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문화정책과 문화재원
허 권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부
■ 프랑스의 문화예산
앙드레 말로는 「문화는 경제와 유리된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적 생활을 거론할 때 이는 돈과 직결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의 이 말은 문화정책의 경제적 측면을 잘 묘사했을 뿐 아니라 경제정책의 문화적 측면도 아울러 강조한 말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일찍이 예술의 진흥을 위해 루이 15, 16세기때 이미 예술가 연금제도를 실시한 바 있다. 예술가에게 할당되는 예산이 공공부문에서 혹은 민간부문에서 지원되었다 해도 예술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것이라면 그 지원은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문화비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민간부문이 지출하는 예산과 공공기관과 단체가 지출하는 예산으로 구별된다. 1980년 프랑스 문화성의 문화비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개인이 지출하는 문화비용이 프랑스 전체 문화비의 80%에 달하는 것으로 발표됐다. 이는 프랑스내의 문화행사가 주로 개인과 민간부문에 의해 주도된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개인이 일상생활을 통해 어떻게 문화예술행사에 참여하고 그 비용이 어떤 패턴으로 지출되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큰 의의가 있으리라 생각하나 이 글에서는 공공단체와 정부기관에 의해 지출되는 문화예산의 규모와 그 특징을 알아보고 크고 작은 문화예술행사를 기획 집행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을 어떻게 조달하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프랑스의 문화예산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문화예산의 분배율이다. 통상적으로 프랑스정부는 문화예산의 절반을 중앙기구(문화성, 문교성, 청소년체육성, 외무성 등)에 할당하고 나머지 절반을 지방단체에 분배한다. 1981년 통계에 따르면 약 110억 프랑중 55억 프랑이 중앙정부에, 나머지 예산이 지방단체에 분배되었고 이중 문화성이 사용한 예산규모는 약 30억프랑이었다. 프랑스는 자국의 문화예술을 진흥키 위해 과거 20년간 꾸준히 예산규모를 확대해왔다. 문화예산은 20년 전보다 250%가량 증가되었는데 이는 동기간에 다양한 방법으로 재원을 증자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둘째, 프랑스정부의 문화예산을 국민 1인당으로 나눠보면 지방 중소도시의 거주자가 대도시 시민보다 약 배가 넘는 문화비의 혜택을 받고 있다. 1980년 프랑스 국민 1인당 문화비는 약106프랑이었지만 인구 10만에서 15만사이의 소도시의 1인당 문화비는 251프랑이었다. 비록 1인당 문화비의 규모는 지역에 따라 100∼300프랑 사이로 각기 상이하지만 지역주민들이 대도시 시민보다 정부로부터 보다 풍부한 문화 혜택을 받도록 조정되고 있는 것이 프랑스 문화정책 예산편성의 특징이다. 이런 현상은 대도시 집중으로 문화예산이 지출되는 우리의 경우와는 크게 다른 점이기도 하다. (표1, 2참조)
<표1> 중앙정부의 문화비 지출(1980)
<표2> 지역별 문화비 지출현황(1980)
세째, 문화성 이외의 관련정부기관에서 집행하는 문화예산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1980년 중앙정부의 문화예산을 보더라도 전체 55억프랑중 25억프랑이 문교성 등 관련기관에서 집행되고있다. 이는 프랑스내에서 문화 예산의 비율을 볼 때 문화성만이 문화 예술의 유일한 후원기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네째, 프랑스정부는 급증하는 문화예산의 세원을 마련하기 위해 영화산업진흥기금과 같은 기금의 운영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문화예술진흥과 관련된 기금의 수는 대략 20개 정도로 정리될 수 있는데 이중 문화성의 영향아래 있는 기금으로 영화산업진흥기금, 민간극장진흥기금, 기업위원회기금 등을 열거할 수 있다.
(표3)에 있는 프랑스 문화성예산의 분배현황은 우리의 예산 분배와 비교하는 데 유익한 자료이다. 문화성이 책임지고 있는 문화예술 영역을 17개의 카테고리로 구분한 이 표는 사업의 성격을 보존과 보급, 예술창작, 문화행사, 훈련, 연구, 행정 등 6개 항목으로 문화예산의 분배액을 표시해 놓았다. 총 29억 7,500만 프랑의 문화예산 중 문화요원의 양성과 훈련에 거의10%에 해당하는 2억 7,920만 프랑을 집행하였고 영화분야는 제일 적은2,100만 프랑만이 투자되었다. (표3참조)
■ 문예기금의 유형 및 재정지원
프랑스에서 문화예술의 창작의욕을 고취하고자 제도화시킨 여러 기금중 첫 번째로 알아보고 자 하는 기금은 1959년부터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 창립된 「영화산업진흥기금」이다. 이 기금은 다음 3가지 방법으로 재원을 조성하고 있으며 적립된 기금은 영화와 관련된 사업에만 배당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우선 관람객이 영화감상을 위해 입장권을 구입할 때 이 입장권에 통상적으로 13∼14%의 영화세가 부가된다. 극장 경영자는 매주 일정한 양식으로 영화세의 수입실적을 국립영화센터 (CNC, Centre National de Cinematographic)에 의무적으로 보고하게 되어있는 데 이 방법으로 조달된 기금액은 1980년도 기준으로 볼 때 약 3억 2,070 프랑에 달하였다.
