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도시축제를 위한 제언
허 규 / 국립극장장
Ⅰ. 머리글
인간은 가능한 한 놀면서 같기를 원한다. 서로 같이 마시고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놀이와 축제가 빠진 삶은 결국 즐거운 삶이 아닌 삶, 즉 죽음과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앞서 간 어떤 사람은 인간을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나, 축제하는 인간(homo festivus)으로 보고,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놀이를 추구하는 것이며, 인간의 모든 행위는 결국 축제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필자 원고의 주제는 축제를 축으로 전개하져 한다. 축제가 없는 민족은 꿈이 없는 민족이며, 축제 없이는 살아있는 민족도 죽은 민족과 같다. 오히려 축제가 없는 민족은 죽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축제를 없애려고 그토록 발버둥쳤던 잔혹한 일제 아래에서도 우리민족은 죽지를 못했다. 역설적으로 시들어 가는 축제의 뿌리에 매달려 우리 민족은 되살아 난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모든 행위와 문화적인 활동이 놀이와 축제에서 나왔다는 주장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과거로 올라가면 갈수록 놀이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음을 또한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놀이가 모든 인간문화 보다도 오래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알게된다.
이같은 전제하에 현대 산업화의 빠른 진행선상에 놓인 오늘의 모습에서, 우리의 진정한 놀이문화와 축제문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 중대한 교훈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우리의 놀이와 축제를 되찾는 일이다. 시기적으로 '86아시안게임 이후 '88서울올림픽을 눈앞에 둔 길목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역량을 내보일 시기가 점차 다가오는 것에 따른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때이기에 더욱 그렇다. 문화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항상 열린 자세를 가지고 우리 것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계기가 우리문화역량을 총 점검하는 기회는 물론, 손님들 뿐 아니라 국민모두가 문화체험의 기회를 확대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어 우리문화 전반에 대한 자각과 긍지를 갖게 하고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하여 문화예술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같이 잃어버린 축제를 되찾는 방법으로 아직 미성숙된 국민참여문화축제를 성공시키기 위한 거리축제(가칭)를 창출하여 전통을 보존, 재현, 창조의 과정으로 창출하여 건전한 도시축제를 만드는 일이다. 이에 따른 실례와 방안제시로 실행 가능한 것부터 연차적으로 시도하는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Ⅱ. 문화재의 도시축제
1) 창경궁 중건 경축행렬
중앙국립극장과 문화재관리국은 '86년 8월 23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2시간에 걸쳐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과 식민통치정책으로 파괴되었던 조선왕궁을 자주문화창달정책의 일환으로 중건한 창경궁 기념행사로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재현하여 문화재 복원의 중요성과 문화사적 의의를 내외에 선양하고 참여와 관람하는 일반시민들에게 문화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오 경축행사에 관심을 집중시켜 국민의 일치감을 조성하는데 기여하기 위해 動駕行列과 無形文化財行列을 가졌다.
형식은 조선시대 임금이 궁궐 밖으로 행차하는 것으로 그 당시 국가적 행사였던 것을 오늘날의 창경궁 중건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가정하여 임금행차를 연출했는데, 광복후 서울시내에 첫 등장하는 대규모 가마행렬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열띤 반응을 보았다.
행렬코스는 창덕궁을 출발, 종로 3, 4가와 종묘앞 광장, 원남동 로터리를 거쳐 시민의 광장인 동숭동 대학로를 통과하여 혜화동 로터리를 돌아 창경궁으로 오는 것으로 행렬규모는 연 약 1.5km정도였으며 참가인원은 말 6필을 포함하여 동가행렬 1,112명, 무형문화재행렬 350명 등 총1,462명이나 되었다.
주요참가단체로는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150명, 양정고 420명, 취타대로는 여주농고 100명, 서울여상100명, 구군악대 36명, 무형문화재행렬 참가 평택농악의 9개단체 등 17개였으며 소요총물량은 말 6필, 대고(큰 북) 3, 차량3, 의상 846벌, 소품 591점, 장신구 1,927떤 등 총 5천 5백 점이 쓰였고, 총 소요예산은 약 4천만 원이었다
행렬의 순서구성은 선두에 길을 인도하는 부령(部令)이 있고, 다음은 오늘날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한성판윤에 이어 예조판서, 병조판서, 우군절제사 호위병인 시위군이 따라가고 이어 대취타팀인 전부고취가 가고 기장대, 장교단, 동궁가마가 이어지고 어전취타, 의장대, 기장대에 이어 이윽고 어연(御輦)을 호위하면서 정 5품이상의 신하들과 궁녀들이 가고 뒤에 왕비, 공주가마가 붙고 호위군이 뒤따른다.
