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프로그램

고전소설의 재창조는 어떻게 되어왔나




설성경 / 문학박사, 연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계명대·한양대 교수역임.

현 연세대 국문과 교수. "춘향전의 계통연구" "구운몽연구" 등의 저서 다수.

Ⅰ. 들머리

고소설의 생성은 15세기 김시습의 傳奇小說에서 비롯 되었다. 고답적인 양반들이 정통적 한문학인 한시를 문학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던 시기에 세련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소설양식이 일부 혁신적 지식인에 의해 창작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출발한 소설문학의 전개에는 중국문학이란 외래문학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지만, 선진한 외국문학의 양식을 수용한 후, 이의 토착화와 대중화를 추구하는 데에 金時習, 許筠, 金萬重, 朴趾源과 같은 능력 있는 작가의 역량이 기여하였다.

초기에는 한문소설이 중심을 이루었으나 임·병양란 이후에는 서민적 의식이 바탕이 된 국문창작 소설과 판소리계 소설이 새로운 주제와 서술기법 등을 드러내면서 그 중심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 결과 초기의 금오신화 같은 중국적 한문소설은 허생전, 호질과 같은 한국적 한문소설로 변모하고, 국문소설도 중기의 홍길동전 같은 번역체 국문소설에서 춘향전, 심청전 같은 구어체 국문소설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처럼 400년 이상의 긴 시기에 걸쳐 창작된 고소설은 그 당시대의 독자에게 어떤 삶의 의미를 제공하고 감동을 주었는가 하는 사실 못지 않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창조적 재현을 통하여 어떤 예술성을 구현하고 있는가가 주목될 수 있다. 더구나 주체적 민족문화를 추구하는 자주문학의 실천을 위해서는 전통에 뿌리를 둔 고전소설이 어떻게 개작 내지 재창조되어 왔고. 앞으로 재창조되어야 하겠는가를 점검해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물론 지난 시대의 소설은 그 시대의 원형대로 고전으로의 평가를 받으며 현대독자에게 초시대적 공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예술수용의 하나로 고전소설의 현대화를 통하여 현대화된 고전으로서의 초시대성을 획득함도 개방적 고전이해의 참다운 길이 될 수 있다.

고 소설 중에서 그 예술성이 평가된 고전소설도 현대의 문인, 예술가에 의하여 개작 내지 재창조의 대상이된 작품은 극소수의 작품으로 한정되고 있다.

현대화가 되어온 대표적 고전소설의 갈래로는 창작계소설 중에서는 허 균의 홍길동전, 김만중의 구운몽, 박지원의 허생전, 양반전 등이고, 조웅전을 비롯한 절대 다수의 창작계 군함소설들은 지난 시대의 고전으로만 읽히는 폐쇄적 고전 소설임이 확인된다. 여기에 반하여 골계미와 풍자성이 뛰어난 판소리계 소설들은 거의 모든 작품이 골고루 다양한 현대의 예술양식과의 접목을 계속하여 왔다.

이 글에서는 고전소설의 현대화를 개관하여, 그 특징을 살펴봄에 목표가 있기 때문에 창작계 고전소설과 판소리계 고전소설을 별도로 구분하여 살펴봄으로써 유형간의 상대적 개성을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작품으로서는 춘향전, 심청전과 예술양식으로는 창극 양식을 통한 현대화는 별고로 다루기 위하여 여기에서는 제외하였다.

Ⅱ. 창작계 고전소설의 개작·재창조

개인의 창작물인 창작계 고전소설은 700종 이상의 작품이 전해오고 있다. 이들 중에서 현대의 문인 예술가들에 의하여 창조적 계승을 위한 대상으로 선택된 작품은 대부분이 강력한 개인의식이 투영된 허 균의 洪吉童傳, 김만중의 九雲夢, 박지원의 兩班傳, 許生傳 등 작가가 알려진 작품들이다.

작가미상의 작품으로는 장화홍련전이 1925년 김영환 각색, 박정현 감독에 의해 단성사 촬영부에서 작품화된 이래, 1936년에는 洪開明 감독에 의해 경성촬영소에서, 1956년은 鄭昌和 감독에 의해 태양영화사에서, 1972년에는 이희우 극작, 이유석 감독에 의해 안양영화제작주식회사에서 각각 영화화하였다. 또 이춘풍전은 1982년 신태석 극본, 이병훈 연출로 <춘풍의 처>란 표제로 극단 도라에서 공연했고, 1984년에는 김지일 극본, 손진책 연출로, 1986년에는 오태석 극본, 연출로 각각 마당극화 되었다. 옥단춘은 1956년 權寧純 감독에 의하여 동방영화제작사에서 영화화한 인후, 이정자 각색, 정창화 감독에 의하여 대한연합주식회사에서 촬영하였다.

풍자소설 두껍전을 소재로 한 소설이 1971년에 오찬식에 의해 창작되었고, 70년 초에 국문학계에 처음 발표된 윤지경전은 1974년에 河有祥 극본, 崔玄民 연출로 무대에 올려졌다.

최초의 傳奇小說集인 금오신화에는 5편의 한문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소재로 한 재창조 작업은 1963년에 최인훈에 의하여 이루어져 사상계에 발표되었고, 1981년에는 이하륜 극본, 손진책 연출로 극단민예극장에서 금오신화란 제목으로 연극이 공연되었다. 유영의 夢游錄 소설인 운영전은 1925년에 尹白南 각색, 감독에 의하여 부산 조선키네마사에서 영화화 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창작계 고전소설의 개작 내지 재창조는 박지원의 한문단편 중 양반전, 허생전과 김만중의 구운몽, 허균의 홍길동전이 주류를 이루고있다. 이 중에서 홍길동전은 1946년에는 朴泰遠에, 1964년에는 金利錫에 의해 소설화가 된 것을 제외하면, 영화로 현대화되었음이 주목된다. 즉 1934년에 윤백남 각색, 김소봉 연출, 감독으로 경성촬영소에서 영화화한 것을 비롯하여, 그 후편이 1936년 李明雨 감독, 촬영으로 같은 경성촬영소에서 나왔다. 1960년대 후반에는 허 진 각색, 강중환 감독에 의하여 합동영화사에서 활빈당이란 제목으로 영화화했고, 1967년에는 만화영화가 申東憲 감독에 의하여 세기상사에서 제작되었다. 그후에도 쾌걸 홍길동이란 표제로 유일수 각색, 임원식 감독에 의해 대양영화사에서 작품화했고, 1976년에는 辛奉承 극작, 최인현 감독에 의하여 삼영필림주식회사에서 촬영하였다. 그후에도 정비석 각색의 흥길동이란 표제로 김일해 프로덕션에서 영화화되었다.

1. 박지원 소설의 현대화 양상

박지원은 다수의 한문단편소설을 창작하였다. 그 중에서 穢德先生傳, 廣文子傳, 閔翁傳, 金神仙傳, 虞裳傳, 馬저 傳은 아직 개작되지 않았고, 허생전을 비롯한 兩班傳, 虎叱만이 개작되고 현대화 되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선비문화의 허구성과 모순을 보다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생전의 개작, 재창조에 의한 현대화는, 소설로 1923년에 이광수의 <허생전>이 창작된 것을 비롯하여, 1946년에는 채만식의 <허생전>이 창작되었다. 또 희곡으로는 오영진의 <허생전>이 1970년에 나왔고, 1975년에는 전진호의 인형극본인 <허생전>이, 그 뒤를 이어 李根三의 극본인 <이런 사람 (허생이야기)>이, 1980년에는 박귀재 극본 <허생전>이 나왔고, 마당놀이로는 1981년에 이근삼 극본, 손지일 연출의 <허생전>이 공연되었다. 또 양반전은 1966년 신봉승 각색의 영화<양반전>이래, 1971년 마광수 극본의 연극<양반전>, 1972년 유현종 극본의 <양반전>, 1973년 마광수 극본의 마당극 <양반놀음>과 1986년 박만규 극본, 김희조 장인환 작곡의 뮤지컬 <양반전>이 대표적인 현대화 작업들이다. 허생전과 양반전에 비하여 덜 주목받은 호질은 1974년 金容洛 극본. 金正鈺 연출로 자유극장에서 東里子傳으로 처음 공연되었다.

