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문직종

① 출판/ 출판, 오늘의 자리를 위해




황근식 / 시인·환경과조경편집장

현대사회에서 직장인들이 자신의 직업 자체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거의 무리일 수밖에 없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전이 되면 될수록 인간 개개인이 하는 일은 거기에 비례하여 상대적으로 분업화되며 단순화되어서 특별한 능력이나 창의력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바꾸어 표현하면 어떤 업무에 대해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꼭 특정한 사람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거대한 사회, 경제활동 속의 한 인간의 역할은 지극히 단세포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일에 따라서 그 정도의 차이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일반적인 추세이다. 따라서 대두되고 있는 것이 인간성이다. 하는 일이 단순화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성까지 상실된다고는 볼 수 없지만 확실히 개개인이 사회에 대한 기여도는 그만큼 줄어들 게 확실하다.

어떤 의미에서든 인간은 사회에 보다 크게 기여되기를 원하고 자신이 하는 일이나 활동을 단순한 경제활동으로만 생각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공연, 전시, 편집 등의 문화예술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만 하다. 왜냐하면 문화예술 직종이야말로 고도의 개성과 창조성이 요구되는 직종이고 개인의 득실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는 일로 하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 불편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일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이며 이것이야말로 이들이 서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해 확신을 주는 것이 되고 있다.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수만 명의 관중을 감동시켰던 추송웅만하여도 「빨간 피터의 고백」공연으로 성공하기 이전까지 그가 출연료, 교통비, 식대 명목으로 받은 전부가 20만원에도 채 못 미쳤다고 하는 것은 실로 놀랄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연극을 통해서 가질 수 있었던 자긍심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놀랄 일만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음악, 영화, 연극 등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출판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출판의 현황


현재 전국에 등록된 출판사의 총 수는 약 2천 6백여개사이고 그중 전집류를 전문으로 발행하고 있는 50여 개 출판사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일반 단행본 출판사이다.

이들 출판사에서 년간 발행되고 있는 도서의 총 종수는 전집류와 단행본류를 합하여 초판본이 약 1만9천7백여 종, 중판이 약 1만3천9백여 종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총 발행 부수를 보면 년간 약 1억1천5백여만 권에 이르고 있다.

양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인구수나 교육수준에 비해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출판이 한 나라의 문화적 결산서를 작성하는 것과 같고, 또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산파역인 동시에 국가발전의 도구를 만들어내는 일일 뿐아니라 국제 간의 문화교류의 창구 구실을 한다는 면에서 볼 때 그 양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출판물이 지니고 있는 특성

출판물에 대한 평가는 사람들에 따라 제각기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출판물을 대하는 독자의 계층이 어디에 속하는가에 의해서 가치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곧 한 출판물이 독자 혹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출판은 다른 산업에 비해 몇 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첫째가 양과 질을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양적인 면만 강조되었을 때 자칫 상품화하는 데 급급해서 도서가 지니는 본질을 흐트러 뜨릴 우려가 있고 반대로 질적인 면만 추구되었을 때 경영의 어려움을 안게 될 소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를 바꾸어 표현하면 무슨 내용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항상 뒤따른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둘째는 다른 소비재 상품과 달라서 계속적으로 새로운 상품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상품, 이를테면 식료품이나 문구류 같은 것은 한가지 상품을 잘만 개발하면 얼마든지 많은 양을 계속적으로 생산해 낼 수가 있는데 비해 출판물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식료품이나 의류와는 달라서 반복구입이 거의 없는 상품적 특성을 지녀서 한 권이면 여러 사람들이 얼마든지 돌려 볼 수가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대로 물려 줄 수도 있다.

셋째는 앞에 열거된 내용과 연관이 되는 것으로써 다른 산업에 비해서 기획성에 대한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는 가에 따라서 성패가 판가름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성패의 판가름이라고 하는 것은 상품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출판을 통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소기의 목적에 대한 성패도 포함이 된다.

자칫하면 무엇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시하면서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소홀하기 쉬운데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구성을 어떻게 할 것이며, 장정이나 본문의 Lay - 0ut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서 보급이나 내용전달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도서는 엄격한 의미에서 상품일 경우가 우선이다. 좋은 책일수록 많이 보급해야 한다는 논리가 그래서 성립된다. 좋은 책은 또 많이 팔리는 책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실제로 성서나 삼국지 등 고전을 통해서 그러한 실례를 많이 보아오고 있다.

넷째, 도서는 다른 어떤 생산품보다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언어(말) 다음에 문명을 받아들이고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문자를 사용하고 있고, 그 문자는 도서라는 도구를 통해서 표출되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가장 필연적인 조건을 대부분 지성이라 보는데 그 지성의 뿌리를 키우고 지켜온 것이 바로 책임을 감안할 때, 이 사실은 더욱 명백해 질 수밖에 없다.

