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층취재

지방 연극의 현주소

- 제4회 지방연극제를 맞아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이윤택 / 시인, 극작가·김태성 / 문화광장 대표

영남 지역의 현대극 개요

부산과 대구 양대 도시를 중심으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영남은 크게 해안 문화권과 내륙 문화권으로 그 문화적 속성을 분류할 수 있다. 부산·마산·울산 등 주로 경남 일대가 전자에 속하고, 대구·경주 등의 경북 일대가 후자에 해당되는데, 일반적으로 해안 문화권의 특징은 개방적이고 상업적인데 비해 내륙 문화권은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것이 특색이다.

영남지역에서 현대극 활동이 비교적 일찍 태동된 곳은 부산과 대구지역이다. 부산에서는 1922년에 발족한 <극연구회>가 톨스토이의 <부활>을 1924년 국제관극장에서 무대에 올린 것이 그 효시라 할 수 있으며, 같은 해 일본상인이 자본주가 되어 대규모의 <조선키네마센터>를 설립해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을 공연했다. 이 작품엔 우리 극계의 기린아였던 나운규가 단역인 轎軍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부산 연극계는 1946년 신고성이 <희망극단>을 조직하여 부산연극 활성화의 조짐이 나타나는 듯했으나 이듬해 극단이 해체되면서 부산연극계는 다시 주춤거리기 시작하였다.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도 못했던 영남 연극계는 6·25동란을 계기로 새로운 전환의 시기를 맞았다. 임시수도가 대구와 부산으로 옮겨지자 피난민의 모습으로 나타난 서울의 국립예술단 및 기성극단 배우들이 양 도시에서 극예술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일시적이고도 이질적인 지역적 연대감을 떠난, 동시대적 운명아래 영남의 연극인과 교류를 갖게 되는 발판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전쟁의 와중에서도 영남 각지의 대학극 운동이 일어나면서 극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다.

1955년 부산에서는 한노단의 연출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12회나 장기 공연하여 당시, 숱한 화제를 낳기도 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연극활동이 부산과 대구라는 제한된 지역을 벗어나 주변 소도시로 확대되어 나가기 시작했다.

1960년대는 대학연극보다는 전후 기성인들이 재정적, 경제적 안정을 꾀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폈으며 이 시기에 많은 극단들이 탄생하였다.

부산에서는 서국영의 <새벌>, 차해원의 <계절>, 설상영의 <입체>, 박두석의 <부산극협회>, 박광웅·전성환·허영길의 <전위무대>등이 나타났고, 경북 지역에서는 포항의 <은하극장>, 경주의 극단 <에밀레> 등이 태동되었다.

1960년대 후반, 부산의 연극무대는 르네상스 음악실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벽> 등 전위주의적 작품을 올린 <소극장 69>의 출현으로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 부산 극계는 유래 없는 침체기에 돌입한다.

이는 영남 연극계의 전체적인 동향이기도 하였는데, 설상가상격으로 밀어닥친 석유파동의 경제적 충격이 재정적인 부담을 주게 된 점도 그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에 들어 특기할만한 점은 70년대 말부터 일기 시작한 소극장운동을 들 수 있다. 이 소극장운동은 외국의 경우처럼 상업주의 연극에 대한 반발과 실험정신에서 생겨났다기보다는 부족한 공연장 확보에 다분히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영세성과 일종의 폐쇄성이 원인이 되어 짧은 시일에 다시 문을 닫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극장 시대를 맞아 특기할 만한 사실은 우리의 전통놀이에 대한 새로운 애정과 관심의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마당극이나 민속극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새로운 극단들이 등장하게 된 점이다.

이처럼 종래의 무대극 중심에서 마당극 중심으로 연극공연의 경향이 일부 바뀌어지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극단마다 자체전용 소극장을 확보해 나가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자생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방연극제가 실시되면서 영남지역 극계는 새로운 활성화의 계기를 맞았다. 경남의 경우 1970년대까지 거의 마산과 밀양이 주축이 되었던 연극활동이 지방연극제 실시를 계기로 점차 진주·충무·진해·거창 등지로 분산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순 없다.

