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원형탐구
이종은 / 한양대교수, 국문학
Ⅰ. 머리말
東洋思想이라면 흔히 儒敎·佛敎, 그리고 道敎를 일러 三大思想이라고 한다. 그런데, 一般에 慣用되는 道敎라는 말에 내포된 의미는 일정치 못하다. 道敎는 중국에서 발생한 종교의 하나다. 한편 종교로서의 道敎와는 달리 道家라는 말이 있다. 道家는 종교적 요소가 없는 老子의 사상을 말함이다. 그런데 이 양자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혼동 또는 동일시되기가 일쑤다. 이같은 경향은 종래의 일반적 상식이었다.
이 양자를 동일시하는 이유는 道家가 老子의 사상에서 연유하고, 道家가 老子를 敎祖로 하는 데서 생긴 것으로 본다. 이같은 생각이 일반에게 흔히 알려진 개념이고 서양 사람들은 이같은 생각을 하는 형편인 것으로 보인다. 즉 道敎를 "老子를 대표자, 창시자로 하는 중국의 철학 세계의 하나인 동시에 현대 중국 종교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같이 Taoism이란 말은 종교로서의 도교와 사상으로서의 도가의 두 뜻을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확히 구별하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도가와 도교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고 또 공통되는 일면이 있기도 하다. 그것은 도교사상의 중심이 되는 신선설을 집대성한 《抱朴子》에는 노자의 《道德經》의 사상을 대부분 원용하고 있고, 또 노자를 도교의 교조로 받들어 모시는 만큼 도교의 사상에 도가사상을 導引하고 있다. 즉 도교란 도가사상과 중국 민간의 신선사상 - 長生不死의 사상 - 이 類合하여 이루어진 종교다.
이러한 종교로서의 도교가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즉 고구려 榮留王 7년(624AD)에 唐나라 高祖가 天尊像을 下賜하고 道士를 보내어 《道德經》을 講하니 왕과 백성들이 이를 경청하였다고 한다. 그 후 신라, 백제를 거쳐 고려와 조선조에 이르는 동안 때로 흥성하고 때로는 쇠미하여 한 번도 불교나 유교처럼 國敎나 國是로 떠받들어진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이것이 民間에 傳來하여 우리 文學과 思想에 크게 영향을 주었고, 民俗과 信仰에 그 흔적이 많이 남았으나 우리는 이것을 外來的인 것으로 느끼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숙하여지고 한국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文學에 나타난 도교사상의 考究는 외래사상의 연구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상 연구의 일환이 되는 것이다.
本考에서는 우리 문학 속에 나타난 도가와 도교적인 내용을 몇 가지로 구분하여 개괄적으로 설명키로 한다.
Ⅱ. 道家的 隱逸詩
문학에서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參與文學과 현실을 도피하여 은신처를 구하고 거기에 안주하려는 현실도피적 隱遁文學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여를 거부하는 현실도피를 은둔이라고 한다면 도피적 은둔이 아닌 처음부터 超脫한 隱逸的 사상이 있어 왔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은둔은 은일과 일견 상통하고 유사하나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은일은 德行이 높은 선비의 超世를 뜻한다. 超世는 山林으로의 도피나 世間과의 단절을 뜻하지 않는다. 속세에 居하거나 仙境을 찾거나 문제가 아니라 현세에 대한 관심이나 名利에 대한 연연한 욕망을 버리고 스스로의 高踏을 추구함이다.
하기야 은일이나 은둔 어느 쪽이고 현실을 부정하고 자연을 벗하는 면에서는 유사한 것이겠으나 그 사상적 연원부터가 다르다.
은둔은 그 사상적 연원을 유가에서 찾을 수가 있겠다. 儒家에서는 禮樂을 중심으로 한 문화정치를 이상으로 삼는데 이것이 곧 王道政治다. 王道政治란 곧 爲人之學, 곧 남을 위한 학문을 중심으로 하여 修身齊家하고, 治國平天下하는 것이 이상이다. 그래서 유가에서는 그릇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집착에서 현실에 깊이 참여하여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세상을 개탄하고, 아니면 이상을 펴 보려는 데서 타협 내지 阿世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도 또한 뜻대로 안 될때는 反抗도 하게 되고 또는 실망한 나머지 隱遁을 낳게도 된다.
은일은 이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도가에서는 爲人之學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학문 즉, 爲己之學이다. 그래서 고요히 자기의 분수를 지키고 [虛靜自守], 스스로를 믿고 [卑弱自恃], 無爲自然을 이상으로 한다. 이같이 도가에서는 虛無大道에 따른 無公無私한 超世의 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원한이나 애착이나 욕구 등이 있을 까닭이 없다. 그래서 고답을 생활화하게 된다. 이런 고답적 풍미는 은일을 낳게 한다.
이같이 은둔과 은일은 인생의 적극과 소극의 양단을 이룬다. 이런 은일사상의 예를 중국에서 들면 그 대표적인 것이 晋나라 때의 竹林七賢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의 행적이야말로 은일적이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같은 사상의 연원을 찾아보면 신라의 《鸞郞碑序文》같은 데서 볼 수 있고, 고려조의 竹林高會七賢들도 이와 동류라 하겠다. 그리고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많은 儒者들의 詩歌 작품에서도 道家的인 은일적 사상을 노래한 작품을 찾을 수 있다.
이런 詩歌作品을 몇 가지로 구분하여 들어 본다.
1. 도가사상을 노래한 작품
靑山도 절로절로 綠水도 절로절로
山절로절로 水절로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절로.
그 中에 절로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宋時烈>
노자의 無爲自然의 사상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가는 조선조 유학자 중에서도 朱子學의 대표적 학자임은 누언할 필요가 없다. 이런 주자학자도 무위자연의 사상을 절로 노래하였다.
知足이면 不辱이요 知止면 不殆라 하니
功成名遂하면 마는 것이 그 옳으니
어즈버 宦海 諸君子는 모두 조심하시오.
<金天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足한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하지 아니하여 長久 할 수 있다.)와 "功成身退天之道"(功이 이루어지면 물러가는 것이 하늘의 道이다.) 라고 한 도덕경의 사상을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처세의 계율로 경계한 작품이다.
장자는 나비가 되고 나비는 장자가 되니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지금에 恭園吏가 없으니 물을 곳이 어디오.
<이정보>
이는 《莊子》 齊物論에 나오는 蝴蝶夢[나비꿈]의 이야기를 작품화한 것이다. 이 [나비꿈]의 우화는 '꿈과 현실"의 이야기로 시에서만이 아니라 보편화된 도가사상의 하나이다.
위에 보인 바와 같이 《도덕경》이나 《장자》의 내용이 우리의 詩歌에 깊이 영향을 주고 있음을 본다. 이는 곧 당시의 문장가들이 道家書를 즐겨 읽었음을 말하는 것이니,
문장을 業으로 하는 사람은 老莊의 여러 책을 즐겨 읽었다. 그 기질이 더욱 높은 사람은 나아가 釋氏[佛敎]의 文에도 도를 구하기도 하였으니 唐나라와 宋나라의 여러 賢人들이 다 이와 같은 類이다…鰲城과 月沙 두 분은 비록 문장을 익히기 위하여 老莊書를 읽었으나 거기서 나쁜 영향을 입지는 않았다.
고 한 데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조선조에서는 유교를 國是로 삼고 있었으나 文士들은 老·莊을 비롯한 道家諸書를 탐독하여 사상적으로도 이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2. 隱逸的 自然觀
초세적 은일이란 말은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도가사상은 無爲自然을 이상으로 한다. 따라서 市井의 속세보다는 山林·自然·江湖를 즐기고 자연을 항상 구가하는 시작품을 많이 낳게 된다. 이런 은일적 자연애호의 사상은 물론 도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유가에서도 소요자적하는 것을 즐겨왔으니 《論語》先進篇에
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胡舞雩 詠而歸 夫子謂然歎曰 吾與點也.
"때는 마침 늦은 봄이라. 봄에 입을 옷이 다 되었으니 대여섯 사람의 젊은이와 예닐곱 사람의 아이들과 같이 교외로 나아가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산에 올라가 소풍한 뒤에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고 싶습니다." 하니, 이 말을 듣고 공자께서는 깊이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도 네 뜻을 찬성한다"고 하였다.
