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층문화를 총 점검한다
한지에 대한 고찰
박사랑
Ⅰ. 서론
한지는 닥나무(저(楮)) 껍질을 원료로 하여 만든 우리 나라 고유의 수초지(手抄紙 Hand-made-Paper)를 말한다. 이는 닥나무 껍질을 잘게 부수고 갈아서, 접착제인 황촉규 뿌리의 점액을 첨가하여, 대나무 발로 떠서 섬유가 서로 얽히게 하여 건조시킨 종이이다.㬑㬉 발이 촘촘하고 종이가 두꺼우며 질긴 것이 특징이고, 빛이 희고 좋아서 신라 때부터 중국에서는 白癿紙라고 알려졌으며, 송나라 사람들은 여러 나라 종이의 품질을 평가할 때에, 고려지를 최상의 것으로 여겼다.㬒㬉 가장 중요한 조공 품의 하나였던 종이는, 다량으로 중국에 수출되었으며, 종류도 다양했다. 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 궐공조에 나타난 것을 보면, 대체로 원료·색채·광협·장단·후박·외양의 형태·용도 등에 의해서 이름이 지어졌는데, 우선 원료에 의한 것을 보면, 저주지(楮注紙)·고정지(藁精紙)·상지(桑紙)·백태지(白苔紙)·송피지(松皮紙)·유엽지(柳葉紙)·유목지(柳木紙)·억이지(薏苡紙)·마골지(麻骨紙)·백선지(白線紙)·노화지(蘆花紙) 등이 있으며, 색채에 의해서는 설화지(雪花紙)·백로지(白鷺紙)·죽정지(竹精紙) 등이 있고, 후박·장단·광협·질에 의해서는 장지(將紙)·간지(簡紙)·주지(周紙)·상지(上紙)·중지(中紙)·유둔지(有芚紙)·대호지(大好紙)·소호지(小好紙)·중폭지(中輻紙)·상품(上品)·중품도련지(中品搗練紙) 등이 있으며, 용도에 의해서는 표전지(表箋紙)·자문지(咨文紙)·반봉지(反封紙)·서계지(書契紙)·축문지(祝文紙)·봉본지(奉本紙)·상표지(常表紙)·갑의지(甲衣紙)·면지(眠紙)·세화지(勢畵紙)·화채선지(火菜線紙)·창호지(窓戶紙)·편자지(扁子紙)·시지(試紙)·장판지(張板紙)·봉투지(封套紙)·백주지(白奏紙)·일과지(日課紙)·계목지(啓目紙)·등도백지(燈塗白紙)·비망도련저주지(備忘搗練楮注紙)·판부저주지(判付楮注紙)·유지(淒紙)·지의(紙衣) 등이 있는데,㬓㬉 이것은 지방에 따라 각종 명칭을 가지며, 크기도 모두 달랐다.
이렇게 활발하게 발단된 우리나라 제지 기술은, 우리나라 인쇄기술이 발달하는 데도 기본요소가 되었으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의 팔만대장경을 유물로 남긴 고려 목판 인쇄 기술의 발달과, 금속활자 인쇄기술의 발달은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발명되어, 이조 시대에 많은 발전을 거듭하기에는 인쇄에 필요한 종이의 제지 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여야만 했다. 따라서, 제지 기술은 이조 시대에 가장 발달하고, 또 중요한 수공업의 한 분야였다. 이와 같이 중요한 한지 기술의 발달은, 국내외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오랫동안 연구되었다. 이광린의 <이조초기의 제지업>㬔㬉과 <이조후반기의 사찰제지업>㬕㬉, 김화자의 <서사(書寫)재료로서의 한국지의 발전에 관한 연구>㬖㬉와 김석희의 <조선왕조 말기의 지방제지업에 관한 일고>㬗㬉는 제지업에 대한 문헌을 서지학적 역사학적 방면에서 정리 분석함으로써, 제지 기술의 전체적인 발전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전에는 일본 학자들에 의해서 단편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1938년에 출판된 <서물동호회회보(書物同好會會報)> 제2호에는 등전양책(藤田亮策)㬘㬉, 전천효삼(田川孝三)㬙㬉, 안전방예(安田邦譽)가㬑㬐㬉 한지에 대한 문헌조사가 기술적 원리, 조지서(造紙署)의 역사와 45편의 참고문헌 목록을 발표하였다. 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Dard Hunter의 <Old paper marking China and Japan>과 <A Paper making pilgrimage to Japan, Korea and China>㬑㬑㬉에는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한국에서 사용되던 종이 만드는 방법들이, 일본과 중국의 기술들과 비교되어 기록되어 있다.
국내에서도 근래의 전통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한지 제지 기술의 발달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많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종전의 서지학적 그리고 역사학적 중심의 연구에 비하여,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면에서 진행된 연구논문들이 여러 편 발표된 것이 주목할 만하다. 김창식의 <딱풀에 대하여>㬑㬒㬉 온두현의 <한지 초조용(抄造用)의 황촉규근(黃蜀葵根) 점액에 대한 방치 가열 및 교반의 영향>㬑㬓㬉과 <황촉규근의 점액에 관한 연구,㬑㬔㬉 제1보∼제7보>, 김봉태 외 2인의 <특수한지 개발에 관한 연구, 화선지에 제조에 관하여>㬑㬕㬉와 전풍진 외 3인의 <한지에 관한 연구, (제2보) 창호지 및 장판지의 품질평가>㬑㬖㬉 등의 논문들이 단편적이나마 한지 제조 기술의 과학적인 현상과 방법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관점에서 연구된 논문들은 우리나라의 제지 기술이 예로부터 중요하고 우수하였으며, 이에 관한 문헌자료도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전체적인 이해와 외국기술과의 비교와 평가를 위해서는, 아직도 다각적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고에서는 제지에 관한 문헌 중에서 기술 자체에 관한 부분과 그의 품질을 검토하고, 이 기술이 현재 어떻게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는가를 관찰하고자 한다.
