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프로그램

한국시의 가곡화에 대한 분석




이장직 / 음악평론가

① 한국가곡의 현재상황

요한 복음의 첫 부분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쓸 수 있을 것이다. "태초에 말이 있느니라, 이 말이 노래와 함께 있었으니 이 말은 곧 노래이니라. 그것이 태초에 노래와 함께 있었고 노래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느니라. "

음악의 맨 처음 모습이 어떠했을까 하는 의문은 음악에 대한 역사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는 문제이다. 음악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많은 가설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언어와 음악의 관계에서 출발하는 <언어기원설>은, 초기의 음악형태는 언어와 음악의 미분화 상태였으며 따라서 언어의 음악성, 음악의 언어성이 강하게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음의 높낮이로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성조언어(tonal language)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나, 초기의 음악이 춤·의·식·축제와 결합된 것이었으며, 예술적·미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성의 확인 수단이었기 때문에 음악 자체보다는 음악외적인 의미 발생이 더 중요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음악의 언어기원설을 뒷받침해 준다. 특히 성악음악의 발생은 언어와의 관계를 빼놓고는 설명될 수 없다.

서양음악의 역사는 줄곧 음악외적인 의미에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겪어왔다. 성악의 경우를 보면, 자연스러운 가사낭독의 리듬이 음악의 리듬을 지배하던 상태에서, 시의 리듬이 차츰 배제되고 그 대신 독자적인 음악의 리듬이 사용되었다. 르네상스와 더불어 서양문화는 세속화경향을 거친다. 이와 함께 성악음악은 기악음악에 음악적 주도권을 내어 주고 말았다. 이는 음악이 가사에서 해방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성악 음악은 그 가사가 지니는 함축 때문에 그것이 종교음악이든 행사용 음악이든 음악외적인 영역으로부터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다. 반면에 기악음악은 그 소재가 지니는 추상성 때문에 다소 현실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이 <거리>는 바로 미적 자율성의 획득이다. 무엇보다도 기악음악을 꽃피운 것은 고전주의 시대였다. 소나타·현악4중주·실내악·교향곡 등의 기악 양식이 고전주의 음악을 이끌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와서 음악과 언어와의 관계는 예술가곡과 오페라 양식에서 다시 회복된다. 기악곡 위주의 양식에서 성악곡이 중요시되는 양식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마지막 악장에서 예견된다. 슈베르트·슈만·브람스·볼프 등의 예술가곡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핵심을 이루었다.

우리 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에서의 최초의 <서양식 노래>가 나타난 것은 찬송가의 수입부터이다. 음악적으로는 서양적인 것이었지만 가사를 우리말로 옮겨 부름으로써 문화적 충격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선율도 주로 5음 음계로 된 노래를 즐겨 부름으로써 문화 절충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찬송가가 기독교적 신앙이나 교리를 담은 것이라면, 이와 함께 보급된 창가는 사회 계몽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개화기 초기의 음악이 종교·교육제도와 긴밀한 관련성을 유지했다는 사실로, 가사를 내포하고 있는 성악음악이 당시의 음악문화를 지배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아직 노래에서 "개인적인 정서와 감성을 노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음악의 예술성이나 전문성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민경찬)

한국 가곡의 전신이랄 수 있는 찬송가와 창가는 당시 아직 미분화 상태에 놓여 있던 대중가요와 함께 상당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예술음악과 대중음악 사이의 격차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즉 창가에서 예술가곡과 대중가요가 갈라져 나온 것이다. 성악을 전공한 윤심덕이 대중가요를 레코딩하여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도 바로 이 때의 일이다. 당시 초기 형태의 가곡과 대중가요가 가라지는 대목은 음악적인 차이라기보다는 경제적·교육적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계층의 구분에 있었다. 당시 예술가곡과 대중가요의 영역이 다소 겹쳐져 있었음은, 홍난파가 <봉선화>에서 시작하여 가곡을 작곡하는 한편 대중가요도 몇 편 작곡하여 예명으로 발표한 사실에서도 암시 받을 수 있다.

