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민요 연구논문의 현황과 분석




전경욱 / 고려대 강사

■ 머리말

한국 민요는 1920년대는 손진태(35, 37), 이광수(30, 43), 최남선(41, 42)의 연구를 선두로 하여,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수집되고 연구되어서, 이제 800여편에 달하는 자료집과 연구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민요는 생활·관습·가락 등 다양한 요소들과 결합하여 전승된다. 그러므로 민속학에서는 각 지역의 문화 ·풍속 · 생활양식 등을 민요의 전승양상을 통하여 접근하였고, 음악에서는 민요의 채보를 통하여 전통적인 율격과 음조 및 가창방식 등을 고찰하였으며, 문학에서는 시가의 기원 · 사상 · 정서 등을 밝히는 작업 등 민요의 종합예술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가 여러 각도에서 진척되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민요에 대한 민속학, 음악, 문학의 연구가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서, 민요가 존재하는 전반적인 모습에 대한 독특성과 복합성이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으므로, 민요연구에서 새로운 방향전환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이루어진 기존의 연구업적을 정리하고 연구의 동향을 파악하여, 각 분야별 연구상호간의 맥락을 밝히고 새로운 각도에서 연구의 방향과 과제를 생각해 볼 단계에 이르렀다.

시기별 동향

민요는 1927년대 학문의 관심이 된 이후 지금까지 연구분야가 확대되고 연구수준도 깊이를 더해 왔다. 그동안 진행된 민요연구의 시기별 경향은 10년을 단위로 대략 여섯 시기를 나누어 개관할 수 있다.

제 1기 (19255∼1939)

제 1기는 연구의 태동기로 학문적인 연구의 출발과 자료수집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도표 1 에는 1910년대에 14권의 자료집이 나온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 자료집들은 잡가집으로서 순수한 민요집은 아니다.

이 시기는 조선조 후기의 문학사에서 서서히 부각되어 온 민요에 대한 관심이 학문적인 인식으로 바뀐다. 각종 신문, 잡지를 통해 민요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단편적인 소개가 이루어졌다. 김소운, 임화 등에 의한 체계적인 민요집의 출현도 주목할 만하다.

손진태, 최남선, 이광수는 조선민요가 무엇인가를 논하면서 민족문학으로서의 민요의 위치를 강조하였다.

한편 조선총독부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한 자료 수집과 연구도 진행되었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1933년, 1935년 세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민요조사 사업을 벌였다. 민요연구에 참여한 일본인 학자로는 高稿亨(다까하시 ), 市山盛雄(이찌야마)을 들 수 있다.

<표1> 시기별 민요연구 논·저 현황

구분

연대

단행본

학위논문

논문

논설

연구서

자료집

기행수필류

1910


14



1


15

1920

1

19



27

4

51

1930

1

14

1


57

16

89

1940

2

12

1

(2)

24


39(2)

1950


21


3

52

2

78

1960

4

23


8

119

15

169

1970

6

30

3

8

123

9

179

1980

14

86

1

39

57


197

28

219

6

58(2)

460

46

817

253


<표2> 시기별 연구분야의 분포 현황

분야

연대

총류

수집방법

분류

형식

지역별

기능별

주제별

대비

음악

1920

19

1

1


5

38

2

2

2

70

1930

26

7



20

27

10

3

1

94

1940

14

2



7

19

1

1

1

45

1950

12

5


1

19

29

8

3

5

82

1960

28

12

4

5

63

49

17

1

6

185

1970

23

3


3

62

47

27

22

15

202

1980

91

1

3

8

112

58

19

9

7

308

213

31

8

17

288

267

84

41

37

986




제 2기 (1940∼1949)

제 2기는 전대의 경향을 이어받아 단편적인 자료수집이 계속되면서 기능별 연구가 늘어났다.

이 시기의 후반에 고정옥, 주왕산에 의하여 학문적인 성과가 이룩되었고, 음악전공자인 성경린·장사훈에 의하여 민요집이 발간되었다. 고정옥이 「조선민요연구」는 최초의 본격적인 민요연구서로서 민요 전반에 대한 획기적인 업적으로 평가된다.

제 3기 (1950∼ 1959)

제3기의 중요한 외적 변화는 새로운 연구자들의 등장과 학위논문의 출현이다. 그리고 민요의 형식, 음악적인 면 등 연구분야가 확대되고, 지역별, 기능별 연구의 비중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임동권이다. 그는 민요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와 아울러 직접 민요를 수집하고, 자료수집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민요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고, 논의를 진전시킬 바탕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민속학자인 장주근, 진성기, 최상수도 민요연구에 참여하였다.

제 4기 (1960∼ 1769)

제4기의 특징은 도표2에 나타난 바와 같이 연구의 양적인 증가이다. 자료수정과 수집된 자료의 분류, 민요의 형식 등 민요 전반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임동권은 1950년대부터 진행한 민요수집의 결과를「한국민요집 I-VI」으로 계속 발간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민요사」를 저술하여 민요에 대한 통시적 연구의 결실을 보았다.