아무리 治國平天下가 유가의 이상이라 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초야에 묻혀 제 분수를 지킬 수밖에 없다. 그래서, 述而篇에
子謂顔淵曰 用之則行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공자가 안연에게 이르기를 임금이 나를 써주면 (도를 천하에) 행하고 나를 버리면 (도를 몸에 간직한 채) 숨는 일은 오직 나와 그대가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고 하였다. 이것이 유가의 생활철학이었으니 자기의 도가 행하여지지 않을 때에는 은둔하여 자연애호의 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몸이 쓸데없어 聖上이 버리시니
富貴를 下直하고 貧賤을 樂을 삼아
數間 茅屋을 山水間에 지어두고
三旬 九食을 먹으나 못먹으나
十年 一冠을 쓰거나 못쓰거나
分別이 없어스니 是非를 뉘 알소냐.
<作者未詳 : 樂貧歌>
성상이 버리면 산수간에 들어가는 즉 '버리면 숨는'다는 내용의 작품이 많다. 이런 유가의 강호와 자연을 노래한 작품은 도가적 은일의 것과는 구분된다.
이런 '버리면 숨는' 은둔생활은 도피사상을 낳았다. 도피사상은 사회현실이 자기의 이상과 부합하지 않아 도저히 현 사회에서는 수용되지 않을 경우 체념하여 생기는 사상이다. 이런 도피는 자기의 사상을 좇아서 사회에 참여하려 하나 사회현실 - 정치- 과 맞지 않아 스스로 은둔하는 경우와, 또 하나는 出仕하려 하나 사회가 자기를 받아주지 않아 현 사회에서 밀려나는 경우, 즉 패배적 도피가 있다. 이런 도피는 초세적 은일이라 할 수 없다.
ⅰ) 超世的 隱逸
초세적 은일은 외계의 사회가 처음부터 관심권 밖의 것이니, 市井과 江湖 어디에 居하거나 문제일 것이 없다. 다만 이런 도가의 은일은 도피적인 것이 아니라 현 사회의 문화 즉 禮樂이나 經世에 뜻이 없어 功利와 顯達에 눈을 돌리지 않으니 절로 자연을 즐기게 된다. 여기서 도가적 은일자들에게는 자연 애호의 사상이 싹트고 산수와 강호의 문학이 생기게 된다.
平生에 일이 없어 산수간에 노니다가
江湖에 임자 되어 世上일 다 잊어라
엇더타 江山風月이 긔 벗인가 하노라.
<朗原君>
功名과 富貴란 世上사람 맛겨두고
말업슨 江山에 일없이 누었으니
봄비에 절로난 山菜가 내分인가 하노라.
<作者未詳>
功名도 니졌노라 富貴도 니졌노라.
世上 번우한 일 다 주어 니졌노라.
내몸을 내마저 니즈니 남아 아니 니즈리.
<金光煜>
功名·富貴·名利는 일반이 다 바라는 것으로 곧 영화라 한다. 그런데 이런 영화는 곧 身辱이 된다. 도가에서는 이것에 집착하지 않고 超世하려는 것이다. 초세적 은일자는 자연을 벗할 밖에 없다. 이것이 江湖의 樂이다. 그래서 "江山風月과 벗이 되어", "말 없는 江山에 홀로 누워", "절로난 山菜"나 먹는 것을 "내 분수"로 아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멀리 바라보기보다는 완전히 잊고 "내가 나를 잊는" 곧 莊子가 말하는
隨肢體 黜聰明 離去知 同於大通.
제 몸도 버리고, 총명도 버리고, 앎도 버리고, 우주와 하나가 된다.
는 <坐忘>의 경지에 이른다. <坐忘>은 곧 완전 초세의 무위자연의 세계다.
ⅱ) 物我一體
초세적 은일과 함께 物我一體의 江湖詩歌를 볼 수 있다. 물아일체의 사상은 물론 도가 전유의 사상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하였거니와 유가에서도 자연애호의 사상은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양자는 자연을 대하면서도 그 사상의 심연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먼저 儒家의 江湖詩歌를 들어 본다.
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興이 절로 난다.
濁流溪邊에 錦鱗魚 안주로다.
이 몸이 閒暇해옴도 赤軍恩이샷다.
<孟思誠, 江湖四時歌·春>
江湖에 期約두고 十年을 奔走하니
그 모르는 白鷗들은 더디 온다 하것마는
聖思이 至重하기로 갑고 가려 하노라.
<作者未詳>
孟思誠의 <江湖四時歌>에서는 봄철에 "이 몸이 閒暇해옴도" 여름에 "이 몸이 서늘해옴도" 가을철에 "이 몸이 消日 해옴도" 겨울에 "이 몸이 칩지 아니해옴도" 다 君恩으로 돌린다. 자연을 애호하고 한적하게 지내며 태평을 누려도 모두가 君恩이다. 또 강호를 마음에 두고 10年을 분주하면서도 至重한 聖恩을 갚지 못하여 돌아가지 못하는, 그러나 강호를 기약한 대로 두고 백구가 내 뜻을 모름을 원망하는 이런 類의 작품도 한결같은 강호시가이면서도 戀君忠誠의 사상이 담긴 작품들이다. 이런 유가적 은자들은 강호를 즐기며 산림에 은거를 즐겨하는 듯이 노래하나, 군주의 부름만 있으면 언제나 서슴없이 자연을 버리고 벼슬길을 쫓는다. 그래서 이런 작품은 도가적 은일의 작품과는 사상적으로 구별된다. 곧 暇隱者의 자연시가 라고나 할까.
한편 도가적 은일자의 자연애호의 작품을 들어 본다.
江湖에 버린 몸이 白鷗와 벗이 되어
漁艇을 흘리 놓고 玉簫를 노피 부니
아마도 地上 興味는 이뿐인가 하노라.
<金聖器>
山中에 冊曆없어 節 가는 줄 모르노라.
꽃 피면 봄이오 잎 지면 가을이라
아희들 헌 옷 찾으면 겨울인가 하노라.
<作者未詳>
혓가래 기나 짧으나 기둥이 기우나 트나
數間茅屋을 작은 줄 웃지마라.
어즈버 滿山蘿月이 다 내것인가 하노라.
<申欽>
앞에 든 '江湖四時歌'에서 보는 戀君이나 君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白鷗와 벗이 되고 漁艇에 올라 玉簫을 불며 漁翁의 생활을 즐긴다. 또 더 나아가 自然과 벗함을 지나 物我가 一體다. 책력 속에서 계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계절을 찾는다. 노자는 "處無爲之事行不信之敎"라 하였다. 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고 말하지 않고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 자연의 도를 체득한 사람이다. 그래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니 高臺廣室이 필요없고 몇 칸 안 되는 띠집이 적지 않다. 滿山의 蘿月이 모두 내것이다.
ⅲ) 隱逸과 醉樂
도가적 은일자들에게는 醉樂的인 일면이 있다. 취락사상은 물론 반드시 도가적 은일사상과 직결되는 것만은 아니다. 취락적 歌舞飮酒는 우리 고대 생활을 기록한 《魏志》 東夷傳에 <迎鼓>나 <舞天>을 말한 글에 "連日飮酒歌舞"한다 하였다. 지금 흔히 불려지는 '노랫가락'에도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며는 못노나니
花無는 十日紅이요
달도 차며는 기우나니.
라고 하여 醉樂을 지나 頹廢에 가까우나 이제까지도 우리에게 잘 불려지고 있다. 松江의 '장진주사'에도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꺽어 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
라고 하여 취락적 一面을 보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취락적 사상은 민족성의 일단으로 볼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민중이 벗어날 수 없는 생활고와 정치적 虐政아래에서 그 고뇌를 벗어보려는 방법으로 자포자기적인 면에서 취락으로 흐른 일면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려는 취락사상은 도가적 은일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취락이다. 은사들의 고답적 현세초탈과 취락은 중국의 은일자인 竹林七賢들의 행적에서도 잘 보이는 바이지만 이들 은사들은 山林 江湖에서 閑外自適하는 것과 취락을 생활화하였다. 이제 우리시조에서 이런 작품을 들어 본다.