Ⅱ. 본론
현지 답사를 통하여 관찰한 한지 제조기술은 고려시대와 이조시대에 발달된 기술과는 기본적으로 같다. 한국 재래의 방법은 일본과 중국의 제지법과 대동소이하며 다만 주원료가 지방에 따라, 또 종이의 종류에 따라 다를 뿐이다. 지액(紙液)을 대나무 발로 물질하여 종이를 떠내는 방법에 의한 동양 각국의 일반적인 제지기술은 송나라 송응성의 유명한 과학기술사서인 《천공개물(天工開物)》,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와 서유구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등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㬑㬗㬉
가. 원료
(1) 저(楮 : 닥나무, Broussonetia Kazinok : Siebold)
상(桑)(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관목(落葉闊葉灌木)으로 잎은 난형(卵形) 또는 장난형(長卵形)으로 밑은 일자모양 또는 비뚤어진 심장형이고, 끝은 날카로우며 때때로 깊이 째졌고, 날카로운 거치가 있으며, 앞뒤의 면에 약간의 털이 있다. 꽃은 자웅 1가(家)로서 꽃 이삭은 액출(腋出)하며 수꽃 이삭은 타원형(瞅圓形)이고, 암꽃의 이삭은 구(球)형이며, 봄에 꽃이 피고 과실은 핵과로 편구(偏球)형이며 취합과(聚合果)는 구형이고 9월에 익는다. 수피(樹皮)는 제지용으로 사용되고, 과실은 약용, 어린잎은 식용으로 이용된다. 조림적수(造林適樹)로서 토양이 깊은 비옥한 땅, 특히 산간지방의 밭둑이나 산기슭 양지바른 곳에 야생 또는 재배되는 다년생 식물이다.㬑㬘㬉
이 楮를 한지의 원료로 사용할 때는, 봄부터 가을까지 자란 줄기를 서리가 내린 후, 낙엽이 진, 11월에서 12월초에 지면으로부터 약 10cm정도 남겨두고 채취하는데, 그 이유는 껍질이 단단해져서 여문 후이며, 또 다음 해에 새싹을 얻기 위해서이다.㬑㬙㬉
재배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면, 1905년(광무 9년)에 편찬된 김일제의 농정신편(農政新編) 권지이(券之二) 육부(六部) 파종(碀種) 상(上) 저피조(楮皮條)㬒㬐㬉에는 "토불필비량(土不必肥良) 수료박부허사적지지(雖療薄腐墟沙炏之地) 근근경비이분배(勤勤耕肥而糞培) 즉여불번생(則樳不繁生) 단기음습지흡풍회처수한지(但忌陰濕地及風會處雖寒地) 식어향양산전(植於向陽山田) 즉적의야(則赤宜也) 작법(作法) 동중분어정쇄지토(冬中糞於精碎之土) 조춘우요(早春又汀) 분비파교(糞肥碀交) 춘분전후(春分前後) 굴취저근(掘取楮根) 매절일척이리지(每切一尺而理之) 기두출지이촌(其頭出地二寸) 복토이서답지(覆土而徐踏之) 요이분수(汀以糞水)(熟糞汁二荷調和 : 숙분즙이하조화) 복치고고(覆置菰藁) 즉하지전(則夏至前) 개능생아유경급철거고고(皆能生芽油莖及撤去菰藁) 제거잡초(除去雜草) 배이마구비(培以馬廐肥) 요이낙수(汀以藥水) 즉당년비장(則當年肥長) 저유예법(且有刈法) 동지전이리겸일착(冬至前以利鎌一着) 즉예근여오촌(卽刈根餘五寸) 예구필사남향불연(刈口必使南向不然) 즉명년신아불생예후후복구비(則明年新芽不生刈後厚覆廐肥) 즉명년가지이삼배(則明年可至二三培)이라 하여, 토지는 꼭 비옥하지 않아도 되며, 비록 메마르고 썩고 모래가 쌓인 땅이라 할지라도, 부지런히 갈고 쇠스랑질을 하여 거름을 준다면 잘 되지 않는 일이 없고 단 음습한 땅과 바람맞이의 곳은 금한다 하며 비록 추운 지방이라 하더라도 양지 바른 산전에 심으면 가하다고 하였다. 작법은, 겨울에 잘 정쇄(精碎)한 토지에 거름을 주고 이른 봄에 또 거름을 주고, 쇠스랑으로 긁고 춘분 전후에 닥뿌리를 파내어, 낱낱이 일척(一尺)을 꺽고, 그 머리를 땅위에 두치쯤 돋아나게 하고는, 흙을 덮어 천천히 밟고서는 거름물을 준다. (숙분(熟糞) 두 짐과 물 열 짐을 섞는다). 볏짚을 덮어두면 하지 전에 눈이 돋고 줄기가 나오면, 볏짚을 거두고 잡초를 제거하고는 마분(馬糞) 구비(廐肥)를 주고, 거름물을 주면 그 해에 잘 자란다. 베는 법에 있어서는, 동지 전에 잘 드는 낫으로 뿌리 위 5촌을 남기고, 한 숨으로 베여, 벤 주둥이를 남쪽으로 향하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듬해에 새싹이 돋아나지 않는다. 베고 난 뒤에는 구비를 두껍게 덮으면, 이듬해에도 이삼 배를 더 거둘 수 있다.
또 홍만선의 산림경제(山林經濟) 권지이(卷之二) 종저(種楮)에는 "이월시지(二月蒔之) (찬요)(纂要) ○저의석퇴변조토(楮宜石堆邊燥土) 굴지와식(掘之臥植) 복토빈후(覆土頻厚) 물령족이석압지(勿令足以石壓之) 즉역활(則易活) 대기초장(待其稍長) 곡기지어토(曲其枝於土) 잉이석압지기처(仍以石壓之其處) 즉편생별근(則便生別根) 년구지후(年久之后) 용우경기근방(用牛耕其根傍) 즉근로처첩복생쟁(則根露處輒復生箏) (俗方) ○장월작지(腸月斫之) 정월소기무(正月燒基茂) (纂要)○ 사월의작(四月宜斫) 저피비비월작자다수고사(楮皮非比月斫者多數枯死) 장월작역가(腸月斫亦可) (신은찬요왈비갈월작자고사(神隱纂要曰非喝月斫者枯死)) ○매년작지이목저타쇄두(每年斫之以木杵打碎頭) 즉심무(則甚茂) (俗方)"㬒㬑㬉이라 하여 동일한 방법을 말하고 있으므로, 재배 방법은 시대에 따라서 별로 차이는 없으나, 현재에는 타 작물에 비해 조건은 번거롭지 않으나 인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특별히 다량 재배하는 곳이 적으며, 산간 지방의 밭둑에서 자생하는 것을 주로 이용한다.㬒㬒㬉 그러나 현재의 분포상황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의령, 신반 지방에 지배적으로 많은 저(楮)를 흑저(黑楮)라 하며, 선령, 창령을 중심으로 많이 분포되어 있고, 왜정 시에 많이 식목되었다는 저을 적저(赤楮)라하며, 함양, 산청, 전라, 충북 지방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 저를 진저(眞楮)라하며, 남해, 장흥, 고흥 등지에 분포되어 있으며 현재 등사원지(騰寫原紙), 지형지(紙形紙) 등에 사용되는 것을 안저(雁楮), 남해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것을 삼저(三楮)라고 한다.㬒㬓㬉