각 지역의 민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김영돈, 임헌도, 신두헌은 제주도 민요의 성격과 기능·주제 등을 다루었고, 지춘상, 정익섭은 전라도 도서지방의 민요를 수집 · 연구하였다.

정부 차원에서도 각 지방의 자료를 수집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1968∼1979년 사이에 문화재관리국의 지원으로 한국문화인류학회는 각 도의 민속종합보고서를 연차적으로 발간하였다.

제 5기 (1970∼1719)

제5기는 제4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요에 대한 문학적 연구가 질적인 향상을 이룩한 시기이다.

조동일은 민요중 서사민요의 갈래·유형·문체·전승의 문제를 면밀히 분석·고찰하여 이론적으로 심화된 논의를 보여 주었다. 이 성과에 힘입어 민요는 이제 국문학의 다른 분야와 대등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각 지역 민요의 조사와 연구도 계속되어, 정동화는 경기도의 민요, 김선풍은 강원도의 민요, 조동일은 경북의 민요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켰다.

새로운 분야의 연구도 시도되어 김순제의 어업노동요연구와 김성배의 의식요(상여소리) 연구가 나왔다. 그 동안 기능적으로 노동요와 유희요에 치우쳤던 경향을 탈피하여, 민요의 전반적 모습을 밝히는데 기여하였다.

이 시기 후반에 정신문화 연구원 어문연구실에서 「구비문학」이라는 전문학술지를 발간하면서, 인권환·조동일은 민요 조사방법과 수집, 분류, 연구현황과 문제점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연구 방향을 모색하였다.

제 6 기 (1980∼현재)

제6기의 특징은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민요조사, 문학사에서의 민요의 위치정립, 학위논문의 대개 출현과 더불어 전공자의 확보, 각 분야별의 다양한 논의, 연구의 심화와 전문화이다.

자료수집에서는 정신문화연구원 어문연구실 주관 하에 각 지역별로 체계적인 조사를 실시한 「한국구비문학대계」(76권)가 가장 큰 성과이다.

1970년대 민요가 문학으로서 위치 정립을 한 후, 이시기에 조동일, 김대행, 정동화에 의해서 민요가 시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이 강조되었다. 새로운 연구자들의 등장으로 학위논문도 상당히 늘었으며, 주제도 다양해졌다. 학위논문의 주제는 특성지역을 다루는 것이 많고, 내용도 전문화되어 논의가 한층 심화되였다.

특히 중요한 성과는 잡가에의 새로운 관심이다. 정재호는 1970년대에 「잡가고」를 통하여 잡가를 소개하고 잡가의 존재양상을 다각도로 고찰하였는데, 1984년「잡가전집」을 냄으로써 잡가를 다룬 석사학위논문이 여러 편 나오게 되었다. 그동안 연구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잡가는 이 시기에 민요연구의 영역에서 각 시가간의 교섭관계와 관련하여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민요의 수집과 분류 문제

민요의 수집

민요는 백성들의 생활과 시대정신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러므로 역대의 제왕들은 민요를 채집하여 민심을 파악하는 자료로 삼았다. 堯의 姜徵의 聞童謠는 바로 민요가 정치의 선악을 반영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민속학에 자각을 둔 민요 수집은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동안 엄필진(31), 김소운(98), 임화(141), 방종현(191), 장사훈·성경린(192), 김영삼(249), 진성기(250), 임동권 (291, 506, 599, 638, 673), 김영돈(366), 조동일(449, 555)등에 의하여 민요집이 발간되었다.

이외에도 1929년 경성제대 고고형의 주도하에 보통학교 교원들에게 의뢰한 민요조사가 시도되었고, 1953년 김성태에 의한 음곡 중심의 민요 채집이 있었으며, 1955년 임동권의 주도하에 전국 국민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민요 수집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상의 민요 수집은 ①전국적인 조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점, ②현지 조사에 의한 직접채집이 부족했던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구비문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현지조사를 통하여 전국적인 규모의 조사에 참가하여 이루어진 성과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어문연구실이 주도한 「한국구비문학대계」이다. 주로 설화와 민요를 대상으로 1981년부터 1987년 현재까지 발간된 76권의 자료집에는 전국에 걸쳐 5,000여편의 방대한 민요가 채집되었다. 이 책들은 집중적인 조사, 직접조사의 현장성, 조사 일시, 조사지, 창자, 원형의 보존, 구술현장의 상황, 설명 등을 고려하여 수집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 가치가 인정된다.

민요의 분류

지금까지 수많은 민요가 수집되었다. 그동안 여러 학자들은 각기 여러 방법으로 민요를 분류하였다. 민요의 분포 실태와 종류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각기 고유한 생활양식과 풍습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 민요의 분류는 한국적 특성에 맞는 방향으로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국 민요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분류방법은 마련되지 않았다. 민요의 분류는 단순히 채집된 자료를 정리해 두기 위한 차원을 넘어서, 자료의 효율적인 이용과 체계적인 이해를 위한 유용성과 타당성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요의 분류는 민요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30년대 이후에, 조사의 성과가 상당한 양으로 축적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

김소운은 일찍이 일문으로 된 「조선민요선」에서 민요, 동요, 부요의 창자별 구분을 시도하였고, 후일 「언문조선구전민요집」에서는 지역별로 민요를 분류하였다. 임화는 「조선민요선」에서 서정가, 결혼·가정에 관한 가요, 사친가, 자탄가, 서경요, 풍유요, 노동가요, 서사가요, 잡요 등 장르·내용·기능 중에서 두드러진 성격에 따라 민요를 분류하였다.