깨면 다시 먹고 취하여 누었으니
世上榮辱이 어떠튼동 나 몰라라.
平生을 醉裡乾坤에 깰 날 없이 먹으리라.
<金天澤>
人間이 꿈인 줄을 나는 벌써 알았노라.
一樽酒 있고 없고 매양 모다 노사이다.
帥世에 難逢開口?라 긋지 말고 노옵세.
<金壽長>
여기서 보이는 취락은 앞에 보인 <노랫가락>에서와 같은 퇴폐적 추락과는 구별될 수 있다. 세상 영욕에 무관한 은일에 基底하였거나 <人生이 꿈인 줄>로 알고 있다. 곧 浮生이 若夢한 《莊者》의 <나비꿈>에서 볼 수 있는 현실과 환상을 술 속에서 즐기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취락 또는 향락사상과 도가적 은일사상과의 관련은 무엇일까. 老子는 《道德經》에서 취락을 말한 바 없다. 그의 後學이라 할 楊朱는 "爲己"와 "快樂"을 주장하였다. 《列子》楊朱篇에서
太古之人 知生之暫來 知死之暫往 故從心而動 不違自然 所好當身之娛 非所去也
옛날 사람은 사람의 생이란 잠시 오는 것인 줄 알았고, 죽음이란 잠시 가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므로 마음대로 움직여도 자연에 어긋나지 않고 당면한 오락을 좋아하되 그것을 버리는 일이 없었다.
고 하여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여도 자연에 어긋나지 않고 오락 [곧 취락도 포함]을즐겨하여 그것을 버리는 일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할 뿐 意識作用과 감각기능을 막아버리지 않는다고까지 하였다. 이런 快樂主義는 樂自然의 방법으로 長醉하여 인위적 사회 규범을 벗어나 인간 본성대로의 자연을 찾을 수 있다. 그 예가 곧 죽림칠현들의 행적이다. 그리고 또 도가적 사상이 炆謚한 唐·宋때 시인들의 작품에서 이와 같은 취락적 일면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취락사상은 어디까지나 <無爲>의 사상에서 연유한 자연애호와 결합된 취락이다. 그래서, 이런 취락은 風流와 일맥 상통한다. 풍류는 詩·酒·歌·花·女人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풍류사상과 함께 우리 시조에는 꽃을 보면 술을 찾고, 시를 읊으며 술과 함께 노래한다. 이런 취락적 시조는 이루 다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것이 다 은일적인 것은 아니다. 은일적 취락을 노래한 시조를 한 首 들어 본다.
드른 말 즉시 잊고 본 일도 못본 듯이
내 人事 이러함에 남의 是非 모를로라.
다만지 손이 성하니 잔 잡기만 하노라.
<宋寅>
"손이 성하니 잔 잡기만" 하도록 즐기는 것이 술이다. 그런데 이런 취락 속에도 "是非" 모르고 살자는 것이 은일적 취락이다. 列子는 9년 걸려서 老子에게 배운 것이 마음에 是非利害를 뿌리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Ⅲ. 神仙思想과 漢詩
神仙思想은 많은 신선의 이야기를 낳았고 문학상에는 낭만적 소설의 원천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도가의 超世的인 자유로운 無何有의 鄕에 노닐게 하는 것도 많았고, 특히 隱逸高踏的경향의 작품을 낳게 하였다. 고답주의와 도가의 超世的 사상은 신선사상과 함께 시에 조화되어 있다. 이 초세적 사상이 시로서의 표현에는 幻想으로 나타난다.
신선의 이야기는 사실도 같고 환상도 같은 것이 특색이다. 그래서 이 仙譚을 事實로 믿는 데에서 신선을 노래한 시가 나온다. 일찍 중국에서는 屈平이 <離騷>. <九歌>에서 天上을 逍遙하였다.
우리나라에는 많은 신선의 이야기와 신선들의 유적이라고 전하여지는 곳이 있고 이를 노래한 시가 많다. 다음에 신선의 유적을 노래한 시를 몇 편 들어 본다.
1. 四仙의 유적을 노래한 시
新羅 때에 永郞을 비롯하여 述郞·南郞·安詳의 四仙이 있었다 한다. 이들 四仙이 仙遊하였다는 전설이 전하여지는 곳이 東海抯에 永郞湖·丹穴·三日浦·叢石亭 등 몇 곳과 西海의 阿郞浦가 있다. 後人들이 이들 四仙이 놀았다는 곳을 노래한 작품이 자못 풍성하게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神仙說話에서 이야기되는 三神山이 우리나라에 있다고 믿게 되면서부터 우리나라를 神仙窟宅으로 생각하고 많은 신선전설이 생겨났다. 그래서 그 仙跡을 노래한 작품이 많은데 仙跡吟詠의 작품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첫째, 仙跡이 있는 곳은 어디나 평범한 풍경이 아니다. 이 勝景, 이 절경이 곧 仙境임을 노래한다. 둘째, 옛 仙人의 자취를 보고 이들을 그리워하는 望仙 또는 羨仙의 내용을 노래한다. 셋째, 옛 仙人의 故事의 引用을 자연스럽게 한다. 이것은 바로 신선사상이 이를 노래한 시인들의 사상의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말함이라 할 수 있다. 넷째, 仙丹[仙人이 되는 藥]을 만들어 자신도 仙化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신선을 사실로 믿는 一但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런 類의 많은 작품은 지면 관계로 略하고 다음 두 首만 예를 들어 본다.
平湖鏡面澄 蒼波凝不流
蘭舟縱所如 泛泛隨輕鷗
浩然發淸興 暾籣入深幽
丹涯抱蒼石 玉洞藏瓊洲
循山泊松下 空翠凉生秋
荷葉淨如洗 蓴絲滑且柔
向晩欲回棹 風煙千古愁
古仙若可作 於比從之遊
<安軸 永郞湖>
평평한 호수 거울같이 맑은데
창파는 엉기어 흐르지 않는다.
노릿배 물결에 띄우니
두둥실 떠서 갈매기 따라가네.
호연한 맑은 흥 솟아올라
물결 거슬러 깊은 데로 들어가리.
붉은 벼랑 푸른 돌을 감싸고
玉洞은 瓊洲를 감추었다.
산을 감돌아 솔아래 배 대이니
하늘은 푸르고 가을 바람 일어난다.
연잎은 깨끗이 씻겼고
蓴菜는 실같이 가늘고도 연하네.
해 저물어 뱃길 돌리려 하니
바람은 千古의 시름을 일렁이는가.
이곳서 옛 신선을 다시 본다면
예서 그들을 따라 함께 놀리라
영랑호는 예나 이제나 勝景이다. 四仙의 遊跡地는 어디나 절경 아닌 곳이 없다. 먼저 절경을 노래하고 이 절경에 전해 내려오는 四仙傳說을 노래하게 되니 자연히 仙界를 환상하게 된다. 그래서 "玉洞은 瓊洲[神仙이 사는 곳]를 감추었다."고 하였는데, 경주는 곧 仙境이다. 이곳이 선경이고 보니 환상과 현실을 놓고 "이곳에서 옛 신선을 다시 본다면, 예서 그들을 따라 함께 놀리라."고 한 것이다.
孤亭枕海學蓬萊 境捸不許栖版埃
滿徑白沙步步雪 松聲海碩搖瓊魂
云是四仙縱賞地 至今遺跡眞奇哉
酒臺湫傾沒碧草 茶爬今洛荒蒼苔
雙岸野實空熮屮 向誰凋謝向誰開
我余換歷放幽興 終日爛傾三雅盃
坐知機盡巳忘物 鷗鳥傍人飛下來
<金克己 寒松亭>
외로운 정자 바닷가에 있어 蓬萊같은데
그 경계 깨끗하여 티끌 하나 없어라.
길에 가득 흰 모래는 눈 밟는 것 같고
솔바람 맑은 소린 구슬소리 같구나.
이곳은 四仙이 노닐던 곳이니
지금도 남은 자취 그 더욱 기이해라.
酒臺는 기울어 풀 속에 묻혀 있고 茶爬는 넘어져 푸른 이끼가 끼었네.
양쪽 언덕 열매[野實]는 뉘 위해 열렸으며
아름다운 저 꽃은 뉘 위해 피고 있나.