제반측면에서 숱한 어려운 여건과 맞부딪히고 있는 영남 연극계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향토연극의 가능성을 결코 배제하지 않고 쓰여질 이 글은 각 지방의 극계 활동 현황 및 지역문화매체로서의 소극장 실태, 전국지방연극제 예선을 겸하고 있는 지방연극제의 현실을 중심으로 그 문제점과 대책을 살펴보기로 한다. 영남 연극계의 현황을 파악한 결과, 지역적인 특수성을 제외하고는 각 지방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비교적 비슷함으로 그 문제점을 부산 지방 현황을 다루면서 일반적으로 제기하기로 한다.

지역별 활동현황

1. 부산

공연법 개정 이후 부산시에 등록된 극단 수는 현재까지 무려 27개나 되고 있지만 실제 활동하고 있는 극단 수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연극협회 부산지부에서 그 신상명세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극단도 있다.

지속적으로 활동을 해온 극단으로는 60년대부터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전위무대>와 70년대 초반에 출범한 <현장>, <한새벌>, <레퍼토리·시스템>, <처용>, 80년대에 들어와 탄생한 <예술극장>, <예랑>, <부두극장>, <두레> 등이 있다. 이 중 마당극 중심의 <두레>를 제외하고는 모두 협회지부의 정회원 단체와 준회원 단체로 등록이 되어 있다. 최근 1년에 1회 이상의 공연기록을 남긴 극단은 불과 12개 극단 정도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정체도 모른 채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

84년과 85년의 경우 한 해 평균 50편을 약간 웃도는 작품이 공연되었다. 그러나 10편 정도는 서울극단의 자체 기획공연이나 초청공연형식으로 무대에 올려진 외래공연의 경우이다. 카톨릭센터 소극장과 극단 자체의 전용소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을 제외하면 부산에서 그나마 제대로 만들어진 소극장인 시민회관 소강당에서 공연된 작품은 20편을 조금 넘을 뿐이다. 이 20여 편의 작품도 전국지방연극제 예선을 겸한 부산연극제와 그 이전부터 <부산시민의 날> 경축행사의 하나로 개최되어 오고 있는 부산무대예술제의 두 행사를 제외하면 불과 10편 정도의 극단 자체 기획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84년의 경우 시민회관 무대에 올려진 작품은 대강당 공연이 30회, 소강당 공연이 146회로 32편의 작품이 105일 동안 공연되어 약 9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였다. 이처럼 극단의 숫자도 증가했고 공연횟수도 늘어났지만 관객의 수는 79년도의 11만 3천 명과 비교해 보면 오히려 줄어든 편이다. 거의 모든 공연이 겨우 객석이 절반 정도를 관객으로 채우는 형편이고 관객의 절반 이상이 주로 고등학생을 통한 동원형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관객부재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주로 사실극 중심으로 작업해왔던 기존 극단들의 작품성격을 보면 뚜렷한 극단 자체 성격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창작극에 한한다'라는 부산 무대 예술제와 지방 연극제의 태동 이후 이 행사들을 위해 만들어지거나 수집한 작품들조차 행사를 위한 1회용 치레의 경우가 많아 극단의 이념이나 좌표를 상실한 듯 보이기까지 한 실정이다.

이들 행사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 상당수는 지역 작가들에 의해 희곡이 쓰여졌다. 이러한 현실은 창작 희곡의 발굴육성과 지방 연극의 발전이라는 의미에서는 긍정적이기도 하지만, 일면 행사를 위한 대응책으로 전락할 위험성과 희곡 작가를 양산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창장극>만 공연한다는 단서에 구애되어 제대로 끝손질도 하지 않은 희곡까지 무대에 올리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도 있다. 이런 현상은 경우에 따라 배우와 관객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고 지방 극계에 침체의 분위기를 몰고 올 위험까지 있다.

부산 연극계가 안고있는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가 전문연극인의 절대부족이다.