행렬배치에 따른 고증은 국악학자 장사훈선생 개인소장의 능행도(陵幸圖, 1926년 제작)와 세종실록중 임금의 행차를 자세히 다룬 가례서례(嘉禮序例)편을 토대로 했고 복식은 이화여대 소장의 대한제국 동가도(動駕圖)를 기본으로 해서 유희경, 이경자 선생에 의해 재현되었다. 능행도는 조선임금 정조(正祖)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찾아가는 행렬을 그린 그림으로 4천명의 인원과 말 6백 필이 참여하는 대규모행렬로 선왕의 능을 찾아가는 침울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행차를 묘사한 것이라, 이를 기본으로 하되 전체행렬의 순서와 배치는 세종실록을 참고로 해서 다소 변경시켜 창경궁 중건을 축하하는 임금의 궁궐 밖 행차의 면모로 재현하여 행렬을 연출하였다.
추진경위를 간략히 언급하면, 7월 15일 연구검토이후 2가지 기본 안을 작성한 후 기초자료수집, 분석 규모결정을 하고 29일 자문위원회 소집회의, 31일 대형(隊形)모델을 완성한 후 8월에 들어 복식고증, 견본제작 및 소품과 장신구 제작이후 16일에 실무자 회의를 수차례 가진 다음 22일 행사 전날부터 창덕궁에서 철야준비작업 완료하여 예정대로 당일 23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성공리에 행렬을 마쳤고 행렬의 실황중계가 KBS-TV에서 방영되었으며 각 매스컴의 카메라, 사진기자, 취재기자가 열띤 취재경쟁을 했으며 연도에는 약 25만 명의 시민들이 뜨거운 관심과 박수를 보내주었다.
행렬에 대한 각계의 반응을 요약하면, 장시간의 교통통제에 따른 불편과 불만이 예상됐으나 시민들이 경축행렬에 적극적으로 질서 있게 참여하고, 즐거움으로 받아들여 줌으로써 행사주관자와 일체감을 나눠가졌으며 86년만에 다시 갖는 임금행차 재현으로 소멸되었던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생동감 있게 만나게 되어 옛 왕조의 위엄과 문화의 장려함을 만끽하고,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정책으로 인한 수난과 민족사적인 오욕을 씻어내는 계기를 만들었고 문화국민으로서의 자긍심과 범국민적 일체감을 조성하고, 특히 수많은 외국인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독특함과 장대함을 실감케 하였으며, 이같은 열띤 호응은 생활문화의 공간이 많지 않은 우리의 현실에서 전통문화를 시민모두가 부담 없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거리문화축제 "로 정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밝게 보여 주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임금행차행렬을 서울시 거리축제로 만들자는 제안을 하는 고무적인 반응이 거론되는 성공적인 작품이 된 셈이다.
앞으로 이 행사를 발전적으로 규모와 내용을 보완하고 재구성하여 과거의 행사에 버금가는 오늘날의 경건하고 경축될 만한 축제행사로 이끈다면, 전통적인 시민축제행사로써 단결과 자긍심을 키우고 자라나는 후세에게 산 역사의 교육이 될 것이며 파급되는 효과로 그 밖에 소멸된 행사를 재 발굴하는 촉매역할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계속 보완되고 고쳐져야 할 문제점도 여러 곳에서 지적된 바, 옛 왕실의 의례도감 및 각종 의전에 대하여 역사문화사적인 관점에서 제반 전문분야의 체계적인 연구가 추천되어야 하고, 왕실행사재현의 기초자료가 종합 정리되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이 지적되었고, 영화나 TV와는 달리 소요되는 의상, 장신구 및 소품들이 고증에 의해 정확히 재현되고 더 나아가 문화재적 가치가 될 수 있는 예술품으로 제작되어야 함이 요청되었다.