나 홀로 이 景 찾아 幽興이 도저하여
종일토록 감흥 깊어 술잔을 기울이네.
앉으매 마음 고요하여 온갖 것을 잊으니
갈매기도 벗인양 사람 곁을 나른다.
한송정 곁 茶井·石爬·石臼는 丹穴과 같이 四仙의 유적이라고 하여 전하여지고 있다. 다만 유적만이 전하니 상상은 마음대로 날개를 편다. 四仙이 모였을 적에 四仙 외에도 많은 신선들이 모였을 것으로 생각도 하고 또 몇 백년의 時空을 초월하여 四仙과 함께 노니는 것으로 환상한다. "나 홀로 이 景 찾아 幽興이 도저하여 종일토록 감흥 깊어 술잔을 기울이네." 할 때 詩仙 李白이나 酒仙 劉伶과도 견준다. 그러나 실은 "앉으매 마음 고요하여 온갖 것을 잊으니, 갈매기도 벗인양 사람 곁을 나른다." 이것이 바로 환상과 어울어진 현실이다.
2. 金時習과 그의 시
金時習은 나면서부터 聰明이 過人하여 여덟 달에 글을 알고 세 살에 능히 시를 지었다. 다섯 살에는 임금 앞에서 글을 지어 (金五歲)라는 이름이 전국에 퍼졌다. 21살에 端宗이 王位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書冊을 불사르고 削髮爲僧하여 전국을 放浪하여 갖가지 逸話를 남겼다. 그는 奇僧·狂人 등의 이름으로 불리웠다.
그런데 金時習의 생애와 학문과 사상을 우리 학계에서는, 이조 초기에 새로 일어나는 신진 사류파의 동반자로서, 굽힐 줄 모르는 정치적 良識으로 말미암아 타협과 항거의 양극을 방황하면서 고민하는 知識人으로 보고, 또 斥佛崇儒의 사상적 폭풍 속에서, 이 상반되는 사상체계를 합치시키려는데 성공한 哲學者로서 "性理學을 기반으로 하고… 佛敎 敎理의 合致點을 체계 세웠고" 문학면에서는 고려대에 이미 稗官文學에서 태동하고 있던 小說的 창작활동을 발전시킨 文學者로 평하고 있다. 허나 다른 면으로 그는 도교에도 깊은 이해가 있었으니 李珥도 "儒家의 宗旨를 잃지 않고 佛敎와 道敎에도 크게 성취함을 볼 수 있다." 고 평하였고, 그의 文集에는 道敎說에 專門的 부분이 있다.
그리고 仙家思想에도 심취하여 갖가지 仙術을 행하기도 하였으니 《於于野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최연이란 강릉 사람이 있었다. 김시습이 설악산에 은거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동지 소년 5·6명과 함께 배움을 청하였다. 시습은 모두 사절하고 다만 최연만을 데리고 가르친지 半年이 되었다. 사제의 도를 다하여 자나깨나 곁을 떠나지 않더니, 매양 달이 밝고 밤이 깊어서 잠을 깨어보면 시습은 간 곳이 없고 잠자리는 비어 있었다. 최연이 마음 속에 의혹이 들지만 감히 쫓아가 찾아보지는 않았다. 이 같은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하루는 밤중에 달이 또한 밝으니 시습은 衣巾을 차리고 가만히 나가 버렸다. 최연은 가만히 그 뒤를 밟아 보았다. 한 구렁을 지나고 한 고개를 넘어 수풀 속에 몰래 숨어 내다보니 고개 밑에 큰 반석이 널찍하여 앉을 만한 곳이 있었다. 두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서로 揖하고 바위 위에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거리가 멀어서 잘 들리지 않으나 한참 동안 이야기 하다가 헤어졌다. 최연이 먼저 돌아와 자리에 누워 자는 체하고 있었다. 다음날 시습은 최연을 불러 말하기를"처음에는 가르칠 만하다고 생각되어 가르쳐 보려 하였더니 이제 煩操함을 비로소 깨달았으니 더는 가르칠 수 없다."하고 사절해 버렸는데 밤에 반석 위에서 만난 이는 사람인지 仙人 인지 끝내 알 수 없었다.
후에 金時習은 환속하여 살다가 다시 중이 되었다. 홍산 무량사에서 죽을 때 "내가 죽거든火葬하지 말라" 유언하여 그 절의 중들이 절 옆에 임시 매장하였다. 3년 후에 永磡하려고 관의 뚜껑을 열어보니 안색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의 시를 들어 본다.
碧落無雲天氣淸 磛昱時聽步虛聲
十二樓上吹長笛 便是神仙白玉京
朝餐沆?暮流霞 須信凌虛有作家
下視塊蘇嗟渺渺 大鵬飛少恰惈多
淸晨騎鶴上淸虛 洞闢紅雲玉帝居
特今弄臣宣紫紹 朗吟天篆一行書
左界無雲種白楡 廣寒宮裏舞仙妹
泛擄銀海波瀾簧 金闕瓊樓是帝鄕
人間無地不風波 八翼凌風是大家
下界排游篻宇窄 塵埃萬丈濒君何
<凌虛詞>
벽공에 구름없어 하늘은 맑은데
하늘을 걷는 그 소리 가볍게 들려온다.
十二樓 그 위에서 長笛소리 들리니 이곳이 神仙 사는 白玉京일세.
아침엔 이슬먹고 저녁엔 流霞로세.
모름지기 믿으리라, 하늘 나는 이 있다는 것을
굽어보니 땅위는 아득만한데
大鵬새는 드물고 하루살이뿐.
맑은 새벽 학 타고 上淸에 오르니
瑞雲어린 洞天은 玉皇 계신곳.
上帝의 命을 받아 紹書쓰라면
하늘 글로 시 한수 높이 읊으리.
左界엔 구름없이 白楡(星) 비치고
광한궁 선녀들은 춤을 덩실 추네.
은하에 배 띄우니 파도는 넓고
金闕 瓊樓는 上帝 계신 곳.
어디나 人間界는 풍파뿐이니
八翼으로 바람타고 큰 집에 산다.
下界는 하루살이 좁은 집인데
티끌은 萬丈이라. 어찌 볼건가.
天上仙界를 이렇게도 동경하는 金是習은 마침내 하늘에 오른다. 그것이 바로 <凌虛詞> 5수다. 그런데 능허사에서는 羽化登仙이 아니라 "하늘을 걷는 그 소리 가볍게 들려온다."고 하였으니 있는 그대로의 몸으로 하늘에 올랐다. 불교나 기독교에서 마냥 死後, 영의 세계에서 극락이나 천당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대로의 超世요 高踏이다. 이것이 도교, 신선의 사상이다. 이 같은 고답의 문학, 초세의 작품은 일찍이 屈平의 <九歌>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金是習은 <九歌>에서 보는 환상의 행위나 사건의 기록이 아니다. 작자의 감상으로 일관하고 있다. 玉京 十二樓上에서 長笛소리를 들어도 다만 "이곳이 신선 사는 白玉京일세" 라고만 말한다.
선인이 사는 것은 번거롭지가 않다. 이슬과 流霞로서 족하다. 煩累를 벗어버리는 것이 곧 仙道이다. 이 선도를 "모름지기 믿으리라, 하늘 나는 이 있다는 것을"이라 했다. 하계를 굽어보면 아득하기만 한데 하루살이만이 우굴거린다. 金是習이 추악하게 보는 현실일게다. 그러나 玉界上淸에서 이를 말할 까닭이 없다. 다만 上帝의 명을 받으면 "하늘 글로 시 한수 높이 읊으리" 한 것이 그의 소망이다. 無雲廣天 廣寒宮에서 仙女의 춤추는 모습을 보며 "금대궐 구슬누각은 상제 계신 곳"이라 할 뿐이다. 그러나 下界를 생각하면 인간세계는 풍파뿐이요, 하루살이들이 구물거리는 비좁은 집이다. 그 티끌 속의 인간사를 어찌 볼 수 있겠는가. 金是習은 현세 安住를 못하니 자연히 초세 고답을 노래할 수밖에 없다.