극단구성의 최저 기본단위가 기획·연출이 각각 1명, 배우·스텝이 각 5명 정도로 본다면, 부산에는 기획자와 연출자가 54명, 배우·스텝이 2백 70명이라는 상당한 인적자원이 계산상으로 확보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배우의 절대 기근현상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기존 8개 극단의 경우만 해도 통틀어 전승환·윤석·이상복·송순임·이화진·이돈희·임해련·이성혜·최희정 등 10여명 정도의 연기자를 선정해 내기도 힘들다. 경륜이 짧은 신생극단의 몇몇 연기자를 포함해도 그 수는 30명 이상을 웃돌지 않는 실정이다. 극단별로 평균 3.4명 정도의 배우만으로는 무대를 꾸려나가기가 궁색하다.

연극제 공연의 결과는 탄탄한 배우의 부족으로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극의 실패가 작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될 때 이는 연출의 책임이며 인물성격에 대한 분석력이 약한 데서 오는 연기의 실패는 당연히 연기자의 책임이 될 것이다.

부산의 기존극단이 지방극단으로서는 짧지 않은 역사를 지녔으면서도 여태까지 좋은 연기자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던 배경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전문양성기관이 전무했던 까닭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연극인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노력하고 연구하려는 학구적 자세가 결여되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물론 극단 나름대로 자체 워크숍을 통해서 연기자를 비롯한 스텝 진용을 꾸준히 양성하는 노력을 보여왔다. 이러한 노력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점은 사실이지만 커리큘럼은 있되 교육은 없는 식의 일은 앞으로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연출이나 스텝에 있어서도 인재 기근현상은 마찬가지다. 연출의 경우는 대개 극단대표에 의해서 꾸며지기 마련이고 최근에는 허은·이기원·김경화·한상한 등 젊은 세대의 의욕적인 활동으로 30대의 기류를 타고 있다. 스텝진은 총체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부족으로 이 작업을 기피하는 경향까지 있다.

부산의 소극장운동은 1960년 후반 김영송 교수가 의욕적으로 활동했었던 <소극장 69>를 그 효시로 볼 수 있다. 70년대 중반 <까페·떼아뜨르> 등장을 시작으로 조용하게 태동되기 시작하던 소극장운동은 80년대에 들어와 극단 <부산 레퍼토리 시스템>, 극단 <예술극장>, 극단 <빗소리연구회>, 극단 <부두극장>의 전용 소극장을 필두로 극단<예랑>의 은하 소극장, 극단 <예원 연희> 예원 소극장, 극단 <두레>의 두레 마당, 극단 <부산무대>의 전용 소극장이 잇달아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 소극장은 개관 1주년을 채 넘기지도 못한 채 문을 닫고 말았고, 현재 겨우 명맥이나마 유지되고 있는 곳은 2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부족한 공연장 현실을 타개하고 단원들이 연극을 기획하고 토론하며 연습하는 장소로 절실히 요구되었던 소극장들이 생겨나자마자 거의 몰락하다시피 문을 닫고 마는 현실은 부산 연극계에 던져진 또 하나의 심각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부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공연장은 시민회관 대강당(2,100석)과 소강당(470석), 카톨릭센터소극장(200석) 등 3곳이다. 그 중에서 시민회관 대강당은 무대예술 전문극장이라기보다는 다목적 대형문화공간으로 서울에서 돈벌이를 목적으로 내려오거나 초청이라는 형식으로 데려오는 공연을 제외하고는 현실적으로 공연장으로는 부적합해 부산 연극인들은 거의 사용해 본적도 없다. 카톨릭센터 소극장은 나쁘지 않은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좁고 미비한 시설에다 비싼 대관료 때문에 사용이 극히 제한되어져 왔다. 따라서 연극을 하기 위한 유일한 공간으로서 시민회관 소강당이 존재하고 있을 따름인데 그나마 사용에 따른 대관절차, 시설부족 등 어려운 문제가 산적해 있다. 결국 부산에는 현재 연극공연을 위한 객석보유수가 1천 석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선진사회의 문화척도가 운동장 수나 스포츠 인구로써 가늠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극장의 수로 저울질된다는 사실을 새삼 말할 필요는 없이 인구 400만 부산의 현실을 한 눈으로 읽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부산의 연극현황으로는 아직 졸업생을 배출하지 않은 부산산업대학교에 연극영화과(학과장 : 김동규)가 있고 부산대, 동아대, 수산대 등 각 대학에 극예술연구회가 있으나 그 활동이 비교적 침체되어 있다. 10개 안팎의 고등학교 연극반, 아동극을 주로 공연하는 극단<꿈나무>가 있을 뿐이다.