저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김일제의 전게서에 의하면 "저수자지료야종류심다(楮樹者紙料也種類甚多) 백표(白票), 청표(靑表), 흑표(黑表), 염미(櫄尾), 철원(綴垣), 남반(男班), 마엽(麻葉), 원채지명종종유지(圓菜之名種種有之)"라 하여 그 종류가 많다.㬒㬔㬉
楮 이외에도 여러 가지 원료가 있었다. 우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州衍文長箋散稿) 상권십구지품변증설(上卷十九紙品辨證說)에 의하면 "범초목지피후차연자(凡草木之皮厚且軟者) 개조지(皆造紙) 즉여모우지유영차인자(卽如毛羽之有穎且靭者) 병가박필야(拄可縛筆也) 송피(松皮) 근피(槿皮) 양유목피(楊柳木皮) 상탁목피(桑拓木皮) 회목피(灰木皮) 가피(匦皮) 구피(構皮) 후도피(糅桃皮) 옥촉태포피(玉蜀泰苞皮) 영마련방(巔麻蓮房) 개가제지(皆可製紙)"㬒㬕㬉라 하여 무릇 초목의 피는 대개가 종이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하였으며, 기원 5세기에 송나라 범엽(范曄)이 저작한 후한서(後漢書) 권108 채륜전(蔡倫傳)에 "자고서계다편이죽간기용겸백자(自古書契多編以竹簡其用唨帛者) 지위지(之爲紙) 겸귀이간중병불편어인륜내조의용수부마두내례포어망이위지(唨貴而簡重拄不便於人倫乃造意用樹膚麻頭乃磯布魚網以爲紙)"㬒㬖㬉라 하여 예로부터 서계(書契)는 죽간(竹簡)으로 편(編)한 것이 많았다. 서계에 겸백(唨帛)을 사용한 것을 지(紙)라고 하며 겸(唨)은 귀하고 간(簡)은 무거워서 사용하기에 불편하였다. 채륜은 이 점에 주의하여, 수피(樹皮), 마(麻), 폐포(磯布) 그리고 어망을 사용하여 종이를 만들었다 하였다. 또 서경(徐競)의 고려도경 제23권 잡속이(雜俗二) 토산조(土産條)에는 "고려지(高麗紙) 부전용저(不全用楮) 간이등조(間以藤造)"㬒㬗㬉라 하여 고려지(高麗紙)도 전부 저를 사용하지 않고 간혹 등나무로도 제조한다 하였으며, ?隆의 고반여중(高槃餘中) 지전(紙箋) 고려지에도 "이면견조성색백여능견인여 백용이서사발묵가애비중국소무역기품야(以綿繭造成色白如綾堅靭如 帛用以書寫發墨可愛比中國所無亦奇品也"㬒㬘㬉라 하여 고려지는 면(綿)과 견(繭)으로서 제조하매 빛이 희고 비단 같으며, 질기고 빳빳해서 글씨의 글발이 잘 받아서, 書寫家들의 귀염을 받을 뿐 아니라, 이는 중국에서도 이상 더 없는 진기품이라 하여 면(綿), 견(繭)도 원료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세조실록 권33 10년 갑신 5월 갑술조(甲戌條)에 의하면 "박원형문조지법정사답왈상용황지이눈죽엽급상피화조서조칙백지순용상피명조지소의비시지(朴元亨門造紙法正使答曰常用黃紙以嫩竹葉及桑皮和造書詔勅白紙純用桑皮命造紙所依比試之)"㬒㬙㬉 라 하여 눈죽엽(嫩竹葉)과 상피도 종이의 원료이며, 또 세종실록 권65, 16년 갑인 7월 인진조(寅辰條)에 "명조인자치통감지오만권우조지소십오만천권우경상도칠만팔천권우전라도삼만삼천오백권우충청도삼만삼천오백권(命造印資治通鑑紙五萬卷于造紙所十五萬千卷于慶尙道七萬八千卷于全羅道三萬三千五百卷于忠淸道三萬三千五百卷) 우강원도공삼십만권잉전지저이국고미환양역경내승인급여의(于江原道共三十萬卷仍傳旨楮以國庫米換榮役境內僧人給與依) 량여호절모맥절죽피마골등물인기역비매오분교저일분조지비유지력초강합어인책용저역부다의(粮如蒿節悫麥節竹皮麻骨等物因其易備每五分交楮一分造之非惟紙力稍强合於印冊用楮亦不多矣)"㬓㬐㬉라 하여 자치통감(自治痛鑑)을 인쇄할 종이를 각 처에 나누어 만들게 하되 5만 권은 조지소(造紙所)에서 만들고, 10만 5천 권은 경상도에서, 7만 8천 권은 전라도에서, 3만 3천 권은 충청도에서, 3만 3천 5백 권은 강원도에서 합하여 30만 권을 만들라고 명하고, 진지하기를 "楮는 국고의 쌀로서 바꾸고 경내의 僧들을 시켜 종이 뜨는 일을 하게 하되 의복과 음식을 주고 쑥대(호절 : 蒿節)와 밀, 보릿짚(모맥절 : 悫麥節), 대껍질(竹皮), 삼대(麻骨) 등은 준비하기가 쉬운 물건이므로 이를 5분마다에 닥 1분을 섞어서 만들면, 종이의 힘이 조금 강할 뿐만 아니라 책을 박기에 적합하고 닥을 쓰는 것도 많지 않을 것이다 하여, 쑥대, 보릿짚, 대껍질, 삼대도 종이의 원료이었으며 성종실록 권51, 6년 을미 정월 기사조(己巳條)에 의하면 북경에서는 생마와 죽순 도개(稻听 : 볏짚, 고갱이) 상피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으며㬓㬑㬉 중종실록 권95, 36년 신축 6월 강진조(康辰條)에는 "병조판서김안국이(兵曹判書金安國以) 태지오속진상잉계왈신군향시견고서유이수태위지지어신시조지기법이태화저(苔紙五束進上仍啓曰臣君鄕時見古書有以水苔爲紙之語臣試調之其法以苔和楮)"㬓㬒㬉라 하여 수태(水苔 : 물이끼)도 종이의 원료이었으며, 색경보집(穡啬普集) 권지사 조북지법에는 최맥호(崔麥蒿)를 사용했다㬓㬓㬉하며 서유구(徐有埍)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백이이운지(百二怡雲志) 권제사(卷第四) 문방아제(文房雅製) 하(下) 왜지품조(倭紙品條)에는 "일본지개용저(日本紙皆用楮) 유조자지생쇄지(惟鳥子紙生灑紙) 용안피목야(用雁皮木也) 배채기급근(拜採技及根) 약연자박피(略燕煮剝皮)"㬓㬔㬉라 하여 일본지(日本紙)도 대개가 楮를 사용하나, 오직 조자지(鳥子紙)나 생쇄지(生灑紙)만이 산닥나무를 사용하며 그 가지나 뿌리를 채취하여 증기로 삶아서 껍질을 벗긴다고 하니 일본지 또한 주로 楮를 사용하나 산닥나무도 원료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중국에서는 제지 원료는 송응성의 천공개물(天工開物) 권중(卷中) 살청(殺靑) 제삼십권(第三十卷) 지료(紙料)를 보면 "범지질용저수일명곡수피여상양부용막등제물자(凡紙質用楮樹一名穀樹皮與桑穰芙蓉膜等諸物者) 위피지(爲皮紙) 용죽마자위죽지(用竹麻者爲竹紙)"㬓㬕㬉라 하여 종이의 원료로 역시 楮와 竹을 들고 있다.