1920년에 발표된 홍난파의 <봉선화>부터 시작하여 한국 가곡의 역사는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민경찬(1986)은 한국가곡사를 크게 10년 단위의 5단계로 나눈다. 즉 (1) <봉선화> 이후의 1920년대의 개척기 (2) 30년대의 서정가곡기 (3) 1940년대의 예술가곡기 (4) 1950년대의 과도기 (5) 1960년대 이후의 현대가곡기가 그것이다. 한편 그는 20년 단위로 한국가곡의 <세대>를 구분하기도 한다. (ⅰ) 1920년 이후의 제1세대 (ii) 1940년 이후의 제2세대 (iii) 1960년 이후의 제3세대가 그것이다(여기서의 <제3세대>는 작곡동인 그룹의 이름과는 다른 것이다). 제1세대는 창가에서 가곡양식으로의 발전을 이룩하여 한국가곡의 장르를 개척하였으며, 제2세대는 예술가곡을 청중들 사이에 정착시켰으며, 제3세대는 현대적 어법의 가곡을 창작했다는 점에서 각각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분은 그리 엄격한 것은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한국의 예술음악 장르 중에서 비교적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가곡에 사용된 시들을 작가별·내용별로 분석함으로써, 한국가곡에 대한 성격의 규명과 아울러 그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데에 있다. 이 글에서의 통계자료에는 기존의 것에 필자가 다소 수정을 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기존의 통계자료가 만들어진 이후에 출판된 몇 권의 가곡집에 수록된 노래들 때문에 통계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② 작사자·가곡수·작곡자 현황 분석

좋은 가곡은 훌륭한 시인과 작곡가가 만나서 이루어진다. 한국가곡에 있어서 작곡자가 시를 선택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우선 시의 내용이 작곡가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생소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 다음의 문제는 형식적 요인, 즉 음수율이나 시의 길이에 있다. 대체로 한국가곡은 일정한 음수율이 있는 정형시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 준다. 이것은 가곡화하는 과정에서의 손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틀을 유지할 수 있고, 유절 가곡화하여 짧은 오선지 내에 긴 가사를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형시가 아닌 경우 그것을 가곡화하려면 보통 음악의 규범적인 박절구조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많은 음절을 일정한 박자에 담기 위해서 짧은 음표, 가령 예를 들면 16분 음표를 동시에 많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가곡에 들어오면서 곡 중간에 박자 바꾸는 기법이 보편화되지만, 초기에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초기의 가곡은 대부분이 정형시를 가사로 사용하고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아래의 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소월의 시가 한국가곡 전체의 1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시가 갖는 7·5조의 음수율은 4마디를 기본단위로 하는 가요형식(song form)의 한 악구와 대응된다. 가령 그의 시 <옛 이야기>를 보면 우선 낭독에서부터 리듬을 감지할 수 있다. (서우석 1981. p.38참조)

고요하고 어두운 밤이 오면은

♪♪♪♪ ♪♪♩ ♪♪ ♪♪♩

소월의 시가 한국가곡에서 최고의 빈도로 나타나는 것에는 음수율 외에도 그의 시가 갖는 내용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곡이란 원래가 낭만주의의 산물이었다. 음악과 문학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가곡은 낭만주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준다. 소월 시가 갖는 낭만주의·자연주의·향토색은 가곡 작곡가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표1에서 굳이 <작사자>라는 표현을 쓴 것은, 가곡에 사용된 가사에는 기존의 시외에도 고시조나 자작시, 성경 등에서 따온 종교적 내용의 가사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비고란에 ☆표를 한 것은 한 시인이 쓴 여러 편의 시를 단 한 사람의 작곡가가 가곡화한 경우를 나타낸다. 이에 반해서 같은 시를 여러 명의 작곡가가 가곡화한 경우도 많이 있다.



③ 가곡별 작곡빈도 현황

앞에서도 말했듯이 소월의 시가 작곡빈도가 가장 높다. 그러면 작곡가별이 아니라 시 작품별로 빈도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기서 소월의 시중에서도 <진달래꽃>과 <가는 길>이 각각 10곡으로 가장 높다. <진달래꽃>은 소월의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작곡가들의 관심이 되었을 것이다. 소월의 시 못지 않게 높은 빈도를 보이고 있는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한국의 시문학사에 있어서 최초의 순수 서정시로 알려지고 있다. 이 작품은 소월의 시와는 다른 운율성을 보여 준다. 서우석(1981)은 그의 시에서 나타나는 리듬에 대하여 "전통 운율의 변주 효과"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다음의 표2는 2곡이상 가곡화된 시의 목록이다.



