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의 현대적 조류
최동선 /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역임
■ 현대음악사의 흐름
음악극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뛰어넘어서, 이 글에서는 현대음악의 사상과 흐름이 어떠한지를 음악극 측면에서 살피고자 한다. 종합예술서로의 음악극, 음악극의 변천과 합창 오페라, 베리오의 음악극, 연주 능력의 확장, 카겔의 음악극과 그 음악적 효과, 케이지의 해프닝 음악, 슈톡하우젠의 이벤트 등과 같은 복잡 다양해진 현대음악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어서 현대음악이 탐구하는 과거 음악에 있어서 현대음악 계보와 다양성, 인용과 현대 음악의 미학, 과거 음악의 재작곡, P·블레즈가 이끄는 프랑스의 음향·음악의 탐구와 조정 연구소에 관해서 언급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현대 음악의 흐름과 정체가 무엇인가에서는 환경음악과 음 발생 장치, 네오 로맨티시즘의 음악과 통합예술, 통합예술과 섹스오페라, 완성된 음악과 잡음, 그리고 전자음악과 비디오 음악 등을 음악극과 관련시켜 쓰고자 한다. 현대음악의 조류를 살필 때는 드뷔시로부터 그 이야기의 실마리가 잡혀져야 할 것이다. 그가 말라르메의 시를 읽고 악상을 찾아 관현악곡으로 작곡한「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 그 첫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리고는 후기 낭만파의 배경이 어떠했는지를 살피면서 새로운 화성에 대한 것과 새로운 리듬, 그리고 새로운 형식이라는 차원에서 맺힌 이야기가 풀려져야 하리라. 이야기 속에는 작곡가별로(또 시대적 차원에서)풍토성의 개념풀이가 있어야 하겠고, 또 이 풍토성이 신고전주의에 어떻게 영향을 끼쳐 왔는지를 살피는 것이 현대음악의 접근에 길잡이가 되리라고 본다.
그런가 하면 쇤베르크와 그 제자들이 음렬주의에 의한 무조음악의 작곡법은 오늘의 음악이 있기까지의 결정적 맥을 짚었고, 이는 현대사회의 질서를 음악으로 표출하는 중요한 몫을 갖고 거대한 봉우리를 이루었다.
세계의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눈이 이제 동양으로 돌려지는 가운데 그들의 음악에 대한 이념은 음렬주의의 승계와 더불어 전자적 기술에 이에 더하여 상상키 어려울 정도의 음창조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들이 정신세계에 파고들고 있다. 그밖에 우연성까지도 음악의 창작과 큰 몫을 하고 있다. 한편 1950년대를 출발점으로 하는 音樂劇이 점점 작곡가들의 정신세계를 파 들어가고 있다. 극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와 음악의 관계, 음악과 정치의 관계가 일선 작곡가들의 리얼한 작품을 바탕으로 작곡가들에 의해 재창조된 종합예술로서의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그 통합음악의 창작방법도 갖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 종합예술로서의 음악극
이 글에서는 특히「음악극」에 관한 조류를 양식상의 문제와 결부시켜, 근대 서구사회에서 문제작으로 또는 문제작가로서 지목된 몇몇 주요 작곡가와 그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음악예술, 특히 작곡의 세계적 추세(사조)가 어떠한가를 조명해 보는데 의의를 둔다.
1950년대 작곡가들의 노력은 세 가지의 주요한 방향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음렬주의의 확장, 전자 미디어의 발전, 그리고 우연성의 도입이 그것이다. 중시된 것은 음악 소재의 탐구, 음악언어의 발전, 작곡의 시스템과 철학이었다.
이러한 객관적 관심이 주어짐으로써 작곡가가 오페라, 발레라는 혼합된 장르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도 당연한 일이며, 거기에는 순수한 음악적 문제가 포함될 필요성이 있었다. 이 시기에「음악극」 작품을 쓴 작곡가, 이를테면 브리튼, 티벳, 헨째 등은 그래서 전위의 개척자 중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1960년대에 이러한 상황은 역전되어, 1970년까지에는 음악 속에 연극적 요소를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 전위 작곡가는 별로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음악극은 1950년대에 치렀던 성과 이상으로 밀접하게 대중과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1952년대에 많이 발표된 작곡가의 성명문이나 이론서는 작품 자체가 아니더라도 마치 청중을 낙담시키려는 듯이 의도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또한 직접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철학이나 정치에 대해 의논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가장 신속하게 설득력을 가지고 논의할 수 있는 곳이 극장이었다. 더욱이 일반 베르크의 오페라「룰루」이후, 무대 작곡에 하나의 탈피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루어야 할 일이 많음을 뜻했다. 특히 아르놀드 쇤베르크의「달에 끌린 삐에로」에 의해 시사된 새로운 형태의 음악·드라마는 더욱 연구되어야 할 것이었다.