이광수의 <허생전>은 단편소설로 된 박지원의 작품을 장편소설로 개작했기 때문에 서술구조와 주제의식에 상당한 변모를 가져왔다. 이 작품은 원래, 1923년 12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2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신문연재소설이었기 때문에 흥미위주의 다양한 사건의 삽입, 원한과 복수의 극적인 장면의 설정 등으로 통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구원자로서 의 허생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게 됨으로써, 그만큼 필연성이 약화되었다. 사건의 전반적인 흐름은 장안의 갑부 변진사의 배경 설명에서 시작하여, 변진사와 허생, 허생과 이완대장의 사건으로 진행된다.

작가는 '변진사' '안성장' '과일무역' '과일흉년' '도적' '허생의 본색' 등의 소제목으로 이어지는 줄거리에서 전인적 지도자 상을 우상화된 허생의 삶을 통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원작에서의 변화가 가장 심한 곳은 결미 부분으로, 「공장과 장사가 쇠하면 백성이 가난해지는 것이요, 백성이 가난해지면 나라를 원망하는 것이요, 백성이 가난하고 나라를 원망하면 세금을 바치지 아니하는 것이니, 백성이 세금을 아니 바치면 나라가 무엇으로 서 가나요?」란 표현 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허생에 의한 참신한 계획이 왕에 의해 받아져서 왕이 전쟁의 망상을 버리고 경제발전을 도모하여 허망한 북벌론을 극복함에 그 의도가 있다.

채만식이 해방 이후의 대중을 계몽하기 위하여 박지원과 이광수의 소설을 참고하여 개작한 작품이 1946년 9월에 탈고하여 11월에 조선금융조합연합회의 협동문고로 간행한 중편소설 <허생전>이다.

허생이 가난 속에서도 글만 읽다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서 집을 나와 갑부 변진사를 찾아가서 만냥을 빌어서 안성에 있는 강선 달집에 머물면서 과일을 매점하여 많은 돈을 벌고, 화적들이 쳐들어오자 이들을 설득하여 가난하고 핍박받는 백성들과 함께 제주도로 들어가서 제주 목사를 내쫓고는 그곳을 지상낙원으로 건설한다. 그후 고향으로 돌아와 북벌의 방안을 강구하는 이완대장을 만나 정치와 사회문제를 토론한 후에 행방을 감추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전개에 나타난 채만식의 개작의도는 事大思想의 비판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사대사상을 약한 민족이 무력으로 정복을 당한 후에 이어서 문화적으로 정복을 당하였을 때 생기는 무서운 아편에 비유하며, 문화적 정복은 피정복자를 동화시키고 마취시켜 피정복자인 약한 민족으로 하여금 자신을 잊어 버리고 정복자를 숭배하고 정복자에의 반항력을 영원히 마비하게 하는 요물로 파악케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사대사상은 민족을 멸망시키는 가장 큰 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또 효종과 송시열이 중심이 된 북벌계획이 지닌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백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함이 최상의 목표이어야 함을 허 생의 주장을 통하여 강력히 제시한다. 결미에서 허 생의 원대하고 실천적인 현실인식을 이완대장이 수용하고, 이를 왕에게 진언하겠다고 하지만, 허 생의 계획은 왕에 의해 실천되지는 못한다. 이는 이광수의 <허생전>이 보여준 변화를 잇지 않고, 원작인 박지원의 <허생전>으로 복귀하고 있는 채만식의 작가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1950년대에는 전체적으로 고전의 현대화가 위축되면서 박지원소설의 개작, 재창조가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1966년에는 신봉승의 극본에 최인현 감독이 촬영한 영화 <양반전>이 한양영화공사에 의하여 나오게 되었다.

70년대의 박지원 소설의 개작은 吳泳鎭의 희곡 <許生傳>이 70년 12월 현대문학지에 첫 연재가 된 후 3회에 걸쳐 발표된다. 이 작품의 구성은 첫 이야기인 '다방골進士', 둘째 이야기인 '샌님의 商法'으로 되어 있다.

개작에서 나타난 특징은 박지원의 양반전과 허생전의 두 흐름을 허생전을 축으로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반전의 수용방식은 이념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갈등만이 아니라, 양반의 수칙을 표현하는 부분 소재와 양반문서 등에서도 확인된다. 양반전과 허생전의 흐름을 허생전으로 통합시키면서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은 시대의 사회상에 대한 강한 풍자성이다. 이는 草根木皮로 목숨만을 이어가는 백성이 많은 반면에, 늘 酒池肉林에 살아가는 특권층이 있음을 반복하여 부각시킴에서 알 수 있다. 이런 의도는 부분 표현과 함께 안성의 상인 인강선달과 선혜청 全需인 박몽인이 빛어내는 과일난리가 당시의 경제파동을 풍자하고 있음에서 드러난다.

1971년 10월에는 연세대 국문학회에서 마광수 극본, 김상렬 윤색, 이종환 연출, 박헌영 기획으로 연극 <양반전>이 공연되었다. 구성은 서장인 '산길', 1장 '동헌앞' 2장 '주막거리' 3장과 4장 '동헌'으로 되어 있고, 등장인물은 사또, 貧生員, 나그네(암행어사)를 비롯, 기생과 나졸 등이 다수 출연한다.

사건은 이조 중엽 오뉴월 강원도 어느 고을의 동헌과 주막을 무대로 벌어진다. 서장에서는, 흥겨운 국악이 흘러나오면 막 앞에 초롱불을 든 빈생원이 등장하여 창조로 노래한다. 호색적인 생활의 멋을 노래하는 빈생원의 유혹에 빠져 사또는 비밀요정을 찾아나선다. 사또는 한 미인을 수중에 넣기 위하여 백석의 쌀도 아까워하지 않고 밤길을 헤메다 도적을 만난다. 도적은 사시장철 땅만 파먹고 사는 농민이라며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사또를 보고는 사또의 수염을 자르고, 옷을 벗겨, 그권위를 실추시켜 권력자의 위선을 풍자한다. 이 극에서는 시대 배경을 옛 시대로 설정하고, 언어표현이나 사건 전개는 현시대의 감각에 맞는 유행어와 사건을 수용함으로써 관중과의 일체감을 고조시켜 마당극에의 접근을 꾀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1972년 2월에는 劉賢鍾의 희곡 <양반전>이 현대문학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현대문학사 전속극회 2회 공연작품으로, 성주목사인 양반을 비롯하여, 그의 처 허부인, 상인 부자인 천가, 천가의 아들 천치, 양반의 애첩인 춘정, 양반의 비서인 책방, 성주군수 등이 등장하며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작이 줄거리가 지닌 틀에다 현대의 사회상을 이입시킨 개작품이다. 양반은 가렴주구, 횡령착복, 매관독직에 부정축재한 貪官汚吏들을 모두 밝혀내어 처단하려는 안렴사에 의해 전재산을 몰수당하고 삼천석의 추가 징수를 명령 받는다. 돈보다 무서운 게 없다는 상인부자 천가는 양반도 돈 앞에서는 늑대만난 족제비처럼 힘을 못 쓰는 줄을 알고 있었다. 책방이 구관 목사가 와서 부임한 지 사년 동안 세번이나 국정감사를 무사히 넘기더니 이번에 국정감사차 내려온 안렴사에게 발각되어 직위를 해제당하고 재산 몰수 이외에도 삼천석의 벌과 금이 추징되어 양반의 자리를 삼천석에 팔기로 했다고 한다. 천가는 양반이 되는데 삼천석이 너무 비싸다고 값을 내려 달라고 하자, 책방은 양반의 첩까지 포함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거간꾼 노룻을 감당해낸다. 그러나 막상 양반 매매문서의 교환식이 있게 되자, 양반 첩으로 부터 양반연습을 당해보니 양반규율이 너무 까다롭다며 도적 같은 양반이 될 바에야 신세 편한 상놈으로 살겠다며 도망한다.