둘째, 프랑스정부는 포르노영화와 폭력물영화의 상영을 극장주에게 허락하는 대신 여기에 소위 특별세를 더 물도록 조치하고 있다. 대중의 오락성과 윤리성을 아울러 고려한 조치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 방법으로 프랑스는 연간 3,000만 프랑 정도의 세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째로 이 기금에 적립되는 세원으로 매년 TV방송국이 지불하는 지원금을 들 수 있다. 이는 TV가 영화물을 방송전파를 통해 방영함으로써 생기는 영화계의 손실액을 고려하여 방송국이 이 기금에 정기적으로 일정금액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상 세 가지의 세원을 통해 적립되는 영화산업진흥기금의 배분은 일정한 원칙을 따라 극장, 영화제작자, 감독, 배우, 영화연구소, 영화인양성소, 필름보관소 등에 분배된다. 영화계 인사와 정부 대표자로 구성된 위원회는 기금지원신청을 엄밀히 판정하여 지원대상자를 선정하게 되어 있다.
주로 극장시설의 현대화, 영화기기의 구입, 관람석의 보수를 위해 일정 기금을 극장주에게 지원해 준다. 특히 순수문화예술영화나 실험성이 강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게는 유지비 명목으로 기금이 추가로 지원된다. 그리고 영화감독이나 제작자에게 영화제작에 소요되는 필름의 50%까지의 제작비용을 지원하는데 수혜자는 흥행에 성공했을 때 지원금을 반환하게 되어 있다.
이 기금의 운영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은행과의 관계이다.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은행과 같은 신용기관에 적립하면 은행은 이 기금에게 정부측 보조금 총액의 5배까지 신용대출을 해주는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과거 10년동안 이 신용제도를 통해 기금이 대부 받은 예산이 5억 프랑에 달하고 있다.
다음 우리의 주목을 끄는 기금제도는 소위 「민간극장 진흥기금」이다. 이 제도는 영화산업진흥기금을 선례로 하여 1964년에 설치된 기금제도로 1980년 2,300만 프랑을 적립하였다. 연극, 오페라, 무용, 음악공연 등을 전문으로 하는 극장주의 자발적인 기부금과 프랑스 중앙정부의 지원금 그리고 파리시청의 지원금으로 구성되는 이 기금은 주로 극장시설의 개수, 장비의 현대화 및 작품제작을 위한 비용에 지원된다.
연극, 무용, 발레, 버라이어티 쇼, 음악분야에서 연출가가 재원요청을 해오면 영화산업진흥기금과 같이 전문가, 문화성 및 파리시청 관계자로 구성된 비영리협회가 그 지원액을 결정하는데 통상적으로 총제작비의 25%선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특히 신진작가나 신진연출가의 데뷰작은 35%선까지 지원해 줌으로써 신진예술인의 창작치욕을 고취시킬 뿐 아니라 늘 새로운 이미지를 찾는 대중의 욕구도 만족시켜 주고 있다.
영화산업 진흥기금과 마찬가지로 예술적 실험성이 강한 작품의 공연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300석 미만의 소극장의 운영비 지원에 결코 인색한 편이 아니다.
문화활동은 기업 내에서도 강화되어야 한다는 방향은 프랑스로 하여금「기업위원회가」를 조성하게끔 하였다. 이 위원회의 가입은 전적으로 회사측의 자유이나 대다수 대규모 회사들은 이 기금위원회에 가입되어 있으며 인건비의 규모에 따라 기금 조성률이 결정된다. 회사내 도서관 설치 및 시설확대, 여가시설 구비, 문예 페스티벌의 조직 등의 사내행사에 지원될 이 기금의 1980년도 규모는 4억 5,000만 프랑이었다.
참고로 중요 기업체의 기금 조성률을 보면 먼저 프랑스 IBM이 3.8%, 에어 프랑스가 4%, 프랑스국영철도가 3%등이다. 단 이 기금의 단점은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상이 소규모회사에 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문화생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많은 회사의 가입이 소망스러우나 그 가입여부는 각 회사의 자율의사이므로 프랑스 정부는 이 기금의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프랑스내의 모든 TV방송국들은 매년 문화성이 작성한 예술작품목록에서 최소한 4편의 연극, 2편의 오페라, 1편의 무용을 선정해 방송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만약 이중 특별한 사유로 인해 방영치 못했을 경우 미상영분은 다음 년도로 이월되어 방송해야한다. 그리고 각 방송국들은 매년 문화성 후원의 문예물중 총제작비의 30%이상을 문화성 지원아래 공영된 연극, 오페라, 무용물을 최소한 각 장르별로 5편 이상을 방영해야 한다.