■ 음악극의 변천과 창작 오페라
오페라를 창작하는 중요한 젊은 전후 작곡가 중 한 사람은 이태리의 루이지 노노였다. 그는 삐에르 블레즈와 칼 한인츠 슈톡하우젠과 협력하여 50년대 초기에는 전면적으로 음렬기법에 힘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만 해도 그는 인도적이고 동정심이 있는 사람, 헌신적인 사람으로서의 힘찬 표현을 주는 작품을 써 왔다. 더구나 그이 과격성은 언제나 매우 이탈리아 적인 현실주의에 의해 메워져 있고, 그것은 칸타타「단절된 노래 Ⅱ」에서 극도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정치범에 대한 다이나믹한 응답이라는 점에서 시사문제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가 스타일을 바꿔 쓴 첫 오페라는「단절된 노래」이다. 그의「인토렌란짜」는 합창 오페라이다. 그 음악은 가끔 포스터용 붓의 거친 필법을 나타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노노는 그의 현실적 공감을 중심인물, 곧 주위의 모든 적의의 희생인 한 사람의 이민에게까지 확대시켰다.
■ 베리오의 음악극
노노와 같은 나라의 작곡가인 루치아노 베리오의 경우, 그의 정치적 헌신은 노노만큼 분명하거나 솔직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약간 비슷한 노선을 취했다.
50년대 중기에는 그도 역시 불레즈나 슈톡하우젠의 방향과 연관을 짓고 있었다. 예를 들면, 5개의 오케스트라군을 위한 「알렐루야 Ⅱ」는 슈톡하우젠의 「그룹펜」에 호응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인성 (人聲)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다른 작곡가와는 구별된다. 그는 전통에 구애받지 않고 폭넓은 인성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한편,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유창함으로 목소리를 다룰 수가 있었다.
그의 음악은 또한 기악적인 서법이 육감적인데다가 꿈과 같은 분위기를 갖는다는 점에서도 달랐다. 이들 특징의 모든 것은 1960년경에 당시 그의 부인이었던 카시베르베리안을 위해 씌여진 작품 가운데서 찾아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가수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에피파니」, 가수, 하프 두 사람의 타악기 주자를 위한 「써클스」이 두 작품은 어느 것이나 베리오의 작품에서 음악과 말의 밀접한 관련을 전형적으로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에피파니 」에서는 조이스 푸루스트 브레히드, 그밖의 작가들의 텍스트에 의한 음악으로서, 각각 전혀 다른 스타일로 쓰여져 있다. 한편 「써클스」에는 E·E 커밍즈의 시에 의한 말의 음악 Word Music 그 신텍스 Syntex 로의 분해에 대한 음악적 등가물을 창조함으로써 증가된 음이 악기의 싸운드에 어떻게 융합되는가, 어떻게 그것을 모방할 수 있는가가 검증되고 있다.
그러므로 「써클스」는 베리오의 첫 중요한 극작품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형식의 순환적 성격은 무대에서 가수의 움직임에 따라 명료한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극작품 「파싸지오」로의 길을 예비해 주고있고, 노노의 「인토레란짜」와 마찬가지로 중심인물은 코러스에 의해 박해를 받게 된다. 다만 여기서는 주인공이 여자이고 주제는 사회의 물질주의에 의해 야기된 인간의 타락이다.
베리오가 이에 계속해서 쓴 작품은 인종문제를 다룬 오라토리오극 「흔적」과 단테의 말을 순회하는 텍스트·음악 꼴라쥬에 의해 자본주의를 공격한 음악극 「라보린토스 Ⅱ」이다. 후자는 60년대 중기, 가끔「음악극」의 이름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종류의 음악극 작품의 실례이다. 거기서 음과 텍스트, 제스추어는 스트라빈스키의 소규모 극작품이나 쇤베르크의 「달에 끌린 삐에로」등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방법으로 통합되었다고 생각된다.