④ 한국가곡의 박자별 통계

한국가곡의 박자를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가사의 분위기, 가사의 음률, 작곡자 개인적인 취향을 들 수 있다. 가령 민요풍의 가사에는 전통음악의 장단을 적용시키기 쉬운 6/8박자나 9/8박자가 많이 사용된다. 타령조나 뱃노래를 내용으로 하는 가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대로 오면서 변박자(한 곡 내에서 수시로 박자가 바뀌는 것)나 무박자(처음부터 박자 표시가 없는 것)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무박자의 예를 든다면, 천상병 시에 백병동이 곡을 붙인 <哭申東曄>(1973), 강은교의 시에 이연국이 곡을 붙인 <풀잎>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곡들이 아직 4/4, 3/4, 6/8 등의 규범적인 박자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음은 한국가곡의 전반적인 비실험성을 보여준다. 아래의 표는 519곡에서 박자의 빈도를 조사한 것이다. (519곡이 한국가곡의 전부는 아니지만 큰 맥락에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표3에서 '혼합박자'라 함은 3+2/4와 같이 3/4박자와 2/4박자가 번갈아 가면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은 4분의 5박자와도 다른 것이다.

소월의 시가 가곡화된 것을 살펴보면 4분의 2박자가 3곡, 4분의 4박자가 22곡, 4분의 3박자가 15곡, 8분의 6박자가 18곡, 8분의 9박자가 2곡, 4분의 5박자가 1곡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불규칙 박자(5/4)를 제외하면, 3/4박자와 9/8박자, 6/8박자를 합친 것이 35곡으로 2/4박자와 4/4박자를 합친 25곡보다 10곡이 많다. 위의 표에서도 4/4와 2/4를 합친 것은 212곡, 3/4, 6/8, 9/8을 합친 것은 269곡으로 3박자 계통의 곡이 훨씬 많다.

박자

가곡수

백분율(%)

4분의4

4분의3

8분의6

4분의2

8분의9

4분의5

무박자

4분의6

8분의3

혼합박자

8분의12

2분의12

8분의10

179

134

121

33

12

8

7

7

6

6

3

2

1

34.4

25.5

23.4

6.4

2.2

1.7

1.4

1.4

1.2

1.2

0.6

0.4

0.2

합계

519

100


⑤ 한국가곡의 가사내용별 분류

한국가곡에 사용된 시의 제목을 살펴보면 자연과 전원풍경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소월의 시는 자연과 그리움을 주제로 한 것이 가장 많다. 이것은 한국가곡이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서정성·낭만성에도 기인하지만 어떻게 보면 결코 건강하지 않는 감상성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서정성과 낭만성을 특징으로 하는 가곡의 내용은 1930년대 가곡에서 시작된다. 당시의 가곡은 일제 강점기 동안의 민족적 고통을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함으로써 달래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나 한국가곡 전체에 끼친 부정적 측면 또한 없지 않다. 즉 이때부터 한국가곡에 <한>, <비감>, <애상감>(민경찬 1986)이 주요한 정서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한국가곡하면 으례이 감상적인 분위기의 곡으로 알고 있는 감상병의 뿌리도 30년대 작품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단지 시대적인 정서일 뿐이지 우리의 민족적인 정서를 대변될 수 없다. 지나친 서정성의 강조와 자기감정의 억제할 수 없음은 그 당시 시대상 때문이지만 결국 예술가의 성숙성의 관점에서 볼 때 작가의 미숙성에 기인한다. 이러한 분위기의 곡은 애상감·비감 등의 정서에 빠져있는 상태를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소월의 시라고 해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당시의 시를 가곡화하는 것, 이면에는 고답적이고 보수적인 음악관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령 지금 당시의 주제들을 가곡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고향>이나 <농촌>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향은 일종의 환상이기 쉽다.

