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그 형식의 변화를 보며
서우석 / 음악평론가·서울대교수
최근 들어 음악회들은 전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일반적 특징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온 현상인 음악회 표를 적극적으로 판매하려는 경향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초대권으로 객석을 채우려는 음악회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은 음악회 자체의 경영을 매니저에게 맡기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최근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명성이 알려진 중견 음악가들의 독주회 시리즈가 좋은 예일 것이다.
이와 같은 일반적 특징에 더해 나타나는 다른 하나의 특징은 야외 연주회의 잦은 시도라고 할 것이다. 야외 연주가 가능한 하절기에 접어들면서, 공원이나 고궁에서 열리는 양대 교향악단의 연주회는 연례 행사로 굳어져가는 감이 있다. 연주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야외 연주를 좋아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야외 연주는 소리를 모이게 할 반향판이 없기 때문에 소리가 산만하게 흩어져 좋은 연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일반 청중, 특히 청소년들에게 야외 연주는 아주 매력적인 것이다. 지정된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있어야 되는 구속감에서 벗어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매력이 된다. 이와 같은 청중의 호응에서 힘입은 야외 연주회의 유행은 한국방송 공사의 국악관현악단으로 하여금 지난 6월말 공군사관학교 자리에 조성된 보라매공원에서 야외연주회를 갖게끔 유도하였다. 이는 대단히 바람직한 일로서 조선조의 궁중의 음악과 선비의 음악을 이들에게 소개한다는 중요한 뜻을 갖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야외 음악회는 점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의할 일은 야외연주는 야외연주에 맞는 곡목을 골라야 한다는 점이다. 교향악단 연주의 경우 지나치게 무겁거나 섬세한 곡의 연주는 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국악관현악단의 경우 새로이 작곡된 서투른 곡들을 야외 연주회에서 시도하는 일은 그 전체적 효과를 반감시킬 위험을 갖는다. 야외 연주나 실내 연주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태도하에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일은 금물이다.
야외 연주회의 시도가 음악의 전달방식의 형식을 바꾼다는 뜻을 지니는 점에서 보자면 최근 음악회에서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인 음악회 내용의 변화 역시 서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하겠다. 음악회의 내용에 변화를 가해 보자는 노력은 우리의 청중이나 음악인들이 기존의 음악에 식상하고 있다는 점은 현대 사회가 음악회를 제외하고도 음악전달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음악회에 내용에 천편일률을 느끼는 것은 그 음악의 내용을 우리가 다 수용하여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 때문이 아니라 그런 음악은 음반을 통해 보다 진지하고 조용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음악회에서는 좀더 새로운 무엇을 기대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작품과 나와의 고립된 만남은 음반을 통해 가능하므로 이제는 작품과 청중과 나와의 만남이라는 인간적 모임을 충족시켜주는 음악이 필요하다는 욕구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호암아트홀에서 올 봄 재차 발표된 최동선의, <작품발표회>는 연극적 몸짓과 음악을 섞은 것으로서 그것의 작품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것이 아니라 음악회라는 형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섬세히 느낀 새로운 감각을 평가해야 될 발표회였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이제 음악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공통의 느낌을 갖기를 원하고 그 공통의 느낌을 작품이 매개해 주어야 한다고 바라게 된 것이다. 이 공감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축제적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음악회를 축제적 본질로 유도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분석은 후일로 미루고 여기서 우리는 지난 두어 달 동안 있었던 몇 가지 특징적 음악회를 지적하기로 하자. 이 음악회들은 그 명칭으로서 이내 성격들이 드러나는 바인 것이다.
6월 11일 호암아트홀. 박윤관 클래식 기타연주회.
6월 16일 세종 소강당. 한국성악 아카데미 신인음악회.
6월 19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 하버드 대학 합창단 공연.
6월 25일 세종 대강당. 한·중·일 예술가곡의 밤.
7월 6일 세종 대강당. 미국 청소년 뮤지컬 그룹 연주 및 합창.
7월 7일 세종 대강당. 러브 두엣 콘서트.
7월 13일 세종 대강당. 롱아일랜드 유스오케스트라 초청공연.
7월 14일 국립 대극장. 롱아일랜드 유스오케스타라 팝스 콘스트.
7월 19일 세종 대극장. 파리 소년합창단 초청공연.
7월 19일 세종 소강당. 서울 시립소년소녀 합창단 발표회.
위에 지적한 음악회는 주로 실내 음악회들이다. 이 외에는 청소년을 위한 많은 음악회가 TV방송을 위한 고궁에서의 연주, 자선 음악회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매체가 일반화된 20세기의 한국에서 서구의 문화가 구축해 놓은 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대형 실내 건물에서의 음악회라는 형식이 어떻게 존속할 것인가. 또 그 존속을 위해 어떤 형식적 변천을 겪을 것인가. 이 음악회라는 형식은 결국 전자 매체에 의해 밀려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다.
다음에 우리가 음악회가 현대 사회에서 존속하는 유일한 길은 상업적 궤도에 오르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러한 전제하에 음악회는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변수가 있다. 첫째는 음악회의 내용을 변경시켜 구매력을 돋구는 일과 둘째는 소비자의 성향을 자극시켜 연극자들이 공급하고 싶은 질 높은 음악을 소비하게끔 소비를 창출하는 일이다. 이 들은 이미 유럽의 음악계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쨌건 음악회라는 전달 형식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조짐 속에서도 나는 지난 6월 16일 <이혜경 피아노독주회> 호암아트홀에 늦게 도착하여 그 후반부의 연주인 슈만의 토카타와 아베그 변주곡과 유모레스크를 들으며 이 놀라운 피아니스트의 음악에서 음악회의 가장 보수적인 형태인 리싸이클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음악의 전달 형식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