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칼럼

88에는 세계예술 사조의 향방을 바꿔놓자




한명희 / 국악평론가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듯이 지난번 제10회 아시아 경기대회는 우리민족의 저력을 과시한 퍽 인상적인 행사였음에 틀림없다고 하겠다. 마치 국력의 신장을 웅변하듯 종합 2위의 감격을 안겨주었던 스포츠경기의 전적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근간으로 한 갖가지 다채로운 예술행사들은 실로 모처럼 우리 배달겨레의 가슴속에 자주문화에 대한 뿌듯한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족 했다고 하겠다.

잠실 주경기장을 수놓았던 개폐회식 때의 그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색채의 율동은 얼마나 황홀하고도 감격적이었으며 장안의 유수한 공연장들을 풍미했던 그 우아하고도 개성적인 전통예술의 가락과 색채와 장단들은 그 또한 얼마나 멋과 신바람으로 열기를 돋우었던가. 마당놀이에서 표출되는 해학과 익살과 신명은 얼마나 웃음꽃을 피워냈으며 코스모스 성화봉송길을 따라 방방곡곡에서 펼쳐진 그 원색의 풍물놀이들은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감미롭게 살찌워줬던가.

그래서 아시아대회가 있었던 우리의 서울은 더없이 활기차고 자랑스러웠으며 우리의 가을은 더없이 풍요롭고 윤택했으며 우리의 조국 산하는 더없이 아름답고 복되게만 여겨지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처럼 전통예술을 기저로 해서 치러진 '86아시아 경기대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고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88서울문화올림픽이라는 거창한 국가대사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의 처지고 보면 우리는 이같은 소성에 자족하기에 앞서 내일의 알찬 결실을 위해서 오히려 냉철한 자기점검을 거치는 것도 현명한 일이라고 하겠다.

앞으로 88의 예술행사에서는 여러가지 보완할 점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우선 매 공연마다 선명한 주제의식으로 민족적 이념이나 혹은 문화적 지표를 뚜렷이 부각시키는 일에 각별히 유념해야 하겠다.

또한 전통의 재현적 공연에만 비중을 둘 것이 아니라 어제의 전통을 모태로 한 내일의 비전 내지는 미래지적인 예술정신의 구현에도 상당한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더 큰 욕심으로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88행사에서는 세계인에게 참다운 예술의 궁극의 목표를 제시해고 더욱이 우리 전통예술이 세계예술사조의 향방을 바꿔놓는 일대 전기의 역할까지 해 낼 수 있도록 각별한 배려와 치밀한 기획이 선행돼야 하리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