민요의 분류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고정옥의 「조선민요 연구」에서 본격화되었다. 그는 이미 1941년에 고위민이라는 필명으로 민요분류를 시도한 바 있다. (176) 그는 ①내용상의 차별, ②가창자의 성·연령상의 차별, ③가창되는 지역상의 차별, ④노래의 시대적인 차별, ⑤노래와 민족생활의 종합면의 차별, ⑥노래의 형태상의 차별, ⑦곡조 또는 명칭상의 차별, ⑧장단(길이)의 차별, ⑨성립조건의 차별, ⑩운율상의 차별, ⑪표현경향 상의 차별 등 11가지의 기준에 의한 민요분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실제로는 23개의 상위다위 분류항목을 설정하고, 「내용상의 차별」, 「가창자의 성 ·연령상의 차별」,「노래와 민족생활의 종합면의 차별」 을 종합한 분류법을 채택하여 어떠한 내용의 노래를 누가 무엇을 할 때 부르는 것인지 밝히려고 하였다. 즉 내용, 창자, 기능의 삼자를 아울러 수용하는 종합적 분류를 택한 것이다.

임동권은 고정옥의 분류방법에 자료를 보완하여 분류 항목을 더욱 세분화하였다. 그는 「민요분류의 방법」, (306)이라는 글에서 「창자의 연령과 성별」, 「주제 및 내용」, 「가창과정」 즉 창자, 내용, 기능의 세 조건을 고려해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한 방법이라는 종합적 분류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한국민요집 I -Ⅵ」에서 민요, 동요로 크게 나눈 다음, 기능 또는 내용을 고려한 중간 단위의 분류항목을 설정하고, 다시 각 분류항목을 하위 단위로 세분화해서 총 362개의 종류로 민요를 분류하였다.

그러나 종합적인 분류는 한국 민요의 존재양상을 다면적으로 개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같은 내용이 중복되거나 혼란이 일어나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종합적인 분류는 복합적인 기준 때문에 문제점이 있으므로, 기능, 가창방식, 창곡, 율격, 장르, 창자, 시대 , 지역 등을 고려하며 분류의 기준을 단일화하자는 견해가 제시되었다. (458)

단일한 기준에 의하여 분류할 때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는 기능에 의한 분류가 자주 거론되었다. 기능에 의한 분류로 주목할 만한 업적은 김영돈(771), 조동일(458), 박경수(711), 김무헌(797)의 분류안이다.

박경수는 김영돈과 조동일의 견해를 수렴하면서, 민요의 성립, 존재, 전승에 대한 전체적 양상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한국구비문학대계」, 「한국민요집 I-VI」, 각 군지, 논문집, 보고서 등에 수록된 광범위한 자료들을 두루 검토하여 분류 항목을 세분화하고 그 체계화를 추진하였다.

그는 민요를 기능요와 비기능요로 크게 나눈 다음, 기능요를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로 다시 나누면서 중간단위의 분류항목을 설정하고, 하위단위의 각 항목을 총297종류로 분류하였다.

앞으로의 연구과제는 민요의 중요한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해서 , 그 기준에 따라 자료를 거듭 분류하는 단계별 분류방법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제 박경수의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노력에 의하여 기능에 의한 분류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민요에 있어서 기능과 더불어 중요한 기준은 사설의 내용이다. 이미 이루어진 기능의 양상에 사설의 내용별 분류가 면밀하게 이루어져서 그 결과가 종합된다면, 한국 민요 전반을 수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분류안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민요의 기능별 연구

노동요

노동요는 작업과정에서 불리우는 것으로 작업내용에 따라 농업·어업·부녀·채취·벌목 노동요 등으로 분류된다. 우리나라는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만큼 농업에 관한 노동요가 많다.

초기의 노동요 연구로는 송석하(92)를 들 수 있다. 그는 전라도·경상도·강원도 일부 지역의 이앙요를 중심으로 부르는 때와 노래의 양, 노래가 노동에 기여하는 정도, 형식을 논의하였다.