1973년 11월에 마광수 극본, 연출로 연세대 교양학부에서 <양반놀음>이란 마딩극이 공연되었고, 구성은 '양반마당'. '쌍놈마당', '잔치마당'의 세 마당으로 되어 있고, 양반인 貧生員을 비롯하여 백정인 屠서방등의 천민들과 출연자의 대표역을 맡는 뚤뚤이, 관객의 대표역을 맡는 잽이가 주요 기능을 한다. 마당극의 형식을 실험한 작품이기 때문에 서막에서 북소리가나면 등장인물이 모두 각설이 타령을 하며 등단한다. 이는 판소리와 탈춤의 재담 및 삽입가요를 매개로 하여, 연기자와 청중의 정서적 거리를 최소화함으로써 마당놀이의 독특한 분위기를 살리려는 장치다. 인물의 형상에는 원작의 모습을 파괴하고, 가난한 양반의 인간상의 새로운 의미 형성에 초점을 두었다. 극의 진행에서는 잽이에 의해 유도되는 재담에 의지하여 사회의 모순상을 골계미 짙게 풍자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특히 '잔치마당'에서는 탈춤의 사자를 옥황상제의 보좌역으로 등장시켜, 타락한 인간의 참회를 유도하고, 이를 축하하는 타령과 춤의 어우러짐으로써 화해의 마당을 열게 한다.

2. 김만중 소설의 현대화 양상

김만중은 한문, 한글의 두 가지 문자로 창작한 관념소설 구운몽과 국문소설로 謝氏南征記를 창작하였다. 구운몽은 1920년에 연극화되고, 1962년에 최인훈에 의해 소설화된 <구운몽>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용의 형식으로 재창조되었다. 즉 1908년에 한성준에 의한 性眞舞를 비롯하여, 1966년 朴美子의 <구운몽>, 1985년 컨템포러리 공동안무로 <아홉 구름과 꿈>이 공연되었다. 또 사씨남정기는 車凡錫극본, 전귀영 연출로 1974년에 연극화 되었다.

1962년에 최인훈의 소설 <구운몽>이 발표되었다. 이 작품의 구성은 원작이 도를 닦는 성진이 팔선녀와 희롱하는 형상부분과 그가 양소유로 환생하여 여덟 여인과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부분처럼, 전생의 부분인 어젯밤의 독고민의 행각과 현생의 부분인 오늘낮 병원의 일로 구분된다. 이 소설의 현재의 시간은 작품 결미에 나타나는 병원원장 김용길 박사, 아마츄어 시인이며 해부학자인 민, 민의 애인, 간호부장 등으로 엮어진다. 병원원장인 김용길박사는 토끼, 말, 코끼리의 강건너는 우화를 읽고 인간존재가 벗어나지 못하는 윤회의 이치를 생각한다. 또 늙은 간호부장은 4·19때 죽은 자기 아들을 생각하고, 민은 朝鮮原人考란 논문을 쓰다가 독고민이란 몽유병으로 죽은 자의 시체를 해부하면서 독고민의 생전의 행각을 추리한다.

독고민에 대한 시체의 해부와 재결합을 통하여 독고민이 살았던 시대 상황의 역사적 평가를 시도하는 민의 눈에 비치는 세계는 바로 민의 전생과 같이 연상되고 있다. 즉 젊은 시인의 무리에게 쫓기고, 늙은 은행가에게 쫓기고, 어여쁜 무희들에게 쫓기고, 창부와 마담과 깡패에게 쫓기고, 혁명군과 정부군의 스피커에 쫓기는 독고민의 갈등은 하나의 시체로서의 의미가 아닌, 그가 살았던 시대를 통한 민의 시대적 재현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치료받아야 할 사람과 치료를 해주어야 할 사람의 관계를, 이 시대의 병폐를 둘러싸고 이루어진다. 이 시대의 병은 그 시대가 지니는 아픔과 환부의 상징적 표현이며, 병든 현실의 문학적 은유다. 특히, 독고민의 세계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꿈이 나타나는데, 첫 꿈은 이 소설의 첫 대목으로서 「관속에 누워 있다. 관속은 태집보다 어둡다」로 표현되고 있다. 이관은 독고민이 살았던 세계를 암시하며, 독고민의 의식은 바로 미이라의 세계다. 이처럼 독고민의 의식 내부에는 매우 컴컴하고 닫혀진 암울함으로 충만되고 있다. 기발하고 암시적인 비유의 기법은 난해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신선한 상상력을 열어주는 고전의 재해석이란 점에서 이 작품의 문학성이 평가될 수 있다. 나아가서, 원작의 관념성 짙은 주제의식을 한 시대의 불행한 사태에서 시대풍자로, 인간의 근원적이고 일반적인 존재양상의 풍자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김만중의 의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한 최인훈의 작가의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

1985년에 김연혜의 극본, 朴明淑 연출 컨템포러리의 공동안무에 의하여 <아홉 구름과 꿈>이란 무용극이 발표되었다. 이 무용극은 구운몽의 무용화란 새로운 실험을 한 작품으로서 妙有禪師, 眞空, 향난, 정숙, 춘월, 계향, 선화공주 등의 등장 인물명을 더욱 상징화시켜 재창조한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작품의 의도는 원작 구운몽이 지닌 다원적 공간상인, 즉 천상, 현세, 수궁, 선계 등 조선조인들이 지녔던 우주론의 총체적 인식을 재현함과 동시에, 眞空妙有에 근거한 심오한 불교 철학을 무용으로 형상함으로써 禪的인 주제를 동양적 신비성으로 표현하려는 데 있다.

1장의 막이 오르면 운무속에서 단좌하고 있는 진공이 드러나고, 왼쪽 무대에서 妙有선사가 등장함으로써 진공과 묘유의 출현을 알리는 序詩가 은은히 울린다.

「가고 오는 것도 없이 이름도 형상도 없이, 영원한 운행을 멈추지 않는 우주만물. 작은 티끌 하나에도 온 세계가 담겨 있음이며, 영겁의 시간 또한 일순의 바람에 일럭임이여.」

이러한 형이상학적 심성을 서정화시키는 서시를 배경으로 하면서 「비어 있음은 더욱 가득차 있다」는 상징성이 무거운 현악의 뒷받침을 받으며 춤의 신비성을 채워나간다.

전체적 구성은 求道를 형상화한 1장에 시작된다. 여기에서는 바람과 나무와 구름의 형상화를 바탕으로 삼으면서, 남성 2인의 단조로운 동작으로 전체의 주제를 장중한 분위기로 드러낸다. 2장에서는 화사한 봄날을 상징하는 원색의 조명속에 8선녀와 수도승 진공과의 천상에서의 만남과 이로 인한 파탄을 중심으로 인간적 사랑과 천상적 진리의 대립이 진행된다.