■ 연주능력의 확장
이는 P·M·데이비스라든가 H·바드위슬 등 젊은 작곡가들의 음악극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면 데이비스의 「미친 왕을 위한 8개의 노래」는 한사람의 인물(발광한 조지 3세)을 극도의 심리적인 상황에 두고 다룬 점에서 「달에 끌린 삐에로」와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으며, 주인공은 소편성의 연주가들에 의해 지배되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대항하고 있다고 보아야 옳다.
베리오는 「라보린토스 Ⅱ」이후, 오페라에서 여러가지 음악적, 극적 수단의 대규모적인 사용으로 진척되어갔다. 이 작품은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올페오」의 텍스트를 재사용함으로써 이 장르의 기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또한 베리오 자신의 것까지를 포함함은 물론, 다른 음악에서도 많은 인용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의 레벨에서 볼 때, 이것은 서양음악의 비평사이지만 타이타닉호처럼 피할 수 없는 종말로 돌진하고 있는 서구사회를 나타내는 정치적 표명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베리오의 「파싸지오」, 「라보린토스 Ⅱ」와 같은 작품을 특히 연극적인 것과 구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목적이 극장이건 콘서트 홀이건 그의 음악 자체의 대부분에는 극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때때로 독창(주)자의 극적 능력과 결부되어 있다.
베리오는 그 능력을 「씨꿴짜」라는 씨리즈 음악에서 면밀하게 탐구했다. 「씨꿴짜」는 각각 특별한 비루투오소를 위해 쓰여져 있어, 제각기 어느 특정한 악기의 연주에 있어서 독자적인 그 무엇인가를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씨꿴짜 Ⅵ」은 비올라의 열광적인 보임을 요구하고 있고,「시꿴짜 Ⅵ」는 피아니스트에게서 양손 양말의 극도의 기민성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작품은 60년대, 70년대의 중요한 작품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변화와 새로운 효과를 위해 새로운 기보법을 도입해서 연주 능력의 한계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베리오의 「씨꿴짜」나 보다 대규모의 작품은 모두 비르투오소에 의한 훌륭한 연주자가 갖는 육체적 몸짓의 힘에 의해 연주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마우리치오 카겔의 음악은 가난과 실수에 관계되어 있다.
■ 카겔의 음악극과 그 음악적 효과
그의 작품은 진기한 테크닉, 공연 기술의 대단한 왜곡, 엉뚱한 악기의 사용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모두 음악적 효과와 같을 만큼 시각적, 극적 효과 등을 고려해서 의도되고 있다.
그의 작품 「무대 위에서」는 스피치, 가창, 마임 음악의 미친 듯한 제스추어 게임이다. 또 「파드생크」는 다섯 사람의 배우가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을 기보화한 것으로, 그밖의 어떤 음도 사용치 않고 있다. 그의 또다른 작품 「마-치」는 타악기 주자를 심판자로 하는 첼로 주자들을 위한 테니스 게임이다. 또 「강제되어」에서는 세 사람의 주자가 가재도구를 사용해서 음악을 만든다. 이러한 종류의 작품은 불손하고 도발적인 희극적 감각을 시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묘한 유머 효과를 창출해 내려는 것이 카겔의 작품의도의 일부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을 초월함에 따른 비판적 지성에 의해 제기된 문제가 가로놓여져 있다.
다시 말해서 비루투오소에 관한 문제, 문화의 윤리에 관한 문제, 음악에서 필요한 것이나 목적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과거의 걸작에 억눌려 있는 서양문명에 대한 문제 등이다.
카겔은 1970년, 베토벤 탄생 200주년은 연주의 탈피에 의해 기념이 새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스스로의 현물인 작품 「루드비히 판」은 베토벤의 음악이 사용되어 있는 영상적 처리에 의문을 갖는 작품이다.
■ 케이지의 헤프닝 음악
카겔의 비관적 센스는 그와 죤 케이지를 구별한다. 케이지는 아무것도 비판하려 들지 않지만, 그래도 결과의 무질서 상태는 가끔 유사성을 가져오고 있다. 케이지와 새로운 극장 형식과의 밀접한 관계는 1952년 여름에 그가 창안한 '해프닝'으로, 일련의 작품과 더불어 계속되었다. 그는 찬스·오퍼레이션에 따라 작곡하는 대신에 가능한 한 연주 순간까지 불확정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에 의하면 "나는 자신의 호기심과 무엇이 공명한 해프닝인가 하는 점에 관한 인식을 계속 유지하려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관해 어떤 지식도 갖지 않으려고 하는 작곡 방법을 결정 하려하고 있다."