출판환경개선은 발행인의 몫이다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민족문화를 유지, 발전시켜야겠다는 숭고한 일념에서 헌신적으로 일해왔던 출판인들을 특별히 떠올릴 것까지도 없이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출판인들은 그 시대의 문화적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루에도 50여 종씩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이 결국은 이들 발행인의 결정을 거치게 되고 이렇게 해서 발행된 도서는 국민들의 가슴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영향을 미칠 게 너무나 뻔하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발행되는 도서의 총수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도 약 31만4천여 권에 이르고 있고 납본 불성실로 인해 집계가 이뤄지지 못한 것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늘어나리라 예상된다.

그렇다고 보았을 때 발행인의 책임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발행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사회는 보이지 않게 변화되어 간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 우리나라 출판인들의 이러한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사명을 얼마만큼 잘 감당해왔는가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없지 않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양식 없는 발행인들이 상업적인 면에 너무 치우쳐 불량 도서를 출판해 냄으로써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도 적지 않았다.

출판환경 역시 서구 선진사회에 비해 뒤떨어져서 독서인구의 부족, 인쇄산업의 후진성 등을 비롯하여 출판계의 불황으로 인한 영세성, 유통구조의 불합리, 교육과 연구의 부족에서 오는 출판관의 미확립 및 출판인력의 빈곤, 불량 또는 모방 출판물의 시장 점유 등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특정한 몇몇 사람들만의 힘으로 해결되기란 불가능하다. 발행인 모두가 단합해야 될 경우는 단합해서 해결하고 스스로 개선하고 연구 노력해야 될 경우에는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이 한 예로 출판사 운영을 기업운영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경영의 내실화를 꾀함과 동시에 인재 양성에 무엇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불황 속이라 해도 베스트셀러는 있다라던가 좋은 책은 독자를 창출한다는 말도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출판과정과 출판현상, 유통구조 등을 체계화시키고, 출판을 기획중심으로 경영하기 위해서는 출판을 전문적으로 확립시키고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출판인을 양성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가장 전문화되어야 할 출판이 자본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업처럼 여겨지는 데서부터 문제가 발생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판현실에서 경영인이 곧 발행인이고, 발행인이 곧 편집인인 것처럼 되어있는데 이는 시정되어야 할 급선무이다. 최소한 경영과 편집은 구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호보완이 가능하게 된다. 이는 보다 좋은 책을 만드는 데도 적용이 되고 경영을 잘하기 위해서도 적용이 되는 일이다.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경영자는 출판업에 임해야 함과 동시에 저 사람이 아니고서는 함께 자신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인재를 아끼지 않으면 안 된다.

이해관계에 얽힌 직원구성이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여성인력을 우대하는 일, 업무감당 능력이 없는 직원을 채용하는 일은 경영측면에서나 출판이 본래 감당하고 또 추구하고 있는 목적면에서 볼 때, 큰 후퇴가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편집활동이 살아 생동하는 일, 향상 새로운 것을 접할 수 있는 일, 고도의 지적인 일, 문제의식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매력 있는 직종으로 인정되고 있어서 지적훈련을 받은 인력이 모이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이들을 다듬고 잘 육성하여 훌륭한 편집인으로 키워가는 일도 출판경영인의 할 일이다.

편집자의 설 자리

출판사에 따라서 기획과 편집이 구분되는 경우도 있고, 편집장의 직위도 부장, 실장, 국장 등으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편집상의 총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총칭하면 편집장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했을 때 결국 편집장의 역할은 발행해야 할 도서를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제품으로 완성되기까지의 진행을 맡게 된다. 그러나 편집장의 역할은 얼마든지 세분될 수도 있다.

모든 출판사의 편집장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편집장들은 경영과 사회에의 기여라는 측면에서 이중적 부담을 안고 있다. 좋은 책이 반드시 많이 팔리는 책이라는 함수관계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두루 읽히는 책이란 지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책이 될 수 없다는 뜻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집장들은 기획에서부터 독자층을 면밀히 검토하게 되는데 사실 이 과정이 편집장의 능력을 판가름하게 된다. 정확하게 독자층을 예상하고 거기에 맞도록 편집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필요한 사람'에게 '보다 많이' 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보다 많이'라는 말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많이 팔리는 것도 좋지만 필요로 하는 사람이 보다 많이 이용하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하다.