2. 경남

경남의 경우는 밀양 <메들리> 극단을 제외하고는 1970년대 중반까지 연극활동이 거의 마산을 구심점으로 행해졌다. 그러던 것이 76년 진주에 극단 <현장>이 창립되면서 그 움직임이 확산되기 시작, 충무에 극단 <벅수골>, 진해에 극단 <진해>, 거창에 극단 <입체>, 울산에 극단 <태화> 등이 태동되어 연평균 2·3편의 자체공연 및 초청공연 등을 통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마산의 극단 <불씨촌>, <무대>, <소리>, <어릿광대>, <사랑방> 등도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마산 및 경남의 대학극회 움직임은 부산과는 달리 꾸준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마산의 경남대·마산대·마산간호보건전문대, 진주의 경상대·진주교대·진주실업전문대·창원대 등이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극협경남지부가 별도로 작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진주의 마당 놀이패 <물놀이>는 특이한 작업으로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향토민들의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경남 연극계는 연륜에 비해서 빠른 속도로 질적·양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인데 한국연극협회에 도 단위로는 가장 많은 지부가 등록되어 있다. 경남의 경우는 전국지방연극제가 타 지역에 비해 훨씬 깊은 영향을 주었음이 여실하고 또 질적인 면에서도 상당한 자극이 되었다. 한편 소극장의 경우는 부산의 자체 전용소극장 개념과는 달리 진주의 분도 소극장을 예외로 하고는 상당한 비중을 초청공연으로 메우는 기획용 소극장을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주로 마산에 산재해 있는 소극장으로 극단 <어릿광대>의 전용소극장 <터전>, 소극장 <우주공간>, <어린 왕자> 등이 대표적이고 마산에서 가장 연륜이 긴 극단 <불씨촌>만 대체로 자체공연을 위한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 경남에는 마산의 5개 극단, 충무·거창·밀양 등지의 7개 극단의 지속적인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실정이나 몇몇 개의 소극장 무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공공시설 개념에서 만들어진 공간에서 공연을 하고 있으며 소극장 역시 벌써 <어린 왕자>가 문을 닫는 등 공연장 확보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연극인 기근으로 인한 고충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난 83년 결성된 극협 경남 지부(지부장 : 이용웅)는 향토연극의 중흥을 꾀한다는 의욕으로 <지방연극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활로를 모색하고는 있으나 경상남도가 발표한 도립극단 창단 계획도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현재 경남에는 전국지방연극제 예선을 겸한 경남연극제 외에 개천예술제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전국연극경연대회가 있으며 몇 년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개최하고 있는 밀양 <아랑제> 행사의 일환인<학생극 경연대회>가 이 지방 연극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진주에서는 전통 마당놀이 형식을 빌어 창작 마당놀이 공연을 위조로 하고 있는 놀이패 <물놀이>가 전용 놀이판 <큰들>을 마련, 의욕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진주민란을 소재로 한 창작굿놀이(진양 살풀이)로 서울을 비롯, 원주·전주·광주·마산 등지 순회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향토출신의 시인 정동주가 쓴 창작굿(진양 살풀이)는 향토출신의 작가와 놀이패에 의해 구성된 향토색 짙은 작품으로 각 지방에 소개하고 지역간 연극교류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3. 대구

대구 역시 부산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일찍 현대극의 움직임이 태동되기 시작했고 동란으로 국립예술단이 내려앉은 것이 자극이 되어 극계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연극활동이 본격적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75년 시민회관이 개관되면서 공연장의 폭이 넓어지게 된 것에 큰 원인이 있었고 이즈음 각 대학에 극예술연구회가 증가되기 시작한 것도 보탬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공연법 개정 이후 대구시에 등록된 극단 수는 현재까지 16개나 되고 있으나 실제 활동하고 있는 극단 수는 그 절반정도이고 나머지 시 등록 신생극단에 대해서는 부산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그 신상이 파악되지 않는 상태이다. 특히 이 지방은 타 지역에 비해 연극인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 다소 심해 풀리지 않는 과제처럼 되어 있으나 각 극단 자체의 연극열의는 어느 지역보다 높아서 창작열의 만큼은 치열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전국지방연극제의 태동으로 인한 영향 등으로 최근에는 무대를 떠났던 기성연기인들이 대거 복귀해 작품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좋은 밑거름이 되고 있어 대구의 향토연극 활성화에 청신호를 던지고 있다.