3장은 선과 악의 대결을 통한 현세적 삶의 양상을 드러내고, 대립과 반복을 통하여 끊임없는 투쟁을 형상한다. 4장은 현세에 다시 태어난 진공과 8선녀의 만남이 중심이 된다. 서로의 사랑의 결연, 이들 여인들간의 시기와 질투를 지나 화해로운 현세의 아름다움으로 발전한다. 5장은 빠르고 원색적인 음악과 조명의 뒷받침 위에 진공과 춘월, 정숙, 향난 등의 무용에 의해 만남의 상징화가 강화된다. 그 속에서도 각자의 현세적성이 발휘되고, 인간적인 갈망이 2인, 3인, 4인무의 결합에 의한 7선녀의 춤으로 드러난다. 6장은 暗轉된 무대가 밝으며 나타나는 군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북소리에 조화를 이루며, 수십 개의 밧줄을 통해 전쟁의 암울상을 상징시킨다. 진공의 권력성취 과정과 전쟁을 묘사한다. 지배와 정복으로 남성의 야망을 부각시킨다. 정복한 진공의 모습과 선화공주와의 결연을 주제로 하여, 권력과 명예 이상의 숭고한 사랑을 부각시킨다. 8장은 꿈에서 진공이 용궁의 전쟁을 진압하고, 용왕의 딸 유선과 맺어지는 환상의 무대를 표현한다. 특히 용궁의 용을 통하여 환상적 세계의 현란함을 형상한다. 9장에서는 인생의 허무를 깨달은 구도자의 삶의 완성을 주로 표현한다.

車凡錫 각색의 謝氏南征記는 1974년 11월에 전귀영 연출로 숭의여전 연극부 공연으로 연극인회관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이 극본은 원작과 김만중의 강렬한 윤리주의를 바탕에 둔 가정소설이 지닌 주제의식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에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희곡은 2경으로 구성하였고, 주역인 유연수, 사씨, 교씨를 비롯하여 동청, 십랑, 냉진, 유모 등 원작에서의 활동인물만이 아닌, 춘방, 억쇠, 마당쇠 등의 하인배를 내세워 현실감을 높였다.

첫째 경의 서두에서 남주역인 유연수가 등장하여 낭독조로 교씨를 질책한다. 열 가지 죄목이 열거된 다음에, 천지간에 큰 죄를 짖고도 살려고 발버둥치는 교씨의 행동을 강조하며, 작가는 천대인의 부조리한 현실을 빗대어 질타한다. 본 무대가 나타나면 사씨가 몸종 춘방의 안내를 받고 마루로 나와서, 혼인한지 10년이 되어도 아기를 낳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노출한다. 그후 교씨의 음모와 그 실행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여, 둘째 경에서도 원작의 사건 중에서 핵심이 되는 교씨의 잔악상을 극적인 대화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며, 사씨의 덕성에 대한 칭송보다는 교씨의 부정적 인간상이 빚어내는 탐욕과 음행의 피해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Ⅲ. 판소리계 고전소설의 개작·재창조

판소리계 고전소설은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토끼전, 배비장전이 주로 현대화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이외의 작품으로는 淑英娘子傳이 1978년에 이경손 감독에 의하여 이경손프로덕션에서 촬영한 이후, 70년대에 박철민의 시나리오가 나왔다. 또 1964년에는 朴常隆의 소설 <장끼傳>이 사상계에 발표되었고, 1969년에는 최인훈의 소설 <옹고집뎐>이, 1982년에는 김한성 극본, 김두영 연출로 <변가옹가>가, 1986년 이강백 극본, 이승규 연출로 〈非雍似雍〉이 연극화되었다. 또 1981년에는 유흥렬 연출로 <강릉매화전>이, 1984년에는 허규 극본, 손진책 연출로 <가로지기타령>이 연극화되고, 1986년에는 엄종선 감독에 의해 <변강쇠>란 영화가 제작되었다.

1. 흥부전의 현대화 양상

흥부전의 개작, 재창조는 소설로는 1913년 李海朝의 <연의각>이란 신소설화 이후, 1939년 蔡萬植이<興甫氏>를, 1965년에 徐槿培의 <흥부네 집>이, 1966년에 崔仁勳의<놀부뎐>, 1973년에 吳贊植의 <흥부傳>으로 현대화되었다. 또 영화로는 1950년에 洪龍周 감독에 의한 <흥부와 놀부>가 금강영화사에서 촬영된 이후, 1959년에는 코미디 영화로 <흥부와 놀부>가 나왔다. 1963년에는 金千興에 의해 무용극 <흥부전>이 공연되었고, 1971년에는 李眞淳 극본 <흥보가>란 연극이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1973년에는 강만희 극본으로 주한 외국인 유학생이 <흥부와 놀부>를, 1974년에는 김철 극본, 마광수 연출로 연세대 교양학부 연극반에서, 1974년에는 최인훈 극본의 <놀부전>이 민예극장에서 공연되었고, 이 극본은 77년과 79년 81년 허규 각색으로 민예에서 재공연되었다. 또 1975년에는 인형극 <흥부전>이 현대인형극회에서, 이진순 극본, 이창구 연출로 아동극단 무지개에서, 1980년에는 김진석 연출로 <제비와 흥부>가 한국청소년연극협회에서, 안정희 연출의 <흥부와 놀부>가 꼭두놀음패 초란이에서, 1982년에는 강승균 극본, 조용수 연출의 인형극 <흥부와 놀부>가 현대인형극장에서, 1983년 김지일 극본, 손진책 연출로 <놀부전>이 마당극으로, 1985년에는 아마츄어 연극인들에 의한 맹인돕기 자선공연인 <흥부굿>이 파고다극장에서, 1987년에는 김일구 제작, 정현 연출로 <놀부전>이 마당극으로 공간사랑에서 공연되었다. 이 이외에도 1983년에는 고전을 소재로 시화 작업을 즐겨하는 姜南周에 의하여 <놀부의 꿈>이란 시가 木馬(목마) 13집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흥부전이 판소리나 창극을 통하여 끊임없이 전통의 고수란 측면과 창조적 변모를 하고 있듯이, 판소리계 소설의 계승이란 측면에서 현대화를 지속하고 있는 모습의 한 단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39년 채만식의 소설 興甫氏가 인문평론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작품의 줄거리는 일이 꼬여들기만 하는 가난한 현서방의 어떤 하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비새끼가 둥우리에서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윤보와 술을 먹다가 마누라에게 들켜 문 밖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작품에서 현서방은 소극적 삶이 지닌 한계를 스스로 인식하고 마음을 고쳐 잡자 가난에서 벗어나므로 현서방의 빈궁이 사회적 의미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식민지 시대의 도시 하층민의 문제를 건강하게 제시하는 데는 한계를 보이지만, 가난의 해결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지니지 못한 현서방과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강씨부인의 성격 창출은 흥부 내외의 성격에 비하여 발전된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40대의 소학교 소사인 현서방은 식민지 시대의 하층민을 상징하는 위치에서 활동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그의 삶이 부인의 예수교입교를 계기로 변화하기 전까지는 모주나 마시며 맥없이 살아가는 빈궁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강씨부인의 결단으로 현서방은 가난의 늪에서 벗어나 소시민으로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원작의 줄거리는 흥부 시대의 사건이 아닌 현서방 시대의 사건으로 변모되었지만, 그 서술의 기법은 흥부전이 지녔던 판소리 내지 판소리계 소설 기법의 현대소설화란 점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광대가 청중 앞에서 사설을 흥미롭게 엮어내듯이 사건의 세부적인 모습을 묘사한다. 그 결과 소설이라기 보다는 청중들 앞에서 연회를 진행하는 광대 사설이 지닌 텁텁하고 걸죽한 문체의 분위기를 교묘히 드러내게 하고 있다.