金是習은 일찍이 소설 <취유부벽정기>와 <용궁부연록>에서 天國과 水宮의 편력을 보여 주었지만 앞에 든 시에서도 그의 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시 전반의 경향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문학 내지 사상을 종래와 같은 통설로 규정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가 생존한 시대는 유학을 國是로 삼은 조선조 초기, 주자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풍미하던 시대인 만치 주자학적 사상에 물들음은 말할 것이 없겠다. 또 고려시대 불교사상 또한 그의 사상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음은 삭발위승하여 전국의 사찰을 편력하면서 승려로서 생활하던 그이니 만치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앞에 든 김시습의 문집 속의 도교설이나 그의 이적이나 仙譚만이 아니라 그의 시작품에 보이는 도교적 사상과 신선 동경의 사상은 확실히 그를 새로운 각도에서 평가하게 한다. 즉 그는 조선조 초기의 사상적 전환기에서 번민하고 유·불·도 三敎에 通曉한 知識人이요, 思想家였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3. 許蘭雪軒과 그의 시
조선초 閨秀詩人을 말하면 누구나 蘭雪軒 許夫人(1563∼1589)을 들지 않을 수 없다. 文章家의 집안에서 태어나 金城立에게 出嫁하였으나 금슬이 不合하여 불만 중에 어린 子女를 잃고 불행히 지내다가 27세로 일찍 세상을 떴다. 그의 시문은 일찍이 國內와 中國에서도 널리 알려졌으니 이제 새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현금에 전하는 212편의 작품 중에서 <步虛洞> <遊仙詞> <白玉褸上梁文> 등은 말할 나위도 없으나 爾餘의 작품도 대부분 仙界志向的임을 간과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七言絶句 87首로 된 <遊仙詞>는 난설헌 문학의 대표작이요, 壓卷이다. 우리 문학에 道家詩, 또는 仙詩가 상당량 있지만은 이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은 대작은 空前絶後하다. 그것은 다만 量的인 面에서만 鉅作이라 함이 아니라 그 質에 있어 海東詩史에서 뿐만이 아니라 漢土의 문학에서도 이 같은 방대한 遊仙의 작품은 없다. 遊仙의 작품으로는 晋代의 博學의 高才 郭璞의 <遊仙詩>가 있다. 郭璞은 葛洪의 神仙傳에 仙人으로 收錄된 인물이니 仙緣은 더 말할 것이 없으나 그의 <유선시>와 난설현의 <유선사>는 對比해 볼 必要를 느낀다.
郭璞의 <유선시>는 현세에서 선계를 갈망하는, 아니면 현세인의 仙界 환상의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許夫人의 <유선사>는 현세에서 선계를 지향하는 시가 아니다. 이미 선계를 자재롭게 소요하고 선계의 장관을 여실하게 描出하였다. 그 작품을 들어 본다.
千載瑤池別穆王 暫敎靑鳥訪劉郞
平明上界笙蕭返 侍女皆騎白鳳凰
<其一>
천년의 瑤池에서 穆王을 하직하고
잠시 靑爲를 앞세워 劉郞을 찾았네.
날이 밝자 上界에서 풍악소리 울리니
시녀들은 모두 흰 봉황새를 타고 따라오네.
焚香瑤夜禮天壇 羽駕扪風鶴您塞
淸聲響沈星月冷 桂花烟露濕紅鸞
<其五>
고요한 밤 향 피워 천단에 절할제
깃수레 바람에 번득이고 학창의 싸늘하다.
맑은 풍경소리 은은하고 달은 차가운데
桂花 이슬에 붉은 난새를 적시네.
騎鯨學士禮瑤京 王母相留棠碧城
手展彩毫書玉字 醉顔猶似進淸乎
<其四四>
고래등 탄 李太白 백옥경에 예 올리니
서왕모 반가와서 碧城에서 잔치 벌렸네.
손으로 彩毫 들어 玉글자 쓰는데
취한 얼굴 바치 淸平調를 바칠 때 같네.
皇帝初修白玉褸 璧階璇柱五雲浮
閑呼長吉書天篆 圧在瓊楣最上頭
<其四五>
옥황께서 처음으로 白玉褸를 지으시니
구슬 층계 옥기둥에 오색 구름 떠오는데
長吉을 불러들여 하늘 글자를 쓰게 하여
안중방 그 위에 현관으로 달았네.
足卜星光閃閃高 月篩溪影濕龍毛
臨霞笑喚東方朔 休向永園摘玉桃
<其五七>
발 아래 별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은하수 그림자에 용의 수염 젖었네.
노을 낀 하늘에서 웃으며 東方朔을 불러
永園의 복숭아를 따지 말라 이르시네.
仙界의 경관을 갖가지 仙語로 엮어 놓아 조금도 어색함이 없고 신선 고사를 적절히 배합하여 현실의 기록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比種 遊仙 의 大交鄕藥이요 壓卷이다.
<夢遊廣桑山詩>는 그 序가 앞에 붙어 있다.
乙酉年 봄 자신이 상을 당해 외숙댁에 묶고 있을 때 밤 꿈에 夢遊한 이야기다. 몽유 과정은 선계에 들어가 20 안팎의 선녀를 만나 仙境을 두루 구경하였는데 선녀가 '이곳은 十洲 중에 서도 가장 아름다운 廣桑山이라'고 일러준다. 그리고 仙界에 인연이 있어 이곳에 왔으니 시를 한 수 지어 보라 하여 사양하다 마지못해 한 수를 읊으니 선녀들은 이것이야말로 仙語라 하며 손뼉을 치는 것으로 夢遊는 끝난다. 그 시에
碧海侵瑤海 靑鸞倚彩鸞
芙蓉三九朶 紅墮月霜寒
푸른 바다는 瑤池에 번지어 가고
파란 난새는 오색 난새에 어울려 있네.
아릿다운 부용 스물 일곱 송이
붉은 꽃 지고 서릿달은 차갑네.
라 하였다. 이 시는 그대로 시=이 되고 말아 蘭仙은 27세로 가고 말았다. 朱之앤은 <蘭雪軒集>첫머리에
飄飄乎 塵埃之外 秀而不靡 盓而有骨 遊仙諸作 更屬當家 想其本質 乃雙成飛 瓊之流亞 偶謫海邦 去蓬壺瑤島 不過隔衣帶水 玉樓一成 鸞書旋召斷行 殘墨皆成珠玉 落在人間 永充玄賞.
그 티끌 밖에 나부껴서 빼어나면서도 화사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뼈대가 뚜렷하다. 저 遊仙詞 등 여러 작품은 당대의 시인에 귀속할 정도다. 생각건대 그녀의 본바탕은 저 雙成과 飛瓊의 무리에 버금한다. 내 우연히 해동에 좌천되어 와서 蓬壺와 瑤島를 떠나 격해 있음이 한줄기의 허리띠와 같은 물에 불과한 처지이다. <白玉樓가 한번 세워지자/난새가 전한 편지로 부르심을 받고/끊어진 글줄과 쓰다 남은 먹이/모두 구슬과 옥이 되었다.> 라는 글귀가 인간 세상에 떨어지니 길이 그윽한 감상에 마땅하다.
하였고, 梁有年은 題辭에서
蘭雪集 尤其趾美獨盛者 故永以附諸皇明大雅 流傳萬葉.
이 난설헌집은 더욱 그 아름다움의 터전 이 유독 우뚝하므로 장차 이를 명나라의 시집에 덧붙여서 길이 만대에까지 유전하게 함은 역사가에 달렸다.
고 하였다. 과연 海東詩史에서 만이 아니라 <明詩綜>을 비롯하여 <歷代女流詩選>에도 痹選되었으며, 일본에서도 通行을 보았다. 近者 彭國棟의 <中韓詩史>에도 絶讚한 바 있다.