또한 행렬의 참가, 출연자는 외형적인 모습에서뿐만 아니라 내적인 마음가짐 , 몸가짐, 그리고 행렬보행에 있어서도 당시와 현대에 재현되는 시대정신을 구현 할 수 있어야 하기에 그에 따른 교육, 훈련 및 육성이, 필요하고 소요물량이 방대한 것에 따른 제작에 부담이 적지 않음이 과제로 남게 되었고 진일보된 축제가 되기 위해선 보다 많은 시민 모두가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경축일 같은 날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더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에 간략히 살펴본 창경궁 중건 경축행렬에서 우리는 거리 文化에 관한 많은 시사와 논의를 찾을 수 있겠다. 복잡한 대도시 시내에 문화공간, 거리공간을 찾아 도시축제의 가능성을 살펴보면서 여러 다른 새로운 도시축제의 모델을 예견하고 그에 수반된 발전적인 제안을 여러 경우의 수로 수렴하여 본다면 좀더 구체적인 전개를 할 수 있겠다.
2) 새로운 거리문화의 시금석 -대학로
85년 봄 지하철 4호선 개통과 함께 신선하게 마련된 보행공간으로서 동숭동에 대학로가 개통되었다. 뒤늦게 도시공간에서 쉼터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도시공원 조성에 열의를 갖기 시작하면서 대도시 규모에 맞는 적절한 도시계획으로 큰 행사를 치뤄야 하는 세계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시도로 시선이 모아진 곳이 바로 대학로라 할 수 있다. 이는 도시미관의 측면에서 더욱 활기를 띠게 된 것이지만 우선 문화가 변두리 취급 받아오던 것이 사실이었던 바 아직 손댈 문화사업과 정책이 산재해 있는 중에 이같은 도시공간마련은 획기적으로 칭찬 받아 마땅하고, 계속적인 확대작업으로 발전할 것을 기대한다. 이는 곧 적극적인 문화정책의 실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직 우리의 거리문화가 구미의 그것처럼 자유스런 발상과 행위를 미숙한 우리 현실에서 이렇게 행정당국에서 주도한 것은 점차 이같은 사업이 정착되기 위한 초석으로 보고 싶다.
여하튼 대학로는 문화공간, 거리문화, 보행공간 등으로 거리문화공간에 익숙지 않은 많은 시민들에게 큰 관심과 인기를 받았다. 물론 초기엔 젊은 청소년들의 활동무대로 제공되는 일변도였으나 점차 그들을 포용하는 넓은 의미의 문화거리로 점차 정착되어 감을 볼 수 있다 사실 처음의 예상대로 빠른 시일 내에 문화창조의 거리가 되진 않았지만 초기에 겪는 현상으로 보아 아직 더 점검하고 적극적인 참여와 진행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다운 대학로의 독특한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리문화가 익숙해져 있는 외국의 예를 참고삼아 시행착오를 겪고, 점차 문화시민이 주체가 되는 열려진 공간이 된다면 절취와 멋이 조화된 명소가 될 것이다.
Ⅲ. 도시축전의 모델
1) 전개
새로운 전기를 맞는 이 시대에서 그에 따르는 우리축제의 기본적 모델의 재구성이 노래와 춤, 진행방식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소도시축제 -향토축제 -를 살펴보면 신화적 농신제(農神祭)의 풍요를 비는 단편형식이 축제의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민속, 전통 세시풍속행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축제가 그 형식에 있어서 많은 것을 상실한 채 단순한 복고주의의 재현으로 반복되어 있음을 본다.
어쩌면 정신상실의 형식만이 전개되는 복고주의 관념을 축제상의 새로운 전기마련을 주지 못한 채 전시행사로만 그치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 까닭은 참여자의주인의식이 없어 축제구성과 진행의 책임이 없고, 관(官)주도에 의존해 버리고 지원금에 의존하여 먹고 놀기만 하는 판으로 그치는 데 있다.
도시축제가 우리다운 축제로 정착되기 위해선, 우선 축제의 역사성이 참여자 사이에 깊이 인식되어야 하고, 생활에 밀접한 생활축제가 되도록 옛것의 낡은 관습이나 의식에서 벗어나서 축제화하는 근거 있는 것들을 행사의 축으로 삼아 역동적으로 연출시켜야 하고, 또한 같이 나누어 즐길 수 있도록 일체감치 판을 구상하기 위한 춤사위와 가락의 모델제시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축제는 기능적으로 유기적인 공동체의식이 발현되도록 되어야 사회적 의의가 있고, 정신적 산물로 남아 경제적 기능마저 가미된 놀이의 성격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축제는 스펙타클을 연출할 필요가 있다. 현대적인 입체감각에서 축제가 이뤄지려면, 장관을 이뤄 경탄을 자아내어서 축제를 강한 이미지로 남겨 야 할 것이다.