<표3> 민요의 기능별 연구 현황


노동요

유희요

의식요

비기능요

총계

농 업

노동요

어 업

노동요

부 녀

노동요

기타

동요

언어숫자

유 희 요

놀이요

참요

장 례

의식요

세 시

의식요

1920

1


2


3

2

1



3




32

38

1930

5


2

1

8

7


1

1

9




10

27

1940


1



1

10

3


3

16


1

1

4

22

1950

1


2


3



3

3

6




20

29

1960

4

1

14


19

4


3


7


1

1

19

46

1970

5

6

4


15

8

1

4


13

4


4

15

47

1980

8

3

13

1

25

6


2

1

9

6

4

10

14

58

총계

24

11

37

2

74

37

5

13

8

63

10

6

16

114

267


고정옥(193)은 민요의 기원을 노동과정에 두어 논하면서 노동요가 가장 원시적이며 본원적인 민요인데, 노동요 중에서도 「이앙요」가 역사적·지역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노래라고 지적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농업노동요에 대한 개별연구가 진행되고 논의도 심화되었다. 오한식 (732)은 임동권의「한국민요집(Ⅰ, Ⅱ, Ⅲ)」과 「한국구비문학대계」의 자료집을 활용하면서 농요의 형식과 내용·기능을 두루 포괄하여 논의하였다. 윤여탁(760)은 농업노동요중 이앙요만을 다루면서 조선후기 이앙법의 발달과 관련하여 史的인 논의를 심화시키고, 문학사에서의 위치를 구명하였다. 김무헌 (797)은 문학사회학적 측면에서 노동요의 기능문제를 천착하여 시설과 기능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

임동권은 부녀노동요에 대한 꾸준한 연구를 진척하여「한국부요연구」(699)를 발간하였다. 그는 여성노동과정에서 노래되는 민요를 부요라 하고, 베틀노래, 길쌈노래, 물레노래 등 몇 가지로 갈래를 나눠 고찰하였다. 그 주제를 연정·시집살이의 고난, 생활고라고 보고 부녀노동요의 전반적 모습을 제시하였다.

부녀노동요에 대한 연구는 조동일(449) 서영숙(728)·고혜경(727)·나승만(730)에 의하여 계속 진행되었다. 조동일은 서사적 내용을 갖춘 민요는 완만한 동작으로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는 길쌈노동요를 근간으로 한다고 보았다. 연구자가 직접 조사한 자료를 중심으로 서사민요의 갈래·유형의 분석·문체적 특징·전승과 현장문제를 다루고, 특히 서사민요 구조의 분석 틀을 제시하였다.

유희요

유희요와 동요의 포함관계는 분류자에 따라 서로 달라지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유희요 속에 동요를 포함시켰다.

동요에 관한 연구는 부진한 편이나 자료집은 이른 시기에 발간되었다. 엄필진(31)에 의하여 최초의 동요집이 나왔고, 이후 김소운(98), 임동권(291), 김영돈(366)의 자료집에 동요의 항목이 설정되었다.

동요에 대한 초기연구는 大坂六村(오오사까)(93), 손진태(35), 김태준(107), 송완순(133) 등 인데, 주로 동요에 나타난 아동성이 무엇인가를 논의한 것이다. 1970년대에 와서 각 지역별로 동요가 산발적으로 다뤄진다. 김규선이 경주 지역 동요(492)를 현길언이 제주도 지역 동요를, 최범훈이 서울지역 동요(544)를, 김순제가 경기도 지역 동요(563)를 다루면서 전승 동요의 양상을 파악하였다.

김영돈(680)은 동요의 의의·분류·사적계보를 개괄하면서 자료집과 연구업적을 정리하여 동요의 개괄적인 논의를 마련하였다. 그는 동요에 관한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하였는데, 한국 동요에서 동·식물을 제재로 하는 동요의 존재양상을 밝히고 그 동요에 투영된 의식 등 다각도로 치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686, 691, 692)

동요의 선행형태로서 혹은 아이들의 입을 통해 세태를 말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은상(100)·이능우(216)·박노춘(260)·최승범(356)·임동권 (411)은 참요를 다루었다.

이외에 유희요로 특정한 놀이-윷놀이·그네타기·강강술래 등과 관련된 노래가 소개·연구되었는데, 윷놀이와 관련된 노래는 권영철(545), 그네타기와 관련된 노래는 홍재휴(711), 강강술래요는 그 놀이의 기원과 더불어 어원을 밝히는 연구로 최상수(256), 임동권(373), 이탁(382), 정익섭(494), 박순호(616) 등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의식요

의식요는 어떤 특정한 의례 - 신앙이나 통과의례·세시의례 등에 사용되는 노래이다. 의식요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시작되었는데, 조사상의 문제와 금기 때문인 듯하다.

처음으로 연구대상이 되는 것은 상례의식요인데 김성배(520), 임헌도(618), 강문순(703), 유종목(742), 오미지(802) 등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의식요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는 손종흠(764)에 의해 이뤄졌는데,

그는 종전까지 상여소리에 집중되었던 연구자의 관심을 의식요 전반으로 넓혔다. 즉 상례의식요를 통과의례요에 분류하고 거기에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혼례·회갑연에 관한 노래와 신앙의 식요를 포괄하여 다룸으로써 의식요의 연구대상과 범위를 넓혔다.

세시의식요는 藤田亮策(후지따)(610)이 간략하게 언급한 후 개별적인 논의가 거의 없다가, 박준규(690)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박준규는 세시의식에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세시를 노래한 작품까지 포괄하여 시조체, 가사체, 민요체로 분류하여 논의하였다.