Ⅵ. 小說 속의 道敎思想
소설에서는 도가사상이 시가에서와 같이 농도 짙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무위자연이나 은일만으로 는 구성되기 어렵고 사람의 공상이나 상상을 다루기에 적합한 문학양식이다. 그리고 사람은 공상하는 동물이다. 이 공상의 대표적인 사상의 하나가 신선사상이다. 신선이란 원래 사람이 長生不死하기를 바라고 믿는 것이다. 신선은 장생불사하고 신비한 방술로써 하늘을 날고 물 속을 마음대로 다니고 千里를 내다보는 등 사람의 욕구하는 바를 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신선사상을 단순한 神仙談으로 이어놓을 때 별 흥미를 못 느낀다. 그래서 소설에서는 현실과 仙界를 잘 조화한 이야기로 구성하고 있다. 또 이런 신선사상이 도교로 수용되어 天界와 人間界 내지는 水宮까지를 다 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모든 세계를 지배하는 天上主宰者가 있다. 이 주재자가 도교의 최고의 신 元始天尊 곧 玉皇上帝다. 여기서는 소설 속의 옥황상제를 중심으로 설명하려 한다.
먼저 소설의 서두에 보이는 주인공의 출생과 관련된 祈子 모티브를 통하여 天上主宰者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1. 祈願과 天上界
無子한 집안에서 흔히 하늘에 기도 드려서 하늘이 감응하면 자녀를 點指하게 된다. 이 같은 경우는 우리 고전소설 중 영웅소설의 주인공 出生譚이 대부분 이같이 이루어져 있다. 序頭敍述의 전형은 대개, 부인이 "옛적에도 無子한 사람이 하늘께 기도 드려 得男한 예가 있다 하니 우리도 하늘께 기도 드리자."는 청을 남편에게 하게 되고 또 남편은 "빌어서 자식을 얻을진대 無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하지만 결국 名山大川에 기도 드리게 된다. 여기서 기도 드리는 대상에 대해 한번 고찰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고기록에도 단군이 마지막에 아사달 山神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山岳 숭배사상의 일환으로도 보이는 바 이 같은 산악숭배 내지는 산신에 대한 제사의 기록은 조선조까지 연면히 이어왔고 현금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 소설에 나오는 名山에서의 기도는 산악숭배와는 다른 일면을 가진다. 산에서 기도를 드리되 기도의 대상이 산신일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산신이 아닌 하늘이 기도의 대상이다. 즉 天地神明이라고 표현되는 수가 많다. 이 때의 하늘은 自然天空을 뜻하는 것도 아니요, 超越的 神聖性을 중심으로 한 宗敎觀念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다만 天地神明이라고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天地神明이 感應하여 貴子를 點指하여 달라는 기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하늘에 대한 관념은 어떻게 변천하였으며,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조선조의 사상, 철학 내지는 그 때의 思惟의 기본은 얼른 儒學을 제쳐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儒家의 天思想의 觀念을 《論語》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공자는 종교를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공자는 귀신에 대하여는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고, 또 子路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는 "아직 사람도 섬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라고 대답하였고, 또 죽음에 대하여 묻자 "아직 生도 모르면서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고 하였다. 또 제자가 知에 대하여 물었을 때 공자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義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면서도 멀리하면 知라."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공자는 죽음에 대해서보다는 生에 대하여, 귀신에 대해서보다는 사람에 대하여 보다 더 중시하여 종교적인 문제보다는 당면의 행동윤리 내지는 도덕, 정치 등 현실적 문제에 보다 관심이 많은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공자는 종교 내지는 기도 드리는 일이 전혀 없는 인물이었나 하면 그렇지만은 않다. 공자가 병환이 나서 위중하자 그의 제자 子路가 기도하기를 청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그런 일이 있소?" 자로가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제문에 이르기를 '너를 위하여 위로 天神과 아래로 地祇에 기도한다.' 하였습니다." 하니 공자가 "내 기도한지 오래 되었다."고 하였다. 이는 공자의 종교관을 고찰함에 퍽이나 중요한 구절로 보인다. 문인 자로가 말하는 上下神祇에 대한 기도는 부정하고 있으나 스스로는 늘 天道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라고 조심하고 있어서 天地神明에게 기도하였음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한 것이다. 그는 하늘에 대한 畏敬心을 깊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하늘에 죄 지으면 기도할 곳이 없다."고 하였다. 이밖에도 <論話>에는 하늘에 대한 언급이 여러 곳에 보인다. 그런데 대부분 공자에 있어서의 하늘은 그의 행동을 감시하는 일면을 보이고 또한 그의 도덕적 행위의 기준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유가적 비종교적 天敬仰 사상은 조선조의 士人들에게는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이 가기는 하나, 그러나 이런 사상이 그대로 이 시대의 모든 사람의 사유의 일반성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소설에 다시 눈을 돌려보면 앞에서와 같이 명산대천을 찾아서 아들 얻기를 기구한다. 이 명산대천에서 기도한 대상인 하늘은 얼핏보기에 自然天空 내지는 공자가 개념한 하늘같이 보이지만 이 기도에 감응한 하늘은 도덕적 행위의 기준으로서의 하늘도 단순 초월자로서의 하늘도 아닌 天上主宰神으로 표현된다. 이 天上의 主宰神이란 곧 天界와 地上 나아가서는 水府·冥府까지를 주재하는 主宰神이다. 이 신의 권능은 절대이고 천상의 諸神을 통괄하고 지상의 모든 일의 최고의 주재자로서 은총과 威罰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절대 유일의 신이다. 이 유일 절대의 신을 도교에서는 玉皇上帝라 한다. 옥황상제는 도교의 근원인 <道>와 함께 설명되고 있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天界에서 上帝에게 得罪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人世에 謫降한 것이다. 적강을 하여 갈 바를 몰라 헤매일 때에 산신령이 이들의 갈 바를 인도하여 현세에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출생에 있어서는, 비록 적강은 하였어도 천계의 귀인들이기 때문에 천상 선녀들이 이들의 출산을 돕고 있다.
도교에서 말하는 하늘 곧 宇宙의 설명은 퍽 복잡하다. 그러나 소설 속의 天界 곧 玉皇上帝가 居하는 하늘은 작가의 상상대로 마음껏 화려 장엄하게 표현될 뿐이다. 마치 현세궁전의 아름답고 큰 것을 마음껏 확대하였다고 설명하면 타당할 것이다.
2. 祈願의 對象
사람은 현세에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모든 일을 자기가 믿는 신에게 기원하게 마련이다. 이것을 종교 또는 신앙이라고 한다면 우리 고전소설 속에 나오는 신앙 또는 그 發願의 형태는 몇 가지로 구분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명산대천, 日月星辰, 后土神靈에게 기도 드린다. 그런데 이런 명상대천 등의 신령이 감응하여 子女間에 출생케 되는 경우 곧 이들 神靈의 권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上帝께 이들이 주달하여 상제의 明으로 기원을 받아들여 주는 것이다. 곧 이들 신령은 상제의 下命을 받고 인간에 그 뜻을 전달하는 중간 매개자에 불과하다.
둘째, 佛前에 기도 드린다. 그런데 현몽과정에서 태어나는 아들이 전생에 天上仙官이나 仙女가 아니고 東海龍女 또는 南海龍子로서 상제께 得罪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인도하려고 온 매개자가 부처, 仙官 또는 보살로 되어 있다. 용궁 水府도 天上仙界와 같이 상제의 권능하에 있는 곳임을 말하고 있고 용왕도 천계선관과 같은 직능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주시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아들도 득죄하면 천상선관들과 같이 塵世에 謫居한다는 것이다. 이들을 인도하는 상제의 사자는 선관이나 부처 또는 보살로 이들은 한결같은 선관의 직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夏禹氏의 廟거나, 關王廟 또는 祠堂 家廟에서 기도 드리는데 꿈에 조상의 혼령이 현몽한다. 이는 자기의 조상의 혼령이기는 하나 이들의 조상은 천상의 선관이 된 것이다. 이같이 다 천상인이 된 분들을 받드는 地上廟堂에서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래서 조상의 혼령은 산제가 人世에 보내는 使者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기도를 올린다. 부처의 영험으로 자녀간에 점지하게 되면 부처의 命으로 부처의 권능 또는 영험으로 이루어져야 할 터인데 그것이 아니고 부처는 하늘의 옥황상제께 주달하여 상제의 명으로 인간계에 자녀를 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에 태어난 인물이 소설에 주인공으로 등장하여야 하겠으니까 천상선관이나 상제의 侍童으로서 득죄하여 적강한 비범한 인물로 표현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불교[부처]와 옥황상제와의 관계이다. 물론 불교에서는 상제의 존재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우리 소설에서는 이 양자가 어째서 共存하느냐가 문제이다. 우리나라에는 成立道敎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昭格殿이 壬辰亂 이전까지는 있었으나 이는 왕실의 것이었지 일반 민중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성립도교의 형태는 없어도 民衆道敎 내지 道敎的 意識은 널리 통행되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천상계는 도교적 천상을 개념하고 있었고 이 천상의 주재자는 중국의 종교인 도교로는 생각지 않았다. 곧 천상주재신 옥황상제는 萬天의 주재신이고 지상이나 水府, 仙界 어디에서든 주재하는 분으로 믿었다.
