다 서비스 분야 종사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실은 문화예술 활동의 중요성과 그 종사인구의 확대를 반영한 것이다.

촉매자들의 문화예술 재현활동은 내용면에서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문화예술을 해석하고 비평하고 소개하는 노력-저널리즘-과 또 하나는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아끼고 가꾸는 노력-딜레탄티즘(예술애호)-의 두 가지 방향이다.

저널리즘은 곧 비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비평은 문화예술을 품평하여 재판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창조자의 작품의도를 해석하고 의미를 캐내어 수용자들이 보다 풍요롭고 세련된 감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이다. 어떤 문화계 풍토에서 비평가가 재판관으로 군림하여 작가나 예술가를 마구 재판하여 문화예술 활동을 위축시키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야말로 비평 곧 저널리즘의 촉매 역할을 잘못 인식한 데서 비롯된 결과라고 하겠다.

딜레탄티즘은 현대사회의 문화생활의 수준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른바 여가의 문화에서 동호인들의 활동은 마치 봉건시절 극소수 귀족들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궁중예술의 높은 수준과 취향을 보다 많은 중산층 시민들에게 확대해 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호인들은 문화예술을 감상하고 가꾸는 데 머물지 않고 창작활동까지 뛰어드는 이른바 아마추어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저널리즘, 딜레탄티즘, 아마추어리즘의 세 가지 <이즘>이야말로 현대사회 문화예술 촉매활동의 3대 요소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