또 1908년에 발행한 대한학회월보 제4호 중 이풍재의 실업계 제지 소식에 의하면 남루(襤樓) 마망(麻網), 도고(稻藁) 삼아피(三亞皮)도 제지원료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으며㬓㬖㬉 제홍규의 한지사(韓紙史) 소고(小考)에는, 죽엽, 송엽, 고절(藁節), 포절(蒲節) 등을 원료로 사용한다㬓㬗㬉고 말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일본이나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모두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가장 많이 楮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황촉규(黃蜀葵 : 닥풀, Abelmoschus Manihot Medikus)
아욱과에 속하는 일년생 식물로서, 줄기는 단일하며 곧게 섰고 높이는 1.5m에 달하며 잎은 호생하며 잎자루가 길고 손바닥 모양으로 5∼7개로 깊게 째어졌으며 열편(裂片)은 장타원상(長楕圓狀) 피침형(披針形)이고 거칠고 뚱뚱한 거치가 있으며 돈엽(寸葉)은 피침형(披針形)이다. 꽃은 줄기 끝에 큰 이삭을 지어 꽃가루가 달린 대형의 꽃이 한쪽에 몰려서 피며 꽃 아래의 작은 포(苞)가 4∼5개 있으며 난상피침형(卵狀披針形)이고 화관은 鍾형이며 직경이 약 12㎝이며 꽃잎은 5변(辨)이고 도란형(倒卵形)이며 회시벽(回施投)을 이루고 부질(簿質)이 많은 수술은 단체(單疜)이고 주두(柱頭)는 5열(裂)로 되었으며 암자색이고 ?도 5열로 되어 있고 난상피침형(卵狀披針形)이며 꽃자루 및 잎자루에 털이 있다. 꽃은 엷은 황색이고 중심은 자색을 띠고 8∼9월에 핀다. 뿌리는 한약재로 쓰며 원산지는 중국이다.㬓㬘㬉
재배방법은 봄의 곡우(穀雨)를 전후하여 씨를 뿌려 비료 또는 퇴비를 주며 3회 복토를 하여 주고 가끔 荀을 쳐서 키가 크는 것을 억제시켜 뿌리를 굵게 하여준다. 그리고 서리가 오기 전에 뽑아서 그 중 뿌리를 찧어서 점액을 냉수에 혼합하여 사용한다.㬓㬙㬉
닥풀의 점액을 사용하는 목적을 김창식의 <닥풀에 대하여>에서 살펴보면 섬유(纖維) 상호간의 교합을 좋게 하고 종이의 후박을 자유로이 할 수 있으며 종이에 긴체성(緊締性)를 주며 강도를 증가시키고 습지(濕紙)의 박리(剝離)를 양호하게 하며 섬유의 침전(沈澱)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㬔㬐㬉고 하였다.
또 황촉규의 특징은 저농도에서 고점성을 나타내며 온도가 상승함으로써 점성이 감소하기 때문에 반드시 냉수에 혼합하며 사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닥풀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기계적 충격에 의해서도 점성이 감소한다.㬔㬑㬉
황촉규 근부(根部)의 화학적 조성은 d-galactose, l-albinose, l-lamunose, xylose, glucose, d-galacturonic acid, aldobionic acid, lamgalactronic acid 등이며 근부(根部)를 물에 녹여 제지에 이용되는 주성분은 1-lamunose와 d-galacturonic acid 에 의한 Poly-Uronite의 작용에 기인된다.㬔㬒㬉 또 황촉규 대용으로서 CMC, 아루긴산 소오다, 폴리메타린산가성소오다, 폴리산화에틸렌이 사용되고 있고 용문에서는 Palm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편 황촉규 대신 사용된 식물들을 문헌을 통하여 살펴보면 안전방예(安田邦譽)의 朝鮮紙に 就て에서는 "えに糊料とし て黃蜀葵の根或は楡の皮の粘液を加へ"㬔㬓㬉라고 하여 느름나무의 껍질의 점액을 호료(糊料)로 사용하였고 이규경의 전게서(前揭書)에 의하면 "성세포지(盛細布紙) 복세후(復洗后) 화골척수조지(和滑滌水造之) 골척초명(滑滌草名) 용근간추쇄침수(用根幹椎碎沈水) 이기수위교(以其水爲膠)"㬔㬔㬉라 하여 골척수(滑滌水)를 넣어 종이를 만드는데 골척(滑滌)란 풀 이름이며 그 용법은 뿌리를 방망이로 잘게 부숴서 물에 가라앉힌 후 그 물로써 아교를 만들어 호료(湖料)로 썼다고 한다. 또 서유구의 전갈서(前揭書)에는 "화표목즙일합(和祢木汁一合) 수교칙능?골(數攪則能?滑)"㬔㬕㬉이라 하여 표목즙(祢木汁)도 황촉규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生麻를 원료로 사용할 때는 호료를 쓰지 않는다.
현재 황촉규의 량은 저피 10kg에 황촉규 점액 1kg(물에 섞은 것은 4kg)을 혼합하여 쓴다. 그리고 황촉규의 뿌리를 오래도록 보존하는 방법은 Formalin에 담구어 보존시킨다.
(3) Alkali
식물성 섬유는 모두 순수한 섬유소가 아니고 여러 가지 불순물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alkali용액을 사용하는데 그 alkali용액을 대해서 살펴보면
서유구의 전게서 중 왜지품조에는"…거록피(去鹿皮) 용목회수(用木灰須) 재자급류수세지(再煮扱流水洗之)…"㬔㬖㬉라 하였으며 성종실록 권37 4년 12월 갑신조(甲申條)에는 목회를 사용하였는데 경중(京中)의 각 호(戶)와 성저(城底) 십리 내에 거주하는 주민이 공물로 분담하였다㬔㬗㬉는 것을 보면 alkali로 목회를 사용하였으며 또 이규경의 전게서 중 지품변증설(紙品辨證說)에 "…기법(其法) 용생마세절청수(用生麻細截淸水) 화석회란연(和石灰爛燕) 성어대(盛於孱)…"라 하였고 서유구의 전게서 중 조북지법(造北紙法)에 "작맥고권작소괴전만과내이석회절하기중용수번복령회여고상간잡우용소회즙관만자이주야…(雀麥藁捲作小塊烂滿鍋內以石灰節下其中用手飜覆令灰與藁相間雜又用小灰汁灌滿煮二晝夜…)"㬔㬘㬉라 하였으며 송응성의 전게서 중 조피지(造皮紙)에도 "…범피지저피육십근잉입절눈죽마사십근동당표침동용석회장(凡皮紙楮皮六十斤仍入絶嫩竹麻四十斤同塘漂浸同用石灰奬) 입부자미(入釜煮慓)…"㬔㬙㬉라 하여 석회를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성종실록 권51, 6년 정월 기사조(己巳條)에는 "…용생마급상피(用生麻及桑皮) 진목회수석회교잡(眞木灰水石灰交雜) 숙증(熟蒸)…"㬕㬐㬉라 하여, 진목회(眞木灰)와 수석회(水石灰)도 alkali로 사용되었다. 또 세조실록 권10, 3년 12월 임인조(壬寅條)에는 "…차조지시(且造紙時) 불용려회(不用蠣灰) 금?운(今?云) 수용려회(須用蠣灰) 급가조유괴립법본의(及可造有乖立法本意)…"㬕㬑㬉라 하여 여회(蠣灰)도 alkali로 사용했으며 세종실록 지리지 경기 궐공조(厥貢條)에는 맥회(麥灰), 황회(黃灰), 여회(蠣灰)도 사용하였다㬕㬒㬉하며 안전방예(安田邦譽)의 조선지이취(朝鮮紙二就て)에서는 "일반に가성조달(一般に苛性曹達) 조달회(曹達灰) 생석회등(生石灰等)の アソカソを 使用し"㬕㬓㬉하였다. 또 이조재의 전게 논문에도 "저피 및 삼아피의 원료는 해료(該料)에 대하야 조달회액(曹達灰液) 삼할오분(三割五分)을 주(主)하고"㬕㬔㬉하여, 같은 재료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목회(木灰), 석회(石灰), 진목회(眞木灰), 수석회(水石灰), 여회(蠣灰), 맥회(麥灰), 황회(黃灰), 가성조달(苛性曹達), 조달회(曹達灰) 등이 alkali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가성소다(NaOH)를 사용하고 있다.