그런데, 이런 주재자 옥황상제를 직접 받들어 모실 신앙적 장소가 없으니까 자연히 명산대천 또는 寺刹의 부처 앞에서 기도를 드린다. 그래서 모든 神·佛은 상제께 주달하는 것이고 상제는 이들을 통하여 지상에 下命하게 된다. 여기에서 신령이나 용왕, 부처는 한결같이 만천하의 주재자 옥황상제의 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인물 곧, 도교적 표현으로는 仙官, 信仰的 對象으로는 일개 星神과 같이 나타난다.
우리 소설에서 흔히 그 첫머리에 불전 기도의 한 면을 놓고 불교적 소설로 해석함은 큰 오류다. 이는 상제께 祈求하는 방법의 하나로 그 中間子로 佛前을 택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3. 道士와 異蹟
소설의 전개에 있어 주인공의 위기와 위험의 순간에서 그를 구출해 주는, 현세인과 다른 비범한 능력을 부여하며 현세의 고난을 극복해 주는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道士, 道僧 등으로 설명된다. 소설상의 주인공들은 이들의 조력으로 위기를 넘어서 스토리 전개의 무리를 해결하는 바, 이 도사들의 역할은 소설의 진행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趙雄傳>의 경우를 보자.
간신 李丞相의 화를 피해 고향을 떠난 趙雄 母子는 月京大師를 만나게 된다. 월경대사는 조웅의 부친의 초상을 그려준 바 있는 인연을 가지고 잇다. 조웅을 맞은 월경대사는 손오공에게 만반의 지혜와 법술을 전수한 須菩栃祖師의 소임을 맡아 어린 조웅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15세 되던 해에 조웅은 월경대사를 떠나 세상에 나아가게 된다. 다음에 만나는 사람이 관산의 철관도사이다. 그에게서 神劒과 兵法, 武術, 말 등을 얻고 仙藥으로 張小姐를 환생시키며 이들에게 얻은 지략으로 천하를 통일하는 공업을 세운다.
영웅소설의 전형적 작품인 <조웅전>에서 보인바 대로 월정대사와 철관대사는 승려의 입장에서 병법과 신검 등을 통하여 주인공의 대업 완성에 결정적인 비범성을 부여해 준다. 여기서 볼 때 승려라는 보편적 개념으로서는 그의 역할은 적합지 않음이 드러난다. 칼이란 살생의 도구이고 兵法 역시 佛家의 이념을 구현할 승려가 지닐 바의 지식은 못된다. 이같이 상투적으로 사용되는 道僧이란 일반 승려의 개념을 넘어서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른 한 예로 <鸞鶴夢>의 경우를 살펴보자.
宋의 개국공신 韓彦範이 石鏡山에 올라 하늘에게 기도 드려 얻은 아들 鶴仙이 궁지에 몰려 있을 때 형산의 靑山道士의 조력으로 물에 빠져 죽음을 면하게 된다. 이 청산도사는 독약을 먹고 죽은 洪少姐를 살려낸다. 여기서는 청산도사는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超能力을 가지고 이 소설이 전개된다.
<柳花奇夢>에 나오는 淸虛道人의 경우도 주인공 柳椿에게 도술과 병법을 가르쳐 주어 그 능력으로 후일 전쟁에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게 된다. <劉忠烈傳>에서 忠烈에게 갑옷과 보검을 주는 도승이나, <蘇大成傳>에서 소대성에게 병법과 무술을 가르쳐 주는 靑龍寺의 노승, <龍門傳>의 蓮花山中의 蓮花先生, <李大鳳傳>의 李大鳳이 白雨庵에서 만나는 도승, <玄壽文傳>의 南岳山 日光道士, <張伯傳>의 泗溟山 天冠道士, <張國振傳>의 如鶴道士, <柳文星傳>의 日光道士, <黃將軍傳>의 抔小姐가 도중에서 만나는 도승, <抔弘傳>의 雲淡道士, <謝角傳>에서 角에게 갑옷과 보검을 주는 靑雲道士, <郭海龍傳>의 應天大師…….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보인다.
또 한 경우를 보자, <崔孤雲傳>에서도 이 유형의 인물들을 찾을 수 있는데, 靑衣老僧과 天儒들이다. 천유는 崔盓에게 버림받은 崔致遠에게 글을 가르쳐, 중국의 학사들과 겨룰 수 있는 문장으로 길러낸다. 최치원의 나이 이 때에 세 살이니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천유의 능력으로 세 살의 어린이가 문장가가 되도록 하고 있다. <최고운전>에 보이는 또 다른 유형의 인물은 청의노승이다. 이는 최치원이 入唐 중 용왕의 아들 李牧을 데리고 섬에 비가 내리게 하는데, 천상의 허락없이 비를 내리게 한 이목을 잡으러 내려온 천상인이 바로 청의 노승이다. 결국 최치원이 천상인임을 알고 물러가기는 하나 이 부분에서 그의 등장은 최치원이 천상인임을 입증하는 것으로 결구되어 있다.
또다른 유형으로는 <玉簫奇緣>을 보자. 고려 성종때 張厚良의 아들 彦卿은 洛山寺에세 수학 중 한밤중에 우아한 피리 소리를 듣고 산상에 올라간다. 그러자 산중에는
일위로인이 머리에 팔괘관을 쓰고 몸에 믁하의鿉 닙고 반셕우희 한가히 안겨 옥통쇼鿉 부鏅지라 언경이 눈을 들어 그 로인을 믁셰히 꿌혀보니 창안학발에 청고 쇄락한 풍쏡 공동산상에 황뎨로 더불어 션슐을 강론폁던 광셩믡 아니면 이교반야에 장믁방을 소셔주던 황셕공이라.
언경이 이 노인에게 옥소를 받고 물러난다. 이 옥소는 후일 언경이 安南國에 漂着했다 돌아왔을 때, 전처였던 蘇夫人 소생인 素男과의 만남을 이루어주게 한다. 이런 유형은 <江陵秋月>, <蘇學士傳> 등에도 보이는 '피리모티브'를 이룬다.
이러한 神物의 조력으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해결하는 기법으로 널리 원용되었던 바, 피리, 거문고 등의 전수는 흔히 볼 수 있는 행위로 나타난다.