지워지지 않는 모습으로 남았을 때 그 축제는 그 도시(지역 )의 자랑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비로소 계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곧 그 지역의 향토애와 직결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전제의 한 예(例)로 서울시 용산구의 지역축제로 뿌리내려 가는 남이장군대제 (南怡將軍大祭)를 찾을 수 있다. 관이 간섭 아닌 적절한 관심표명으로 지역주민들의 잔치적 관심과 자랑으로 표현된 모델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
이밖에 강릉의 단오제도 공상적인 모델로 도시축제의 유형으로서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2) 모델제안
그러면 지금까지 서술한 논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시축제의 모델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본래의 축제원형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의미로 앞에서 예로 밝혀 본 임금행차를 간단한 궁궐복원의 테마에 맞춘 행렬의 재현에서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 해석으로 보완, 변형하여 새롭게 가치부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궁중문화를 재현하는 면에서 일단 장관을 이룬 공(功)은 있으나 구경거리로만 치우친 과(過)를 면밀히 연구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즉 정조임금이 수원에 있는 선왕의 능행 행차에 따른 부수 행사를 고증하여 우리시대의 격에 맞는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우선, 행렬행차코스를 종전과 같이 궁궐 주위만 맴돌지 말고 요즈음의 석가탄신일에 갖는 연등행렬의 역순으로 궁궐에서 한강기슭까지 가는 코스를 개발하여 옛 임금이 강을 도강하는 큰 일을 장관으로 꾸며 볼 수 있겠고, 한강축제형식을 스포츠, TV기획물시리즈 일변도에서 문화예술축제로 연계시키는 의미에서, 임금행차행렬이 한강에서 마무리되는 것을 제안한다.
세부적인 것으로는 부교(浮橋)가설에 따른 물위에서의 축제로서 '평양감사선유도', 민속적인 '띠뱃놀이', 풍어제 등이 수상축제와 강변축제를 복합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선 한강이라는 거대한 물리적인 구조물을 무대로 주제가 뚜렷한 축제를 벌여 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행차의 본디 뜻이 선왕에 받치는 효행에서 나온 것이니만큼 효(孝)와 문화라는 테마를 기초로 하여 전 시민이 같은 주제 하에 능동적으로 참여, 창조하는 축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기존의 확인된 자료와 지금 계획중인 한강에 따른 행사와 축제계획안에 이와 같은 축제가 가미되어 장대한 구경거리는 물론 참여자 스스로 즐겁고 의미 있는 축제로서 정착시켰으면 한다.
이같은 유형의 제안으로는 조선통신사일행 4백 여명 이 일본에 드나들던 행사 역시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 과거의 조선통신사행렬이 현재 일본에 많은 지역축제를 남겼다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겠다.
이밖에도 1600년 인현왕후 이후 1906년 순종왕비까지 국혼(國婚)이 30차례 있었던 자료가 선명하게 전해지고 있어 궁중혼례 절차가 우리들에게 새롭게 재현 가능한 소재가 될 것이고, 그 외에 각종 옛 그림, 옛 기록에서 끌어낼 수 있는 자료가 많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 전통문화축제의 의식 있는 재현은 현대인의 미적 감각 개발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오늘의 세계 속에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축제모델 제안에 따른 실행방안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참가자 구성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행사, 각 기관행사가 항상 겪어온 병폐의 하나가 참가자 동원의 문제였다. 사실상 진정한 축제의 의미라면 전적으로 축제의 주인공인 참가자 스스로가 축제를 즐겁고, 유익한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바로 이 점에 유의해서 민간주도의 원칙으로 기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 방안으로 조직을 관주도 형식을 지양하고, 관은 관심을 갖고 적절하게 지원하는 선에 머물고, 민간주도의 축제행사계획이 수립될 수 있게끔 구성 안에 그 세부적인 방안 및 규정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 다음에 참가자구성을 축제 일반참가자를 모집하되, 참가자가 회비를 부담하고 참가하는 형식으로 하여 참가자 스스로가 축제의 주최자가 되게끔 하는 것이다. 이는 곧 막대한 경비조달의 한 몫을 거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그리고 대부분의 재원확보는 각 기업체를 협찬금, 광고비 등 명목으로 참여시켜 축제행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함으로써 조달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진행의 면에 따른 방안으로는, 전체 축제진행과 내용에 있어 일체감을 맛보는 동질성을 부여하기 위한 모색으로, 음악과 춤을 공유하게 한다. 즉 노랫가락과 춤사위를 직접 같이 할 수 있게끔 참가자 회원모집시에 미리 정해 간단한 춤과 노래를 연습받게 하여 축제 시에 전체가 일체감을 얻을 수 있는 행렬과 춤, 그리고 노래가 되게 한다.