나. 제지공정
수록법(水鹿法)의 첫 공정단계는 주원료인 楮를 채취하여 잎은 털어 버리고 줄기를 2∼3m로 잘라 큰 가마솥에 넣고 4∼5시간 정도 증기로 찌면 껍질이 오물어 들어서 줄기보다 짧아진다. 가마솥은 그림에서 나타낸 것과 같이 보통 드럼통을 세로로 반으로 잘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와 같이 찐 楮를 껍질을 벗기는데 껍질을 쉽게 벗기기 위해서 겨울에 물에 담그어 얼린 후 벗기면 더욱 쉽게 벗겨진다고 한다. 이렇게 벗긴 껍질을 흑피라 하여 질이 좋지 않고 색이 검은, 즉 장판을 입힐 때 초배지로 사용하는 종이를 만들 때 사용하며 화선지를 만들 때는 흑피의 검은 부분(흑표피)를 다시 제거한다. 흑표피를 제거하는 방법은 흑피를 오랫동안 물에 담그어 불린 후 닥칼을 이용하여 흑표피를 벗긴다. 이것을 백피라 하는데 이 백피를 다시 오랫동안 담그어 연화(軟化)시킨다. 물에 담그어 두는 이유는 다음 단계의 "자숙(煮熟)을 용이하게 하고 수용성 물질의 일부를 용출(溶出)시키기 위해서"㬕㬕㬉라고 하는데 현재는 이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경향이 많았으며 또 백피에 검은 껍질이 있으면 화선지의 색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먹이나 물감을 고르게 받지 않으므로 이 단계에서 간간이 섞여 있는 검은 껍질을 제거해야 한다. 제거하는 방법은 원주 새마을 공장에서는 부녀자들이 백피를 물에 담그어 놓고 손으로 하나 둘 가려내고 있었다.
다음 단계는 백피를 솥에 넣고 Alkali용액을 섞어서 오랫동안 끓이는데 이것은 식물성 섬유는 모두 순수한 섬유소가 아니고 항상 여러 가지 불순물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불순물을 제거하여 가급적 순수한 섬유만을 얻을 목적으로 행하는 일인데 서유구의 전게서에는 "소회즙관만자이주야간후회즙점감우번복지령상자하(小灰汁灌忔煮二晝夜間候灰汁漸減又扪覆之令上者下) 하자상후자숙고란증출성광만냉(下者上候煮熟藁爛蒸出盛筐漫冷)"㬕㬖㬉이라 하여 원료에 회즙(灰汁)을 가득히 넣어서 2주야(晝夜) 동안 끓이면서 회즙을 살펴 점차적으로 줄어들면 위의 것은 아래로, 아래 것은 위로 반복하여 뒤치면서 삶으면 짚이 벗어지고 증기가 성하면 광주리에 담아서 차게 한다 하였으며, 안전방예는 전게서에서 "일반(一般)に가성조달(苛性曹達), 석달회(昔達灰), 생석회등(生石灰等)の アソカソを 사용(使用)し 보통(普通)の 평부(平釜)にえ 三∼四時間 자숙(煮熟)を 行ふ"㬕㬗㬉하였고, 또 대한학회 월보에는 "저피 및 삼아피의 원료는 해료에 대하야 조달회액(曹達灰液) 일할오분(一割五分)을 主하고 육십봉도(六十封度)의 증기압력으로 8시간 증해(蒸解)하나니라"㬕㬘㬉하였다.
현재는 백피 12㎏에 양잿물(가성소다 NaOH) 1㎏을 첨가한다 하며 만약 흑피를 이용하여 초배지 같은 종이를 만들 때는 흑피 6㎏에 양잿물 1㎏을 첨가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흑피 속에는 제거해야 할 불순물이 더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위와 같은 방법으로 얻은 楮皮에서 여분의 alkali와 불순물을 제거한다. 자숙하면 불순물이 물에 가용성으로 되기 때문에 저피를 자루에 넣어 시냇물과 같이 흐르는 물 또는 큰 통 속의 물에 일주야 정도 불순물을 울궈내거나 망사로 싸서 헹구어 내기도 한다. 이것을 안전방예는 수선(水選) 또는 속된 말로 アク발(拔)이라 했다. 지금은 대부분 지통(紙桶)속에 담그어서 alkali와 불순물을 제거한다.
다음 단계는 필요에 따라 표백한다. 표백하는 방법은 냇물표백 또는 표백분에 의한 것이 많고 이 양자를 병행하는 경우가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화선지의 경우 표백분에 의한 표백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표백을 하게 되면 표백분에 의해 화선지가 질기지 못하며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 누렇게 변색되기 때문에 원주 새마을 공장에서는 표백제로 표백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표백제로 표백할 때는 대체로 원료 12㎏에 Chlorkalki(Ca(ClO)₂)약 1㎏을 표백제로 사용하며 표백 후에 여분의 표백제를 완전히 씻어내야 한다. 또 냇물표백을 할 때는 시냇가에서 햇볕에 바래서 표백시켰는데 겨울에는 이틀, 여름에는 하루 정도가 걸린다. 이풍재의 전게서에는 "지료(紙料)를 표백하는 주분액(酒粉液)의 장저급(藏貯及) 용방주분(用方酒粉)은 태양과 공기가 통조(通照)하면 약력(藥力)을 감살(厡殺)함으로 반드시 음냉(陰冷)한 처소(處所)에 용해저유(容解貯溜)함이 가하며……, 저마(楮麻) 급(及) 삼아피 등 원료에는 백관(白貫)에 십관(十貫) 이내로 한용(限用)하며 온도는 보一메氏 육십 도에 통입(通入)하야 표백함이 가야(可也)"㬕㬙㬉라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섬유는 섬유다발이 모인 집합체를 이루고 있으므로 抄造할 때는 이들 집합섬유다발을 단섬유로 분리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고해(叩解)하였다. 이규경의 전게서에서는 "번란세정거회(飜岿洗淨去灰) 이석애세마후(以石楜細麻后) 성어화밀죽광(盛於化密竹筐) 경정로(更淨撈)"㬖㬐㬉라 하여 뒤집고 문지르고 다시 씻고 걸러서 회를 제거하고 맷돌로 가늘게 간 후 촘촘한 대나무 광주리에 넣어 다시 씻어 건져낸다고 하였다. 또 안전방예는 이것에는 재래식의 수타식(手打式) 반상고해법(盤上叩解法)과 고해기(叩解機 : ビ-ῃ-)에 의한 방법이 있다고 하며 수타식 고해(叩解)법은 평평한 돌 위에 놓고 때리는 방법이며 시간과 노력을 요하지만 고해기(叩解機)에 의한 방법은 대단히 능률적이어서 지금에 와서는 전력이 없는 곳에서 수차 혹은 석유발동기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Dard Hunter는 1930년에 대구의 한 제지공장에서 긴 절구막대로 원료를 빻는 장면을 나타내면서 긴 절구막대는 중국, 인도지나, 태국과 일본에서 쓰는 막대들과 다르다㬖㬑㬉고 하였다.