비기능요

비기능요는 어떤 작업과정이나 사건과 관련 없이 순전히 여흥을 위해 불리워지는 노래인데, 잡가류가 여기에 속한다. 비기능요는 그 여흥적 속성 때문에 잡가류니 티령류니 하는 약간 격이 낮은 듯한 명칭으로 민요의 대접조차 받지 못했고, 그에 대한 연구도 부진하였다.

잡가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 업적은 정재호(483)의「잡가고」이다. 그는 1900년 전후에 유행하던 잡가들의 잡다한 형식을 유별해 보고, 각 시가간의 영향관계를 밝혔다. 또한 당시 유행하던 잡가집들을 모아 1984년에「잡가전집」을 출판함으로써 잡가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잡가에 대한 논의는 석사학위 논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잡가의 갈래 규정과 수용양상에 논의의 초점을 맞췄다. 최성수(763), 최명걸(800), 하희정(821)은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지닌 잡가의 위치를 밝히고자, 성격과 갈래 규정, 수용의 의미를 논의했고, 노미원(801)은 문학사적 위치와 더불어 시대적 수용양상과 현대시대로의 계승문제를 다뤘다.

주제별 연구

민요의 주제가 어떤 것인가를 연구한 논문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기능별 연구에서 내용고찰을 통해 주제를 밝히는 작업을 함께 진행했기 때문이다. 노동요 연구에서는 연정·상사·정욕·등의 주제가 거론됐고, 이것을 특별히 다룬 것으로 박노준(485)을 들 수 있다. 부녀노동요 연구에서는 사랑·시집살이의 고난·생활고·애환 등이 거론되었는데, 임동권(699)에 의해 잘 다뤄져 있다.

주제를 다루는 연구는 조기에 많이 나타나는데, 당시는 민요를 우리 고유의 시가로 인식하고자 한 만큼 민요에 나타나는 국민성 민족성·멋을 밝히는 것이 선행 과제였기 때문이다. 이광수(43), 김동환(61), 이원규(105) 등의 연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1950년 이후에는 민요에 나타난 현실비판, 세태풍자, 민중의식을 규명하는 작업이 활발해졌다. 박인식(224), 임동권(231), 장사훈(274) 등의 연구에서 민요는 민족의 것이라는 관점에서 민중의 것이라는 관점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이런 의식의 전환은 1970년대 민족문학 논쟁 속에서 논의되어야 할 과제를 제시하였다.

각 지역별 민요의 수집과 연구

한국의 민요는 각 지역에 따라 향토적 특색을 지니고 있어서, 사설과 가락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아리랑」을 예로 들더라도 강원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 아리랑, 서울 아리랑 등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그런데 각 지역별 민요연구의 성격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각 지역에서 전승되는 민요 전반에 대한 연구, 둘째, 각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에 대한 연구이다.

<표4> 각 지역별 민요 연구 현황

경기

충청

영남

호남

관동

관서

관북

제주

도서지역

31

19

53

43

32

8

5

74

23

288

도표(4)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필자가 조사한 850여편의 자료 중에서 각 지역의 민요에 대한 연구는 288편이다. 그 중에서 민요의 수집과 연구에서 가장 열성을 보인 지역은 제주도, 영남, 호남의 순이다. 그리고 국토 분단의 비극으로 말미암아 북한지역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부진함을 알 수 있다.

특히 제주도는 김영돈, 현용준, 임헌도, 진성기 등에 의하여 수많은 민요가 채집되고, 그 내용이 다각도로 연구되어 지역별 민요연구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김영돈은 수많은 민요를 채집했을 뿐만 아니라 50여편의 논저를 통하여 제주민요의 분류문제, 기능, 내용의 분석 등을 시도하여 제주민요의 전승양상를 꾸준히 천착하였다.

임동권(240)은 京南지역 (충남 서북부지방)의 연구를 출발로 전국 민요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그는 각 지방 민요의 가락에 대하여 경향민요는 궁중적 기분에 우아하며, 호남민요는 우아하고 여유 있으며, 영남민요는 장중하고 위압적이며, 서도민요는 애상적이고 수심이 짙다고 지적하였다.

지춘상은 전남 지역의 민요에 대한 꾸준한 수집과 연구를 진행하였는데 최근「전남의 농요」(820)라는 방대한 자료집 을 편찬하였다.

정동화(461, 502, 519, 548)는 경기도의 민요를 수집하고 연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김선풍(525, 533, 606)은 강원도의 민요를 수집하고 연구하였는데, 주로 강릉지방을 중심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조동일은(449, 555)은 경북민요를 수집하고 연구하는데 열의를 보였고, 그 자료를 중심으로 민요연구의 학문적 업적을 쌓았다.

각 지역의 민요에 대한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수집과 연구는 상당히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우선 연구대상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가 진행되었으므로, 그 지역의 실상과 일치하는 민요의 존재양상을 밝힐 수 있었다. 일정한 지역 또는 마을을 정해서 창자, 구연, 사설, 기능, 가락을 유기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가 지역별로 비교 연구될 때, 비로소 전국적인 한국 민요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한편 각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주목할만하나, 실제로 연구된 것은 일부 민요에 한정되어 있다. 앞으로 활발한 연구가 요망되는 분야이다.

