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통명농요
이보형 / 문화재전문위원
1. 내는 말
우리 문화가 빚어낸 노래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 가지 수로 따진다면 민요만큼 많은 분야가 없다. 더구나 민요는 골골마다 노랫말이 다르고 노랫가락이 달라서 그 가지 수를 일일이 누가 감히 헤 알릴 수 있으랴? 그렇게 많은 민요들이 우수수 가을 잎지듯 목숨이 떨어져, 지금은 민요를 제대로 전승시키고 있는 고장이 가뭄에 콩 나기와 같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어느 시도나 민요분야를 출연시키기로 되어 있으나 해마다 민요를 들고 나와 겨루는 곳을 꼽아 보면 서넛을 넘지 못하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일이다. 지금이라도 힘들여 살살이 찾아보면 그래도 숨겨진 민요들을 찾아낼 수 있지만 끊어진 우리 문화의 가락들을 하나라도 챙겨 살려 보자는 이가 많지 않으니 탈이다. 지방을 돌아보면 그 동안 끊어져 가는 민요들을 붙잡아 전승의 길을 연 갸륵한 이들이 더러 있다. 이런 이들의 힘으로 그 고장 민요가 발굴되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상을 타게 되고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되면 그때에야 너도나도 다투어 보도하고 여기저기 출연시키고 하여 부산을 떨지만 정작 그런 민요들이 어떤 피나는 노력으로 발굴되고 애써 전승시키고 있는가 하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캐내는 이가 드무니 안타깝다. 이런 장한 이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들을 캐내어 세상에 알림으로 해서 이들의 힘겨운 일에 용기를 북돋우고 아울러 다른 고장에도 이런 장한 일을 하는 이가 나오도록 부추기는 일이 더 없이 중요하고 시급하다.
1985년 현재,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민요분야를 들고 나와 상을 탄 것을 추려 보면 대통령상에 5종, 국무총리 상에 6종, 문화공보부장관상에 14종이 되고 그밖에 자잘한 상을 탔거나 한 것들까지 꼽아 보면 꽤 되지만 이것들이 그 뒤 전승이 끊어져가고 있다는 것에 마음을 쓰고 애석해 하는 이가 드무니 그게 탈이다. 애써 목숨을 건져 놓고도 다시 팽개쳐버리고 말아 목숨이 끊어진 종목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뜻에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수상한 종목들을 두루 살피어 보는 것은 참으로 뜻있는 일이라 하겠다. 민요분야에서 수상한 종목이 꽤나 많으나 우선 예천통명농요를 다루었다. 예천통명농요는 1979년에 제2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2. 예천통명농요 연혁
예천통명농요라는 말은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통명동에 전승되는 농요라는 뜻이다.
경상북도 예천고을은 이 고장 사람들이 심지가 굳기로 세상에 이름이 났지만, 통명동이야 조그만한 마을이니 세상에 이름이 날리 없다. 그런데 농요 덕분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니 어찌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은 민요 덕을 크게 보는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이렇게 된 것은 이 마을 사람들이 민요를 버리지 않고 가꾸어 온 현명함에 있으니 우리가 뚫어보아야 할 것은 마을 사람들의 현명한 마음가짐이라 하겠다.
통명동은 예천 읍내에서 십리쯤 떨어진 곳이니 그리멀지 않다. 동남쪽으로 안동 가는 큰길에 접어들면 이내 통명동에 이르는데 알고 보니 한 마을이 아니고 느티기, 윤촌마을, 웃통명, 동쪽마을, 골마을, 함기골, 이렇게 여섯 마을 160여 호를 통틀어 통명동이라 한다고 했다. 옛날에 이곳에 驛이 있었다 하니 역과 그 이웃마을을 모두 통명동이라 일렀던 것 같다. 들이 넓어 쌀 농사를 풍성하게 짓고 있으니 여섯 마을에 두루 농요가 불려졌겠지만 지금 민요를 가꾸는 마을은 큰길 북쪽 마을이 아니고 남쪽마을이다.