한지가 대체로 질기고 표면에 섬유모양이 그대로 남아있고 겉이 보이기도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중국에서처럼 Pulp를 가늘게 갈지 않고 방망이질만 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공장에서 Beater를 만들어 전력을 이용하여 원료를 분쇄하고 있다. 이렇게 분쇄시킨 원료를 목재지통(木材紙硇)에 넣고 호료(糊料)로 황촉규 뿌리즙을 첨가한 후 물을 부어 막대로 휘저어서 이것들이 골고루 섞이게 한다. 이때 백피와 황촉규 점액의 비율은 대략 10 : 1 정도로 한다.
다음은 紙桶 위에 매달아 놓은 대나무 발을 이용하여 지액을 떠내는데 창호지와 화선지는 뜨는 방법과 대나무발을 받쳐주는 발틀의 모양이 다르다. 우선 창호지를 뜨는 대나무발의 발틀은 홑으로 되어 있으며 손잡이는 앞에 붙어 있고 발틀 위에 대나물발을 올려놓는다. 지액을 뜨는 방법은 반드시 앞으로 한번 좌우로 여러 번 뜨는데 이렇게 뜸으로써 섬유질이 발의 표면에 얽히게 되어 부착되며 섬유가 十字로 얽혀 종이가 가로로나 세로로 쉽게 찢어지지 않는다. 만약 좌우로만 뜬다면 섬유질은 발의 표면에 부착되지 않고 발 사이로 빠져버리게 되며 앞으로만 뜬다면 습지가 발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쉽게 찢어진다. 또 좌우로 몇 번 뜨느냐에 따라 종이의 두께가 결정되며 종이의 크기는 발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발에 새겨진 무늬모양의 홈에 따라 종이에 생기는 무늬가 달라지며 어떠한 종류와 무늬의 뜸틀을 어느 나라에서 어느 시대에 사용하였나 하는 문제는 제지기술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화선지를 만드는 대나무발의 발틀은 2중으로 되어 있고 위의 것을 연 다음 발을 깔고 위의 것을 덮으며 손잡이가 위에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뜨는 방법은 앞으로 한번 떠서 앞뒤로, 좌우로 조금씩 여러 번 흔든 다음 다시 지액을 떠서 같은 방법으로 흔드는 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발의 크기는 가로의 길이가 세로의 길이의 1.5배정도 된다. 역시 화선지의 두께도 뜨는 횟수에 따라 달라진다.
다음은 발로 뜬 종이를 엎어서 발을 거둔다. 이때 종이가 서로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종이 사이사이에 벼개라고 불리는 나일론줄, 노끈 또는 가느다랗게 쪼갠 대나무를 끼워 놓으며 약 5∼600매가 되면 나무토막이나 둘을 올려놓거나 회전식 압착기(Jack)를 이용하여 수분을 제거한다.
압착하여 수분이 제거된 종이는 한 장씩 떼어서 간판 혹은 건조기에 붙여서 건조시킨다. 햇볕에서 말리는 방법도 있으나 보통은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이 철판을 겹으로 약 15도 경사지도록 하고 그 속에 물을 넣고 불을 때어서 증기로 철판을 뜨겁게 하여 습지를 붙여 말리며 이때 연료는 기름이나 장작 또는 왕겨를 압착시킨 탄을 사용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생산되는 종이는 11월∼12월 사이에 楮를 채취하여 농한기인 겨울 동안 피를 벗기고 흑피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며 그 나머지 과장은 3월∼10월까지 행한다고 한다. 또 화선지의 명칭은 공장마다 명칭을 정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또 중국의 제지법을 이조시대의 紙匠 박비(朴非)가 배워온 것을 보면
성종실록 권51, 6년 정월 기사조(己巳條)에는 "지장박비조종사은사(紙匠朴非曹從謝恩史) 여경학조지법(如京學造紙法) 북경합대문외(北京哈大門外) 이십오리지(二十五里地) 유조지처(有造紙處) 개상용마지야(皆常用麻紙也) 기조법(其造法) 용생마(用生麻) 세절청수화석회란증(細截淸水和石灰爛蒸) 성어대(盛於代) 번한세정거회(飜秛洗淨去灰) 이석회세마(以石灰細磨) 후성어화밀죽광자(後盛於化密竹筐子) 경세정정(更洗淨淨) 출치어목통(出置於木硇) 화청수조지(和淸水造之) 불용교문조서본지법(不用膠問造黍本紙法) 답왈(答曰) 남방인대죽순여우각(南方人待竹筍如牛角) 예취연피(刈取連皮) 촌촌절지(寸寸截之) 주수화석회(酒水和石灰) 납통중(納硇中) 경오육일(啬五六日) 후자숙성어광자세정(後煮熟盛於筐子洗淨) 거회란도(去灰爛搗) 성세포지(盛細布紙) 복세후(復洗後) 화골조수조지(和滑條水造紙) 골조초명(滑造草名) 용근간추쇄침수(用根幹椎碎沈水) 이기수위교(以其水爲膠) 문조책지법(問造冊紙法) 답왈(答曰) 역여좌(亦如左) 단잡개조지(但雜听造之) 기숙정여상(其熟正如常)
기이(其二) 정양문외(正陽門外) 이십리허(二十里許) 유조지처(有造紙處) 용생마(用生麻) 세절주수화석회숙증(細截酒水和石灰熟烝) 성어죽광자(盛於竹筐子) 세정거회(洗淨去灰) 이석애세마(以石楜細磨) 복성어밀비죽광자(復盛於密比竹筐子) 세정로출조지(洗淨撈出造之) 문조책지(門造冊紙) 즉죽순여우각시예취연급(則竹筍如牛角時刈取連及) 촌촌절지(寸寸截之) 도개역여석(稻听亦如石) 절지상잡(截之相雜) 주수화석회치수통(酒水和石灰置水硇) 결오육일(啬五六日) 숙증성포대(熟烝盛布孱) 세정도거회(洗淨淘去灰) 난도(爛搗) 복성포대(復盛布孱) 경세정노출(更洗淨撈出) 화청수조지(和淸水造之) 문조태본지(門造泰本紙) 즉도개소허잡지(則稻听小許雜紙) 납일천장(納一千丈) 용분일근화조(用粉一斤和造) 즉색백이호(則色白而好)