그의 「변주곡」씨리즈는 이 계획의 결과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기보법은 극히 수수께끼 같거나 아니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변주곡 제5번」은 과거의 연주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쓰여진 작품이다. 이들 가운데 한 곡은 댄스, 영화, 텔레비전의 영상, 조명효과나 풍경이 음과 마찬가지로 포함되어 있지만, 이와 같은 '믹스트미디어, 의 전시는 60년대 후기, 70년대 초기, 특히 미국과 독일에서 일반화되었다. 케이지는 「뮤지 써커스」에 있어서 다른 미디어와 다른 전통을 갖는 아티스트들이 전혀 조직되지 않은 이벤트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품까지를 구상하여 만들기에 이르렀다.
케이지의 「뮤지 써커스」를 표면적으로 닮고 있는 슈톡하우젠의 구상과 비교하는 것은 의의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1967년 독일의 다름슈타트 여름 현대음악 학교에서 있었던 4시간동안의 이벤트에서 때마침 그 자리에 참여하고 있던 작곡가들에 의해 특별하게 씌여진작품「앙상블」, 또는 콘서트장의 홀 복도에서 밤새도록 연주될 음악을 위한 플랜인 「베토벤 홀을 위한 음악」등이다.
■ 슈톡하우젠의 이벤트
여기에서의 상위점은 슈톡하우젠이 자신의 이벤트를 조직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형식설계'가 부설되어 있고 모든 것은 그의 창조적인 의지에 도움이 되고 있다.
한편, 케이지로 말하자면, 참가자를 초청해서 그들에게 일사천리로 무엇인가를 권장할 것이다.
슈톡하우젠의 「앙상블」과「베토벤 홀을 위한 음악」은 「그룹펜」의 공간적 음악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의 소재로 다룬 문화 전통의 영향 밑에서 의식적 음악을 잡고, 특정한 장소가 해낼 수 있는 공헌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별의 울림」은 그가 밤의 공원에서 연주하기 위해 쓴 음악이다. 여기에서는 광범위하게 분산시켜서 배치된 몇 개의 전자 앙상블이 울림과 주문에 의한 점성술 의식에 참가하고, 이것들은 음악의 신호와 횃불을 든 주자에 의해 통합된다.
이 방범은 옥내 공간을 위한 작품에도 적용된다. 「리에주를 위한 알파벳」은 형이하학·형이상학, 양쪽의 음향 진동의 특질인 어떤 종류의 전시이다.
게다가 슈톡하우젠은 같은 시기의 2개의 오케스트라 작품에서 의식적인 액션을 콘써트홀에 도입했다. 즉「트랜스」는 빨간 자색으로 된 무대 조명에 의해 비춰진 오케스트라의 현악기가 그 뒤의 관악기와 타악기에서 나오는 돌입할 것 같은 음을 덮어 버리듯이 조용한 화음을 연주한다고 하는 꿈의 표현이다. 또 다른 작품인「기도」에서는 고결한 한 사람의 어릿광대가 기도하는 제스추어로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슈톡하우젠이 음악의 정신적인 힘의 탐구를 계속하는 동안, 작곡가들은 이것을 정치적 선전 도구로써 사용하는데 주목했다. 음악은 혁명을 위해 책임을 인수해야 한다는 견해는 50년대에 이어 노노에 의해 지지되어 왔고, 이 견해는 60년대 후반, 신좌익이 미국, 암스텔담, 독일, 파리, 영국 그리고 세계의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은 시기에 양성화되어 갔다. 돌연, 예술적 신념을 전혀 달리하는 음악가들이 개인적 공감을 표명함으로써, 또는 정치적 행동주의를 장려함으로써, 또 대중에 호소함으로써, 사회주의 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들이 깨달은 음악의 필요성에 답했다.
■ 현대음악 계보와 다양성
20세기 최후의 4분의 1세기 중반 시점에서 음악은 혼란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역사적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곤란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후기 낭만파의 전음을 영속시킨 W·월트이나 S·바버 같은 작곡가가 있다.