국도에서 갈라져 남쪽으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전형적인 농촌마을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져 있고 마을 회관에 예천통명농요보존회 간판이 붙어 있고 창고에는 농기며 풍물이며 삿갓 등이 걸리어 있어 농요를 애써 전승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마을 농요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전래민요를 찾고자 애쓰는 숨은 일꾼의 힘이 크다. 학교 교사로 있는 강원희씨가 이 고장 민요를 찾아 이곳 저곳을 다니던 가운데 이 마을에 사는 함봉준 등 여러 노인들이 옛 민요를 잊지 않고 부르는 것을 알아냈다 한다. 이 마을 노인들이 실제 일을 하며 농요를 부른 것은 1950년대까지이었으니 20여년 간 놓아버린 것을 용케도 기억하고, 썩 잘 부르고 있는 것이 퍽 다행스러워 이것이 계명대학교 최정여 교수와 영남대학교 김택규 교수에 알려지고 드디어 1979년 제2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농요뿐만 아니라 농악도 전승되어 윤주만(남 75세) 노인 등이 풍장을 잘 꾸려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 마을 농요가 공연될 때마다 그 소박한 시골가락을 구수하게 쳐서 흥을 돋우고 있다. 또 이웃 마을에는 청단놀음이라는 탈놀이가 전승되어 1978년에 제2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이것을 들고 나와 문공부장관상을 받은 바 있다.
1979년 제2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할 때에는 이상후(남 54세)와 안광부(남 48세)가 선소리를 메기었다. 당시 이 마을에는 함봉준 등 민요를 아는 노인들이 있어 이들에게 소리를 익혀 출연하였던 것인데 소리도 좋거니와 40여명 마을 사람들이 풍장에 기막히게 손발을 잘 맞추어 공연한 탓에 최고상을 탔고 또 운좋게도 그 때가 경상북도 대구에서 경연이 벌어졌으니 텃바람도 톡톡히 탔다고 하겠다.
이 마을 민요가 대통령상을 타고나자 그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이듬해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시연팀으로 출연한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민속공연에 출연하였다. 1985년에는 중앙국립극장 주최 85전국대동놀이에 출연하였다. 1985년 11월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4호 농요로 지정되었고 李相烋(1933)와 李大鳳(1921)이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1984년에는 뿌리깊은 나무 팔도소리 음반에 취입되었고 한양대학교 권오성 교수의 해설과 전남대학교 백대웅 교수의 채보 악보가 이 음반 책자에 실리게 되었다.
1985년에는 이소라 문화재전문위원의 한국의 농요 제1집에 해설과 악보가 실리었다.
1986년 6월 22일에 서울놀이마당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처음으로 제17회 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 인간문화재대전, 마당놀이에 출연하여 공개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3.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공연
통명동에는 농사짓기 소리 외에도 장례 지내는 소리로 상여소리나 달구소리도 있고, 아낙네들이 삼삼으로 부르는 소리, 베 짜면서 부르는 소리, 아이 어르면서 부르는 소리, 시집살이 노래 등 여러 민요가 있지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할 때에는 모심을 때 부르는 「아부레이수나」, 모심고 나오면서 부르는「도움소」, 또 김매면서 부르는「에헤엥소리(애벌매기노래)」와 「상사듸여」, 그리고 김매기를 마치고 논에서 나오는 「에이용소리」, 논에서 마을로 들어오면서 부르는 「캥매쿵쿵」으로 짠 것이었다. 도리깨질소리로「봉헤야」가 있으나 이것은 경연대회에 나갈 때 끼우지 않았다.