양식이 있는 편집자라면 무턱대고 많이 팔기보다는 필요한 사람에게 많이 팔기를 원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베스트셀러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 내지는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부분들과 접합이 이루어진 원고가 일단은 베스트셀러가 될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겠고 이것을 어떻게 그러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어필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 역시 거기에 못지 않을 만큼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흔히들 광고력과 베스트셀러를 불가분의 관계로 규정지으려 한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광고는 어디까지나 필요 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보면 그러한 예는 금방 찾아 볼 수 있다. 비교적 최근의 베스트셀러인 김홍신의 「인간시장」,정비석의 「손자병법」, 유안진의 「우리들 영원케 하는 것은」을 잘 비교해보면 쉽게 구분이 가능해진다.

가장 바락 직한 것은 책 자체의 평가, 그러니까 광고에 의존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을 만드는 일이다. 이는 기업경영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출판양식에 비춰서도 그렇다. 지나친 광고는 기업의 측면에서 볼 때 과중한 지출을 초래하여 경영에 어려움을 줄 위험성이 있고 독자편에서 볼 때는 충동구매를 유발시킨다.

환언하면 '필요한 사람'에게 '보다 많이' 보급하는 것은 편집자의 역량에 좌우되는 것인 동시에 편집자가 져야 할 절대적인 부담이다.

그러나 그보다 편집자에게서 더 중요한 것은 양서기획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다.

편집자라면 훌륭한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러한 책이 다행히 구매력을 지녔을 때는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편집자는 사회에 대해 부채를 진 것같이 책임을 느끼게 된다. 특히 장사 속으로 책을 만든 후라면 더욱 그러한 심리에 휩싸이게 되는데 일종의 보상심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경영자의 경우는 판매에 우선을 두게 되고, 편집자의 경우는 양서발행에 우선을 두게 된다.

편집자가 발행인과 좋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다. 한 가지만 예로 든다면, 편집의도의 이해와 수용이 용이해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실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편집장의 의도를 수용해 줄 마음가짐이 되었다는 것은 상호 신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되고, 편집장이 그만큼 심리적 부담을 적게 가져도 된다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보다 나아가서 심리적 부담을 적게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몰두 할 수 있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이뤄진다는 결과가 된다. 이것이 특히 편집자에게 더 요구되는 까닭은 그의 업무가 다른 어떤 업무보다 끊임없는 창의력이 요구되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편집자는 발행인의 견제역을 담당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상업적으로 떨어지기 쉬운 경영자의 생각을 제어하는 일이라던가 측근으로부터 무계획적으로 흘러 들어오는 원고를 차단하는 일도 여기에 속한다. 표현하기는 쉽지만 실제로 이행하기는 실로 어려운 일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능한 편집장이라면 반드시 해내지 않으면 안될 임무에 속한다.

가령 불량도서의 출판이라든가 모방출판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출판사는 발행인에게도 그 책임이 있지만 편집인이 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내지 못한 좋은 실 예가 된다.

경연인에 대한 선의의 견제는 이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불화의 요인이 될 소지가 크다. 그러니만큼 편집자는 발행인의 감각을 휘어잡을 무엇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앞에서 말한 신뢰와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일만이 이를 가능케 해 준다.

편집인들이야말로 출판사의 사활을 걸머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근무환경, 업무량, 임금 등 어느 하나 타분야보다 나을 것이 없다. 더구나 직업에 대한 안정을 기대하기가 힘든다. 이는 출판자본이 영세한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겠지만 경영자의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선 제도적으로 근무조건이나 권익에 대한 주장의 발판이 부족한 현실이고 보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지적훈련을 받은 양질의 인력이 투여되기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사보편집인 그들은 누구인가

일반도서 편집과는 다르긴 하지만 기업사보의 편집 역시 그 성격상 출판전문분야에서 떼 놓을 수가 없다.

기업사보는 일반도서에 비해 발행목적이 뚜렷하고 비매품이라는 점에서 편집방향이 확실해야 하고 내용이나 기획면에서 변화가 비교적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인 편집기술이 요구된다.