최근 85년의 경우는 향토연극사에 새 장을 열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여러 가지 기록적인 성과를 낳았는데 다분히 대구연극제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우선 양적으로 크게 진전을 보여 30회를 웃도는 공연 실적을 쌓았으며, 질적으로도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84년에 창단된 극단 <우리무대>, 같은 해 연말에 난립되어 있던 극단 중 <空間>, <集視>, <余處>, <創作>, <黃土> 등 5개 단체가 통합해 발족을 본 극단 <대구무대>, 85년 6월에 창단된 동아문화센터 전속극단(유급단원들로 구성)과 동아문화센터의 소극장인 스타홀(2백10석)·비둘기홀(1백50석)의 등장은 대구 연극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셈이다.

극단 난립으로 인한 연기인 분산과 질적 저하를 극단 통합과 새로운 의욕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공간이 부족해 전전긍긍하던 극단들이 제대로 시설을 갖춘 무대공간과 만나게 된 점은 무엇보다 다행한 일이다. 또한 85년 연말에는 극단 <우리무대>가 카톨릭 근로자회관에 소극장을 마련함으로써 시민회관 소극장, 어린이회관 강당과 함께 공연장 난을 다소나마 해소하는 전기가 된 것이다.

대구의 소극장 운동은 1979년 개관된 분도소극장을 그 효시로 볼 수가 있고 이어서 80년대에 들어와 누리예술극장, 아미소극장 등이 생겨났으나 일반적으로 겪는 경영난과 소방법, 건축법, 공연법 등 법규상의 문제들로 1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이외에도 연극인들의 반목 같은 문제 탓으로 소극장에 대한 연극인 스스로의 무관심도 다소 작용한 듯하다.

한편 85년에는 동아문화센터가 전속인형극단 <비둘기>를 출범시켜 인형극을 직접 제작, 공연하는가 하면 서울의 인형극단 초청공연 및 국제인형극 대구제전도 가져 인형극을 정착시키는 업적도 쌓았으며, 운경재단이 마련한 제1회 아동극 발표회도 열려 관심을 모았다. 준비작업 등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동아문화센터가 마련한 제1회 향토극단페스티벌이 열려 매년 개최될 예정이다.

지방 연극이 대체적으로 번역극 재탕임을 감안하면 최근 대구 연극계는 창작극은 물론 성극, 모노드라마, 무언극, 전위극, 집단창작극 등 다채로운 무대를 펼치는 새로운 의욕을 두드러지게 보여 주어 일부 극단은 몇 차례 앙코르 공연을 하는 등 '좋은 연극에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는 지방 연극계에 보기 드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놀이패 <탈>은 '이 시대, 이 땅의 놀이를 우리가'라는 기치를 들고 집단 창작극 <내 차라리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을 무대에 올려 전통적인 탈춤의 형식을 계승하면서 31명이 집필, 연출, 기획, 놀이에 참여함으로써 집단창작과 마당극의 대중화에 불을 당겼다.

현재 대구에는 상기한 극단 외에도 극단 <맥>, <원각사>, <처용>, <은세계>, <유토피아>, <시인>, <에루야> 등과 영남대 연극반 <천마극단>이 활동하고 있는데, 제3회 전국지방연극제에 대구 대표로 참가했던 <우리무대>는 작품 <달아 달아 밝은 달아>가 입상권에 들지 못하자 이에 볼복, 서울 공연을 감행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으며,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을 공연에 앞서 동성로(대구 백화점 앞)에서 리허설 성격으로 시연회를 가지기도 했다.