1965 년 4월에는 徐槿培의 소설<흥부네집>이 현대문학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줄거리는 회사 서무계장으로 喪妻를 한 오계장과, 겨우 쌀 한가마 값 남짓한 월급쟁이 큰 아들, 시골 중학교 체육선생의 부인이 된 딸, 취직도 못해보고 술이나 먹고 다니는 건달인 작은아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릴 때는 만두장사, 청년시에는 식민지하의 순경, 광복 후에는 회사원으로 살아온 52세의 오계장은 참고 견디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복은 당사자가 누리는게 아니라, 그의 부양 가족이나 자손이 누린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는 해방시에 자신이 노부모를 모시고 살아가기 위해 일본인 경찰 간부에게 아첨하며 살아왔던 것을 피눈물나게 슬퍼하고, 자신의 동료들이 그 후에도 자신의 사욕만 채움을 보고 엄청난 비애를 느낀다. 또 큰아들이 다니는 출판사의 비리를 알고 나서 어두운 사회 속에 머뭇거리며 살아가는 안타까움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자기의 가족들의 순진한 삶을 모델로 큰아들이 흥부네 집이란 소설을 쓰고, 이것이 현상모집에 당선될 날을 꿈꾸는 것으로 오계장 집안의 소망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전환기를 살아가는 주인공의 소박한 삶의 심층을 드러내놓음으로써 불의와 권세로 치부를 하는 사람들의 뒷켠에 서서 흥부형의 인간상을 유지하는 한 가족의 아름다운 꿈을 제시하고 있다.

1966년에는 최인훈의 소설 <놀부뎐>이 월간문학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작품메모에서 제시되듯이, 私本古典 시리이즈의 하나로, 놀부라는 인간상이 근대시민의 원형으로 간주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살리며 패러디화한 것이다.

놀부 내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여 부자가 되었다. 게으름으로 가난을 면하지 못하던 흥부는 우연히 산속에서 금은이 든 보물궤를 발견하여 큰 부자가 되었다. 놀부의 권유로 형제가 함께 보물 궤를 되돌려 놓으러 갔다가 궤를 숨겨두었던 전라감사에게 잡혀가서 옥에 갇히었다. 낮이면 탐관오리인 감사가 매를 때리며 돈을 착취하고 밤이면 옥형리에 시달리다 마침내 형제가 옥중에서 원통하게 죽었다.

이러한 놀부전의 사실을 광대들이 미화하여 흥부전으로 만들어 잘못 전하였음을 밝힌다는 것이 작품의 큰 줄거리다.

언어표현은 판소리의 문체를 그대로 수용했고, 삽입시의 기능은 변형된 시조를 통하여 재현하였다. 즉,「전주감영 韉발근 밤에 옥듕에 둘히 럅쟈 큰 쟉 목에 차고 큰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바시락 쥐소래는 나의 이를 끈나니」와 <우리 형뎨 죽어서 무엇이 될고폁니 만슈샨 제일봉에 두 꿁람 신션되어 세상일 내 몰라라 ꟁ둑쟝기 두리라」등은 전통시조의 문맥을 변헝시키면서, 옛 충신의 정신과 타락된 사회 속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다 옥중에 갇힌 놀부와 흥부의 신세와 의지를 표상하고 있다.

1973년 10월에 吳贊植의 소설 <흥부傳>이 현대문학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자립정신이 없고 심술사나운 심성을 지난 현대인 속의 흥부를 비판적인 눈으로 서술하고 있다. 전통 흥부전의 부정적 인간형이었던 놀부의 심술을 흥부의 나태에 결합시켜 「통금직전 남의 집 대문차며, 고성방가에 오줌누기, 만원된 극장안에서 불이야 하고 고함치기, 육교밑 아장아장 건너가기, 고속도로에 돌 던지기」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놀부는 부모의 유산을 그대로 건사하는 한편, 청계천 구석에서 빈병장사로 돈을 벌어 빌딩도 사서 잘 살아간다. 흥부는 집을 팔아 독채전세로, 독채전세에서 방 두어칸 딸린 전세로, 급기야는 하천부지에 막벌이꾼이 살다 이사간 블로크 집에 삭월세로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흥부의 소망은 큰아들을 장가보내고, 큰딸은 간호원 자격증을 따서 서독 간호원으로 못 보낼망정 좋은 신랑감이라도 만나게 성형수술이라도 해줘야겠고, 대학입시에 떨어진 녀석은 재수를 시키지 못할 바에야 자동차학원에라도 보내 면허증을 얻게 해주고 싶은 일 등이다. 이러한 꿈을 실현시키려고 형인 놀부의 사무실에 찾아기서 형수로 매를 맞으며 주는 돈 50만원으로 복권을 샀다가 그것마저 날려버리는 허망한 존재로 부각시켰다. 최인훈의 <놀부뎐>은 1972년 까페떼아뜨르에서 김영열 연출로 초연되었다. 이 공연에서는 해설가가 무당의 역할을 담당하여 놀부의 영혼을 불러내는 무당굿의 영실대목을 도입하였고, 놀부와 흥부, 형리(形吏)에게 가면을 씌워 탈놀이의 수용을 보여주었다.

또 1973년의 민예소극장에서의 재공연에서는 해설자의 무당 역할을 판소리 창자의 입장에 서게 하여 판소리의 기법을 최대한 수용했다.

1974년 9월 김철 각색, 마광수 연출로 연세대학교 교양학부 연극만에 의해서 <흥부전>이 공연되었다.

전체적인 구성은 들어가는 마당, 첫째마당 놀부네집, 둘째마당 흥부네 마당, 사이인 잽이와 받이의 수작마당, 넷째마당인 재판 마당으로 뛰어져 있다. 판소리 흥부가의 사설을 일부 수용하면서 현대사회의 세태를 빗대어 표현한 재담을 혼용하고 있다. 인물의 성격형상에서는 흥부의 나태성을 비판한다. 염라대왕은 흥부를 재판하며 「먹을 것도 없으며 가족계획을 외면하고, 막중한 시대에 살며 절망, 실의만 함」을 탓한다. 이는 놀부의 무한한 탐욕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나약한 성품으로 인하여 사회의 그늘에만 묻혀서 허약한 비판과 자기부정의 늪에서 헤매는 흥부형의 삶도 비판의 대상이 됨을 풍자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전통적 흥부전은 허망한 광대의 재담임을 지적하고 있다.

1987년 1월과 2월에 김일구, 김영자 부부와, 은희진, 이순단 부부가 펼친 마당 <뺑파전>과 <놀부전>이 공간사랑에서 공연되었다.

놀부는 추하고 악한 저주의 상징적 대상으로서 매도되던 악인형에서 벗어난 현대적 해석이 주어졌다. 위선과 무능과 부패가 활개치던 시대의 어두움을 놀부를 극악하고 추악하게 만든 사회로 환원시킴으로써, 진실한 인간애의 고귀함을 제공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한다.

무위에 안락감에 쌓여있는 놀부의 유일한 낙은 자신보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질책하는 일이다. 놀부의 하인 마당쇠는 놀부의 행위가 너무 방자하므로, 그의 탐심을 이용하여 뜨거운 빗자루 세례를 퍼붓고 온갖 귀신을 불러들이는 천지팔음경을 낭독한 후 놀부의 수명을 재촉하며 집을 떠난다. 놀부는 의외의 복병인 마당쇠로부터 당한 뜻밖의 습격에 침몰하게 된다. 이처럼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는 무지한 마당쇠의 용기와 재치를 바탕으로 익살이 넘치는 풍자 해학극으로 재창조한 작품이다.