예천통명농요가 제2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공연된 것은 1979년 10월 26일 오후 2시쯤이었다. 농기를 앞세우고 길굿 가락에 맞추어 농군들이 삿갓을 한 손에 들고 일제히 손 맞추어 휘젓고 들어오는데 농군들의 행진에 발맞추어 나가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반론을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도 고쳐지지 않고 금년 봄 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 시에도 그렇게 행진하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된 것은 이 공연을 연출했던 강원희씨가 고안한 것이라 한다. 경연대회에 출연하고자 연습할 때에 군청에서 나온 높은 양반들이 발맞추어 질서정연하게들고 나기를 바랬고 그래서 향토적인 춤사위로 발을 맞추다 보니 이와 같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내 굳어서 그 뒤 수차례 행해진 공연에서도 고쳐진 일이 없다. 그러나 실제 농군들이 논에 일 나갈 때 두레를 짜 풍장을 치고 나간다고 하여도 이렇게 발맞추어 나가는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풍장을 치며 예천통명농요기, 농기, 상쇄, 중쇠, 징, 북, 장고, 농감, 선소리꾼, 뒷소리꾼, 꼴두, 상머슴, 소몰이, 뒷소리꾼, 농군 모두 40여명이 삿갓을 휘젓고 춤추며 들어왔다. 예천통명농요기는 민속예술경연을 위해 만든 것이니 실제 농사에는 없는 것이다. 행진해 들어와 늘어서서 관중에게 절하고 삿갓과 호미를 땅에 놓고 일제히 모를 심는 시늉을 하며 모심기소리를 불렀다. 먼저 선소리꾼 이상후가 자유리듬에 메나리토리로 앞소리를 「아부레이 수나」하고 메기니 농군들이 다함께 모를 심는 시늉을 하며 뒷소리를 그대로 받았다. 선소리꾼 이상후는 역시 자유리듬에 같은 가락으로「어허어 어허」하고 한참을 입타령으로 질러내고 나서「한톨 종자 싹이 나서 만곱장이 열매 맺는 신기로운 이 농사는 하늘땅의 조화로다」하고 촘촘히 노랫말을 높은 소리로 질러내어 엮어나가다가 점점 가락을 숙이고서 다시「아부레이 수우나」하고 메기면 농군들은 모를 심으면서 다함께 아까와 같이 뒷소리를 받았다.
<앞소리> 아부레이 수나
<뒷소리> 아부레이 수나
<앞소리> 이어도 어이 에헤
한톨 종자 싹이 터서 만곱쟁이
열매 맺는 신기로운 이 농사는
하늘 땅에 조화로다.
아부레이 수나
<뒷소리> 아부레이 수나
<앞소리> 에헤 에헤
모야 모야 노랑 모야
니 언지 커서 열매가 맺힐래
이 달 크고 새 달 커서
칠팔월에 열매나 맺지에
아부레이 수나
<뒷소리> 아부레이 수나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공연시간이 20분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모심기는 5분 남짓 불러야 하므로 선소리꾼은 두서너 마디(節) 메기고 나서「에헤 요번 마딜랑 요래하고 훗번이 되면 도움소로 하야 보세」하고 다음 소리로 넘어 간다는 것을 알리면 농군들이 뒷소리를 받으면서 논둑으로 나가는 시늉을 한다. 실제 논에서 농사지을 제는 여러 시간 모를 심으므로 여러 마디를 메기고 받던 것이라 한다. 뒤에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뒷소리「아부레이 수나」라는 말을 어울린다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즉 경상도 방언에 어울리다라는 말을 어불린다고 하여 모심을 제 사람들이 모를 심으면 옆에 사람과 멀어졌다 좁혀졌다함을 뜻한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모내는 시늉이 끝나면 한 줄로 늘어서서 나오며 논두렁으로 나오는 시늉을 하는데, 이 때 도움소 소리를 부른다. 역시 이상후가 선소리꾼으로 중중모리 두 장단을 메나리토리가락에 얹어 메기면 여러 농군들이 역시 두 장단에「도움소 도움소 에헤이 도움소」하고 뒷소리를 받으며 논둑에 나오는 시늉을 한다.
