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인문과학

근대소설사 연구의 소중한 시금석




김재홍 / 인하대 교수)

崔元植 「韓國近代 小說史論」

흔히 개화기라고 불리우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까지의 문학에 대해서는 비교적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문학연구가 많은 경우 문학 내적인 형성 및 전개과정 연구에 초점을 두어 옴으로써 보다 역사적 포괄성과 총체성을 지니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라 하겠다.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볼 때는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역사책 전환기에 해당하며, 민족 관점에서는 항일저항 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이 고조되던 국권상실기에 해당되며, 문학적으로는 고전문학에서 현대문학으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속한다. 그만큼 전환기로서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체계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연구가 지속될 필요성이 있는 시기라 하겠다.

최근에 간행된 崔元植교수의 「韓國近代小說史論」은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이 책의 이 시기에 대해서 역사와 문학을 대응시키는 일관된 시각과 연구방법으로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구성과를 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 저서에 수록된 논문들은 한편 한편이 서로 분리되면서도 통시적인 면에서 연결되며 공식적으로도 상호 연관성이 맺어진다는 점에서 이 저서는 일종의 작가·작품론이면서도 초기 근대소설사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崔교수는 이미 연전에 「民族文學의 論理」라는 역저를 출간하여 이 땅에서 전개되고 있는 민족문학론에 한 논리적 기틀을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이「한국근대소설사론」은 「민족문학의 논리」를 근대소설사 연구의 지평으로 확대시킨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다.

신소설시대의 작가와 작품을 수록

이 저서는 주로 신소설시대의 작가와 작품을 대상으로 한 논문들을 수록하고 있다. 대략 시기면 에서는 구한말부터 3·1운동 무렵까지의 근대소설 초기작단 형성에 관한 탐구의 소산이라 하겠다. 비록 통사체계에 의한 유기적·체계적인 연구는 아니라고 해도 초기작단 형성과정에서 특징적인 양상과 문제점들에 초점을 두고 천착해 들어감으로써 근소설사의 디딤돌을 마련한 것이다.

이 저서는 제 1부 「이해조 문학연구」와 제 2부 초기소설사론으로 짜여져 있으며, 제2부는 다시 「鳳伊型 건달의 문학사적 의의」, 「아시아의 連帶」, 「제국주의와 土着資本」, 「신소설과 勞動移民」, 「애국계몽기의 親日文學」, 「1920년대 신소설의 운명 」, 「李光洙와 東學」,「東學小說硏究」, 「배뱅이굿 연구」등 9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해조 문학연구」

먼저 「이해조 문학연구」는 이해조의 생애와 사상적 궤적 및 문학연구를 통해서 이해조 문학의 실상을 밝히고 문학사적 위치를 점검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이해조가 그동안 이인직의 허상에 가려 제대로 진가를 인정받지 못했던 잘못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이해조를 신소설시대의 중심으로 두어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주장하여 주목을 끈다. 즉 저자는 지금까지 정설이 돼오다시피한 「이인직→이해조」론을 과감하게 부정하고 이해조가 신소설의 전진과 붕괴, 그 전체상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였으며 그가 신소설과 이광수 이후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문학사적 고리가 된다는 점을 실증적·논리 적으로 증명해 낸 것이다.

저자의 기본적인 연구태도는 먼저 실증주의에 입각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서지적 고찰을 통해서 이해조의 작품을 애국계몽기와 식민지시대로 양분하고 작품 하나하나 마다에 정화한 서지 및 판본 연구를 제시한다. 그 결과 36편의 소설 중 6편의 초간연도를 확정하고「산천초목」이 「薄情花」와 동일한 작품임을 새롭게 밝히는 등 텍스트를 종합적이면서도 정밀하게 밝힘으로써 연구의 발판을 든든하게 마련한다. 그는 또한 제반 사실들을 통시적·공시적으로 종합 교차함으로써 정확한 사실의 재구를 꾀하고, 아울러 이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여 가능한 한 오류를 배제하려 노력하는 것이 돋보인다.

저자의 문학사관은 정신사에 바탕을 두면서 역사와 문학을 대응시키는 민족주의 문학사관이라 요약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문학연구는 역사적 환경에 대한 정밀한 검토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적 토대분석 위에서 문학작품 연구가 이루어지는 특징을 지닌다. 이것은 크게 보아 한국사의 주체적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민족운동과 민중운동을 근간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개화기라 불리우는 20세기초를 「애국계몽기」 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저자의 이러한 문학사관을 반영한 것임은 물론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저자의 이러한 연구태도가 일반적인 기존 신소설 연구와는 크게 구별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저자의 연구 태도는 문학 또는 문학사의 범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사회사적인 것을 함께 포괄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가 주로 인용하는 문헌들이 「梅泉野綠」을 비롯한 광범위한 역사·사상사 연구서라는 점들이 이를 단적으로 제시해 준다.