그들의 음악은 금세기 최초의 10년 동안에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반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M·티벳과 E·카터 같은 세대의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젊었을 때의 신고전주의의 경향을 포함하는 작품을 변함없이 쓰고 있다.
그 동시대인인 메시앙은 선법성과 신의 현현이라는 자기의 길을 걷고 있다. 그것도 그의 제자들은 그 길에서 더욱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말이다. 메시앙의 제자인 블레즈는 작곡상 명인의 솜씨와 직인의 솜씨 가운데에,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제자인 슈톡하우젠은 바이브레이션의 종교적 제시로 진행되었다.
한편 그 사이에 라일리의 점진적인 단순성이, 헨째의 매니페스트 음악과 대조를 이루고, 죤케이지의 난잡과 우연성의 개방도 마찬가지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베리오의 감각적 음악이나 마우리치오 카겔의 흥미를 갖는 폭로예술, 그것들과 거의 공통되는 점이 없는 베빗의 복잡하게 얽힌 음렬주의 수법.
예술적 행위는 언제나 동시대에 대해 분산되어 있으면서, 복합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20년대에 음악의 양극에 서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의 예가 있듯이, 후에 일반적 특징을 보이게 된다는 사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결론을 피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현대라는 시대는 작곡가들이 사용하는 음악 방식의 다양성에 뚜렷한 성장이 보였으며, 오늘날의 음악가들이 이 100년 사이에 일찍이 바그너, 브람스, 리스트, 드볼작, 비제, 베르더, 무소르그스키, 그리그 등 그들의 선배들이 나타낸 것처럼 어떤 공통의 요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과연 다채로운 동시대인의 모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전음계적 하모니라는 가장 중요하고 동일한 근본원리에 근거하고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에는 어떤 공통의 진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 현대음악의 미학
이러한 상황에서 몇 사람의 작곡가들은 한 작품 중에 가장 잡다한 양식을 통합하는 방향이나, 적어도 그것들(양식)을 가지고 들어오도록 애썼다.
그들은 가끔 과거의 음악을 인용함으로써 다양성이 풍부한 현대의 상황 (혹은 그것을 붕괴상태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에 대한 아이러닉한 강조를 하고 있다.
케이지의 「변주곡 제4번」의 레코딩은 많은 다른 성격의 음악과 말의 단편들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는 자유토론의 이미지로 모든 것의 진행이 허용되고 있으므로 그것은 케이지가 다른데서 언급한 '오늘에는 모든 것이 동시에 발생한다는 마크르한의 지적'과 같은 것이다.
슈톡하우젠의 「힘넨」은 더욱 철저한 몽타지 기법으로 작곡되어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국가의 인용 때문에 광대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베리오의 「심포니아」 제 3악장은 말리의 제2교향곡의 스케르쪼를 중심으로 많은 작곡가들로부터의 인용이 오케스트라에 의해 늘려져 있다.
그와 동시에 8명의 성악가는 베케트의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맞춘 여러가지 텍스트의 인용으로 다른 흐름을 만든다.
훗슬의 오페라 「당신의 파우스트」는 비유가 넘치는 다른 형의 작품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베리오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것은 파우스트풍의 과격한 충동으로 과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공통하는 과거 음악의 현실성에 관한 요구와 필연 때문이다. 훗슬에 있어서 절박한 필연성은 과거로부터의 스타일의 모든 것을 총화 하려고 하는 것이며, 그것이 미래의 유토피아, 사회와 미학에 가능한 유일한 길이다.
죠지 록버그는 50년대, 60년대 초두의 일반적인 포스트 쇤베르크, 포스트 베베른의 역사를 더듬어 온 사람이며, 4개의 악기를 위한 「콘트라 모르템에 템푸스」의 양식적 총합에 도달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인용은 모두 20세기 작품이며, 현대음악의 발달이 의문시되는 듯한 암시를 포함하고 있다. 최근작에서 록버그의 의문은 명백하게 되어있다. 그는 이전에 '옛날 거장들의 음악은 한숨 돌리고 있는(쉬는 것까지 음악으로 보는)존재로서, 그 정신적 가치는 새로운 음악에 의해 바꿔 놓을 수도, 파괴되는 일도 없게 마련이다.'라고 썼었는데, 그 생각이 실현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그는 「현악4중주곡 제 3번」을 비롯한 작품으로 과거의 음악, 특히 말러, 후기 베토벤의 여러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음악이 그 전달력과 정신력을 재획득하는 유일한 방법은, 완전히 옛날의 확실성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록버그는 시사하고있다.