현재 대구에는 스텝을 포함, 연극인이 1백 50여명에 이르고 있는데 연기인으로 가능성 있는 배우를 포함하면 황철희·홍문종·박승득·이성환·정길묵·이경자·강승희·윤명희 등 20여명 정도가 된다. 그러나 대구 역시 전문양성기관 하나 없는 실정이고 절대 다수가 부족한 연기자·연출가 등의 실정은 마찬가지 현실이다.

대구의 경우 가장 장점이 될 것은 아무래도 소극장 확보가 우선일 것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강한 라이벌 의식을 지니고 있는 대구 유통업계의 양대 산맥인 동아백화점과 대구백화점간의 치열한 경쟁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미 85년에 동아문화센터를 출범시킨 동아백화점에 이어 금년 5월 대구백화점이 자체 사업인 대백문화관의 개관에 앞서 구시립도서관 1층에 1백 10석 규모의 소극장을 개관하였다. 9월 개관예정인 대백문화관에도 현재의 대백소극장보다 규모나 시설이 훨씬 좋은 별도의 소극장을 구상하고 있어 객석 보유수는 부산을 앞지르고 있으며, 소극장 확보로 인한 연극 활동이 보다 확대될 것으로 감지된다.

4. 경북

경남지역과는 달리 마산이나 부산처럼 예술활동의 대도시 집중적인 경향에서 벗어나 행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대구라는 인접 대도시와는 별도로 이미 경북에서는 경주·포항 등지에서 꾸준한 연극활동이 전개되었다.

64년에 창립된 포항의 극단 <은하극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85년 연말까지 36회의 공연기록을 남겼으며 제3회 전국지방연극제에 창작극 <대지의 딸>로 출전(경북대표),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이휘향이 여자연기상을 받는 영광을 차지했다. <은하극장>은 전통적인 리얼리즘극을 꾸준히 추구, 지방 극단으로서는 가장 확고한 위치를 굳힌 극단으로 포항시가 적극 지원, 포항시립극단으로 성장하기까지 했는데 지난해에 창작극으로 <대지의 딸>과 <간주곡>을, 번역극으로 <위험지대>를 무대에 올리는 등 꾸준히 작업에 정진하고 있다.

한편 경주의 극단 <에밀레>는 59년 서라벌 극예술연구회로 발족한 이래 50회 가까운 공연기록을 세웠으며 작년에는 김동리 원작의 <무녀도>를 공연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경주는 극단 <에밀레> 단원들이 주축이 되어 있는 연극협회 경북지부(지부장 : 이수일)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은하극장>과 <에밀레>가 악조건에서도 이처럼 오랜 연륜을 쌓으면서 지속적인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한마디로 초기부터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으로 작업에 임해왔던 성실성에 기인된다고 보여진다.

한편 84년에는 영주에 <소백극회>가 탄생되어 <양반전>·<산국>을 공연했고 85년에는 <탈놀이 변강쇠>와 <너덜강의 돌무덤>을 무대에 올려 경북 연극계에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탈놀이 변강쇠>는 전통예술을 대중 속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의도의 소산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고전해학이 지닌 깊은 뜻을 재음미케 하는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또 최근에는 청도와 경산에서도 극단 태동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고 순수 연극은 아니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이기도 한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그 보존회에 의해 전승되어 85년에도 안동군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재연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연극적 활동이 보다 뒤늦었던 경남에 비하면 경북은 오히려 그 지역적 확산과 활동이 다소 제한되고 경직된 감이 없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궁극적으로 양적 팽창이 연극적 본질과 합일치 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연극 대중화를 통해 연극문화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범지역적인 연극활동의 확산이 우선 필요하다고 본다. 전국지방연극제의 경우만 해도 포항 <은하극장>이 1회와 3회에, 경주 <에밀레>가 2회와 4회에 걸쳐 각각 참가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예선 없이 본선에 바로 진출하고 있는 실정임을 알 수 있다. 영남 지역 대부분이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소도시 단위 지방별로 1개 극단정도의 연극단체를 보유하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서도 경북은 연극운동이 앞으로 계속 지역적으로 분산될 수 있도록 극협지부가 구심점이 되어 노력해야 될 것이다.