저멀리 보이는 그리운 내고향

아지랭이 먼산에 끼고

어릴 때 불던 봄피리 소리가

시냇가에 정다웁게 들리네

- 김형주 <고향>

<농촌>풍경도 마찬가지이다. 길·강·산·가을·낙엽·새·나그네·달·봄·하늘·추억·그리움을 노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이 모두 이렇게 <아름다운>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이들 시가 아프고 괴로운 현실을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란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한국시가 모두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을 리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가곡작곡가들이 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의존하는 그들의 인생관·음악관이며, 또한 한국가곡이 갖는 전체적인 소극성이다.

뒤의 <표4>에서 알 수 있듯이 꽃·그리움·전원·고향 등의 순으로 내용의 빈도가 나타난다. 자세한 구분을 하지 않고 크게 보면 자연을 노래한 것이 261곡.

즐기는 대중적 낭만주의와 함께 뒤늦게 한국에 소개된 낭만주의 음악가들의 정당화로 문화지체 현상을 낳았다. 오늘날 가곡이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 이유 등의 하나가 민족정서를 잘못 오인하고 있는 감상병에 연유하기도 한다. (민경찬 , 1985)

당시의 감상병, 건강하지 못한 낭만주의는 뒤에 이어지는 한국가곡사 뿐만 아니라 음악을 보는 시각마저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즉 음악이란 현실에 초월해 있고, 먼 나라의 이야기, 구름이나 꿈·별·달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때 나타난 감상병은 1930년대에 국한되지 않고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들도 대부분은 그들의 작품의 가사를 1930년대의 시에서 빌어오고 있다. 물론 지금 소월의 시를 가곡화하는 것이 65퍼센트에 해당되며, 그 다음으로 이별·그리움·고독·추억·꿈 등의 개인감정을 노래한 것이 16퍼센트에 해당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아 인간의 참모습이 숨어 버리고 투명한 자연과 비극적 정서·현실 도피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민족의 역사에서 주제를 가져온 것이 4곡에 불과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실의식 외에도 역사의식도 결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비단 가곡장르에만 국한될 문제는 아니다. 우리 나라 음악의 전반적 차원에서 반성되어야 할 대목들이다.

한국가곡이라고 해서 모두가 은둔적·현실도피적·자연적 정조를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이후의 <현대가곡기>에 접어들면서 모더니즘과 민족정서를 결합시키는 시도가 전개되면서부터 점차 서정시 위주의 경향에서 탈피하기 시작한다. 주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해하는 것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에서의 소외된 인간의 모습·현실적 이미지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식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시를 가곡화하기 시작했다. 예를 모두 들 수 없지만, 백병동의 <鎭魂歌>(千祥炳시), <어둠과 시간과>(이종학 시), <불다페스트에서의 少女의 죽음>(金春洙 시), <貧弱한 올페의 回想>(崔夏林 시), 서우석의 <먼 곳에서부터> (申東曄시) 등은 새로운 시도들에 속한다. 앞으로 이러한 시도들은 지속성을 띠고 전개되어 종전의 한국가곡에서 결여되었던 성격, 즉 서사성과 사실성을 되찾는 데에 자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제

시의종류

주제

시의종류

그리움

전원

사랑

고향

식물

자장가

가을. 낙엽

역사

41

33

31

24

21

20

19

16

16

15

15

14

4

4

4

13

죽음

바닷가

절. 불교

추억

고독. 나그네

이별

바람

뱃노래

구름

하늘

기도

12

12

11

11

11

10

8

6

6

5

5

4

21

기타

21

합계

399

<표-4>


주제

가곡수

순위

주제

가곡수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그리움

전원

사랑

고향

식물

자장가

고독. 나그네

74

67

39

32

28

26

22

21

20

20

18

17

16

15

15

15

17

18

19

20

20

22

23

23

23

23

절. 불교

가을. 낙엽

추억

이별

바람

뱃노래

하늘

구름

기도

역사

14

14

12

8

7

6

6

5

4

4

4

4


기타

22


합계

525

<표-5>

위의 표는 가곡화된 시의 총 개수를 계산한 것이 아니라 시의 가지수를 도표화한 것이다. 가곡수를 기준으로 빈도를 조사하면 다음 <표5>를 만들 수 있다.