이미「삼천리」(1939, 8)에 「제 고장서 듣는 민요정조」라는 제목으로 김안서는 평양의 「기나리」, 금릉인은 제주도의 「이어도」, 한정 등은 평안도 용강아, 강서의 「소박덕이」 이 등, 박상희는 함경도의 「애원성」을 소개하여, 각 지역의 대표적인 고유한 민요에 대한관심이 일찍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각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는 강원도의「정선아리랑」,「강원도 아리랑」, 영남의「쾌지나칭칭」,「담방구타령」, 호남의「육자백이」,「강강수월래」, 관북의「애원성」,「신고산마령」, 관서의「수심가」,「영변가」,「배다라기」, 경기도의「경복궁타령」,「한강수타령」,「아리랑」, 호서의「흥타령」, 제주도의「오돌또기」,「이어도」등이다.

이중에서 가장 많이 채집되고 연구된 민요는 정선아리랑으로 20여편에 달하는 논문이 있다.

정우택 (785)은「정선아라리」의 구조적 특성을 율격적 개방성과 표현의 특질로 보고 기본 율격, 개방성, 엮음아라리의 형식, 그리고 구연의 현장성, 행의 병렬관계, 골계의 효과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정선아라리」의 현실인식을 일반적 양상과 갈등 국면으로 보고, 역사적 전개에서는「아리랑고개」의 인식, 전통시대 극복의 의지, 식민지로의 전락과 민족의 형상, 광복과 분단시대의 아라리로 분류하여 고찰하였다.

김연갑은 「아리랑」(795)에 강원, 정선, 이북, 서울, 경기, 충청, 전라, 경상도에서 전승되는 아리랑을 수집하고,「아리랑」에 관한 연구서와 자료집을 소개하였다.

「강강수월래」에 대해서는 박순호(616)의 「강강수월래의 유래와 어원에 대하여」등 여편의 논문이 나왔다.

관북의 '애원성'에 대해서는 일본인 高稿亨(104)의 선구적인 업적 이후에 박상희(166), 고정옥(193), 임동권(510)에 의하여 단편적으로 언급되었고, 최근 전경욱(807)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전경욱은 함북의 「애원성」은「노령노래」라고도 부르는데 러시아나 간도로 유랑의 길을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노래이며, 함남의 '애원성'은 경복궁을 증건하기 위하여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노래라고 그 유래를 밝히고, 현전하는 43편의 각편을 대상으로내용을 분석하였다.

다른 갈래와의 교섭관계 및 대비연구

민요와 다른 갈래와의 관계 연구는 우선 국문학을 의식하면서 시작되었다. 민요라는 구비물이 문학성을 인정받고 국문학사에 유입되는 과정에서 기록문학과의 교섭·영향관계를 따진 것이다.

민요의 문학적 위치

민요의 문학적 위치를 확보하고자 한 연구는 양명(33)에 의하여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그는 민요, 동요를 문학의 범주로 끌어들이고, 조동현(195)은 민요의 문학성이 무엇인가를 논해 문학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자 했다.

박인식 (253)은 민요가 국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하면서 특히 시조의 기원과 관련됨을 논의하여 민요가 국문학과 중요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밝혔다. 임동권(403)은 민요와 국문학의 관련을 논하고, 처음으로 구비문학사를 써서(405) 구비문학이 기존 기록문학들과 관련되어 온 양상을 정리하였다. 조동일(458)은 민요를 시가의 하위갈래로 설정하여, 이제 민요는 정식으로 국문학의 대접을 받게 되었다.

민요를 국문학사로 영입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주로 시조를 통해 이뤄졌는데, 조동일(592)은 모노래와 시조의 관련양상을 통하여 구체적인 논의를 폈다. 그리고 그간의 민요에 대한 논의를 모아 단행본(700)으로 내놓음으로써, 국문학사에서 민요의 위치가 분명해졌다. 즉 민요는 우리 시가문학의 모태인데, 민요에 존재하는 여러 유형의 기록시가문학 혹은 정제된 형식의 시가로 상승했으며, 율격 등의 문제도 민요를 바탕으로 하여 해결될 수 있음을 밝혀, 국문학 시가사에서 민요의 위치를 강조하였다. 이외에도 문학사와의 관련성 속에서 민요의 위치를 설정하고, 기존 여러 갈래들과의 관계를 살핀 연구가 나왔다. 이동환(487)은 조선후기 한시에서 어떻게 민요를 수용하고 변용하는가 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었고, 한시의 악부체를 다루는 여러 논문에서 민요와의 관련성을 거론했다. 김덕수(602)는 향가, 임종찬은 사설시조(615)와의 미학적인 유사성을 밝혔다.