2. 토끼전의 현대화 양상

토끼전의 개작, 재창조를 개관해 보면, 소설로는 1916년에 이해조의 <토의肝>이 신소설로 나왔고, 1945년에는 金南天의 <토끼傳>이 창작되었다. 무용극으로는 朴成玉에 의한 <토끼전>이 1952년에 발표되었다. 가장 활기있는 창작이 된 영역인 연극화는, 1987년에 안종관 극본, 박룡기 연출의 마당극<토선생전>이, 1982년에는 김지일 극본, 손진책 연출의 마당극 <별주부전>이, 신근영 극본, 서현석 연출의 <토끼전>이, 1984년에는 안종관 극본, 권재우 연출의 마당극 <토선생전>이 재공연 되었다. 시조는 1982년에 姜寅翰의 <토끼가 용왕님께>가 圖卓시집을 통하여 발표되었고, 1985년에는 李大永의 <토끼전>이 詩圖시집을 통하여 발표되었다.

토끼전의 현대화에서 주목할만한 작품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1980년 5월 극단 마당에서 공연한 토선생전은 '칡순먹고 간을 키웠더니'란 부제를 가지고 있다. 극본은 安鍾官이 쓰고, 박룡기, 임범복, 황루시가 연출을, 채송화가 안무를 金順天이 무대감독을 맡았다. 이 작품은 임형택 소장 필사본으로 토끼전의 한 黑本인 토처사전이 지닌 강렬한 풍자정신을 바탕으로 개작한 것이다. 즉 이 이본은 별주부가 갖는 헛된 출세욕이 마누라까지 바쳐가면서 토끼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고, 그 하룻밤 정사 때문에 상사병에 걸려 토끼를 기다리다 지쳐 죽는 별주부 부인이, 돌아오지 않는 별주부를 위한 수절로 칭송되며 열녀문이 세워지는 결말 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서민들이 표현할 수 있는 풍자나 비판의 수준을 고조시킨 개작 소설이다. 이러한 개작소설을 근거로 안종관은 새로운 기법으로 이를 극본화 하였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변모는 원 대본이 판소리 작품이기에 난삽한 한문 투의 귀절이 많으므로 이를 탈춤의 말뚝이와 취발이를 등장시켜 재담적 표현으로 대치하여 풍자와 해학을 통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 결과 극적 전개와 구성의 방법, 말뚝이의 사회의식, 시간과 공간의 자연스런 처리, 관중의 자연스런 개입을 통한 전통의 재현을 추구하였다.

80년대 접어들면서 본격화되는 마등극의 전통을 이<토생전>에서는 판소리와 탈놀이의 만남으로 다시 확산시켰다는 점이 주목될 수 있다.

특히 이 극본의 연출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발언이 시공을 초월하고 있는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현대적 감각의 발언들이 표현되더라도 그것이 생경스럽게 느껴지지 않도록 발언과 행동을 보다 개방적으로 열어놓음로써 마당극의 효과를 극대화 시켰다. 이를 구체적 언어표현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육담적인 풍자어가 많고, 창작 주제가를 삽입시켜 참신하면서도 전통성을 유지하려는 데 촛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정희성 작사, 박범훈 작곡의 '어화넘자'란 주제가에서 <이내 한숨 산이 솟고/ 네 울음은 물이 되어/ 산은 첩첩 천봉인데/ 물은 출렁 한강수라/ 어화 넘자 바다를 넘자/ 어화 넘자 저 산을 넘자」등은 전통의 재현을 위한 실험이다.

1982년 9월에 圖卓詩 22집에 발표된 姜寅翰의 <토끼가 용왕님께>는 토별가의 시화의 한 예가 된다.「한 백년쯤 잊어버려 ! / 하시면 그렇게 잊어드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라 하시면/ 오른쪽으로 돌려드리지요」로 시작되는 시의 흐름은, 뾰족한 방도가 없는 현실 속의 평범한 삶에 대한 풍자로 일관한다. 죽으라고 하면 절반쯤을 죽어 드릴 수밖에 없는 세월을 살아온 토끼의 입장에서는 도토리 만한 자신의 간덩이야 있으나 마나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自嘲어린 호소가 지닌 반어야말로 토별가의 패러디화의 단면이 된다.

또 1985년 6월 詩圖 25집에 발표된 李大永의 <토끼傳>도 이러한 풍자정신을 계승하고 있다.「쓸개 없는 녀석들이 들끓고 있다. / 간 없는 녀석들이 들끓고 있다. /허파 없는 녀석들이 들끓고 있다. / 심장 없는 녀석들이 들끓고 있다. / 5장6부 한 조각 없는 녀석들이 들끓고 있다」

판소리의 서술기법을 살려서 되풀이하여 형상하는 현대판 토끼형 인간상들. 이들의 삶의 방식은 결국 겉으로는 빈틈없이 짜여진 현대인이지만, 반듯한 말씨, 반듯한 예절 뒤에는 공허한 넋만 있음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있다. 동시에 거북이 등에 업혀가도 걱정 한푼 어치 하지 않는 우리들이 실제로 물질과 권세에 눈이 어두운 또 하나의 토끼로 전락하고 있는 세태에의 아쉬움이 장르를 극복한 현대시 양식을 통해 재현되고 있음이 특징이다.

3. 배비장전의 현대화 양상

배비장전의 개작, 재창조는 소설, 시, 연극, 발레 등으로 이루어졌다. 소설로는 채만식이 1941년부터 42년까지 <가정의 벗>이란 잡지에 연재한 후 1943년 박문서관에서 출판한<배비장>을 비롯하여, 1966년에는 玄石連의 <배비장>이 삼중함에서 , 1969년에는 權寧雲의 <배비장)이 승인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또 1972년에는 吳贊植의 단편소설인 <배비장전>이 월간문학에 발표되었고, 1983년에는 柳在熙의 <사화 배비장>이 종로서적출판공사를 통해 출판되었다. 연극으로는 1920년에 박승희의 <배비장전>이 공연된 이래, 1975년에는 이상운 극본, 박 진 연출로 <배비장전>을 국립극단에서, 1975년에는 김상렬 극본, 김재연 연출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에서, 1976년에는 강만희 연출로 주한외국인 연극회에서, 1980년에는 김상렬 극본, 김영환 연출로 극단 시민극장에서, 1985년에는 강한조 연출로 제주 정랑극단에서 <배비장전>을 공연하였다. 시는 1984년에 震檀詩 동인들이 발표한 8편의 주제시가 그대표적 재형상의 예이다. 또 발레 양식으로는 1985년에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배비장전의 현대화에 기록될 대표적 업적을 중심으로 그 성격을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1943년에 판소리의 분위기와 기법을 현대소설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채만식은 배비장전을 소재로 중장편소설 <배비장전>을 창작하였다. 이 작품은 제주도의 풍경과 유명 산물의 소개가 있은 다음에 제주목사로 도임하게 될 김 경과 그의 비장인 배선달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또 종결 부분에서는 김 경의 추천에 의하여 배비장이 정의현감에 부임하게 되어, 원작에서 벗어난 작가의 화해의식을 보여준다.

인물의 형상에서는 애랑의 부분적 기능을 대신할 월중매를 등장시켜 역할을 분담시키고 있음이 특징이 된다.