■ 음향·음악의 탐구와 조정연구소
다른 극단적 입장에서는 것은 불레즈이다. 그가 열중하고 있는 최근에 발달한 전자적 기술, 작곡기법, 악기제조를 이용해서 새로운 '음악어법'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70년대 중엽에 파리에 설립된「음향·음악의 탐구와 조정 연구소」IRCAM의 이념이다. 이 연구소의 발족 때, 볼레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들 시대는 거의 참을 수 없을 만큼 가차없는 탐구를 영속해 오고 있다. 탐구의 이상한 항진 가운데서는 일체의 후퇴성이 절단되어 모든 성격이 금지된다. 이러한 탐구의 정력은 전염되어 미지의 사성에 관한 맹렬한 관심에 의해 우리는 미래에로 격렬한 힘에 의해 투입된다 - 정교·치밀한 계략으로 우리는 과거의 세계를 현재가 요구하는 것으로서 도움이 되도록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도야해 왔지만, 이미 지금의 절대적 부분으로 되는 것을 구하여 선례가 없는 지각을 닦기 위해 기억의 전부를 버리고 상상조차 못 할 영토를 발견하기 위해 과거의 유산을 버린다는 본질적인 시련을 피할 수는 없다.
IRCAM에서 블레즈와 그 그룹이 이러한 새로운 영토를 개발할 것인가 아닌가는 흥미로운 일이지만, 과거와 먼 곳에 있는 영토가 역시 탐구되어야 할 것으로 존속하는 것도 확실한 것이며, 적어도 '가치 없는 탐구'와 마찬가지로 향수의 감정이 우리들 시대의 특징인 것도 틀림없다. 서방 산업국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손을 뻗치면 닿는 곳에 레코드가, 단성성가에서 슈톡하우젠, 핑크 프로이드, 국악까지 모든 음악을 제공해 준다.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음악 등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정도이다. 하지만 예술은 틀림없이 계속해 갈 것이며 반듯이 이 경험의 다양성에 주의를 기울여 갈 것이다.
G·라일리의 음악은 조성적 울림을 포함해서 선법성에로의 복귀가 엿보이기 때문에 '뉴 모럴 뮤직'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60년대의 다름슈타트나 파리 등의 음렬주의 음악의 복잡성과의 대비에서 '뉴 심플리시티 음악'이라 불렀고, 더욱이 그 내부에 약간의 소재 반복에 의해 성립되고 있는 음악이 많이 포함되고 있었기 때문에 반복 음악 Repetitive Music 이라거나 '미니멀 뮤직' Minimal Music 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선법성에로의 복귀는 어법상 중요한 문제로서, 그밖에 종래의 천대음악과는 다르다. 예술 음악의 틀을 철거하고 록 Rock 같은 데도 매우 큰 영향을 준 일, 청취자의 능동적 청취를 개선해서 고무시킨 것이 특필될 것이다. 이 마지막 청취자의 의식 문제를 일층 깊게 문제화한 것이 70년대 말에서 화제가 되었던 '환경음악'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환경간의 동적 관계를 촉진하는 음, 음악의 탐구라고 할 수 있다.
M·쉐퍼와 그 그룹이 시작한 지구의 음 환경을 조사하여 보다 좋은 음 환경을 유지하려는 World Sound Scape Project 나 도시의 포장도로나 건물에 음 장치를 설치하는 막스 뉴하우스의 Sound installation, 거기에다 독특한 적막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B·에노의「안비엔트」의 발상 등이 요인이 된 개념이라고 생각되고 있다.
■ 환경음악
쉐퍼는 캐나다의 작곡가이다. 그는 여러가지 현대 기법을 써서 인간의 권리 침해나 환경 파괴에 항의한 작품을 만들었고, 70년대에는 환경의 어떤 음을 조사해서 인간과 자연과 음의 이상적 본연의 상태를 보고, 적극적으로 '음풍경'를 설계하려는 계획에 관여하고 있다.