현실극복과 전망

지방연극이라고 해서 모든 지방이 균일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지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은 크게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전문양성기관이 전무하다시피 한 현실과 전문연극인의 절대 기근을 들 수 있다. 현재 영남지역에는 약 35개 정도의 극단이 매년 정상적인 기능을 지니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중에 5년 이상의 연륜을 지닌 극단은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나머지는 전국지방연극제를 전후해서 생겨난 신생극단들이다. 연기, 연출, 기획 등 극단의 최소 기본 단위를 10명으로 구성한다 해도 영남 지역에는 3백 50명의 필요불가결한 연극전문인이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는데 실제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극인 중 대학이니 사설 양성기관 그리고 대학 연극부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계속해 왔던 인구를 모두 포함한다해도 그 수는1백 명 이상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그 외의 연극인구는 대부분 극단 자체의 워크숍을 통해서 배출된 연극자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전문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재능 있는 연극인이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총체예술인 연극작업에 참여하는 인구의 절대다수가 전문적인 소양교육이 부족하다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본격적인 신극역사를 6·25 전후로 잡는다해도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이 땅에 종합대학에 연극을 전공하는 전문 기관이 불과 1개뿐인 사실과 그나마 연극인의 절대다수가 5년도 채 되지 않는 경륜을 가진 짧은 연극 인생을 살았을 뿐이라는 분석은 일종의 아픔이기까지 하다. 따라서 전문양성기관의 설치는 우선적으로나마 대구, 마산 및 경북지역의 대학 또는 전문대학에 각각 1개 정도의 연극과가 개설되어야 하고 또 양성된 인력자원을 지역 연극발전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시(도)립 극단 설치 등 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중등학교 교과과정에도 과목을 포함시켜야 하는 문교 정책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각 극단은 워크숍의 커리큘럼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여건조성을 위해서 구태의연하고 폐쇄적인 태도를 지양하여 우선 동일지역 내의 능력 있는 연극인들과의 상호접촉 및 교환을 통하여 질적 향상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호노력이 선행될 때 비로소 가장 고질적인 전문연극인-특히 연기인 기근현상은 점차 풀리게 될 것이며 연극인과의 유대강화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역량 있는 연기자의 확보는 좋은 작품을 잉태하는 첩경이 되어 한편으로는 관객과의 거리도 좁아지게 해서 사회적으로 연극적 성숙을 실현하는 저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지역 매체로써의 소극장 확보가 절실히 요청된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구를 제외하고는 거의 소극장운동이 답보상태에 놓여 있는 실정이고 대구의 현실도 그나마 순수한 연극적 필요에서 운영된다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 동안 영남 각지에 걸쳐서 수많은 소극장이 문을 열었다가 곧 바로 폐업선언을 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까닭은 한마디로 재정적 어려움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구를 그 예외로 한다면 부산만 해도 무대예술 전문극장이 아닌 다목적 문화회관격인 시민회관 소강당이 유일하다시피 한 공간이고 마산의 경우도 강당형식의 장소일 뿐이다. 경남·경북의 소도시 소재 극단에서는 공회장이나 예식장, 영화관이 아니면 조명기구를 별도로 설치해야 가능한 공간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한정된 공간사용에 따른 어려움과 대관에 따른 경제적 출혈을 극복하고 공간확보를 통한 창조작업의 원활을 꾀하기 위하여 마련하게 되는 소극장은 서구사회의 소극장운동 양상과는 그 개념 자체에 이질적 요소가 상당히 내재해 있다해도 다양한 형식 실험의 산실이자 교육장이며 기존 공연예술의 매너리즘에 제동을 거는 문화공간으로써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지방 소극장 대개의 경우가 교통편의상 외곽에 위치하게 되어 홍보에 취약점을 지니고 있고, 30평 이상을 웃돌지 않는 좁은 공간 사용으로 작품선정 등 기획력이 약화되고, 조명 및 음향시설 등 설비부족과 낙후로 공연 공간으로써의 기반이 빈약해 관객확보에 맹점을 드러내게 되어 자연히 경영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편으로는 어렵게 만든 공간이면서도 동일 지역내 연극인 상호간의 폐쇄적인 태도 때문에 개방된 공연장으로써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했던 현실도 조기폐문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연극예술 중흥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소극장운동이 확산, 정착되기 위해서는 우선 연극인 상호간의 허심탄회한 교류가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적인 문제의 선결 다음으로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역량으로서는 극단 자체의 공연만으로는 지속적으로 무대를 채울 수 없으므로 공동작업, 교환 공연 같은 적극적인 개방의지를 통하여 기왕 만들어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 연극인들에게 공동운명체 의식을 갖게 하는 바람직한 결과까지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시(도)행정당국이나 관계기관도 공연장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 시행을 서둘러야 할 것임을 통감해야 한다. 법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소극장 운동이 퇴락하지 않도록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독지가나 후원회를 통한 경제적 지원은 연극인 스스로가 완성해야 하는 치열한 자기탐구와 줄기찬 창조적 열정 없이는 근거 없는 기대나 희망일 뿐이다. 좋은 작품에 관객이 몰리고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이 아니고서는 선뜻 독지가로 나서거나 후원회를 결성해 줄 사람은 없다. 소극장 운동의 성패여부는 원천적으로 연극인 스스로의 손에 달려있음을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지방연극의 활로를 모색하는데 있어 일익을 담당하고있는 전국지방연극제가 안고 있는 과제해결이 될 것이다.