기삼(其三) 정양문외(正陽門外) 태자하변(太子河邊) 유조지처(有造紙處) 용생마급상피(用生麻及桑皮) 진목회수석회교잡(眞木灰水石灰交雜) 숙증(熟烝) 쇄건(朜乾) 이목추타거피급석회세절(以木椎打去皮及石灰細截) 성죽광자(盛竹筐子) 세정세마(洗淨細磨) 우세정(又洗淨) 화골조수조지(化滑造水造之) 비즉상용책지야(比則常用冊紙也)"㬖㬒㬉라 하여 지장 박비는 일찍이 사은사(謝恩使)를 따라 북경에 가서 조지법(造紙法)을 배워왔다. 그 하나는 북경의 합대문 밖 25리 지점에 종이를 제조하는 곳이 있는데 모두 麻紙를 상용하였다. 그 제조법은 생마를 써서 가늘게 끊여 물에 담갔다가 석회에다 무르녹게 쪄서 전대에 담고 뒤치고 비비어 정결하게 씻어 석회를 제거하고 맷돌로서 곱게 간 뒤에 치밀하게 엮은 대광주리에 담고 다시 깨끗하게 씻어서 건져내어 나무통에 두었다가 淸水에 화합하여 제조하되 아교를 쓰지 않는다. 진본지(秦本紙)의 제조법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남방사람은 죽순이 소뿔만 하기를 기다려 베어서 連皮채 취하여 마디마디 잘라서 물에 씻어 석회를 섞어서 통 속에 넣었다가 5∼6일이 경과한 뒤에 삶아서 광주리에 담아 깨끗하게 씻어 석회를 제거하고 무르녹게 찧어, 가는 포대에 담아 다시 씻은 뒤에 골조수(滑條水)에 화합하여 이를 제조한다" 하였다. 골조는 풀이름이며 뿌리와 줄기를 써서 방망이로 부수어서 물에 담갔다가 그 물로서 아교를 만든다. 책지(冊紙)의 제조법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또한 위와 같으나 다만 도개(稻听 : 볏짚, 고갱이)를 섞어 제조하며 그 익히는 것은 정히 보통과 같다"하였다. 또 하나는 정양문 밖 20리 남짓한 데에 종이를 제조하는 곳이 있는데 생마를 사용하며 가늘게 끊어 물에 씻고 석회와 화합하여 삶아 익혀서 대광주리에 담았다가 깨끗이 씻어 껍질을 제거하여 돌맷돌로서 곱게 갈아 다시 치밀하게 엮은 대광주리에 담고 깨끗이 씻어 건져내어 제조한다. 책지의 제조법을 물었더니 "죽순이 소뿔 만한 때에 베어서 연피를 취하여 마디마디 자르며 볏짚 고갱이도 또한 위와 같이 끊어 서로 섞어서 물에다 씻어 석회와 화합하여 물통에 두었다가 5∼6일이 경과하여 삶아 익힌 다음 일고 씻어 석회를 제거하여 무르녹게 찧어 다시 포대에 담고 다시 깨끗이 씻어서 건져내어 청수에 화합하여 제조한다"하고 진본지(秦本紙)의 제조법을 물은 즉 "볏짚 고갱이를 조금 섞어 약 1千丈에 粉 1斤을 써서 화합하여 제조하면 빛깔이 희어서 좋다"하였다. 또 하나는 요동의 동문 밖 太子河 강가에 종이를 제조하는 곳이 있는데 生麻와 桑皮, 眞木灰, 水石灰를 써서 서로 섞어 삶아 햇빛에 말리어 목추(木椎 : 나무 방망이)로 쳐서 거친 껍질과 석회를 제거하여 가늘게 잘라 대광주리에 담고 깨끗이 씻어 곱게 갈며 또 깨끗이 씻어 골조수와 섞어서 제조하는데 이것은 冊紙에 상용하였다.
중국의 고대 제조방법을 송나라의 송응성의 《천공개물》 권중(卷中) 살청(殺靑) 제13권 조피지조(造皮紙條)를 통해서 살펴보면 따라서 고대 중국의 제지방법이나 우리나라의 제지방법에 별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다. 화선지의 품질평가
(1) 시료(試料)
시료는 서울 인사동 화선지 소매상을 임의로 선정하여 구입하였다.
(2) 실험방법 및 결과
종이류의 일반항목인 치수, 두께㬖㬓㬉, 평량(坪量)㬖㬔㬉, 인장강도(引張强度)㬖㬕㬉, 인열강도(引裂强度)㬖㬖㬉, 파열강도(破裂强度)㬖㬗㬉, 백색도㬖㬘㬉, 및 흡수상태를 실험하였으며, 그 결과는 표-1과 같다.
(3) 고찰
① 치수
화선지의 크기는 세로가 1345㎜에서 1368㎜까지이며, 가로는 697㎜에서 705㎜까지로 별 차이가 없다. 이것은 화선지를 뜨는 발의 크기는 대개 일정하나 각 고장에서 재단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② 평량
화선지의 평량 분포는 23g/㎡로부터 51g/㎡까지 광범위하였으며 화선지가 두꺼울수록 평량도 증가하였다.
③ 두께
화선지의 두께는 0.06㎜에서 0.12㎜까지이며 이는 화선지를 뜨는 숙련공의 기술에 의존하며, 화선지의 평량 증가에 따라 두꺼워졌다.
④ 인장강도
화선지의 두께와 평량과 인장강도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두꺼울수록, 평량이 클수록 인장강도가 높았다. 따라서 밀도가 클수록 인장강도가 높다.
⑤ 인열강도
화선지의 두께와 평량과 인열강도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었다.
⑥ 파열강도
화선지의 두께와 평량과 파열강도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두꺼울수록 평량이 클수록 파열강도가 높았다. 따라서 밀도가 클수록 파열강도가 높다.
⑦ 백색도
화선지의 백색도는 70∼80%정도이며 표백제를 많이 사용한 것일수록 백색도가 높다.
⑧ 흡수상태
먹의 흡수상태는 다음에 나타난 것과 같이 모두 불균일하게 번졌으며 두께와 흡수상태의 상관관계는 없었다.