<앞소리> 도움소 도움소 에헤이 도움소
<뒷소리> 도움소 도움소 에헤이 도움소
<앞소리> 도움소 소리가 나거들랑 에헤에 도움소
<뒷소리> 도움소 도움소 에헤이 도움소
<앞소리> 먼데 사람 듣기 좋게 에헤이 도움소
<뒷소리> 도움소 도움소 에헤이 도움소
<앞소리> 곁에 사람 보기 좋게 에헤이 도움소
<뒷소리> 오둠소 도움소 에헤이 도움소
뒷소리에서 나오는 「도움소」라는 말은 돕세, 즉 서로 돕자는 뜻이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농군들이 한 바퀴 돌 동안 선소리꾼은 여러 마디를 메기고 나서 다 돌았다 싶으면「이만하고 들고 가세」하고 메긴다. 농군들은 이 메기는 소리를 듣고 김맬 차비를 차렸다. 실제 농사지을 때에는 도움소 소리를 부르며 나와서 다른 논으로 가거나 마을에 들거나 하지, 곧바로 김매는 일은 없다 한다.
김매기 소리는 선소리꾼 안광부(남 현재 47세)가 메기었다. 김매기 소리에는 긴소리와 상사소리, 방아소리가 있는데 경연에서는 초벌에 에헤엥소리를, 두벌에 상사소리를 하는 것으로 꾸몄다. 초벌에는 비오는 것을 가상하여 삿갓을 쓰고 호미 들고 들어와 한 줄로 늘어서서 에헤엥 소리를 부른다. 아에헹 소리는 근래에 애벌소리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하나, 본디 이름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선소리꾼이 먼저 자유리듬으로 느리게「아에 헤엥 헤이」하고 입타령으로 메기면 농군들이 뒷소리를 자유리듬으로 「에헤 에헤이요 아에헤아 아에헤아에 어쩌구야」하고 입타령으로 받고 나서 「이후후」하고 소리를 지른다. 다음에는 선소리꾼도 입타령과 사설로 소리를 메기고 농군들도 입타령과 사설로 뒷소리를 받는데 사이사이에「붐붐붐」하고 입장구를 쳤다. 선율은 역시 메나리토리로 되었는데 메기고 받는 소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얽히어 매우 장중하게 소리를 이끌어 나간다.
<앞소리> 아에 헤엥 헤어
<뒷소리> 에헤 에헤이요
아에헤아 아에헤아에 어찌구야 이후후
<앞소리> 에헤 에헤 잘하신다 잘하신다.
우리 농부 잘하신다.
노도 잘 매고 노래도 참 잘하신데이
아엥 헤엥 헤에
<뒷소리> 에헤 에헤이요 아에이
이팔청춘 소년들아
이헤 아헤 어찌구야 이후후후
<앞소리> 에헤에헤 오늘날
이논배미 누구누구 모였는고
일등농군 다 모였구나
아에 헤엥 헤에
<뒷소리> 에헤 에헤이요
아에이 아에헤 아기 아찌구야 이후후
<앞소리> 에에 에헤
일년에 열두달 남의집 살아나서
달래바지 곰방중우
생짜증이 나네
아헤 에헤응아
<뒷소리> 허어에 헤어이요
아에이 저건너 심초시네 저방아 에헤
아차 깜짝 잊었구나
아에에 에
선소리꾼이 에헹소리가 얼만큼 되었다 싶으면「요번 마디는 요래하고 훗번 마디는 긴상사로 하여 보세」하고 긴상사로 넘어가자는 내용으로 소리를 메긴다. 실제 농사에서는 하루 종일 김매는 것이니 에헤엥소리가 길게 여러 마루 불리워졌다고 하겠다.