중점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창작희곡>에 한한다는 단서조항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우리연극을 하자는 데는 이의가 없다. 연극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희곡의 주제에 통일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연극을 이루는 전부는 아니다. 연출의 해석이나 배우의 연기가 잘못되어도 작품의 주제는 전달되지 않으며 무대나 극장 심지어는 관객도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연극제에 <창작희곡에 한한다>고 규정한 것은 경우에 따라 창작희곡을 살리기 위해 배우의 다양한 표현능력을 위축시키고 연극 전체에 침체를 몰고 올 우려마저 있다. 이를테면 국적불명의 의미 없는 창작극에 흥미를 잃은 관객들이 실의에 차 연극을 외면할 가능성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84년 LA문화올림픽에서 프랑스는 영국의 셰익스피어 작품에 일본 의상을 입힌 연극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영국 연극이라 말한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일본 연극도 영국 연극도 아닌 의젓한 프랑스 연극이었다. 이처럼 공연예술은 그 외형이나 전통이 교류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이 교류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창작극>이란 단서만을 외형으로 하는 작품양산으로 그 본래의 의미는 <한국적인 혼>이나 <얼>의 창조작업이 심화되지 못했다는 현실이다.

오늘날 한국의 연극행위가 일반 민중의 관심권 밖에서 이루어지는 '자기도취적인 유희'에 불과하다는 우려는 서구 모더니즘 연극의 무분별한 마구잡이 도입에 그 원인이 있고, 지방연극의 현실이 이처럼 모더니즘의 반향적, 혁명적 정신은 아예 삭제하고 그 외면적인 형식이나 기법만을 모방한 <서울연극>의 아류에 머물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창작희곡에 한한다>는 단서는 새롭게 인식,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영남 연극계는 전반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향토연극>이 조성되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연극은 사회제도적 기능을 지닌 시민의 교육장이며, 지역 특성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첨병 역할을 맡아야 마땅하다. 영남지역 연극은 오랫동안 표준어 콤플렉스 속에 존재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역 언어로서의 향토연극은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 ? 여기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토마스 만은 자기 고향의 방언으로 쓴 <직조공>으로 문학적 명성을 획득했다. 그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간 것이다. 영남 연극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명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역 언어로서의 향토연극을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 근래 경상도 사투리를 과감하게 도입시키는 무대가 눈에 뜨이기도 한다. 그러나 지방연극제 등 행사에 출품하는 전시 효과적 얼치기 방언 흉내로서는 향토연극에 이를 수가 없다. 지역언어로서의 미학적 가능성을 타진하고 보편화시킬 수 있을 때 영남 연극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될 것으로 본다. 필자들의 견해로는, 대구지역 방언은 무대언어로서 상당히 적합한 미학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속도가 빠르고 강한 부산지역 방언도 현대극의 흐름에 적절하게 적용시킬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다방면의 연구와 실험이 뒤따를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영남연극은 서울연극에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독자적 무대언어를 구축할 단계라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