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양적으로 풍성했던 오페라계
-서울오페라를 중심으로-
박수길 / 한양대 음대교수
지난해를 돌이키면서 이 글을 쓰는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무언가 씁쓰레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1986년 Asian Game을 멋있게 치른 우리 국민의 자부심은 일본을 앞지르고 중국을 바짝 추격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던 쾌거를 생각하면서 이해를 넘기는 순간까지 그 감격을 새기고 있다. 이런 장쾌한 순간들이 88서울 Olympic에도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은 출전했던 선수들에게는 물론 모든 체육관계자들에게 쏠리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체육진흥책은 86을 기점으로 일단 성공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성공이 88까지 이어져야 되겠다고도 생각해 본다.
●오페라공연 (서울) (도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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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연 일 시 |
공 연 단 체 |
작 곡 자 |
작 품 명 |
비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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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17일 |
MBC |
벨리니 |
노르마 |
한국초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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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18일 |
MBC |
풋치니 |
나비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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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16일 |
서울오페라단 |
도니젯티 |
돈·파스콸레 구두쇠노총각 |
한국초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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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20일 |
국립오페라단 |
구노 |
로미오와 줄리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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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27일 |
김자경오페라단 |
백재훈 |
에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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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1일∼13일 |
국립오페라단 |
공석준 |
결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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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23일 |
시립오페라단 |
박준상 |
춘향전 |
한국초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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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30일 |
서울오페라단 |
오숙자 |
원술랑 |
한국초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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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13일 |
영국로얄오페라단 |
풋니치 |
투란돗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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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비제 |
카르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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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생상 |
삼손과 델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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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6일 |
문예진흥원 |
홍연택 |
시집가는 날 |
한국초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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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8일∼11일 |
국립오페라단 |
백병동 |
이화부부 |
한국초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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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7일∼19일 |
서울오페라단 |
장일남 |
대춘향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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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9일 |
시립오페라단 |
베르디 |
나붓꼬 |
한국초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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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10일 |
국립오페라단 |
풋치니 |
쟌니스끼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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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마스카니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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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2일∼23일 |
국제오페라단 |
사니젯티 도 |
사랑의 묘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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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9일 |
김자경오페라단 |
페르코레지 |
하녀 마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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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메놋티 |
아말과 크리스마스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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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체육의 체전에 곁들어 문화예술계도 활발하게 움직임을 보였던 해가 1986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미 1985년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했던 문화예술계의 열기는 86년에 접어들면서 그 열기가 가속되어 다른 해에 비해서 양적으로 크게 풍성함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성악분야 특히 Opera계의 움직임은 예년에 비해 세배 가까이 되는 오페라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서울에서 만도 24작품 (음악대학 학생 오페라 포함)이 무대에 올려졌는데 그 중에서 한국 작품이 7작품이 공연되었으며 초연작품은 4작품에 이르고 있으며 한국초연 외국작품도 3작품에 이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서울에서 공연된 작품들과 제작 단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음악대학 학생오페라 및 기타 공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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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연 일 시 |
공 연 단 체 |
작 곡 가 |
작 품 명 |
비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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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29일 |
이화여대 음대 |
홈퍼딩크 |
헬델과 그레델 |
연주회형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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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1일∼12일 |
서울대 음대 |
베르디 |
춘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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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4일∼15일 |
한양대 음대 |
스메타나 |
팔려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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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6일 |
경희대 음대 |
모짜르트 |
여자는 다 그러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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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4일∼27일 |
오페라상설무대 |
도니젯티 |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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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0일∼23일 |
소극장 산울림 |
공석준 |
결혼 |
1948년 이후 우리 오페라인의 손으로 그야말로 오페라에 대한 정열과 집념으로 오페라 무대를 만들었던 40여년 가까운 오페라 무대를 만들었던 40여년 가까운 제작된 해는 없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86 체육제전에 편승하여 문화올림픽을 치러야 한다는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의 열의가 86Asian Game의 성과 못지 않게 우리의 오페라계도 양적으로 큰 성과를 올렸던 해였다. 그러나 모든 예술활동은 단시간에 어떤 결과를 가져 올 수 없는 것임을 볼 때 이렇게 갑작스런 양적인 팽창을 감당할 만한 오페라계의 준비도 없이 공연을 치루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국 Royal 오페라단 내한 공연을 빼고는 모두가 우리의 손으로 제작되었다. 이 중에서 세 작품(Madama Butterfly, Romio et Juliette, Nabucco)은 외국 지휘자와 연출자를 초청하였으며 두 작품(Madama Butterfly, Nahucco)은 출연진의 일부를 일본과 이태리에서 초청하였다. 그 나머지 작품들은 모두 한국의 지휘자 연출자 그리고 성악가들의 손으로 무대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휘자 연출자 등의 Staff들과 출연진들은 몇 편씩 겹쳐야 되는 현상을 빚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출연진의 경우는 국내 오페라무대에서 활약하는 몇 성악가들이 두세 달 사이에 3, 4편씩 출연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충분한 연습과 준비가 따르지 못하는 과정에서 그 공연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으며 한편 제작자 역시 한 달에 2편의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지게 되고 보니 흥행의 성공여부에 집착한 나머지 충분한 제작비를 할애하지 못하고 졸렬한 무대를 만들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성의 없는 무대는 오페라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 되고 또 나아가서 우리 오페라는 볼 것이 못된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고 오페라 공연을 멀리하는 그야말로 역 오페라 운동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본다. 내년이면 88Seou1 Olympic이 열리는 해이고 금년은 그 준비를 위한 해처럼 여겨진다. 이제 우리는 이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될 줄 안다.