이상의 연구에서 민요와 국문학의 관계에서 민요가 국문시가 형성이나 변용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구명했다면, 잡가 연구에서는 그 반대의 관점이 작용했다. 즉, 정재호(483) 최성수(763) 노미원(801)은 잡가가 민요의 한 부분으로서, 민요를 근간으로 하여 시조, 가사, 판소리 등에서 무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접 갈래를 어떻게 수용, 변용하고 있는가를 구명하였다. 이창식(782)은 민요, 문헌민요, 가사, 시조 등 각 갈래에 나타나는 방아노래의 교섭양상을 여섯 유형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그는 방아노래는 어느 한 갈래가 다른 갈래를 일방적으로 수용·변용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호교류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설화와 민요의 관계

시가가 아닌 서사물-설화, 한무기록 등과의 관련도 논의되었다. 임동권(565)은 설화와의 관련연구에서 설화가 민요화하는 양상과 설화에 민요가 참여하는 양상을 다루었다. 설화나 여러 기록물에서의 기사와 현존지역 민요들과의 관계를 논의한 것으로는 주로 「산유화가」에 관한 연구인데, 김군태(739)는 그간의 여러 학설을 정리하고 문헌고증을 통하여 향량고사와 선산지방의 「산유화가」의 관계 등을 밝혔다.

한국민요와 외국민요의 대비관계

한국민요와 외국 민요의 대비연구는 부진한 편이다. 외국민요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김동진 (217)인데, 단편적인 소개, 해설에 그쳤다. 임동권 (283)은 중국 민요와 비교하기 위한 전초작업으로 중국 민요를 다뤘다. 박상규(718)는 비교적 많은 양의 몽고민요 원문과 역문을 제시하면서 한국 민요와 비교했는데, 어머니의 애정 등 주제의 유사성을 구명하였다.

외국 민요와의 대비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심명호·피천득(464)의 연구이다. 이들은 영국에서 우리보다 이른 시기에 문자로 정착되어 온 Folk Ballad와 우리의 서사민요를 외형적, 내면적, 문체적 특성을 비교·고찰하였다. 연구자들이 영문학 전공자나 영국에서 연구한 학자들이어서 영국자료는 자료와 자료목록을 제시하고 분석했으며 한국서사민요의 경우는 조동일의 연구결과를 받아들었다.

그 분석결과에서, 줄거리를 갖춘 이야기 노래라는 점, 문체의 간결함, 반복법의 빈번한 사용, 음보와 행의 규칙성, 문자정착이전의 구전성 등의 유사점을 밝혀내고, Ballad와 서사민요 향유 층의 신분문제 ; 주제의 다양성 여부 : 연 구분의 유무 ; 구연현장 등에서의 차이점을 지적하였다. 이 연구는 외국 민요와의 대비연구를 통해 세계문학사에서 한국시가의 위치를 가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음악적 연구

민요의 형식

민요는 민중의 다양한 생활에서 생겨난 예술양식이므로 일정한 형식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선학들은 민요의 형식을 개관하기 위하여 민요의 장단·율격·행의 구성·운의 배치·분절·후렴 등에 대한 많은 연구를 시도하였다.

고정옥(193)과 임동권(246)은 민요의 형식에서 운율의 최소 단위를 이루는 것은 음절이라는 관점에서 음절수에 대한 많은 논의를 폈다.

임동권은 민요의 자수율을 내용과 관련시켜 고찰하였다. 한국민요의 형식은, 첫째, 4·4조의 정형된 노래가 양적으로 월등하게 많으며 질적으로도 우수한 노래가 많고, 둘째, 4·3조는 양적으로 4·4조 다음으로 많으며 주로 동요에 많고, 세째, 3·4조는 양적으로 회소하며 부녀요에 많고, 네째, 4·4이상으로 자수가 늘어나는 경우는 타령이나 노랫가락으로 되어 있다고 지적하였다.

조동일(449)은 「서사민요」 의 연구를 통하여 율격의 기본 단위는 음보이며, 한 음보를 이를 수 있는 음절수는 2·3·4·6음절인데, 4음절이 기본형이며 2·3·5·6·7음절은 변형으로 보았다.

또한 음보격과 내용을 관련시켜 논의하여, 1음보격은 가장 급격한 느낌을 주며 보리타작과 같은 빠른 동작의 노동요에서만 나타나고, 2음보격 역시 빠른 동작의 땅다지기·맷돌노래 ·강강수월래·놋다리밟기 같은 노래에서 나타나고, 3음보격은 그리 급격하지는 않으나 4음보격에 비해서 경쾌한 느낌을 주며 아리랑·한강수타력등 비교적 선율이 풍부한 비기능요에 주로 나타나고, 4음보격은 장중한 느낌을 주며 거의 모든 민요에 두루 나타난다고 논의하였다.

정재호(679)는 민요의 형식을 장단·율조·행의 구성·운의 배치·분절·후렴 등으로 나누어 세밀하게 고찰하였다. 첫째, 민요는 장단에 제한이 없어서 짧은 것은 4구 1행, 긴 것은 272구 68행이 넘은 것도 있는데, 4구체가 가장 많이 활용되었고, 둘째, 민요 율조의 기본 단위는 2음절로 만일 2음절에서 1음절이 모자라거나 남을 때도 역시 같은 2음절의 시간으로 읽으려는 노력이 보이며, 네째, 두운·각운·요운의 운이 나타나며, 네째, 1, 2행의 단형으로 한편의 민요를 이루는 것이 있는가 하며, 여러 개의 단형이 모여 한 편의 민요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분연이 될 때는 후렴이 들어가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따라 음보격을 나누었다.