그리고 중국·일본서는 물론 서양서들의 다양한 섭렵이 저자의 포괄적인 안목과 지식의 두께를 웅변해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아마도 우리는 우리의 근대 문학연구에 있어서 이처럼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는 역사·사상사적 자료의 원용이 이루어진 경우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 저자가 이해조의 계몽시상이 서구 근대사상과 청 변법파의 사상을 접수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바탕은 이익 (李潔)의 실학사상에 연원 한다는 점을 밝힌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 하겠다. 아울러 애국계몽기의 소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해조의 변질과 그 문학적 붕괴 과정이 우리나라의 계몽사상이 평민층이 아니라 개명한 양반충의 의식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보다 큰 역사적 한계에 긴박되어 있다는 점을 밝힌 것 (동서 P .176)도 큰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이인직의 친일적인 소설들과는 달리 이해조가 국민주의적 염원을 문학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이 땅의 소설을 근대소설로 진일보시킨 것으로 높이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해조가 신소설 대신 「최근소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작가의 임무가 당대 현실의 묘파에 있음을 강조하였다는 점을 밝힌 것이라든지, 작가는 일체의 봉건적인 질곡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이야기를 그림으로써 국권회복의 주체가 되는 국민의 출현을 강력하게 염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 낸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사람다움의 바탕이 자유에 있다는 신념을 통해서 일체의 차별상을 거부하고, 노동이민문제를 다룸으로써 민중의식·민족의식을 고양시킨 것은 저자의 한 업적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본다면 「이해조 문학연구」는 바람직한 문학이 어떠한 것이며, 또한 문학인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해조를 재발견함으로써 선명히 부각시켰다할 수 있다. 그것은 문학, 특히 소설이 민족의 역사적 삶을 근거로 하여 민중적 삶에 뿌리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봉이형 건달의 문학적 의의」

제2부에서 「봉이형 건달의 문학사적 의의」는 「神斷公案」의 네번째 얘기인 「金鳳本傳」을 대상으로 하여 사회적 질곡 앞에 고뇌하는 한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중세적 인상으로부터 해방되어 새로운 단계의 인간상으로 전이해 가는 모습을 탐구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집권층 내부의 부패와 갈등, 그리고 여기에서 연유하는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게 된다. 저자가 이 「김봉본전」이 담고 있는 침통한 분위기, 노예적 굴종을 거부하는 비타협성, 날카로운 정치적 관점의 함축에 주목하면서 이것이 애국계몽기의 정신적 열기를 반영한 것이라 풀이한 것은 값진 일로 여겨진다.

「아시아의 연대」

「아시아의 연대」는 당대에 크게 유행하던 역사전기물의 한 유형인「越南亡國史」를 분석한 특이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작품의 중심인물 소남자가 바로 월남의 망명정객판 보이 차우(1867∼1940)을 새롭게 밝혀내면서 19세기 말엽에서부터 20세기초에 걸쳐 전개되던 월남의 민족해방운동에 깊이 주목한다. 아울러 이러한 주목은 당대 월남의 멸망에 깊은 공감을 표시하던 당대의 역사적 현실을 날카롭게 파악한 것이 된다.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공동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던 당대 동아시아 제민족들의 연대의식을 통해서 민족주의 사상을 새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실상 약소민족으로서의 월남민족과 그 국가가 당한 시련과 고통이야말로 국권을 상실해 가던 당대 조선인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교훈을 일깨워줬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월남은 제국주의의 일본의 침탈에 서서히 멸망해 가던 당대조선의 또 다른 언론이었던 것이다.

「제국주의와 토착자본」은 지금까지 별반 주목받지 못했던 신소설인 陸定洙의 「松幡琴」을 새롭게 조명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이 땅 토착자본의 붕괴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이 논문에서 제국주의적 압박에 대항해서 토착자본의 활로를 뚫으려는 상인 근암의 고군분투 과정을 통해서, 민족적인 상인의식을 지니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 경제를 일본 자본주의에 예속시키고 마는 토착자본의 비극적인 양면성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가 토착자본의 역사적 향방을 추적할 때 「송뢰금」이 조선후기와 식민지시대를 잇는 중요한 고리가 된다고 밝힌 것은 「송뢰금」이 당대 희유의 상인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소설과 노동이민」은 소설사회학적 입장에서 노동이민문제를 다룬 논문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육정수의 「송뢰금」과 이해조의 「月下佳人」, 「소학령(巢鶴嶺)」등 세편을 통해 노동이민의 참상을 드러냄으로써 당대 민중들의 고통스런 삶을 파헤치고자 한다.「송뢰금」에서의 하와이 노동이민, 「월하가인」에서의 멕시코노동이민, 그리고 「소학령」에서의 로서아 이민들의 참상을 드러냄으로써 약소민족·망국민족으로서의 민족적 비애와 민중적 고통을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 이러한 노동이민 또는 流民생활을 다룬 소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 논문 또한 주목할만하다 하겠다.