첫 번째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창작오페라에 대한 것이다. O1ympic개최가 확정되고 난 이후부터 우리 것을 찾아 발굴해야 한다는 문화예술계의 소리는 Opera 계에도 깊이 파고들어 우리 작곡가에 의해 작곡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의 오페라를 개발해야한다는 취지에 맞추어 지난해는 무려 7작품이나 공연되었는데 이것은 문예진흥원의 창작물에 대한 지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진다. 어쨌든 이미 공연되었던 「결혼」「춘향전」(박준상 작)「원술랑」(오숙자 작) 「시집가는 날」 (홍연택 작곡) 등 4작품은 각 단체에서 작품을 의뢰해서 초연된 작품들이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많은 오페라 작품들이 초연되고 나서 성공을 거두지 못해 영영 파묻힌 경우가 있고 또 몇 차례 수정 혹은 개작을 하여 오늘날까지 많은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어지는 경우, 초연부터 크게 성공을 거두어 지금까지 명작으로 남아있는 경우, 또 한 가지는 초연은 크게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이후 별로 공연되어 지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우리 오페라를 발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큰 전제에 적극 찬동을 보내면서 지난해 초연된 한국오페라 4작품의 공연 성과가 과연 어떠했는가를 저울질하기 보다는 초연된 4작품을 어떻게 더 좋은 작품으로 남기기 위해 작곡자는 물론 지휘, 연출 및 출연자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중요한 과제라 생각한다 . 지난해와 같이 양적으로 많은 작품들이 공연된 그 틈바구니 속에서 좀더 신중한 공연을 가지지 못했던 여러가지 문제점을 반성해 보면서 이러한 창작 오페라에 대한 열의나 지원이 몇 년전에 이루어졌더라면 모든 면에서 차분히 기회하고 또 충실한 연구를 거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하나의 행사로서 공연하고 잊어버리는 작품과 공연이 되지 않도록 초연된 작품을 평가하고 분석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작곡자와 작가 그리고 공연에 직접 참가했던 Staff들과의 연구가 반드시 있어야 되겠고 이러한 작업은 문예진흥원에서 주관해서 실행해 보는 것도 훌륭한 작품을 남긴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다고 보여진다. 두 번째로 생각하는 것은 Staff와 Cast에 대한 문제다. 오페라 지휘는 몇 년 사이에 외국에서 연구하고 귀국하는 젊은 지휘자들이 있어서 현재 관현악단을 이끌고 있는 중견 지휘자들과 함께 그런 대로 오페라 공연을 맡아서 이끌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연출 분야는 현 오페라무대에서 활동하는 2,3명의 연출자밖에 없는 실정에 처해 있다. 몇 오페라 단체에서 외국 연출자를 초빙하여 공연에 임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오페라 연출의 장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외국 연출자를 초빙하여 한달 정도의 연출기간을 통해서 연출자를 도와 일하는 조연출자들 및 관자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연출상의 지식을 얻고 자신의 연출가로서의 능력에 도움을 줄 수 있을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계획을 세우고 연출 또는 무대에 관한 제 분야에 뜻을 둔 젊은이들을 발굴하여 몇 년의 기간동안 외국의 오페라극장에 연수시키고 그 기술을 배워올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이것 역시 문예진흥원에서 추진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곁들여서 성악가 즉 출연자들의 문제도 빨리 대책을 세워야 될 중요한 문제에 도달했다.
오페라를 제작하는 제작자는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 일단은 일반 대중에서 잘 알려진 성악가들을 주요 캐스트로 기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각 오페라단마다 같은 현실이고 보니 거의 같은 Cast가 이 작품 저 작품에 겹치기로 출연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어떤 면에서 오페라를 충분히 소화하고 작품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성악가는 불과 몇 사람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으리라 어쨌든 오페라제작이 양적으로 갑자기 많아지다 보니 알맞은 출연자를 찾지 못하는 어려움이 제작자들에게 안겨지게 되었다. 이것 역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매년 많은 성악도들이 원대한 야망을 안고 외국으로 유학의 길에 오르고 또 매년 어느 정도의 연구를 마친 성악가들이 귀국을 하는데 오페라에 출연할 적합한 성악가가 없다는 것은 무언가 정책에 잘못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출연 캐스트 즉 오페라 가수를 양성하는 문제도 지금부터라도 계획을 세우고 우수한 장래성 있는 젊은 성악인들을 선발하여 일정기간 훈련을 시키고 또 외국에도 연수를 보내서 양성하는 계획이 있어야겠고 이것 역시 문예진흥원에서 주관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즈음 우리는 88년을 目標로 살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모든 초점을 88에 맞추고 있다. 86년을 경험했듯이 88년도 하나의 더 큰 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모든 계획이 88년을 넘어서 2000년대를 향하는 차원에 놓고,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즉흥적인 정책과 기획을 지양하고 하나 하나 문제점을 찾아서 계획해 나가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되겠다. 정년 1987년은 86년에 얻은 열기와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시작해 보는 해로 정했으면 한다. 체육진흥책으로 좋은 성과를 얻었던 것처럼 문화예술 진흥책으로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해 나간다면 반드시 한국 오페라계는 밝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