기업사보의 대부분은 기업의 이념이나 정책, 실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종업원들에게 알려서 안정되고 신뢰할 수 있는 직장이라는 점을 주지시키는 한편 직원들의 소속감 내지는 참여의식을 북돋우기 위해서 발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여기에다 한가지 더 추가할 수 있는 것은 대외홍보지 역할을 하고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만큼 사보편집자는 항상 경영자, 종업원, 고객의 교량역할을 할 수 있도록 편집방향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보가 경연진 위주로 편집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회사의 대표나 임원들이 참석한 행사 및 근황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종업원에 대한 경영자의 소홀 내지는 안이한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편집자의 관료주의적 사고방식에서 기인된 결과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편집자만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알찬 사보가 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가 사보제작의 경제적 후원자로서 투자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편집자의 직능을 이해해 주고 사내의 또 다른 경영자로서 대우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항상 최적의 업무수행환경을 유지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전제되었을 때, 사보는 사보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편집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보가 경영진의 개인홍보지로 떨어지는 웃지 못할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경제 규모가 대형화되고 기업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커지는 만큼 대외홍보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사보는 단순한 상품 P. R의 차원을 넘어 기업이나 기업인에 대한 인식이라던가 기업이미지 제고하는 새로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에 따라서 사보 편집자의 책임이 가중되고 부담이 커질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여 사보를 발행하는 기업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보들이 경영진의 이해부족 등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처우 문제에 있어서도 사보 편집 업무가 단순 기능직으로 취급됨으로써 인사 등에서 불리한 조건이고, 자칫 윗사람의 비위를 건드릴 소지가 많아서 안이하고 요령부득이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보 편집사원들의 사기진작과 제 구실을 다 할 수 있는 사보발행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위에 열거된 문제점들의 시정과 아울러 사보 편집권의 독립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북 디자이너의 오늘

우리나라의 출판계가 도서의 장정이나 레이아웃에 신경을 쓰게된 것은 70년대 후반 경제신장과 소설류의 독서 붐이 일고 도서를 본격 상품화하면서부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본문은 명조체와 고딕체로 된 것이 전부였고, 표지도 책의 제목을 표기하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러다가「샘이 깊은 물」,「마당」,「여원」등의 잡지에서 편집에 에디터 출신의 북 디자이너들을 기용하면서 새로운 북 디자인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고 대부분의 잡지사에서 전문디자이너를 채용하거나 아예 부서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잡지에 비해서 단행본의 경우는 뒤늦게 편집 디자인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현재도 훨씬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다가 근래에 들어서면서 사보 발간이 활발해지고 또 사진식자가 성행하면서 이른바 전문 북 디자이너들이 전문 스튜디오를 가지고 전문업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현재 스튜디오를 가지고 북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예를 열거해 보면 정명규 디자인실의 정명규, 안그라픽스의 안상수, 김형윤 편집회사의 김형윤, 산돌의 석금호, 서기 2000년 디자인 하우스의 김훈래 등이 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국내 북 디자인의 세계를 발전 정착시켜가고 있다.

그러나 출판업계가 워낙 영세하고 아직까지는 북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출판문화에 기여한다는 사명감 내지는 긍지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사보나 홍보지 편집대행이 주이고, 잡지의 편집대행을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드문 예이다. 또 단행본에 있어서는 대부분 표지장정에 대한 의뢰를 맡아서 해주고 있다.

편집비나 장정에 대한 댓가도 일정한 기준이 정해진 것이 아니고 하여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편집이나 장정이 고도의 창의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창작활동이라 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무리한 요구를 받고 있는 것 또한 이들이 감수해야 할 어려움이다. 구성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과 최소한의 경비는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바램이다.

그러나 현재의 출판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힘들어서 훗날을 기약해 볼 도리밖에 없고, 우선은 앞에서도 밝혀듯이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미래를 위하여

다른 산업의 발전에 비해 그 속도가 유별나게 뒤떨어진 게 오늘날의 출판산업이다. 따라서 이에 다한 대비가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와있다. 이를테면 전자산업을 출판산업에 이용하는 방법으로, 이미 조판에 활용되고 있는 컴퓨터 등을 보다 광범위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한다던가 앞으로 닥쳐올 필자 난에 대비해서 기획집필같은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기획집필이란, 앞으로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인간들의 요구가 다양해질 것에 비추어 한정된 필자들에게 의존해오던 종래의 원고수급 방법에서 탈피한 새로운 방법이다. 이를테면 일정한 목적 하에 자료분석, 관찰 등을 통해서 한 가지 테마를 추출해내고 이 자료에 근거해서 필자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혹은 공동 집필을 통해서 출판하는 방법으로, 소설 창작이나 사회현상 혹은 사물에 대한 집중취재로 이어지는 출판물에서 쉽게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이다.

맺는 말

그야말로 지극히 단면적으로 출판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이들이 이같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까닭은 무엇이며, 이들이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책은, 인간들이 독서활동을 통해서 정신적 성장과 인간생활에 필요한 도덕적 질서를 일깨워 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책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다른 문화예술 직종의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신념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처우는 어떤가.

현대사회에서 가장 방황하는 직장인은 바로 편집인들이다. 이들이 안주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끝으로 강조하는 뜻에서 출판 전문인력개발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함을 적고 싶다.

이 글을 쓰기 위해<출판문화> '85년 9월호 안춘근님의 글을 참고 혹은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