위의 <표5>도 <표4>와 거의 비슷한 순서로 그 주제의 빈도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빈도가 높은 주제와 낮은 주제 사이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이 더 명확해졌을 따름이다. 뒤에서도 언급되겠지만 한국가곡의 이러한 내용적 특성은 음악을 삶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역기능을 수행해 왔으며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찬사만을 강조하여 세계를 미화하는 부정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⑥ 시의 가곡화 과정에 대한 분석

우리는 앞에서 개화기 이후 한국가곡에 포함된 시문학 작품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 보았다. 가사로 사용된 시에 대한 문학적인 검토는 이 글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고 필자의 능력도 거기에 미치지 않는다. 다만 제목에서 피상적으로 알 수 있는 주제들을 유형별로 나누고, 가곡화된 상태에서 사용된 음악적 리듬(박자)을 분류하며, 작가별·작품별 빈도수를 조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가 단순히 실증적 자료의 나열이 아님은 여기에서 한국가곡이 반성해야 할 측면들, 나아가서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 채워져야 할 부분들을 암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에서의 분석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 한국가곡은 자유시보다는 정형시를 가사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노래형식이라는 규범적인 틀 - 가령 2부분 형식이나 3부분 형식, 다 카포 형식 등-에 가사를 맞추어 넣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형시를 가곡화함으로써 얻는 손쉬움은, 곡 전체를 하나의 박자 - 가령 4/4또는 3/4…-로 계속 진행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형시는 일정한 음수율에 의해 구성된 언어의 구조물이기 때문에, 가사 자체의 내적인 리듬 - 낭독과정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리듬 - 과 음악적 리듬을 비교적 쉽게 일치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서 자유시는 액센트의 위치나 싯구의 길이가 불규칙적이어서 리듬 패턴이나 박자에 의해 지속시키기가 어렵다. 따라서 처음부터 애창곡의 범주에서 출발했던 한국가곡의 이러한 <어려움>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유시가 가곡화되는 빈도가 낮은 것은 작곡가 입장에서 시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진다. 이와 더불어 비정형시를 수용할 만한 음악적 기법의 미성숙함을 여기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2) 한국가곡의 박자 구조상으로 2·4박자 계통보다 3/4·6/8·9/8박자 등의 3박자 계통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6/8박자를 굳이 3박자 계통에 포함시킨 것은, 한국가곡에서의 6/8박자는 서양음악에서의 그것과는 달리 2박자적 속성보다는 그 하부구조인 3박자적 속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령조의 노래나 뱃노래, 민요풍의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엔 보통 이 3박자 계통의 박자들이 많이 사용된다. 이것은 전통 국악에서의 장단과 서양음악에서의 규범적 박자사이에서 찾아지는 문화적 절충주의이다. 그러므로 한국가곡에서 6/8이나 9/8를 사용하는 방법은 서양음악에서의 실제와 다르며, 그렇다고 해서 그 리듬이 국악의 장단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가곡 작곡가들은 이러한 박자와 리듬의 사용을 통하여 가사에서 느낄 수 있는 향토적 서정성을 실현화하려고 했던 것 같다.

(3) 한국가곡은 그 주제나 내용 면에서 서사적·사실적인 것보다는 서정성이 짙은 것을 위주로 하고 있다. 앞의 도표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인간이나 사회·역사에서 보다 자연에서, 그것도 신비화되고 인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왜곡된 자연에서 소재나 주제를 택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인간감정을 노래한 것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사랑, 그리움, 이별 등의 비극적·감성적인 면만을 강조한 것이기 쉽다.

한국가곡이 역사성·사실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곡이 원래 낭만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위로 받을 수 있긴 하지만 그것이 음악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통념, 즉 음악이란 현실에 무관하며, 또 문관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 영향을 감안한다면 가볍게 보아 넘길 것은 아니다. 범위를 좁게 한정시키더라도 지금의 대부분의 가곡 작곡가들이 보여주는 고답적 태도에서 1930년대에 시작된 <가곡의 낭만주의>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때, 사실성의 결여는 깊이 반성되어야 할 점이다.