이밖에 음악진흥을 위해 프랑스내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콘서트를 24회 이상(단 26분 이상 짜리 음악물) 매년 방송하는 한편 매월 90분 이상을 음악과 관련된 청소년 교육, 강좌프로그램을 방송토록 되어있다.
이러한 방송프로그램을 통한 예술지원책을 위해 프랑스 방송국은 자체내 예술진흥비를 책정해 두고 있는데 1980년 총 5,500만 프랑이 이의 제작·상영에 할당되었다. 이를 위해 문화성이 지원한 예상규모는 겨우 900만 프랑이므로 결국 6배 이상의 사업효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각 방송국의 예술지원노력과 병행하여 영상예술의 향상을 위해 프랑스가 갖고있는 기금으로「시청각창조기금」을 열거할 수 있다. 이 기금은 영상제작물의 질·양의 향상을 도모하자는 기본목표에 따라 1979년 결성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제작비중 10-40%선 안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 기금의 수혜자는 자신의 제작물에 대한 상품화의 권리를 갖게 되어있으나 문화성이 비영리의 목적으로 복제·배포하고자 할 때 수혜자는 이 기금의 규정에 띠라 문화성에 복제허가권을 양도하게 되어 있다.
1980년 약 700만 프랑이 조성되었고 국립영화센터의 책임 하에 지원되었는데 지원의 주된 대상자는 현재 다수에 의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사라져가는 예술을 찾아 그 내용을 정리·영상화하고자 하는 제작자들이다.
국립예술보급사무국(ONDA, Office National de Diffusion Artistique)은 1975년 예술가의 권익을 신장하고 행정적 장애를 덜어주고자 설립된 비영리협회이다. 이 기관이 수행하고 있는 고유의 업무를 간단히 살펴보면 첫째, 음악·무용과 같은 예술물이 공연후 손실을 보았을 때 이 단체가 예술가에게 손해액의 일부를 지원해 주는 기금이 운영되고 있다. 물론 지원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예술적 가치 및 타당성을 거치고 난 후에 이 지원이 이루어지는데 통상적으로 손해액의 절반까지 보상해 주고 있다. 그 다음이 단체가 수행하고 있는 업무가 재정중재사업인데 이는 어떤 문화예술단체가 최소한의 재정지원을 요청해올 때 이 기관이 여러 기금운용 단체와 협의하여 지원하도록 중재·알선하는 사업이다. 마지막으로 이 단체는 예술지원을 위한 체계적인 정보자료를 수집 보관하고 이를 원하는 단체에게 자문해주고 있다. 예컨대 실험적인 예술이 공연될 때 야기될 수 있는 흥행의 실패를 극소화하기 위해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예술가와 극장주들의 정보를 제공해주고 각 지역에서 공연될 수 있도록 행정지원을 해준다는 것이다. 창설 그 이듬해인 1976년에 이 기관은 인구 10만 미만의 소도시 212개소에서 총 1,371회에 달하는 예술사업을 전개하였다.
「Help with First Exhibition」이란 슬로건은1960년대 프랑스 미술계에서 생겨난 지원책이지만 이것이 공식적으로 정착된 때는 1971년이다. 이 제도는 신진화가의 작품을 전시하는데 따른 화랑의 재정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예술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양하자는 데 그 근본취지가 있다. 문화성은 자문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데뷰전을 기획하는 화랑에 전시비용의 50%선까지 지원해 주고 화랑은 작품을 매매하고 생긴 수익금중 절반을 화가의 몫으로 화가에게 지불해주는 제도이다. 이때 화가에게 지불하고도 수익금이 남았을 경우 화랑은 우선 자신의 개최경비를 이것으로 충당하고, 만약 화랑의 개최경비를 전부 제하고도 수익금이 여전히 남았을 경우 문화성으로부터 지원 받은 금액을 전부 혹은 일부라도 상환하게 된다.
프랑스는 이 제도를 활용하여 1971년부터 1978년까지 205명의 국내외 화가중 69명에게 혜택을 주었다. 프랑스 문화성은 매년 10만∼12만 프랑을 이 사업을 위해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 국민들은 오랜 기간동안 학교나 사원 같은 공공건물은 예술가의 작품으로 장식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는 1979년부터 정부기관의 감독 하에 건축되는 공공건물은 총건축비의 1%를 예술품 장식비로 할당하라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 제도로 문화성은 자체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면서 예술가에게 간접적으로 창작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1980년 프랑스 내에서 이 제도로 인해 수백 명의 예술가들이 약 1,500만 프랑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한편「국립도서기금」은 도서 및 잡지의 부당 복제 행위를 막는 한편 복사기를 제작, 수입, 판매할 때 소위 복제세를 부가하여 그 징수된 기금을 도서진흥에 활용한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1980년 한 해동안 2,700만 프랑이 적립되어 국립도서 센터에서 국립도서기금의 명목으로 문학창작, 번역 및 지방 500개 공공도서관에 할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