긴상사소리도 역시 선소리꾼 안광부가 메기었다. 농부들은 맞은편 언덕에 삿갓을 벗어 놓고 늘어서서 두벌 메는 시늉을 했다.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는 초벌에 에헹소리 몇 마루 메기고바로 두벌 긴상사소리로 넘어 갔지만 실제 농사지을 때에는 초벌 두벌 구별 없이 아침에 에헹소리를 부르고 해질녘에 긴상사소리를 했다고 말한다. 이 소리는 불규칙 장단으로 박이 일정하지 않으나 매우 느린 중중모리 골격을 지니고 있다. 선소리꾼이 두 장단 가량 되는 길이로 앞소리를 메나리토리가락에 얹어 메기면 여러 농군들이 김을 매며 뒷소리를 「에헤 아헤 오호 상사듸야」하고 받는다.
<앞소리> 에헤 아헤 오호 상사듸야
<뒷소리> 에헤 아헤 오호 상사듸야
<앞소리> 에헤 상사소리에 긴상사레이
<뒷소리> 에헤 아헤 오호 상사듸야
<앞소리> 에헤 상사소리가 나거들랑
<뒷소리> 에헤 아헤 오호 상사듸야
<앞소리> 올라가며 놀아보세
이렇게 소리를 몰아가며 흥을 돋운다. 경연에서는 에헤엥소리로 초벌 메는 시늉을 하였고 상사소리로 두벌 메는 소리를 했지만 실제 농사지을 때에는 이런 구분이 없이 아침에 에헤엥소리, 해질녘에 상사소리를 했다고 한다. 초벌 두벌 세벌에 소리가 같았으나 초벌에는 모가 너무 약하고 세벌에는 모가 너무 자랐기 때문에 두벌에 모가 알맞어 이것저것 장난하며 김매기도 하는데 소리를 하고 한창 신명이 나면 어떤 이는 일어나 춤추기도 하고 어떤 이는「지개돋음」이라 하여 옆으로 돌기도 하고 어떤 이는「오리삼신」이라 하여 우루루 흙탕물을 지우며 몰라 다니며「붐붐붐」하고 입장구를 치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 농군 가운데 노래 사설을 잘 아는 이를 꼴두(혹은 꼴띠)라고 하여 선소리꾼 곁에서 김을 매며 선소리꾼의 실수를 바로 잡아 주었다 한다. 이를테면 선소리꾼이 앞소리를 하다 사설을 잊게 되면 꼴 두가 즉석에서 때워주기도 하고 농군들의 뒷소리가 거의 끝날 무렵에 앞소리가 미리 나와야 하는데 이때 선소리꾼이 이것을 미리 내지 못하면 꼴뚜가 첫 내드름을 내어주고 선소리꾼이 꼴두소리를 이어 앞소리를 메기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농사에서는 아이는(애벌-초벌)김매기나 두벌 김매기에는 호미로 매되 한 사람이 일정 수의 골을 맡아 매지만 세벌에는 손으로 매는데 골수를 정하지 않고 옆사람 사이의 거리에 따라 골을 모두 매어 간다. 논의 양쪽을 매는 농군들은 골수를 적게 잡고 앞으로 나가고 가운데 맡은 농군은 골수를 많이 맡아 천천히 나가면 그 진형은 반달꼴이 되어 나간다. 양쪽 농군이 저편 두렁에 닿게 되고 안으로 굽어 매게 되면 마침내는 둥글게 둘러싸며 매게 되는데 이것은 고장마다 쌈싸기라고 하여 두루 있는 것이다. 이 때 예천 통명 마을에서는 방아소리를 부르는 것이나 경연대회에서는 시간 제약으로 이 소리를 빼버렸다.
방아소리른 중중모리 장단에 맞는다. 선소리꾼이 한 장단을 메나리토리가락에 얹어 부르면 농군들이 둘러싸며「어 허라 방애야」하고 부른다. 마침내 김매기를 마치면 일어서서 에히용소리를 부르며 나온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에히용소리도 역시 안광복이 앞소리를 메기었다. 이 소리는 굿거리나 볶는 타령장단에 맞는다. 선소리꾼이 반장단을 메나리토리가락에 얹어 부르면 농군들이 반장단을「에히요」하고 뒷소리로 받는다.