앞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본 대로 이들의 소설 속의 역할은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우선 주인공의 남다른 지모와 능력을 부여하기 위하여 병법, 무술 등을 교육시키거나, 그에 필요한 보검, 甲胃, 名馬를 줌으로써 앞으로의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모티브를 만들어 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전투나 사건에 참여하여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이는 천상인의 초능력을 개념했던 민중의 의식이 소설적 형상화로 작용하여 이와 같은 유형의 인물을 창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고운전>의 예와 같이 주인공을 교육하여 비범한 인물로 만드는 경우도 있으며, 피리나 거문고의 곡조로 인연을 연결하여 헤어졌던 인물들이 서로 만남에 있어 우연성을 배제하고, 자연스런 상봉으로 유도하는 기법 등을 보인다. 말하자면 이러한 소설적 기법이 스토리 전개에 요소요소에 개입되므로서 전후 사건의 인과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 道僧, 老僧, 大師, 道士 등 여러 가지의 별칭으로 불리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제까지 승이거나 대사라는 명칭으로 인하여 이 같은 소설을 불교소설의 한 기적적 양상으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같은 해석은 좀 유보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成立道敎가 통행되지 못하여 道觀이 없었고 - 물론 昭格殿이 없었던 바는 아니나 일반 민중과는 직접 관련을 갖지 못하였다. - 따라서 도교적 발원의 齋·礁를 올릴 곳이 없었고 또 이런 도교적 형식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수도한 천상적 능력을 갖춘 도사가 거처하는 곳을 막연히 명산대천 또는 암자라 표현하게 되었다. 그러니 암자에 주거하는 인물은 자연히 도승이란 말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막연히 승려로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할의 해석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그들은 도를 체득한 자, 즉 長生不死하는, 인간과는 다른 비범한 초능력의 신선이다. 그러나 천상에 거하는 天仙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신선으로서 천선이 못된 地仙이 있다. 이는 신선의 中位에 속하는데 仙道를 닦아 得道하여 장생불로하게 되었어도 천계에는 오르지 못하고 인간세계에 絶勝의 경개를 찾아 仙屋을 짓고 살고 있다. 중국에서 알려진 地仙으로는 안기생, 상산의 사호선생 등을 들 수 잇다. 또 이들이 사는 곳으로는 경주, 방장, 봉래, 운교, 대현의 오신산과 고호, 화음, 도원 등은 지상 선계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악선도산, 고성 해변의 삼일포, 영락호, 사선정, 선유담 등 仙跡이 많거니와 <海東傳道錄>에 나오는 金可紀와 僧慈惠 등의 一脈이 있었고, 또 <海東異蹟>에 실린 권진인과 남궁두, 홍유손, 남조, 정결, 전우치 등의 이름이 보인다. 이들은 바로 地上仙이다. 또 이들의 이야기는 갖가지 異跡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남겼다. 마치 앞에 든 소설 속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이런 神仙談이 그대로 소설의 한 모티브로 차용되었다고 본다면 우리 소설의 작가들은 다분히 신선담 내지는 도교적 사상에 깊이 浸潤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4. 時間과 空間
도교에서 말하는 우주는 천상과 현세, 水府와 仙界 등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이 공간은 유일의 주재신인 玉帝의 전능에 의하여 지배된다. 이 중에서 천상계에 대해서는 기술하였거니와 천상계에 대한 문학적 표현도 적지 않다.
다음으로는 선계이다. 선계는 신선들의 세계를 말한다. 成仙한 신선이 하늘로 올라가면 천선이 되거니와 한편으로는 현세의 승경에서 소요하고 있는 신선들이 있다. 이른바 지상선이다. 이런 선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 곧 선계다. 이런 선계가 현세에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信實 공간으로서의 선계는 현세에 있으되 시간은 현세의 시간이 아닌 천상의 시간이 흐른다고 인식되었다.
또는 어느 곳 어느 지점이라고 확정해서 믿기도 했지만 신선들이 살만한 곳 즉 선경이라 하였고, 이런 곳으로 武陵桃源도 선경이요, 瀛洲와 方丈, 蓬來 등 신산도 물론 선경이다. 우리나라도 여러 곳에서 선적을 찾을 수 있고 신선고사가 허다하다.
이런 선계의 소설에서 찾아보면
양생이 대경하여 급급히 셔동을 다리고 남뎐산을 바라며 깊은 뫼골로 분찬하여 드러가니 절뎡의 한 초옥이 이시데 흰구람이 자옥히 끼고 학의 우난 소리 심히 맑거날 벅벅이 놉흔 사람이 있는 줄 알고 셕경을 차자 올라가니 한 노인이 안자다가 생을 보고 닐오데...생이쟉일 산의 드러올 계 버들꼿치 지지 아녓더니 하로 사이의 믈색이 변하여 바회 사이의 국홰 만발하여 거날 생이 고이히 너겨 사람을 만나 무라니 임의 팔월이 되엿더라.
(구운몽)
이같이 선계의 시간은 현세의 시간과 같지 않다. 현세 공간에서 우연히 또는 자연스럽게 찾아 들어간 선계에는 흐르는 시간이 현세와는 판이하다. 이런 신선의 시간을 이르는 말 가운데 흔히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이야기는 곧 선계에 찾아간 樵夫가 선인의 圍棋를 구경하고 있다가 塵世의 도끼자루 썩는 것을 몰랐다는 선계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선계 이야기는 소설 <최고운전>에도 삽입되어 있거니와 <해동이적>에 권진인 이야기도 흥미있게 전해지고 있다.
다음 수부는 수중에 있으므로 수궁 또는 용궁이라고도 한다. 이 수부는 현세가 아니고 천상도 아니다. 그대로 독립된 공간도 아니다. 수부도 현세와 같이 천상 옥제의 권능 아래 지배되는 곳이다.
천하에 바다이 넷이 있으니 동해와 서해와 남해와 북해이다. 이 바다에는 각각 용왕이 있으되 동해에는 광연왕이요 남해에는 광리왕이요 서해에는 광덕왕이요 북해에는 광택왕이라…
과인이 상계의 명을 받자와 삼천수족의 어른이 되어 수국을 다스리되…
<토끼전>
위의 경우에는 용왕은 삼천수족의 어른이라 하였으나 천하 四海의 수부가 있음을 말하는 점에서 수부의 공간인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수부공간에 대해 가장 잘 설명되고 있는 것은 <심청전>이다.
데뎌 이 셰샹 갓치 억울하고 고루지 못한 셰샹이 업는지라. 가난코 약한 사람은 그 부모가 나흔 몸과…심청갓흔 츌쳔데효가 필경 임당슈 물에 가련몸을 잠겻도다. 그러나 그 잠긴 곳은 이 셰샹을 리별고 간 하고 상계이나 하나님의 능력이 없한시 큰 셰샹이라.
이것으로 보면 수부의 개념이 잘 표현되고 있다. 그가 물에 빠지게 되자 옥황상제는 사해용왕에게 분부하여 그를 영접케 한다.
샹뎨 분부 겨옵시니 만일 지쳬 하옵시면 사해 슈궁 탈이오니 지쳬 말고 타옵쇼셔…졔 션녜 옹위하야
이 수정궁에 이르자 천상의 仙宮仙女, 太乙眞君, 安期生, 赤松子, 葛仙翁, 靑衣童子, 月宮姮娥, 西王母, 麻姑仙女, 洛浦仙女, 南嶽夫人, 八仙女 등 천상의 모든 신선들이 운집되어 있다.
심청이 그의 어머니 玉眞夫人을 만나는 것도 수부에서이고 수부 즉 천상과 같은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간사유는 渾天說의 영향으로 보이는 바 <三韓拾遺>에도 잘 나타나 있다. 즉 香娘이 吳泰地에 빠져 자살한 부분이 그것인데, 향랑이 빠져 죽자 수부에서는 거북이가 받쳐들고 있었고 연잎 위에 잘 보호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이는 곧 수부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三韓拾遺> 본문 중에 작자 자신이 渾天說에 관한 이론을 그대로 밝혀 놓고 있는 점이다.
Ⅴ. 맺는 말
斲上에서 모인 바와 같이 우리 문학에는 道家的인 隱逸을 노래한 詩歌에서는 儒家的 은둔과는 구별되는 일면을 보이고 자연에 몰입하고 物我一體가 되어 있음을 본다. 그리고 또한 醉樂도 동반되어 있다.
仙詩는 仙跡을 음영한 작품이 많은데 그 공통점은 첫째, 선적이 있는 곳은 어디나 勝景이다. 이 절경이 곧 선경임을 노래하고 둘째, 옛 仙人의 자취를 보고 이들을 그리워하는 望仙 또는 羨仙의 내용을 노래하며 셋째, 仙人의 古事 引用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이는 바로 우리 시인들의 사상의 밑바탕에 神仙思想이 깔려 있음을 말함이다.
金時習은 우리 道敎 系脈 중에 큰 比重을 차지하는 人物이지만 그는 思想性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시에서도 두드러진 시인임을 밝혀 보았다. 蘭雪軒은 女流로서가 아니라 우리 문학에서 우뚝한 존재이고 漢土에서는 높이 評된 仙詩를 남겼다. 한편 우리 道流들의 異色的인 仙詩가 많이 있는데 지면 관계로 이를 소개치 못함이 유감이다.
소설에서는 도교를 믿고 안 믿고가 문제가 아니라 한결같이 天上觀念은 천상 주재자를 옥황상제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우리 소설 속에는 그 思惟의 바탕이 도교와 뿌리깊이 맺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