「애국계몽기의 친일문학」은 「血 의 淚」의 神話(?)를 비판한 논문이고, 「1920년대 신소설의 운명」은 최찬식의 「白董花」가 전형적 통속소설이라는 점을 지적한 것인데, 이들이 진정한 민족문학 수립을 위해서 매우 불행한 시체였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과 매도는 다시 한번 저자의 문학연구의 기본 태도가 민족문학의 확립이라는 데 목표를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특히 「동학소설연구」는 문학과 문학사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동학사상이란 1910년대에서 20년대에 걸쳐 동학교인 자신들에 의해서 동학 경험을 제재로 창작되어 주로 교단 기관지에 발표된 소설을 의미한다. (동서 P. 332). 따라서 이 논문에서 「천도교회월보」「시천교회월보」 등에 실린 작품들은 본격적으로 분석한 것은 기존 문학사의 범위를 크게 뛰어 넘을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문학사의 영역확대는 새삼스런 것이 아니라 해도 그대 소설사연구에 있어서는 크게 주목되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1910년대 동학이 어떻게 전투적 정열을 상실하고 구원신앙 또는 기복신앙으로 굴절해 갔는가를 날카롭게 묘파한 것은 저자의 비평가다운 면모를 과시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이렇게 본다면 대략 본서의 내용은 ①초기 소설형성사론(이해조, 이인직, 최찬식, 이광수)을 다룬 것, ②전통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 문제를 다룬 것 (「봉이형∼」,「배뱅이굿 연구」), ③민족의식 민중의식을 주로 다룬 것 (노동이민, 동학소설), ④동아시아 민족의 유대의식을 다룬 것 (「월남망국사」)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전체적인 면에서 「애국계몽기」의 정신사적 정황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는 가운데 초기 근대소설의 형성과정을 면밀하게 천착해 내고자한 노력의 소산이라 요약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문학과 역사를 대응시킨「한국근대 소설사론」

따라서 「한국 근대소설사론」은 기왕의 연구들이 지니고 있던 일관된 방법론의 결여와 깊이의 부족을 극복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이 저서는 문학과 역사를 대응시키고 사회사적인 토대분석 위에서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문학의 역사적 연구방법에 있어 한 전범을 보여준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와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문학작품을 읽어내는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해석력은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하겠다.

그러나 이 저서는 그것이 거두고 있는 획기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점에서 아쉬움을 내포하고 있다 하겠다.

첫째로 그것은 문학의 내적 조건에 대한 정치하면서도 유기적인 구조 분석이 다소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문학이 역사의 산물이며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러면서도 독창적인 상상의 체계를 지닌다는 점에서 구조적 분석에 좀더 유의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논지의 전개과정에서 경직성 내지는 획일성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자칫 명쾌해 보이는 논리전개가 독단에 떨어지거나 전체로 함께 묶여 짐으로써 부분적 진실이 사상돼 버리는 위험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인직 폄하, 이해조 부각」의 논리가 부분과 전체의 진실을 탄력 있게 밝혀내는 데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째는 「애국계몽기」, 「국민주의」등 용어상의 문제점이 산견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용어상의 무리는 때로 논지를 단순화하거나 대입식·주입식 결론을 도출하기 쉽다는 점에서 마땅히 경계해야 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문학이 역사를 해석하거나 이념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적 장치로 떨어져버릴 위험성이 없지 않는가 하는 문제가 의문으로 남는다. 역사적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문학작품 해석에 이끌어 들이는 저자의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아쉬움을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사실과 대응되는 문학적 진실이 바람직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삶의 본질을 구명하는 데 필요 충분한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근대 소설사론」은 민족의식·민중의식에 가치 축을 두고 근대소설의 형성과 정과 그 정신사적 특징을 집중적으로 분석해낸 근래의 한 역작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그릇된 학문적 견해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유의지 또는 비판정신이 단연 돋보이는 사도 중요하다. 이인직의 의미와 가치를 비판하고 이해조를 신소설의 중심인물로 부각시킨 것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된다. 특히 역사의식에 바탕을 두고 실증주의에 입각하여 문학작품을 해석하려 한 것은 역사적 삶과 문학적 삶이 결코 유리될 수 없으며, 또 그래서도 되지 않는다는 확고한 학문적 입장을 표명한 것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까지 문학사 기술에 암암리에 작용해온 전통단절론 내지 식민지 사관을 확립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착실히 전개한 데서 본서가 주목에 값 할만하다 하겠다.

무엇보다도 본서에는 모국문학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지속적으로 작용하면서도 학문적인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장점으로 여겨진다. 저자 특유의 깊이 있는 역사의식과 예리한 비판정신이 함께 상승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초기 근대소설사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본서는 근대소설사연구에 소중한 시금석이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