(4)한국가곡은 그 주제나 내용 면에서뿐만 아니라 가사의 선택대상이 되는 시인이나 시의 폭에 있어서 너무 좁은 느낌을 준다. 잘 만들어진 시에 자신이 곡을 붙여서 그 노래가 널리 애창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가곡 작곡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이 특정의 시인이나 시작품이 수많은 노래로 가곡화되고 있는 <기현상>을 모두 설명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작곡자가 가사를 선택하는 번거로움을, 이미 가곡화된 유명 작가의 시를 손쉽게 선택함으로써 덜어보려는 안이한 태도가 아닌가 하고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를 찾아내어 그것을 가곡화하는 과정은 작곡자에게 많은 번거로움뿐만 아니라 고통을 안겨 준다. 그 고통은 새로운 시를 발굴하여 가곡으로 남기는 일을 생각한다면, 참아낼 수 있는 값진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많은 시인들이 자신이 작품이 가곡화되어 음악작품으로도 남게 되길 기대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기현상>은 시문학에 대한 작곡자의 이해가 아직 세대적 요구에 못 미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곡이 문학과 음악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종합예술임을 생각할 때 가곡화 과정에서 시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의 리듬과 음악적 리듬의 불일치, 가사의 액센트와 음악적 액센트 사이의 부조화, 다시 말해서 선율·리듬과 가사와의 부적응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⑦ 한국가곡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제언

끝으로 앞에서 살펴 본 한국가곡의 현재상황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하여 앞으로의 발전적 시도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한국에 있어서 가곡의 장르는 많은 한계성과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대중성 확보라는 점에서는 평가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대중음악과 현대의 예술음악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장르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가을맞이 가곡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대규모 연주회장의 무대 위에 올려지는 가곡들은 <대중적인 예술음악>이라는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대중성의 확보라는 이유 때문에 공통관습 시대의 음악어법을 답습하는 서정가곡의 단계에서 그대로 머물 수는 없다. 양식적 변혁과 내용적 재검토가 수반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변혁과정과 대중성의 확보는 서로 용납될 수 없는 패러독스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대중성 확보를 희생하면서 공통관습시대의 음악 양식에서 탈피하여 서구의 모더니즘을 가곡 장르에 받아들인 작곡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재 월북 작곡가로 그들의 작품이 출판되거나 연주되지 않지만 1940년대에 이미 러시아 국민악파의 영향으로 무조음악으로 리얼리즘적 입장을 취한 이건우·김순남이 있었다.

기존의 서정가곡이 폭넓은 대중성을 획득한 반면에 지나친 감상성에 치우쳐 있고 역사성·사실성을 결여했다면, 1960년대 이후 동시대적 음악어법에 의한 신작 가곡들은 시의 선택 면에서나 내용·기법 면에서 모두 높이 살만 하지만 청중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낸다. 현대적 음악어법으로 작곡된 가곡을 기피하는 것은 청중뿐만 아니다. 성악가들이 서정가곡을 현대가곡에 비해 선호하는 것은, 마치 교향악단이나 기악 연주자들이 고전·낭만주의 작품을 현대음악보다 선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러므로 한국가곡의 앞으로의 과제는 청중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면서도 동시대적 기준에 가까이 가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이 <동시대적 기준>은 최신의 전위적 음악기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다. 한국가곡이 회복해야 할 것이 양식적 변혁 외에도 내용적 반성, 즉 서사성·사실성의 획득에 있음을 생각할 때 이 과제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한국가곡이 부담 없는 가사와 선율의 아름다움 때문에 인기를 얻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최근 잘 알려진 가곡이 가사는 빠지고 반주부와 선율만 관현악으로 편곡되어 마치 배경음악처럼 연주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미 <가곡>이 아니다. 한국가곡이 지향해야 할 것은 가사를 빼면 음악이 의미가 없어지는, 시와 음악의 최선의 결합상태이다. 그 노래를 통해서 - 그것이 연주이든 감상이든 간에 - 우리의 건강한 삶과 정서를 담아내고 표현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