<앞소리> 에히용 <뒷소리> 에히용
<앞소리> 에이용 소리 <뒷소리> 에히용
<앞소리> 나거들랑 <뒷소리> 에히용
<앞소리> 한마딜랑 <뒷소리> 에히용
<앞소리> 노이하고 <뒷소리> 에히용
<앞소리> 또 한마디는 <뒷소리> 에히용
<앞소리> 수박담으로 <뒷소리> 에히용
<앞소리> 몽글몽글 <뒷소리> 에히용
이 소리는 비교적 빠른 장단이고 한 마디(音節)가 짧기 때문에 여러 마디를 메기었다. 모가 있는 둘레를 돌아 삿갓과 호미와 도롱이가 있는 곳까지 간다. 실제 농사지을 제는 방아소리를 부르며 나오는데 경연 때와 같이 줄지어 나오지 않고 제멋대로 허튼 걸음으로 순서 없이 나오며 쓰러진 벼도 세우고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고 하여 일을 마친 즐거움을 마음껏 터뜨린다고 통명마을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논매기를 마치면 「캥매쿵쿵」소리를 부르며 마을에 들어온다. 경연에서는 에히용소리를 부르면 삿갓 있는 곳까지 줄지어 갔다가 농군들은 삿갓을 오른손에, 도롱이와 호미를 왼손에 들고 늘어서고 앞에는 농기 풍물잽이가 서고 소물이꾼은 소에 상머슴을 태우고 따르며 농감 선소리꾼, 꼴두, 농군들이 줄지어 선다. 선소리꾼이「캥매쿵쿵」의 앞소리를 굿거리장단 한 장단에 메나리토리 가락으로 메기면 농군들은 역시 굿거리 한 장단에「캥매쿵쿵 노세」하고 뒷소리를 받으며 처음 들어 왔던 대로 삿갓을 휘젓고 춤추며 열지어 공연장 밖으로 나간다. 이 때 풍장꾼은 풍장을 치고 상머슴은 삿갓을 뒤집어쓰고 소등을 타고 춤을 춘다. 이것은 실제 농사지을 때 이른바 장원질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라 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실제 농사에서는 경연에서처럼 삿갓을 휘젓고 발맞추어 나가는 것은 없고 허튼 걸음으로 춤추고 들어 왔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와 농군들이 고삿을 누비며 기고만장하게 호기를 부리는 것이었으나 경연에서는 이것은 잘라냈다.
4. 예천통명농요의 특징
예천통명농요의 선율은 이른바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다. 민요나 무가와 같은 한국기층음악문화적 성격이 강한 노래들의 선율에서 메나리토리로 된 지역을 꼽아보면 함경도 서북부를 제외한 강원도, 경기도 동남부, 충청도 동부, 경상도, 전라도 동북부에 이르는 매우 넓은 지역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音樂言語는 다 같이 메나리토리로 되어 있다 할지라도 곡조를 보면 메니리토리 민요권 안에서도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갖는다.
농요로 좁혀 보면 더욱 절실하다. 모심기소리를 보면 경상도 남부에서는 정자소리라 하여 세마치 장단 8장단의 장절형식에 뒷소리가 없고 장절마다 안짝 밧짝으로 짝이 되어 곡조와 노랫말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경상북도 상주를 넘어 문경에 이르면서 한 장절에「아리」니「아라리」니「아라성」이니하는 뒷소리가 붙어 이른바 아리성이 되고 아리랑이 되고 있는데 모내기소리로 불리우는 아라리, 아라성, 아리랑은 새재를 넘어 충청북도 동북부, 경기도 서남부, 강원도 중남부에 두루 널려 있다. 그런데 상주 문경에 인접해 있는 예천통명농요의 모내기소리 아부리새나는 정자소리와도 다르고 아라리 소리와도 다르다. 뒷소리가 딸리는 점에서 정자소리와도 다르고 뒷소리 사설이 아라리가 아니고 아부리새나로 된 것이 아라리 소리와도 다르다. 노랫말을 보아도 정자나 아라리는 농촌의 소박한 인정들을 그리고 있으나 아부리새나는 모농사짓는 것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이것으로 봐서 예천통명농요의 모내기소리는 상주나 문경과도 다르고 안동지방과 같은 경상북도 동북부의 특징을 갖는다고 하겠다. 모심고 나오면서 부르는 도움소 소리도 충북이나 경남에 보이지 않는다.