특히 이 개작에서는 채만식 특유의 문장과 인과론에 의한 사건 전개의 원리에 따라, 선행한 고소설로서의 배비장전에 비하여 현대적 해석이 가해졌다. 또 결미 부분에서도 부드러운 관용으로서 인간의 약점을 비판하고 징벌하되 재기의 길을 터서 삶의 성취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냉엄성과 관용성을 포용하는 새로운 문예 미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는 살벌한 비판이 지닌 경직성을 극복하고 인간적 이해를 기초로 한 작가정신의 표현이다.

문체는 구어체를 집중적으로 구사하면서, 상스런 말이나 욕설을 내세워 서민층의 현실감이나 비판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층의 문어체 문장과 한시가 간헐적으로 인용됨으로써. 판소리계 소설이 지닌 이중적 성격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1972년 8월에 월간문학을 통해 발표된 吳贊植의 꽁트<裵裨將傳>은 배비표 잡곡상 대표의 이야기다.

제주도 한라산 송암정의 마담 애랑은 미스 코리아에 당선된 경력이 있고, 현역 국회의원의 사랑을 받는 처지다. 서울의 상인으로서 비행기로 제주에 간 배비장은 미모의 여비서를 국회의원에 넘겨주고, 자신은 애랑을 찾는다. 애랑에게 자기 회사의 주식 절반을 주고 관계를 맺다가 애랑의 남편에게 발각되어 나머지 주식을 다 내놓고 나서야 용서를 받는다.

이러한 줄거리는 원전의 틀을 유지하면서, 현대인의 세태를 풍자하는 직설적 통속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현대판 배비장전으로서의 주제가 너무 강화되었기 때문에 판소리계 소설 특유의 여운이나 풍자성을 지닌 골계미는 상대적 약화를 가져오고 있다.

1975년 8월에 공연된 김상열 희곡 김재연 연출의 <배비장전>은 해설자를 비롯하여, 배비장, 방자, 사또, 애랑이 등장한다. 사건은 이조 중엽 어느 3월 제주도 일대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서막은 북의 장단에 의해서 객석의 불이 暗轉되면, 어둠속에서 여러 사람들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에 무대의 불이 들어오면 배비장이 땅에 엎드려 개헤엄을 열심히 치고 있다. 역시 주위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계속된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해설자가 등장하여, "됐어요. 거기까지! 네. 이것이 배비장전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세상에 물 속에서 개헤엄 치는 사람은 봤어도 땅위에서 개헤엄 치는 사람은 처음 봤소이다. 원래 이 배비장전은 唱劇本 즉 다시 말해서 판소리 극본을 소설화한 것으로서 그 형식이 다분히 희곡체일뿐 아니라, 우리 고전소설에서 보기 드문 사실적 표현으로 서술되었음이 특징입니다.

소위 영정조시대의 문학이 평민문학이라고 국문학상 구분짓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배비장전은 차라리 서민적이라고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풍자와 해학의 최고봉을 이루고 있읍니다."하고 알린다.

이러한 고전으로서의 원작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후에, 이의 현대적 재현을 전체 6장면 중에서 후반의 3장면만 소개하겠다고 한다. 이어서 서울 마포에 살던 배선달은 김 경이라는 양반이 제주도 신임사또로 도임길에 오르자 예방의 직위로 따라온 사람으로 너무 지나치게 여자를 멀리하는 선비행세를 하는 데서 이 작품의 희극성이 생기게 됨을 극적인 대화를 중심으로 제시한다.

극의 전개는 원전의 줄거리를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판소리의 삽입가요의 기능을 재현하기 위하여 창작시와 전통시조를 수용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즉 꽃놀이에 간 사또와 비장들이 기생들과 어울려 놀고 있음을 탓하면서 홀로 돌아앉은 배비장은 「天長하니 한양은 路千里요/ 海潤하니 영주는 波萬頃을 / 如花美人은 看楚越이요 / 醉弄江山은 無恨景을」 이라 읊고, 이어서 정물주의 단심가를 읊조린다.

전통의식을 창작의 정신적 바탕으로 삼고있는 震檀詩 동인들이 1983년에 발표한 <第三作品集>은 배비장전을 테마 시로 삼아, 고전소설의 시화작업에 새 지평을 열어놓았다.

林英姬의 <裵裨將의 너털웃음〉은 허망한 웃음의 이미지를 결합시켜 배비장전의 예술성의 핵심이 되는 풍자성을 재현한다.

「허허허 / 허허허 웃어야지 / 수염 석자 기른 丈夫로, 태어나 / 뒤웅박 접시 물에 헤엄이 웬말이던가 / 서귀포 앞바다 물고운 천지에 네 활개 쳐 / 용궁 金빛 서까래 몇개 뽑아다가 /애랑이년 이빨 쑤시개로나 던져볼걸」

이와 같은 시의 흐름은 배비장의 웃음 건너에서 마주치는 허망한 세상에 대한 허탈감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장부의 순정을 짓밟고도 외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돌아서서 헤달거리는 애랑을 향한 배비장의 눈초리는 진지함과 결별한 속물주의에 대한 자성적 깨우침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풍자성은 배비장의 눈을 통해 애랑과 공모한 대중을 향해 냉엄한 이성의 상실과 그 인간적 아픔을 되돌려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姜熙根의 <裵裨將, 그리고 裵裨將>에서는 옻이 오른 배비장과 아지랑이가 융합되어 하나의 심상을 형상하면서, 참다운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삶을 비판하고 있다.

「裵裨將/ 裵裨將이 옻나무/ 옻오른 맨살을 긁습니다. / 밤새워 긁어도 밤새워 애리는 / 자리 / 날이 새자 이어 옻오른 / 서귀포의 아지랑이 젖어오고 / 젖어온 아지랑이 / 기인 손톱으로 그의 애리는 데를 긁습니다.」

이러한 시행들에서 보면, 배비장은 소설이란 허구의 판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깊은 내면에 스며와 있는 영혼의 가려움을 자아내는 그늘진 존재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러한 창조적 해석은 하늘을 우러르며 깨어있기 어려운 현실의 무게를 온몸의 흔들음으로 호소하는 배비장의 생동감 있는 몸짓에서 드러난다.

金圭和의 <愛娘의 말>은 애랑의 어긋난 시야를 통하여 강한 비판의 눈을 자극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래서 이 시는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슬픔과 비장함을 냉엄한 깨우침의 시각을 매개로 확인시키고 있다 .

「나 죽었어도 죽지 않았어요/ 八道江山 다 듣보고/ 그저 그런 한심스런/ 그저 그런 재미스럼 다 듣보고. / 東軒 앞뜰에 바람이 일고/ 출렁이는 바다는 예나제나/ 더욱 발전한 五倫을 보고도/ 濟州의 돌하루방 방긋이 웃네요./ 예나제나 웃기만 하네요. 」

이러한 시의 전개에서 형상되는 심성처럼, 성욕의 과잉분출로 파생되는 타락된 세상에의 안타까움을, 나도 그러니 괜찮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애랑의 서글픈 넋두리로 시를 맺고 있다.

文孝治의 <염라대왕에게 온 裵裨將>에서는 배비장의 자기 변호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대왕님 /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 사또 이하 여러 裨將들 제주에 到任하여 美色에 美酒에 질탕하고 놀았어도/ 아무뒷탈 없었고요.」

이러한 비장의 하소연은 정비장은 애랑에게 국고를 열어 젖히고 한 살림 떼어주었어도 옷을 벗겨 죄를 다스릴 때 붉은 밑천만은 가리게 해주었는데, 자신은 혼자 잠시 짝사랑 한 것을 이토록 모질게 매도할 수 있느냐는 논리다. 자신은 공금을 축낸 일도, 직권을 남용하여 일을 그르친 일도. 불쌍한 아랫것들을 심하게 다룬 일도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현대인의 삶이 지닌 그늘과 그에의 무관심에 대한 풍자의 의미를 짙게 깔고 있다.