그는 음악 교육에도 환경음이 들어 있는 창조적인 음 만드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뉴하우스는 원래 타악기 주자였다. 그는 무대로부터의 일방적인 음악제공의 의문을 갖게 되자, 어디서든 기분 좋을 때에 즐기는 음악을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 실천으로 화제가 되었던 1977년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의 지하철 통풍구에 음 발생 장치를 설치한 때이며, 그 이래 유럽을 포함한 각 도시의 공원, 주차장, 도로, 식물원, 미술관 등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그가 설치하는 음원장치는 감춰져 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한 채 지나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환경 속의 음,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가지 음 구조를 공간적 장소나 문화적 장소에 도입한 작품'이며 청취자가 발견해서 적극적으로 창조해 가는 음악이다.
에노는 록 플레이어로서 데뷰했지만, 역시 단순히 듣는 음악이 아니라 듣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하는 음악을 목표로 해서 록을 버렸다. 1975년, '옵스퀘어'라는 레코드 레벨 (자켓)를 만들어서 청취자를 위한 현대음악을 시리즈로 만들었고, 1979년에 시작한 자작품 「안비엔트」의 시리즈는 화제가 되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그의 대표작 「뮤직 보 에어포트」는 실제로 뉴욕에 있는 공항에서 유행되었는데, 듣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가능한 백그라운드로서의 음악이었다. 에노는 그 후, 비디오에 의한 영상까지도 써서 상연회장 자체가 하나의 환경작품으로서 체험할 수 있는 인공정원을 구성하고 있다.
미니멀도 환경음악도 그 어느 것이나 케이지 이후의 음악사고의 전개 위에 성립되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편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화제로는 작곡기술이나 양식상의 문제가 역시 주가 된다. 이를테면 그것은 우선 과거 스타일과의 관계이며, 지금 하나가 발달한 전자적 기술에 유래하는 새로운 어법의 확립이라는 두 가지이다.
■ 네오 로맨티시즘의 음악과 통합예술
전자는 베오 로맨티시즘이나 통합음악 등등의 개념 밑에 독일을 중심으로 하는 매우 폭넓은 조류로 되어 있다.
특히 베오 로맨티시즘의 기수로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은 볼프강 림이다. 그는 쾰른에서 슈톡하우젠에게, 프라이브르크에서 포르트너와 K·후버에게 사사한 젊은 작곡가이며, 1978년 이래 다름슈타트 국제 현대음악하기 강습의 강사로 있다.
작품도 이에 3개의 교향곡, 가곡집 「활더린 단장」등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교향곡 제3번」은 니체와 랭보의 가사를 텍스트로 하는 부분을 포함하는 약 1시간에 걸치는 장대한 작품으로 매우 개인적인 내적 상극이 제법 솔직하게 때로는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극적대조로 묘사되고 있다. 이 표현성은 재래의 현대음악이 피해 왔던 것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성은 오페라의 새로운 경향으로도 되어 있다.
'통합예술'의 개념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아리버트 리이만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의한 오페라 「리어왕」은 등장인물들의 가가의 음악화의 다양성과 오케스트라의 다양성에 특색이 있다.
이 작품에는 베르크의 「보체크」류의 통합성에 20세기 후반의 어법이 채택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12음 기법과 4분음으로 된 톤-클라스터, 복잡한 리듬 등을 요소로 하여 선율선과 클러스터가 우수한 음향적 중간 매체의 개입에 의해 결합되어 있다.
이 방향을 다시 대담하게 진행한 것이 같은 해 스톡흘름에서 초연된 리게티의 「Le Grand Macable」이다. 미셀 드겔데론드의 「그랑마카블의 발라드」를 원작으로 하는 이 2막 4장의 오페라는 브르겔란트라는 황폐한 가공의 나라를 무대로 하는 성(城)을 전면에 밀어낸 듯한 이상야릇한 '섹스 오페라'로서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러나 한편 《더 타임즈》지상에서는 그리피스가 평하고 있듯이 놀라울 만큼 다종다양한 양식과 어프로치는 리게티의 엑센트릭한 비전과 기교의 완벽성에 의해 통합되고 있으며, 그 음악 작법도 동시에 크게 주목되었다. 리게티는 이 오페라 이후, 고전적 형식의 재사용에 적극적이고 거기에 독자적인 생명력을 주고 있다.
예를 들면 「혼 3중주곡」은 브람스의 「혼 3중주곡」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이며, 여기에는 민족음악에서 널리 고전, 낭만, 현대에 이르는 여러 가지 이디엄이 매우 다이나믹하게 통합되어 간다.