민요의 가창방식

가장방식이란 창자들이 어떤 형태로 조직되어 노래 부르는가를 말한다. 그 동안 임동권(510), 조동일(458), 박순호(809), 이소라(808) 등에 의하여 민요의 가창방식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조동일은 한국 민요의 가창방식을 선후창, 교환창, 독창(제창)으로 나누어 살폈다.

최근 이소라는 자신이 현지 채집한 민요를 바탕으로 한국 농요의 가창방법을 멕이고 받는 가창방법 , 交唱, 先入後齋唱, 끝음 제창, 독창, 기타로 나누어 세밀하게 논의하였다.

한국 농요의 가장 보편적인 가창방법은 「멕이고 받는 방법」인데, 그 종류가 다양하다고 지적하며 5가지의 사례를 제시하였다. 교창은 가창자가 두 패로 나누어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교대로 노래하는 것인데, 노랫말이 문답식으로 되어 있고 후렴구가 없을 배는 교창방법이 적당하다고 보고 경북 상주의 모심기노래인 「공갈 못 연꽃노래」을 예로 들었다. 선입후제창은 먼저 한 사람이 몇 음만 소리내어 준 후에 이미 다 함께 제창하는 방법이라고 하며, 전북 임실군의 「삼계 농요」와 강원도 명주군의 「핵산 농요」룰 예로 들었다. 끝음제창은 한 사람이 먼저 불러 나가다가 노랫말이 일단락이 나는 구의 물음만 모두 함께 부르는 가창방법인데, 전남 고흥의 밭맬 때 부르는 「육자배기」나 남제주군 안덕면의 「나무 쪼개는 노래」를 예로 들었다. 그리고 위의 가창방법들이 성립하기 위한 요건들을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 자세하게 제시하였다.

이상으로 지금까지 민요의 가창방법에 대한 논의는 주로 농요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어업요, 의식요 등 다른 갈래의 민요의 가창방법에 대한 연구가 과제로 남아 있다.

민요의 채보와 선율연구

민요의 채보문제는 안기영(53), 「조선민요와 그 악보화」에서 일찍이 제기되었고, 최근 현지 조사에 의한 민요의 채보가 활기를 띠고 있다.

1976년 임우상·김동환의 「경북민요의 채보와 연구」가 나왔고, 최근 정신문화연구원 예술연구실에서 제주도(759), 경남(779), 전남(818), 충남(819)의 민요를 채보하여 방대한 자료를 갖추게 되었다.

백대웅은 각 도의 대표적 민요(758)와 전남의 농요(820)를 채보하였고, 이소라(781)는 전국 각지의 농요를 채보하였다.

민요의 선율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이후 한만영(498), 권오성(504), 고혜련(601)에 의하여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다.

연구의 전망과 과제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민요연구는 시기를 거듭할수록 연구수준이 향상되고 각 분야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연구의 현황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민요연구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이제 민요연구의 전망과 과제를 제시하여, 민요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① 구비전승으로서의 생생한 민요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일상생활의 기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민요의 모습과 점차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므로, VTR을 활용하여 연행현장의 총체적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도 필요하다.

② 민요의 전국적인 분포 상황을 알 수 있는 수많은 자료가 수집되었으므로, 이제 이 자료의 분류문제가 과제로 남아 있다. 기능·사설 등 단일한 기준을 택한 단계별 분류작업이 면밀하게 수행되어 한국 민요 전반을 포괄할 수 있는 분류 안이 나와야할 것이다.

③ 일정한 지역 또는 마을을 정해서 창자, 구연, 사설, 기능, 가락을 유기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가 지역별로 비교·연구될 때 비로소 한국 민요의 전반적 인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④ 각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에 대한 관심도 주목할 만하나, 실제로 연구된 것은 일부에 한정되어 있다. 각 지역의 대표적 인 민요에 대한 집중적 연구를 통하여 민요의 지역별 특징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⑤ 민요에 대한 문학, 음악, 민속학의 개별적 연구를 계속하면서, 세 분야의 학자들이 공동연구를 병행하여 민요의 전체적 존재양상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기능요는 특히 그 기능과정 즉 연행 현장이 문제가 됨으로, 이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를 통하여 민요의 복합성과 종합예술적 측면을 밝혀야 할 것이다.

⑥ 민요, 잡가, 시가의 교섭관계에 대한 치밀한 고찰을 통하여 국문학상의 민요의 위치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⑦ 민요의 구연을 좌우하고 그 전승에 기여하는 것은 창자이므로, 민요의 창자와 관련된 문제들을 면밀히 고찰하면 구연과 사설의 관계, 기능과 사설의 관계 등 그 전승원리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⑧ 그동안 민요의 음악적 연구는 주로 농요에 치중되었는데, 앞으로 어업요, 의식요 등 다른 갈래 민요의 형식, 가창방법 등에 대한 연구가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