朴鎭煥의 <詩로 써 본 裵裨將傳>은 강한 서사성에 힘입어 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소설 중에서 궤속에서 나온 배비장의 모습을 정점으로, 집을 떠날 때 약속의 동앗줄에 꼭 묶인 가슴의 고삐를 아내에게 건네주던 상황과는 대극의 위치에 선 민망함이 부드러운 분위기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첫행과 마지막 행에서 반복되는 「핫핫핫 헛헛허 힛힛힛 훗훗후 킬킬킬」은 이러한 심성의 감각적 처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林 步의 <裨將後記>는 정화된 시적 서정성을 기본적 분위기로 하면서, 물질과 애욕의 가느다란 끈을 노출시키고 있다.

「새벽이면/ 깃 빠진 늙은 장끼가 되어 / 아파트의 창밖에 내던져지고/ 우리는 빈 포도 위에서/ 잃어가는 領土를 향해/ 노란 울음을 묻었다.」

이는 울창한 술집 한 구석에 빈 주머니로 서 있는 예비 미망인의 심상에 의지하며, 배비장의 숨겨진 의식을 형상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원작이 지닌 원형적 정서를 현대인의 삶에 재투영하며, 동시에 서사적 주제를 서정의 예술로 치환하는 한 단서를 보여준다.

鄭義泓의 <배비장의 변명>에서는 독특한 골계적 미의식으로 고전적 의미의 손상이 없이, 그 의미의 위에 현대적 시의 감각과 서정의 표현미를 용해시키는 길을 열었고, 朴掠錫의 <裵裨將과 어우러는 나의 變秦>는 민족 분단의 비통한 아픔과 이념의 갈등이 자아내는 처절한 비극성을 새로운 해석의 바탕으로 삼아, 배비장전의 현대화에 기여하고 있다.

Ⅳ. 마무리

60년간의 현대화 작업의 개관에서 얻어지는 결론은 대상 작업이 너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전소설의 연구가 폭 넓게 진행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소설의 연구결과에 따른 참신한 소설대상의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면, 三說記에 수록된 단편 풍자소설들을 비롯한 서옥기류는 전통소설의 세계관을 깊이 있게 수용하고 있다.

또 이미 정평있는 김만중과 박지원의 소설은 사심성과 풍자성을 현대적 감각으로의 단순한 접목이 아닌, 주제와 기법과 분위기까지 현대 예술양식의 섬세성과 심오함을 빌어 발전적 해체를 할 수 있는 거듭된 실험정신이 요구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소설이란 양식이 지닌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작가의 숨겨진 의도와 현대적 문예성, 예술성이 들어앉을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최고의 사상성을 보여주는 구운몽의 경우, 보다 다양한 양식에 의한 거대한 규모의 재창조가 이루어짐으로써 동양정신의 참다운 가치를 보편적 세계성으로 환원시킬 수 있을 것이다.

판소리계의 작품은 창작계에 비하여 전반적으로 빈번하게 재창조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판소리의 예술성은 문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비극적 정황과 희극적 표현의 전환이 조화됨이 중요하다.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적 감정을 희극적 표현으로 중화시킴으로써 서로 상이한 두 미감에서 생성되는 총체적 미감인 제3의 미감에 그 예술성의 뿌리가 있다. 여기에 비하여 현대화된 판소리계의 재창조물은 이런 판소리 특유의 미감은 발전적으로 형상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하고, 안이한 답습에 머물고 있거나, 비극적 감정마저 희극적으로 처리해버림으로써 퇴행의 길을 걷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한계의 극복은 판소리 양식보다 다양하고 화려한 현대 예술양식의 표현에만 의지해버리지 않고 판소리 예술의 본질을 더욱 심화시키면서 현대의 폭 넓은 국제양식과 접목할 때, 판소리계의 현대 예술물은 민족예술의 개성과 보편예술로서의 국제감각을 함께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모색은 음악성은 음악성대로, 문학이나 연희성은 그 나름대로의 쉬임없는 창조적 모색의 결과로 꽃 피워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또 극양식으로의 재창조의 경우를 보면 사설이 지닌 서사성이나 풍자성을 표출하는 데 촛점이 주어졌기 때문에 연극으로의 행동화된 갈등의 형상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그 결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쪽보다는 상황을 보여주고 정감을 일깨워주는 쪽으로의 전환적 개발이 요구된다. 또 70년대 이후에 성행한 마당놀이화에서는 이런 극화의 본질이 개인놀이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의 놀이이며 의식이라는 양식적 개성에 치중한 나머지, 원작이 지닌 주제의식의 일탈이 너무 강화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反主題化에 의한 고전의 재해석이 창조적 재현의 한 길일 수는 있지만, 놀부의 인간상이나 뺑덕어미의 인간상을 통한 고전의 뒤집기는 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반하여, 서민의식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방자의 기능확대 등은 원작의 주제에 애정을 두면서도 현대인의 공감을 획득할 수 있는 긍정적 모색의 한 예로 평가된다. 그러므로 고전소설의 본질에는 손상이 없이, 그 현대화에로의 길을 추구할 수 있는 건강한 재해석이 활발히 진행될 때, 우리의 삶을 함께 해온 마당극 속에서의 어우러짐이 굳건한 공감의 터를 마련하며, 신명과 새생명의 활력소를 쏟아내는 판의 어우럼이 될 것이다.

고전 소재의 전통 공연예술의 해외소개도 이젠 활기를 띄우고 있다. 올해 상반기만 하여도 2월초 서울오페라단이 <대춘향전>으로 미국 뉴욕 등에서 공연을 가졌고, 극단부활은 3월에 해학극 <배비장전>으로 뉴욕, 필라델피아 등 6개도시 순회공연을 했고, 서울시립가무단도 뮤지컬 <양반전>으로 5월부터 샌프란시시코 등 6개 도시 순회공연을 하고 있고, 국립창극단은 창극 <춘향전>으로 일본 도쿄, 무사시노에서 열리는 5월 예술제에 참가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적 분위기를 물씬 풍길 수 있는 고전소설에 뿌리를 둔 전통예술은 한국적 특징을 최대한 형상할 수 있는 연구와 노력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속에서 온전한 자리매김이 될 것이다. 이런 외국 공연을 포함한 국내의 모든 예술활동이 민족의 숨결과 영근 예술혼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방 순회 공연의 활성화와 지방공연 단체의 뒷받침이 요구된다. 또 폭 넓은 연회양식을 개발하며, 한국적 전통을 살리면서도 세계적 예술의 양식과 호흡하여 그 수준을 향상시킴으로써, 우리 것을 모색하는 전통중심의 새로운 실험과 정착의 길이 열릴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나온 자취를 보다 객관적인 짓대로 측정하면서, 실증적인 자료에 대한 온전한 검토, 치열한 비판정신이 뒷받침 된 객관적 분석과 합리적인 종합으로 새 차원의 연구와 공연의 대전환이 주어 질 수 있을 것이다.

낡은 가치관을 새로운 가치관으로 혁신시키고, 지난 시대의 예술의식을 발전적으로 변모시킬 때, 고전을 소재로 한 예술행위도 민중의 의지와 미감을 하나로 응집할 수 있는 일체감 있는 예술로 승화시키는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강한 실험성이 건강한 모습으로 현재화될 때, 전통문학의 현대예술화는 아름다운 지평을 열며, 그 새로운 의의를 형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소설 개작·개창작 현황>

박지원의 소설


김만중의 소설


허균의 소설


그외의 창작계 소설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


판소리계 소설 토끼전


판소리계 소설 배비장전


그외의 판소리계 소설