인용 수법에서는 헨째의 새로운 오페라 「영국의 고양이」가 쇤베르크, 카겔라 헨만적 현대어법과 「셀비네티」「트라비아타」 「쟈니 스키키」, 거기에 스트라빈스키, 베르크, 밀러의 인용 등이 짜 맞추어진 동물우화에 의한 사회 비판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기교로 달리는 메티에의 완전주의와 미식주의로서 풍자력으로 꾸며져 있다는 불평도 있었다. 그러나 「젊은 연인들에게로의 엘레지」 「젊은 귀족」이래 구구한 전통적 오페라에 복귀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 전자음악과 비디오 음악
한편, 전자적 기술과 결부된 새로운 언어의 창출이라는 것에서는 그리피스가 「기대」로서 천거하고 있는 IRCAM이 그 후에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IRCAM 주최로 작품전도 열고 있다.
이 관계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트리스탄 뮈라이유이다. 그는 전자음향의 테크닉 발달과 음향학의 지식 증진을 실마리로 하는 음의 내부구조, 이른바 스펙틀 분석관찰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스스로는 그 분석 결과를 오케스트라 음향으로 재구성 진행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음 소재와 형식의 관계는 이제까지의 내용과 내용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하는 이원적 성격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총합과 분화의 흐트러지지 않는 움직임, 힘과 다이나믹의 변화 그 자체가 형식이며 음악이다. 「모래 」라는 오케스트라 곡은 울림의 조각이며, 음은 울림의 구성요소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다름슈타트 시의 위촉작품인 「곤드바나」라는 오케스트라 작품은 침몰하는 대륙이라는 타이틀로 되어 있고, 종의 울림이 파동 속으로 변용하고 가라앉아 해체되어 가는 음악으로서, 그사이의 태풍, 지진 같은 움직임이 특색으로 되어 있다.
이것도 울림 속에 목적이나 대상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소음과 울림의 끊임없는 교대와 '변화'그 자체가 음악이다.
뮈라이유는 온드 말트소의 연주자로서 활약한 경력도 지니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전자악기에 대한 관심·정통에 의해 음 조직법의 새로움보다도 음향 그 자체의 세계에 대한 탐구가 가능하다고 하는 점이 주목된다. 이 곡도 음향은 비화성적 음향스펙틀로서 잡음에는 순연한 화이트 노이즈 White Noise와 상징적인 노이즈(클러스터)가 쓰이고 있다.
IRCAM의 작품전에서는, 그러나 일반적으로 컴퓨터에 의한 합성음, 뮈라이유에게도 이같은 작품으로는「분해」등이 있다.
또한 현대음악의 다양성은 국제적이지만 마이너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작곡가의 활동까지를 덧붙이면 끝없이 넓어져 간다. 193년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덴마크의 오피스에서 개최된 ISCM(국제 현대음악협회)의 음악제에서는 각국 지부에서 응모·입선작 이외에도 이같은 마이너한 작곡가의 소개와는 반대로 파러 음악의 소개까지도 포함해서 현대음악의 상황을 조감하려는 몇 개의 주제별 음악회가 열렸다.
그 주된 것으로는 「다름슈타트는 살아 있는가?」영국의 브라이언 퍼너하우, 독일의 헬무트 라헨만, 거기에다 대가인 크세나키스의 작품이 빛을 띄었다.「믹스트 미디어」, 「미니멀 뮤직」 이라는 라이히의 작품「작곡에서 즉흥으로」라는 슈톡하우젠의 직관음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극장적 표현'에서는 일본의 양청양이의 「물음」과 영국의 트레버 위스하트의 작품이 화제가 되었다. 「사회적 언질」에서는 네델란드의 루이 안드리센의 재즈와 결합한 작품이 새로운 경향을 보였다. 네「오 토나리티」 「전자적 수단」에서는 베이스 클라리넷의 스파나이의 자작 공연 (테이프와 공연) , 컴퓨터를 구사한 Like Electron의 케슬러 작품이 인기를 모았다. 그것은 「비디오 음악」 「필름과 음악」 등이 있다. 오케스트라 작품에서는 크세나키스가 건재하고 있음을 보였으며, 신작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헨째의 「영국의 고양이」중의 「3개의 콘첼티포코티」, 폴란드의 거장 W·루토슬라브스키의 「교향곡 제3번」, 스위스의 K·후버, 전술한 뮈라이유의 작품 등이 역작이었음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