이에 따른 표현양식은 다양한 장르에서 여러가지 유형으로 연출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테마로 묶여지고 각기 나눠진 큰 테두리가 정해져 있기에 그러하다.
위와 같은 방안제시는 일반적인 종전의 축제형식을 지양하고 거대한 도시축제를 창출해 내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국민을 신명난, 축제의 주체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며 대내외적인 문화홍보측면을 고려한 구상이다. 이렇게 계획되면 축제행사 규모가 대형화될 것이므로 매년 행사가 어려우면 격년제, 혹은 다른 방법으로 축제정착에 필요한 쪽으로 구상돼야 할 것이며 이의 정착성공은 자연히 소도시 및 지방지역문화원으로 파급되는 효과가 일어날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된 몇 가지 실행방안을 더 들어본다.
① 축제의 장소는 특정지역에 국한시키지 말고 각 대, 소공연장 및 시내공원, 운동장, 마당, 주차장‥‥‥학교, 강당, 기업체의 강당, 실내체육관 등을 축제공간으로 적극 활용한다.
② ①과 같은 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야외극, 야외음악회, 전통예술, 대중참여예술축제, 놀이문화 등을 기획, 연구, 개발하는 전문연구팀 구성이 필요하다.
③ ②와 같은 전문가 외에 장치, 조명, 음향, 의상, 소도구, 장신구, 분장 등의 공연술 개발을 위한 전문가 양성이 병행되어야 한다.
④ 공연예술 각 분야의 전문가는 물론 매스미디어가 적극 참여하는 장을 마련하여 축제의 질과 일반인의 관심을 높일 수 있게 한다
⑤ 축제 표현양식에서 전승적인 종목과 창작적인 종목은 엄격히 구분하여 무원칙적이고 무절제한 양식의 혼합으로 일종의 문화파괴 작업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
⑥ 참가자가 취향별 연령별로 구분되어지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하여 각 구분별로 취사선택하는 적극성을 갖게 하며, 놀이와 축제의 시기나 규모에 따라 단일한 종목으로부터 혼합적인 양식으로 종류를 조절할 수 있게 한다.
Ⅳ. 맺는 글
축제는 그 지역 , 도시가 쓸어버린 추억의 불꽃놀이다. 잠시 밤하늘을 밝히다가 다시 본래의 어둠으로 사라지는 그 불꽃은 대동사회의 꿈이며 태초의 질서의 세계를 넘보다가 현실의 질서세계로의 창조적 귀향 행렬인 셈이다. 우리민족은 축제의 민족이었다. 비록 그 면면한 축제는 형식만이 조금 남아 본래 정신 상실의 상태로 전승되고 있지만, 풍년을 기리는 축제에서부터 크고 작은 제의에 바쳐지는 각종의 염원들은 우리에게 축제의 새로운 의미를 암시해 준다.
지역단위의 도시축제는 결과적으로 그 참가자 구성원들의 향토애의식, 역사의식, 일체감형성에 도움을 주고 또한 현대산업화에 시달린 심신의 긴장해소로서 마음의 평정에 이바지하고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며 아울러 축제의 양식과 예능은 예술 발달의 모태가 될 수 있다.
축제의 현대적 수용에 따른 변화와 변형은 사회의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의 더 진보되고 복잡다난해지는 고도산업화사회를 바라보면서 학교, 회사, 공장 등 그런 집단적 지역에서 귀속감을 갖고 공동체의식을 키우기 위한 현대적 도시축제는 일반 공연예술의 극장식공연과 함께 앞으로 많은 과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여러지역의 다양한 형태의 도시축제들을 점차 개발, 육성해 나간다면 더욱 가속화되는 산업사회에서도 변화에 대처하는 유연성을 갖게 되고 정신적 여유와 축제적 인간의 기쁨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