Ⅲ. 결론
위의 현지답사 보고에서 본 바와 같이 수파법(또는 手抄法)에 의한 한지 제조가 농가의 소규모 공장에서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개발 없이 원시적으로 제조하고 있으며 소자본들이기 때문에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고 인건비 또한 비싸기 때문이며 종이의 크기 역시 아직도 규격화되어 있지 못하고, 다만 발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어 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에서만 생산되는 화선지의 경우를 보면 중국산이 가장 높이 평가되어 국내에서도 고급지로는 중국산을 수입하고 있다. 국산 화선지는 주로 국내에서 소비되고 일부가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으나 중국산에 비하여 아주 싸다.
또한 위에서 기술한 수파법에 의한 제지방법을 문헌과 현지답사를 살펴보면 이조시대의 제지술과 현대제지술에는 별로 차이가 없었다. 다만 섬유를 잘게 부수기 위해서 이조시대에는 방망이를 사용한 것과 현재 Beater를 사용한 것이 다른 점일 뿐이다.
이러한 현황에서 깊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한지 제조기술이 앞으로 계속 전습되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품질개선과 기술개발에 의한 효율 향상이 있어야 하겠다.
또한 전국에 여기 저기 분산되어 있는 영세적인 한지공장에 대하여 전체적인 통계조사를 실시하여 한지의 수요와 공급관계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 분야 전체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앞으로 많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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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1) 김천웅, 한지 제지에 관한 고찰, 연세어문학, 6집. 연세대. 1975 pp 179∼180.
2) 서명안, 보만제총서(保晩齊叢書), 고사12집(攷事十二集) 권10, 지품고하조(紙品高下條)
3) 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 궐공조.
4) 이광린, 조선초기의 제지업 역사학보 제10집, 1958.
5) ---- , 이조 후반기의 사찰 제지업, 역사학보 제17, 18 합병호.
6) 김화자, 서사재료(書寫材料)로서의 한국지의 발전에 관한 연구, 이대 대학원, 1968.
7) 김석희, 조선왕조 말기의 지방 제지업에 관한 일고. 부산대 논문집(인문사회과학 편) 제 19집. 1975,
8) 등전양책(藤田亮策), 지(紙), 반(反), 고(古), 서물(書物) 동호회 회보, 제2호 서물 동회회, 경성, 1938. pp 1∼3
9) 안전천효천(安田川孝三), 조지서の사ぐゐ(造紙暑の事ぐゐ) 서물 동호회보, 제2호 서물동 회회, 경성, 1938. pp 3∼4
10) 안전방예(安田邦譽), 朝鮮紙に就て 書物同好會會報, 제2호 書物同好會. 京城. 1938. pp 4∼6.
11) Dard Hunter, Papermaking The History and Technique of Ancient Craft, Alfred A, Knepf, N.Y. 1943. p 108.
12) 김창식, 딱풀에 대하여, 제지 제38호, 한국 제지공업연합회 92, 94. pp 15∼20
13) 온두현, 한지초조용(韓紙抄造用)의 황촉규근(黃蜀葵根) 점액에 대한 방치, 가열 및 교반 의 영향, 전북대 논문집(자연과학편) Vol 12, 1970. pp 61∼63.
14) 온두현, 황촉규근의 점액에 관한 연구. 한국농화학회지, 제19권 제1호 1976. pp 36∼40.
15) 김봉태 외 2인, 특수한지 개발에 관한 연구. 펄프, 종이기술. Vol 7. No.2. 1975. pp 77 ∼81.
16) 전풍진 외 3인, 한지에 관한 연구. 펄프, 종이기술. Vol 7. No.1. 1975. pp 28∼43.
17) 송응성, 천공개물, 권중(卷中), 살청(殺靑), 제13권, 지료(紙料)·조죽지(造竹紙)·조피지 조(造皮紙條).
이규경, 지품변증설(紙品辨證說), 오주연문장선산고(상)(五洲衍文長箋散稿) 서울 동국문 화사. 1959, pp 563∼565.
서유구,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백이(百二) 이운지(怡雲志) 제4권 문방제하(文房製下) 왜지품조(倭紙品條).
18) 정태현, 한국식물도감 상권 목본부(木本部). 서울 교육사. 1972. p 121.
19)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 현지 답사에서
20) 김일제, 농정신편(農政新篇) 권지이(卷之二) 육부 이종(利種) 상(上) 저피조(箸皮條).
21) 홍만선, 산림경제(山林啬濟) 군지이(卷之二) 종저조(種箸條).
22) 현지 답사에서
23) 김석희, 전도논문(前搗論文) p 210.
24) 김일제, 전게서 저피조(箸皮條).
25) 이규경, 전게서. pp 563∼565.
26) 范曄, 후한서 권108 채류전(蔡倫傳).
27) 서경(徐競), 고려도경 제23권 잡속이(雜俗二), 토산조(土産條).
28) ?륭(?隆), 고반여중(高槃餘中), 지전(紙箋), 고려지조(高麗紙造).
29) 세조실록 권33, 10년 갑신 5월 갑술조.
30) 세종실록 권65, 16년 갑인 7월 병진조.
31) 성종실록 권51, 6년 을미 정월 이사조.
32) 중종실록 권95, 36년 신축 6월 경진조.
33) 색경보집(穡啬普集) 권64 조북지법조.
34) 서유구, 전게서 왜지품조(倭紙品條).
35) 송응성, 전게서 지료조(紙料條).
36) 이풍재, 경업계 제지 소식 대한학회월보 제4호. 1908. pp 282∼256.
37) 제홍규, 한지사소고(韓紙史小考) 도서감(宜書鑑) 국립중앙도서관. 1973. p 179.
38) 정태현, 전게서 초목부(草木部). p 399.
39) 현지 답사에서
40) 김창극, 전게논문(前揭論文). pp 15∼16.
41) 온두현, 전게논문. pp 61∼63.
42) 김창식, 전게논문. p 5.
43) 안전방예, 전게논문. pp 3∼4
44) 이규경, 전게서. p 563.
45) 서유구, 전게서 왜지품조.
46) 서유구, 전게서 왜지품조.
47) 성종실록 권37, 4년 12월 갑신조.
48) 서유구, 전게서 왜지품조.
49) 송응성, 전게서 조피지조(造皮紙條).
50) 성종실록 권51, 6년 정월 기사조.
51) 세조실록 권10, 3년 12월 임인조.
52) 세종실록 지리지 경기 궐공조(厥貢條)
53) 안전방예, 전게논문.
54) 이풍재, 전게논문.
55) 안전방예, 전게논문.
56) 서유구, 전게서 왜지품조.
57) 안전방예, 전게논문.
58) 이풍재, 전게논문.
59) 이풍재, 전게논문.
60) 이규경, 전게서.
61) Dard Hunter, 전게서.
62) 성종실록 권51, 6년 을미 정월 기사조.
63) KSM 7021 종이 및 판지의 두께와 밀도의 시험방법.
64) KSM 7013 종이 및 판지의 평량측정방법
65) KSM 7014 종이 및 판지의 인장강도 시험방법.
66) KSM 7016 종이 및 판지의 인열강도 시험방법.
67) KSM 7017 종이 및 판지의 파열강도 시험방법.
68) KSM 7026 종이 및 Pulp의 백색도 시험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