예천통명농요에서 김매기소리는 에헤엥소리와 상사소리와 방아소리와 에헤용소리가 불리워진다. 에헤엥소리는 경남지역에 보이지 않으며 경북 동북지역에 보이는데 이것은 소리 토리는 다르지만 충청북도 김매기의 긴소리, 전라도 김매기의 긴소리와 통하는 점이 있다. 김매기의 처음에 부른다는 기능이 같고 메기고 받는 형식이 복잡하게 구성되고 노랫말에 농군들의 씩씩한 기상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서로 사무친다고 하겠다.
이 상사소리는 마디소리(章節歌謠)로 되어 있고 뒷소리 노랫말에「상사듸어」라는 말이 나오는 점에는 충청도 상사소리와 같다. 토리는 다르나 전라도 상사소리와도 같다. 경상도에서 상사소리가 불리워지는 지역은 경상도 서부지역인데 예천통명농요의 상사소리는 이 지역의 상사소리의 영향이라 하겠다.
방아소리는 일종의 방아타령이다. 김매기에 방아타령이 불리워지는 지역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서부지역인데 곡조의 토리도 다르고 형식도 다르나 노랫말과 방아타령이라는 이름을 갖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경상도에서 김매기에 방아타령을 부르는 것은 매우 드물다. 문경새재를 통한 영향으로 경상도 서북부에 보이는 것인데 예천통명농요의 방아소리도 이 범주에 든다고 하겠다. 김매기에 에히용소리를 부르는 고장도 많지 않다. 이것은 예천통명농요의 특색이며 경상도 동북부의 특색일 것이다.
김매고 마을에 들면서 부르는「쿵매캥갱」소리는 경상도 전지역에 널리 불려지는 소리이며 칭칭이소리 또는 쾌지나칭칭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예천통명농요는 경상도 동북부의 특징을 가지면서 약간의 경상도 서북부의 영향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예천통명농요에서 아부리수나는 처량하고 서정적이며 에헤엥소리는 장중하고 꿋꿋하며 도움소 방아소리에히용 쾡매쿵쿵은 씩씩하고 흥겨웁다. 소박한 향토적 특성을 가지면서도 순서대로 조리가 있고, 짜임새가 교묘한 노랫말을 갖추고 있으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느낌을 주는 곡조들이 잘 얽혀지고 여기에 예천의 꿋꿋하고 정겨운 민속문화가 얽히어 예천통명농요라는 문화를 내게 되었다고 하겠다.
5. 맺는 말
예천통명농요는 민요를 전승시키고자 하는 일에서 가장 빛을 본 종목의 하나라 하겠다. 민요를 전승하는 그 고장 사람들의 쪽에서 보면 그 고장 민요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대통령상을 받았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까지 받았고 이 일로 인하여 여러 고장에 나가 공연을 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치었으니 큰 결실을 거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전통문화를 관리하는 쪽에서 보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를 통하여 없어질 뻔한 민요가 인멸위기에서 건저져 세상에 널리 빛을 보게 되고 또 중요무형문화재에 새로운 종목을 넣게 되었다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누가 뭐라 해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와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사업의 기능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나 중요무형문화재가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자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해서 예천통명농요는 그 자체가 예천문화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우리 전통문화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탔다거나 중요무형문화재 한 종목으로 지정되었다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진대 이 민요의 문화적 가치를 아는 주민들의 문화인식과 이것을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전승시켜 나가는 것이 가장 값진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문화의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예천통명농요는 경상도 동북부의 특징을 가지며 서남부의 영향도 지니는 한국문화의 가닥으로 길이 전승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